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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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잔잔한 소설이다. 사실 원작 소설보다 영화 정보로 먼저 만났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일요일 영화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 줄거리를 보았다. 압축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 특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헬싱키라는 조금은 낯선 도시에서 일본인이 식당을 한다는 것 자체부터 그랬다. 호기심과 잔잔함이 조용히 흐르는 화면을 보고 영화가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처럼 그냥 잊고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 서점 신간정보에서 이 책을 보았다. 영화의 원작이란 느낌보다 영화를 소설로 각색한 것이 아닌가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소설이 먼저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었고, 분량도 부담이 없어 손에 쥐고 읽기 시작했다.

200쪽이 되지 않는 분량이다. 한쪽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데 좀 촘촘하게 구성하면 반으로 줄일 수 있을 정도다. 조금 긴 중편소설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분량은 그렇지만 이 소설의 재미와 여운은 그것을 능가한다.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읽으면서 행간과 사람들 사이의 여유를 즐기게 된다.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지거나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개성이 없는 듯한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공감하게 만들고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거기에 이 조그마한 식당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카모메는 일본어로 갈매기다. 이 식당 주인 사치에는 헬싱키 사람들이 볼 때 아이 같은 외모를 가졌다.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의 착각이다. 동네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문을 연 후 사치에의 과거로 이야기는 바뀐다. 처음 상상할 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어 이런 외진 유럽으로 왔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성장 이야기와 음식에 대한 열정을 보다 보면 지독하게 현실적인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중간에 운이 많이 작용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울림을 준 것은 사치에 아버지의 오니기리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 때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말하고,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란 문장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평소 식사 준비도 사치에가 한다. 그런 그가 아이를 위해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 오니기리다. 소풍 갈 때 만들어준다. 그녀가 헬싱키로 떠난다고 말한 다음 날 그녀를 위해 만들어준 것도 바로 오니기리다. 이 소설에서 이 음식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치에가 오니기리를 헬싱키 사람들에게 계속 권장하는 것도 이런 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그만 식당에 손님도 제대로 없는 곳에 찾아온 한 독수리5형제 마니아 토미는 사치에의 유일한 헬싱키 친구다. 그는 매일 이 식당에 와서 공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사치에와 간단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 그가 집착한 것은 독수리5형제 주제가다. 낯선 나라의 낯선 외국어로 이 주제가를 부르는데 정보 부재 때문에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낯선 헬싱키에서 사치에에게 부담없이 다가온 첫 번째 친구다. 또 이 친구 때문에 미도리를 만나게 된다. 독수리5형제 주제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을 찾는 중에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녀도 결코 어리지 않다. 그녀의 삶을 요약한 글을 읽다보면 너무 무미건조하다. 굴곡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이가 든 것이다. 그녀가 헬싱키에 오게 된 사연도 황당하다. 그곳이 좋아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지도에서 아무 곳이나 찍어 선택한 곳이다. 이렇게 만난 두 여자가 같이 식당을 운영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여자가 있다. 마사코다. 그녀는 비행기 화물이 분실되는 바람에 생각하지도 못한 방황을 한다. 낯선 도시에서 사치에는 좋은 안식처였을 것이다. 거의 매일 카모메 식당으로 오가는데 그러다가 그녀도 이 식당에 참여한다. 그녀는 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이 나라를 선택한 이유가 어쩌다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다. 필란드의 조금 이상한 경연대회에 반한 것이다. 작가는 간략한 요약으로 그녀의 삶을 정리하는데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또 다르게 보면 특별하다. 개인의 삶이란 경험과 개인의 차이가 심한 것이니까. 조금 바빠진 카고메 식당에 그녀가 한 손 거든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속에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 어떤 과장도 화려한 수식도 없다. 세밀하게 장면을 묘사하지도 않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여백을 최대한 만들고,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가 조용히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사치에가 ‘화려하게 담지 않아도 좋아, 소박해도 좋으니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만한 가게를 만들고 싶어.“라고 말한 것과 닮아 있다. 점점 조미료 가득한 음식을 먹고,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들이 많아지는 요즘 기분 좋게 소설 한 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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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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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추리의 만남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결합이다. 이 소설의 배경도 프랑스 대혁명 후 루이 16세의 아이 중 루이 샤를이 죽은 사실과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패배 후 새로운 왕이 된 루이 18세가 다스리던 왕정복고 시절의 1818년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이 샤를이 과연 죽었는가, 만약 죽지 않았다면 실제 누군가, 그를 죽이려는 사람은 누군가 등이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은 실존인물이자 수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모델로 삼은 비도크다. 여기에 엑토르 카르팡티에가 화자로 등장하여 회상하는 형식으로 그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자를 19세기 초 프랑스로 데리고 간다. 

