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공화국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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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 향락, 패거리의 요새 밀실접대 65년의 기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한국 사회문화사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을 아직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었고, 그의 저작들에 대해 신뢰를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현실을 낮 뜨겁게 만났는데 이제는 어둠 속 현실을 마주한다. 그 공간이 바로 룸살롱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한 것 이상의 기록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 중심에는 기존에 출간 출판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나열하면서 하나로 꿴 강준만이란 저자가 있다.

여덟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방 이후 요정에서 현재의 룸살롱까지 연대순으로 이야기한다. 현재의 룸살롱 이전에는 요정이 있었다. 요정하니까 왠지 근대의 풍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전에 읽었지만 무심코 지나갔거나 잘 몰랐던 것 중 하나가 있다. 해방 후 임정의 독립투사들 중 일부가 요정에서 흥청망청 놀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마주하면서 왜 그들이 정권을 획득하는데 실패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다시 4.19 혁명 후 그 주역들인 대학생들이 요정에 출입했다는 기록과 2000년 5월 5.18 룸살롱 사건과 이어진다. 이런 기록들은 학창시절 이래 오랫동안 품고 있던 왜 그렇게 많은 대학생 투사들이 지금은 사라지고 권력과 금력의 앞잡이가 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조그마한 해답이 된다. 

요정을 거쳐 룸살롱으로 오게 된 시대적 흐름과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기게 된 시기와 그 시대의 풍경도 같이 보여준다. 이 하나의 흐름은 정권의 변화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아마도 많은 권력자들이 영웅호색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이것을 옹호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들이 하면 문제없고 다른 사람이 하면 문제가 된다는 그들의 생각이 법이나 규제나 지시로 나타난다. 국회의원들이 술 먹고 실수한 사건을 주사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거나 룸살롱에서 형량이 거래되는 현실이 언론을 통해 그대로 보도된다. 이 보도에 대한 법원의 협박은 신문사를 움츠려들게 만들 정도다. 왜 아니겠는가!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그들인데. 

수많은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납품업자들이 엄청난 금액의 접대비를 지출하는 공간이 바로 룸살롱이다. 예전에 친구가 말하길 너무 그런 곳만 다니다보니 새롭고 신선한 곳을 찾게 된다고 할 정도로 그들은 익숙하다. 접대를 해야 하는 쪽에서 좋아하지도 않는데 같이 술을 마시고 2차까지 보내줘야 하는 상황은 분명 고역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부러움도 있었다. 그런데 한두 번 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알게 된다. 뭐 룸살롱까지 가지 않는다 하여도 이런 접대의 어려움은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친구들하고 편하게 소주 한 잔 하는 것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하겠는가. 접대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그들의 얼굴은 짜증과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하다. 

저자가 룸살롱 공화국이라고 했는데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문기사나 뉴스를 통해 예전에 접한 소식들인데 잊고 있던 기록들이 하나의 주제로 꿰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논문이나 신문기사나 인터넷 글들을 목적에 맞춰 문장으로 만들고 이것을 이어서 자신의 주장처럼 표현하는 그의 특징이 이번에도 잘 드러난다. 어느 순간에는 그의 주장은 어떤 것인가 찾게 될 정도로 인용된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런 발췌된 인용문들이 현상을 설명하고, 객관성이라는 모양을 띄면서 그의 주장을 말해준다. 재미난 구성이자 서술방식이다. 

