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한 스푼 - 그리고 질문 하나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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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하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전해진 속보 하나는 큰 절망을 주었다. 그것은 한미 fta 국회 날치기 통과였다. 절차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날치기가 가능한지 황당했고, 늘 그렇듯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영혼없는 거수기만 되었다. 여기에 민주당 통상파 혹은 모피아 출신들도 한몫했다. 이런 파국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한 것은 통합진보당 일부였었다. 그 날치기 현장을 국민 앞에 폭로하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결과로 우린 을사늑약 이래 최악의 조약 체결자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1년이 되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이 조약은 하나의 기정사실이 되어간다.

 

사실 이 책이 나올 것이란 소식을 작년 말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날카로운 분석으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그기에 많이 기대했다. 아마 이때 기대한 것은 한미fta의 문제점과 전체를 개괄하는 분석이었다. 그런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겨우 한 스푼이다. 이 거대한 통상 조약에 대해서. 어쩌면 원문이 1000쪽이 넘는 것을 요약하거나 세부적으로 쓴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외교통상부 직원들도 제대로 모르고 오역으로 가득한 번역 등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하지만 한 스푼에 담긴 질문과 핵심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미 ‘나는 꼽사리다’에서 들은 것과 중복되는 것이 많다. 말로 듣는 것과 글로 나온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말로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거나 감정이 그대로 실려 표현된다면 글은 한 번 더 정제된 후 나온다. 이 과정을 통해 논리적인 분석이 가능하고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fta를 둘러싸고 나오는 수많은 음모론과 내인론에 대한 분석은 단순하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던 fta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게 만든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단숨에 바뀔 정도의 정보가 아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제목에서 ‘질문 하나’를 붙은 것도 바로 그 목적이 아니겠는가.

 

fta를 고질라에 비교해서 풀어낸 이야기는 한미fta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하게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인들과 조약 체결을 실적으로 알고 밀실행정으로 이를 진행한 외교부와 청와대다. 한 나라의 조약 체결을 어떻게 국민도 모르게 진행할 수 있으며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에게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문을 복사해서 돌린 국회의원 비서관이 실형을 살았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면 분노가 치솟고 절망에 빠진다. 과연 한국에 미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싶었다. 가슴 아픈 문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무섭고 분노하게 만든 것은 “결국 외교부 등 한미 fta를 추진하는 상층부가 한국 공무원 같지 않고 미국 공무원 같다는 것이다”(73쪽)란 부분이다. 아마 이 부분은 한미 fta 진행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음모론의 핵심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국민에게 보여준 행동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fta 통과 후 가장 먼저 나온 뉴스가 체리 가격 하락이라는 황당한 소식은 우리의 한미 fta 인식이 어디에 멈추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착한 fta. 나쁜 fta'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가 fta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조약 체결 당시 이것이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홍보의 중심으로 삼았던 것을 떠올린다. 전 정권의 과실을 죽은 노무현이 지금이라면 이대로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덮으려고 한다. 그들이 먼저 진행했고 통상교섭본부에 얼마나 많은 권한을 위임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내부의 적을 없애고 하나의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저자도 말했듯이 인간 노무현은 그립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이 fta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 재미로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단어가 된 ISD가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과연 우리가 바라는 대로 팩스 한 장을 보낼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적으로 합의한 적도 없고, 종합적으로 검토된 적이 없이, ‘은근슬쩍’이 우리의 기본 통상 전략이 되어”(225쪽)버리는 현실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유명한 경제학자조차 fta에 대해 모든 얘기를 쓰는 것이 부담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과 국민들과 논의와 토론과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려준다. 대국민 홍보에 매몰되어 한 번도 제대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국민들이 질문하지 않는 나라가 잘살게 된 예가 없다.”(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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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먼 여행 아시아 문학선 2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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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책을 받은 후 잠시 걱정했던 것은 생각보다 두툼한 분량이었다. 그러나 전작의 경우는 더 두꺼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책을 읽으면서 사실이 되었다. 분량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구스타드 가족과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인도의 역사에 무지하다. 앞에 인도 현대사 연표가 나오지만 그 역사의 의미를 알 정도는 아니다. 해설을 읽으면 훗날 방글라데시가 되는 동파키스탄의 독립운동과 그로 인해서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지는 1971년이 시대적 배경이다. 사실 이 연도가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고 부끄러워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삶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조로아스터교다. 이미 사라진 종교로 알고 있던 그 종교가 적지 않은 신도와 믿음으로 굳건한 사회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파르시라고 하는데 페르시아 계통의 인도 조로아스터교도라고 한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구스타드 노블이다. 아버지 대에서 집안이 몰락했다. 은행원으로 겨우 살아간다. 자식 3명과 아내를 먹여 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에게 한 가지 낙이라면 큰 아들 소랍이 인도 공과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아들이 반항한다. 그의 바라는 바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의절을 외친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또 다른 행복 하나가 사라졌다. 그것은 절친한 이웃이었던 빌리모리아 소령이다. 그는 구스타드가 다쳤을 때 들고 병원에 갔고, 좋은 의사를 통해 큰 병을 고치게 만들어준 인물이다.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이 떠났다.