이야기는 회상 형식이다. 현재 그는 성병학 전공 교수다. 그 유명한 비도크와 함께 몇 주 보냈을 뿐이지만 그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다음 왕위 계승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음 왕위 계승자를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엑토르의 불행했던 연애사를 짧게 말한 후 늘 보던 부랑자 바르두와 만난 순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인물이 바르두가 아니다. 그를 따라 와서 집안까지 들어온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온갖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비도크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시체에게서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험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죽은 시체의 이름은 크레티앵 르블랑이다. 엑토르는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인물이다. 악명 높고 능력 있는 비도크가 쪽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조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도크와 엑토르와의 첫 만남도 그렇지만 이후 보여주는 비도크의 변장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이 뛰어난 변장술은 현대 탐정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그는 변장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조사 능력은 더 탁월하다.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상대와 주변을 조사하고 탐문하는 기술은 그 시대를 뛰어넘었다. 이런 능력이 엑토르에게 오게 만들었고, 완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았기에 그를 곁에 둔다. 하지만 뒤로 가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엑토르 부자의 이름이 똑같고, 아버지가 과거에 한 일이 무지하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 일은 소설 속에서 일기 형식으로 나오는데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의문을 해소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

화자의 아버지가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한 일은 루이 16세의 아들 루이 샤를을 돌보던 것이다. 부모가 왕이었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게 그는 검은 탑에 갇혔다. 단순히 죄수로만 있은 것이 아니라 성적 학대까지 당한 모양이다. 여기에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하고, 충분한 식사도 하지 못하면서 건강에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아버지 엑토르가 의사로서 탑에 간 것이다. 그가 남긴 일기는 바로 이 치료 과정과 함께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인 루이 샤를의 생존을 담고 있다. 만약 혁명 정부가 공표한 루이 샤를의 죽음이 가짜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배경으로 깔아놓고 말이다.

모든 음모에는 배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이 배후를 끝까지 숨긴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엑토르와 비도크가 엉성한 콤비가 되어 이 배후를 쫓는 것이 기본 줄거리라면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은 아주 훌륭한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경찰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비도크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꼼짝 못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충분히 작가가 이런 상황을 현대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인내력을 발휘한다. 나만의 착각일까?

역사소설이란 시대 배경에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차분히 읽게 되면 현대물과 다른 재미를 준다. 하나씩 의문을 풀고, 그 사이사이에 단서가 나오는데 엑토르는 그 정보를 혼자만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정보 공유를 통해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혹시 다른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중간에 생긱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나온다. 물론 이것을 위해 책 중간에 단서를 하나 살짝 흘려놓았다. 모두 읽은 후 이 단서가 떠올라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기대한 속도감은 없지만 그 시대의 풍경과 비도크란 존재만으로 만족스럽다. 혹시 다음에도 비도크가 나올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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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드 노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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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소설이다. 거기에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미스터리가 살짝 곁들여져 있다. 교대 2학년이자 4차원 소녀로 불리는 가에의 꿈과 희망과 사랑이 잘 녹아 있다. 이야기는 가에의 시간으로 흘러가면서 그 사이에 그녀가 발견한 노트를 통해 이부키 선생의 삶이 살짝 드러나는 방식이다. 대학생을 통해 장래를 고민하게 만들고, 어느 날 다가온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이 모든 행동과 심리 속에 깔려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과 이해다. 그리고 열정.

