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레드 로드
모이라 영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일명 더스트랜드 3부작 중 1권이다. 3부작 중 1권이라는 말에서 2권과 3권이 나온 것 같지만 아직 2부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거장 리들리 스콧이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샀다. 그것도 출간도 되기 전에 말이다. 어떤 소설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겼다. 그리고 아직 읽지 못한 두 작품, 코맥 매카시의 <로드> 혹은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에 비견한다는 엄청난 평가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평가는 나의 손이 이 책으로 가는 것을 더욱 재촉했다.

 

파괴자의 시대가 지난 후 미래를 다룬 소설이다. 파괴자의 시대는 그냥 추측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핵전쟁이 아닐까 하고. 문명이 사라지고 문자도 없어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사용하는 무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활과 칼이다.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말이 가장 기본이다. 주인공 사바를 콜로세움으로 끌고 들어간 사기꾼 부부의 이동선과 타이어 등이 시간적 배경이 미래임을 알려준다. 지금까지는 사실 이 시간적 배경이 큰 매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바는 쌍둥이 오빠 루와 여동생 에미와 아빠와 함께 고립된 황야에서 살았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루는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을 탄 검은 망토의 남자들이 온다. 그들이 온 이유는 단 하나 동짓날 태어난 루를 잡아가기 위해서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판타지 소설로 생각했다. 루의 탄생에 엄청난 비밀이 있고, 실제 비밀의 주인공은 사바였다는 식의 판타지 말이다. 살짝은 마법도 기대했다. 하지만 작가는 기대를 저버렸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모험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루와 사바의 관계는 쌍둥이라는 것 외의 것이 존재한다. 루가 태양이라면 사바가 달이라는 식으로 둘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유대감은 형제라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사바가 사막을 건너고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루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족을 구하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집념과 열정과 투기는 그것을 초월한 듯하다. 너무나도 강력한 욕망이 있기에 그녀는 그 열기에 몸을 맡기면 무적의 전사가 된다. 이 때문에 콜로세움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게 된다.

 

미래를 다룬 수많은 소설처럼 이 소설도 황량하고 건조하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영원히 유지시키기 위해 사술에 빠진다. 루가 납치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를 구하기 위해 사바가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 헤쳐나가는가가 사실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 잭과의 운명적인 로맨스가 펼쳐지고 사바의 여전사 이미지가 확고하게 굳어진다. 여자라는 한계를 어느 정도 설정해뒀지만 시뻘건 열기가 몸을 지배하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전사로 바뀐다. 이 열기는 현재 조절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제나 필요할 때 드러난다. 이 순간 그녀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 편의 미래 서부극이라고 할 수 있다. 황량한 풍경은 그 이미지를 더 강하게 만든다. 사용하는 무기가 총이 아니라 활이라는 점에서 조금 엇나가지만 어릴 때 본 서부극의 이미지가 살짝 겹쳐보인다. 복잡한 구성이나 전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리들리 스콧 감독 탓일까? 아니다. 이 소설이 지닌 이미지가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사바와 잭을 잘 캐스팅하면 매력적인 캐릭터에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영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올해 후반에 2권이 미국에서 출간된다니 아미 내년 초에나 번역본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대된다. 그리고 이 책 홍보에 사용된 두 권, <로드>와 <헝거 게임>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읽는 김중혁의 작품집이다. 집에 찾아보면 소설 한 권 정도는 어딘가에 있는 작가다. 다른 수많은 작가들처럼 그의 작품도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 기회가 되었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기발하다, 예리하다, 독특하다’ 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유리의 도시>는 몇 쪽을 읽기 전 어딘가에서 먼저 읽은 기억이 있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실려 있었다. 그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박민규가 연상되었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작품집에 관심이 간다는 글도 있는데 이번에 그것이 실현되었다.

