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에브리원
다이애나 피터프로인드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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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쾌하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의 소설이다. 실직과 성공이라는 두 소재를 잘 버무려 내놓았다. 광고 문구의 설명을 참고한다면 어떤 내용일지 짐작 갈 것이다. 나쁘게도 볼 수 있지만 유쾌하고 즐겁게 읽었다. 그것은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재미난 상황을 계속 집어넣고, 가벼운 유머를 지속적으로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조금 무거운 책을 읽고 난 후라 이런 가볍고 유쾌하고 낭만적인 소설이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베키 풀러는 TV 뉴스 프로듀서다. 뉴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아침 뉴스 프로듀스인데 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3대의 텔레비전이다. 기상시간은 오전 1시 30분이고, 남자를 만나 저녁 먹는 시간은 4시 반 정도다. 손에서 블랙베리를 놓지 않고,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나눌 때도 뉴스를 생각한다. 보통의 남자라면 그녀의 생활 리듬을 전혀 맞출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니 그녀의 연애가 잘 될 리 없다. 하지만 늘 이런 실패와 황폐한 듯한 삶만 있다면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실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그녀는 분명 능력 있다. 책임 프로듀스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상사를 만나러 갔지만 되돌아온 것은 해고 통지다. 그 이유는 그녀의 학벌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학력은 잘 모르는 대학의 3학년 중퇴다. 실무자와 달리 위에서 볼 때 그녀의 이런 조건은 많은 결격 사유가 된다. 실무자들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쫓겨나고 힘든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그런데 요즘 같은 불황기에 좋은 학력도 탁월한 경력도 없는 그녀를 뽑아줄 방송사가 없다. 힘든 백수 생활 중에 한 공중파 방송국에서 연락이 온다. IBS다. 반 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데이브레이크>란 아침 뉴스 책임 프로듀스 자리다. 비록 연봉은 이전 직장의 반 정도일 뿐이지만.

추락하는 아침 뉴스를 되살리라는 임무가 쉬울 리가 없다. 그녀가 아무리 실무에 뛰어나고 뉴스만 생각한다고 해도 말이다. 시청률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방송국의 풍족한 예산 지원도 없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고, 기존 앵커는 열정이 없다. 첫 방송을 보고 그녀가 처음 선택한 것이 바로 남자 앵커를 자른 것일 정도다. 후임을 정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런데 IBS 목록 중에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우상인 포머로이다. 엄청난 경력을 지닌 그이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정통파 뉴스 앵커인 그가 시청률도 별로고 일상의 소소하고 자질구레한 정보를 전하는 아침 뉴스에 열정을 가지고 진행하길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이 소설이 지닌 재미의 한 축은 바로 이 둘의 티격태격하는 부분에서 생긴다.

포머로이가 남자 앵커로서 갈등의 시발점이라면 여성 앵커 칼린은 도도한 자세를 버리고 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하는 앵커다. 사실 그녀의 재미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 아마 다이앤 키튼이 영화에서 이 역을 맡지 않았다면 강하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탁월한 미모를 지닌 여자 앵커에 놀랄 정도의 변신을 한다고 하지만 이 변화가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편인지 아니면 그녀의 바람이 녹여져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포머로이 역을 맡은 배우가 해리슨 포드란 사실도 역시 소설을 읽으면서 배우 이미지를 상당히 많이 빌려왔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의 연기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이 부분은 사실 영화를 보기 전이지만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를 봤다면 다르겠지만. 

폐지 위기에 이른 프로그램을 살려내고, 앵커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좋아하는 남자와의 사랑도 이어가야 하는 상황들을 잘 녹여내었다. 실직의 아픔을 알기에, 자신의 경력을 더 높여야 하기에, 그보다 뉴스를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그녀는 <데이브레이크>라는 프로그램을 살려야 한다. 색다른 시도로 시청률을 소폭 상승시키지만 원하는 수치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재미난 장면으로 유투브에서 인기를 얻지만 그것이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단순한 연결 속에 사실 수많은 인터넷 업체들의 운명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인기와 수익이라는 두 단어 말이다. 뭐 작가가 이런 상관성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무거운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단지 읽으면서 생각난 대목이라 적었다. 그리고 할리우드 방식의 방점을 찍은 것은 역시 마지막 장면들이다. 통쾌하지만 현실에서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혹시 다음 이야기도 나온다면 읽고 싶다. 그들의 변한 삶 속에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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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틀리
알렉스 플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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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뉴욕판 미녀와 야수다.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잔인한 2년이란 부제가 보인다. 이 소설은 기존의 미녀와 야수에 시간제한까지 더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그리고 작가가 말했듯이 왜 야수가 되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런데 왠지 그 설명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왜냐고? 그것은 그의 장난이 특별히 유별난 것도 아니고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들이라 너무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카일의 행동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을 줄 정도인가 의문이 들 뿐이다.

