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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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자 고 최성일 씨의 서평 모음집이다. 그냥 보통의 서평 모음집이라면 눈길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선택하고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면 수없이 많이 올라온 서평들이 있고, 따로 서평만 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서평들을 통해 새롭게 가치를 발견하고 사야할 책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모든 책을 읽지 못하니 다른 이를 통해 그 책의 가치를 깨우치고 읽은 듯한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 중에 내가 읽은 책이나 가지고 있는 책이 있다면 더욱 좋다. 이 책의 선택은 바로 읽은 책 몇 권과 가지고 있는 책들이 여러 권 겹치고, 짧게 맛보기로 나온 서평이 잘 정돈된 문장으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도 서평을 꾸준히 쓰고 있다. 처음엔 무지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 술술 쓰여 오히려 걱정이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평을 쓴다는 것 자체가 힘겹다. 왠지 모르게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기교적으로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뭐 사실 그런 부분도 적지 않다. 그리고 다른 이의 서평을 읽으면서 참 잘 썼다고 생각한 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화려한 수식과 분석을 동원해 서평을 쓰지만 핵심이 빠진 듯한 글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짧게 말해 현학적이다. 물론 나의 이해도와 인식이 부족해 그 재미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 속에는 그 속에 내가 쓴 것도 적지 않다. 부끄럽지만 그냥 둔다. 나의 책읽기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고 최성일 씨의 아내가 남편의 서평들을 모아서 내놓은 것이다. 결코 많은 권수는 아니다. 예전에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비하면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방식을 지향한다. 단순히 읽었다는 기록이 아니라 책을 비판적으로 읽고 그 핵심 내용을 풀어낸다. 그 깊이와 넓이가 대단하다. 겹쳐 읽은 몇 권의 서평을 보고 나의 내공이 한참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당연히 사야할 책 목록이 만들어진다. 물론 집에 읽는 책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더 늘어났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서평들을 하나씩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서평은 그가 책에서 뽑아낸 감상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조하는 비판적 책읽기는 최근 잊고 있던 본래의 독서 목적을 일깨워준다. 각 서평들에 담긴 저자의 시선은 책에 따라 다양한 감성과 이성을 품어낸다. 따스함과 무거움과 안타까움과 분노 등이다. 그의 다른 책을 생각하면 마지막 파트의 서평들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평으로 요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경우가 있다. 그가 쉽다고 말한 책이 너무 어렵게 읽혀 머리를 싸맨 적도 있기 때문이다. 뭐 나도 가끔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재미있게 단숨에 읽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책읽기는 사실 개인의 취향과 전문분야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 서적을 자주 읽는 사람에게는 그런 서적들이 주는 난해함이 덜 할 것이고, 나처럼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를 것이다. 고 최성일 씨가 인문주의자라고 하지만 소설을 멀리 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인문학 서적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처럼 책에 대한 책 읽기도 좋아한다. “읽기 위해 쓰고, 쓰기 위해 읽는다.”는 그의 말은 요즘 절실하게 다가온다. 아마 글 쓸 생각이 없다면 책 읽기도 상당히 많이 줄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한 권의 책이 저자의 삶의 일면을 녹여내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책의 핵심을 드러내고 우리의 현실을 말하는 글들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서평을 타협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잘 정리된 문장과 내용은 서평 쓰기의모범으로 삼아야할 것 같다. 그리고 풍부한 지식과 서지에 대한 정보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을지 알려준다. 한 권의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책들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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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바보를 기다리며 - 2012년,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대한민국 이야기
손석춘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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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씨를 처음 접한 것이 2000년대 초반이다. 인터넷 한겨레신문을 통해 그의 글을 만났고, 메일 형식으로 보내온 글을 통해 그를 인식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삐딱한 나에게 그의 글은 통쾌했다. 아니 사회를 새롭게 보는데 도움을 주었다. 기자 손석춘을 소설가 손석춘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기자가 소설을 쓴다는 것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한 편으로 완전히 깨졌었다. 이후 흐지부지된 메일 주소와 다른 관심사로 자주 그의 글을 읽지 못했는데(그 사이 단행본 두세 권을 더 샀으나 읽지 않았다) 최근에 즐겨듣는 ‘나는 꼼수다’ 덕분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꼼수다’와 이 책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최근 이 팟캐스트로 정치에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아니 디테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책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나꼼수’도 오고가는 차 안에서만 듣는다. 점점 이 분야에서 게을러지고 있다. 일 년에 몇 권 읽지 않는 사회, 경제, 정치 분야 책을 생각하면 이 책의 선택은 분명 잘한 선택이다. 예전 추억도 떠올리고 논설위원이었던 그의 날카로운 분석을 다시 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의 글 속에서 새로운 정보 몇 개와 잊고 있던 역사의 단면들을 만나게 된다. 반갑고, 부끄럽고, 안타깝고, 속 타는 그 순간들을 다시 만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새롭게 쓴 것이 아니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 그가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정치, 경제, 언론, 미래 등 네 파트로 엮어 놓았다. 부제에 ‘2012년,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대한민국 이야기’라고 써놓았다. 제목도 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공과 실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평가하자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구의 표현을 빌리면 공이 거의 없어 실만 말해야 하지만.