 

이 둘의 퇴장은 재빠르다. 하지만 빌리모리아 소령은 미스터리와 같은 존재로 계속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중 하나가 구스타드에게 백만 루피를 은행으로 입금해달라는 요청이다. 사실 이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는 모르지만 구스타드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그냥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미스터리 스릴러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순간부터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 돈과 관련된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 역사 속 위인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던 정치인의 추악한 진면목이 드러난다. 수박겉핥기 역사 공부가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일상에서 구스타드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인물은 딘쇼지다. 그는 같은 은행 동료이자 농담으로 웃음을 준다. 한 가지 문제라면 입냄새가 심한 것이다. 이것도 그때그때 변한다. 냄새가 약하면 그와의 시간이 더 즐거운 것은 당연하다. 그는 구스타드에게 일상의 빡빡함에서 조그만 피난처 역할을 한다. 뒤로 가면서 빌리모리아 소령과 관련된 일에 큰 도움을 주지만 그가 내뱉은 심한 농담 때문에 여직원의 경고를 받는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슬픈 것은 그의 죽음이다. 삶과 죽음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상실은 뒤로 가면서 다른 사건과 연결된다.

 

구스타드의 아내 딜나바즈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과 아파트 주민들은 그 시대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준다. 작가가 그려낸 섬세한 장면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6~70년대 한국 소시민의 삶이다. 받아보는 신물을 폐지로 팔아 신문 값을 마련하고 이웃과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내일을 걱정하면서 살아간다. 사회 인프라가 열악하여 악취가 도로를 뒤덮고 이성 너머 주술의 힘에 기대 문제나 병을 해결하려고 한다. 어쩌면 지금도 이런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진이나 영화 등을 통해 아주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인도의 빈민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나의 선입견도 한몫했을 것이다.

 

빌리모리아 소령과 관련된 사건을 제외하면 큰 사건이나 사고가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섬세하게 묘사된 장면과 사실적인 문장이 이국적이면서도 낯익은 장면으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화려한 포장이 없지만 삶이 만들어내는 현장을 미세한 곳까지 들여다보여주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된다. 정신지체아 테물의 행동과 말투는 이 시대 인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연 듯 생긴다. 유구한 역사로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의식이나 제도나 정치 등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 말이다. 물론 이것을 한국에 대입하면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그 옷이 맞지 않거나 내용물이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일상과 낯선 인도의 풍경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조로아스터교도의 삶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아직도 조장을 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솔직히 그 풍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는데 나의 상상력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적지 않은 분량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위해서는 간단한 역사 정보와 인도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재미를 누리는 데는 필요없다. 그냥 구스타드와 그 가족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첫 장편이 이 소설인데 아직 번역되지 않은 세 번째 작품 <가족 문제>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파르시 홀아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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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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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의 무대는 북극에 가까운 그린란드 북동부 지역이다. 여기는 일 년에 한 번 연락선이 소포와 보급품 등을 싣고 온다. 그 배 이름은 베슬 마리호다. 이 배는 사실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냥꾼들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채집하여 사실과 허구로 잘 꾸며놓았다. 읽다보면 과연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사실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그 곳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거의 모든 이야기가 허구 같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과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재밌다.

