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제작 <간과 쓸개>는 2009 황순원 문학상에서 먼저 읽었다. 그 후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서 다시 만났다. 솔직히 한 번 읽었는데 예전 서평을 찾아보니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 문구가 보인다. 아마 김숨이란 작가를 처음 만난 것도 <간과 쓸개>였을 것이다. 이 단편을 읽기 전 다른 사람들이 그냥 일상을 그려내는 작가는 아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선입견처럼 작용했기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이후 나오는 단편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모일, 저녁>만 해도 일상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식 때문에 내려왔다가 집에 다니러 온 화자의 시선을 통해 한 가족의 저녁 풍경을 그려낸다. 어떻게 보면 비루하지만 일상의 대화가 오고 간다. 단지 아버지가 뱀장어를 잡는 일을 하는 것을 통해 살짝 뒤틀린 현실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는 버스 정류장 간이 매표소와 동물원을 배경으로 현실 그 너머의 풍경을 그려낸다. 마지막에 현실에서 그녀가 선택한 코끼리처럼 제자리걸음 걷기는 최후의 희망이자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북쪽 방>은 한 전직 지구과학 교사 곽노의 퇴락한 삶을 보여준다. 북쪽 방은 아내가 그를 유폐시킨 공간이자 안식처다. 그가 가장 황홀했던 순간이 퇴적암의 단면과 마주하던 그 순간이다. 곽노의 삶이 유기질보다 무기질에 더 흥미를 가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자신의 몸무게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미지와 단상들이 교차한다. <흑문조>는 단층 양옥을 장만한 아내의 시선으로 삶의 한 면을 그려낸다. 이 부부의 삶은 너무 건조하다. 보일러 배관 공사 현장이 이 부부의 현재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어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다시 덮은 그 모습 말이다. 

<룸미러>는 참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난다. 뒤끝이 찝찝하다. 어떻게 보면 종말의 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 같고, 아이들이 깨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그 어떤 이미지도 연상되지 않는다. <육의 시간>은 예상한 결말이지만 그 진행이 너무 메말라 있다.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여자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이 기묘한 동거는 기이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변하지 않는 육체가 만들어낸 균열이 조금씩 자리를 잡을 때 시간마저 정체된 듯하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은 정말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온다. 남편이 늘 말하는 그들이 간 곳이 광화문 어디인 것 같은데 결코 도달하지 못하거나 되돌아오지 못할 공간처럼 보인다. 평범해 보이는 화자의 시선이 닿는 곳과 사람들이 결코 범상하지 않다. 일상이 비일상으로 변하는 것은 이웃들에 의해서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럭키슈퍼>는 동네 구멍가게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그 시절 그 공간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밑바닥부터 보여준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위조밖에 없다. 그것이 성공할지는 둘째 문제고 말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많이 곤혹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문장들이 불쑥 나오면서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나 가족관계는 보이지 않고 병들거나 지리멸멸하다. <흑문조>의 부부가 늙으면 <북쪽 방> 노부부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되고, <룸미러> 속 아내의 불안이 <내 비밀스런 이웃들>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하다. 어쩌면 이런 연결이 억지일지 모른다. 현실을 뒤흔들고 뛰어넘은 장면들과 묘사가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김숨이란 작가에 대해 그 어떤 평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잠시 유보하고 다른 소설을 몇 권 더 읽고 판단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 살의 인생 여행
대니 월러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가끔 서른이라는 나이에 사람들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다. 나의 서른이 한참 지난 후 후배 하나가 고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를 부르며 감상에 젖어있었다. 근데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감상이 아닌 모양이다. 영화 <파니핑크>에서 여주인공은 스물아홉 살이라고 외치며 우울해하였다. 그리고 <예스맨>의 작가인 대니 월러스가 서른이 된다는 것을 가지고 아주 긴 이야기를 한다. 그의 글을 보면서 나이 서른이 정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큰 의미없다다. 다만 육체의 노후가 조금 빨라진다는 것을 제외하고.