많은 글 중에서 집창촌과 관련된 성매매특별법이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집창촌을 반대한다. 문제는 이곳이 아니라 여기를 단속하고 없애면서 음성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피스텔이나 기타 유사 성행위 업체로 숨어들었다. 그보다 더 문제는 전시행정으로 실제 매춘이 일어나는 곳은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수많은 데이트 사이트나 풀살롱 사이트를 제외하더라도 길가에서 보이는 안마시술소만 가도 적발하는 것이 너무 쉽다. 그리고 적발 지역도 강남에 비교해 저렴했던 곳들이다. 뭐 대중에게 너무 알려진 대표지역이란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 강남의 유명한 지역들은 전시행정만을 위해 한두 곳 적발하는 정도다. 더욱 웃긴 것은 이 적발된 사실을 업체 홍보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고급 룸살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곳들은 높으신 분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함부로 경찰이 다가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대형교회가 주말이면 도로를 주차장으로 사용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텐프로의 정확한 의미다. 이전에는 아주 특별한 여자들이 나오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호스티스의 화대 중 10%만 마담이 가져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주가와 연동하여 여의도 룸살롱 영업이 변한다는 것이다. 정말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대한민국 성인남자 중 룸살롱을 싫어할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비용이 문제일 뿐이다. 이런 비용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접대다. 현찰로 받는 것이 아니니 접대 받는 입장에서 부담이 덜하다. 이것과 비슷한 것이 바로 골프다. 골프만 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골프 후 룸살롱까지 같이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말 한국은 룸살롱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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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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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의 새로운 주인공인 요시키 형사 시리즈 열한 번째 작품이다. 출간된 년도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에 올라갔는데 주간 문예춘추 선정 ‘20세기 미스터리 30’에 선정되었다. 이런 수상 경력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역시 시마다 소지란 작가 이름이다. 물론 최근에 나온 작품들 중 몇 편이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첫 작품인 <점성술 살인사건>의 영향력 때문이 졸작이기 때문은 아니다. 기대치가 높아진 상태에서 읽다보니 이런 현상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단순한 본격이 아니다. 사회파적 문제의식을 녹여낸 작품이다. 그것도 한국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야기는 쇼와 32년 즉 서기 1957년 1월 홋카이도 삿쇼 선 열차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야행열차 속에서 한 피에로가 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히 춤을 춘다. 그가 사라진 후 총소리가 들린다. 늦은 밤 혹시 꿈이 아닌가 생각했던 관찰자는 이 소리에 잠이 달아난다. 그 혼자만 이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다. 이 총소리를 듣고 피에로를 찾지만 어디에도 없다. 변소를 열려고 하지만 잠겨있다. 차장을 통해 문을 연다. 그런데 그 속에 방금 전에 춤을 추던 피에로 시체가 촛불 속에 쓰러져 있다. 조금 관찰하다. 자살한 듯하다. 머리에 총상이 있다.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 특이한 광경을 사람들이 더 보려고 하고, 촛불을 꺼지 않았다는 지적에 다시 문을 연다. 놀랍게도 피에로 시체가 사라졌다. 그 좁은 공간에서 다 큰 어른이 틈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기묘한 사건이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현재다. 하모니카를 멋지게 부는 부랑자 노인이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쿄의 상점가에서 가게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인다. 그 전 상황을 보면 여주인이 소비세 12엔을 받기 위해 쫓아가다가 벌어진 살인사건이다. 노인의 행동을 보면 치매에 걸린 듯하다. 너무나도 범인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분명한 살인사건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이 점을 주시한 요시카 형사는 단지 소비세 12엔 때문에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고 느낀다. 정체도 분명하지 않은 노인이고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언론은 한창 소비세 논쟁이 있던 상황에서 좋은 기사거리를 찾았다. 이 기사를 본 교도소 교관 덕분에 노인의 정체가 밝혀진다. 유아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26년간 비참한 복역 생활을 한 나메카와 이쿠오다. 

노인의 정체도 밝혀졌고, 증인도 많은 사건이니 이제 끝내도 될 듯하다. 그런데 요시키는 뒤끝이 개운하지 않다. 교도소를 찾아가고, 나메카와와 친했던 수감자 하타노를 만난다. 그를 통해 들은 말은 노인이 유아유괴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열약한 교도소 환경과 나메카와가 어떤 괴롭힘과 고통을 당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노인이 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소설이 책 처음에 나온 기묘한 피에로 열차사건이다. 몇 편 더 있는데 책 중간중간 나온다. 어떤 소설은 섬뜩하고, 어떤 작품은 환상소설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다. 사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 소설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과거로 가면서 놀라운 비밀을 밝혀내고, 가슴 아프고 일본이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사가 하나씩 드러난다.

