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대로
켄 브루언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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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일더 감독의 기념비적인 고전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1950년 작)를 모티브로 새롭게 각색하여 소설로 만들었다. 예전에 한창 영화를 볼 때 이 영화를 구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비디오를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는데 어느 날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때도 나의 나쁜 버릇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손에 비디오가 들어오자 앞부분만 조금 보다가 그만 둔 것이다. 소장용으로 고이 모셔둔 채로 말이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비디오도 고장이나 볼 수도 없지만.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해설을 보니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고 한다. 당연히 <선셋 대로>와도 다른 부분이 많다. 시대의 변화와 작가의 취향과 특색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은 모양이다. 하지만 기본 골격은 오마주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니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예전에 본 <선셋 대로>의 도입부와 이 소설의 도입부는 상당히 다르다. 그 차이가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많은 변화의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원작 영화에 대한 흐릿한 기억과 비교해도 너무 다르다. 읽으면서 원작 영화보다 예전에 본 영국 누아르 영화가 더 많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미첼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면서 시작한다. 폭행죄로 그는 감옥에 3년 있었다. 그런데 출소하는 날 거리의 부랑자에게 거침없는 폭력을 휘두른다. 시한폭탄 같은 느낌을 준다. 노숙자 조에게 잡지를 한 권 사고 녹턴이 소개한 집으로 들어간다. 멋진 아파트다. 좋은 옷과 책들이 가득하다. 대부업을 하는 녹턴이 빚 대신 압수한 집이다. 불법과 폭력의 냄새가 풀풀 난다. 녹턴은 미첼에게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도와준다. 이 일 때문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난폭하고 끔찍하고 잔인한 암흑가의 삶이 조금씩 드러난다. 

녹턴의 일을 돕는 것이 불법이라면 그가 은퇴한 여배우 릴리언 저택에서 잡역부로 일하게 된 것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평온한 잡역부로 그냥 놓아두기에는 그가 지닌 능력이 범상하지 않다. 그리고 얼마 후 노숙자 조가 폭행을 당해 죽는다. 이 일은 그의 감정을 건드린다. 시에서 해주는 화장 대신 자비를 들여 매장을 하고 시간이 나면 묘지를 방문한다. 조에 대한 그의 감정은 여동생 브라이어니를 제외하면 가장 친밀한 것이다. 가족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미첼의 감정을 풀어내는 창구 역할을 맡는다.

처음에 이 책을 들고 읽기 전만 해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상당히 머리가 복잡하고 감정이 엉망진창으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과 개성 강한 캐릭터 덕분에 쉽게 몰입했고 빠르게 읽었다. 거침없는 표현과 행동은 간결한 문장과 만나 캐릭터를 더 부각시킨다. 잘 기억나지 않는 영화와 비교하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은 날아가고 미첼에게 집중한다.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행동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상황과 분위기가 계속해서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다음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추리소설과 음악들은 낯설음과 반가움을 교차하게 만든다. 제대로 목록이 만들어지고 번역된 것 중 읽지 않는 책이 있다면 읽어 보고 싶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서 강렬함을 품어내는 미첼에 결코 지지 않는 존재가 있다. 그는 바로 릴리언 저택의 집사 조던이다. 처음엔 그냥 조금 깐깐한 보통의 집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미첼 주변에 사건이 발생하면 할수록 이 집사가 보여주는 행동과 능력이 돋보인다.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미첼이 평범해보일 정도다. 그가 있기에 핏빛 오마주가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미첼과 관련된 이야기 속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미첼을 둘러싼 여자들이다. 여동생 브라이어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좀도둑질에 능숙하다. 그의 유일한 혈육이자 약점이다. 그와 정사를 나누는 두 여자 릴리언과 애슬링은 성욕과 사랑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그가 지닌 윤리관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 소설은 이런 관계들을 간결한 문장과 하드보일드 문체로 거침없이 표현하고 보여준다. 잔혹한 핏빛 묘사에 거부감이 없다면 광기와도 같은 그들의 행동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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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
기노시타 한타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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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시리즈 2편으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다. 첫 작품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연극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악몽의 관람차>는 정말 멋진 구성과 재미로 이 작가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읽은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조금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 황당함은 의도적인 것이지만 3류 포르노 소설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어 놀랍다. 이어서 하나씩 나오는 비밀과 설정과 전개는 그 황당함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놀랍고 신기하고 황당한 전개와 용기다. 그런데 이런 황당함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순간 과연 어디까지 갈지 기대하게 된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은 붕괴 직전의 오노다 가족들이 가족여행을 가던 중 탄 차가 사고 나는 순간까지의 이야기고, 다음은 그 후 그 가족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고 장면에서 시작하여 각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오노다 가의 가정교사를 하는 한나에게로 금방 넘어간다. 한나는 혼혈에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학생인 열일곱 살 아유무가 요구한다고 그와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한 번의 관계는 협박 등으로 두 번으로 이어지고 일상으로 변하는 지경까지 도달한다. 이때 아유무가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가 여대생에게 실연을 당했는데 위로차 가족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엥! 그것도 엄마가 주도해서 말이다. 도대체 이 가족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황당함 그 자체다.

