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남자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손선영 지음 / 청어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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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인 한국 추리소설이다. 백용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합작-살인을 위한 살인>이 첫 작품인데 아직 읽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이 시리즈에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그리고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그것은 아직 이 소설 속에서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간단한 단상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내용보다 먼저 지명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창원과 김해와 송파구가 작가의 이력 속에 어떤 위치를 차지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한 남자가 주민 센터에 주민등록을 살리려고 들어간다. 그의 이름은 이지훈이다. 접수를 받은 후 며칠 뒤에 주민등록증을 찾아오라고 한다. 다시 온 그를 보는 여직원의 모습이 불안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는 주민 센터를 도망쳐 나온다. 이런 그를 쫓는 형사가 있다. 그런데 그를 이대형이라고 부른다. 어! 뭐지? 이 차이가 뭘까? 살짝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앞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그가 만난 여직원과 그를 쫓던 형사의 정체가 드러난다. 형사는 백용준이고, 여직원은 그와 선을 본 박미숙이다. 

군대에서 불명예제대한 양 상사가 등장한다. 그는 흥신소 직원이다. 큰 규모가 아닌 사장과 단 둘이 일하는 곳이다. 보통의 삶이 아닌 어둠의 기운이 느껴진다. 왜 그가 등장한 것일까? 이지훈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짧게 이런 의문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의 삶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나오고, 과거 김 사장과 함께 한 일에 대한 A/S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간다. 여기에 그를 죽이려고 공격하는 이구아나가 등장한다. 왜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물론 공격은 그에게만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무실은 뒤집어졌고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그가 사랑하는 미스 김이 시체로 발견된다. 

백용준은 이대형 때문에 10년 전에 있었던 장대한 사건 관할 김해 경찰서에 자료를 요청한다. 그런데 이 자료를 요청하거나 찾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한 형사가 있다. 황재현이다. 이 소식을 듣고 그는 상사에게 보고 한 후 송파경찰서로 백용준을 찾아간다. 그는 장대한 사건이 완전한 살인사건이라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의혹투성이 사건이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의혹이 생기는 사건이다. 그리고 사실 황재현은 이 소설에서 백용준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한다.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고 범인과 사투를 벌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이지훈이 주민 센터에 주민등록을 다시 살리러 가면서 생겼다. 그를 이대형으로 생각하게끔 모든 전산자료는 바뀌어있다. 지문마저도 변했다. 이지훈의 과거를 보면 분명히 이대형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자료는 그를 이대형이라고 말한다. 이 모순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연쇄반응이 생긴다. 과거 사건을 재조사하는 형사와 이지훈을 찾아 없애려는 살인자와 그 사건과 연관을 가지고 있는 흥신소 사람을 죽이려는 살인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드러나는 관료 행정의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것은 최근에 통과한 전자주민증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시킨다. 행정 편의주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사연을 들려준다. 개별적인 사건이 가리키는 지점을 보게 되면 이지훈이 중심에 있다. 이것은 그가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이름과 정보와 원래 실체가 어긋나면서 생긴 문제다. 최악의 상황 중 하나를 가정한 것인데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한 살인용의자를 잡으려는 노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 녹여낸 사회비판과 풍자 등은 날카롭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경찰에게 바라는 바를 적절하게 보여준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앞에서도 썼지만 특정 지명에 눈길이 간다. 아마 내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중간에 분위기와 사건이 살짝 바뀌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사건을 암시하는데 과연 시리즈 다음 권에서 해결될지 모르겠다. 백용준 시리즈라고 하지만 그의 활약이 미미했던 것도 역시 아쉽다. 사회파 추리소설을 내세우고 출간되었는데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으면서 약간 혼란스런 부분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이 다른 사건을 일으키고 앞의 사건과 연관성을 가지지만 말이다.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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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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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지금 생각하면 정신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누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을 부르면서 다가오는 서른을 두려워할 때 나에게는 그냥 무덤덤한 일상의 하루였었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체력과 힘과 몸매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나에게 다시 돌아갈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데도 아마 이 나이는 아닐 것이다. 차라리 20대 초반이나 30대 초반 정도를 바란다. 20대는 무모함과 다양함을, 30대 초반은 약간의 사회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좀더 편안하게 삶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 중 주인공은 자신의 스물아홉 살 때를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일흔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 엘리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손녀 루시를 보며 스물아홉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소원을 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녀는 스물아홉 살로 다시 태어난다. 젊어진 것이다. 안경 없이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물들과 단단한 가슴과 근육들, 오랫동안 걸어도 전혀 힘들지 않는 체력 등은 탱탱한 피부와 함께 이전에는 몰랐던 그녀의 매력을 깨닫게 만든다. 젊으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는 그녀이기에 이 놀라운 변신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 변신으로 인한 문제들도 같이 보여준다. 이 하루 동안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돌아본다. 약간 뻔한 전개와 결말이지만 유쾌하고 즐겁고 가슴 속으로 여운이 파고든다.

