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9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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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라노 미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사라진 AV 여배우 잇시키 리나를 쫓는 미로의 활약을 그렸다. 전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미로의 활약은 힘겨우면서도 반짝인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영화나 탐정소설에서 만나는 탐정과 다르다. 액션은 전혀 펼치지 못하고, 순간적인 직관으로 모든 것을 단숨에 파악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야쿠자의 협박에 겁을 먹고, 남자의 힘 앞에 무기력하다. 이런 그녀지만 장점이 두 가지 있다. 그 첫째는 끈기고, 그 다음은 상상력이다. 끈기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계속해서 파헤치는 것이고, 상상력은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고 추리해서 진실을 파악하는 힘이다. 

AV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이 있다. 아주 순진했던 그 시절 이 장르를 만나면서 정말 많이 놀랐다. 포르노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어떻게 해서 하드코어라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보고난 후 사실인지 궁금했다. 아마 스너프 필름이 진짜일까 아닐까 하는 의문 이상으로 호기심을 품었던 시절과 비슷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이 소설의 첫 장면이 일반적인 AV에서 갑자기 강간으로 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 비디오를 본 페미니스트 와타나베 후사에가 AV 여배우를 찾아 강간한 남자들과 제작사를 고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 직접 하지 않냐고? 그것은 강간이 친고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오랫동안 일한 다와다 변호사 소개로 그녀가 왔고, 미로는 정가보다 저렴하게 그 사건을 맞는다. 이제 그녀는 한국에서 수많은 본좌들을 만들어낸 성인비디오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정보는 인맥을 통할 수밖에 없다. 그 첫 인맥은 이제 은퇴한 탐정 아버지 무라노 젠조다. 아버지를 통해 비디오 가게를 하는 아오타를 만나고, 기초적인 정보를 얻는다. 여기에 동성애자이자 옆집 남자인 도모베 아키히코가 유명한 게이와 함께 의논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등장한다. 이 의논을 통해 미국 영화에서 보게 되는 동성애자 친구를 그녀는 가지게 된다. 그녀는 그가 남자친구가 되었으면 하지만.

사라진 AV 여배우 리나를 찾아주면 되는 간단한 의뢰지만 와타나베가 제작사를 한 번 뒤흔든 뒤라 쉽지 않다. 그녀가 제작사를 찾아갔을 때 반응은 거부감으로 가득하다. 정보는 더 숨겨지고, 그녀의 흔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혹시 그녀가 출연한 다른 성인 비디오가 있는지 조사를 하지만 시중에 유통된 것은 없다. 단서를 찾기 위해 비디오를 자세히 본다.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이 단서가 쉽게 그녀에게 다가갈 정보를 바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단서를 통해 추리하고 새로운 조사를 해야 한다. 여기서 그녀의 장점들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탐정 미로가 AV 세계를 하나씩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우리가 이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여자들이라면 뻔하다고 할 때 그녀는 기획사를 통해 자기발로 찾아오는 여자나 직접 제작한 비디오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며 상상이상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다시 미로와 야시로의 묘한 관계로 이어지면서 본능과 삶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이 직선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관계를 만들고 복잡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 복잡한 관계 속에는 모든 사건을 단숨에 해결할 진실이 숨겨져 있다. 

전작과 비교해 이번 작품은 힘이 조금 달린다. 낯선 세계를 파헤치면서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과 야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마지막 장면들이 강한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반전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에 아마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뒤틀린 인간의 욕망과 가진 것을 잃는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무지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것에 대한 이성의 반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외전 <물의 잠 재의 꿈>과 시리즈 마지막인 <다크>가 나를 기다린다는 것은 제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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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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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늘 단편소설만 썼던 그녀가 장편을 내놓았다. 그녀의 단편에 대한 호평들을 기억하던 나에게 이 장편은 어떤 느낌일지 참 궁금했다. 혹시 조금 무겁게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지루하거나 더딘 진행은 아닐까? 걱정도 했다. 이런 걱정들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정신없이 읽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가슴 먹먹해 하면서.

