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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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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란 이름을 듣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게 된 것이 2~3년 정도다. 예전에 sf문학 관련된 해설에서 그의 희곡 에서 로봇(robot)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을 읽었지만 작품으로까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그것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영미문학과 서유럽문학 중심이었기에 그런 것도 있고, 카렐 차페크가 어떤 인물인지 해설자조차도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문학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책들이 대부분 그런 종류고,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흘러가는 출판 현실에서 문학의 변방인 그를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헌책방에서 절판된 책을 찾아다닐 때 카렐 차페크의 철학 3부작 중 한두 권을 산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산 것은 아니다. 그 책을 사기 전 누군가가 아주 급박하게 구하는 글을 유심히 읽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놓친 걸작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 당시 나의 책에 대한 얕은 지식 때문에 놓친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절판 혹은 희귀판들이 싸게 또는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렸는데 그냥 지나갔다. 내 관심이 베스트셀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순간들이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책읽기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언제나처럼 신간을 훑어보다가 발견했다. 반가웠다.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덜컥 내손에 들어왔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산만한 편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랗고 푸르고 빨간 색지가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전에 헌책방에서 구한 철학소설이란 이름이 얼마 전에 읽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같이 힘겨운 책읽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래서 다른 책을 먼저 읽고 미뤄 두었다. 그런데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예상보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었다.

재미와 속도감을 주지만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몰입도를 높여주고 진도가 잘 나가지만 이야기가 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도롱뇽의 관계 변화와 힘의 역학 관계를 우화적으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그 당시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지 고민되었다. 뭐 이런 고민은 서평을 위한 것이지 책읽기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다. 서평이 아니라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판타지나 sf로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도롱뇽이란 존재 때문이다. 도롱뇽이 등장하는 첫 부분을 읽을 때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중 한 편을 읽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반 토흐 선장이 타나마사라는 섬 사람들의 공포를 무시하고 데블베이란 곳으로 가서 어둠속에서 도롱뇽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곧 반 토흐 선장이 이 도롱뇽이 지닌 사업성을 파악하고 G.H. 본디를 찾아가서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할 때 이전 세기의 노예무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도롱뇽이 지닌 경제성을 파악한 사람들의 행동에서 폭력과 약탈과 잔혹함 등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시선에 담긴 마음과 행동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작가는 특별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 않는다. 중간 이후 도롱뇽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했던 포본드라 씨를 등장시켜 시대의 변화를 보여줄 뿐이다. 반 토흐 선장이 도롱뇽을 이용해 진주 캐기를 기획할 때만 해도 한편의 모험소설을 연상했지만 그의 출현은 거기까지다. 이후 놀라운 도롱뇽의 번식과 그들의 특수한 능력을 놓고 벌어지는 토론을 보면서 세계 시장을 보는 사업가의 시선을 경험한다. 도롱뇽이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에서 일상의 존재로 바뀌는 순간은 결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변화 속에서 작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각 나라가 도롱뇽을 이용해 군비확장을 꾀하는 부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군비확장과 도롱뇽과의 전쟁 속에서도 작가가 은근히 주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누가 이 도롱뇽들에게 무기 등을 제공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도롱뇽들에 의해 하나씩 대륙이 물에 잠길 때조차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데 이것은 지금에도 변함없는 현실이다. 작가의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포본드라 씨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롱뇽를 보는 관점이 변하는 장면들은 하나의 사물이나 사람이 그 한 시점만으로 평가할 때 어떤 문제나 의문이 생길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것은 역사가 하나의 시점이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아직 제대로 이 책을 소화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평생 두고두고 소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역사와 세계를 보는 시각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체와 장르를 오가는 구성과 편집은 전혀 재미를 떨어트리지 않는다. 약간의 우려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포만감에 빠져 하나하나 소화시키기 바쁘다. 글을 거의 다 쓴 지금 다시 펼친 곳에서 읽을 당시 유심히 생각했던 몇 개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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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로드 - 라이더들을 설레게 하는 80일간의 일본 기행
차백성 지음 / 엘빅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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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많은 사람들처럼 네발 자전거로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엄마가 뒤에서 두발을 뗀 자전거를 잡아주던 장면이다. 요즘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는 풍경인데 자전거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몇 가지 추억 중 하나다.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는 놀이기구이자 밖으로 좀더 멀리 나가는 도구였다. 지금이야 당연히 차를 몰고 더 멀리 나가지만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도구였다. 그때 아이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더 큰 후 자동차로 가니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였다. 아이들이 보는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것을 멈춘 것이 아마 대학 때일 것이다. 집으로 내려가면 집에 있는 자전거를 가끔 타지만 어중간한 거리는 걷고, 좀 먼 거리는 버스를 탔다. 가끔 충동에 휩싸여 자전거를 타고 달리지만 허약해진 다리와 폐는 힘겹기만 하고 멀리 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 자전거로 하고 싶은 여행이 있었다.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한 번은 걸어서 일주를 하려고 했는데 너무 무리한 행동임을 깨닫고 금방 중단했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자전거다. 이것은 언제나처럼 그냥 상상으로 멈추고 말았다. 다른 수많은 계획들이나 희망사항처럼.

