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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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엘스페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금방 알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바뀐 장면에서 에디가 남편에게 불륜을 오해받을 행동을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2주마다 그녀의 쌍둥이 언니 엘스페스에게 온 편지다. 그녀는 그 편지를 본 후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러니 오해가 생긴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마지막 편지를 남편에게 보여주고, 오해는 풀린다. 이 오해가 풀린 반면에 언니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이 그녀의 쌍둥이 딸들에게 전해진다. 묘한 조건이 달린 상태로 말이다.

전작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시간여행이란 sf적 요소를 사용하여 사랑을 그려내었다면 이번 소설은 런던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유령을 등장시켜 사랑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시간여행이나 유령은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 도구를 사용하여 인간이 가진 욕망과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는데 그 설정과 전개가 탁월하다. 엄청나게 무시무시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지지 않지만 유기적인 문장이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작가는 전작보다 많은 인물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변함없이 중심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유령이 된 엘스페스 이모, 그녀의 연인이자 쌍둥이 자매 중 동생 발렌티나의 사랑을 받게 되는 로버트, 쌍둥이 자매 줄리아와 발렌티나, 강박증에 시달리는 마틴 등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쌍둥이 자매와 로버트 중심이지만 유령이 된 엘스페스나 마틴은 아파트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이자 앞의 네 사람을 지켜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이 둘은 나중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버트, 그는 엘스페스의 아홉 살 연하다. 그녀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이 사라졌지만 점점 회복하는 중이다. 이때 엘스페스의 유산 상속인으로 나타난 쌍둥이는 추억에 빠져들게 하고, 삶을 뒤흔든다. 그가 쌍둥이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닌 것은 엘스페스와 너무나도 닮은 외모를 가진 것도 있지만 아직 죽음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충격을 벗어나는 와중에 벌어지는 신비로운 사건과 경험은 다시 한 번 더 그를 뒤흔들어놓는다. 

유령이 된 엘스페스는 자신의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닮은 쌍둥이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강한 의지와 수많은 노력 끝에 조그마한 물리적인 힘을 가지지만 그 힘이 아직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죽은 후에도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그녀가 옛 연인 로버트를 그리워하고, 쌍둥이들의 삶을 차분히 관찰하는 것은 지박령처럼 그곳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줄리아와 발렌티나는 거울 쌍둥이다. 이 둘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어준다. 줄리아의 심장이 왼쪽에 있는 반면에 발렌티나는 오른쪽에 있다. 이처럼 이 둘은 장기의 위치마저 반대편이다. 그래서인지 성격도 다르다. 줄리아는 심장 등에 문제가 있는 동생 발렌티나를 돌보려하고, 늘 자신과 함께 행동하길 바란다. 이런 감정과 행동은 새로운 장소와 만남을 통해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이 쌍둥이의 불화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그녀의 엄마와 이모의 불화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을 이 소설의 끝까지 숨겨두는데 그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놀랍다기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설정이다. 다만 이 사실이 그들을 20년 이상 연락을 끊고 살만큼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전대 쌍둥이의 불화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만들어낼 다양한 이벤트나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 불화가 어느 정도 현재의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엘스페스와 로버트, 쌍둥이 자매 줄리아와 발렌티나, 강박증 환자 마틴 등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일상의 삶과 앞으로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보다 더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들의 삶이다. 엮이고, 그리워하고,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감정들과 관계들이 빚어내는 이야기가 견실하면서도 유기적인 문장으로 재미있게 흘러간다. 세부적인 묘사와 설명은 처음에 약간 더딘 진행으로 시작하지만 곧 몰입하게 만든다. 초자연적 현상은 신비롭기보다 일상적으로 다가오고, 그 일상이 만들어낼 사건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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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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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낙태된 태아가 난도질된 자신의 몸을 가장 먼저 본다. 이 참혹한 모습을 본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 태아령이 본 미래의 묵시론적 세계다. 그 미래의 삶과 현실은 너무나도 기계적이고 무감각해서 인간들이 사는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쓰레기와 폐기물로 대변되고, 또 그렇게 처리되는 모습은 비록 작가가 만들어낸 장면들이라 할지라도 너무나도 참혹하고 잔인하다. 지옥의 삶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현실에서 시작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성이다. 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은 현실이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을 부르는 고유명사는 사라지고 숫자로만 불리는 현실에서 감정은 사라지고 효율과 효과만을 따지는 사회로의 변모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수와 진과 251004231111 일명 육순이 등이 그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이들의 과거와 현실은 이 세계의 변천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과거의 뿌리를 용산 참사로 삼은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태아령이 자신의 난도질된 몸을 본 것보다 더 참혹한 장면은 분리수거 된 늙은이들인 ‘60세들’이 적재함에 실려 이동되고 분류되는 장면들이다. 처음 이 장면을 읽을 때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쓰레기 분리수거의 모습을 연상했다. 타는 것, 타지 않는 것, 재활용 되는 것, 되지 않는 것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선 무기물이 아닌 60세들이라고 불리는 노인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을 폐기물 분류법에 따라 매립할 것과 소각할 것, 삶아 처리할 것과 수출해야 할 것으로 구분하는데 처음엔 그냥 무심코 읽었다. 뒤에 가서 실제 현장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 끔찍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런 일이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가능한가 하고 말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장면들이 역사 속에 실재 존재했다는 사실이 금망 떠오른다. 그 유명한 독일의 홀로코스트나 일본군의 731부대들이 그런 행동을 했다. 미래의 끔찍한 사회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에도 비슷하거나 똑같은 현실이 있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는데 작가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현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를 되짚어가는데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 진, 육손이 등은 피지배자들의 삶을 대변하는 존재들이다. 그 외 인물들이라곤 지도 그룹의 회원들인데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늘 긴장하고, 욕망에 충실하고, 싸우고, 아부하는 존재들이다.

