엉클 톰스 캐빈 아셰트클래식 2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크리스티앙 하인리히 그림, 마도경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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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지막에 톰 아저씨와 조지가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약간은 과장된 평가와 함께 뇌리 속에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실체는 없었다. 오히려 노예와 관련된 것이라면 쿤타 킨테로 대변되는 <뿌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읽지 않은 소설보다 어릴 때 본 미국 드라마의 이미지가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 기억하는 쿤타 킨테는 톰 아저씨와 다른 유형의 노예다. 톰 아저씨가 좋은 주인 밑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면 쿤타 킨테는 자유를 찾아 늘 탈출을 꿈꾼다. 물론 톰도 자유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자유는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선량한 주인 세인트클레어가 딸과의 약속 때문에 그를 해방노예로 만들려고 한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약속이 불의의 사고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여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이것은 소극적인 대응일 뿐이다. 그를 노예로 생각하고 하나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이것을 용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쿤타 킨테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자유를 위해 수많은 탈출을 시도한다. 어쩌면 이 소설 속 조지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조지는 탁월한 능력으로 공장에서 기계를 만들고 고용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그러자 이를 질투한 주인이 그를 학대한다. 이 때문에 탈출을 시도한다. 이 부분은 이 둘이 다른 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지워진 굴레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조지와 그의 아내 엘리자가 초반에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것은 톰의 행동과 상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리자도 역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아이가 팔린다는 소식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과 톰이 현세보다 내세를 더 믿었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았다는 것은 그 시대 기독교 내부의 상반된 견해를 보여준다. 이 둘은 모두 같은 주인 밑에서 살았다. 하지만 자신이 팔려간다는 소식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 명은 아이를 위해 달아나고, 한 명은 주인을 위해 팔려간다.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벗어나려고 한 그녀와 그것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움직인 그를 보면 역사를 움직인 것은 바로 엘리자나 조지 같은 행동가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현재의 시각에서 톰의 위치가 조금 못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악덕 주인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종교의 힘만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평안한 생활이 보장되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그가 주인이 준 통행증으로 충분히 달아날 수 있었는데도 그 피해가 주인과 가족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도망가지 않은 것과 맞물려 있다. 그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했는지 보여준 장면에서 약간 의외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그 시대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만약 도망자인 톰을 그려내었다면 현재의 쿤타 킨테처럼 그 시대에 많은 동조와 호응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대출 알고 있던 것이지만 세부적인 이야기나 전체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새롭다. 단순히 모든 노예가 학대받았다거나 주인공이 노예를 학대했다거나 하는 인식을 산산조각 낸다. 그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살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장면에선 가슴이 아린다. 약 150년 전 한 지주의 입을 통해 노예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말할 때는 그 시대도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 놀란다. 하지만 노예해방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이 존재했는지 알고 나면 이것이 단지 큰 발전을 위한 한 걸음이었음을 알려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쉽고 빠르게 읽힌다. 특히 관심이 가는 장면들은 두 번째 주인인 세인트클레어 집에 머물 당시에 있다. 그가 풀어내는 노예제도의 모순과 그 시대의 한계와 문제점이 현재에도 유효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바가 보여준 놀라운 믿음과 영향력은 한 편의 종교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국이 법으로 노예를 해방했지만 최근까지 그들을 결코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를 생각하고, 전통적 의미의 노예대신 급여의 노예가 되어 고용주의 말에 휘둘리는 현대인을 보면 흑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해방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족처럼 몇 가지 덧붙인다면 삽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노예매매와 탈출의 현장은 그 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노예가 만들어지고 팔리고 학대받고 탈출하고 죽는지 알게 된다. 삽화만 보아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불만은 번역에서 시대를 넘어선 표현이 드러난 곳이 보이는 것이다. 특히 영화와 관련된 문장이 나올 때는 번역상의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가끔 매끄럽지 않은 곳이 나타나 흐름을 흩트리는데 멋진 작품 속 옥의 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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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
김용규.김성규 지음 / 지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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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았을 때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한 가지를 발견했다. 표지에 침팬지가 울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전에도 보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그림은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 눈물의 의미가 무언가 하는 것과 왜 침팬지인가 하는 것이다. 가슴 속에 찡한 울림을 주고, 폭력에 의한 피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식소설이라고 작가들이 규정한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 다니에 대한 묘사와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제니퍼의 현재와 과거사에 대한 것이다. 과거는 중국계 입양아인 그녀의 부모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해당한 것이고, 현재는 환경파괴에 의한 침팬지 사이의 학살을 다루고 있다. 제노사이드. 우리가 흔히 코소보 사태니 아우슈비츠니 하는 것들을 말할 때 인종청소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선 생존의 터전을 잃어버린 침팬지 집단이 다른 지역을 침범하여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몇 번 이 장면을 보여주는데 잔혹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 외에 동족을 살해하는 것은 없다는 상식을 여지없이 파괴한다.