이부키 선생의 일기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일기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된다. 그리고 가에의 현실로 돌아온다. 첫 장면은 가에가 사는 맨션을 올려다보는 한 남자다. 그 남자의 외모와 분위기가 꽤 괜찮게 느껴진다. 혹시 창문에 있는 화분을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밖을 보는데 바람의 장난으로 브래지어의 컵 일부가 보인다. 이 순간 그 남자는 음탕한 변태로 바뀐다. 무엇을 보는냐에 따라 로맨티스트와 변태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조그만 만남과 시선은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나왔고 가장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런 얼핏 지나가는 듯한 장면을 통해 아주 중요한 인연의 시작을 알린다.

가에는 문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소설이 지닌 매력 중 하나가 만년필인데 그녀가 근무하는 곳에서 만년필을 판다. 그냥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한정판으로 제작해서 팔기도 한다. 실제 나 자신이 만년필을 사용한 것이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다. 그 당시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이 조금은 유행이었기에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을 하나 샀다. 꽤 오랫동안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중고등학생이 만년필로 공부하기에는 조금 번거롭다. 그 후 나의 필기구는 볼펜과 샤프였는데 이것은 대부분 학생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만년필이 지닌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한 번 사용해봤기에 더욱 그렇다. 엄청 비싸다는 것과 거의 필기를 할 일이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 열망이 조금 가라앉는다. 

갑자기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는데 그것은 만년필이 가에의 사랑을 엮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이시토비 류사쿠, 26살의 일러스트레이터다. 가에도 처음부터 만년필을 팔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문구점이 만년필 이벤트를 펼치면서 그녀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때 새로운 그림 도구를 찾아서 그가 나타났다. 만년필로 처음 그린 것이 고양이인데 보통 사람들이 글자를 쓰는 것과 조금 다르다. 처음엔 그냥 만년필 한 자루 팔아야지 하는 마음이 강했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마음이 그에게 머문다. 반대로 그녀에게 달려드는 남자도 한 명 있다. 그는 미국 유학 간 친구 하나의 남친 가시마 씨다. 

보통의 연애소설이라면 삼각관계를 만들고 밀고 당기면서 애정을 꼬아갈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 친구의 남자친구는 관심이 대상이 아니다. 그 남자도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드라마의 열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설정이다. 이런 관계 속에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하는 그녀에게 우연히 발견했지만 그냥 놓아두었던 이부키 선생의 노트는 삶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녀의 일기를 통해 이부키 선생의 교사 생활과 사랑을 엿보게 된다. 

교사 이부키는 정말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열린 마음, 철저한 준비, 끊임없는 노력과 애정 등이 잘 녹아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나의 나쁜 마음 때문이다. 이 교사도 20년 정도 지나면 그냥 보통의 교사처럼 월급쟁이의 일상으로 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진짜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일기 속에 나와 있는 교사로서의 삶은 박수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가에가 장래 진로를 교사로 정하게 되었지만.

한 여자로서 이부키는 그냥 평범하다.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교사 때보다 소극적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여자와 경쟁해야할 때는 더욱 더.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가에의 상황과 비슷하게 풀어내면서 두 여자의 사랑을 한발씩 나가게 만든다. 먼저 한 발을 내딛는 것은 이부키다. 그녀의 용기와 열정에 감동받은 가에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두 여자를 내세워 그 속에 담겨 있는 강한 열정과 사랑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잔잔하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면서 이끌고 나간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담담한 것이 아닌가 걱정할 정도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한때 읽고 싶었던 미스터리 소설의 작가다. 선이 굵은 작품을 쓴다면 평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소설은 정말 정반대의 문장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잔잔한 속에 담아놓았다가 마지막에 풀어놓는 미스터리다. 이 반전을 미스터리로 보아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작가의 돌아가신 큰누나의 유품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지만 그 재미와 유머와 열정은 오롯이 작가의 공이다. 그리고 4차원 소녀 가에의 사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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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유령들 펠릭스 캐스터 3
마이크 캐리 지음, 김양희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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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캐스터 시리즈 3권이다. 저자 소개글을 보면 총 6권으로 마무리될 모양이다. 현재 5권까지 출간되었고, 올해 중에 마지막 권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도 내년 말 정도면 마지막 이야기가 번역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책 표지가 무지개 색으로 나온다고 한 것을 생각하면 7권으로 끝내주었으면 하지만 작가가 이런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 제목을 보고 유령들이 되살아나 더욱 혼란스러운 세상을 그려내면서 더 큰 규모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전개를 생각하면 조금은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동료 퇴마사 존 기팅스의 장례식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엄숙해야 할 장례식에 한 변호사가 끼어들면서 조그만 소동이 발생한다. 그것은 기팅스가 죽기 전에 화장해달고 유언했다는 것이다. 존의 아내 칼라는 말년의 그가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었기에 그것은 고인의 올바른 의도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일단 장례식이 마무리되지만 캐스터가 그 집을 찾아갔을 때 폴터가이스트가 된 존을 마주하게 된다. 퇴마술로 그를 잠재우지만 그가 자살하기 전에 한 이상한 행동에 의문을 가진다. 칼라는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화장에 대해서는 펠릭스에게 위임한다. 

