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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손
존 어빙 지음, 이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존 어빙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집에 있는 그의 다른 소설을 생각하면 의외다. 다른 책 본다고 바빠서 그런 것도 있지만 왠지 쉽게 읽히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더 강했다. 가끔 이 작가의 소설 평을 읽으면 재미있다는 글이 올라오는데 그래도 늘 두툼한 분량이 쉽게 손을 뻗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읽은 이 책은 왜 사람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는지 살짝 맛을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구성이나 전개를 보면서 한때 너무나도 열중했던 폴 오스터가 떠올랐다. 이 둘의 연관성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따진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잘 생겼지만 결코 모험을 하지 않고 오는 여자를 절대 막지 않는 매력적인 뉴욕 방송기자 패트릭 월링퍼드는 인도에서 한 서커스 취재 중 사자에게 왼손을 잃게 된다. 이 영상이 전세계를 떠돌면서 ' 사자사나이'나 ‘재앙맨’으로 불린다. 그 전에도 그의 매력에 빠진 수많은 여자들 때문에 방종한 생활을 했었다. 모험심이 없어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새로운 손을 붙이는 수술로 이어지게 되고, 그 손 주인의 아내가 바라서 임신시키고 그 후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약간 황당한 설정과 전개인 것 같은데 사실 이 설정이 그렇게 강한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패트릭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사연이 세밀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 사연과 감정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관계를 이어가는 구성이 어떻게 보면 복잡할 수도 있지만 삶의 미묘함과 기묘함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전혀 관계없던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고, 이전 관계는 또 어떻게 추억되는지 보여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 삶 속의 만남과 헤어짐과 그리움과 아픔과 사랑 등이 하나씩 풀려나온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주인공의 성적 활약만 다루었다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남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패트릭의 직업을 통해 현재 미디어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한다. 자극적인 정보와 앞뒤 연관성 없는 뉴스만 방송하는 것이다. ‘맥락의 부재’인데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상당히 양호한 것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고? 그것은 허위나 과장 홍보 등을 아무 검증 없이 내보내고 아주 가끔은 혹은 자주 왜곡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언론이 사실만 보고해도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을 때 느낀 것과 비슷한 정도로 패트릭이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뭐 소설만 봐서는 이 정도가 아니겠지만.

‘맥락의 부재’가 패트릭을 직업적으로 힘들게 한다면 네 번째 손의 주인인 도리스는 감정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그 감정은 사랑이다. 그녀는 바로 패트릭의 왼손에 이식된 기증자의 아내다. 또 그와 섹스를 해서 작은 오토를 낳은 어머니기도 하다. 제목의 의미를 거의 끝부분에 말해줄 때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이 겪는 감정의 흐름들이 가슴 한 곳에 콕 박힌다. 물론 중간중간 문화 차이인지 아니면 과장된 것인지 잘 모를 상황들이 등장한다. 아이에 집착하는 여자들, 무분별한 섹스 등등. 하지만 이런 설정이나 장면이 세상에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책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코믹하고 황당한 경우가 많은 요즘에 말이다. 저자는 이 소설의 설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 썼다고 한다. 앞으로 이 작가의 더 많은 소설을 읽는다면 호불호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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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 - 상.중.하 세트
꼬마비.노마비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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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네 컷 만화로 스릴러를 그려내었다. 처음 이 책에 눈길이 간 것은 작가에 대한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가끔 이런 실수를 한다. 그리고 특이하고 강렬한 제목도 한몫했다. 책을 받고 이리저리 넘겨보는데 어! 하고 놀랐다. 네 컷 만화였기 때문이다. 이미 받은 책이니 빨리 읽자 생각하고 펼치는데 처음부터 강렬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대로 몰랐기에 혹시 단편집인가 하고 생각도 했다. 그런데 차분하게 읽어나가니 하나로 이어진다. 특이한 구성과 전개다. 단숨에 상권을 다 읽은 후 이야기 속에 등장한 인물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상, 중, 하 세 권이다. 상권 표지는 빨강, 중권은 파랑, 하권은 보라다. 저자와의 대담을 보면 붉은색이 이탕의 단죄, 푸른색이 법치, 보라색이 혼란 혹은 복잡이란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ㅇ 속의 캐릭터가 그것을 나타내준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대담을 읽고 찾으니 보인다. 물론 각 권에 등장하는 분량도 색에 따라 다르다. 처음 연출할 때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의 단순 착각인지는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각각 다른 캐릭터들이 치밀하게 계산된 상태에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우연한 관찰자가 사연을 가지게 되고 또 다른 관계를 맺는 것 같이.