얼마 전 한 부부가 후배를 데리고 자전거로 아프리카를 여행한 책을 읽었다. 정말 대단했다. 부러웠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라이더 한 명이 자전거로 일본을 달린다고 한다. 그러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다른 책을 그냥 사놓고 묵혀 두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은 것은 최근에 주변 사람들이 일본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철도를 이용해 일본을 여행한 책도 읽은 적이 있다. 각각 다른 수단을 통해 일본을 보고 왔는데 읽으면서 둘이 겹치는 곳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각각 다른 관점에서 이 여행을 했기 때문인지 표현하는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철도여행이 정보 중심이라면 <재팬 로드>는 감상 중심이다. 그래서 읽는데 걸린 시간도 훨씬 길다.

처음에는 한 번에 일본 전역을 돌았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모두 세 번에 나누어서 다녀왔다. 테마별로 규슈와 쓰시마, 오키나와 시코쿠, 혼슈와 홋카이도 등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배로 들어가서 일본 속 우리의 흔적들에 집중하였고, 다음은 시코쿠의 88개 사찰 순례길을 찾아서 돌았고, 마지막은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더듬었다. 각각 다른 기획을 가지고 일본 각지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저자의 감상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과거와 현재 역사에 대한 단상들로 인해 경계가 무너진다. 단지 다른 지역일 뿐 하나의 일본과 우리의 역사가 겹쳐지면서 풀려나오는 감상들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책을 읽으면서 시선을 끈 것은 “자유에 지칠 때면 질서로 돌아온다. 질서는 내가 매여 있는 일상이다.”(7쪽)이란 문장이다. 약간 길었던 백수시절 바빴던 직장생활이 그리웠을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흔히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너무 빨라’라고 탄식하지만 이는 변화 없는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61-62쪽)란 문장을 만나면서 다시 일상에 지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매여 있는 몸이니 쉽게 떠나지 못하는데 이 두 문장은 나의 삶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러니 밑줄을 치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공감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나오면서 그의 자전거를 따라 일본을 돌아다닌다.

80일간의 일본 기행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장소들과 사람들과 유적들은 단순한 눈요기 거리가 아니다. 저자는 관광이 아니라 자전거로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신의 지식과 철학을 통해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사전 준비가 얼마나 잘 되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역사와 관련된 부분에서 만나게 되는 정보와 역사 인식은 풍부하고 한일문제와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끔은 무심코 보았던 것을 다시 한 번 더 보게 한다. 또 화려하지 않은 여행을 하면서 얻게 되는 수많은 장점들을 보게 되는데 가슴 한 곳에 학창시절 못했던 제주도 일주의 꿈을 다시 꾸게 만든다. 그리고 내년에는 짧은 시간이나마 일본을 한 번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강하게 든다. 

