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사막
김영희 지음 / 알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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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을 처음 본 것이 영화 속이었다. 악마와 싸워 이긴 주인공이 악마를 영원히 가두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소금사막이었다. 그때 든 생각이 만약 이 소금들이 다 사라지면 악마는 다시 부활하겠구나 였다. 그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이 책 속에서 그곳을 보니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소금사막이 이 책의 제목이지만 작가 김영희에게는 60일간의 남미 여행 중 잠시 둘러본 곳 중 하나다. 그곳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수많은 감동과 의미를 부여한 곳들 중 한 곳이란 의미다.

<나는 가수다> 첫 방송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광고할 때만 해도 이런 인물들이 나와 경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던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도 어떤 조그만 기대 때문이었다. 김영희 PD의 말처럼 이소라가 <바람이 분다>의 첫 음을 내는 순간 빠져들었다. 최고였다. 그 어떤 프로그램이 주지 못한 엄청난 몰입을 가져다 주었다. 주말에 유일하게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김건모의 첫 탈락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다. 재도전의 기회가 부여되었지만 이 때문에 엄청난 반대 여론이 형성되었다. 김영희 PD가 짤리는 일까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생긴다. 재도전의 방송이 또 다른 감동을 준 것이다. 최고 중의 최고였다. 그렇지만 그는 떠나야했다. 그 떠남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책이다.

60일간 29번의 비행이 남긴 흔적이란 글과 그가 다녀온 곳의 지도가 눈길을 끈다. 첫 느낌은 부럽다였다. 60일간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주일 휴가도 빼기가 쉽지 않은 월급쟁이니 더욱 그렇다. 그가 다녀온 곳을 훑어보니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하여 아바나를 거쳐 남미대륙을 한바퀴 도는 일정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너무 자주 이동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 바닥에는 부러움이 깔려 있다. 대충 넘겨본 책 내용은 글자가 별로 없고 그림과 사진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읽어보니 맞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27만원짜리 디카로 찍은 것이고, 그림은 그가 현지에서 산 스케치북에 직접 그린 것이다. 사진을 보고 그 아름다운 풍경과 색감 때문에 당연히 DSLR로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연히’가 무너졌다. 똑딱이로 이런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내다니 놀랍다. 아니 부럽다. 전문가들이 보면 또 다르겠지만 사진에 무식한 나에게는 그렇다. 이 사진과 그림은 그가 간 곳의 느낌을 잘 드러내준다. 조금씩 나오는 사유의 글들은 그림 등에서 받은 감흥에 잠시 쉼터가 된다. 그가 그곳에서 받은 느낌과 사유는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고, 느꼈지만 표현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가수> 하차 후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나가수>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인터뷰 등에서 본 내용도 나오고,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지금은 조금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식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나의 마음은 움직인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라지지만 그들의 사연과 노래는 가슴으로 다가온다. 잊고 있고 잘 몰랐던 가수들의 등장은 반갑다. 물론 그가 떠난 후 <나가수>에 대한 글은 없다. 다만 이 책이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남미의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인식에 의문이 생기는 대목도 살짝 있지만.

그는 책 앞에서 말한다. ‘나는 피디다’라고. 비교적 긴 여행이지만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 남미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가 남미 여행을 간 것이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게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에 아쉬움은 없다. 사진과 그림과 짧은 단상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백이 있는 부분은 나의 단상으로 채우면 된다. 그리고 그가 ‘지금’을 말할 때 얼마 전 내가 외친 그 단어가 반갑다. “인생… 지금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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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이프
알 코리아나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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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라이프. 인생이 없다는 의미일까? 단순히 제목만 보고 의미를 해석하기 쉽지 않다. 이 단어를 작가는 우리가 아는 단어와 연결한다. 오타쿠, 히키코모리 등이다. 물론 이것도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진 그들이 사회와의 관계와 자신을 잃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좀더 쉬울까?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재미나 틀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삶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정보와 기억과 기록 등의 왜곡으로 연결시키면 어떨까? 

기억과 추억에 대해 우리는 강한 자신감을 가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들은 많이 떠올릴수록 변화가 심해진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과거를 조금씩 손질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강하게 남게 된다. 만약 여기에 누군가가 끼어들어서 내가 바라는 것을 같이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말한다면. 아마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렇게 기억은 왜곡되어진다. 그래서 정확한 역사의 기록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좀더 쉽지 않을까?

