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2011년 제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이다.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과 묘사에 마지막까지 독자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기묘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들과는 조금 방향을 달리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환자와 의사소통을 한다니 흥미로운 설정이다. 거기에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은 기존 이 상 수상작과 분명히 차별화가 될 것 같다. 가끔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것도 과연 미스터리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하는 작품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은 어떨지 궁금하다.

요네자와 호노부, 그가 2005년 발표한 장편소설이자 처음으로 도전한 본격 미스터리물이다. 담담하고 간결한 터치로 그늘진 청춘상을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그의 개성과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이라는 평이 눈길을 끈다. 애완견을 찾아주는 탐정이 되려고 한 그에게 찾아온 첫 의뢰인이 손녀를 찾아달라고 한다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다.
상반된 성격의 두 인물이 엉겁결에 떠안은, 역시나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이 점점 하나로 연결되어가는 과정은 본격 미스터리에서만 접할 수 있는 긴장감과 쾌감을 선사한다고 하니 이제 마지막 발악을 하는 무더위에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배명훈 작품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의 소설엔 경계가 없다. 상상력의 경계가 없고 표현의 경계가 없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경계가 없고, 인물과 캐릭터와 사물과 사상의 경계가 없다." 이 문구를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무릎을 탁 친다. 맞다.


찰리 파커 시리즈 첫 권이다. 시리즈 첫 권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비록 읽다가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시작부터 읽는다는 즐거움과 시리즈로 계속 나온다는 혹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를 위한 하나의 좋은 안전장치다.
연쇄살인범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는 찰리 파커. 경찰직을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살해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는다는 설정과 도시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살인마의 흔적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킬지 기대된다. 특히 책 소개글 마지막에 나오는 '사악한 범인을 쫓아 결국 그도 악마의 탈을 쓰는가?'는 문구는 도식적이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얌전한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백가흠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읽기 전에 이 작가에 대한 평은 그리 온화한 것이 아니었다. 엽기라는 단어가 보였는데 이번에는 조금 변했다는 평이 나온다. 이전 작품이 얼마나 과했는지 모르지만 백민석의 소설이나 다른 미스터리 스릴러에 단련된 나에게 과연 이것이 통용될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예상외로 잔잔하다. 누군가는 하나씩 해부하면서 힌트는 도련님이라고 말한다. 자전적 내용이 담긴 글에서 창의성이 바닥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바로 과거의 답습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힘겹게 찾아낸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 접한 이 작가의 과격하고 엽기적인 전작에 대한 호기심을 누그러트릴 정도는 아니다.

단편소설 여덟 편이다. 요즘 한국 단편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것을 떠올리면서 책을 꺼내 들었다. 첫 소설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를 읽었다. 제목부터 상당히 인상적이다. 소문이 단련된다는 것이 어떤 말일까? 이 소설은 사라진 두 여자를 둘러싼 소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탈북여성 림혜숙과 의사 남편을 둔 장 약사라는 위치는 사실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말도 없이 사라졌다. 림혜숙을 그리워하고 찾는 김 씨나 며느리가 사라진 것을 태연한 척 넘기려는 황 약사의 대응 방법도 다르다. 이런 와중에 소문이 마을 가득 생겼다 사라지는 소문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순간 보이는 몇 장면에서 작가에 대한 평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출발이다.

<그런, 근원>은 한 남자의 삶을 축약해서 보여준다. 불행했던 과거사와 현재를 다루는데 이 이야기들은 그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가는 도중에 벌어진 회상이다. 그의 가족사는 현대사에 가끔 나오는 그것과 비슷하다. 아버지의 실종, 어머니의 가출,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탐욕. 여기에 동생은 깡패 짓에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는 생존을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다 때밀이하다 발탁된 기획사 매니저 직업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이 새로운 삶이 그를 세련된 듯한 인물로 바꾸지만 삶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의 노인은 한때 나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책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 시절의 나 말이다. 물론 소설 속 노인은 나보다 훨씬 심하다. 미래에는 이런 삶을 어느 부분 부러워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집과 서재에 매몰된 삶을 사는 이 노인 조금 이상하다. 이웃과의 대화나 상황이 현실을 넘어섰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신 안으로 파고들고 매몰된 삶과 죽었던 작가가 쓴 글씨가 사라져버리는 장면이 겹쳐진다. 

