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무스 1 - 원숭이탑의 어릿광대
릴리 탈 지음, 문항심 옮김 / 양철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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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먼저 표지가 시선을 끌었다. 책 소개를 보니 왕자가 적국의 광대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광대 미무스, 그가 왕자란 말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이 있나? 소개 글에 나온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표지와 광대 미무스에 빠져 읽기 시작했다. 그리곤 단숨에 빠졌다. 2권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와 결말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광대들의 활약에 푹 빠졌다.

오랜 세월 다투었던 두 왕국이 화해를 맺기로 한다. 빈란트의 왕 테오도가 교활한 계략을 꾸민 것이다. 몽필 왕국의 필립 왕을 초대하고, 다시 배신자를 이용해 플로린 왕자마저 결혼으로 가장해 사로잡는다. 왕과 대신들은 지하 감옥 속으로 들어가고, 왕자는 미무스라는 광대의 제자로 보내진다. 이 시대의 광대는 그 누구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존재다. 그는 재주를 보여주고, 왕이 던져주는 조그마한 호의에 기대어 살아간다. 가장 높은 곳에 있던 플로린 왕자는 이제 가장 낮은 것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열두 살의 어린 왕자가 말이다.

왕자 플로린에서 꼬마광대 플로린으로 바뀌면서 이야기는 변한다. 왕실의 예절이나 격식은 사라지고, 광대가 익혀야 할 기예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광대로 전락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부왕이 잡힌 모습을 보고 분노하고, 미무스와 말꼬리 잡기를 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 실력만으로 테오도 왕이 그를 광대로 만든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광대가 가장 낮은 취급을 받고, 남을 웃기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립 왕에게 복수를 꿈꾸는 그에게 이 일은 정말 딱 맞는 탁월한 선택이다. 

한 나라의 왕자가 광대에게 맡겨졌다고 해도 금방 변하기는 무리다. 당나귀 귀와 방울을 달고 우스꽝스러운 외모로 움직여야 하는 역할에 만족할 리가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왕과 대신들을 구하려는 의지는 가득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열두 살의 어린 광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 좁쌀죽은 양도 부족하여 늘 배가 고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그에게 도망갈 기회가 생긴다. 당연히 함정이다. 테오도 왕은 그가 도망가면 지하 감옥에 있는 부왕과 대신이 어떤 무시무시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협박한다. 이후 그의 활동 영역은 성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광대로 전락한 왕자 플로린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배고픔과 현실 앞에 광대의 기예를 연마하고, 가슴 한 곳에 왕자의 긍지를 가지고 산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그로 하여금 광대로 살아가게 만든다. 하나 둘 씩 기예를 연마하고, 배고픔에 자기도 모르게 원수인 테오도 왕이 던져준 음식에 몸이 움직인다. 스승인 광대 미무스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지만 왕자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미무스의 도움이 없다면 그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더 쉽게 날아갈 수 있다. 현실을 마주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왕자 플로린은 성장한다.

광대 미무스. 그는 대단하다. 웃음 뒤에 어떤 슬픔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지만 뛰어난 재주와 신랄한 풍자와 해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플로린이 왕자에서 광대로 변하게 돕는 것도 그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특히 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간 곳에서 그가 보여주는 탁월한 연기와 풍자와 해학은 그 시대의 부패상과 삶의 단면을 아주 잘 드러내 보여준다. 그 자신이 풍자의 한계선을 결코 넘지 않으면서 좌중을 휘어잡고, 웃음으로 인도하는 장면은 정말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에 보여준 일생일대의 연기는 결코 평범한 광대가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소년의 성장 속에 시대의 모순과 부패를 풍자해서 같이 보여준다. 처음에 테오도 왕의 계략에 빠진 필립 왕의 행동에 약간 의문이 생겼지만 뒤로 가면서 단순히 하나의 설정으로 다가온다. 왕자 플로린에서 광대로 변하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친구를 만나고, 광대로 살아가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빠르게 전개되면서도 재미있다. 큰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속도감 있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책을 검색하니 절판이다.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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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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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교통사고에 비교한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끈다. 무면허, 무사고를 자랑한다는 그 아픈 감정을 내뱉으며 한 남자와의 소개팅을 이야기한다. 그 남자 이름은 남수필. 첫 만남의 장소인 스타벅스에서 그녀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맨다. 어떻게 만나지만 그 만남이 길지 않고 금방 헤어진다. 여자는 의문이다. 자신의 이름이나 알까 하고. 그런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있다니 찾아오겠단다. 얼마 후 온다. 이 만남은 하룻밤을 같이 보낼 정도로 긴 시간이지만 어떤 낭만적인 장면도 연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여자에게 왠지 모를 아쉬움과 뿌듯함을 안겨주고 말이다.