왜 갑자기 기억과 기록을 말할까? 이 소설 속 주인공이 바로 만들어진 기억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빠져 공동체 삶에서 자기 찾기를 포기했다. 물론 생각은 끊임없이 한다. 친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눈물도 흘린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만들어진 기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영화 <토탈리콜>에서 주인공이 상대조직에 잠입하기 위해 기억을 조작했던 것이 생각난다. 이 영화가 한 번에 기억을 조작했다면 소설은 차곡차곡 쌓인 데이터를 통해 조금씩 이루어진다. 한 개인의 동선과 반복되는 소비 형식을 파악하면 하나의 인물이 만들어진다. 정보의 축적은 디지털 세상에서 가상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을 반대로 돌리면 어떨까? 에이~ 너무 복잡하다.

이틀 전 만 서른다섯이 된 나는 경찰에 잡힌다. 흰 셔츠에는 피가 묻어 있고, 앞 탁자에는 권총 매그넘이 놓여 있다. 매우 심각한 일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의문을 불러오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이틀 전으로 시간을 돌린다. 그의 반복적인 삶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매주 일곱 편의 영화, 매일 다섯 시간의 온라인게임, 하루 최소 여섯 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동시에 할 때도 많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현실이 이어지는 과정 속에 과거가 현실로 달려오는 구성이다. ‘왜와 어떻게’에 대한 답을 과거로부터 찾아오는 방식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성이다. 왜 그는 살인을 한 듯한 상황에서 형사에게 체포되었을까? 새로운 삶을 살려는 그의 의지가 어떤 변화를 겪었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으로 이어졌을까? 처음에 든 생각들이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가까운 미래의 풍경은 낯설지만 익숙하게 다가온다. 현실을 조금 더 극단으로 밀고 갔기 때문이다. 마약을 의사들이 처방하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합병되고, 모두가 스마트폰 이상의 기계를 들고 다닌다. 

이 미래의 풍경만을 보여줬다면 심심한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스릴러적인 요소를 섞어놓았다. 첫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이 이어지면서 그가 한 행동에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암시한다. 단서는 과거 속에 있다. 이 과거는 화자가 결코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완전히 새롭게 뒤바뀌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날 정도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설정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곳곳에 낯익은 장면이나 설정이 눈에 들어오는데 더 찾으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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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작은 새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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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츠의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사실 집에 오츠의 소설이 몇 권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는다. 얼마 전 읽은 존 어빙의 경우와 유사한 이유다. 너무 유명한 작가의 경우 왠지 모르게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아마 너무 유명해 읽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지루할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사놓은 유명작가 책이 너무 많아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보통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부터 손이 가거나 이벤트로 받아 읽은 경우다. 이번에는 후자다.

솔직히 적지 않은 분량이다. 많은 분량도 아니다. 800쪽이 넘는 소설도 즐겁게 읽은 것을 생각하면 550쪽 정도는 큰 무리가 아니다. 뭐 가끔은 200쪽 정도 소설도 아주 버거워했던 적도 있다. 분량은 흔히 하는 말로 숫자일 뿐이다. 이번 소설도 분량이 큰 문제는 아니다. 나의 집중력이 최고에 달했을 때는 휙휙 넘어갔고, 산만했을 때는 한 쪽도 힘들었다. 물론 단숨에 읽기는 살짝 부담이 되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작가가 서술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에 나온 중요한 핵심 내용을 너무 쉽게 읽고 지나간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명은 살인용의자의 딸인 크리스타 딜이고, 다른 한 명은 피해자의 아들 애런 크럴러다. 전체 핵심적인 내용을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크리스타다. 그녀의 아버지 에디 딜이 경찰들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인상은 그녀의 아버지가 흉악범 혹은 살인자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이런 인상은 바뀐다.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에 따라 산산조각난 가족의 풍경은 크리스타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살인용의자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멈추지 않는다. 

애런은 어머니 조이의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 그가 어머니의 나체 시신을 보고 했던 행동은 이성을 넘어 지극히 감상적이다. 크리스타에 아빠에게 빠졌듯이 그도 아버지 델로이를 사랑하고 옹호한다. 어머니가 죽던 날 아버지의 알리바이를 위증한 것과 알콜 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등에서 드러난다. 그는 혼혈이다. 아버지가 세네카 인디언이다. 엄마는 당연히 백인이다. 미국의 인종 분류는 조금이라도 비백인의 피가 섞인 경우 백인이 아니다. 그가 혼혈인 것이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주어진 환경과 더불어 자신이 선택한 삶에 의해 뒤틀린다. 