잰 헌터라는 여자가 의뢰인으로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강간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모든 상황이나 정황 증거가 남편이 범인임을 가르키는데 한 통의 전화가 이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것은 40년 전에 죽은 여자가 실질적인 범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증거로 사체에 남겨진 상처가 40년 전 미국의 연쇄살인자였던 미리엄의 독특한 표식이었다는 것이다. 그후 벌어진 몇 건의 살인사건도 이와 비슷한 상처를 남겨놓았는데 모두 미리엄이 죽은 후 저지른 범죄라고 주장한다. 일반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누군가의 모방범죄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그것이 가능한 판타지 소설이다. 바로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과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냥 평범한 자살사건 같았던 것이 복잡하게 엮이기 시작하는 것은 존이 남긴 유물 속에 나온 메모 때문이다. 변호사를 만나 화장에 동의하고 진행하지만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아 있다. 여기에 잰의 의뢰 속에 조그만 허점이 보인다. 잰의 남편 더그가 희생자 바너드와 성관계를 맺었고, 몸에 정액을 남겨놓아 같이 있었다는 상황 증거를 만들지만 가장 중요한 살인무기 장도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가 온몸에 피를 묻히고 거리를 방황하다 잡혔을 때도 그것은 없었다. 또 살인이 있던 시간에 그 방에 두 사람 외에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는 청소부의 증언도 있다. 가장 쉬운 것은 빙의에 의한 살인인데 소명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반가운 인물이 엮여 있다. 그 중 한 명은 전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형사 콜드우드고, 다른 한 명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몽마 줄리엣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두 사건이 각각 이야기의 축으로 작용하는 와중에 전편에 나온 악마주의 무리가 그를 공격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죽을 수 있을 정도다. 틴휘슬로 뛰어난 퇴마 실력을 보여주는 그지만 육체적인 능력은 사실 조금 평범하다. 그가 상대해야 하는 적들 중에 루가루나 악마 계열도 있는데 제대로 준비하지 않거나 조금만 방심해도 그들에 의해 한조각한조각 찢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적들과의 싸움이 긴장감과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많이 주지만 말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적들과의 싸움과 기존 등장인물의 재활용과 새로운 적의 등장으로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판타지의 외피를 입은 추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영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국까지 간다. 바너드 살인사건에 미리엄이 연관되어 있기에 단순한 책 속 이야기에만 의존해서는 그 실체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생각은 맞았다. 미리엄이 자란 마을을 방문하고, 그곳 신문기자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동생과의 만남이다. 이 만남을 통해 미스터리의 한 부분을 벗겨내게 된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자주 캐스터가 해외로 나가는 것은 아닐까 기대하는 것이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캐스터가 점점 더 많은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줄리엣의 비중도 점점 많아지는데 개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600쪽이 넘는 분량 속에 다양한 인물들을 전편부터 이어서 풀어내는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로 전체적인 틀을 짜는 그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그냥 스쳐지나가도 될 부분이 혹시 다음 이야기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만나는 지점에서 의문이 하나씩 풀리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의문과 비밀이 숨겨져 있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액션으로 지루함을 들어낸다면 유령이나 악마의 등장은 또 어떤 존재가 등장할까 기대하게 만든다. 여기에 미스터리 구조로 이야기를 이끌고 풀어내는데 언제나 힘겹게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 방식으로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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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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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누군가를 왕따로 만든 적은 없다. 하지만 이 기억은 나만의 것이다. 혹시 누군가가 학창시절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왕따를 당했다면 나의 기억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학창시절 한때의 오락거리였을 왕따가 그 대상자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었을 텐데 가해자들은 그냥 한때의 지나가는 바람처럼 잊고 만다. 아니면 가끔 그 당시 자신들의 행동을 그냥 단순한 장난 정도로 치부한다. 이런 입장이 왕따 문제를 왜곡하고 축소한다. 그리고 이 왕따 당하는 학생을 대하는 교사와 주변 학생들의 태도도 딱 그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 소설 속에도 나오듯이 왕따로 괴로워하던 학생이 자살한 이유를 잘 모르는 것처럼 대응하던 교사들과 반 친구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다. 