표제작 <힌트는 도련님>은 자전적인 글이다.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꼈는데 다른 이들의 평을 보니 확실하다. 과거와의 이별, 새로운 창작을 위한 고통을 다루는데 곳곳에 유머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유머가 폭소를 터트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허탈하거나 자조적인 웃음에 더 어울린다. 그렇지만 아직 읽지 않는 작가의 전작들을 생각하면서 이번 작품집에도 그런 강한 소설 한 편이 실려 있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대형서점에 자신의 책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소설가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는 키 작은 한 남자의 하루를 다룬다. 그는 정수기를 판다. 그의 키는 150센티미터다. 이 작은 키 때문에 정수기를 잘 팔지만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40이 넘었지만 비교적 동안 때문에 학생으로 오해를 받고,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는 그가 움직일 공간을 제약한다. 정수기를 팔기 위해 간 동물원은 그의 과거를 떠올려주고, 현실은 다시 그를 압박한다. 딸아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을 산 그가 고민하는 장면에서 가슴 한 곳이 짠해진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통>은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삶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느꼈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또 그들을 이용해 권력과 금력을 약취한 자들이 누군지 보여준다. 피상적이었던 그 고통이 현실로 다가오고 어떻게 그들이 고엽제 피해자가 되었는지 볼 때 나의 참을성 없었던 과거가 겹쳐졌다. 현실의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더 큰 고통을 가하는 장면이나 약으로 환각의 세계를 빠져든 그를 볼 때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쁘이거나 쯔이거나>는 두 문제를 하나로 엮어내었다. 하나는 농촌 노총각 문제고, 다른 하나는 당연히 베트남 여성의 결혼 문제다. 결혼이라는 관습과 한국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이 결합은 결국 파국으로 이어진다. 환상이 깨어진 자리를 채워줘야 할 남편은 마마보이에 본전 생각과 성욕만 가득하다. 오십이나 된 아들이 어린 아내와는 섹스만 하고 잠은 엄마 옆에서 잔다. 먼 타국으로 온 쯔이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에 오면 늘 볼 것 같았던 동방신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텔레비전에서 본 서울의 화려함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 마흔여덟의 시동생까지. 환상이 사라지고 비루하고 처참한 현실만 자리한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파국은 너무나도 뻔하다. 더불어 마지막에 두 형제가 공모하는 웃음은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이다.


는 이 단편집 중에서 가장 발표가 빠르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 과연 어디까지 자전적인지 알기 쉽지 않다. P가 말하는 과거사 중 한 장면은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이나 언론을 통해 자주 보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 속에 참가한 사람의 반응은 낯설다. 특히 어떤 정확한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참여한 사람이 아닌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예전에 소설가 친구가 있으면 어떤 이야기하기가 겁이 난다고 한 글이 생각난다. 다음에 소설로 그 이야기가 활자화되기 때문이란다. 과연 이 소설 속에는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을 읽었다. 단 하나의 장편으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그다. 바로 그 유명한 <은하영웅전설>이다. 이 소설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등장인물과 장대한 전쟁 이야기에 완전히 빠졌었다. 지금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가끔 들었는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그 재미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이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를 보면서 역시!를 외쳤던 적이 있고, 이 소설에서 <은영전>의 향기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지구의 북극점이 태평양 동북부로 바뀌는 대전도를 설명한다. 이 대목은 얼마 전 읽은 <문 로스트>를 연상시켰다. 물론 <문 로스트>와 이 소설이 다루는 내용도 대륙의 변화도 다르다. 하지만 대륙의 날씨 변화라는 점은 이 두 일본작가가 왜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혹시 지진 등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특유의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니면 이 원작들이 나올 당시 이런 종류의 대재앙을 다루는 내용이 하나의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공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전도 전 인류는 달에 월면도시를 만들고 거주했다. 대전도는 3년에 걸쳐 벌어진 대재앙이다. 이 때문에 100억 명의 인류가 죽었다. 대전도 후 월면도시의 사람들은 신의 강림처럼 내려와 완벽한 도시 및 자원 개발 계획에 따라 일곱 도시를 건설한다. 이 일곱 도시는 당연히 경쟁을 하는데 작가는 하나의 전제 조건을 단다. 월면도시 사람들이 지구 표면의 사람들이 지상 500미터 이상 날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이상을 날아오르면 올림포스 시스템에 의해 파괴된다. 이 장치로 달은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하지만 월면도시가 달을 강타한 운석의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되면서 지배자는 없지만 시스템에 의해 제약되는 지구를 만들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런 환경 속에 벌어진 일곱 도시 이야기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각각 길지 않은 분량인데 전쟁과 영웅과 정치를 다룬다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 <은하영웅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본 구성은 간단하다. 정치 문제가 전쟁으로 발전하고 이 전쟁에서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한다. 재미난 부분은 군인을 철저하게 정치에 부속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은영전>에서 라인하르트를 통해 위대한 독재자가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보여주는 반면 양 웬리를 통해 민주주의의 혼란 속에 감쳐진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의 모습이다. 물론 이 소설 속 사령관들은 정치인들을 위해 전쟁을 하지만 가끔 태업을 하면서 조율을 한다. 그리고 독재자로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망가게 만들어 정치에 대한 작가의 혐오를 느끼게 만든다. 이 부분은 <창룡전>에서 신랄하게 일본 정치를 비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앞 세 단편이 네 명의 개성 강한 사령관을 등장시켜 전쟁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그 이후 두 편은 이들의 미묘한 견제와 협력 속에 펼쳐진다. 군인 외에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는데 류 웨이다. 첫 이야기 아퀼로니아 전쟁을 다룬 <북극해 전선>에서 날카로운 통찰력과 정확한 판단력과 인선으로 전쟁을 승리하게 만들고 다른 도시로 이주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과 그림자는 전편에 드리워져 있는데 낭중지추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가 충분히 활약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다.