본격의 대가답게 작가는 열차와 관련된 트릭을 아주 재미있게 심어놓았다.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점성술 살인사건>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은 단순히 트릭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에도 눈길을 많이 주었다. 나메카와의 누명을 역설한 하타노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누명이란 무리한 질서 유지 혹은 치안 유지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범인이 나오지 않으면 주민에게 사회 불안이 싹트고 나아가 경찰에 대한 불신이 치솟는다. (중략) 세상에 알려진 흉악한 사건에는 반드시 결말을 지어둘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정의라는 명목의 불합리한 폭력입니다.”(152쪽) 이 말을 일본에만 한정시키기에는 너무 우리의 현실이 뻔하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이런 시선 돌리기 혹은 감추기 자주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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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메뉴판 - 레시피의 비밀을 담은 서울 레스토랑 가이드
김필송.김한송 지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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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탐방을 요즘은 잘 하지 않는다. 맛집이라고 매체나 블로그에 나온 집 중에 실제로 괜찮은 집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작가의 말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집 중에 많은 집들이 돈을 주고 홍보용으로 촬영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다니던 식당 근처에 가면 방송 출연하지 않은 집이 오히려 희귀할 정도다. 얼마나 많으면 사람들이 방송 출연하지 않은 집이 맛있다는 말까지 하겠는가. 그렇지만 맛집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좀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레시피의 비밀을 담은 서울 레스토랑 가이드’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두 다섯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식, 한식, 일식, 중식, 디저트 등이다. 한식을 제외한 다른 메뉴들은 사실 좋아하는 음식들이 아니거나 나의 예산 범위를 초과한 곳이 많다. 이중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일식 메뉴 중 우동이나 돈가스 종류고, 중식의 자장면이나 볶음밥 종류다. 이런 메뉴는 늘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자주 먹는 것이다. 하지만 맛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떨까? 누구나 맛있다는 집을 찾기는 사실 쉽지 않다. 주로 움직이는 동선 상에 한 중국집이 있기에 블로그를 찾아보니 그곳을 찾은 블로거 대부분이 책 속 음식 외 다른 메뉴를 더 추천하고 있었다. 맛이란 것이 주관적임을 보여주는 일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많은 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식이다. 갈치조림에서 시작하여 설렁탕으로 끝나는데 실제 가본 집도 몇 곳 있다. 즐겨가는 식당도 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과연 내가 가본 곳 중 몇 곳이나 나올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몇 곳 없었다. 뭐 이것은 음식에 대한 취향과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전부터 그 유명한 이름을 들었지만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혹은 홀로 가기가 그래서 가지 않은 곳도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곳이 역시 낯설다. 이 낯설음이 기분 좋았다. 가보지 못한 맛집이 이렇게 많다니 하고 말이다. 자주 가는 곳이 나왔을 때는 반가웠다. 나의 입맛이 잘못된 것은 아니구나 하고. 

궁극의 메뉴판이라고 하지만 과장된 표현이다. 일본만화에서 궁극과 최고가 서로 우열을 다투지만 그 결과를 보면 누가 낫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런 표현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 기운이 빠지니 이 책에 나오는 맛집들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적으로 맛집 소개가 아니라 잘 정리된 메뉴와 각 메뉴별 식당과 간략한 레시피가 아닐까 생각한다. 식당 정보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정보가 최근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 예약을 하려고 하면 다르다. 연중 무휴라기에 예약 전화를 하면 일요일은 쉰다고 하고, 밑에 나온 가격 중 부정확 곳이 곳곳에 보인다. 저렴한 가격에 가볍게 먹으려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맛있나 하고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다르겠지만.

맛집에 대한 정보지이다 보니 조금 건조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런 구성은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만약 외식을 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어디가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정말 선택한 곳이 맛있는지 확신을 가지려면 좀더 노력해야 한다. 블로그나 인터넷 정보를 더 찾아서 실제 다녀온 사람의 경험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개인의 음식에 대한 취향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내 핸드폰에는 이 책에 나오는 몇 집 정보가 저장되어 있고, 수시로 찾아본다. 아직 맛집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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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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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역자의 말처럼 어려운 문장은 없다. 하지만 번역 탓인지 아니면 깊게 몰입을 못한 탓인지 왠지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가지 못했다. 마지막 <코네티컷>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감탄했다. 너무나도 분명하고 정확한 문장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아마도 나의 집중력에 조금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몇 편은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것은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외출>, <머킨>, <코네티컷> 등이다.

<아술>은 책날개의 작가 소개에 <아줄>로 나와 있다. 어느 것이 더 정확한 발음인지는 모르겠다. 하나로 일치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이 흥미로웠던 것은 아술보다 주변 사람 특히 화자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미묘한 감정들이 잘 표현되었고,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지면서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해력 부족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아쉽게도 여기서 여운은 더 자라지 못했다.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한 여대생의 감정과 이성의 충돌이 잘 표현되었다. 쌓아온 관계와 이성이 시간 흐른 뒤 흐려지고, 옛 감정이 추억과 만나게 되면서 만들어내는 환상이 일품이다. 현실의 높은 벽은 결코 감정만으로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없다. 그녀의 선택이 다시 현실임을 보여줄 때 공감한다. 추억이란 감정은 추억일 때 아쉬울 때 아름다운 것임을. <외출>은 아마시라는 낯선 공동체의 아이들과 만난 한 소년의 추억담이다. 이 추억에 나오는 과거는 우리가 자신의 틀이나 게임 속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왜곡하는지 보여준다. 자본과 집단이란 괴물이 헛소문과 연결하여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 보여줄 때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머킨>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머킨은 공공장소에서 레즈비언의 남자친구 역할을 하는 남자를 말한다. 이 소설 속 화자 바로 그런 남자다. 이 남자의 외형 상 여자 친구는 그보다 열여섯이나 나이가 많다. 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남자친구가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 흐름과 벙어리 호세의 낭송시의 의미가 묘하게 연결된다. 이 미묘함이 살짝 긴장과 기대를 품게 만들면서 여운을 남긴다. <코네티컷>은 개인적으로 앞부분의 문장이 너무 명확했다. 읽을 당시 집중력이 좋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고 유쾌하지 않다. 사랑하는 엄마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십대에 아는 순간 말이다. 혼자 이런 비밀을 알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이었을지 느낄 수 있다.

