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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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프랑스 추리문학상대상 수상작인 미셸 크레스피의 <헤드헌터> 재간으로 생각했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지만 작가 이름을 잊고 있던 작품이다. 하지만 출간 연도와 간단한 책 소개를 읽으면서 다른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잘나가는 스릴러 작가라는 평은 흔한 광고 문구처럼 보이지만 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가를 거장들의 유럽판이라고 할 때는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모두 읽은 지금 완벽한 동의는 힘들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정확한 판단은 유보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는 제임스 시겔의 <탈선>이 떠올랐다. 

헤드헌터는 이 소설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역(임원)이나 전문인력 등을 기업체에 소개해 주는 사람이나 업체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글 그대로 머리 사냥꾼이다. 이 중의적인 의미의 사용은 주인공의 직업과 대결을 의미한다. 주인공 로게르의 낮 동안 직업은 헤드헌터다. 밤에는 그가 면접 본 사람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미술품을 훔치는 도둑이다. 최고의 헤드헌터인 그가 밤에 미술품을 훔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필요해서다. 그가 번 돈 대부분은 사랑하는 아내 디아나 밑으로 들어간다. 그녀와 함께 사는 필요 없이 큰 집과 그녀가 운영하는 적자투성이 갤러리 E를 위해서. 

최고의 헤드헌터인 그는 항상 고객이 원하는 사람을 추천하고 고객들은 항상 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그는 FBI의 9단계 심문 기법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속내를 기가 막히게 읽어낸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의 키 콤플렉스가 살짝 곁들여 있다. 그는 북유럽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60대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170에 늘씬한 미녀다. 그는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기를 바란다. 아내는 아기 갖기를 원하지만 그 아이에게 아내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다. 낙태를 권유한 조건으로 내 준 것이 갤러리 E다. 이 때문에 다른 위험한 부업이 생겼다. 그렇지만 진짜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가 지닌 탁월한 헤드헌터 능력 때문이다.

아내의 특별 초대전에 그는 한 남자를 소개 받는다. 바로 클라스 그레베다. 그는 전직 호테라는 기업의 CEO였다. 한때 유럽의 방위 산업에 GPS 기술을 제공하던 소규모 하이테크 기업이었다. 그는 이 기업을 인수합병으로 미국에 회사를 판 상태다. 그런데 이 업체를 모텔로 삼은 패스파인더가 CEO를 찾고 있다. 본능적으로 이 만남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고 느낀다. 그와의 면접은 그를 확신시킨다. 패스파인더가 요구하는 것 중 국적 문제가 있지만 그의 화려한 경력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가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에 대해 묻는다. 놀랍게도 2차 대전 때 사라진 루벤스‘칼리돈의 멧돼지사냥’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만 훔치면 그의 삶은 안정되고, 아내가 바라는 아이도 가질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그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다.

보안회사 직원 우베 세케루드는 로게르의 미술품 절도 파트너다. 그가 있기에 쉽게 미술품을 훔치고 이 미술품을 암거래상에게 팔 수 있다. 이 둘의 협업은 은밀하고 누구도 이 둘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그만큼 둘의 만남은 신중하고 비밀스럽다. 바로 이 신중하고 비밀스러운 만남이 다음에 벌어질 사건에 핵심으로 등장한다. 그 시작은 클라스 그레베의 인터뷰에서 살짝 나오고, 그의 집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앞에 깔아둔 장치들이 하나씩 힘을 발휘하면서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제 책 제목의 다른 의미인 머리사냥꾼 이야기로 변한다. 쫓고 쫓기는 행동이 이어지고, 그 도중에 연속적인 살인이 벌어진다. 조금만 실수해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이 과정을 작가는 세밀하게 준비하고 구성하면서 한방 크게 터트린다. 멋진 구성이자 전개다. 그리고 살짝 숨겨둔 반전이 조그만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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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넘버 포 2 - 생명을 주관하는 소녀, 넘버 세븐 로리언레거시 시리즈 2
피타커스 로어 지음, 이수영 옮김 / 세계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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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빠르게 시리즈 2권이 나왔다. 얼마 전에 시리즈 첫 권이 영화로도 나왔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만약 봤다면 영화 이미지가 이 소설을 읽는데 영향력을 상당히 많이 발휘했을 것이다. 전투 장면이나 등장인물들의 이미지는 아마도 영화 속 장면들이 압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미 다른 원작 소설을 둔 영화에서 경험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원작의 이미지는 상당히 사라지고 머릿속에는 영화 장면들로 대체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불만이다. 내가 상상한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본다는 좋은 장점과 달리.