이 둘에게 과거는 빛나는 순간이 아니다. 물론 빛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조이의 죽음으로 산산조각난다. 그 이전부터 심한 균열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완전히 깨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아버지와의 연결고리를 놓아버리지 못한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최악의 상황이나 애런의 그 이후 삶은 비참한 삶의 바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의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기도 하다. 비록 이 두 사람 모두 아버지가 무죄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지만. 이런 믿음과 상관없이 읽는 동안 누가 범인일까 의문에 잠긴다. 

가상의 도시 뉴욕 스파타. 그 조그만 도시의 풍경은 삭막하다. 곳곳에 드러나는 마약과 폭력은 낯설고 황량하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하룻밤은 미래의 삶에 대한 목적을 잃은 청소년들이 환락을 통한 자기파괴의 연장선이다. 모범생인 크리스타에게는 버겁고 무서운 것이고, 애런에게는 일상이지만 더 깊은 곳으로 빠지고 싶지 않은 삶이다. 특히 마약이나 살인 등과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 애런이 가지는 거부감은 그가 가진 마지막 한 자락의 이성을 말해준다. 그 때문에 약물과용으로 죽지도 않고,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지도 않는다. 

두 사람을 연결하는 운명의 힘은 지독하게 강하다.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난 둘의 강렬한 열정과 탐닉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십 수 년 동안 그들 속에 잠자고 있던 욕망이 폭발할 때, 오랫동안 자신들이 믿든 진실을 확인했을 때 그 운명은 이제 자신들의 선택으로 바뀐다. 특히 마지막에 크리스타가 보여주는 선택은 그 운명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한다. 운명의 영향력 아래에서 아직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만 본다면 오츠의 소설에는 조금은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소설을 몇 권 더 읽은 후 나의 작가 목록에 올릴지 판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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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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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부모란 어떤 존재일까? 일상생활에서 가족과 부모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하지만 가끔 이 울타리는 가족이란 틀에 박혀 가족을 억압한다. 마이크와 티아 부부가 아들의 방에 실시간 엿보기 프로그램을 깔 때 그들의 의도는 단지 걱정 때문이었다. 자신들과 대화하지 않고 거부하고 반항하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혹시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힘든 일은 없는지 등 부모의 순수한 의도였다. 바로 이 의도에서 사건은 벌어지고, 주변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가족들로 돌아간다.

첫 장면은 매리앤이 자괴감에 빠진 상태에서 납치 살해되는 부분이다. 단지 이번 살인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준 후 이 살인자들은 다음 납치와 살인을 벌인다. 왜 이런 끔찍한 살인을 벌일까? 다음은 또 어떤 납치 살인사건이 벌어질까? 이런 의문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여기에 대응하여 뮤즈 수사과장이 등장하여 이 살인사건을 수사한다. 처음에 매리앤이 창녀처럼 입혀졌고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에 버려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될 때 직감과 상황 분석 등으로 그녀는 다른 의도를 감지한다. 범인과 경찰의 대결이 전체 이야기 구조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이어진다.

“정말 이렇게 하고 싶어요?” 이 문장은 실시간 엿보기를 깔아준 티아의 회사 동료 말이다. 그녀는 아들 애덤을 걱정해서 그를 엿보고 싶어한다. 남편은 아내의 이 의도에 소극적으로 반대하다가 곧 찬성한다. 그도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변한 아들이 걱정되고, 또 앞으로 어떤 위협과 위험과 아픔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아들 친구 스펜서의 자살은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 어린 시절 그들의 부모가 자신들을 간섭했던 것을 싫어하고 반항했던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너도 자식을 낳아봐라! 정도랄까. 

매리앤을 살해한 내시 커플이 하나의 흐름을 구성한다면 마이크 부부의 주변이 또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아들의 자살로 삶이 완전히 깨어진 벳시 힐과 아들의 병으로 숨겨진 과거나 드러나는 수전 로리먼과 선생의 말실수 한 번으로 아이들에게 왕따 당한 야스민의 가족 등이다. 작가는 전혀 관계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이들이 과연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에 어떻게 풀려나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이미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 독자라면 당연하다. 그의 번역된 작품 모두를 읽은 나의 경우는 더욱더.