흔히 만나게 되는 여행 정보지처럼 맛있는 집이나 절경이나 좋은 숙소에 대한 정보는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을 배운다. 그가 간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간 곳에서 나눈 역사와의 대화에 더 마음이 간다. 점점 게을러서 자동차로도 여행가기를 꺼리는 나 자신에게 자전거를 타고 일본을 아프리카를 달린 사람들의 용기와 열정은 부럽고 잠들어 있던 열정에 불을 지핀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임을 얼마 전 경험했기에 더욱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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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제국 1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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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나를 사로잡은 두 명의 테크노 스릴러 거장이 있었다. 톰 클랜시와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이 둘은 당시 최고의 작가들이었고, 출간하는 즉시 베스트셀러 목록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거장들이었다. 물론 그 당시 미국 출판계 정보가 지금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을 때라 그냥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참 무식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 둘 중 먼저 나를 사로잡은 사람은 <스피어>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었다. 크라이튼의 작품은 나오는 즉시 읽었다. 그의 작품이 어느 순간 한계를 보이기 전까지는.

지금도 마이클 크리이튼의 작품이 나온다고 하면 눈길이 간다. 물론 이제 고인이 되어 더 이상 나올 신간이 없지만 다시 재간되는 작품이 인터넷 서점에 올라오면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진다. 그것은 그가 90년대 나를 사로잡은 최고 작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단숨에 읽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루한 책이나 난해한 책 다음에 그의 소설을 펼쳐 읽으면 그 속도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너무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이미 영화를 먼저 본 경우 흥미가 반감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번 소설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소설 속 지구온난화에 대한 소개글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미 상식처럼 굳어진 지구온난화를 잘못된 상식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가끔 작가들이 극적효과를 노리기 위해 과장된 상황 설정을 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나도 빤한 상식을 뒤집으려고 하기에 반감이 생긴 것이다. 단순히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미뤄뒀다. 2년 전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지만 역시 손이 가지 않은 것은 완고한 나의 고집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어떤 식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난도질했을지 궁금해졌다. 

사전적 의미로 지구온난화는 지구 표면의 평균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화석 연료와 숲의 파괴 등으로 온실효과의 영향이 커졌다는 것이다.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이산화탄소와 프레온 가스와 오존층의 파괴 등이 머릿속을 단숨에 스쳐지나간다. 해수면의 상승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작가는 지구의 온도 변호와 해수면의 상승, 아이슬란드와 남극의 빙하 등이 20세기 들어와서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한다. 단순히 이것을 말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자료를 나열하면서 보여준다. 이런 자료들을 읽어 보면 지금도 이 학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지적했던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인 우리가 언론 등에 나오는 기사를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상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약간은 빤하다. 지구온난화로 거대한 기부금을 모으려는 극단적 환경단체 전국환경자원기금(NERF)를 내세우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주인공 피터 등의 모험과 활약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작가가 공부하고 조사한 자료들이 나열되면서 극단적인 에코테러의 위험과 문제점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그의 전작들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역시 영웅주의가 강하게 개입하면서 사실성을 떨어트린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도발적으로 혹은 사실적으로 주장한 사실들은 곰곰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왜 공포의 제국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과 1980년대 대학이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지적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법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1권 148쪽)이란 문장은 책 내용과 별개로 생각해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변호사고, NERF의 이사장도 변호사인 것으로 설정한 것은 바로 문제를 만들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도 볼 수 있다. 모든 문제가 결국 법정에서 만나고 그 속에서 갈등을 빚어내고 판결이나 화해를 통해 해결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호사를 등장시킨 것은 그들이 법정에서 싸울 때 자료를 통해 공방을 펼침으로서 드러나는 사실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피터가 지구온난화의 상식을 조금씩 깨트릴 때 최고 역할을 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작가의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가 조사하고 수집한 정보만 본다면 분명 과장된 부분이 많다. 이것을 상업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을 생각하면 살짝 그의 편에 서고 싶다. 하지만 단숨에 넘어가기엔 요즘 나오는 정보들이 너무 지구온난화를 강하게 지원한다. 공부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완전히 작가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에 대한 해결책이 과학이란 말에 동의한다. 비록 과학이 가치중립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하여도 결국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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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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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처음이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중 한 권인 <남아 있는 나날>을 이야기하면 다르다. 이 소설은 직접 읽지 않고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보았다. 정확히는 비디오다. 한참 영화에 빠져 있을 당시 집에 쌓여 있던 비디오 중 하나를 꺼내어 보았다. 화려한 재미는 주지 않지만 은근한 재미로 나를 유혹했던 감독이라 최소한 실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까지 본 후 느낌은 요즘말로 대박이었다. 정적인 화면 속에 은근히 드러나는 감정의 깊이와 절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동을 준 것이다. 아마 그해에 본 수많은 영화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그때 본 영화가 최소 하루에 한 편 이상이었다.