 

모두 열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다. 처음에는 그냥 읽었지만 두 번째 이야기부터는 앞에 나오는 지도를 자주 펼쳤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낯선 지명과 거리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야 겨우 두셋이다. 혼자 사는 사냥꾼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자주 왕래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 웃게 만드는데 한두 편은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는 옛날 호러 소설에서 본 장면과 너무 비슷하다.

 

첫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지막 문장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를 읽을 때 폭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대사가 너무 황당하면서도 재밌기 때문이다. 열정을 다스리기 위해 바지를 벗고 남동풍 속을 달리거나 수탉에게 반해 훔친 후 지극정성으로 돌보거나 홀로 지내면서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방문에서 오히려 또 다른 이야기에 질식하는 모습은 웃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집중력을 말하다 발견한 새끼곰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하나의 멋진 문신을 얻기 위한 이 순진한 사냥꾼들의 행동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순수하다. 옛 이야기 속에 원시부족을 방문한 문명인이 일상품을 어떻게 팔았는지 들었을 때와 너무 비슷하다.

 

혹독한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그들을 훈련시키려고 온 중위를 길들이는 모습도 낯익지만 아슬아슬하다. 최고의 대박은 역시 표제작인데 상상의 여인을 사모한 남자들이 이 여인을 사고파는 모습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은 뒤로 저치고 말이다.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먼 거리를 달려와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웃게 만들고, 변소 하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반응들은 과연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질투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비극을 다룬 마지막 이야기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섬뜩했다. 과연 다음 이야기에 이 부분이 어떻게 다루어질까 하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낯선 곳을 다룬 이야기를 읽다보면 늘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기대한 그대로의 모습도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린란드가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생각할 때 그곳을 며칠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혹독한 결심을 하지 않는 한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수집하고 가공하게 된 배경에는 이들과 함께 오랫동안 동거동락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믿기 어려운 책장수 이야기도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가볍게 읽으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큰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다음 이야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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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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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쓸 수 없는 사람’이면서 ‘읽는 사람’이다. 이 단어는 이 소설 속에서 핵심적인 단어인 동시에 나에게도 적용된다.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이란 부제는 그래서 책 읽는 중간에나 눈에 들어온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side A와 side B다. 처음 이 구분을 읽을 때 남자와 여자의 시각을 다룬 것이 아닐까 하는 뻔한 생각을 했다. 아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로 나눈 것은 맞다. 그것은 죽는 사람이 여자냐, 남자냐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섬뜩한 설정이지만 내용을 읽다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먼저 죽는 것은 여자다. 그녀는 ‘쓰는 사람’이다. 병명은 황당한 치사성뇌열화증후군이다. 뭔 병이냐고? 이 병은 복잡한 사고를 하면 할수록 뇌가 노화되어 죽는 병이다. 그냥 단순한 감정만 표현한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녀는 작가다.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직업이다. 그리고 어떻게 이 두 남녀가 만났는지, 사랑에 빠졌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 나오는 단어들이 바로 ‘쓸 수 없는 사람’과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다. 한자로 쓰면 독자와 작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렇게 풀어놓으니 더 쉽게 가슴으로 와 닿는다. 동시에 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그냥 취미를 글을 쓰던 그녀가 우연히 습작을 남자에게 들킨다. 그녀가 쓴 글을 읽고 그는 몰입한다. 평소 그녀가 쓰는 단어에 주목하고 관심이 있던 터라 이것은 하나의 계기가 된다. 하지만 남자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여자가 상처받는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역시 솔직한 감정과 감상이다. 평범한 직장 여성에서 전업 작가로 전환한다. 물론 이 사이에 둘의 결혼이 있다. 결혼으로 인한 문제, 전업 작가가 되면서 벌어지는 문제 등이 나온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녀가 걸린 병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온다.