책 후기에 작가들이 말한다. 이야기 구성을 위해 침팬지 수화는 허구로 만들어 내었다고. 하지만 읽는 내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수없이 나오는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나 이제는 익숙한 제인 구달이 그런 묘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지만 숙제도 한 아름 안게 되었다. 세계화와 사회진화론에 대한 허상을 씻어내게 되었고 칸트의 철학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뭐 이 책과 관련된 책들을 꼭 읽지는 않겠지만 관심이 커져가고 새로운 사유의 장을 만들어줘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작가들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코소보 사태 때문이란다. 이로 인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오고갔고, 폭력성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코소보나 아우슈비츠에 대한 글이 아닌 왜 침팬지에 대한 것이냐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은 내놓지 않지만 역시 인간들의 직접적인 살인을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거나 소집단을 통한 연구가 더 섬세하고 직접적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연구 대상이 많지 않지만 충분히 폭력성을 표현하는데 무리가 없는 존재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종을 찾기는 비교적 쉽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지식소설이라 말하여 어려울 것 같지만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런저런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오고 지식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거창한 이론이나 엄청난 활극은 없지만 잔잔히 흘러내리는 감정의 깊이나 인식은 가슴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연구 대상에 감정이입이 되어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발생한 아픔과 비극을 보면서 제인 구달의 냉철한 탐구 방법은 경이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단순히 애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이자 상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존재로써 다른 종족에 개입하지 않는 그 인내력은 놀랍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 사람마다 평이 갈라질 것이다. 하지만 인정해야할 것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한 좋은 변화보다 나쁜 변화가 더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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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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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10번 교향곡>에 이어 다시 클래식 미스터리로 돌아왔다. 전작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작이 베토벤을 다루었다면 이번엔 파가니니와 그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다. 파가니니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났으면 동시대 사람들이 그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했을까? 바이올린 연주에 문외한이고, 들어본 적이 없으니 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연주한 곡을 현대의 연주자들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렵고 난해했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가까운 미래에 천재 바이올린 솔리스트 아네 라라사발이 오케스트라 협연 중 쉬는 시간에 살해당한다. 가슴엔 아랍어로 이블리스란 단어가 피로 쓰여 있다. 악마를 뜻한다. 살해방법은 교살이다. 끈이나 손을 이용해 아마추어가 죽인 것이 아니라 무술을 익힌 전문가가 경동맥 등을 압박해서 죽인 것이다. 사건 현장에 증거는 없다. 거기에 그녀가 가진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사라졌다. 그녀가 살해당한 원인은 무엇일까? 악마의 바이올린 탓일까? 아니면 다른 원한이 있기 때문일까? 사실 작가는 이야기 중간에 이 답에 대해 풀어놓았다. 다만 끝까지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뿐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페르도모 경위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경찰이지만 자신의 관할 구역이 아니다. 그 날 아들 그레고리오와 연주회에 온 것이다. 이 일은 특별수사대에게 넘겨진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위가 테러로 죽는다. 그가 대신 맡는다. 우연일까? 수사기록을 조사하니 전임자가 영매를 만난 기록이 있다. 궁금해 하다 만나본다. 일반적인 영매와 다르다. 그의 조사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형사들의 일반적인 수사원칙에 입각해서 진행한다. 용의자와 주변사람들을 만나 그 날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단서를 쫓고, 과거를 파헤치고, 의문을 가지고, 벽에 부딪힌다. 