작가의 전작을 읽지 않을 상태에서 그에 대해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책 속 그의 생활을 보면 일반적인 삶을 살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삶은 매일 출퇴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직 퀴즈쇼 진행자였던 그는 엑스박스로 게임을 하고 집안 정리와 수선을 하면서 보낸다. 그의 생활이 살짝 부럽다. 이런 생활 속에 그의 서른 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그보다 먼저 서른이라는 나이와 어른이 된다는 생각이 먼저 다가온다. 결혼 후 먹는 것도 바뀌고, 다른 아이의 대부모 요청을 받는다. 기존 삶의 방식이 뒤흔들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친한 친구 둘이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이제 그는 어린애 같은 삶에서 변신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 첫 걸음으로 초등학교 친구를 찾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친구 찾기 하면 옛날에 열풍이었던 아이러브스쿨이란 사이트가 먼저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아 가입하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만났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나라만 이런 것이 아닌 모양인데 작가도 한 번 시도해봤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열광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시 사이트에 자신의 정보를 수정하면서 그들과의 연락을 바라는데 쉽지 않다. 이제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료와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그 시절 친구를 찾기 시작한다. 물론 이렇게 친구 찾기에 빠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물건을 거의 버리지 않는 엄마가 그에게 보낸 상자들 속 편지와 추억들 때문이다.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금방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의문이 그렇게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연락처를 찾고, 방문하는 순간 어릴 때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행운일 수도 있지만 사전에 연락을 했기에 그럴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에서 그들이 잠시 멈칫하다가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길에서 스쳐지나갔다면 그냥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만 남았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그가 서른 살을 맞이하기 위해 이런 계획을 세우고 한 명씩 주소록을 갱신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추억여행이고, 또 다르게 보면 성장여행이다. 현재의 삶과 환경을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성장을 거부하는 어린 아이 같다. 다른 곳에서 다른 성장을 겪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어릴 때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에게 변화를 강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만남이 추억과 헤어진 후의 삶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고 해도 말이다. 어느 순간 계획이 목표에서 집착으로 변하고, 어느 순간은 그 목적을 상실할 때도 있지만 그의 주변에는 좋은 아내와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열아홉 시간을 날아가거나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으로 가기도 한다. 이런 여행을 보면서 시간과 금전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 듯한 그에게 부러움을 먼저 느낀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마음먹은 대로 옮기는 실천력이다. 시간제한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인터넷과 과거를 뒤져 기필코 찾으려는 노력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 그는 서른이라는 나이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이런 친구 찾기를 통해 한 가지 배운다. 지루하다고 했던 것이나 주변에 늘 그냥 있는 것들에게서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일상이 의미를 가지고 가족, 건강, 친구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소중한 옛 친구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가 인생 여행으로 변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나 자신이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금방 주변에 나만큼 읽는 직장 동료가 보였다. 그후 백수로 살면서 그때보다 몇 배로 읽으면서 이제는! 하고 생각했다. 이런 조그마한 자부심이 깨지는 데는 불과 몇 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북카페를 통해 나보다 더 고수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책을 한 권씩 모으는 습관이 심해진 것도 그때인데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보다 많은 책을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란 착각이 깨어진 것도 바로 그때다. 또 나와는 달리 잘 정리된 책장과 책들을 보면서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책중독자의 고백에서 시작하여 치유하기 까지 모두 열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나보다 훨씬 더 중증인데 공감하는 부분을 처음부터 발견했다. 그것은 똑같은 책을 사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말이다. 가끔 산 것을 잊고 다시 산 책이 발견될 때면 좁은 집 공간을 생각하며 왜 샀지 생각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인 책 더미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이전에 읽은 책을 찾으려고 몇 시간을 뒤지다 포기하고 직장동료에게 빌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책 더미가 무너져 정리하다 그 책을 발견하고 황당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책중독자 테스트를 해보면 상당히 중증으로 나온다. 사실이다. 집에 쌓여 있는 책 더미들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이 수십 수백 권 있지만 새로 나오면 또 산다. 서점에서 받은 마일리지가 쌓여가면서 또 한 번씩 정리하며 산다. 이벤트가 벌어지면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산다. 반값행사를 하기에 마일리지 소진을 위해 목록을 보았는데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책들 중 가지고 있는 책이 더 많다. 혹시 또 같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주문한다. 읽는 것은 나중이고 할인과 이벤트에 그냥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전혀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이유로 산다. 이유는 ‘언젠가 읽겠지’다. 

책중독 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희귀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책 상태가 좋은 것을 선호하지만 초판본이나 희귀본을 특별히 수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덜하지만 이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장소는 꼭 서점이었고, 새로운 동네에 가면 헌책방을 둘러보았다. 싸게 나온 책 중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있다면 득템했다는 기쁨에 젖었고, 들고 간 가방만으로 부족해서 끈으로 묶어 들고 오기도 한다. 서점의 할인코너나 정액코너는 잠시 고민에 빠지게 하지만 지갑을 열게 한다. 언젠가 볼 것이란 이유로 말이다. 좁아지는 공간과 점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책구입을 생각하면 가끔은 희귀본으로 한정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내 손에서 책이 떨어진 적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나 화장실에 갈 때면 늘 손에 한 권의 책이 있다. 혹시 들고 다니던 책을 다 읽게 되면 불안해하고 혹시 그때 누군가의 집에 있다면 그 책장의 책을 뽑아서 읽는다. 두 권을 들고 다니면서 읽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책의 무게와 새로운 책을 사 넣어야 하는 공간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읽을 순서를 정해놓고 있기에 읽던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중이라면 다르지만. 언젠가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깨어나 심심해서 끄집어낸 책에 빠져 정신없이 읽은 적도 있다. 당연히 빌려서 그 날이었나 그 다음날 다 읽었다. 다른 친구에게 추천했는데 재미없었다고 한다. 