정치 파트에서는 이명박 씨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여 우리 정치판의 어두운 부분을 날카롭게 꼬집고 비판한다. 짧은 글들이다 보니 자세한 정보가 많이 나오지 않지만 핵심을 짚어가는 통찰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잊고 있었고 의미를 잘 몰랐던 현실들을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현실 정치가 주는 어둠을 완전히 거둬내지는 못한다. 단지 희망의 싹을 보고 변화의 가능성에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정도에 머문다. 물론 그의 말처럼 나의 공부와 실천이 변화의 밑거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 파트로 가면 역시 삼성과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삼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조.중.동 등의 언론을 통해 보게 되는 삼성의 이미지보다 뒤에 숨겨진 사실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이명박 가카 위에 있는 이건희라는 글에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난 경제 사범인데 너무 쉽게 사면을 받고 다시 언론의 환대와 칭송 속에 무대 앞으로 나온다. 그들이 어떻게 언론플레이를 하는지 선배와의 대화로 알고 놀랐었다. 이 일련의 과정과 포탈사이트 삼성관련 기사 등을 보면서 이 엄청난 기업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에 더 눈길이 간다. 나의 네거티브한 이성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언론. 한국에 제대로 된 언론이 있느냐 묻는다면 바로 답하기 쉽지 않다. 특히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언론의 기사를 그대로 믿은 적이 있다. 교묘한 논조와 주장은 뒤에 감춰진 의도에 따라 나를 뒤흔들었다. 그러다 그들이 어떻게 여론을 반영하지 않고 여론을 조작하는지 보면서 왜 조,중,동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최근 신재민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재계와 언론의 부패 밀월관계는 깊고도 넓다. 언론 장악을 위해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행동들이 얼마나 무섭고 악착스럽고 반민주적인지 알게 되면서 또 다시 희망의 불씨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그런 신문을 읽고 신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미래는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와 청춘들의 몫이다.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나부터 바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실천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힘들다고 포기하는 순간 미래는 점점 사라진다. 불과 몇 년 전 촛불에서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고 좋아했는데 그 기운과 열정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 같다. 이 기운과 열정과 바람을 기성 정치인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게 기득권을 버리라고 했지만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자가 진보대통합을 외치고 가능성에 더 많은 눈길을 주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없지 않는가.

저자의 글 한 편 한 편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정치와 사회뿐만이 아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순우리말은 오랜만에 나로 하여금 사전을 찾아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 단어의 쓰임새가 너무 자주 나와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만큼 나의 순우리말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언제부터인가 영어와 외래어를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반성하고 줄일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저자의 순우리말 쓰임새와 달리 목차를 ‘파트’로 나눈 것은 조금 아쉽다. 조금 더 세심하게 편집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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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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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와 아리마사를 처음 만난 것은 그 유명한 신주쿠 상어 시리즈다. 첫 권을 읽고 어! 하고 생각했고, 다음 권 <독원숭이>를 읽고 아! 하고 감탄했다. 그 이후 출간된 책을 모두 찾아서 읽었고 소장했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사메지마 형사인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완전히 반했다. 그 당시 나의 상황이나 생각들이 고독하게 싸우는 그와 잘 맞지 않나 생각한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소설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가볍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아르바이트 탐정 시리즈 제3탄이면서 첫 장편이다. 신주쿠 상어 시리즈와 함께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 신주쿠 상어 시리즈 2권이 재간되지 않은 상태라 이 시리즈도 어디까지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3이면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사이키의 활약을 더 보고 싶다. 그가 의뢰를 수락하면서 내건 조건이 과연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하다. 또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지금 생각하면 이 작품에서 한때 소년 스파이들이 활약을 펼쳤던 할리우드 영화의 흔적이 살짝 보인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평범해 보이는 고3 사이키 류는 불량해 보이는 아버지와 함께 산다. 아버지의 직업은 탐정이다. 그가 볼 때 뭐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가끔 정부의 일을 한다. 고3 수험생으로 대학을 어떻게 갈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아버지에게 한 의뢰가 들어온다. 그것은 라일 왕국의 왕녀를 보호하라는 것이다. 왕녀의 아버지가 현재 위독한 상태고, 남자 형제가 없는 상태라 그녀가 여왕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정적들은 그녀를 암살하려고 한다. 그녀의 방문을 공식적으로 처리하길 꺼리지만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외교 분쟁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정부가 사이키 인베스티게이션에 의뢰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미오다. 그녀가 일본으로 온 것은 유학하기 전 사전답사 때문이다. 왜 일본이냐고?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쉬울 것 같은 경호인데 공항에서 만나는 첫날부터 암살사건이 생긴다. 이 사건에 놀란 사이키 부자는 공주 일행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모신다. 그곳은 바로 러브호텔이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소이자 창문이 없어 저격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첩보를 통해 흘러나오는 암살자 정보는 이 경호가 험난할 것임을 암시한다. 암살자는 저격수와 폭탄마 등이다. 

