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 -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에너지
마커스 버킹엄 지음, 강주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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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에너지’란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는다. 몇 권 읽으면서 고전이나 다른 책들에서 본 문장이나 의미를 확대 재생산한 정도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나 자신이 잊고 있던 것을 일깨워주는 것도 있었다. 편안하게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다보니 이런 종류의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언제나처럼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인식을 바꾸게 만드는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에 게으른 내가 살짝 흔들린다.

많은 분량이 아니다.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차분하게 읽었다. 강점을 더 강하게 해서 약점을 보완하라는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 최근에 너무 자주 보는 문장이라 식상할 수 있지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볍게 그냥 읽고 지나갈 수 있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면 그 흔한 말이 지닌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강점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강점이기 보다 좋아하는 것이나 느낌에 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가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진실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이 바로 강점이다. 그리고 사례 중심으로 강점에 대해 알려준다.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는 대단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고, 다음은 회사가 아끼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것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성공한 20퍼센트 사람들의 조언을 말한다. 이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강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강점이란 타고난 재능과 지식과 기술, 이 세 가지의 조합이다. 여기에 열정을 더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강점의 반대편에 있는 약점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약점에 대한 어설픈 집착을 벗어던져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 약점을 없애기 위해 우린 수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렇게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결코 약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강점을 더욱 갈고 닦는다면 약점은 강점으로 가릴 수 있다. 만약 그래도 되지 않는다면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가진 사람을 파트너로 삼으면 된다.

최근에 많은 책이나 글에서 목표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강점도 마찬가지다. 강점을 구체적으로 적으면서 자신의 강점을 찾으라고 말한다. 사실 나 자신도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주저한다. 막연하게 몇 가지 떠오르지만 과연 맞는지 장담할 수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다음에 혹시 면접 볼 기회가 생기면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회사로 넘어가서 현실적인 조언으로 이어간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성과라는 사실을 말하고, 나의 강점을 드러내고 알려라고 한다. 

팀워크의 열쇠를 팀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둔 부분은 특히 눈에 들어온다. 나의 약점을 강점을 가진 사람을 옆에 두고 약점을 가리고, 각자의 강점을 살려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의 조사에서도 나오지만 우린 그 사람을 볼 때 강점보다 약점을 먼저 본다. 강점이 더 눈에 띨 경우에도 약점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받은 교육의 영향이다. 자신의 강점이 힘을 발휘하는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말라는 조언에선 너무 현실 안주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마이클 조단, 샤크 오닐, 타이거 우즈 등이 대표적으로 강점을 더욱 강하게 만든 인물인데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고, 느끼는 바가 있었고, 앞으로 실무에 몇 가지를 적용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실천이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알려줘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처럼 일단 결심을 해야 시작된다. 너무 솔직하게 저자가 말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미국판이 나왔으면 한다. 미국판은 DVD에 설명서를 곁들인 것이다. 이 책에 더 풍부한 사레가 들어갔다지만 다가가기는 이것이 더 쉬울 테니까 말이다. 뭐 이런 경우 실천의 힘이 더 떨어질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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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비스데이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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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섯 편이 실린 단편 소설집이다. 장르를 구분한다면 현대판 판타지에 가깝다. 전작에서 음울한 분위기를 도시 판타지를 보여주었는데 이번에 좀더 밝은 모습이다. 각각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 빠르게 읽힌다.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은 행운이나 행복을 연상시킨다. 약간 섬뜩할 수도 있는 곳에서 웃음이 나오고, 하나의 가정이 섬뜩함을 불러오고, 성장한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은 서비스데이>는 한 중년 직장인 쓰루가사키 이야기다. 그의 삶은 정말 평범하다. 자기 집을 가지기 위해 출근 2시간 반이 걸리는 곳으로 갔고, 부하직원의 업무보고에 대해서는 그의 선배들처럼 안이하게 대처한다. 가족에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직장에선 존재감 자체가 없다. 이런 그에게 신이 인간에게 평생 한 번 준다는 서비스데이가 온다. 이 날은 그가 바라는 모든 소원을 이루어준다. 가족도 직장 부하도 모두 그에게 공손하게 대한다. 그런데 그가 우연히 내뱉은 한 마디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다. 승객 모두가 죽는다. 그는 이 사실을 되돌리길 바란다. 그에 곁에 있던 천사는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까? 