이전에 사진으로 지하실 공간을 책으로 가득 채운 사람들의 서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가슴 속에 그런 공간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런 공간을 좋아하는 짝을 만나기도 힘들고, 그런 공간을 만들만큼의 재력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책들을 보고 너무 많다고 버리라고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요즘 e-북이 많이 나오는데 공간을 위해서 갈아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다. 예전에 업무 시간 중 시간이 남아서 다운 받아보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손에 들고 읽는 맛이 아직은 좋다. 서점을 가면 수없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다행인 것은 역시 돈 부족이다. 공간 부족이다. 이렇게 나의 책중독 이야기는 간략하게 마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김윤희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만 가지고 내용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작가 우에무라 나오미란 이름도 낯설다.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한 책’이란 문구에서 왠지 모르게 자기계발서 분위기가 난다. 해제를 쓴 고도원이란 이름이 보이고, 작가에 대한 이력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이다. 12년만에 복간되었다는 소식과 북극권 12,000Km를 1년 2개월간 개썰매로 홀로 횡단하면서 남긴 일기라는 말에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내의 고독하고 힘든 기록에 빠져들었다.

제목에 나오는 안나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나오미가 이누이트 사람들에게 구입한 암캐다. 그 긴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였고, 무엇보다 선두에서 달린 암컷이다. 안나는 이누이트 말로 여자를 의미한다. 이 이름을 붙였을 때만 해도 안나는 작가에게 그렇게 큰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길고 얼어붙고 녹아내리고 아무도 없는 곳을 달릴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존재가 바로 안나다. 오죽했으면 마지막 목적지 코츠뷰가 보였을 때 그런 말을 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에 안나와 함께 찍은 사진은 따뜻하고 신뢰 가득한 미소로 그것을 직접 보여준다. 띠지에 나온 바로 그 사진이다.

1974년 12월 20일 야콥스하운에서 시작한 일정은 1976년 5월 8일 코츠뷰에 도착하면서 끝난다. 무려 12,000Km다. 그냥 평범한 날씨에 평지를 다녀도 쉽지 않은 거리다. 그런데 북극의 추위와 눈과 고독과 싸우면서 가야 한다. 그것도 현대의 탈 것이 아닌 개썰매를 끌고 말이다. 그 시대는 지금처럼 GPS도 없었다. 지도와 나침반으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개가 끌다보니 그들이 지치거나 도망을 가면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사냥을 해야 하거나 운 좋게 혹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만약 도착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힘겨운 여정을 그는 시작했다. 

1년 2개월의 긴 여정이다. 그 사이에 그의 생일이 두 번이나 지나갔다. 혼자와 개썰매를 이용했다는 것이 최초인데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그의 곁에는 개들이 있었고, 그가 지나온 곳에서는 친절한 이누이트 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실이 그의 단독 횡단을 폄하할 수는 없다. 읽는 내내 그가 느낀 불안과 공포와 행복과 열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정도의 위기도 몇 번이나 지났다. 홀로 울기도 하고, 되돌아갈까 고민도 쉴 새 없이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 불안과 두려움은 아침과 함께 사라졌다.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앞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이전에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었다. 비록 그 이후 다른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중 실종되었지만 말이다.