대입을 앞둔 고3 수험생 류와 유학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한 미오 공주, 뭔가 처음부터 끈끈한 로맨스의 분위기가 풍긴다. 어떤 장면에서는 <로마의 휴일>과도 같다. 하지만 이 둘의 연애는 목숨을 내걸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마의 폭탄이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이 둘의 감정은 조용히 타올라 은근하게 뜨거워지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불탄다. 비록 신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소설에서 두 청춘의 로맨스를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한데 과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게 만든다.

고3 류의 경험이나 실력이 분명 한계를 보여준다. 이것을 채워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아버지다. 불량한 중년인 아버지가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은 그의 과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부자 탐정 콤비가 보여주는 활약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르지만 계속 기대하게 만든다. 분명 숨겨지고 감춰진 비밀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풀려나올 텐데 과연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자 액션의 절정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007시리즈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어딘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스터리물로 읽기에는 너무 뻔하지만 액션스릴러물로 읽기에는 부담이 없다. 다시 드는 생각 하나. 과연 사이키 부자의 활약을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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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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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책 소개 글을 읽을 때도 대단히 흥미로웠는데 실제 읽으면서도 그것이 반감되지 않았다. 구성과 캐릭터를 잘 조화시켰고, 대결 구도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엄청난 사건이지만 그 기발함에 놀라고 다시 그 의도에 한 번 더 놀란다. 이런 인질극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소위 말하는 무데뽀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읽는 내내 두 주인공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한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제대로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화를 한 사람은 사랑하는 약혼녀 레오니다. 그녀는 아이를 임신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경찰이 방문한다. 그가 전한 소식은 놀랍게도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1시간 전에 말이다. 그럼 지금 통화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지? 호러나 판타지소설이라면 가능한 전개지만 이 소설은 스릴러다. 당연히 그녀의 죽음은 거짓이다. 아니면 전화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거나. 이렇게 촉망받는 정신과 의사 한 명이 자신을 삶을 영영 파멸로 몰고 갈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이라는 자살을 생각한다. 입속에 넣은 총구 장면이 첫 만남이다. 그녀는 범죄 심리학자다. 그런데 그녀의 딸 사라가 자살을 했다. 이 사건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왜?란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살을 결심한 그녀가 머릿속 갈증을 부채질하는 레몬 향 나는 콜라 라이트를 사기 위해 가게로 간다. 그런데 가게는 주인과 러시아인 두 사람이 총으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보통 때라면 물러서서 협상을 시도하거나 다른 경찰을 부를 텐데 그녀는 죽기를 결심한 상태다. 한 발 앞으로 더 나간다. 하지만 101.5 라디오 방송국에서 생긴 사건 때문에 출동한 동료에 의해 구출되고 현장으로 불려간다. 상처받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약혼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믿지 못하는 얀 마이는 놀라운 인질 계획을 짠다. 그것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디제이와 방송국 방문객을 인질로 잡는 것이다. 이 계획에 조그마한 저항은 있었지만 성공한다. 인기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납치극이 알려지고, 인질범의 요구조건이 내걸린다. 죽은 약혼녀를 자신 앞에 데리고 오란 것이다. 그리고 캐시 콜 라운드라는 게임을 통해 1시간 단위로 인질의 석방과 죽음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무작위로 전화를 해서 받은 사람이 “101.5 방송을 듣고 있어요. 이제 인질 1명을 풀어주세요!”란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그 앞에 그 어떤 말을 하지 않고 말이다. 