<도쿄 행복 클럽>은 섬뜩한 마무리가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주인공은 작가인데 그가 쓴 에세이 한 편 때문에 이 괴상한 클럽에 가게 된다. 그것은 직장 다닐 때 있었던 조그마한 에피소드다. 이것을 기억하는 한 호스티스 때문에 그 모임에 간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놀랍게도 죽음과 관련된 증거나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을 내놓고 품평회를 하는 것이다. 괴상한 취미로 치부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추리는 왠지 모르게 사실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만약 손 하나가 집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이것을 소재로 쓴 것이 <창공 괴담>이다. 유령을 만져 본 적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과거로 간다. 화자가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친해진 구사카베와 이야기 하던 중 유령이야기가 나온다. 구사카베가 유령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하는 마음에 그 집에 가는데 손만 남은 유령이 정말 있다. 예전에 본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바로 떠올랐지만 이야기는 그것과 다르게 진행된다. 얼치기 심령전문가가 모두 퇴마를 요청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손은 구사카베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 과연 손의 정체는 무엇이고, 구사카베의 삶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 보는 중에 몇 번이나 빙그레 웃었다.

<기합 입문>은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에피소드다. 가재 낚시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이 생긴다. 어린 아이가 가재를 잡아 형이나 주변사람에게 자랑하려다 실패한다. 그러다 기합이 주는 의미를 깨닫고, 야구를 할 때 저지른 잘못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을 경쾌하고 즐겁게 보여준다. 소년의 치기어린 행동과 심리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푸르른 강가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한 여자를 등장시켜 인생의 가능성을 말한다. 현실에 절망을 느끼고 죽음을 선택한 그녀에게 삼도천을 건너는 뱃사공이 묘한 충동질을 한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포기한 미래의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흔히 말하는 죽을 각오로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현실에서 모두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의 결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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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 - 2009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생각하는 책이 좋아 6
인그리드 로 지음, 김옥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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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읽기 시작했다. 당연히 집중력이 초반에 많이 떨어졌다. 청소년 중에서도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보니 어느 부분에선 낯설기도 했다. 반쯤 지날 때까지만 해도 집중은 되지 않고 지루하기만 했다. 몸 상태와 집중력 저하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 이후 집중력이 조금 살아나고, 이 아이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재미있어졌다. 한 소녀의 절실한 마음과 현실의 차이가 주는 재미가 대단했다. 그렇게 모두 읽고 난 지금 그 느낌을 정리하려고 이 글을 쓴다.

밉스 가족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 능력이 드러나는 시간이 바로 열세 살 생일이다. 이때 나타날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밉스의 돌아가신 할머니는 전파를 잡아 가두는 능력이 있고, 할아버지는 땅을 넓힐 수 있다. 엄마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로켓 오빠는 전기를 낼 수 있다. 바로 위 오빠 피시는 흥분하면 바람을 불러오는데 이 때문에 가족들은 바닷가 마을에서 내륙으로 이사 왔다. 제어되지 않는 능력이 태풍을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가족 중 한 명인 밉스가 열세 살 생일을 이틀 앞두고 있는데 아빠가 사고를 당한다. 생명조차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엄마와 큰 오빠가 먼저 병원으로 가고, 밉스와 다른 가족들은 집에 머문다.

밉스는 자신의 생일날 드러날 초능력으로 생명을 살려낼 수 있길 바란다. 특히 아빠가 건강하게 일어나길 바란다. 이런 바람은 남은 가족을 돌봐주는 로즈메리 사모님 덕분에 생일날 나타날 능력을 걱정하게 만든다. 혹시 두 오빠처럼 굉장한 능력이 발휘되어 자신들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일이 되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단지 이상한 소리만 귓가에 울릴 뿐이다. 그녀의 능력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그것도 그려지거나 문신으로 새겨진 사람들의 그림을 통해서 말이다.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바랐던 그녀에게 이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거기에 자신도 듣는 것을 제어할 수 없으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 능력을 깨닫기 전에 그녀는 자신의 바람을 능력으로 착각한다. 이 능력을 사용해 아빠를 깨우려고 한다. 하지만 갈 방법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핵심 성서 공급 주식회사 버스를 타게 된다. 이 차가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표시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했는데 그녀를 보고 친구인 윌 주니어와 그의 누나(?) 바비와 오빠 피시가 같이 탄다. 그런데 이미 동생 샘슨이 몰래 숨어서 놀고 있다. 이제 이 티격태격 하는 소년 소녀가 150킬로미터 떨어진 병원으로 향하는 모험을 시작한다. 