연봉 삼백만원의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가 이 남자와 소개팅을 한 이유는 그가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늘 살고, 자신이 실험하는 쥐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미키마우스를 모으는 특이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특이한 인물 때문에 겪게 되는 앞으로의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다. 덕분에 우린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모험담을 듣게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과 상황과 전개는 단숨에 읽게 만든다.

무시무시한 G-10 바이러스가 도시 곳곳에 죽음의 공포를 만든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이런 설정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 전 세계, 특히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플루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그 살상력은 그것을 몇 십 배 초월한다. 이런 공포 속에서도 변함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연인이거나 연인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작가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었다. 사랑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 왠지 낯익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작가는 남수필과의 만남부터 암시를 계속 깔아놓는다. 죽음과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다. 이런 설정은 앞부분에 상당히 많이 나온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고, 빠른 전개로 그 답을 곧 알게 된다. 하나의 상황이 끝나자마자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이벤트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강한 개성과 그들이 마주한 상황으로 즐거움을 준다.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강력한 풍자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흘러넘친다. 사실 책 읽으면서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이런 풍자와 뒤틀린 그녀의 감정과 대사들이었다. 

사랑 바이러스는 위험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좋은데 그 상대방에게 키스 등을 하면서 전염시킨다. 죽는 경우도 많다. 물론 감염되면 행복감에 빠진다. 이것은 사랑이 단순히 화학적 반응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정말 그럴까? 순간의 충동에 의한 사랑과 이성과 감정의 교류에 의한 사랑은 구분한다면 어떨까? 사실 작가는 이 사랑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들 속에서 만나는 환상을 통해 삶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깊이 있게 들어갔다면 좀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속도감과 재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엔 참 재미난 인물들이 많다. 먼저 주인공 옥택선은 좌충우돌하고 신랄하고 풍자적인 말투와 시선으로 즐거움을 주고, 그녀를 구할 인물로 나타난 이균은 냉소적이고 엄격한 모습을 유지하여 그녀와 묘하게 대조된다. 상도와 미리 두 학생의 아주 심각한(?) 연애 이야기는 풋풋한 가운데 충동적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두를 압도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남수필이다. 등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그의 존재는 우리들 주변에서 늘 보이는 미키마우스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첫 소개팅이 마지막이 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소동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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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6-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드라운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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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화자로 나온 유니오르가 다시 나온다. 다시란 단어를 쓰기가 조금 쑥스럽다. 그 이유는 이 소설집이 먼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 수 년 전에 말이다. 작가는 유니오르 가족과 그 주변 인물의 과거를 그려낸다. 이들의 삶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우리의 이민 1세대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민 1세대가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이 이 소설 속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세부적인 곳에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윤곽에선 많이 유사하다. 그것은 주류사회로 편입하기 전까지 비주류가 겪어야 하는 아픔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두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쪽은 도미니카고, 다른 한 곳은 뉴욕이다. 도미니카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빈곤하지만 열정과 깨어있다는 느낌이 있다. 뉴욕은 부를 조금 가지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불안하다. 다른 문화와 경제 환경은 적응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까지 변하게 된다. 뉴욕에서 유니오르가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정체성과 함께 생존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난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돈은 늘 필요하다. 이런 곳에 유혹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가 마약상이 된 것은 이런 삶에 대한 순응이거나 굴복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삶을 즐기고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미래를 설계하기엔 결코 밝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늘 아이들에게 허전함과 상실감을 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버지,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 어머니를 유혹하는 수많은 남자들, 이제 조금 자랐다고 여자를 유혹하고 다니는 형, 어린 시절 돼지에게 물려 얼굴에 큰 흉이 있는 이스라엘. 이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말하고, 삶을 보여주고, 감정을 드러내고, 가끔은 폭력을 행사한다. 바로 이런 환경과 삶 속에서 드러나는 유니오르의 시선은 결코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고 날 것 같은 신선함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 그대로 발휘된다.