영화로 먼저 만났는데 사실 원작이 있는 것을 몰랐다. 아마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여도 영화의 감동 때문에 읽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 원작을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녹턴>을 읽은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고,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문장으로 어떻게 펼쳐지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뭐 이것은 나중에 이루어질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 이렇게 길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번 소설이 준 느낌이 좋았고, 읽으면서 옛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란 부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목대로 다섯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음악과 관련이 있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라 따로 읽어도 상관없다. 물론 두세 편은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앞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것 또한 독립된 이야기라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부제의 의미고, 다음으로는 약간 의외로 풀리는 결말이다. 크게 긴장감을 불러오는 상황이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약간은 밋밋한 전개와 상황들이 가슴 한 곳에 등장인물들의 삶을 점점 쌓아올리고 울리게 만든다. 그것도 각각 다른 느낌과 분위기로 말이다.

<크루너>는 ‘낮게 노래하다, 작은 소리로 속삭이다’라는 뜻인 croon에서 비롯된 말로서, 그렇게 부르는 가수를 말한다. 이 단편 속에선 유명 가수 토니 가드너를 말한다. 화자는 폴란드 출신의 기타리스트다. 그가 토니 가드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머니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카페에서 연주하던 그에게 토니의 존재는 추억의 대상이기도 하다. 엄마를 생각해 말을 건다. 이때부터 이 둘의 대화가 오고가고 토니가 연출하고자 하는 이벤트에 동참하게 된다. 이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예상을 넘어선 것으로 사랑과 삶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는 연극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상황이 조그마한 소품 상황극으로 만들어진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권태기에 빠진 부부 사이에 끼워든 옛 친구 레이의 좌충우돌하는 모습과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읽을 당시는 쉽게 이야기에 빠지지 못했는데 지금 이 순간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움직임과 효과음 등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한 레이의 노력은 잘 표현하면 큰 웃음을 줄 것 같다. 단편 영화로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한 편이 <말번힐스>이다. 음악가로 성공하고 싶지만 누구도 그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한 음악가 이야기다. 자신이 직접 작곡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문을 드러내고, 기회마저 차단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누나의 카페에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어쩌면 단순한 일상인데 이런 그에게 한 부부가 나타난다. 오해를 하고, 살짝 그들을 놀린다. 하지만 그가 연주를 하는 것을 들은 두 부부의 찬사와 그들의 삶을 듣게 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그렇다고 삶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일상의 지속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 단편집에서 영화로 만들어서 흥행에 성공할 작품으로 꼽는다면 당연히 <녹턴>이다. 실력은 있지만 외모가 부족한 테너 색스폰 연주가 스티브와 토니 가드너의 아내이자 유명 가수인 린디 가드너의 만남과 활극이 가벼운 흥분과 긴장감을 준다. 전혀 만날 일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 곳이 성형수술을 위한 호텔이란 것과 옆방이란 점부터 그렇다. 음악, 질투, 부러움, 사랑 등에 대한 그들의 반응과 행동은 린디가 재즈 트로피를 가져오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확 바뀐다. 약간 무겁게 만들 수도 있지만 트로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좀더 규모를 키우고 흥미롭게 만든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만든다면 마지막 그들의 성공도 다루어야할 것이다.