아버지 겐키, 어머니 치사토, 누나 유비코, 아유무, 한나까지 다섯 명이 한 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 목적지는 일본에서 제일 긴 미끄럼대가 있는 곳이다. 이 여행을 가는 도중에 이 집안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치사토의 위선적인 행동과 유비코의 놀라운 살의와 함께 돌출되는 행동까지. 모녀 사이에 맺어진 협정을 통해 이 여행의 목적이 드러날 때 황당함은 섬뜩함으로 변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섬뜩함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분위기를 바꾼다. 그가 바로 유비코의 세 번째 남편 구루마다 마사오다. 그의 등장은 유비코에 의해 의도된 것이지만 사고는 그의 과도한 열정에서 비롯한다. 그도 오노다 가족 이상의 폭주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평범이란 단어를 적용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밖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숨겨진 의도가 곳곳에 깔려 있고, 그 의도와 행동은 일반적인 예상을 초월한다. 또 작가의 특기인 무의미하게 등장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설정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단순한 우연처럼 보였던 만남이 의도된 것이고, 그 의도는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억지스러운 설정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폭주가족이란 설정을 하면서 막장 가족의 진수를 보여줄 작정을 한 듯하다. 그리고 실제 이것을 이야기 속에 구현하면서 마지막까지 황당함을 뛰어넘는 웃음을 준다. 

앞부분에 나오는 이 막장 가족의 속내가 불편했다면 뒤에 나오는 폭주 가족애는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다. 무책임하고 난봉꾼인 아버지 겐키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뭉치는 모습은 공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일지도 모르지만 가족 구성원들 가슴 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을 끌어내놓은 것이다. 구루마다와 유비코의 일탈과 폭주하는 관계는 소설 후반부의 재미를 책임지는데 순수한 집착이 폭력으로 발전할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잘 그려낸다. 거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야기는 역시 황당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는 변하지 않는다. 이 폭주가족의 황당한 속내와 행동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사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생략한다. 읽게 되면 이해할 것이다. 악몽 시리즈가 3부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머지 한 편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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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답사기 -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
박희선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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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구도시에서 자랐다. 지금도 기억하는 바닷가의 풍경은 갯벌과 해양생물들이 기어 다니는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나 오후 시간 바닷가에서 놀고는 했다. 그 당시는 그래도 물이 그렇게 많이 오염되기 전이고, 한창 호기심 가득한 시절이라 징그러워하면서도 갯바위에 붙은 고둥들과 이름 모르는 조그만 게와 바닷가 곤충들과 함께 놀았다. 곤충들이 기어 다니면 살짝 놀라고는 했지만 특별한 놀이기구도 없고, 학원도 다니지 않았던 시절이라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생활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점점 바닷가가 지저분해지면서 사라졌다.