잘 읽힌다. 한 번 잡고 읽으면 가속도가 붙어 단숨에 읽게 된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뻔한 결말이 고민을 들어내기 때문이다. 깊은 생각도 고민도 없이 읽을 수 있지만 한 가지는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은 미녀와 야수의 다양한 버전들이다. <노트르담의 꼽추>, <오페라의 유령>,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들 모두 추악한 외모 때문에 발생한 이야기를 다룬다. <프랑켄슈타인>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그 시대의 괴물임을 생각하면 공통점이 보인다. 그런데 이 중에서 내가 직접 읽은 책이 <투명인간>을 제외하면 한 권도 없다. 음~ 그 유명도에 비해 손이 가지 않았다. 언젠가 읽게 되면 <비스틀리>를 연상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유명한 TV앵커인 아버지에 뛰어난 외모를 지닌 카일이 마녀의 저주를 받는다. 그 이유는 그가 외모와 자신의 배경만 믿고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위에서 마녀의 저주를 받을 정도인가 의문을 품었던 것은 이런 학생들이 너무 많기에 그에게만 저주가 내려진 것이 정당한가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이 저주의 재미난 점은 기존의 미녀와 야수 이야기와 달리 시간제한이 있다. 2년 안에 진실한 사랑을 하고 키스를 하지 못하면 영원히 야수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버전과 달리 이런 설정은 뻔한 결말과 함께 긴장감을 고조시켜준다. 그리고 시간 때문에 그가 받는 고통과 두려움이 진실한 사랑과 결합하여 흥미를 불러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이전에 드라마로 만들어진 <미녀와 야수>다. 마지막은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야수가 일 년에 단 한 번 편안하게 사랑하는 여자와 밖을 돌아다니는 날이다. 이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는데 바로 할로윈이다. 단지 이 소설에서는 홀로 돌아다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시간제한이 있으니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다른 버전과 달리 그의 성은 브룩클린 맨션이다. 드라마와 달리 그는 밤에 거리의 안전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는다. 자신이 지닌 외모 때문에 숨어살면서 장미만 키울 뿐이다. 드라마가 보여준 야수의 활약이 이 소설에서는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