다시 젊어진 나를 본다면 어떨까? 엘리는 깜짝 놀란다. 현실감이 없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 친구 프리다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놀랍고 두렵다. 변한 자신을 보고 놀랄 가족과 친구 때문이다. 실제 젊어진 그녀를 보고 손녀 루시가 얼마나 놀랐던가.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쳐 쉽게 할머니임을 믿지만. 이렇게 할머니와 손녀는 하루 동안 누릴 젊음을 위해 머리와 화장 등을 새롭게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엘리는 젊을 때는 몰랐던 그녀의 미모를 깨닫고 남자들의 시선을 즐긴다.

엘리와 루시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딸 바바라와 친구 프리다가 또 다른 축을 맡는다. 프리다가 엘리와의 통화와 엘리의 집에서 만난 젊은 엘리 덕분에 의문을 품게 된다. 당연히 그 딸인 바바라에게 전화한다. 바바라는 엄마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열정적이고 저돌적으로 상황에 부딪히는 인물이다. 반면 프리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할머니다. 이 묘한 결합으로 인해 좌충우돌 만들어지는 사건들은 이 소설에 코미디 요소를 가져다준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가장 유쾌하고 재밌는 장면을 만들 사람들이 바로 이 둘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지닌 콤플렉스는 엘리의 모험으로 인한 자기 성찰 등으로 변한다. 강함 속에 숨겨진 연약함이나 조용하고 둔한 듯한 일상 속에 숨겨진 현명함이 밖으로 드러난다.

소년이나 소녀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영화나 소설은 가끔 나온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나의 저질 기억력에 의하면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 개성 강한 인물들을 넣어서 변신한 할머니와의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은 비슷한 설정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년이나 소녀는 성인이 되어 경험할 것을 미리 했다면 할머니의 지나간 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말이다. 세대차나 변한 세상을 드러내기에 이보다 좋은 설정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미국의 수십 년 전 세태를 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다. 또 양념처럼 곁들여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랑에 대한 고민과 사연들은 잔잔하게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면서 조용한 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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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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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그 중 한 명이 셜록 홈즈일 것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도 그는 알고 있다. 지금도 영화로 드라마도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인물이 바로 그다. 비록 셜록 홈즈 전집이 9권밖에 되지 않지만 그 영향력과 인지도와 매력은 그 이상이다. 어떤 때는 과연 9권밖에 진짜 없는 것일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셜로키언들이나 유명 작가들이 실제로 홈즈를 다양한 방법으로 부활시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셜록 홈즈 시리즈가 생긴다. 그리고 이 소설도 그 중의 한 권이다. 

이 소설은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작품이다. 이 인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정통에 가장 가깝다는 의미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원작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문장이나 대화나 단어의 선택 등이 코난 도일의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좋았다. 사실 원작을 중구난방으로 읽어서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 읽은 것과 조금 더 자라 읽은 것이 뒤섞여 있다. 아마 읽지 않는 시리즈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원작이 모두 나왔고 작가도 죽었으니 홈즈를 다시 되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노년의 홈즈를 다룰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약간은 후일담 형식으로 변해 힘이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미공개 사건이다. 그 당시는 사회적 파급 등을 생각해서 세상에 밝힐 수 없지만 관련자들이 대부분 죽은 지금은 그 문제로부터 좀더 자유로워지면서 출간하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앞으로 몇 번 더 홈즈를 되살려낼 수 있다. 시대 상황과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거나 새로운 사건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혹은 의도적으로 시대의 순서를 뒤섞어 색다른 재미를 만들 수도 있다.