전편 이후 이야기를 당연히 다룬다. 존과 식스와 샘은 하나의 팀이 되어 달아나고, 새로운 가드가 등장한다. 부제에 나오는 생명을 주관하는 소녀, 넘버 세븐이다. 새로운 등장이니만큼 분량도 상당하다. 전편은 존이 중심이다. 당연히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그가 있다. 그가 느끼는 외로움, 안타까움, 두려움, 불만, 공포, 사랑 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시리즈 첫 권으로서의 기본을 잘 지키고 있다.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는 모르지만 영화 이미지도 강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발현된 능력들이 더 자주 나온다. 당연히 전투 장면이 늘어났다. 읽을거리가 더 많아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긴장감은 조금 덜해졌다. 

많아진 전투 장면이 재미를 주지만 긴장감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등장인물 세븐 마리나로 인해 전편의 연장선에 선 느낌을 준다. 자신과 같은 운명을 가진 가드들을 찾는 다른 넘버들의 삶과 불안과 공포를 말이다. 그녀의 비중이 많아진 것은 기존 등장인물들의 삶을 조금은 단순화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전편의 사건으로 FBI에 테러리스트로 수배되는데 이 긴장감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잠시 쫓기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긴장감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특히 식스와 함께 한 후 모가도어 인과의 전투가 어느 순간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들의 능력이 더 커지고 레거시를 운용하는 능력이 더 좋아진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것을 감안했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강적 세트라쿠스 한 명을 살짝 등장시킨다. 본격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다음 시리즈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물론 여기에 맞춰 살아남은 가드들도 한 명씩 모일 것이다. 더 많이 모인 만큼 전투는 더 격렬해지고 거대해질 것이다. 문득 이번 소설을 다 읽은 후 <트랜스포머 3>의 영상들이 떠올랐다. 아마 그 영화가 전투로 시작해서 전투로 끝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들의 행성을 잃었지만 지구에서 그 능력을 새롭게 발휘하는 것과 함께 연관시켜서 말이다. 거기에 기본으로 깔아놓고 있는 주인공의 사랑과 화려한 볼거리까지.

전편에서 존이 느낀 복합한 감정들이 세븐을 통해 어느 정도 나오지만 약간 부족하다. 그녀의 세판인 아델리나의 심리 변화가 너무 갑자기 변한 것도 아쉽다. 조금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현실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소설에서는 역시 아쉽다. 그리고 그녀의 활약이나 존재감이 약한 것도 이 아쉬움에 일조를 한 것 같다. 아마도 전편에서 존과 헨리의 관계를 본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날려버릴 새로운 가드들의 등장과 연속되는 전투 장면은 오락소설의 본연에 충실하다. 깊이를 버리고 재미를 확실하게 선택했다. 과연 가드들의 만남과 모가도어 인과의 전투가 어디까지 발전하고,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하다. 중요한 등장인물들의 죽음에 가차 없는 전개 또한 다음에는 누굴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시리즈 끝까지 기다려진다. 다음 시리즈는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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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가득한 심장
알렉스 로비라 셀마.프란세스 미라예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비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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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이다. 촘촘하게 편집하면 단편 분량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단편 소설 이상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차분해지고 가슴 깊숙이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단숨에 읽게 되지만 그 사랑 이야기에 잊고 있던 순수함과 열정을 깨닫게 된다. 열 가지 사랑 이야기가 주는 평범하지만 진실한 사랑은 우리가 가끔 혹은 너무 자주 잊고 있던 것들이다. 너무 흔해서 평범하게 느껴지고 소중함을 모른다고 흔히 하는 말처럼.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별을 말할 때 평소 너무 인색했던 그 단어가 왜 그렇게 가슴에 와 닿던지 모르겠다.