문장은 사실 소박하다. 사실의 나열로 이루어졌다. 일기와 날씨와 그날 한 행동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힌다. 전혀 화려한 수식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솔직한 마음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간결한 문장으로 그것을 사실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빠졌을 때, 홀로 울 때, 돌아가고 싶을 때, 불안해 할 때, 공포를 느꼈을 때, 이누이트 족 등에게서 고마움을 느꼈을 때, 약간 긴장이 사라졌을 때, 개들을 심하게 다룰 때, 차마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못할 때, 자신이 느끼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개를 혹사했다고 느낄 때를 그는 그대로 표현했다. 이런 감정들이 단순함을 넘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그가 북극권을 횡단하면서 만난 사람은 적지 않다. 사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의지와 용기와 열정과 도전 정신이다. 이누이트 족들마저 고개를 가로 흔드는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아무도 없고 죽음의 공포가 끝없이 다가오는 일정을 보낸 그가 따뜻하고 편안한 곳의 유혹을 견뎌낸 것도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쓰러져도 자신을 끝없이 일어세우는 그를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북극의 풍경을 계속 재생해본다. 힘겨워 쓰러지려고 할 때 그와 개들에게 힘을 준 불빛도 스쳐지나간다. 몇몇 장면에서 현대와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는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다. 평생 내가 도전하지 못할 일이지만 가슴 한 곳은 읽는 내내 그와 함께 달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써니람다 2011-07-1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러운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책이란 것만으로 선택했다. 이전에 읽은 책이라고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어 산책>이 전부다. 이 책도 이번 책처럼 상당히 두툼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덕분에 그의 책은 대부분 구매해놓았다) 그때의 경험이 강렬했기에 이 책의 두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책은 두께에서 조금 얇을지 모르지만 한 쪽의 분량은 더 많다. 이런 구성은 요즘 같은 나의 집중력을 생각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빠르게 한 쪽 한 쪽 넘기는 즐거움이 조금 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박식함과 위트 있고 유머스러운 글에 푹 빠져 있었다. 

원제는 다. 아마도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란 책의 영향으로 원제와 다른 제목이 붙은 모양이다. 이것은 역자도 지적했듯이 ‘발칙한’이란 단어가 들어간 일련의 책 제목과 비슷한 선택이다. 물론 집에 관해 저자가 서술한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제목이 다른 책의 아류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뭐 저자가 하나의 시리즈로 계속 이런 책을 낸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사생활. 사실 이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 속 서민 생활을 보아도 사생활이란 것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이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하다. 조그마한 집에서 가족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현실에서 사생활이란 것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점점 사생활에 대한 요구가 거세어지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방을 하나씩 가지면서 이런 사생활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가족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너무 심하게 되면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게 되지만.

이 책은 집과 사생활의 짧은 역사란 원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시작은 집이다. 집이란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각각 차지하는 공간을 하나씩 풀어내는 방식이다. 다루고 있는 공간을 보면 홀, 부엌,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두꺼비집, 거실, 식당, 지하실, 복도, 집무실, 정원, 보라색 방, 계단, 침실, 화장실, 육아실, 다락 등이다. 단순히 목차만 보면 이런 공간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공간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왜 이런 공간이 생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와 관련된 인물과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하고 말이다. 

저자가 이런 탐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의 역사가 대부분 거시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미시사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한 조그마한 반발이다. 뭐 그 시작은 집에서 흔히 보게 되는 소금병과 후추병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집구석에 앉아서 세계사를 쓰게 되는 셈이 된 것이다. 집안이란 공간 속에서 그 각각의 방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살펴보는데 “욕실은 위생학의 역사, 부엌은 요리의 역사, 침실은 성행위와 죽음과 잠의 역사” 같은 식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아! 하고 감탄했다.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이 역사 속에서 어떤 진화를 거쳐 왔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황하게 하나의 공간을 역사 속에서 위트와 박학다식한 지식의 나열로 설명하는데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다.” 란 말처럼 집과 역사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집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공간이다. 현재 우리들이 아파트에 열광하고 그토록 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공간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과학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저자처럼 거창하게 역사를 끌고 와서 하나씩 풀어낼 수 있지만 그냥 고개만 돌려도 우리는 그 변화를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40평대 이상을 선호하고 그렇게 많이 지었는데 이제는 미분양과 매매의 단절이란 현실을 마주한다. 최근에는 베란다 확장이 유행하고 있고, 층간 소음은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정보들이 누적되면 우리 시대의 삶을 역사 속에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불과 150년 사이에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만 본다면 백 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특히 물질적 풍요는 그 어느 시대보다 대단하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절약이 하나의 덕목이자 생활이었는데 어느 순간 소비가 모든 것의 최우선으로 돌아섰다. 양말은 기워 신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구멍이 조금만 나도 버린다. 음식 쓰레기로 낭비되는 것도 엄청나고 편리라는 것을 위해 낭비되는 자원도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보면 우리 시대만 이런 낭비가 있은 것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 역사 속에서 부자들이 보여준 낭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유행이란 것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들이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럭셔리에 열광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낭비하는 것이 이 시대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비록 그 시대는 소수의 부자와 귀족이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계급이나 부와 상관없이 벌어진다는 것이 차이다. 만약 집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