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NFF (New Face of Fiction)
찰스 유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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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SF문학에서 가장 매혹적인 소재는 무엇일까 물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시간 여행이다. 이 소설은 바로 시간 여행을 소재로 썼다. 그런데 이 시간 여행이 보통의 것과 다르다.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꾸려는 악당과 싸우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지도 못하고, 미래의 새로운 세계를 멋지고 화려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이 바라는 과거로 간다고 해도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로 가서 과거와 현재를 바꿀 수 없다면 타임머신은 단순히 관광용이라는 말인가? 이렇게 작가는 기존 타임머신 소재 SF와는 다른 SF 한 편을 내놓았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나 자신을 쏜다”고 말한다. 나는 현재의 나이고, 나 자신은 미래의 나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몰랐다. 사실 그냥 대충 읽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 문장이 이 소설을 구성하고 이것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의미를 제대로 알기 전까지 작가가 만들어놓은 복잡한 SF세계 속에서 헤매고 다녀야 한다. 이 세계는 기존의 문법과 다르고 시재를 통해 시간 여행을 풀어놓는다. 아! 하고 어느 정도 알겠다고 하는 순간 새로운 사실들이 나와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낮은 이해력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구성과 전개는 분명 아니다.

기존 SF에서 사용한 다차원 우주와 현재와 미래를 바꿀 시간 여행은 없다는 전제 외에 새로운 것이 하나 등장한다. 그것은 타임 루프다. 주인공은 10년 동안 타임머신에 틀어박혀 실제 시간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과 생활하고 현실에 나오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상상한 한 시간짜리 가상현실 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삶을 산다. 그가 10년짜리 타임 루프에 사는 반면 그의 어머니는 한 시간짜리를 계속 사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과연 미래에서 온 그 자신을 쏜 사실을 바꿀 수 있냐는 것이다. 즉 타임 루프를 깨트리고 과거를 변하게 만들 수 있냐는 것이다. 

타임루프를 다룬 영화나 소설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 같은 경우 매번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하루가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연습을 통해 피아노를 배우고 한 여자를 사랑한다. 결국에는 어느 날 그 하루가 깨어지고 새로운 다음 날이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이런 자각조차도 반복된다. 타임루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반복된다. 

이 반복이라는 개념이 과거 불변이란 것과 맞물려 풀려나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책 한 권이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이란 책이다. 이 책이 주인공에게 나타나는 것은 미래의 나가 흘렸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이 책인데 현재의 나가 미래를 살짝 엿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 주인공이 고민한다. 과연 과거의 나에게 총을 맞기 위해 나가야 할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현재를 만끽할 것. 현재를 늘이고, 그 안에서 살아갈 것.”(332쪽)이라고.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기존의 SF문법을 벗어난 전개와 이야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가 타임루프 속에서 다른 시공간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것이나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란 책 속에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성장한다고 해도 말이다. 시간문법에 동의하다가도 작가가 만들어낸 SF 정의들은 왠지 모르게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 혹은 미래를 아는 순간에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용기는 대단하다. 비록 바꿀 수 없는 미래라 하여도 말이다. 독창적이란 평에는 동의하지만 유쾌와 재미란 부분에서는 살짝 의문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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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블러드머니 필립 K. 딕 걸작선 3
필립 K. 딕 지음, 고호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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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시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화려한 비주얼에 암울한 영상을 가진 영화가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면서 관심을 끌었고, 원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토탈리콜>에 원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당시는 원작소설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21세기에 오면서 그의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대작으로 만들어진 것이 <페이첵>, <마이너리티 리포트>, <넥스트>, <컨트롤러> 등이 있다. 대작을 제외해도 두 편 정도가 있는데 한때는 SF 영화제작자들이 이 작가의 작품만 영화로 만드나 할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소설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읽는 재미가 상당했다. 하지만 너무 암울한 전개는 기존의 밝은 SF에 익숙한 나에게 조금은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코 끊을 수 없는 매력을 보여주면서 다음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번에 폴라북스에서 나올 필립 K. 딕 걸작선 목록을 보면 이미 출간된 작품도 보이지만 절판되었거나 처음 번역된 듯한 작품도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에 장르문학에서 한 작가의 전집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꼭 완간되길 바란다. 이 전집 중 먼저 세 권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 먼저 시선을 끈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그것은 핵 전쟁 이후 세계를 그렸다는 소개글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종말 후 세계를 그린 수많은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고, 어떤 고난을 겪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어떨지 보여줬는데 암울한 미래를 잘 그려낸 작가라면 어떤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지 기대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하고 또 어찌 보면 독특한 미래의 풍경을 보여줬다. 그것은 종말 후 세계를 처절한 생존의 장으로 보지 않고 조금은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평범하다. 닥터 블러드머니로 불리는 브루노 블루스겔드가 스톡스틸 박사의 병원을 방문한다. 이 장면을 흑인인 스튜어드 맥콘치가 본다. 그는 TV판매원인데 낯익은 인물이 병원에 들어가는 것을 보다 가게 주인에게 욕을 먹는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새로운 TV수리공을 채용하는데 그가 바로 하피 해링턴이다. 그는 해표지증에 걸려 팔다리가 없다. 하지만 기계팔로 TV를 수리한다. 조금 특이하지만 평범한 마을 풍경을 보여주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왜, 누가, 어떻게에 대한 설명 없이 핵폭탄이 터지고 세계가 파괴된 것이다. 이 구분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고 7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는 사실을 이야기 속에서 살짝 풀어놓는다. 변화된 삶을 보여주면서 앞에 나온 등장인물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엮이고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한 명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화성으로 가려고 우주선을 탔다가 인공위성처럼 지구 주변을 도는 데인저필드다. 그가 중요한 이유는 우주선에서 지구를 향해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생존자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통신설비가 사라졌고, 식량은 부족하고, 의약품도 부족한 현실에서 이 방송은 자신들 외의 세계와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통로 역할을 한다. 라디오가 아주 귀해져서 라디오 수선공을 납치하려고 할 정도고, 그의 방송이 나오면 마을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앉아서 그가 들려주는 소설과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를 대신해서 유명세를 얻고 권력을 쥐려고 하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하피다. 하피는 특수한 능력을 가졌는데 신체에 없는 팔대신 정신의 팔을 가지고 있다. 먼 거리의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가진 팔이다. 또 그는 뛰어난 수선공이기도 하다.