첫 장에 가위소년이 나왔을 때 조금 섬뜩했다. 2차 대전 다음 해인 1946년을 배경으로 했기에 더욱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희생자라는 단어가 즐겨 읽던 추리소설을 연상시키면서 이런 분위기를 더 조성한 모양이다. 하지만 희생자는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이다. 옷도 전부가 아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각 별 모양으로 오려낸 것이다. 살짝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든다. 희생자가 한 명씩 더 늘어나면서 이 사건은 프랑스의 자그마한 도시 슬롱스빌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추위를 막아줄 얼마 안 되는 옷가지를 잃을까봐서.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과 전후 물자부족과 궁핍한 경제생활 등을 말이다.

왜 이렇게 손바닥만 한 옷자락을 자르는 것일까? 이 의문은 바로 밝혀진다. 섬뜩함도 잔인함도 악의에 찬 행동도 아닌 한 소년의 순수한 사랑 때문이다. 이 괴이한 사건의 범인은 슬롱스빌 시립 고아원에 살고 있는 미셸이다. 그는 같은 고아원의 소녀 에리를 사랑한다. 이 둘의 사랑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나 꼭 붙어 다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더 놀랄 정도다. 그런데 어느 날 에리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병의 원인도 모른다. 현대 의학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코마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미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때 어두컴컴한 아케이드 아래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초라한 할머니를 만난다. 

슬프고 절망에 빠진 그가 이 불쌍한 할머니에게 일주일치 양식 값인 1프랑을 준다. 에르미니아 할머니는 그의 슬픔을 읽고 그에게 이유를 묻는다. 그는 사랑하는 에리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에리의 병이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병이라고 말한다. 사랑 결핍을 치료한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서로 다른 아홉 가지의 사랑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서 그 사람들 모르게 옷을 별 모양으로 오려야 하는 것이다. 이 아홉 조각을 꿰매서 별이 가득한 심장을 만들어 에리에게 주면 된다. 여기에 열 번째 비밀의 별이 더해져서 에리를 낫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가위소년이 탄생했다.

아홉 가지 사랑을 찾아 떠난 소년에게 진실한 사랑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녀 간의 사랑이 비교적 쉽게 보인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녀가 너무 쉽게 싸운다. 그들 옆에 기묘한 한 쌍의 남녀가 앉아 있다. 여자는 아주 추한데 남자는 굉장한 미남이다. 이 묘한 연인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보면서 의문을 품는다. 여자가 엄청난 부자일까? 그 옛날의 농담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그 비밀은 곧 밝혀진다. 남자가 맹인이다. 이 둘은 외모의 벽을 허물고 자신들이 찾던 왕자와 공주를 발견한 것이다. 미셸은 완벽한 한 쌍의 사랑을 찾았다. 이렇게 소년은 사랑을 하나씩 발견하고 깨닫게 된다.