자살을 결심한 전직 범죄 심리학자 이라가 현장에 불려왔을 때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납치 현장에 그녀의 둘째딸이 숨어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제 인질이 될지 모른다. 첫딸을 자살로 잃은 그녀가 이 인질극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인질범은 그녀 외 다른 협상가와 대화를 할 의도가 없다. 이렇게 만난 두 남녀는 공개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라의 딸 사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또 다른 딸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된다. 두 심리학자의 팽팽한 대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딸의 자살로 삶의 의지를 잃는 이라와 약혼녀의 실종과 그 사건의 조사로 인한 의사 면허 박탈로 무시무시한 인질극을 펼치는 얀 마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두 사람의 상처 입은 마음은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이 방송을 듣고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레오니 사건을 조사해서 명확한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는데 경찰과 검찰의 반응이 더디기만 하다.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인질극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건과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숨겨진 비밀은 추악한 사건과 연결되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 펼쳐지는 액션은 또 다른 재미와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들은 삶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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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하는 운명 카드
윤현승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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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윤현승의 소설이다. 처음 만난 것이 <다크문>이었는데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그 당시 쏟아져 나온 수많은 판타지소설 중에서 특히 시선을 끈 몇 작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작가를 새롭게 평가하게 된 것은 역시 대표작인 <하얀 늑대들>이다. 그 당시 이 작품은 온라인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었다. 전작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호평을 생각할 때 그냥 지나가기 쉽지 않았다. 당연히 찾아 읽었고 그해 본 장르문학 중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 후 윤현승이란 이름은 나에게 각인되었고 출간되면 늘 관심을 가지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사놓고 읽지 못하는 작품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쩔 수 없는 책 욕심이다. 수많은 책 중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가볍고 빠르게 읽기 위해서다. 요즘처럼 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 딱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면 그 선택을 틀리지 않았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 커피숍에 앉아 단숨에 읽었다. 앞부분은 이 설정이 어딘가에서 본 듯하고, 한정된 공간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약간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지루함은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었다.

신용불량자 서른다섯 살 종민의 이야기다. 그가 일하는 곳은 주유소다. 이런 그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종민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이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제안을 한다. 그를 보낸 사람을 만나보라는 것이다. 그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약간 고민을 한다. 말한 장소에 가니 그가 평소 바라던 아우디 R8가 있다. 이 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차에 올라탄다. 그 남자는 안대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이 가는 곳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몇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그 이외에 네 명이 먼저 와 있다.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임을 암시한다. 

종민을 비롯한 다섯 명은 그곳에서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바로 운명을 거스르라는 것이다. 어떤 운명이냐고? 그것은 이 모임을 주재한 사람이 제시한 카드 속 문구가 지정하는 운명이다. 그리고 몇 가지 규칙을 말한다. 서로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카드를 보려고 하지 말고, 매일 세 끼의 식사와 매일 밤 포커를 해야 한다 같은 것이다. 종민이 선택한 카드는 누군가를 살해할 운명이다. 만약 일주일 동안 그가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면 카드에 적힌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쉬운 운명이다. 하지만 이렇게 쉽다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어떤 식으로 그가 이 모든 난관을 돌파할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운명카드는 어떤 것인지도.

다섯 명 앞에 놓인 운명카드는 분명 하나의 미끼다. 이 게임을 마지막까지 탈락하지 않고 운명을 거스른다면 최소 20억 원을 가질 수 있다. 중간에 탈락자가 있다면 총 100억에서 남은 사람 수로 나눈 금액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최후의 한 사람이 남는다면 100억을 가질 수 있다. 종민이 가진 운명카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마지막까지 규칙을 지키면서 누군가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최소 20억을 가질 수 있다. 이 돈이면 그의 모든 빚을 갚고도 남는다. 너무 거스르기 쉬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바로 그 때문에 긴장감이 생긴다. 다른 누군가 반대되는 운명카드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하루의 일상이 먼저 펼쳐진다. 사건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밤에 펼쳐지는 포커판이다. 포커판은 첫날 이 장소에 온 모든 사람이 수고비 대신 받은 칩으로 이루어진다. 이 칩을 현금으로 바꿔 집으로 간다면 그냥 수천만 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수십억의 유혹은 너무나도 강하다. 단순한 시간때우기 같았던 포커판에 변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종민이 그냥 모두 잃기 위해 던진 패 때문에 생긴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운명은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의 숨겨진 과거와 연결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포커판을 제외하고 이어져오던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작가는 이 지점을 계속 찌르고 파고든다. 

흔히 우리는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면 충분한 금액을 서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운명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이 자라면서 개인적으로 변해간다. 가장 먼저 탈락한 사람의 운명카드 내용이 드러날 때 왜 그렇게 악착같았는지 알게 되지만 뒤에 나오는 설명처럼 웃자란 욕망이 평온한 길을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 이어지는 죽음은 긴장을 고조시키고 마지막 날까지 규칙을 지키며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누가 과연 살인자인지도 의문이 생기고, 변함없는 환경은 공포심을 유발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일본 만화 <도박묵시로 카이지>의 설정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 결말은 예상을 뒤엎었고, 몇 가지 추론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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