크게 흐름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연속살인을 하는 이탕과 형사 난감이다. 중간 이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둘이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준다. 연속살인자 이탕의 사이드 킥인 노빈이나 또 다른 살인자 송촌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네 명은 서로가 엮여 있다. 이 엮인 관계와 이어지는 살인들이 잠시도 긴장감을 풀지 못하게 만든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 속에 밝혀지는 사연들은 뒤끝이 찜찜하다. 내가 알고 사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현실과 내가 하는 살인이 정의를 대변한다는 착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 이탕이 살인을 하는 것도 우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로 가면 이것은 필연이 된다. 탕이 지닌 능력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인 인물들이 보통의 선량한 사람들이 아닌 패악무도한 살인자들이기 때문이다. 상권에 그가 연속살인자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피해자의 과거도 같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흔히 ‘그놈 잘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황을 만든 것이다. 거기에 살해당한 피해자에게 강간당한 후 자살한 여학생의 아버지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감정들은 이것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살인이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네 컷 만화지만 잘 짜인 구성과 이야기는 소설 그 이상의 재미를 준다. 귀여운 그림체 뒤에 숨겨진 사연과 살인과 상황들은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끼게 만든다. 증거를 둘러싼 두 살인자의 현실은 이 만화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은유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간중간 숨겨진 세부사항과 사회 현상에 대한 풍자는 현실의 적절한 반영이다. 법이 가진 자 편에서 힘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증인과 증거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아무리 정의와 진실을 외쳐도 막힌 통로를 통해 필터링이 되는 현실에서는 더욱더. 하지만 아는 자들의 노력으로 시간의 틈 속에서 그 정의와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바라는 것 같은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 만화는 올해 읽은 수많은 스릴러 소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네이버 카툰으로 연재되었다고 하는데 그 때는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아마 그림체 때문에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만화 결말은 조금 다르고 외전은 카툰에 없었다고 한다. 매일 혹은 매주 몇 번씩 조금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것과 책으로 한 번에 다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한 편으로 완결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네 컷 만화임을 생각하면. 이탕의 진화가 보여주는 변화는 익숙해진다는 것이 주는 무서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의 인터뷰에 영웅들의 커스텀은 허세라고 말하면서 진짜 무서운 강도는 법을 사용한다고 할 때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영웅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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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가든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6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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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로 시리즈 유일한 단편집이다. 모두 네 편이 실려있다. 표제작 <로즈 가든>을 제외하면 1993년~5년 사이에 발표한 작품들이다. 미로 시리즈는 번외 편인 <물의 잠 재의 꿈>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권이다. 현재까지 그 중 네 권을 읽었다. 마지막 작품인 <다크>를 남겨두고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아쉬울 것 같다. <다크>에서 무라젠의 죽음이 나온다는 것을 듣고 가슴 아파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하지만 미로와 무라젠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라면 끝을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 중 가장 먼저 번역 출간된 것이 <다크>임을 생각하면 말이다.(실제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번역된 것은 <얼굴에 흩날리는 비>지만 시리즈 완간한 비채에서 가장 먼저 출간한 작품은 <다크>다.)

해설을 보면 가장 나중에 출간된 단편이 표제작 <로즈 가든>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미로의 자살한 남편 히로오가 주인공이다. 그를 통해 본 미로의 과거는 낯설고 위태롭고 굉장히 자극적이다. 작가는 두 개의 시간을 다룬다. 현재는 인도네시아에서 서비스를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과거는 미로의 첫 만남과 이별이다. 특히 미로의 과거사는 굉장한 충격을 주는데 과연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지어낸 이야기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읽으면서 허구라는 생각이 더 들었지만 히로오에 감정 이입되는 동시에 떨어져 나오면서 약간 혼란이 생겼다. 이 간결한 이야기가 머릿속 기억을 헤집게 만들고 다음 이야기에 호기심을 품게 만든다. 이 단편에서 미스터리는 아마 이 이야기의 진실 여부가 아닐까?