이어지는 사랑은 오래 지속되는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 책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등이다. 이 사랑들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거나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별 모양의 옷자락을 오려내는 미셸의 모험은 한 소년의 성장소설인 동시에 러브스토리다. 그 마지막 완성은 별이 가득한 심장을 들고 찾아간 에리의 병실에서 “사랑해, 에리.”라고 말할 때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모두 읽은 지금도 이 단어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나의 사랑이 부족한 모양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사랑해’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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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
정의한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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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의 시선을 끄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라오스다. 요 몇 년 휴가 때 다녀온 곳은 태국이다. 혼자 배낭 하나 매고 간 그곳은 어느 순간 너무나도 낯익은 곳으로 바뀌었다. 여름 휴가가 다가오면 직장 동료들이 이번에도 태국 갈 것인지 물을 정도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그렇게 길지 않은 휴가 동안 편안하게 여행하고, 특별한 준비 없이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낭 매고 두세 번 다녀오는 사이 익숙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끔 태국 관련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힐끗 쳐다보는 여행지가 라오스였다. 백수로 지낼 때 함께 여행을 갔던 후배가 한 달 동안 동남아 여행을 하자고 할 때는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몇 권의 책과 정보 때문에 여행지 우선순위로 바뀐 것이다. 그러다 만난 이번 책은 그 환상을 심하게 키워줄 것을 생각했다. 예상은 생각보다 많이 빗나갔다.

솔직히 라오스에 대한 정보를 본격적으로 검색한 것은 최근이다. 낯익은 태국을 조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다. 라오스에 대한 단순한 정보만 알고 싶다면 라오스 관련 여행안내서 한 권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늘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솔직한 경험담이다. 작년에 <굿빠이, 여행자 마을>을 손에 들고 주저 없이 빠이로 떠났다. 책 정보에 혹해서 떠난 것이다. 실제 그곳에 도착해서 만난 빠이는 책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여행자와 그곳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본 것의 차이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래도 빠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평온과 아쉬움을 남겨줬다. 이 책을 선택할 때 어느 정도 작년 같은 일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나의 현실이 그것을 뒷받침해주지 않지만.

제목만 보면 얼마나 황홀한 여행을 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런데 저자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황홀한 여행의 환상이 깨어진다. 물론 그가 경험한 멋지고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풍경이나 감상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라오스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느끼는 솔직한 감상이다. 이 감상은 이 책을 읽기 전 라오스 관련 여행 사이트에서 검색한 것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일주일 동안 라오스를 간다면 어디로 갈까 고민했던 곳들이 하나씩 무너지거나 큰 의미가 없어지고 전혀 낯선 지명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길에서 만난 라오스 생태우 기사들의 장삿속은 그곳에서 만나게 될 순수함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물론 이해한다. 어느 나라나 이런 기사나 사람들이 있으니까.