 

제목부터 난감한 <C1+y=:[8]:>는 마지막에 작가의 해설을 보고 겨우 이해했다. 앞에 있는 수식이 city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글이 나온다. 스케이트보드가 나온다. 가공의 논문까지 나온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도시의 골목을 달리면서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과 그것이 정글 이미지로 다가온 것이다. 정글의 두려움은 느낀 화자가 도시의 모습에서 미로 같은 공간을 꿈꾸는 모습은 안전이 기본으로 깔린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놀이가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일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냇가로 나와>는 한 전설적인 학생 이야기다. 하마까. 별명이 참 특이하다. 이 학생에 대한 전설로 시작해서 실제 이야기로 넘어가고 현재가 나오는 구성이다. 그런데 이 진행이 딱 구분되어 나오지 않는다. 갑자기 변한다. 소위 말해 말빨 좋은 친구의 이야기에서 사실로, 그리고 추억 속 이야기와 변한 고향의 풍경으로 빠르게 변한다. 이 과정에서 풀어내는 이야기 방식은 성석제의 입담을 떠올려주었다. 전개와 주변 환경의 변화가 묘한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바질>은 공포소설로도 읽힌다. ‘2009 세계단추박람회’가 열린 암스테르담에서 비싸게 산 바질 씨앗이 만들어내는 공포다. 그런데 구청직원이 이 공포를 반감시킨다. 가상의 현실에 지극히 현실적인 공무원을 등장시켜 균형을 이루고 있다.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는 sf영화 <인 타임>을 연상시킨다. 물론 시간을 사고 파는 영화와 다른 전개고 이야기다. 상상력이 이렇게 발휘될 때 어떤 sf가 될지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블랙홀체험관은 한 번 가보고 싶다.

 

표제작 <1F/B1>은 재밌다. 주 무대는 고평시 네오타운이다. 이름에서 왠지 고양시가 연상되는 것은 나뿐일까? 네오타운의 풍경은 이제는 새롭게 개발된 도시의 밀집 빌딩 지역이 연상된다. 이런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고 이 타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빌딩 관리자들이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1F와 B1 사이에 있는 /(슬러쉬)다. 작가는 이 표시를 끼어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왠지 좀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과장된 이야기 속에 담긴 재개발업자와 SM(SLASH MANAGER)의 대결은 실제는 큰 일이 아니지만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크랴샤>는 마술 이야기다. 재생 이야기다. 마술 속에서는 찢어진 것, 사라진 것이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찢어진 것은 찢어진 것이고 부서진 것은 부서진 것이다. 힘겹게 중년을 보내고 있는 아마추어 마술사를 통해 보여주는 마술 이야기는 현실과 연결될 때 현실의 무거움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크랴샤의 영어 단어가 뭔지 밝혀질 때 이 단편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분명해진다. 원 플러스 원 고난을 말할 때 재치와 힘겨운 현실이 엮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탐정 실패하다
죠 메노 지음, 김현섭 옮김 / 늘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에 읽은 <유령 비행기> 작가의 작품이다. 그때는 단편집이었는데 이번에는 장편이다. 그 당시 쓴 서평을 찾아보니 흥미롭게 읽은 단편들이 꽤 많았던 반면에 문체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년탐정 빌리가 풀어내는 미스터리는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전체적인 문장의 리듬 등은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단문이 아니고 문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덕분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평소보다 더 걸렸다.

 

H.L.멘켄의 “천재성은 유년기를 연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인용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목도 소년탐정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빌리가 열 살 생일 선물로 ‘트루라이프 주니어용 탐정도구 세트’를 받으면서부터다. 이 세트를 통해 빌리 아고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생 캐롤라인과 친구 펜튼이 탐정단을 꾸리고 어른들이 풀지 못하던 미스터리를 푼다. 당연히 이 소년탐정단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들의 실적이 오를수록 더 심해진다. 대단한 업적을 쌓은 후 빌리는 범죄학을 연구하러 대학에 들어가고 동생과 친구는 평범하게 성장한다. 그러다 캐롤라인이 자살한다. 이 자살은 빌리를 흔들고 켄튼을 원망하고 그 자신마저 자살하게 만들 정도다.

 