왕따를 당해보지 않은 나에게 왕따 문제는 개인이 극복해야할 문제였다. 이런 입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이 십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그 당시는 나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단련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왕따 관련 소설과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왕따로 괴로워하는 학생과 그 부모를 대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폐쇄적인 학교가 얼마나 이기적인 공간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왕따를 결국 피해자가 풀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따 당하는 학생의 나약함과 용기 없음을 질타하는 그들의 말에서 그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런 교사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실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듣고 상담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교사 이야기를 들은 적도 많기 때문이다. 

왕따 이야기를 길게 먼저 쓴 것은 이 소설이 왕따 당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팔뜨기 눈을 가진 ‘나’는 정말 악질적인 왕따를 당한다. 단순한 따돌림이나 조그마한 구타 정도가 아니라 화장실 물을 마시고, 분필을 먹고, 배구공을 쓰고 축구공처럼 맞는 등의 악질적인 놀이 대상이 된다. 이렇게 당하는 것을 보면 먼저 왜 바보처럼 당하고만 사냐? 고 묻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개인의 노력으로 풀릴 수 있다면 세상에는 왕따로 고민하고 자살하는 학생들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련하고 바보 같은 이들의 행동을 욕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용기도 대단하다. 가장 쉬운 도망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지마가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왕따 당하는 소년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우리는 같은 편이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니노미야 패거리의 장난은 아닌 것 같다. 편지는 계속 전달되고, 이것을 은근히 기다리게 된다. 5월 어느 날 편지에는 만나고 싶다는 말이 적혀있다. 누군지 궁금하다. 시간을 맞춰 나간다. 그곳에서 그는 역시 반 여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고지마를 만난다. 이렇게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두 소년소녀가 만났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가 당하는 왕따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이 둘의 진솔하고 푸른 우정은 왕따의 괴로움도 잊게 만들 정도다. 하나의 새로운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열네 살의 ‘나’와 고지마는 아직은 불안정한 시기에 살고 있다. 화자가 친구들의 악질적인 장난에 코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으면서 이 불안과 공포는 점점 커진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고지마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을 정도다.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학교 수업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이때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니노미야 패거리 중에서도 조금 특이한 모모세와의 대화는 강자의 이기주의적 궤변으로 가득하지만 왕따 문제를 어쩌면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모모세가 사시 때문에 왕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화자가 느낀 감정은 정말 복잡하다. 열네 살 소년이 그 궤변을 이해하는 것이 무리인 것처럼 말이다.

조그만 틈이 언제나 큰 벽과 거리를 만든다. ‘나’의 무응답이 고지마로 하여금 더욱 자신을 학대하는 쪽으로 몰고 간다. 불쌍한 아빠를 위해 씻지 않았기에 왕따를 당했는데 이제는 먹는 것마저 줄이고 있다. 자신을 학대하고 이런 자신의 감정을 화자가 이해주길 바란다. 이 둘의 사이가 더욱 벌어지는 것은 나의 사시에 대한 입장 차이다. 고지마는 사시가 그를 규정해주는 것이기에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집착한다. 단 하나 있는 친구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고민하는 화자의 내면은 복잡하다. 이런 고민 중에 발생하는 사건 하나는 이야기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이 파국을 통해 모든 사태의 진실이 밖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나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왕따 문제는 해결되었나 하고.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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