다른 작품들도 나쁘지 않다. <구멍>은 조금은 섬뜩하고, 그 사건의 진실이 모호하게 다가왔다. <코요테>는 재능이 한 작품으로 바닥난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버지의 몰락이 너무 가슴 아프다. 왜 그는 한 작품에 집중하지 못했을까 하고. <강가의 개>는 형에 대한 추억이 감정과 뒤섞이면서 한 소년의 성장을 보게 되지만 조금은 낯설다. <폭풍>은 한 가족의 조그마한 균열과 누나의 삶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피부>는 너무 짧은 분량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모두 열 편의 단편이 나오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를 다루고, 추억 속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는 것이다. 그 추억이 결코 모두 즐겁고 유쾌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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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5-24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런 서평 잘 읽었습니다.
 
<보이지 않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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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었다. 한때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다. 양장으로 재간된 책들을 열심히 읽었는데 몇 권은 취향에 맞지 않고,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같으면 큰 기대를 가지지 않을 텐데 폴 오스터는 다르다. 그의 신간이 나왔다고 하면 괜히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살까 말까 고민한다. 즉시 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결국 산다. 역자도 말했듯이 그의 작품은 기승전결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있다고 해도 불친절하다. 그래서 가끔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1967년 봄에 이야기는 시작한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 문학도인 애덤 워커는 한 파티에서 기이한 남자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루돌프 보른이다. 보른이란 이름은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베르트랑 드 보른과 같다. 짧게 베르트랑 드 보른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책을 끝까지 읽은 지금 처음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루돌프와 그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옛날의 보른은 헨리 왕자를 사주해 부왕 헨리2세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한 적이 있다. 부자 사이를 이간질한 것이다. 사주와 이간질이란 두 행위를 놓고 보면 분명 뒤에 나올 워커의 삶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은 너무 무리한 연결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분명한 결말을 가진 소설은 아니다. 어쩌면 있는데 나의 능력 부족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워커가 보른을 만나고 그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것까지는 무난한 삶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한 흑인 소년 강도와의 만남이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기 끝날 때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결국 예상한대로 다음 장에서는 시간대가 현재로 바뀌고 다른 화자가 등장하여 워커의 이야기를 분석하고 정리한다. 새로운 화자는 워커의 동기이고 현재 유명한 작가다. 근 40년 만에 온 친구의 편지가 그에게 새로운 관심과 일거리를 던져준 것이다.

봄 이야기가 보른과의 관계를 통해 그가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면 여름 이야기는 환상인지 현실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보른 때문에 활력을 잃은 그가 취한 삶의 방식과 보른의 동거녀 마고를 통해 고취된 성욕은 다른 배출구를 찾는다. 그것은 과거와 가족이다. 특히 죽은 동생에 대한 추억과 기억은 그의 누나와 연결되면서 전혀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풀려간다. 그가 영화관에서 본 카를 드레위에르 감독의 1955년 영화 <말씀>의 마지막 장면은 보른과 죽은 동생에서 비롯한 아픔과 상처를 씻어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 다른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 기적이 그의 바람을 가장 잘 나타내준 것은 분명하다. 

여름의 장에 들어가면서 워커의 그 시절 이후 삶에 대한 간략한 정보들이 나온다. 이 정보들은 다시 과거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그의 삶은 1957년에 모두 집중되었고, 거기서 모든 변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가을의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못한다. 암에 걸렸고, 그가 남긴 여름의 장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화자가 그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죽었다. 그의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만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의 서사 구조를 가지고 이어지던 이야기 끊어진다. 그리고 그의 기록과 당사자의 기억은 차이가 있다. 그럼 단순한 환상인지 아니면 관계자의 잊고 싶은 기억인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작가가 미완의 이야기를 완성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작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가 여운을 남기면서 마무리한다. 이 낯선 구조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이 때문에 재미있게 읽지만 전체를 하나로 이으려는 노력이 쉽지 않다. 그가 지닌 매력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한다. 아쉽다. 하지만 머릿속은 멈추지 않고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계속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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