가장 늙은 자식. 그렇다. 화자이자 주인공 아름이는 조로증에 걸린 아이다. 현재 나이는 그의 부모가 그를 가진 열일곱 살이다. 그의 외모는 부모나 주변의 누구보다 늙었다. 보통 사람보다 10배는 빠른 노화가 진행되면서 온갖 병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 줄 몰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노화는 빠르다. 특이한 병으로 인한 빠른 노화는 가난한 부모들을 경제적으로 더 힘들게 만든다. 잠깐 드러나는 그들의 삶을 보면 주변 사람들과 연락이 끊어질 정도다. 하지만 이 어린 부모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름이를 키우고 돌보고 사랑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과정과 그것들에 대한 아름이의 보답과 사랑을 담은 것이다.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 어린 두 부부가 어떻게 아름이를 낳았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어떤지 보여준다. 열일곱에 소위 말하는 사고를 친 두 학생의 이야기는 아름이의 낱말카드가 바람에 날려 하늘에서 뒤섞이며 운명처럼 엮어낸 듯하다. 보통이라면 낙태를 떠올렸을 텐데 어린 두 학생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엮이면서 낳는 쪽으로 바뀐다. 그 나이에 창창한 미래도 포기하고 말이다. 전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들 이야기는 미숙하고 치기마저 넘쳐난다. 하지만 그 풋풋함이 읽는 내내 유쾌했고 그들이 처한 현실을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2부는 가족이 처한 현실 때문에 받아들인 방송 출연을 통해 그들이 겪은 아픔과 기쁨과 사랑을 엮었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먹먹하다. 대박을 예상하고, 조로증이 걸린 아이도 성욕이 있을까 의문을 품는 방송작가와 피디의 대화는 우리가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지를 알려준다. 물론 이 가족의 사랑과 아픔과 고통을 가슴으로 조금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그 찐한 감정의 울림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비록 그 조금 때문에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냈다고 해도 말이다.

아름이의 첫사랑을 담은 것이 3부다. 이 감정은 방송작가의 호기심에 대한 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근두근한 감정의 흐름과 교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늙은 소년의 청춘이다. 직접 만나지 못하고 메일을 통해 진행되는 이 만남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두 소년소녀가 처한 현실 때문에 절박하고 애잔해 보인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사랑이 가득하지만 말이다. 메일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이의 감정은 첫사랑에 빠진 십대의 그것과 똑같고, 그의 노화와 더불어 깊어지고 무거워졌던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사실이 드러나고 병의 빠른 진행으로 이제 거의 마지막에 도달한 순간을 기록한 것이 4부다. 첫사랑을 통해 밖으로 드러낸 10대의 모습이 이어지고, 하루하루 말라가는 그를 통해 눈시울 적시게 만든다. 억지 장면이나 묘사가 아닌 짧지만 간결한 문장과 상황을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감정 속에 빠져 헤매지 않게 한다. 하지만 가슴 저 바닥에 깔린 먹먹함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어서 나오는 아름이가 부모에게 남긴 이야기는 어린 두 부모의 만남을 전혀 다른 문체로 풀어내면서 그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사랑받았는지,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조로증으로 인해 급격하게 늙어감에 따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의 길을 걸은 그에게 이 늙음은 “텅 빈 노화”(53쪽)였다. 또래 친구 하나 없고,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그가 아무리 책을 읽으면서 비어 있는 시간을 채우려 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책의 문장 속에서 이 텅 빈 삶을 채울 것을 찾는다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방송 출연과 사람들의 댓글과 사연과 응원 등이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고 그 공간을 채우게 만든다. 누구나 겪는 첫사랑과 십대의 투정은 노화와 상관없이 빛나고 그 짧지만 강렬한 경험은 노화를 뛰어넘어 십대 아름이를 마주하게 한다. 이 소설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성장을 담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의 다음 장편이 두근두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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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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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재미있는 내력이 있다. 첫 째는 작가의 아버지가 다자이 오사무의 열혈 팬이었다는 이유로 다자이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 온 편집자의 기획에 마음이 동해서 쓴 다자이 오사무의 1988년 발표된 미완성작 <굿바이>의 속편 격인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 조금 걱정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미완성작 문체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이사카 고타로만의 재미와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이것은 정말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읽기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이다.

오사무의 미완성작 <굿바이>의 기본설정을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한 확인은 못했지만 여러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던 남자가 여자들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낯선 여자와 함께 한 사람씩 방문하여 이별한다는 설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원작이 몇 명인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다섯 명이다. 총 6화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먼저 각각의 여자를 만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 헤어지기 위해 다시 찾아가서 거짓말 같은 사연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여자들의 사연을 듣고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호시노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이한 인물이다. 다섯 명의 애인을 사귀었지만 그 속에는 그 어떤 계산된 의도가 없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수하다. 이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간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 사실을 그녀들이 몰랐다는 것은 더 놀랍다. 뭐 그의 순수함 때문에 그가 보여준 행동을 모두 이해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한 명의 애인과 헤어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에피소드는 왜 이사카 고타로인가를 잘 보여준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흥미로운 전개와 유머가 쉼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주연인 마유미의 존재는 우유부단하고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호시노를 변화 속으로 몰아넣는다.