이 자살 소동으로 그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병원에서 나온다. 우울증 약을 달고 산다. 그의 삶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던 그이기에 더 그렇다. 그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놀랍게도 그의 숙적들이 살고 있다. 그가 나이든 만큼 늙은 적수지만. 그리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나온다. 그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건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기이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 중 하나인가 생각했다. 아니다.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범죄단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 범죄단을 깨부수는 빌리를 생각했다. 약간 비정상적인 삶을 살지만 그의 이력을 생각할 때 너무 당연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대를 산산조각낸다. 정작 빌리가 알고 싶어 하면서도 두려워 풀지 않았던 캐롤라인의 자살 원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것은 빌리가 실패한 탐정 활동과도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소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숨고 피하는 것이다. 심리치료사가 캐롤라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빌리가 보여주는 행동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작가가 작품을 시작한 것이 2001년 9월 11일 사건이 있고 몇 달 후였다고 한다. 이 테러 사건의 본질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풀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 벌어지는 악당들의 행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심리적 분석도 전혀 없다. 그냥 일어난다. 고담으로 불리는 뉴욕에서 사라지는 빌딩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을 그려내면서 일상에 대한 풍경을 보여준다. 놀랍고 기이한 장면들인데 이를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무덤덤하다. 어쩌면 프로그램화된 기계같다고 해야 할까.

 

희망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고 모험도 미스터리도 비밀도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빌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스터리를 모두 푼 후 탐정을 그만두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미스터리를 푼 후 그의 상상력이 어쩌면 고갈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아직 소년탐정으로 불릴 때 그와 함께 활약한 소년탐정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삶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년기를 연장시키지 못한 빌리에게서 천재성이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빌리 남매와 같은 에피와 거스 멤포드 남매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자연스레 비교된다.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놓는다. 이 남매가 사건 하나를 해결하는 장면은 열정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들의 활약을 보면 빌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사건의 핵심에 다가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나의 상상력을 떠올려본다. 너무나도 메말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있다. 시작하는 장이 1장이 아니라 31장이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스터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두 편의 엽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읽으면서 제목을 왜 <바다>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좀 더 시선을 끄는 단편을 제목으로 정해도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가령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해설까지 읽고 난 다음에는 어쩌면 <바다>에 나온 명린금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원제가 <바다>니 출판사에서 쉽게 바꿀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했다.

 

<바다>는 어색함이 감도는 소설이다. 결혼을 위해 인사하러 간 여자 친구의 집에서 벌어지는 하룻밤이 주된 내용이다. 화자는 여자 친구의 열 살 어린 꼬마동생과 함께 방을 쓴다. 꼬마동생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덩치가 크다. 이 꼬마동생에게는 기묘한 일이 있다. 하나는 동물 다큐를 본 후 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린금이란 악기를 다루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읽는 동안 강한 인상을 주는데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은 조금 황당한 이야기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빈 여행을 갔다가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정을 보내는 화자 이야기다. 그 시작은 함께 혼자 온 고토코라는 아줌마와 방을 같이 쓰면서부터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옛날 사겼던 독일 남자의 최후를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호텔을 제대로 찾아올 수 없다, 양로원 가는 버스를 제대로 탈 수 없다는 이유로 동행하면서 일정이 꼬이게 된다. 특이한 아줌마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있는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과 감정의 공조가 마지막에 밝혀지는 하나의 진실에 의해 반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텐데 라는 당연한 상상을 한다.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는 일본 타자기는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을 심어줬다. 왜냐고?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한자 활자 때문이다. 화자가 깨어진 활자를 들고 활자관리인을 찾아가는데 어떤 타자기가 이런 한자를 모두 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작가가 관능소설을 의뢰받아 쓴 소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에로틱하게 느낀 부분이 마지막 문장에서밖에 느끼지 못했는데 활자관리인이 깨진 한자 활자를 풀어내는 장면들이 상당히 의미 함축적이고 야릇하다. 어쩌면 이런 내용 때문에 책 제목이 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병아리 트럭>은 조금 답답했다. 하지만 읽은 후 책 속에 묘사된 장면들이 세밀한 관찰을 통한 후에 나올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말하지 않는 여섯 살 소녀와 중늙은이 도어맨의 기묘한 관계는 답답하지만 기묘하다. 소녀의 말을 상상으로 추정하는 그와 곤충 등의 허물을 모으는 소녀의 행동은 평범한 일상이 분명 아니다. 또 병아리 트럭이 왔을 때 보여주는 소녀의 반응은 뭔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말을 입밖으로 낼 때 그의 가슴속에는 그 말은 메아리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 <가이드>다. 마을 정전 때문에 엄마의 가이드 행을 따라간 소년이 겪게 되는 하루를 다룬다. 그 중에서 제목상점을 운영하는 노인과의 만남과 동행은 아이의 동심과 열정이 느껴진다. 가이드인 엄마를 따라 다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외웠던 마을 유산이나 전설이 입밖으로 흘러나올 때 특히 그렇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제목을 노인에게서 받은 소년이 평생 그 하루를 추억할 것이고, 나 자신도 추억 속 한 장면에 제목을 붙였던 것을 떠올린다. 많은 여행과 만남을 가졌지만 그냥 추억으로 남겨두기보다 제목을 하나 붙인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은색 코바늘>과 <깡통 사탕>은 엽편소설이다. 이 짧은 소설에 감상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할머니 13주기 추모 법회와 40년 경력 버스 운전사의 노련한 아이 다루는 기술만 남아있다. 아주 짧은 단편집인데 해설을 보니 작가의 작품 세계가 그대로 담겨 있는 모양이다. 아직 많이 읽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집에 있는 다른 소설을 읽게 되면 이 해설에 조금은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의 추구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 참 무서운 것이다. 새러와 잭의 사랑이 그렇다. 운명적인 이 둘의 사랑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잭은 아내와 아들을 버리지 못하고, 새러는 사랑의 감정 앞에 무너진다. 사랑으로 충만한 이야기가 갑자기 굴러 떨어지게 된 것은 그 유명한 매카시즘 때문이다. 2권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그 때문에 비롯한 연인들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각자에게 너무나도 파란만장한 사연도 그 삶이 끝나는 순간 소멸한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을 알려준다. 그 어떤 환상도 낭만도 과장도 없이.