요즘 같으면 작가들이 하피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마을 간의 대립을 강화시키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킬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마을 간의 대립은 조장하지 않고, 각 마을이 자치조직으로 운영되게 만들었다. 화폐가 아직도 존재하면서 교환거래를 돕고, 식량 쟁탈이나 기존 물품을 약탈하기 위한 단체나 조직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단지 새로운 능력을 가진 존재를 등장시켜 조금씩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유도할 뿐이다. 한 명에게 이야기를 집중하기 않고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미래의 삶도 현재와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웅이 없는데 이 때문에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완벽한 종말이 아닌 세계에서 우리의 삶이 어떨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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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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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참으로 원론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그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출발한다. 그는 클라우제비츠를 천재라고 부르면서 <전쟁론>에는 풀어야 하는 암호문이 있다고 말한다. 암호라는 단어에 순간 머리가 아파온다. 그리고 저자는 놀라운 작업을 보여준다. 그것은 47장의 분쟁지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15일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데 놀라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분쟁지도는 전 세계의 분쟁을 연도별로 지도 위에 기록한 것인데 이렇게 많은 나라가 한 해도 빠짐없이 분란을 겪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것이 바로 이 분쟁지도이기도 하다.

왜 전쟁을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욕심 때문이다. 개인의 욕심들이 모인다고 전쟁이 일어날까? 나의 욕심이 다른 사람들의 욕심과 충돌한다고 전쟁이 일어날까?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극단의 상황인 전쟁 전에 멈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을 해독한 최후의 답으로 ‘개인적 의지’를 꼽는다. 물론 이 개인적 의지는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란 것이다. 맞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가와 군인이다. 그렇다면 이 손가락을 조종하는 것은 누굴까?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무시하고 있다. 

손가락을 움직인 주체는 누군가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고 저자가 말하는 정치가와 군인에 대해 말해보자. 이것을 위해 먼저 재래식 전쟁 무기와 화학무기 및 핵무기 등의 새로운 전쟁 무기와 어둠 속에서 세계를 움직였던 두 거대 조직 CIA, KGB 등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두 조직이 전 세계를 무대로 어떤 음모와 분쟁을 일으켰는지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유명한 이야기 속에서도 알지 못했던 몇 가지가 나와 다시 한 번 더 놀란다. 이 책이 출간된 연도를 생각하면 이런 사살을 몰랐다는 것에 내가 오히려 놀랄 정도다. 