그렇게 멀지 않는 거리를 잘못 판단한 덕분에 반대로 간다. 처음부터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 위기는 이들의 모험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들의 능력을 깨닫고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성장하게 한다. 이때 만나는 약간 어눌하고 주눅이 든 운전사 레스터 아저씨나 항상 늦는 릴 아줌마는 이 짧은 여행에서 그들의 보호자이자 조력자다. 같이 탄 윌과 바비는 그들이 가진 능력을 숨겨야 할 대상이자 유일하게 자신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이들의 다툼을 보면 그 속에 그 어떤 나쁜 감정도 깔려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갈등을 조금씩 드러내지만 심하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윌 남매(?)와의 다툼이나 레스터 아저씨와의 힘겨루기나 칼린과의 대결 등이 있으나 이것들은 단지 밉스 등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조그마한 단계일 뿐이다. 분노나 흥분을 제어하지 못해 바람을 일으키는 피시 오빠나 언제나 아늑하고 편안한 곳으로 몰래 숨어드는 동생 샘슨이나 그림을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읽게 되는 밉스 등이 이 여행으로 얻게 되는 것이나 어려움을 이 갈등으로 과대포장하지 않는다. 그 능력을 순간적으로 발휘하지만 과장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지닌 힘이 좋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다가 마지막에 밉스가 아빠에게 외치는 말 한 마디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포기하지 않아”를 외치는 아빠나 그 의지를 깨워내는 밉스나 모두 잔잔한 감동을 준다. 비록 자신이 가진 능력이 처음 바라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빠를 살려낸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다. 아빠가 없다고 말하고 가족 모두가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은 그 숨겨진 능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때문이라고 말이다. 화려하고 무시무시한 능력에 가려져 있지만 하나의 에피소드 속에서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려준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론 모두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가족의 다음 이야기가 있다면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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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구천 1
양시아오바이 지음, 이지은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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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점점 흐릿해지는 옛 기억을 떠올리면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에 대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고 정비석의 소설일 것이다. 그 유명한 고사성어 와신상담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에 대한 기억은 사실 역사 자료를 소설로 각색하면서 이야기에 중점을 둔 것이다. 전국시대의 이야기 중 한 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 작가는 월왕 구천에 아예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 둘을 통해서 전국시대의 역학 관계와 삶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물론 그 속에 담긴 현대 중국의 인식도 깔려 있다. 가끔은 번역 탓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첫 부분은 구천이 아직 왕이 아닌 합려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스승이자 뛰어난 대장장이 구 사부와 함께 오나라로 가서 합려가 왕이 되는 것을 도우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약소국인 월나라는 독립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숨겨져 있다. 구 사부에게 검술을 배웠고, 그의 능력으로 만든 명검으로 구천은 무장하고 있다. 합려의 집에 가서 이 둘은 헤어진다. 구 사부는 뛰어난 병기를 만들기 위해, 그 아들로 분장한 구천은 합려의 손님이자 불모로 살아간다. 여기서 구천은 부차와 친구처럼 사귀게 되고, 합려의 딸 승옥과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런 평화로운 삶은 합려가 왕이 되려는 욕망이 펼쳐지는 순간 깨진다. 오왕을 그 유명한 어장검으로 암살하고, 왕권을 얻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 구천은 탁월한 무술 실력으로 공을 세운다. 하지만 승옥이 말한 것처럼 그는 불안한 위치에서 감시받는 입장이다. 하나의 시험을 받는데 그 곳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알았던 어머니를 만난다. 전 오왕이 힘으로 빼앗은 것이다. 왕이 된 합려는 이런 궁녀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그의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다. 이에 그가 분개한 것은 당연하다. 함정에 그가 빠지고,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합려가 이를 용서할 리가 없다. 그는 달아난다. 그 도중에 사랑하는 여인은 죽고, 그는 힘들게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간다.

그 이후 벌어지는 내용은 합려를 구천이 죽이고, 이런 구천을 다시 부차가 정복하고, 그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통을 겪고, 다시 왕으로 돌아와서 와신상담하면서 복수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이 짧고 간략하게 요약된 내용을 실제 현실의 과정 속에 자세히 재현해낸다. 부차가 구천에게 죽은 아버지 복수를 위해 신하들에게 매일 그 과거를 외치게 하거나 구천이 다시 돌아와서 안락함에 빠져 원래의 의지를 잃게 될 때 죽음으로 그 불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전보다 세밀하게 하나씩 펼쳐낸다. 너무 쉽게 의지가 무너지기도 하지만 왕이란 자리가 주는 부담감을 견뎌내면서 국민을 다독이며 나아간다. 부차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복수를 이룬 것에 비해 구천은 긴 세월을 참고 견디면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는 그 말을 그대로 실현한다.