얼굴에 거대한 흉이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에서 만나는 폭력과 희망과 불안은 가슴 한 곳을 아리게 만든다. 이민 후 삶에서 만나게 되는 가족은 불안정하고, 자란 후 삶도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인생을 그려보지만 쉽지 않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허세와 허풍으로 비루한 삶은 이어진다. 아버지의 과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민 1세대의 삶은 바로 우리 1세대를 생각나게 만들고, 그의 선택이 빚어낸 충돌과 왜곡은 쉽게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 시절 혹은 그들은 성공했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니 말이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문장은 직설적인 표현과 더불어 읽는 내내 호흡을 간단하게 만든다. 약간만 집중력을 흩트리면 유니오르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놓친다. 아메리카 드림이 깨어진 곳에서 마주한 이민자들의 삶은 사실적이고, 환상과 홍보가 빚어낸 삶은 아주 먼 곳이나 텔레비전 속에서만 존재한다. 인종차별은 곳곳에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자신의 정체성은 쉽게 세워지지 않는다.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않아 약간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화자와 이야기의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낯선 문화와 환경 속에 보이는 우리 소설의 편린들은 문학이 지향하는 공통점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엄청나게 느리게 글을 쓰는 그를 생각하면 다음에 나올 책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기다려지는 것은 그가 빚어낸 문장과 현실 마주하기와 멋진 캐릭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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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인형 도시의 살생부 사건
팀 데이비스 지음, 정아름 옮김 / 아고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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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발한 발상이다. 봉제인형도시라니 얼마나 탁월한 발상인가! 단순히 발상만 뛰어났다면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작가는 봉제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이들이 사는 세계 속에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과 함께 미스터리를 뒤섞어 놓았다. 그래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봉제인형들의 대화와 역사 속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 전체를 정밀하면서 세밀하게 잘 그려내어 사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봉제인형도시가 배경이라면 이야기의 구성은 쌍둥이 곰 인형 중 형 에릭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그 사이사이에 막후 실력자와 동생 곰 인형 테디 등을 화자로 등장시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새로운 정보는 에릭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회상 속에도 거짓을 뒤섞어놓았는데 뒤로 가면서 그 사실이 밝혀진다. 복잡한 미스터리 구성에 캐릭터를 잘 살려내었고,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게 만든다. 

기본 줄거리는 조폭 비둘기가 자신이 이름이 쓰진 살생부를 찾으라고 에릭에게 명령하고, 이 살생부를 찾기 위한 에릭과 그 동료들의 노력과 활약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살생부다. 봉제인형도시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문이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는 물건이 바로 살생부다. 이곳에 이름이 적히면 바로 저승사자 같은 배달부에게 끌려간다. 즉, 죽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생부가 이곳에 적히고, 이 명부에 따라 누군가가 죽인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 소설 속에선 바로 죽음 그 자체다. 이곳에 이름이 적히면 지워지기 전까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봉제인형도시에서 출생은 인간사회와 다르다. 공장에서 결혼한 가정에 배달됨으로서 가족이 된다. 출산의 고통은 없지만 아이들을 배달받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낳는 고통과 혈육이란 관계가 없지만 자라면서 맺은 유대관계와 정이 그것을 능가한다. 작가는 이런 설정을 통해 가족이란 함께 하는 것이지 낳는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은연중에 알려준다. 그리고 각각 다른 모양의 봉제인형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다른 동물 모양인데 이 또한 인간사회를 살짝 비튼 설정이다. 바로 같은 부모가 낳은 자식이라도 형제 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조폭 비둘기가 왜 곰인형 에릭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바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이 봉제인형도시에서 환경부 장관은 엄청난 지위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은 고급 비밀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의미고, 이것을 알아챈 비둘기가 에릭을 통해 자신을 죽음을 막으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떠돌아다니는 전설이었던 것이 에릭 일당의 조사와 연구 속에서 그 실체를 하나씩 벗게 된다. 이 과정 속에 드러나는 도시의 모습과 인형들의 삶은 인간 사회와 유사하면서도 봉제인형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기이하면서도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살생부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그 실체를 좇는 에릭 일당의 활약이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간다면 그들을 둘러싼 과거와 다른 봉제인형과의 관계나 삶은 또 다른 중심축을 이룬다. 동물봉제인형이 동물의 특성을 그대로 가진 듯하면서도 다른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특히 살생부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실 공방과 에릭의 현실을 뒤집는 테디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이야기 전체를 미스터리로 몰아간다. 끝으로 오면서 이 미스터리는 하나씩 풀리지만 봉제인형도시의 존재란 거대한 미스터리는 그대로 남아있다. 앞으로 계속 나올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풀릴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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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지음, 이혜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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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은 지 몇 년이나 된 <타라 덩컨>의 작가가 스릴러를 한 편 내었다고 한다. 판타지 <타라 덩컨>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많은 호평과 계속해서 나오는 시리즈를 생각하면 관심이 갔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 약간은 전형적인 구성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 펼쳐든 <만찬>은 빠른 속도로 읽히면서 재미를 준다. 독창적인 느낌은 덜하지만 전형적인 구성과 캐릭터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소년의 생일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축복받고 행복해야 할 이 날이 소년에겐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하다. 그 날 소년의 마음은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그 소년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요리를 하고, 그가 가둔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하다. 공포와 긴장이 스멀스멀 피워나면서 사건의 서막을 올린다. 