야수가 장미를 키우고, 자신의 성곽에 머문다는 설정과 함께 흥미로웠던 것은 채팅 장면이다. 채팅에 참여한 존재(?)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인어공주, 개구리, 회색곰 이야기를 가상공간 속에서 펼쳐내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그 속에 살짝 야수를 집어넣은 것은 기발한 착상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과 구성이 약간은 진부할 수 있는 현대 뉴욕판 미녀와 야수를 조금은 신선하게 만든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영화 포스터에 나온 남녀가 전혀 고등학생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책 읽기 전 먼저 영화 예고편과 포스터를 본 탓에 그 이미지가 소설 속에 굳어졌다. 동시에 야수로 변한 후 이야기가 약간은 긴장감이 부족한데 영화는 어떤 식으로 풀어내었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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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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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선정 2009년 10대 소설, 끌린다. 하지만 더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에드거상을 수상한 <시티즌 빈스>의 작가란 사실이다. <시티즌 빈스>를 읽었냐고? 아니 사놓고 아직 읽지 않았다. 그런데 왜냐고? 그것은 이 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때문이다. 가끔 읽게 되는 미국 신문사 10대 소설이나 무슨 무슨 상 받았다는 작품을 읽으면서 힘들어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고, 역시 예상한대로 재미있으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호평을 하던 유머를 포복절도하면서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한 가족의 삶을 다룬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가장의 이야기다. 그는 우연히 아이들이 먹을 우유를 사러갔다가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한다. 잊고 있던 마리화나를 피운 것이다. 이 일이 가정파탄의 시발점이냐고 한다면 아니다. 시발점은 서브프라임 사태에서부터 발생한 경제위기다. 아니 좀더 파고들면 그들이 너무 낙관적으로 미래를 보았고, 흥청망청 소비를 했다는 것이다. 뭐 그때는 모든 언론에서 그렇게 환상을 심어줘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주인공인 맷은 위기 전 다니던 신문사를 나와 시로 경제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려고 한다. 아이디어 좋다. 그런데 경제성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과 그 동안의 승승장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굴곡 없는 삶은 단번에 다가온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만든다. 정확한 판단을 내려 빠르게 옮겼어야 할 수많은 올바른 판단이 사라졌다. 그 이후의 삶은 말 그대로 급전직하다. 집값은 떨어지고, 집을 담보로 잡았던 금융업체들은 자꾸 변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창 거품 논란에 빠져있는 우리의 부동산 시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방의 저축은행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미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우연히 세븐일레븐에서 마주한 아이들에게서 마리화나를 얻어 피운 후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다가온 경제파산을 막기 위해 그는 다른 방법들을 찾는다. 그런데 없다. 나중을 위해 모아둔 연금마저도 바닥이 난 상태다. 모두 정리한 후 손에 들어온 금액은 만 불이 되지 않는다. 당장 갚아야 할 금액이 3만 불이 넘는데 말이다. 거기에 아내의 동태가 수상하다.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다. 이름은 척이다. 어릴 때 사귄 남자다. 아내와 잠자리를 한 지도 오래되었고, 불안감은 커진다. 자신감을 상실한 남자가 할 찌질한 행동인 척의 가게 찾아가기도 한다. 뭔가 약점을 찾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혼했다는 사실에 더 위축된다. 이렇게 소설은 경제적 위기와 가정 불안이라는 두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산층의 몰락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수많은 매체에서 만들어낸 환상에 빠진 사람들의 삶 일부를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멋진 집을 사고, 큰돈을 들여 수리를 하고, 사립학교에 보내고, 좋은 차를 산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돈으로 산 것은 거의 없다. 모두 빌린 돈이다. 앞으로 몇 년에서 30년 정도 갚아야 할 돈이다. 낙관적이고 안정된 경제에서 이런 상황은 별일 아니다. 위기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생각보다 빠르게 그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다. 이자와 원금상환으로 허덕인다. 이때 한 대 핀 마리화나는 새로운 돌파구처럼 보인다. 남은 돈 모두를 투자해 고수익의 마리화나 장사로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깃하다. 주변 시장도 어느 정도 있다. 모든 것을 정면에서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나’의 현재 모습이다. 아마추어가 이런 사업을 하기 쉬울 리 없다.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재미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상황과 유머와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속에 미국 중산층의 시각을 하나씩 깨트린다. 위만 보고 살던 삶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풍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니 혐오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 가꾸어진 이미지가 깨어질 때 진실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가 아등바등 살기 위해 몸부림 칠 때 아내의 부정을 두려워하며 움추릴 때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한 가장의 넋두리 같은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 미국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리 주변의 삶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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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름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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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 대한 호불호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어떤 이는 점수를 주기 힘들 정도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극찬을 한다. 책을 읽기 전 먼저 본 감상은 점수가 아주 낮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인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형편없기에 이런 표현을 쓰나 하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 감상은 중반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개성 없는 전개와 구성이 이것을 부채질했다. 초반 묘사나 서술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의 일상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조금 밋밋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것은 책 후반으로 올 때까지 지속되었고, 취향과도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몇몇 서평 중에서 가장 많이 공감하는 것은 영화 <프라이멀 피어>를 인용한 것이다. 중반까지는 이 영화와의 연관성을 깨닫지 못했다. 중반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치닫게 되면서 그 유사한 설정과 전개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연쇄살인범을 둘러싼 교묘한 심리전이 마지막 반전으로 하나씩 풀려나가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기 전은 강렬함이나 긴장감이 부족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진부한 듯한 다중인격장애를 다루고 이 공식에 상황을 대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상황과 설정이 반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 기숙사방에서 한 여자가 배가 갈린 채 죽어있고, 다른 여자는 기절해있다. 그 옆에 피투성이 남학생이 서 있다. 시체는 준이고, 기절한 여자는 올리비아, 피투성이 남학생은 닉이다. 이 장면은 단순하게 해석하면 굉장히 쉽다. 그런데 이 상황과 정황이 많은 오해를 불러온다. 이 오해 중 하나가 소설의 핵심인데 이것을 좋아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많은 호불호가 갈라지는 것 같다. 여기에 제목에서 암시했듯이 올리비아를 다중인격장애로 다루면서 의심과 의문을 더욱 심화시킨다. 과연 누가 연쇄살인범인가와 다음 희생자는 누굴까 하고.

준은 사실 케임브리지 대학생 중 세 번째 희생자다. 그녀 앞에 아만다와 일라이저가 있다. 이 두 소녀는 형사 스티븐에 의해 연쇄살인사건으로 파악되었지만 두 피해자의 사체 차이가 이를 부인하게 만들었다. 이후 발생한 세 번째 희생자는 연쇄살인임을 알려준다. 여기에 프로파일링을 위해 스티븐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매튜가 등장한다. 그는 사건 현장과 기록들로 범인상을 추리하고, 준 옆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된 올리비아를 면담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재미 대부분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둘의 심리전과 숨겨진 과거와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그리고 펼쳐지는 반전은 너무 낯익은 구조라 신선함이 떨어진다. 하지만 과거와 진실이 반전으로 풀리면서 몰입도를 높여간다.