읽으면서 이런 세부적이고 현대적으로 각색된 국력강화 정책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동시에 너무 현대적이라 살짝 반감을 사기도 한다. 서시의 미모를 칭송하면서도 결코 그 미모에 정신을 놓지 않는 부차를 보여주면서 경국지색이란 말에 너무 쉽게 빠져 사실성을 잃었던 것을 살려내었다. 비록 완전히 그 미모에서 헤어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와 서시와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작가는 단순한 미인계를 넘어 긴 시간 속에 흔들리는 의지와 심리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 패자였던 부차의 능력을 부각시켜 상황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장점을 작가는 너무 안일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구천의 승리를 그려낸다. 생략된 부분들이 너무 많아 독자가 상상력으로 현실에 끼워 맞춰야 한다. 

그 시대 삶이나 국가 지도를 모르니 사실 답답한 부분이 있다. 특히 오와 월의 위치가 어딘지 몰라 정확한 그림을 그려내는데 어려움이 있다. 출판사에서 지도 한 장만 첨부했다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문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번역상 오류인지 중국이란 단어나 황제란 단어 등 후세에 나온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시대와의 괴리가 주는 어려움이 몰입을 방해한다. 두 왕의 삶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살려낸 것에 비해 이런 조그마한 오점들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어쩌면 나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부차의 죽음 후 이야기는 너무 많은 에필로그가 붙어 힘이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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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세월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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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수상한 식모들>에서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최 씨 집안 여자들을 중심으로 지나간 세월을 복기하고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그려낸다.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바구미 여사에서 시작하여 윤희까지 이어지는 기이한 능력은 최 씨 집안의 내력이지만 우리들의 욕망과 희망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능력이 신통방통하고 괴이하고 이상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1988년부터 시작하여 2023년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세 여자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첩살이하던 엄마의 죽음을 보고 본가로 간 미령이 중심에 있다면 그녀를 데려온 명옥과 그 딸 신혜가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다. 미령의 엄마 선옥이 자살한 후 두 남매 중 미령을 자기 집으로 데려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고모인 바구미 여사를 돌볼 아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바구미 여사는 쌀집 딸로 신기가 있는데 쌀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놀라운 예언능력은 그 집안의 부를 이루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니 정신을 놓은 중늙은이를 내치지도 못하고 고이 모실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1988년 전두환은 잡혀 들어가고, 그의 업적이라 칭송되던 올림픽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형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변함없이 이어진다. 작가는 이런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 속에 사람들의 삶을 풀어놓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미령이 얹혀사는 집에서 나름 잘 살고 있고, 명옥은 남편은 쓸데없는 투자와 허세로 고생을 하고, 신혜는 자신을 둘러싼 이상한 능력 때문에 고민을 한다. 그녀들의 이런 삶을 시간 속에 녹여내는데 그 삶들이 우리의 삶과 묘하게 겹쳐진다.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다시 사랑하는 삶의 순환 속에 그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이런 반복만 보여주었다면 지루한 책읽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 세 여자의 삶의 환상과 현실을 교차시키고, 실제 현실을 그 바탕에 깔아놓는다. 

세 여자가 중심인 듯하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간과 시간이 중심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이 세 여자가 기구하다면 기구할 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그 속에 펼쳐지는 삶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뜨겁던 사랑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지만 좌절하기보다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살아간다. 속고, 속이고, 거짓말하고, 믿고, 믿는 척하는 삶의 현실이 그대로 펼쳐진다. 눈앞에 보이는 진실은 거짓으로 치부되고, 입에 발린 거짓말은 진짜로 찰떡같이 믿는다. 

과거를 복기하고 드러내는 순간이 끝나고 미래를 그려낼 때 모습 또한 지금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거대한 허상이 무너지지만 곧 다른 허상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어설픈 부자는 사기당하고, 가난한 사람은 변함없이 가난하거나 더 가난해진다. 작가는 이 장면들을 교묘하게 삽입하여 현실의 비틀린 모습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은 변함없이 도도하게 흘러간다. 이 거대한 흐름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각각 다른 굴곡을 가지고 있다. 단숨에 읽히지만 그 바닥에 흐르는 슬픔과 삶들이 아련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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