다섯 명의 여자를 사귄 호시노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이 마유미다. 그녀는 키 180센티에 몸무게 180킬로가 넘는 거구의 여자다. 거구보다 더 재미난 것은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다. 안하무인의 행동과 말이 상당히 눈에 거슬려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아마 호시노와 대립된 곳에 그녀가 위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호시노의 애인들을 만나 독설을 내뱉고 여자들의 아픔을 보고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하지만 결국 호시노의 바람을 들어주는 역할이다. 그가 결코 지녀본 적이 없는 무력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말이다. 그리고 호시노가 변한 것 이상으로 그녀도 변한다. 그것은 마지막 단어의 받침 하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그 버스’다. 그가 어떤 사건과 돈 문제를 가졌기에 ‘그 버스’를 타고 인간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곳으로 갈까 궁금했다. 과연 ‘그 버스’라는 것이 실존하는지도 의문이고, 사건과 돈 문제도 어떤 것이길래 이런 무시무시한 버스를 타게 되는지도 말이다. 사실 이런 궁금점은 소설을 읽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 버스와 사건과 돈 문제가 각 애인들의 사연 앞에 힘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켜준다. 부족한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워가면서.

순수함과 착함으로 무장한 남자 호시노와 악의와 거침없는 행동과 말로 거구에 존재감을 더하는 여자 마유미는 정말 묘하고 멋진 콤비다. 첫 장면에서 이 둘이 호시노의 애인을 찾아가 그 상황을 설명할 때 그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이 둘의 부조화한 매력에 빠졌다. 이것은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과 연결되고, 작가가 지향하는 바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창한 의미나 상황을 제쳐놓고 재미만 놓고 본다면 역시 이사카 고타로다. 어쩌면 너무 빨리 읽다가 거창한 의미나 상황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이 콤비의 활약을 다른 이야기 속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콤비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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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경제 전쟁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미르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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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표지에 나오는 “당신은 약자인가, 강자인가?”와 “길을 걷다가 돌이 나타났을 때,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왜 이 문장들이 중요하냐고? 저자는 3부 15장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면서 피해가기보다 이 상황을 슬기롭게 혹은 현명하게 혹은 현실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해답을 내놓았다는 점은 독자들이 깊이 숙고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1부 경제의 역습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소매업의 붕괴 위기와 저신용 사채를 다룬다. 저출산 고령화야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다루어졌고, 점점 더 공감하는 부분이라 쉽게 다가왔다. 대기업 유통업의 SSM 진출이 동네상권에 미치는 영향도 기존 지식을 크게 넘지 못했다. 하지만 사채로 넘어가게 되면 상식과 지식을 통해 알고 있던 것을 넘어선 내용들이 나온다. 그것은 사채의 조달 금리와 다단계 판매다. 사채를 흔히 신문 등의 매체에서 다룰 때 자극적인 이자율에 중점을 두는데 저자는 왜 이런 고금리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면서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부업 이용을 권유한다. 물론 이런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없는 등급 외 사람들의 경우는 다른 문제지만 공감할 내용들이 많다.

2부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는 펀드, 보험, 아파트, 연금, 청년실업 등을 다룬다. 이번에 다루는 주제들은 사실 기존 정보와 그렇게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펀드와 보험와 연금에서 공부와 설계를 강조한 부분은 너무 뻔한 이야기다. 집값의 완만한 하락 주장보다 더 급격한 하락을 예상하는 분석을 읽은 적이 있기에 이 부분에선 조금 시각이 갈린다. 누구나 알듯이 아파트가 거주 목적이 아닌 금융자산이라고 할 때 순간 미래가 암울했다. 자기 소득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파트 가격을 볼 때마다 그렇다. 청년실업 대책으로 중소기업 육성 부분에서 공감을 하고, 통계 착시를 통해 실업률을 왜곡하는 현실에서 인턴 같은 임시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절실히 느낀다.