<표류하는 영혼>은 자살한 여자의 약령을 다룬다. 이 시리즈의 성격 상 악령은 당연히 가짜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맨션에 등장한 이 악령은 한 여자의 자살에서 비롯했다. 조그만 맨션 안에 뒤엮인 관계가 풀려나오는데 소소한 재미가 있다. 소품으로 미로의 성격 등이 잘 드러나 있다. 과연 악령의 정체는 무얼까? 왜 그런 악령이 등장했을까? <혼자 두지 말아요>는 사랑 이야기다. 중국 접대부를 사랑한 한 남자가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면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너무나도 예쁜 중국 접대부 애인의 마음을 확인해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한 남자가 한다. 당연히 의뢰 거절이다. 그리고 곧 그가 살해당한다. 이 의뢰 거절에 미안함을 느끼고 가슴 아파한 미로가 사건을 수사한다. 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신주쿠의 풍경은 낯설다. 꼬인 관계는 감정의 혼란과 믿음 부족 등으로 더욱 복잡해진다. 결국 드러나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현실을 담고 있다.

자신들이 몰랐던 딸의 숨겨진 과거를 아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랑의 터널>의 첫 장면이 딸의 죽음으로 숨겨진 과거를 안 부모에게서 시작한다. 딸 메구미는 타고난 재능으로 SM클럽의 여왕으로 불렸었다. 부모는 딸이 살았던 집에 가서 그 흔적을 모두 없애달라고 미로에게 요청한다. 그런데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미로의 행동이 한 발 늦었다. 다음날 간 그 집은 이미 누군가가 온통 헤집어 놓은 상태다. 쉽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의뢰가 이제는 단순 사고로 알려졌던 사건을 재조사하는 수순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짐작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설명은 현실이 지닌 무거움을 그대로 반영한다. 미스터리적인 재미가 가장 강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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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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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각자의 시각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누구 한 명에 의해 완전히 밝혀질 수 없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드러난 행동과 말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속내나 의도까지 완전히 알 수는 없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느낌과 생각 등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그를 그려낼 뿐이다. 이 그림이 개인의 느낌이나 철학 등과 어울리고 어느 정도 객관성을 확보할 때 잘 된 전기나 평전이라고 말한다. 밖으로 드러난 사실조차 왜곡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객관성은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왜곡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는 이 제목은 함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30 여년 전 에스파냐의 한 아파트 발코니에서 한 남자가 투신자살한다. 그의 이름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다. 그는 아르헨티나 망명 작가다. 이 작가가 스페인에서 출간한 작품은 단 한 편이다. <거짓말 예찬>이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도 특이하다.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애인이 청소하다가 이 원고를 발견하고 읽은 후 한 출판업자에게 출간을 의뢰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읽은 출판업자는 책을 출간하게 되고, 출판기념행사에 그를 초대한다. 하지만 그는 왠지 모를 이유로 그 장소를 떠나고 얼마 후 투신자살한다. 왜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했을까? 이 소설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쫓는 동시에 각각 화자들의 개인사를 같이 삽입한다. 이 작업을 통해 베빌라쿠아의 삶과 화자들의 삶이 겹쳐지고 각자의 시각에 따라 입체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첫 번째 화자는 저자인 알베르토 망구엘이다. 그가 말하는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는 순탄한 삶을 산 인물이 아니다. 망명 작가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적 압박과 고문도 당했다. 어릴 때는 할머니 손에서 엄격하게 자랐고, 사랑하는 아내는 독재와 싸우다 사라졌다. 망명 후의 삶도 그렇게 풍족하지 않다. 화자가 말하는 그의 삶은 불안과 우울함으로 가득하다. 소제목이 <변명>인 것은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분량인데 그의 유년기, 청소년기 등도 같이 다루면서 삶의 행적을 보여준다.

두 번째 화자는 그의 애인이자 <거짓말 예찬>을 발견하고 출간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안드레아다. 그녀를 통해 드러나는 그는 처음과 다르다. 많은 여자와 자유롭게 만나고 활기차 있다. 그녀를 통해 어떻게 그 걸작이 출간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가 감옥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다룬다. 이것은 다음 화자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세 번째 화자는 바로 그 감옥에 함께 수감된 인물이다. 편지를 통해 그는 자신의 삶과 베빌라쿠아의 접점을 말하고, 그 걸작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출판기념행사장에서 왜 그가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가정이 되기도 한다. 여기부터 베빌라쿠아를 다루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하나의 조그만 추억이 된다.