작가는 미스터리 기반 위에 악마와 저주를 풀어놓았다. 과거 속에서 이 바이올린과 관련된 사람들의 일화들을 말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아네가 가진 바이올린이 예전에 사라졌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이란 설정부터가 그렇다. 여기에 프랑스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의 바이올린까지 덧붙인다. 그들의 탁월한 연주를 악마와 계약한 것으로 살짝 암시한다. 사실 이 역할을 맡은 이는 이 소설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이것은 마지막에 벌어지는 죽음과 연결되면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과연 그것은 진짜 악마의 바이올린일까? 하고 말이다.

전작처럼 많은 음악들이 나온다. 역시 무식함 때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작가가 중간에 말했듯이 실제 음악을 듣게 되면 아!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식의 향연은 즐겁다. 겨우 알고 있는 음악이 나오면 반갑고, 모르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한 번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한다. 이런 소재들이 긴장을 풀어준다면 악마와 관련된 현상들은 순간 섬뜩함은 느끼게 한다. 페르도모가 몇 번이나 본 유령이나 갑자기 공격적인 개가 등장하는 것 등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잘 짜인 미스터리는 아니다. 단서와 추적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서 진행되지 않는다. 단서를 찾는 것부터 영매의 힘을 얻는다. 이 힘으로 얻은 정보를 다시 재가공해서 단서를 찾는 것은 형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단서가 우연히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변하고, 그 실마리가 다른 사건을 불러오는 모습에 우연의 힘이 너무 작용한다. 뒤로 가면서 하나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겹쳐지는데 어떻게 보면 단순한 반복처럼 다가온다. 군더더기 없고, 정밀하게 구성된 스릴러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깔아놓은 수많은 이야기와 음산하게 힘을 발휘하는 저주는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그리고 사라 장의 이름이 잠시 나왔을 때는 괜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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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의 역사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역사 읽기
장수한 지음 / 동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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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않아 조금 중구난방이다. 많지 않은 책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하곤 했다. 각자가 자란 환경과 기타 여건에 따라 역사를 보고 해석하는 방법이 모두 달랐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축적한 것이라면 외우면 그만이다. 한때 역사의 기록은 정확하고 공정하다고 믿었던 순진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눈을 뜨고 얼마나 쉽게 왜곡이 벌어지는가 알게 되면서 역사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부제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역사 읽기로 되어 있다. 단순히 역사를 읽는다고 나와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그에 따라 나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게 된다. 한 개인의 변화가 세상 전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변화의 시작이 하나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은 나에서 시작하여 민족, 국가, 자연 등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저자는 바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한 두 가지로 관계와 변화에 주목하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두 여덟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로 시작한다. 역사에 왠 음악인가 하는 순간 이 음악이 왜 역사인지 설명한다. 이 음악 속에 그 시대의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를 말하고, 역사의 창조자로서 인간을 설명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역사의 두 시선인 관계와 장기 지속을 동서양의 두 제국이었던 로마와 당 나라를 통해 설명한다. 이후 자국의 역사를 남기지 못한 인도 이야기로 나를 놀라게 하고, 늘 역사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우연과 필연을 통해 역사의 변화 법칙을 알아본다. 흔히 말하는 역사는 진보하는가를 둘러본 후 역사의 주체가 누군지 생각해본다. 이후 자본주의 제도들인 개인, 국민국가, 시장을 살핀 후 마지막 장에서 미국 자본주의는 세계의 모델인가를 역사 속에서 검토해본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 중 많은 것들이 알고 있던 내용이다. 인도가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했지만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알았던지 몰랐던지 상관없이 이런 사례들은 저자가 역사를 보는 시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 속에 담긴 의미와 해석이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 하나로 그 시대의 삶을 파헤치고, 로마와 당의 몰락을 다양한 해석을 통해 살피고, 과연 1차 대전이 한 청년의 알살에서 시작된 것인지 돌아본다. 이런 사례들은 사실 이미 많은 역사가들의 글로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간략하면서 요약된 경우는 처음이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분명하다.