수, 그녀는 자연스럽게 늙은 존재다. 분리수거 되어 폐기처분되길 바란다. 예전에 한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데 분리수거를 검사하던 곳에서 자신의 아들 같은 육손이 즉 251004231111을 만난다. 잠시 모성애가 생기지만 진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 감정은 옛 사랑에 자리를 빼앗긴다. 진, 그는 아동 배우로 시작하여 늙지 않는 존재로 살아왔다. 약물에 의해 평생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지도 그룹에 의해 디저트로 불리는 그지만 그 삶 속엔 언제나 수가 있다. 251004231111, 그는 태어날 때부터 육손이다. 이 불구의 몸을 생존을 위해 가꾸어야만 했다. 그가 살아온 삶은 순응이고 적응이었다. 그에게 감상은 감정의 사치고 낭비다. 그는 바로 현실의 인간들이 변모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반면에 수와 진은 인간의 감정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사람들, 인구 구조가 늙은이들이 늘어남으로서 사회문제가 되는 사회, 인간의 감정은 사라지고 경쟁과 효율과 효과만 강조되는 사회, 현실은 왜곡되고 지배자의 의도만 그대로 발표되는 사회, 시인이라는 지배자가 이름 붙이는 대로 그 의미가 굳어지는 사회, 이 묵시론적 미래 사회는 바로 우리의 현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시작점을 용산 참사로 둔 것은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초반에 읽기 힘들었던 장면들이 뒤로 가면서 현실로 다가오고 점점 가슴이 아려온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지배자, 시민, 쓰레기로 불리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라고 말이다. 그래서 더욱 더 가슴 깊숙이 이 현실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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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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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 전 두 가지가 먼저 떠올랐다. 하나는 일본 드라마 <모토카레>고, 다른 하나는 대만소설 <끝에서 두 번째 여자 친구>다. 일본 드라마가 이전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현재 여자 친구가 불안해하고 그 불안이 현실화되는 것이라면, 대만소설은 결혼 전에 만나는 여자 친구를 의미하면서 상당히 코믹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사실 제목 때문에 이 소설이 더 생각나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와 소설이 문화 차이 등을 보여주지만 남녀의 사랑과 불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도 많다.