작가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인물로 설정했다. 형사반장 필리프 하트, 젊은 소아정신과 여의사 엘레나. 이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하트는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그 시체마저 찾지 못해 그 환영 아래 고통 받고 있다. 엘레나는 어린 시절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한 아버지 친구 때문에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늘 자리 잡고 있다. 이 둘의 상처는 둘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 과정을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순간의 오해도 있지만 서로 강하게 끌리고, 자기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부드럽고 긴장을 풀어주는 장면을 그들이 만든다.

어린이를 성추행한 범인 피에르 자비가 병원에서 사라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피해 아이를 치료하는 의사가 엘레나고, 그 범인을 잡은 형사가 하트다. 이 둘은 짧은 만남으로 강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범인이 사라진 것은 의문을 자아낸다. 그가 자발적으로 탈출했다기보다 외부의 도움이 있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하트는 그 시체가 자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다른 인물이다. 너무나도 처참하게 죽은 시체의 모습은 섬뜩하고 잔혹하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끝났다고 생각한 사건에 새로운 사건의 가능성이 보인다. 그렇다. 바로 뚱보 연쇄살인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고도 비만자의 실종을 파악하고,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알게 되지만 이들의 공통점을 찾지 못한다. 범인이 남긴 시로 다음 장소를 알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이 시를 해석한 인물이 경찰이 아니다. 그는 엘레나의 환자인 천재소년 카를이다. 카를의 오만한 성격과 탁월한 능력은 짜증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게 만든다. 단숨에 시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이 소년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만약 이 소설이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중심인물로 키우거나 주인공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잔혹한 시체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죽음의 원인은 굶주림이다. 그들은 굶어죽은 것이다. 시체가 발견될 당시 모습은 단지 이런 사실을 순간적으로 가려줄 뿐이다.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나오는 시는 다음 범행 장소를 알려주고, 경찰과의 대결을 암시한다. 그리고 두 번째 시체가 발견되고, 그 피해자의 집에서 발견한 사실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는 동시에 아동매매라는 또 다른 사건을 드러낸다. 이 사실이 피해자들이 뚱보였다는 사실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살인자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의문이 하트의 마음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 열기와 사랑을 바탕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살인사건을 엮어서 멋진 스릴러를 만들었다. 약간 전형적인 구성이나 인물상이기 하지만 잘 버무려내었다. 범인의 모습을 최후까지 숨기면서 머릿속에서 누굴까 하는 호기심을 키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용의자도 한두 명 늘어나고, 범인의 행적은 점점 교묘해진다. 일방적인 경찰의 패배다. 하지만 연쇄살인의 경우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밝혀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기존 방식을 따르면서도 새롭게 만들었다. 액션으로 멋진 장면을 만들기보다 심리 속으로 들어가 긴장감을 조성하고, 왜 그가 그렇게 변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무겁고 난해할 수도 있는 이 과정을 매끄럽게 풀어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고, <타라 덩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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