많은 스릴러를 읽으면서 항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생기고 있다. 이 이야기 뒤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의심한다. 이 의심이 때로는 범인을 정확하게 추리하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순한 의심이나 막연한 추리일 뿐이다. 또 여기서 취향이 나타난다. 내가 범인을 맞추었는가가 아니라 작가가 쓴 트릭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에서 말이다. 이 소설도 그런 취향을 탄다. 사실 작가들은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책 속에서 많은 트릭을 부린다. 정당한 게임을 펼치는 작가도 있지만 역으로 끼워 맞춰야만 그렇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작품도 있다. 여기까지는 뛰어난 작가들이다. 그렇지 않은 작가는 트릭이 너무 쉽게 읽는 중에 밝혀진다. 그럼 이 작품은 어떨까? 쉽게 밝혀지는 작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긴장감을 이어가면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단서들을 조합할 정도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초반부터 몰입하지 못한 것은 대학생들의 과거를 재현하는 장면들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이 더 강한 흡입력을 가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과거는 핵심적인 것으로 상황을 연결시켜야 하는데 이런 유기적인 결합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해석이 나의 오만일 수도 있다. 먼저 본 서평의 영향일 수도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읽으면서 더 깊게 몰입하지 못한 것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들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깊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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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숲, 길을 묻다 네이버 캐스트 철학의 숲
박일호 외 지음 / 풀빛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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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나 말하고 지나가자.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저자들도 말했듯이 서양철학을 의미한다. 가끔 우리는 철학하면 당연히 서양철학을 연상한다. 동양철학, 한국철학 등으로 구분할 때는 그것을 다룰 때뿐이다. 물론 서양철학사란 제목으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대 철학자란 말을 할 때는 당연히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을 생각한다. 또 근대 혹은 현대 철학이란 말을 쓸 때도 서양 철학자들의 이론을 지칭한다. 그러니 철학이란 큰 범주 속에 서양철학은 동등하고, 동양철학이나 한국철학은 아래엔 놓인 것처럼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이 책 제목에서도 그런 인상을 주기에 서두에 푸념을 조금 늘어놓았다.

모두 22명의 서양 철학자가 등장한다. 고대의 탈레스로부터 근대의 데이비드 흄까지다. 시대도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었다. 고대철학자가 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고, 중세의 시작은 아우구스티누스다. 중세의 끝은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한 윌리엄 오컴이고, 근대의 시작은 예상 외로 마키아벨리다. 그가 예상 외였던 것은 한 번도 철학자로 생각한 적이 없고, 유명한 정치공학 저서 <군주론>의 저자 그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대표 저서가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불러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시대를 대표할만한 철학자였나 하는 부분에서는 이 책을 읽은 지금도 의문이다. 아니면 나의 공부가 너무 부족하거나.

예전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자연 철학자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번 책보다 굉장히 깊이 들어갔는데 상당히 어려웠다. 당연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당시 그 저자가 왜 그렇게 그들을 중시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학교 암기 교육에 충실했던 탓인지 그 기억들은 점점 사그라지고 단순히 외웠던 단어와 정의만 머릿속에 남았다. 그들이 주장하고자 했던 핵심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간결하지만 그들이 왜 중요한지 짚어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나마 아는 척을 했다. 아는 척만 한 것은 이 책이 읽기는 힘들지 않지만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철학자들이 각각 한 명의 서양 철학자들 기술하는 방식이다. 당연시 시간 순이다. 재미난 점은 시대 순으로 나눈 구성 속에서 철학자들의 수가 모두 틀린 것이다. 고대 철학자를 열 명이나 다루고, 중세는 겨우 네 명만 다루고 있다. 읽다보면 가끔 만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대 철학자들의 물음이 다시 중세와 근대에 반복되어 혹은 조금 변화가 생겨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을 때는 이런 점을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고대 철학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선행하지 않았겠지만 만약 더 깊이 이해하고 공부했다면 이 간략한 책에서도 상당한 지식을 축적하고 나름의 철학을 세우는데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제목에서도 나온다. ‘길을 묻다’ 서양 철학사를 다루면서 저자들은 답을 말하기보다 각 철학자들의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놓는다. 물론 위대한 철학자들이 제시한 핵심 답변도 나온다. 하지만 더 중점을 둔 것은 인물 중심의 철학사를 다루면서 길은 묻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각 철학자들이 내놓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흡수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철학사에서도 나오듯이 스승의 철학에 반론을 제기하여 새로운 철학을 주장한 경우도 허다하다. 혹은 그것은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가 심화시킨 경우도 많다. 이런 과정과 인물을 이 책은 간략하게 다룬다. 저자들이 철학 입문자를 배려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철학 용어와 정의가 많아지고 의미를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에 도달하면 어려워진다. 이것은 예전에 <소피의 세계>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좀더 체계적으로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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