이 소설 속 전쟁 영웅들은 공격이 아닌 방어로 명성을 얻었다. 예외라면 케네스 길포드 정도다. 첫 이야기에서 그가 이끈 대승도 상대 도시 최강의 인물 AAA와의 대결이 아닌 데 이런 직접적인 대결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의외의 전개라면 각 도시 최고의 군인들이 연합으로 한 도시를 공격하는 것이다. 독재자를 몰아내겠다는 목표에서 벌어진 <페루 해협 공방전>은 최강의 군인들이라도 하나의 지휘계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그 위력이 반감됨을 보여준다. 하나의 명령 아래 긴밀한 협조와 치밀한 계획과 자기희생이 따랐다면 쉽게 승리했을 이 전쟁을 말이다. 그리고 재미난 부분은 이들이 정치인들의 욕심을 견제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더 챙긴다는 것이다. 가끔 전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무모한 공격을 감행하는 장군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예외적인 인물들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는 변함없다.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화 두 개만 말하겠다. “어린애는 스스로 굶어서 장난감을 사지만, 군인은 타인을 굶겨 병기를 사게 한다. 어린애는 마르고 군수 기업은 살찌는 거야.”(162쪽)와 류 웨이가 ‘전쟁 개시 결의에 찬성한 정치가가 최초로 전선에 나올 의무를 진다’는 법률안을 내고 부결된 것을 아스발이 “그야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면, 전쟁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으니까요.(16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한국처럼 고위층의 병역비리가 특히 많은 나라에서 류 웨이의 법률안은 더 큰 울림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파더
이사카 고타로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기발한 발상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 기발함은 우리의 윤리관을 그대로 뛰어넘었다. 그것은 네 명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계사회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의 일본에서 이것이 가능할 수는 없다. 뭐 네 번 결혼했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일상적인 수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공법을 선택했고, 이 네 남자가 한 여자와 동시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연히 한 여자의 남편으로 네 명을 동시에 올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같이 산다. 그리고 같이 한 소년을 키운다. 그 소년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고등학생 유키오다.

유키오는 네 명의 아버지가 키웠다. 분명히 엄마가 있지만 그녀의 등장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만약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누가 이 역할을 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어떤 여자이기에 각각 다른 성향의 네 남자를 사랑했고, 그들을 함께 살게 만들었는지 여배우를 통해 그 이미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뭐 그 여배우가 나의 생각과 너무 다를 경우 심하게 실망할 수도 있지만 소설처럼 짧게 등장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줄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한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고 키우는 네 명의 남자들이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 신경 쓰이는 일이다. 네 명의 아버지라니 얼마나 특이한가.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놀리는 사람이 나온다면 어떨까? 아마 끝까지 숨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최대한 숨기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살짝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도입부다. 타에코와의 하굣길에서 벌어진 조그만 에피소드가 이런 마음을 잘 표현해준다. 이 상황을 보고 반응하는 타에코의 대응도 상당히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1기 작품답게 개성 강한 인물들이 전면에 나온다. 가장 평범한 것 같은 유키오도 보통의 고등학생과 비교하면 상당히 특출나다. 시험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고, 어릴 때 받은 단련으로 농구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시비가 붙으면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허점을 찾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실제 싸움은 하지 않는다. 다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 이상 나아갔을 때 벌어질 상황을 배웠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등학생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졌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오지랖이 넓다. 그 때문에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기지만.