마크 트웨인의 “인류에게 한 가지 효과적인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유머다.”란 말로 이 소설이 어떨지 알려준다. 남자 친구 루카스가 전 여자 친구의 이사를 도와주러가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전에도 그녀 안토니아는 이런 식으로 남자 친구를 잃은 적이 있다. 한 번의 학습경험은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걱정과 불안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런 걱정과 불안은 만 2년이 되어가는 두 사랑의 사랑과 맞물리면서 더 강해진다. 열정적이고 자상한 배려는 조금씩 사라지고 편안함과 일상의 반복으로 삶의 모습이 바뀌면서 이 불안은 의심으로 가득해진다. 거기에 친구 카타의 2년 호르몬 위기론은 불타는데 기름을 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토니아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불안감으로 약간의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보다 더 황당하고 웃긴 일은 그녀의 행동이다. 열쇠가 없다고 하지만 화장실이 급하다고 아파트 계단에서 양동이에 소변을 보고, 술에 취해 넘어오는 토사물을 다시 양동이에 쏟아낸다. 이 두 사건이 완전 범죄로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 불행히도 모두 옆집 사람들에게 들통난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하지만 약간은 엽기적일 수 있는 이런 행동이 그녀의 캐릭터를 더욱 분명하게 부각시켜준다. 이것은 또한 뒤에 일어날 다양한 사건들에 비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안토니아를 제외하고 가장 시선을 끌어당기는 인물은 역시 카타다. 완벽한 정리벽을 가진 그녀가 보여주는 깔끔함은 경이롭고 비인간적으로까지 보인다. 모든 것을 완벽히 정리해야만 안심이 되는데 이런 그녀가 아내가 있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있는 설정이다. 안토니아의 불안한 사랑을 도와주기 위해 그린피스의 모임에 갔다가 원래 목적을 잃고 흥분한 청소 닭으로 변신하는 그녀를 보면서 상당히 재미있어했다. 이런 그녀가 명배우로 변신하여 루카스와 대화를 할 줄이야 누가 생각했겠는가!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고 가볍게 진행된다. 재미있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데 이벤트 중심으로 하나씩 벌어진다. 개성 강하고 재미있는 인물이 곳곳에 등장하고, 이 인물들이 사건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이 조금씩 일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질투가 재미를 주고, 현실에 대해 공감하게 만든다. 단순히 코믹한 로맨스 소설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을 재미있는 좌충우돌 모험 로맨스로 바꾼 것도 이런 현실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 현실이 가끔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현실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2년 정도의 연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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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니클로만 팔리는가 - 불황 속에서 더욱 빛나는 유니클로의 성공 전략
가와시마 고타로 지음, 이서연 옮김 / 오늘의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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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브랜드에 대한 나의 무지는 엄청나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비싼 것인지, 심지어는 남자 것인지, 여자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때는 이름을 잘못 읽어 직장동료들에게 웃음을 산 적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씩 브랜드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유니클로는 최근까지 낯설었다. 자주 가는 종로에서 이 매장을 보았을 때도, 매일 다니는 출근길에서 보았을 때도 의류 브랜드라는 것 이상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신문기사에서 이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한때 한국도 이랜드 계열의 옷들이 중저가 시장을 휩쓴 적이 있다. 지오다노 등도 그런 계열의 하나였다. 그 당시 이런 브랜드 옷이 비싼 것인지, 국산인지, 얼마 정도인지 몰랐다. 당연히 옷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브랜드 이름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 정도가 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브랜드의 이름이나 가치가 아니다. 그 브랜드의 성공이나 실패 등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할 뿐이다. 이런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서 하나의 브랜드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알려주는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유니클로 옷을 한 번도 산 적 없고, 매장 안으로 들어 입어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불황 속에서 더욱 큰 성장을 이룬 이 브랜드의 실적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플리스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나에게 한 해 2600만 장을 팔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실적이고, 어떤 것이기에 이런 실적을 이루었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브랜드를 저자는 아홉 개 장으로 나누어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다루고, 그들의 세계를 하나씩 해부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각 장은 짧은 리포트 형식으로 나누어 가독성을 높이고, 유니클로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만든다.

책을 읽기 전 관심을 가진 것은 이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인지 등이었다. 옷뿐만 아니라 의류 산업 전체에 무지한 나에게 외계어 같이 다가오는 순간도 많았지만 싶게 읽히면서 유니클로가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 알게 했다. 그리고 정말 대단하게 다가온 것은 그들의 엄청난 성장 속도와 관리 방식이다. 한 명의 직장인으로 그들이 추구하고, 진행해온 영업은 모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관리와 공격적인 영업이었기에 이 엄청난 성장 등이 가능했다. 

유니클로를 알게 되면서 눈길을 끈 몇몇 문장과 단어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거듭된 실패를 통해 완성을 이루는 것!”(21쪽) 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이 업체가 늘 성공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많이 배웠고, 기존의 틀을 깨트렸는지 알 수 있다. 회장이 예전에 낸 책 제목이 <1승 9패>란 것도 이런 기업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 번째는 “유니클로의 생산 시스템에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은 너무나 평범하다. 다만 ‘제대로’한다. 그것이 비밀이라면 비밀일지도 모른다.”(113쪽)란 문장 속에 있다. 상식이 특별한 것처럼 되고,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이 ‘제대로’란 단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려운 것인지 알려준다. 수많은 경영이론과 성공 등이 알려졌지만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간단한 것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정말 ‘제대로’한다면 성공은 더욱 가까울 것이다. 

마지막은 “당장 오늘과 내일의 환경은 다르다. 느긋한 자세로 몇 년 뒤의 일을 고려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160쪽)이다. 급변하는 시장 속에서 현재의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은 시스템뿐만 아니라 접근방식에서도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제품의 단가를 낮추거나 질 등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반품 없는 전량 구매란 방식은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매장중심으로 점장의 의견이나 권한을 높인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당연한 것과 기초적인 것을 ‘제대로’하는 이상은 어느 정도의 성공은 분명하다. 