다음 화자는 그의 삶보다 화자의 삶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역사의 어두운 한 면을 보여주는데 그 시대의 공포가 느껴진다. 소제목이 <두려움에 대한 참작>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화자는 소위 말하는 밀정 역할을 한 인물이다. 화자와 그의 접점은 한 여자에서 시작하여 감옥으로 이어진 후 마드리에에서 다시 연결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화자의 집착과 다름없다. 그의 시각은 객관성이 떨어지는 적의 입장을 대변한다. 당연히 그의 작품은 별 볼일 없는 소설이고, 그의 죽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투신자살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해주면서 또 다른 베빌라쿠아의 삶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은 이 모든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 테라디요스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 사연을 말한다. 사실과 다르게 알려져 왔던 과거사를. 사람들이 말하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어느 한 순간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을 한 것이다. 여기서 책 제목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초상을 그려내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에 대한 많은 것들을 단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글쓰기를 단념하는 순간 그가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베빌라쿠아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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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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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쾌하고 재미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이다. 먼저 출간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가 상당히 흥행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 요즘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일본 미스터리를 생각할 때 선택이 쉽지 않다. 사놓고 보지 않은 책이 적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대박이라는 느낌도 물론 없다. 하지만 다른 작품과 이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만든다. 그 힘은 바로 유머스럽고 개성 있는 캐릭터와 간결하고 빠르면서 잘 짜인 전개다. 특히 사건의 중심에 있는 류헤이와 자형이었던 탐정 우카이 콤비와 스나가와 경부와 시키 형사 콤비가 큰 몫을 했다. 

소설은 두 개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류헤이와 스나가와 경부 형사 콤비의 시점이다. 류헤이가 사건의 중심에서 혼란과 공포를 겪는다면 형사 팀은 우연과 탐문조사로 사건의 핵심에 한 발 다가간다. 분명하게 류헤이가 범인이 아니고 형사들도 범인이 아니라고 작가는 사전에 공지를 한다. 뭐 가끔 이런 공지 자체가 트릭인 경우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절대 아니다. 이렇게 두 개의 시점 전환을 통해 작가는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이 캐릭터의 힘과 합해져서 몰입도를 높여준다. 거기에 류헤이가 처한 밀실 트릭은 고전 미스터리 밀실 트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지방 별 볼일 없는 이카가와 대학 영화학과 재학생 류헤이는 취직 걱정을 하다가 선배 모로 고사쿠의 회사에 취직 내정된다. 이 때문에 여자 친구 곤노 유키가 그를 차버린다. 야망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무시하고 살려고 하지만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다. 이때 선배 모로가 구원의 손길을 뻗친다. 보고 싶은 비디오를 들고 와서 함께 보자고. 류헤이는 <살육의 저택>을 말한다. 그리고 사건 당일 이 비디오를 빌려서 선배 집으로 간다. 그가 선배와 비디오를 보고 있는 사이 전 여자 친구 곤노 유키가 칼에 찔린 후 집에서 떨어져 죽는다. 얼마 후 선배는 목욕하러 갔다가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를 발견한 그는 실신하고 무려 10시간 후에 깨어난다. 집을 둘러보니 밀실 상태다. 친구를 통해 전 여친의 죽음을 들은 그는 당황하고 현장을 훼손한 후 도망간다. 유력한 용의자가 도망을 다니고 형사들은 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둘의 엇갈림과 만남 속에 사건의 단서들이 하나씩 풀려나온다.

도망간 용의자가 도움을 요청한 인물이 탐정인 우카이다. 그는 류헤이의 말을 듣고 밀실 트릭에 대한 해답으로 내출혈 밀실설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 트릭은 사건 당일 밤 그 집 앞에서 오토바이를 고치고 있던 증인에 의해 깨어진다. 시간이 맞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다른 가설을 말한다. 그런데 이 두 주장은 모두 증인의 존재로 인해 깨어진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 증인이 범인이면 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번역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가 등장한다. 그가 바로 스나가와 경부다. 그의 사건 설명은 이 소설이 얼마나 정교하게 짜인 소설인지를 알려준다. 그냥 무심코 지나갔던 문장과 단어와 장면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두 사건을 모두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콤비 대결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형사 콤비다. 모든 사건의 화살이 류헤이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를 범인으로 몰고 가면 되지만 스나가와 경부는 류헤이에게 사건 진행 상황을 반복해서 듣는다. 바로 그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실제 그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아낸다. 그의 멋진 추리는 이 소설의 백미다. 능력 있는 형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물론 완전히 능력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이 형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괴팍한 취미생활과 더불어. 

이 가상의 도시 이카가와를 무대로 소설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 재미있는 인물들이 다시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지만 기대된다. 처녀 장편이라고 하는데 트릭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어떻게 보면 약간 억지스럽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 있지만. 그러나 이 부분도 완벽한 탐정이나 형사가 아니라 뭔가 부족한 인물을 등장시켜 반감을 상쇄시킨다. 그리고 이 책 앞표지는 읽는 동안 등장인물 한 명씩 연결하는 재미를 준다. 더불어 중요한 단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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