네 명의 아버지는 각각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체육 선생, 대학교수, 도박꾼, 바 운영자 등이다. 이 다른 직업의 남자들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중간중간 나오는데 상당히 많은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느 대목에서는 깊은 통찰력을 보여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물론 저속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질문을 되물으면서 단숨에 넘어간다. 영리하다. 또한 기발하다. 이 장면을 넘어가면 이 아버지들이 과연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해진다. 동시에 이 애정 넘치는 아버지 때문에 유키오가 어떤 고생을 했을지도 조금은 짐작된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구성 실력은 대단하다.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전체 이야기를 짜고 그 속에 복선을 깔면서 풀어내는 능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너무 강한 개성을 보여줘 부조화를 이룰 것 같은데 전체 이야기 속에 그것을 잘 녹여내었다. 당연히 지루함이란 없다. 잠시 쉬어가는 곳도 어떻게 보면 이상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웃게 만들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초반에 사건을 만드는 우엉들을 등장시킬 때마다 웃음을 유발시킨다. 여기에 둔감한 듯 집요한 타에코의 등장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혹시 속편이 나오면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것은 유키오의 엄마 토모요와 네 아버지가 어떤 활약을 펼치고 놀라운 에피소드를 쏟아낼 것인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토>와 더불어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황토>가 시대의 비극 속에 각각 다른 아이를 가진 점례의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1970년대 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와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삶의 터전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복천 영감 이야기다. 전작이 시대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무력한가와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힘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병으로 아내를 잃은 후 너무나도 무력해진 한 가장의 이야기다. 그의 무능력을 사회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의 노력이나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농사꾼 출신인 복천 영감은 칼갈이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의 과거는 현재보다 훨씬 좋았다. 물론 해방 후 가담한 사회주의 활동 때문에 5년 징역을 살았지만 부지런하고 착한 아내 덕분에 자영농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은 고생만 잔뜩 한 아내의 병이다. 병원의 오진으로 돈만 날리고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을 지경에 이르고 큰 고통 속에 죽는다. 지금 같으면 의료사고로 병원에 고소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 시절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릴 때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아내의 병은 집 재산을 조금씩 없애고 결코 빚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 때문에 복천 영감이 선택한 것은 이웃 소를 빌린 후 그 소 판 돈으로 야반도주하는 것이다. 이 장면만 보면 상당히 영악하고 이재에 밝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영악함은 거기까지다.

야반도주한 후 도착한 그에게 떡장수 아줌마는 한줄기 빛과 같다. 그녀와 남편의 도움으로 이런저런 일을 벌려보지만 치열한 삶의 경쟁은 쉽지 않다. 지게꾼이 되어서는 구역을 침범한다고 집단구타를 당하고, 막노동도 패거리 때문에 쫓겨난다. 소 판 돈으로 리어카를 구해 땅콩 등을 팔지만 이것마저도 사기꾼에게 당해 잃어버린다. 지독하게 운도 없다. 무엇보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것에 빠르게 발맞춰 나가는 것인데 그것이 없다. 약삭빠르고, 뻔뻔하고, 능청스럽고, 아주 이기적이야 하는데 그는 선량하다. 이 선량함은 복권 구입에서도 드러난다. 이 복권은 단순히 어린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그마한 희망이 된다. 이런 삶의 여정은 순수하고 순박하고 진솔한 한 농사꾼이 어떻게 세상의 급박한 흐름 속에 묻혀버리는지 잘 보여준다.

전작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소설도 사회의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떡장수 아줌마, 식모 아가씨, 복권 파는 아이, 넝마지기, 지게꾼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삶은 하루살이와 비슷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주변사람에게 제대로 대우를 받지도 못한다. 삶이 너무 척박하여 남의 여유를 돌봐줄 조그만 힘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정을 나누는 사람이 생긴다. 떡장수 아줌마는 복천 영감네가 서울에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고, 식모 아가씨는 잊고 있던 동향 사람의 정을 일깨워준다. 조그만 선행에서 시작한 복권 사기는 여흥이기도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조그마한 탈출구 역할을 한다. 

농사꾼은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다. 세태에 물들어 빨리 변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만큼 고생이다. 영악하고 약삭빠르지 못하면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돈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 작가는 이런 세태와 더불어 그 시절의 삶과 풍경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었다. 겨울이 되면 뉴스 단골이었던 연탄가스 중독이나 주인집 남자들의 식모 겁탈 같은 조금은 뻔한 일들이 발생한다. 한번 전락한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식모 아가씨의 사연으로 드러나고, 불행은 바로 옆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떡장수 아줌마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낯익은 이야기들이지만 반갑지 않다. 지금은 없어진 듯하지만 변형되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그렇다. 시대는 변했지만 상황은 큰 변화가 없다. 어쩌면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