 

다시 만난 두 연인의 사랑은 불탄다. 오빠 에릭도 코미디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매카시 광풍은 에릭의 공산당원 전력을 문제 삼는다. 공산당원을 고발하라는 압력이 에릭에게 내려진다. 낭만적이고 연약한 그에게 이 압력은 너무나도 무섭다. 양심을 팔고 옛 동료를 넘겨 지금의 화려한 삶을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양심이다. 이 때문에 그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 동시에 연좌제처럼 퍼지는 매카시즘에 따라 새러도 신문사에서 쫓겨난다.

 

에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매카시즘 광풍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요즘 조,중,동 등에서 떠들고 있는 종북 논란이다. 하나의 틀 속에 사람들을 가두고 사방에서 압박을 가한다. 물론 시대가 바뀌고 이 전략이 그 시대처럼 완벽하게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종복 논란을 되풀이하는 것을 본다. 무섭고 끔직하고 황당하다. 지금도 이런데 1950년대 미국은 어땠을까? 뭐 한국의 80년대 이전만 해도 종북은 곧 사회적 매장과 죽음과 동의어였던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고 협박하고 조장한 인간들이 높은 자리에서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현실은 역사의 부끄러운 장면이다.

 

소설 속에 드러난 새러의 재능은 대단하다. 하지만 시대의 높은 벽 앞에 그 재능이 쉽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역지에서 다시 명성을 얻게 되지만 남편 없는 임산부라는 사실이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마음껏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을 할 정도는 아니다. 불행한 시대의 현실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두 남자를 떠나보내게 만든다. 읽는 동안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잭이 ‘나는 몰랐다’고 말할 때 앞에 깔아둔 장치 중 하나가 겹치면서 우리사회에서 낯 두껍게 그 시절을 정당화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진심을 담아 반성하고 이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게 제도적 법적 사회적 장치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말이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흔히 내가 살아온 것을 책으로 쓰면 소설 책 몇 권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누구나 굴곡 많고 힘들고 어렵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왔다. 나만 그런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나보다 더하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무리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더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다 사라지게 돼. 내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지.”(367쪽)라고 말할 때 이 소설이 추구하는 행복과 개인의 삶이 어떤 것이 조금은 윤곽을 잡게 된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라도 한 순간을 도려내어 책으로 낸다면 한 편의 멋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뻔한 이야기를 뒤로 한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했지만 결코 완벽하지 못했고, 그 사랑으로 고통스러워 한 사람이 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배신 이야기라는 역자의 표현에 일부분 동의한다. 이 모든 것을 현실과 사회의 높은 벽에서 비롯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 명의 개인이 이것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그 사랑이 아린지 모르겠다. 하나 덧붙인다면 1권에서 예상한 결말이 없다는 것과 이 결말에 고개 끄덕이게 된 것이 반갑고 고맙고 즐겁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성 새러의 일생은 읽는 내내 감정의 높낮이를 극단적으로 오르내리게 만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