홀로 여행하는 사람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부분에서 왠지 심하게 공감하게 된다. “비어 있는 침대에 누군가 있다면 정말 손만 가만히 잡고 자고 싶을 정도로 한 손이 아쉽다.”(30쪽)고 말할 때 숙박을 위해 들어간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의 더블베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때 나도 그 빈 옆자리를 누군가로 채워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한 반면 나는 심한 낯가림으로 나만의 길을 갔다. 짧은 시간 내 속으로 좀더 들어가고 외롭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마 저자처럼 한 달 이상 여행한다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행 안내책을 비난하는 외국인에 대한 하나의 반론으로 나온 문장은 또 다른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것은 “위대한, 어행을 통한 사람들의 마음의 치유라는 성과에 경의를 보내는 편이다”(94쪽)란 문장이다. 관광이 그곳을 단순히 보러가는 것인 반면 여행은 그곳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홀로 떠난 여행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면서 좀더 나 자신을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낯선 풍경에 눈길을 보내고,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두려워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잊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가 여행했던 곳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탐롯콩로다. 그가 경험한 동굴 여행은 그가 말한 대로 제대로 그 감상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문자 너머로 그 벅찬 감동이 전해진다. 사실 이곳은 이전에 라오스를 검색하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곳이다. 또 그가 예찬한 마을 나힌과 라오스의 항아리 전골 요리인 ‘머쯧’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라오스의 우선순위를 모두 바꿀 정도다. 물론 이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탐롯콩로를 같이 간 외국인들이 그가 느낀 감동의 반도 채 느끼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엄청난 감동을 줬다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인 여행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라오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데 개인적 호불호가 너무 분명해 정확한 참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한 여행지에서 다른 곳을 포기하고 간 곳에서 실망을 느낀다. 이때 그는 다른 곳에 갔다고 해도 이곳을 그리워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자의 실질적이고 현명한 기본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짧지 않은 여행이다 보니 좋은 인상 못지 않게 나쁜 인상을 받는 곳도 많다. 하지만 결국 그는 말한다. 고맙다고. 자신을 조용히 받아주었고 또 가만히 봐줘서. 그 역시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떠난다고. 40일 간의 라오스 여행 기록에 실린 부분적인 나쁜 부분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지금 나를 자극한다. 빨리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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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밖으로 달리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6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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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sf소설인 줄 알았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비슷한 제목과 시간 밖이란 단어 때문이다. 표지를 봐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선입견이 작용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책을 펼쳐들고 앞부분을 읽으면서 19세기 말 풍경과 뭔가 어색한 장면들이 나오면서 이제 본격적인 sf 이야기로 넘어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클리프턴은 19세기 말에 존재했을 것 같은 마을 하나를 그대로 현실에서 재현한 곳일 뿐이다. 그들이 실제 살고 있는 시대는 1996년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클리프턴은 실제 존재하지만 현실의 시간 밖에 존재하는 가상의 마을이다. 제목에서 시간 밖으로 달린다는 것은 주인공 제시가 살고 있는 마을의 시간이 그녀가 그 마을 벗어나는 순간 실제 현실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녀가 지금까지 믿고 있던 시간과 공간 밖으로 나가면서 그 둘의 차이가 급속하게 벌어진다는 의미다. 그녀를 옆에서 본다면 당연히 그녀가 현실 속에서 움직이지만 그녀의 심리와 문화 상태 등을 생각하면 이것은 먼 미래의 세계다. 이 제목의 의미를 깨닫고 참 제목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제시가 평화로운 클리프턴을 떠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마을에 창궐하는 전염병 디프테리아를 치료할 약을 찾기 위해서다. 단순히 이 내용만 보면 성배를 찾아 떠나는 원탁의 기사 느낌이 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병 때문에 제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진실을 알게 되고 시간 밖으로 나가게 된다. 결코 그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로 말이다. 그리고 이 모험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이지만 150년 이상의 시공을 초월한 그녀에게는 낯설고 신기하고 두려울 뿐이다. 작가는 이 낯설고 두려운 세계와의 만남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클리프턴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과거 마을이다. 이 마을을 만든 백만장자의 노력 외에도 이 마을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른들이 현재에서 과거로 옮겨왔다면 아이들은 과거가 현재인 줄 알고 살았다. 당연히 마을의 생활습관이나 문화는 과거를 재현하는 쪽으로 흘러갔고,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나 도구는 금기시 되었다. 이 마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클리프턴의 풍경을 떠올리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혹시 그 영화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의문이 생길 정도다. 뭐 다른 소설인가에서 이런 비슷한 설정의 마을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어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디프테리아 약품을 구하고, 언론에 클리프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시간 밖으로 나간 제시의 모험 이야기다. 시간과 문화 충격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성장을 돕고, 우리의 현재를 낯선 시각에서 쳐다보게 된다. 더불어 제시의 모험을 통해 쫓기는 여자 아이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같이 경험하게 된다. 낯선 시각에서 본 낯익은 풍경은 신선하고, 클리프턴의 풍경은 혹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들여다보는 다른 존재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영화 <맨 인 블랙 2>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결코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재미도 있지만 수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지닌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제시가 클리프턴을 달아나는 과정과 달아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미스터리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있다.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고, 그 비밀을 풀기 위해 13살 여자 아이는 정말 최선을 다한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와서 그 긴장감이 너무 풀려서 아쉬움이 있지만 멋지다. 가끔 종말론을 다룬 소설처럼 현재의 최첨단 삶을 갑자기 모두 잃고 그 답답한 과거로 퇴행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과연 우리는 제시처럼 빠르게 현실에 적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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