CIA나 KGB의 음모 외에도 놀랐던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생화학무기하면 먼저 베트남 고엽제 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훨씬 이전에 우리나라에 이미 사용되었다. 그 원천 자료는 그 유명한 731 부대의 것이다. 전후 전범 재판에서 관동군 마지막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가 731부대의 실험을 자백하자 미군 측에서 이 증언을 부정했다. 뭔가 더러운 뒷거래가 있은 것이다. 이런 무기를 가진 자라면 당연히 사용하려고 할 것이고 한국전쟁에서 이 무기가 사용되었다. 이 논리 구조가 바로 저자가 말한 개인적 의지의 일부란 것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갖고 하는 정치의 연속이다.”, “전쟁이란, 나의 의지 달성을 적에게 강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실력행사이다.” (220쪽) 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와 전쟁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 정치와 같은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이 때문에 개인적 의지가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원전으로 <전쟁론>을 선택했고, 이 고전이 끼친 영향력을 역사상 유명인물로 하다 보니 이런 개인적 의지는 더 부각된다. 일정 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전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히틀러 등에게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개인적 의지의 총합이 전쟁이라면 어떨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개인적 의지의 총합을 이루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저자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복잡한 요인들이 뒤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이 깊이까지 파고들지 않은 것은 사실 안타깝다. 저자가 전쟁을 왜 하는가에 대해 답을 낸 것에 일부분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저자는 분쟁지도를 만들면서 전쟁과 분쟁을 같이 표시했다. 의지의 충돌이란 측면에서는 동의할 수 있지만 분쟁과 전쟁은 분명 다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분쟁으로 표기한 부분과 일본의 그 극렬했던 전공투를 생략한 부분은 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의문이 생긴다. 클라우제비츠에 대한 평가도 앞과 뒤가 다른데 솔직히 너무 급변했기에 놀랐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느낌이랄까? 아니면 잘못 이해한 것인가? 이런 의문과 부분 동의에도 불구하고 47장의 분쟁지도와 새로운 정보들과 분석은 충분히 읽을 가치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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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우리문고 23
마커스 주삭 지음, 정미영 옮김 / 우리교육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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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형제가 개 경주장에 온다. 이 둘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처음에는 그냥 미성년자 정도로만 알려준다. 이 둘은 자신들이 가진 10달러를 개 경주에 걸려고 한다. 미성년자이기에 배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주변을 살피면서 자신들 대신 내기할 어른을 찾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찰에게 부탁한다. 만약 그들이 배팅한 개가 우승하더라도 돈을 떼먹지 않을 사람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에피소드를 통해 루벤과 카메론 울프 두 형제의 성격을 살짝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 울프 가족의 비루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는 삶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다.

사라 누나가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그녀를 데리고 방으로 가는 사람은 카메론이다. 그녀가 그를 보고 아빠라고 잘못 말하지만 그 속에는 강한 자기혐오와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왜 그녀는 이렇게 망가진 채로 집에 들어왔을까? 작가는 이 가족이 처한 현실을 하나씩 보여준다. 아버지의 사고와 실직으로 인해 가정 경제가 파탄난다. 실업급여 신청을 거부하고, 열심히 구직활동을 한다. 집으로 수없이 날아오는 영수증들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큰 형이 부모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이 완고한 부모는 거부한다. 민감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두 형제에게 누나와 아버지에 대한 나쁜 소문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누나를 무시하는 놈에게는 더욱.

형 루벤은 잘 생겼고 몸도 좋고 싸움도 잘 한다. 이런 소문을 들은 불법 권투 흥행사 페리가 찾아온다. 그의 조건은 싸워 이기면 50불은 받고, 져도 관중이 던져주는 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합 중 사고가 나도 이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 이 제안을 받았을 때 형은 동생도 좋은 선수라고 말하며 같이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두 형제는 페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이 늘 하던 한 손 권투를 보여준다. 동생도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두 형제가 이 불법 권투 경기에 참여할지 여부를 알려달라고 한다. 이미 형은 마음속으로 참여로 결정한 상태다. 이렇게 두 형제는 라운드에 올라가게 된다.

소설은 시종일관되게 카메론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그는 루벤 형을 동경하고 좋아하고 부러워한다. 멋진 외모와 뛰어난 권투 실력은 시합장에서 그를 스타로 만들었고, 그 주변에는 멋지고 예쁜 여자들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링 위에서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강렬한 의지다. 그가 첫 시합에서 공포에 질려 도망만 다닌 반면 형은 얼마나 멋지게 상대를 KO시켰던가. 타고난 신체 조건이 탁월하지 못한 그가 시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사뭇 안쓰럽다. 그렇지만 점점 싸우면서 용기를 얻고 앞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성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가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의 모습이다. 그가 쓰러져도 일어나야 했던 것과 아버지의 삶과 연결시켜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지독한 가난과 힘겨움 속에서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버지가 이 말을 할 때 숙연해진다.