사회 초년생일 때 휴가를 받으면 그냥 차를 몰고 무작정 달린 적이 있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동해 방향으로 먼저 달렸고, 집에 갈 때는 남해안을 달렸다. 그 이전에 거제도 사는 친구 덕분에 거제 일주를 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이후 몇 차례 더 거제도를 다녀왔는데 처음의 감흥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당시 풍경을 떠올리며 추천한다. 이 당시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며 그냥 여수를 지나가기만 했다. 여수, 순천하면 갯벌보다 중화학공단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나의 여행 방향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정보의 부재로 인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좋은 곳을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답사기란 부제가 붙어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이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우리 바다’, 다음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운 우리 갯벌’, 마지막이 ‘감동과 이야기가 있는 체험여행지’다. 부록으로 ‘해양생물 찾아보기’가 있는데 짧은 해양생물 등의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준다. 목차를 보고 그 장소를 하나씩 읽었는데 제대로 가본 곳이 한 곳도 없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나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곳들이지만 직접 방문해서 그 풍경을 감상한 적은 정말 한 번도 없다. 나의 대부분 바다 여행이 동해로 향했거나 거제와 남해 일부에 머물렀던 것이다. 좀더 활발하게 움직일 때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아마 점점 게을러지는 나의 생활습관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첫 장에 나오는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바다는 사실 여러 곳이 있다. 해양보호구역이란 설정과 한정된 지면 때문에 나오지 못한 멋진 절경을 가진 바닷가를 이미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이 지역들이 보여준 상징성과 지명도 때문이다. 사실 물의 맑기와 산호초만 따지면 해외의 아름다운 바닷가가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그런 곳에 비해 이곳은 쉽게 갈 수 있고, 또 다른 재미를 준다. 1박2일로 유명해진 대이작도가 그 대표적인 곳이다. 사구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신두리 해안사구는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매혹된다. 노래가사로만 알고 있던 오륙도는 조금 밋밋한 느낌이다. 제주도 서귀포 문섬은 흔히 말하는 바가지 요금 때문에 꺼려했는데 살짝 관심이 생긴다. 올레길 7코스는 며칠 전 제주도가 고향인 분이 추천한 코스라 눈길이 한 번 더 갔다.

사실 갯벌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 몇 년 되지 않는다. 몇 년 전 영종도에 놀러가서 갯벌에서 한두 시간 즐겁게 논 적이 있지만 그냥 그랬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 갯벌이다. 갯벌에 사는 수많은 해양생물도 관심이 가지만 철되면 찾아오는 새들도 반갑다. 갯벌 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전 회사에서 진행한 적이 있는데 사실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체험이라면 조금 힘들지 모르지만 강한 인상을 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낙조와 갯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강화도 마니산에서 경험한 적이 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사실 체험여행지는 아이가 없다면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학습이란 것을 어른이 된 후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습을 빼고 그 여행지에서 역사와 소설과 영화나 드라마의 무대를 만난다면 어떨까? 이곳들 또한 1박2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된 곳이 가끔 실제와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치솟지만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역시 교통편 때문이다. 부지런히 나서면 되겠지만 이넘의 귀차니즘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중에 사람들이 모여 어디 갈까 고민한다면 이곳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년인가 여직원이 1박2일에 나온 여행지를 다녀와서 너무 멀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남편이 차를 몰고 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린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시간에 좇기고 있는지 알게 된다. 속도와 시간은 사실 나도 크게 중독된 것이다. 그래서 가끔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가 가장 행복하다. 계속 이어지면 시간 낭비가 아까워 죽을 정도지만. 이 바다 여행이 잊고 있던 자연과 생태를 일깨워주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혜택을 되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여행 선택지를 더 넓혀주고, 바다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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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마이 로마이 1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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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삶은 목욕이 아닌 샤워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히 욕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공간이 비좁다는 이유로 철거하고 샤워 꼭지만 달아둔다. 이렇게 된 데는 점점 높아지는 주택비와 그와 비례해서 좁아지는 주거 공간이 가장 큰 이유다. 물론 그 이전의 삶을 보면 샤워 시설이나 욕조를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가 조금 생겼을 때 욕조는 당연한 필수품처럼 여겼다. 매주 목욕탕을 갔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그 속에서 몸을 불리고 때를 가끔 밀었다. 때를 밀지 않더라도 따뜻한 욕조에서 누리는 안락함과 나른함은 그 날의 피로를 충분히 풀어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여행이나 출장 중 몸이 피곤하면 호텔 욕조에 물을 받아둔 후 그 속에 잠긴다.

왜 목욕이야기냐고? 바로 이 만화가 목욕탕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테르마이는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이다. 유적과 사서를 통해 우리는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 대한 기록을 많이 만난다. 또 그들이 얼마나 목욕탕을 좋아했는지도. 그냥 이런 사실만 가지고 재미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만약 고대 로마의 목욕탕 설계기사가 현대 일본으로 타임슬립한다면 어떨까? 그 당시 제국 신민의 자부심으로 가득한 그가 현대 일본 목욕탕이 가진 특별함과 장점을 모방한다면 어떨까? 이런 설정을 가지고 목욕탕과 관련된 이야기를 작가는 재미나게 풀어낸다.

첫 장면은 목욕탕 설계기사 루시우스가 고대 그리스 방식의 테르마이를 설계했다가 짤리는 것이다. 고객들이 바라는 것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실망한 그가 친구와 목욕탕에 갔다가 우연히 현대 일본 목욕탕 속으로 타임슬립한다. 목욕탕에 그려진 후지 산은 폼베이의 베수비우스 산으로 착각하고, 욕탕에서 나온 후 마신 과일음료의 맛에 반한다. 그가 처음 본 일본사람을 평면족 노예로 생각한 것은 그 당시 로마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자부심은 평면족 노예가 보여준 놀라운 목욕탕 관련 문화와 장비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진다. 