어린 시절 역사를 만드는 주체가 민중인데 너무 영웅들만 부각되는 기록에 불만을 가졌다. 나폴레옹과 링컨의 사례를 통해 그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동시에 왜 그들이 중요한지도 말한다. 단순히 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시대와 인물이 정확하게 맞은 것이다. 흔히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한때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었던 민중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시민, 다중, 대중의 단어가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한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역사의 진보와 희망을 노래한 때문인지 저자는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시각에서 글을 썼다. 이 시각은 조용히 드러난다. 하나의 사례를 다양한 시각을 통해 분석하고 해석한 후 자신의 의견을 넣는다. 특히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장은 저자의 정치 견해와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개혁과 발전과 의지와 소통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희망을 펼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몇몇 사례나 해석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의 시각에 동의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세우려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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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기행 - 배낭여행 고수가 말하다
김도안 지음 / 지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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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실적인 책이다. 일반 여행서적과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배낭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글로 가득하다. 배낭여행 9.5단에게 듣는 해외 안전여행 TIP 59가지란 말처럼 안전에 많은 비중을 둔다. 그렇다고 여행지에 대한 감상이나 이동방법 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반 여행서적과 같은 친절한 설명이 부족하고 예쁘고 화려한 사진이 없을 뿐이다. 이미 이런 종류의 책들은 많이 나와 있으니 가이드 책을 들고 공부하면 된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꿈결, 감사, 재미, 더 좋다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세 단어는 삶은 꿈결처럼 좋기 때문에 살아 있는 지금에 감사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 좋다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말을 외치며 현실의 긍정하고 내일 더 좋은 결과를 얻자는 의도가 담긴 말이다. 이렇게 나눈 단어들은 그가 여행을 준비하고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을 여행하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

첫 장 꿈결은 말 그대로 여행준비의 즐거움이다. 간략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배낭여행을 다닐 사람이라면 한 번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일리지나 유머나 신용카드 혜택이나 조그마한 선물 등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항목인데 자신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최근 스톱오버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짧은 여행 일정이라도 이것을 이용하면 두세 나라 정도는 즐겁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배낭에 꼭 넣어야 할 것들은 배낭여행객들에게 실제적인 배낭싸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사의 장으로 가면 가장 먼저 쉐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용의 분담은 여행객의 부담을 들어주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만든다. 욕심과 클래스에 대한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시간을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평가할 때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끔 낯선 곳에서 헤매다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 위험과 다른 기회의 상실도 역시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안전하다면 낯선 곳의 방황도 즐거움이 가득하고, 여행을 풍족하게 한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동의한다. 

재미 편에서는 자유가 중심에 있다. 자유가 커질수록 위험이 커진다는 말로 시작하여 낯선 아프리카에서 만나게 되는 위험과 분노는 즐겁고 아름다운 여행의 환상을 산산조각 낸다. 분노를 폭발시키고,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올바른 대처방안인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에게 이로운 사람을 찾고, 경찰에게 길을 묻고, 경비를 줄일 방법을 찾는 그의 행동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실용적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여행할 때 돈과 시간과 싸우게 되는데 돈을 선택한 결과 어떻게 시간과 돈이 흘러갔는지 볼 때 나도 그런 적이 있지, 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그에게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결코 즐겁지도 기쁨으로 가득하지도 않다. 하지만 떠날 때 그가 깨달은 것은 더 좋다란 말이다. 이 말은 그 후 많은 도움을 준다. 남미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은 역사와 관련된 곳이 많다. 그것과 더불어 그의 사유가 글 전면에 나오기 시작한다. 점과 선, 도와 분노 등은 마지막에 맞이한 강도와 함께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 가끔 상대에 대해 폭력으로 거절하고 했던 그가 이제 총을 던 강도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게 무너진 것이다. 이때도 더 좋다는 말로 자신을 추스르고 나아간다. 

너무 솔직한 여행서라 놀랐다. 희망이나 낭만이나 화려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것은 그가 이번에 경험한 대륙이 아프리카와 남미인 탓도 있을 것이다. 한정된 시간과 비용으로 돌다보니 볼 것에 집중하는데 나름 충실한 여행이다. 예전에 친구와 짧은 일정으로 정말 빡세게 돈 경험이 있어 안다. 휴양이 목적이 아니라면 최대한 많은 곳을 돌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가 여행과 관광은 다르다고 한 것이다. 각 장마다 다른 주제를 다루었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폭력으로 위기 상황을 넘어간 그를 보면서 과연 보통 사람들이 적절한 순간에 이것을 이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섣부르게 시도했다가 더 큰 폭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의 환상을 살짝 지우는 점도 있지만 다시 가벼운 가방 하나 들고 떠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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