3부 새로운 희망에서는 농업, 에너지 전쟁, 사회적 기업, 금, 벤처캐피탈 등을 다룬다. 한국 농업의 구조적 정책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고, 우라늄과 원자력 부분은 집필 당시와 변한 사회 정치적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긴급 부록에서 일본 대지진을 다루지만 이 에너지에 대한 쟁점을 좀더 부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금은 이미 이것을 소재로 한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었다. 관심이 가는 주제는 사회적 기업과 벤처캐피탈인데 개인적으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의 미래는 전체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벤처캐피탈에 대한 저자의 간결하지만 인상적인 글들은 사회적 기업과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전에 읽은 미네르바의 책에 비해 깊이나 분석은 좀 떨어지지만 현실적인 내용이 많아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그의 해법은 하나의 참고자료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대안만 신봉할 경우 또 다른 문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약자와 강자를 묻고 걸림돌과 디딤돌을 말할 때 이미 우리의 마음은 정해졌다.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고,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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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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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지 오웰의 책들이 다시 번역되어 나온다. 예전에 읽지 않았던 소설이나 르포도 덕분에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이 작품은 처음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럴 때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숨은 걸작이란 상투적인 문구에 어쩔 수 없이 눈이 가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이름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에 더욱 그렇다. 책 소개에 나오는 이 작품에 대한 정보는 사실 무겁다. 그런데 첫 문장을 읽고 난 후 이 뚱뚱한 중년 보험사원에게서 잠시 잊고 있던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간 후 현재가 이어진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당연히 현재가 아닌 과거다. 그래서인지 분량도 가장 많다. 이 과거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나와 우리 아버지들의 잊고 있던 역사다. 역사란 거창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누구나 살아온 길이 있다. 아무리 평범한 인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과거는 그가 현재에서 도망갈 유일한 곳이자 희망이 깃든 곳이다. 아내 모르게 생긴 17파운드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중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간다. 이 과정에 중년 가장의 삶이 하나씩 밝혀진다.

틀니를 낀 마흔다섯 살 중년의 아침으로 이야기 문을 연다. 일상적인 가정의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는 힘겹게 살아가는 한 가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사는 곳 웨스트블레츨리의 엘즈미어로드 교외주택단지로 장면이 바뀌면서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주택금융조합의 영악한 사기 행위는 현대의 재건축조합이나 토건족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 이런 현실 속 조지의 일상이 그려지고 조그 왕이란 이름이 기억을 자극한다. 이 자극된 기억 속 세계는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 속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의 유년 시절, 청년 시절, 군 시절, 제대 시절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풀어낸다. 성실한 부모 아래에서 평온하게 자란 그의 유년 시절 기억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부모들의 과거를 떠올려준다. 현재 삶의 무게에 짓눌려 뚱뚱해지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지만 찬란하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변화의 바퀴는 굴러가고 적응하거나 변하지 못한 사람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다루는 장면에서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향수와 그리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데도 말이다. 

그리고 전쟁. 1차 대전은 삶을 바꿔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경험이 나중에 전쟁과 정의를 외치는 젊은이들과 선동가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경험이 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이어지지만 선동에는 찬성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과 통찰로 이어진다. 이미 지나온 역사이기에 그의 통찰력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다. 전쟁보다 전쟁 후를 더 걱정하는 그의 인식에서 그가 걸어온 삶의 무거움과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뚱보 조지의 말과 행동과 심리를 통해 유머와 위트를 계속 풀어낸다.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즐겁게 읽게 만드는 힘이 바로 여기서 생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핵심은 2부와 4부라고 생각한다. 2부가 조지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면서 시대의 흐름과 한 개인의 삶을 잘 표현했다면 4부는 현대 속에 무너진 과거의 흔적과 현대 사회의 불안과 소외와 공포다. 2부에서 그가 가장 행복을 느꼈던 낚시를 위해 4부에 찾아간 고향은 이미 과거 기억 속 장소가 아니다. 이 장소와 환경의 변화, 조지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 추억과 현실의 불일치 등이 격렬하게 대립한다. 속된 말로 첫사랑은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일상에 지친 그가 숨 쉬러 간 그곳이 오히려 그를 질식시킨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본 표지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공돈이 생긴 한 가장의 일탈기라고도 할 수 있다.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던 그가 싫증을 느껴 숨 쉬러 간다. 실제 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탈(?)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이 더 각박해지고 빨라지고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라는 괴물이란 표현이 미래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도 숨 쉴 곳을 찾지만 생활과 경제라는 단어들이 나를 삼켜버린다. 혹시 내가 숨 쉴 곳을 찾는다 해도 주변 사람들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지막 문장에서 그가 선택할 것을 아는 것처럼 나의 선택도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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