<첼리스트>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그 반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란 것과 후일담이 또 다른 해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첼리스트 티보르가 엘로이즈 매코믹을 만나고, 그녀에게 새로운 음악 해석을 듣고 연주하는 것까지는 분명한 결말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고, 음악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하면서 바뀐다. 제대로 된 연주가 무엇인지, 자신의 연주에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잠재력이란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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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12-2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운명
발레리 통 쿠옹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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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로 만들어진 표지가 인상적이다. 한 사람의 삶이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음을 생각할 때 도미노는 어쩌면 우리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조그마한 행동이나 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거나 행복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혹은 그 반대에서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은 나에서 시작하여 나로 끝난다. 하지만 좀더 이것을 확장해 나간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연결을 몇 사람에게로 한정시킨다면 어떨까? 이 소설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결코 두툼하지 않은 이 소설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은 하나의 사고, 하나의 양보에서 비롯한 것이다. 미혼모인 마릴루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컨설팅 회사 비서로 일한다.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두툼한 복사물을 제때 사무실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차는 막히고, 지하철은 자살 소동으로 운행이 중단된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해고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최선을 다해 달려 시간에 맞추려고 그녀는 노력한다. 

알베르는 암을 선고받은 노인이다. 그의 삶은 외롭다. 그가 평생 노력한 것은 자신의 삶이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운 좋게 탄 택시로 원하는 찻집으로 가서 먹고 싶었던 마카롱을 잡는다. 그때 한 여자가 그의 마카롱을 탐낸다. 양보한다. 기분 좋게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온다. 한 건물의 폭발로 길이 막힌다. 이 사고로 인해 조금 늦게 집에 도착하고 그는 자라면서 그가 받았던 모든 불합리하고 의문투성이의 원인을 듣게 된다.

프뤼당스는 흑인 변호사다. 그녀는 실력이 있지만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의뢰인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변호사 사무실의 공동대표란 명함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 화려하고 멋져야 할 그녀의 과거는 어둠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한 남자와 관련된 일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위축되어 있다. 그런 그녀에게 기회가 온다. 공동대표 클라라가 마카롱을 먹고 두드러기가 생긴 것이다. 그날 클라라가 참석해야 할 회의에 대신 참석해야 한다. 기회다. 

성공한 영화 제작자이자 교수인 톰은 리비에게 청혼하려고 한다. 매력적인 리비에게 푹 빠진 그가 큰 보석이 박힌 반지를 산다. 막힌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힘껏 페달을 밟는다. 갑자기 사고가 발생한다. 적지 않은 부상을 입는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한 여자 때문에 생긴 일이다. 부상을 입은 상태로 리비의 집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뒤엉킨 두 여자다. 리비와 알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환상이 산산조각난다. 이제 리비의 실체를 본다.

이렇게 각각 다른 네 명의 남녀가 사고와 우연으로 하나로 이어진다. 마릴루는 지하철 투신자살 때문에, 알베르는 한 건물의 폭발 때문에 생긴 길 막힘으로, 프뤼당스는 알베르의 호의에서 비롯한 마카롱 때문에, 톰은 마카롱은 먹은 클라라 대신 산책한 빅투아르 때문에 생긴 사로로 연결된다. 아마 책 속에서 이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한 개인의 우연들일 뿐인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 우연들이 하나의 고리로 묶이는 순간 그들의 운명은 바뀐다. 그리고 왜 표지가 도미노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삶이 지닌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보게 된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재미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그들의 삶과 그들을 이어지는 운명의 힘이다. 아니 단순히 운명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그들이 삶에 들인 노력이 너무 저평가되었다. 후반으로 가면서 하나의 우연과 사고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두웠던 과거와 현재가 어떤 미래로 이어지는지 알게 된다. 어떻게 이들이 연결될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것이 하나씩 그 실체를 드러낼 때 가슴 한 곳에 따스한 기운이 조용히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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