이 소설이 단순히 링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영리하게 왜 이 두 형제가 이런 불법 권투 시합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이 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이 시합으로 얻게 되는 돈들은 부모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등과 같은 의문을 품게 만들고 가족애를 느끼고 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두 형제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부모를 돕자는 마음이 있었지만 실제 이 시합을 통해 두 형제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과 자긍심과 용기 등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용감하고 저돌적이었던 형 내면에 자리한 불안과 두려움을 보았을 때 같이 본 것은 역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형과 부모의 모습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삶의 순간들을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넘어져도 계속 일어나야하고 일어날 때 그들 앞에 미래가 열린다.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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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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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처유상수. 정말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말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매번 만나게 되는 상수(上手)들은 나를 채찍질한다. 운동 좀 한다고 느끼는 순간, 책 좀 읽는다 하는 순간, 일 좀 안다고 하는 순간, 책 좀 가지고 있다고 하는 순간, 말 좀 한다고 하는 순간, 운전 좀 한다고 하는 순간. 거의 모든 순간마다 상수들을 만났다. 그런데 더 나를 채찍질하는 것은 이런 상수들도 그보다 더한 상수를 만난다는 것이다. 과히 천외천(天外天)의 세상이다. 이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면서 문화유산답사 상수의 글에 빠져들었다.

이 답사기가 다룬 첫 번째 장소는 경복궁이다. 서울에 살면서 수차례 갔지만 솔직하게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다. 몇몇 곳이 지금도 인상에 남아 있지만 그곳에 얼마나 멋지고 과학적이고 의미 있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갔을 때는 한창 공사를 하던 중이라 지금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회루의 모습과 궁전에서 보았던 굴뚝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있다. 굴뚝의 경우는 왕궁에도 굴뚝이 이렇게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던 것 같다. 답사기를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화려한 궁궐이나 나무나 화계 등이 아니라 박석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밟고 지나갔던 그곳이 이제 경복궁에 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아마도 최근에 콘크리트나 시멘트 길만 걷다보니 이런 바닥에 더 정감이 가는가 보다.

순천 선암사 이야기는 내가 잊고 있던 가을 들판의 아름다움과 예전에 잠깐 느꼈던 절을 걸어 올라가면서 느끼는 싱그러움과 여유를 깨닫게 했다. 사실 유물에 대해 저자가 아무리 잘 설명해주어도 나의 감성과 깨달음이 단숨에 그것을 알 정도는 아니다. 다만 새롭게 그곳을 보고 좀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기회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달성 도동서원은 이전에 갔던 안동 하회마을 근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서원을 떠올려주었다. 그냥 갔다가 그 서원의 아름다움과 풍경에 반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거창과 합천의 답사기는 매번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갔던 길이기에 좀더 색다르게 다가왔다. 한창 차를 몰고 다닐 때 이 정보를 알았다면 잠시나마 둘러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화강암 예찬인데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부여, 논산, 보령 편에 오게 되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을 만나게 된다. 그중 돌담길은 아련한 기억 속에서 갑자기 불쑥 치솟는다. 여행을 갈 때 조그만 길이나 골목을 보면 나도 모르게 들어가 보고 싶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어진다. 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흙과 돌로 만든 벽이 이어져 있었고 그 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풍경과 한 데 어우러져 떠오른다. 추억을 넘어 현실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역시 저자의 휴휴당이다. 그 멋진 집과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에피소드들이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부여에 대한 멸망 이미지를 바꿀 의견을 읽으면서 시대와 유적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관촉사 은진미륵은 조금 낯익은데 그것은 친구의 눈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가서 본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갔거나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한 곳들이나 유적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가슴에 와 닿은 말은 개발이 파괴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들이다. 편함에 익숙해지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를 잃은 현실의 나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여행이 목적지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속도에 열을 올리고 가는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즐거움을 잊고 있다. 불과 몇 주 전 설악산을 갈 때도 터널을 통과해 목적지에 빨리 갈 생각을 했지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가면서 만날 내설악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냥 무시했다. 그러면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경치가 아름답고 멋있다고 감탄했다. 회사 워크숍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되지만 그만큼 나의 감성이 무디어졌고 여유를 잃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수의 안내에 따라 혹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가는 길에 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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