이후 에피소드들도 기존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루시우스가 하나의 의뢰를 받고, 고민하다 타임슬립하여 간 일본의 목욕탕에서 그 해법을 찾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과연 몇 화가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한 회 한 회 보면서 어쩌면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현재 우리의 목욕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작가가 이런 기발한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일본의 온천문화를 경험했고, 이탈리아 거주경력과 이탈리아인 남편을 둔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로마 시대 이런 목욕탕을 지을 정도의 과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수로에 관한 그들의 유적은 현대인들도 감탄할 정도다. 거기에 로마 제국을 건설한 후 엄청난 부로 인해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사치스러운 목욕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산의 발달로 온천문화가 발단한 일본의 목욕탕과 제국 건설 후 목욕탕을 지어 대중들에게 개방한 로마의 결합은 사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한 오락거리로도 재미있지만 목욕 문화와 목욕도구와 시설 등의 세부적인 사항과 내용들이 그것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리고 오늘날 유럽의 온천지대가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변했다는 지적은 로마 시대 목욕탕의 개방과 대조를 이룬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현재 자본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것보다 더 기대되는 것은 역시 루시우스가 현대 일본에서 과연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서 고대 로마에 적용할 것인가다. 그리고 그를 버리고 떠난 아내를 다시 데리고 올 비책도. 단순히 목욕 판타지로 읽어도 좋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목욕 문화와 정치와 경제 등도 함께 생각한다면 더 많은 재미를 누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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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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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설이다. 제르맹의 행동과 심리 묘사를 통해 마흔다섯 살의 노총각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성장에는 아담한 할머니 마르게리트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들의 만남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지함과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특히 그녀가 제르맹을 대할 때 그의 약간 모자라는 지능을 전혀 무시하지 않고 진지함과 친절함으로 다가가는 모습은 우리가 평소 잊고 있던 삶의 기본자세다. 큰 감동은 없지만 조용히 조용히 가슴 한 곳에서 여운과 감동을 키워준다.

첫 장면에서 마르게리트 입양을 마음먹었다고 했을 때 그녀가 아기나 아이인 줄 알았다. 바로 다음 문장에서 그녀가 여든여섯 살이라고 했을 때 의아했다. 그것이 가능한가 하고. 하지만 제르맹에게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마르게리트와의 만남과 우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이 만남을 통해 인생이 어떻게 변했는지 들려줄 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특히 한 권의 책으로 그 만남을 시작할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책이 카뮈의 <페스트>이기 때문이다.

원제는 <미개발>이라고 한다. 제목만 놓고 보면 토건 관련 소설인가 싶다. 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읽으면 제르맹의 개발되지 않은 지능임을 알게 된다. 이 미개발지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마르게리트다. 어린 시절 억압된 기억은 그로 하여금 글과 멀어지게 만들었고, 자라면서 단 한 권의 책도 읽은 적이 없다. 그는 189센티미터 키에 110킬로그램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외모는 아담한 마르게리트와 묘하게 어울리는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지능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마르게리트는 종자학 박사 출신으로 교양이 충만한 반면 제르맹은 거의 일자무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과 달리 그들이 우정을 쌓게 되는 데는 책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그녀가 카뮈의 <페스트> 중 한 문장을 읽어줄 때는 더욱. 그녀는 책 전체를 읽어주지 않고 선별해서 몇 줄만 읽어줬다. 그런데 이 문장 속 이야기가 제르맹의 관심을 끈다. 그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 지엽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책과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마르게리트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우정을 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아주 조금 늦은 지적 성장을 경험하고 삶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마르게리트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을 한다면 그의 친구들과 여자친구는 과거와 현재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속어와 욕설과 음담패설이 난무하고 너무 노골적인 표현들로 그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 대비되는 두 장면을 통해 성장하고 변하는 제르맹을 보여주게 되고, 그에게 다가온 행복을 함께 느끼게 만든다. 또 그가 마르게리트가 읽어주는 책에서 자신이 읽는 것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책의 의미와 가장 기본적인 책읽기 자세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온 책 중 읽은 책이 단 한 권이란 사실에 즐거움과 아쉬움을 느낀다. 즐거움은 당연히 이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아쉬움은 왜 아직 읽지 않았나와 과연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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