제목처럼 실크 하우스의 비밀을 다룬다. 이 비밀은 현대 기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9세기 말에도 과연 그랬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 비밀은 추악하다. 욕망과 권력이 맞물려 빚어내는 사건들은 시대에 상관없이 끔찍하고 섬뜩하고 잔혹하다. 그런데 이 비밀을 홈즈가 처음부터 쫓은 것은 아니다. 그에게 의뢰가 들어온 것은 화상 카스테어스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8개월 전 그가 미국에서 경험했던 납작 모자단 도적 사건과 관계있다. 이 도적들은 기차 습격을 하면서 미술품을 파괴했는데 나중에 탐정 등에 의해 죽게 된다. 이때 이 도적 중 한 명 킬런 오도너휴가 달아났는데 그가 카스테어스 근처에 나타난 것이다. 

과거 사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갑자기 그가 살해당하면서 미궁 속으로 빠진다. 누가 그를 죽였을까 의문이 생긴다. 물론 살인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본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은 원작에서도 나오는 베이커 가 소년 탐정단 중 한 명이다. 이 소년은 이 사실을 숨긴 채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 후 끔찍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이때부터 실크 하우스라는 비밀 조직이 드러난다. 이 소년의 죽음으로 홈즈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 조직의 비밀을 캐려고 하는데 예상 외로 강한 저항이 있다. 정부 고위 관료인 형조차도 이 조직을 파헤치는 것을 만류할 정도다. 그렇다고 그가 포기할 인물이 아니다. 음모와 함정과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이 속에는 홈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반가운 베이커 가 소년 탐정단이나 홈즈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형이나 레스트레이드 경감 등이 그들이다. 어릴 때 인상적이었고 지금도 영화 등에서 다시 등장하는 홈즈의 관찰력과 추리력이 재현된다. 홈즈의 아편 중독이나 뛰어난 변장 실력도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홈즈 종합 선물 세트 같다는 느낌도 든다. 여기에 영화의 추격이나 격투 장면을 집어넣어 현대적인 느낌을 불러온다. 그리고 변함없는 홈즈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 왓슨이 함께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 현대적인 내용으로 잘 이끌어나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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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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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채에서 모든&클래식 시리즈 첫 권으로 내놓은 소설이다. 현대 이스라엘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후보에 자주 오르는 아모스 오즈의 최근작이기도 하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2010년 지중해문학상 외국문학상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텔일란이라는 가공의 마을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이 가공의 마을이 실제 존재하는 곳처럼 다가왔다. 너무나도 멋진 풍경과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황당한 일들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다룬다. 그들의 행동을 통해 일상의 심리 묘사가 세밀하면서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이어진다. 풍경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마을의 이미지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중동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스라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소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아랍인은 <땅 파기>의 아델이다. 이 소설은 이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정치적인 색깔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긴 시간을 다루지 않는다. <땅 파기>가 며칠을 다루는 것을 제외하면 몇 시간 혹은 하루 정도의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첫 작품 <상속자>도 불과 한두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 낯선 남자는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알 수 없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내와 헤어지고 노모와 시골집에서 사는 아리에 젤리크 이야기다. 그의 현실을 간결하면서 빠르게 진행한다. 여기에 그 낯선 남자의 등장은 일상의 틈을 미묘하게 파고든다. 마지막 장면은 의문과 여운을 남긴다.

<친척>은 조카 기드온의 방문을 기다리는 길리 스타이너 이모 이야기다. 그녀는 독신 여의사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만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조카 기드온이 온다고 했다가 도착하지 않으면서 그녀가 느끼는 불안을 행동과 심리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이 사이사이에 조카와의 추억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걱정과 불안과 염려가 뒤섞인 그녀의 행동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한 일일 것이다.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외로움과 추억으로 인한 기대감은 잔잔하게 가슴으로 파고든다.