 

side B는 이 죽음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작가의 설정이다. 또 다른 설정이 나온다. 그것이 바로 side B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남자의 죽음이다. 이제 작가는 남자를 죽게 만든다. 그리고 이 두 남녀가 어떻게 만났는지 알려준다. 자신의 세계에 벽을 만들어두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던 한 남자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읽는 남자와 쓰는 여자가 팬과 독자로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한 작가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인지 나오면서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당연히 다음은 결혼이다. 전업 작가의 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결혼한 남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이 좋아했던 연예인과 결혼했다는 한 남자가 생각났다. 후자의 결혼은 행복하지 않았다. 전자의 경우는 행복했지만 그렇게 길지 못했다. 사실 B가 A의 반복 같은 느낌을 주면서 살짝 지루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조금 변화를 준다. 이 변화는 이야기를 중첩시키면서 비트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복잡하지는 않다. 이 미묘한 변화를 보면서 그 남자가 작가에게 한 찬사가 떠올랐다. 영리하다는 그 말. 실제 나에게는 그렇게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낳는 구성이다. 비슷한 설정이 중복된다. 쓰는 여자와 읽는 남자다. 사내 연애를 한다. 쓰는 여자의 가장 열렬한 독자이자 가장 큰 후원자다. 이런 설정을 같이 하면서도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역시 필력이다. 직접적인 설명보다 간접적인 문장으로 상황을 설명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문장은 잠깐 멈춰 그들의 마지막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들이 누린 길지 않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이 부러워진다. 아주 잠시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을 본다. 웃는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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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 지구가 혼자 돌던 날들의 기억
애비 셰어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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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쓸데없이 걱정을 한다. 고사성어의 기우처럼 정말 걱정만 한다. 조금 흔들리는 천장의 장식물을 보고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길을 걸어가는 아이를 보고 혹시 넘어져서 다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이런 걱정은 그 순간뿐이다. 다시 그런 일을 보면 걱정을 하지만 금방 잊는다. 그러다가 다른 일을 걱정한다. 물론 이것도 오래 가지 않는다. 조금 예민한 편이라 그런가 생각하지만 머릿속에서 상상력이 샘솟으면서 이런 문제가 더 심해진다. 나쁜 쪽의 상상력 말이다. 그런데 주인공 애비는 다르다. 이런 강박증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바로 이 소설은 애비의 강박증을 다루고 있다. 보면서 아! 어떻게 저렇게 살지. 대단하다. 나 같으면... 이란 감탄과 물음을 계속 던진다.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어린 시절이었다. 좋은 아빠와 엄마,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 아빠는 음악을 자신이 만들어서 부르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줬다. 아빠가 큰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이 병에 의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애비다. 그녀는 자신이 아빠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나온 강박증이자 죄의식의 발로다. 이것은 다른 죽음 사람에 대한 기도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기도로 이어진다. 위험한 못이나 유리조각을 줍는 강박증 이후 기도는 또 다른 강박증이 된다. 왜 이럴까? 물론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단지 그녀가 겪는 고통과 주변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줄 뿐이다. 바로 이 부분이 소설에 몰입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녀가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나왔고, 연애도 하고, 연극도 하는 등 일상을 살아간다. 물론 이 일상 속에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 기도 시간은 더 길어지고, 혹시 누군가 다치거나 죽게 되면 이 강박증의 증세는 더 심해진다. 한때 약으로 조금 좋아졌지만 본질적인 증상의 변화는 없다. 완화된 증상이 일상을 좀더 쉽게 만들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만약 그녀의 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미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까. 증상을 알고 읽는 독자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평생 강박증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 이 소설이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그녀처럼 살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더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애인의 도움이다. 특히 뒤에 나온 남자 친구 제이는 정말 대단하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어야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솔직히 자신 없다. 이 강박증을 자해로 벗어나려는 그녀의 행동은 예전에 본 신체훼손으로 쾌감을 얻는 일단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혹시 그들도 이런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애비는 유대인이다. 유대교를 믿는다. 그녀의 종교생활은 경건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한다. 신이 모든 것을 보고 있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긴 기도문이 만들어지고, 기도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그녀의 불안과 공포를 잘 알려주는 문장 중 하나가 “오직 나와 하-님뿐이었다. 숨을 데도 없었다.”(173쪽)이다. 뒤로 가게 되면 극도로 음식을 절제하고 자해한다. 시간이 조금만 남아도 운동을 하고 몸을 혹사한다. 이 느낌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다. 이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이 증상이 완치되지 않는다. 조금 완화된 듯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는 그대로 놓여있다. 아마 평생 같이해야 할 것이다. 정말 용기와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단하다. 이 이상 더 말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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