가독성이 좋고, 빠르게 읽히고 재미있다. 하지만 의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고, 일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면 불친절한 편집 방식은 아쉽다. 사진 한 장 없고, 주석도 절대 부족해 당장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물론 이런 사항들이 유니클로의 성공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심하게 매일 그냥 지나가던 그 매장과 광고판들이 이제 완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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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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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나에겐 독살설의 주인공이다. 힘없는 조선의 왕자다. 볼모로 잡혀갔다가 청이 중원을 정복한 후 돌아와 갑자기 죽은 비운의 세자. 청과 오랫동안 있었고, 그 시대 최고 권력자와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조선의 사대주의자들과 왕의 미움을 받은 세자. 그 시절 가장 역동적인 현실에서 가장 비참한 현장과 역사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낮추어야만 살 수 있었던 세자. 그 세자의 최후 2년 중 일 년의 시간을 다룬 소설이 바로 김인숙의 <소현>이다.

사대가 당연하고, 그 사대를 철저하게 믿고 있던 시절 오만했던 조선은 청의 군마에 짓밟힌다. 왕은 남한산성을 나와 머리를 조아리고, 군신의 예를 다한 후 세자 등을 볼모로 내주어야 했다. 그 치욕의 역사를 다룬 소설도 있지만 이 소설은 그 치욕을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세자를 다루고 있다. 세자만 다룬다면 그 시대의 모습이 너무나도 삭막하고 정치적이고 고루했을 것이다. 작가는 세자를 중심으로 그를 따르던 무리와 구왕 도르곤 등을 배치하면서 역동적이면서도 참혹했던 그 시대를 재현해낸다. 말 한 마디에 목이 날아가고, 권력과 생존을 위해 자신의 자손을 내놓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 시대 속에 꿈틀거린다.

조선의 세자, 왕의 아들, 원자의 아버지, 봉림의 형. 이런 역할들은 그의 마음을 더욱 황량하게 만든다. 구왕의 무력과 권력 앞에 너무나도 연약하고, 전쟁터에선 군신의 힘에 의해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자신이 직접 전장에 나가야 할 때도 봉림이 대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그의 삶에 과연 즐거움이 있었을까 의문이다. 그가 머물던 관소는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또 다른 전쟁터다. 조금만 방심해도 그를 겨냥한 무형의 화살들이 빗발친다. 오랜 볼모생활을 생각하면 연민과 동정과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하는데 권력자 그 누구도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세자가 청과 가까워져 자신들을 몰아낼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이 얼마나 추악하고 불안한 삶인가.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낮은 신분의 한 남자가 있다. 그가 만상이다. 청에 노비로 끌려와 약삭빠른 눈치와 행동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의 뛰어난 언어실력은 이 생활에 더 많은 도움을 준다. 그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조금만 이익이 있다면 조선 사람들을 사고파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힘으로 호가호위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친다. 권력자의 조그마한 그늘에 있던 자는 그 권력자의 눈밖에 나는 순간 파리 목숨처럼 변하는 것이 그 속성이다. 하지만 그는 그 시대 민초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벌벌 떨고, 호통치고, 겁을 주고, 살인을 하지만 이런 행동들은 권력자들의 손짓과 눈짓만도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만상에게 꽤 많은 분량을 할당한다.

무기를 든 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쉽게 목숨을 빼앗던 시절이고, 여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남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하던 때다. 길거리에 굶어 죽은 시체가 가득하고 전쟁에서 권력의 투쟁에서 흘러내린 피는 언제 마를지 모른다. 욕망에 이끌려 만난 두 남녀의 삶은 무간지옥 같은 곳으로 떨어지고, 돈에 팔려 세자를 감시하던 이는 전쟁터에서 세자 대신 화살을 맞고 죽는다. 불멸과 절대의 제국이었던 명을 숭상하던 그들에게 천조 명의 멸망은 현실이 아닌 환상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반정으로 잡은 자신들의 권력이다. 이 거칠고 믿을 곳 없는 현실에서 세자가 잠시 기댈 사람은 동생 봉림이다. 이것 또한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어떤 의미일까 의문이다.

작가는 가볍지 않은 문장과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로 소현의 2년을 재현한다. 그 속에서 만나는 무리들의 삶은 결코 지금 우리 기준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그러했다. 소현을 둘러싼 삶의 무거움과 황량함과 허무함이 가슴 한켠으로 파고들어온다. 볼모의 삶이 주는 불안감과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환국의 기다림은 그 시간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신분의 제약이 없다면 그 역동의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을 테지만 고루한 사대주의 유학자들은 과거 속에서 살아가고, 세자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욱 세자의 삶은 권력자의 날카로운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날카로움이 밖으로 발현되지 못한다. 자신의 유일함을 떨치고, 형제에게 어질고 강건하라고 외치던 그 세자는 환국 후 급사하면서 역사의 비극으로 남았다. 그 비극의 주인공 소현은 철저한 패자의 역사 속에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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