<땅 파기>는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와 사는 현직 여교사 이야기다. 여기에 같이 사는 아랍인 아델이 등장하면서 가장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장면을 만든다. 그런데 이스라엘 현대사에 무지한 나에게 이것은 아무 느낌도 없다. 단지 늦은 밤 들려오는 소음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할 뿐이다. 가장 많은 분량에 가장 많은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많은 문장 중 “우리의 파괴된 마음을 연상시키는 저 침울한 곡조만 남았겠지”(104쪽)는 노인과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가장 잘 나타내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어 나오는 <길을 잃다>는 유명 홀로코스트 작가의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부동산 중개업자 요시 색슨의 추억과 그 집에서 만난 집주인의 딸 야르데나와의 동행은 미묘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이 집과 작가에 대한 추억은 이 둘 사이를 이어주지만 동시에 다른 꿈을 꾸게 만든다. 이 단편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마을 면장 베니 아브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기다리기>다. 쪽지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쫓고 그녀를 기다리는 그의 행동과 심리는 과거의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들려주는 가슴 아픈 사연은 이 부부의 삶이 결코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열일곱 살 코비 에즈라는 마을 우체국장이자 도서관 사서인 서른 살 이혼녀 아다를 사랑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코비와 아다의 한 순간을 다룬 작품이 <낯선 사람들>이다. 순진한 소년의 풋사랑과 의지력 강한 남자에게 약한 아다의 행동이 살짝 엇갈리면서 펼쳐진다. 미숙하고 두렵고 열정과 사랑만 가득한 열일곱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용기 내어 한 행동이 미숙함과 어색함 등으로 실패하자 그의 삶은 순간적으로 떨어져버린다. 여기에 아다의 내뱉지 못한 한 마디가 이 둘 사이를 어떻게 만들지 의문을 품게 한다.

화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두 작품 있다. <노래하기>와 <다른 시간, 먼 곳에서>다. <노래하기>는 자살한 자식을 둔 부모가 만든 노래 모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잘 모르는 노래 제목이 수없이 나와 조금 난감하지만 그 부모가 과거의 사건을 잊기 위해 조직한 모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행간에 깔린 상실감은 곳곳에 스며있다. 마지막 작품은 이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텔일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고 한다. 동시에 난해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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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마이 로마이 2 테르마이 로마이 2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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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을 재미있게 읽어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만 간단하게 말하면 재미있지만 전편보다 신선함이나 기발함이 떨어진다. 아마 같은 방식으로 타임슬립하여 현대로 갔다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온다는 설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같은 설정이라고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힘이 조금 딸려 보인다. 일본적인 것을 무리하게 대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도발적으로 볼 수도 있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남근숭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근을 그렸고 약간은 야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도 나온다. 발기부전으로 아내를 잃은 루시우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타임슬립해서 간 곳이 온천이지만 목욕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목욕탕 예절을 다루는데 이것 또한 일본식 방식이다. 뭐 일본작가니 당연한 일이지만. 하지만 역시 아이디어와 상황을 연결하고 풀어내는 힘이 전편에 비해 떨어진 느낌이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들도 목욕이나 온천이나 물놀이 등을 소재를 다룬다. 여기에 당시 로마의 정치 현실을 살짝 섞어 넣어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테르마이 기사를 통해 본 황제와 황제 후보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 속에서 그 인물에 대한 평가도 내린다. 그리고 루시우스의 기발한 아이디어 때문에 몰락한 군소 목욕탕을 살리기 위한 방편이 펼쳐지는데 이것 또한 조금 억지스럽다. 일시적인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적으로 생각한다면 과연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그런 목욕탕에 자주 갈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일본에서 성공했다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겠지만.

2권을 본 느낌은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기보다 약간 걱정이 더 된다. 한 템보 쉰 듯한 느낌도 있지만 반복적인 설정과 전개로 아이디어가 약해진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번 에피소드 중 목욕탕을 벗어나 물놀이시설까지 다룬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된다. 목욕탕의 발전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아이디어 고갈로 봐야 할지. 아마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또 유명한 황제의 소년기를 너무 현명하게 그려낸 것도 살짝 아쉽다. 하지만 마지막 한 컷에서 루시우스를 향한 음모가 나오는데 이것이 과연 목욕과 어떻게 연결되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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