조각처럼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각 이야기는 중요한 두 줄기를 따라 흘러간다. 이 두 줄기도 끝내는 하나로 합쳐진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성이고, 필력이 없다면 힘들다. 내시가 살인을 하면서 찾고자 하는 비디오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형사들은 어떻게 내시에게 다가갈지, 마이크 부부의 바람으로 인한 엿보기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그 행동이 어떤 연쇄작용을 불러오는지, 또 다른 자식 가진 부모들의 불안과 걱정과 공포와 바람은 어떤 것인지.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사이에 살인자의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이 소설의 바탕에 깔린 것은 바로 가족주의다. 내 가족이다. 마이크의 친구 모가 애덤의 행방 때문에 애덤 친구 아버지를 찾아갈 때 아버지 대 아버지로 이야기하라고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부모에게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식들뿐이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들만이 중요하고 다른 가족은 이차적인 문제다. 보수적인 가치관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점점 강해진다. 물론 이 가족에 대한 불안과 허구도 존재한다. 이것을 보여주는 가족이 바로 수전과 야스민의 아버지 가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고자 하는 것이지 그들 자체가 아니다. 가족의 울타리가 또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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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의 눈 - 위대한 탐험가가 남긴 경이와 장엄의 기록
퍼거스 플레밍.애너벨 메룰로 엮음, 정영목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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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탐험가가 남긴 경이와 장엄의 기록이란 부제와 함께 한 남자의 사진이 시선을 끈다. 어린 시절 누구나처럼 탐험은 위대한 환상이자 로망이었다. 먼 곳으로 떠나지 못하니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겼고, 만화나 영화 등을 통해 만난 모험가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볼일 없고 유치한 곳들이지만 그 당시는 그 무엇보다 무섭고 긴장되며 환상을 불러오는 모험이었다. 자라면서 책 속에서 만난 탐험가의 이름과 업적은 지금도 강하게 머리 한 곳을 차지한다. 몇몇 탐험가는 허위로 밝혀지고 과장되게 평가된 업적이 수정되기는 했지만.

모두 61명의 탐험가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후 남긴 54편의 탐험기가 실려 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모험가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탐험가 중 처음 듣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학창 시절 배우고 읽은 책들 대부분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인물들 중심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평가가 약한 인물은 자연스레 낯설다. 이런 종류의 책을 만날 때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부족한 지식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다. 특히 이 탐험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편집자 서문에서 “불가피하게 누가 탐험가이고 누가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탐험가의 정의는 ‘새로운 탕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발견은 무엇이고, 새로운 땅은 무엇인가?”(8쪽)라고 묻는다. 어느 정도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아직 오리엔탈리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편집자들은 “탐험가란 미지의 땅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 르포르타주를 쓰는 것보다는 조사를 이유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으며, 최초로 그렇게 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었다.”(9쪽)고 정의한다. 이 책을 읽기 전 머릿속에 꼭 담아둬야 할 대목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편집자들이 한 것은 탐험가들의 기록을 발췌해서 나열한 것이 전부다. 탐험가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각 탐험기 앞에 나오지만 본문은 탐험가들의 기록이다. 그들이 듣고 보고 기록하고 그리고 촬영한 것을 선별하여 실었다. 당연히 글들은 각양각색이다. 쉽게 읽히고 해석되는 글도 있지만 너무 장황한 묘사 때문에 집중력이 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기록이 탐험가들이 직접 쓴 글이다. 결코 평탄하고 쉽지 않았을 탐험 도중에 그들은 잠깐 틈을 내어 기록한 것이다. 이 부분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탐험 도중 죽고, 그 후 후발대에 의해 기록이 발견되어 알려졌을 때는 더욱더.

개인적으로 이 책의 매력은 그림과 사진들이다. 글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루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발췌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끔 탐험가의 기록에서 처절함이나 공포, 또는 이상할 정도의 여유를 발견해서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사진이 내용을 압도한다. 낯설고 위험한 곳을 담아낸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글 이상의 파급력을 가진다. 사진에 눈이 빨려 들어가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멋지다, 대단하다, 저랬구나 등의 감탄사를 토해낸다. 어쩌면 이런 사진 때문에 글에 더 집중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탐험가들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할까? 등산가에 산을 왜 오르냐고 물으면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란 답을 내놓는다고 한다. 단순히 이 일을 즐기기 위해서, 삶이기에 그렇다는 의미다. 꽤 많은 탐험가들이 이 일을 즐기기도 하지만 호승심이 강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세계최초, 인류 역사상 처음 등과 같은 수식어는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조금씩 나오는 국가 간, 개인 간 경쟁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가게 한다. 이때도 그들은 기록을 남긴다. 바로 그 결과물의 집합체가 바로 이 책이다. 탐험가가 가지 않은 곳은 없다. 지구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넘어 달까지 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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