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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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모던 팥쥐전>이 나왔을 때 전래 동화를 조선희가 각색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일도 많았고 다른 책 읽는다고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다 재수 좋게 손에 들어온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족과 아쉬움 사이다. 먼저 만족한 것은 전래 동화를 이렇게 변주하고 결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이고, 아쉬운 것은 원작의 느낌이 왠지 모르게 흐릿하게 느껴진 것이다. 어쩌면 강한 장점일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아랑전설을 현대 소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이미 있다. 김영하의 <아랑은 왜>가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 소설은 아랑전설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다. 장편 속에 녹여낸 아랑전설이 기존의 것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지만 기억 속에 이 소설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새롭게 해석된 전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희의 전래 동화 새롭게 해석하기 시리즈인 이번 작품은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상징과 숨겨진 진실 등은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로 풀려나올 것이다.

 

책 속엔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있다. 중심이 되는 전래 동화나 전설은 아랑전설, 금도끼 은도끼, 심청전, 토끼전, 할미꽃 이야기, 북두칠성 등이다. 솔직히 이 여섯 이야기 중에서 기억 속에서 많이 사라진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읽으면서 이야기 전개와 전래 동화가 약간 어긋나는 부분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여기에 원작을 새롭게 해석해서 현대 속에 풀어낸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엮일 때 더욱더 나의 한계를 느꼈다. 아마 이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무서움이 더 강하게 다가온 경우도 적지 않다.

 

<영혼을 보는 형사 : 아랑 전설>은 제목만 보고 아랑의 원혼을 풀어줄 형사 이야기로 착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보다 뛰어나다. 영혼을 보는 형사는 영화 제목이고, 실제 이야기는 이 형사 역을 하는 배우다. 저주와 전설이 만나는 곳에서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샘솟는다. 그리고 요즘 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아랑 사또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스미스의 바다를 헤맨 남자 : 금도끼 은도끼>는 읽고 난 후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전래 동화의 아이템이 소재로 이용되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놓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 : 심청전>은 섬뜩하다. 호러물에 가장 맞는 단편이다. 심청이 바랐던 소원이 소녀들의 것으로 변하고 현실을 넘어설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발전한다. 마지막으로 오면서 공포가 극대화되는데 조금은 도식적인 느낌이 든다. <오소리 공주와의 하룻밤 : 토끼전>도 소재만 빌린 소설이다. 아버지의 간을 낫게 하려던 효자의 실종을 둘러싼 이야기는 과거 속으로 흘러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그 사이에 담긴 진실한 효심은 안타깝다.

 

<오래된 전화 : 할미꽃 이야기>는 낯선 이야기다. 아마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텐데 낯설다. 하지만 원작을 새롭게 현대화한 이 소설은 우리를 잘 드러낸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고, 감정과 이성이 충돌하고, 생과 사가 교차한다. 반복된 장면들은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29년 후에 만나요 : 북두칠성>은 sf적이다. 지구가 조각났다는 것과 단절된 정보는 역사와 전설은 혼란스럽게 만든다. 원작을 가볍게 넣어서 새롭게 풀어낸 삶 이야기는 반전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왠지 작가와 완전히 호흡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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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인형과 교수대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2
앨런 브래들리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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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파이바닥의 달콤함>이 미스터리 팬들에게 엄청난 호평을 받은 것을 기억한다. 이 말은 내가 읽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 나이로 겨우 열두 살 정도인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이 어린 소녀가 살인사건을 제대로 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평을 읽었을 때 그 어디에도 나이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현이 더 많았다.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먼저 생겼지만 언제나처럼 읽고 있던, 읽어야 하는 다른 책들에게 밀려 기억 속에만 남아있었다. 그러다 1권보다 먼저 2권이 먼저 손에 들어왔다.

 

조금 황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제 시작인데 플라비아의 장례식이 펼쳐진다. 뭐지? 하는 의문이 따라온다. 하지만 이것은 한 소녀의 상상이다. 그녀가 죽음을 상상한 묘지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155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키의 그녀는 니알라다. 그녀는 BBC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마법왕국’의 <말끄미 다람쥐>라는 인형극의 인형술사 루퍼트 포손의 조수다. 그녀가 이 사실을 말하지만 불행하게도 플라비아의 집에는 TV가 없다. 1950년도를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묘지에 있는 것은 루퍼트의 차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이때 리처드슨 목사가 나타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교회에서 루퍼트의 꼭두각시 인형극을 공연하자는 것이다. 차 수리할 시간도 벌고 그 사이에 돈도 벌자는 의도다. 서로 합의하고 교회에서 두 차례 공연을 펼치기로 한다. 공연극은 <잭과 콩나물>이다. 이 공연을 통해 머리가 심하게 큰 땅딸막한 남자 루퍼트의 능력과 매력이 발산된다. 전 국민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수많은 여자들이 그를 쫓게 만든 그 매력 말이다.

 

괴팍한 소녀 플라비아가 볼 때도 인형극은 멋지고 재미있다. 마지막에 잭을 쫓아 내려온 거인 갈리간투스의 추락은 놀라움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재미난 설정은 잭의 얼굴이 목을 매어 자살한 로빈 잉글비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첫 공연의 성공은 두 번째 공연도 마찬가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갈리간투스 대신 루퍼트가 추락한다. 감전사다. 공연을 보고 있던 형사 등이 현장을 통제한다. 소녀 탐정 플라비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전작에서 형사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을 생각하며 사건에 개입하려고 하지만 어른들에게 그녀는 아직 어린애다.

 

플라비아는 뛰어난 지능을 가진 화학광이다. 문학이 그녀를 매혹시킨다면 아마 그 속에 독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또한 그녀의 관심사인데 첫 장면이 그녀의 장례식을 상상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는 소녀라는 사실을 사건 조사에 잘 활용한다. 어른들이 아이라는 사실에 너무 쉽게 감정을 내놓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만으로 누구나 쉽게 사건을 재구성하고 범인을 잡을 수는 없다. 하나의 사건을 과거의 사건과 연결시키고, 관찰력 있는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 특별한 능력과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 놀라운 것은 그녀의 나이다. 뭐 중간중간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영락없는 소녀지만.

 

단순히 괴팍하고 영리한 플라비아란 캐릭터에만 기댄 작품은 아니다. 다른 재미난 캐릭터도 물론 많다. 하지만 단서를 하나씩 깔아놓고 그녀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들은 이 소설의 구성이 잘 짜인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란 배경은 이 소녀의 재능이 꽃피우는데 최적의 장소다. 대도시로 간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풀겠지만. 또 시대적 배경도 상당히 매력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겨우 5년이 지났다는 것을 통해 그 참혹한 전쟁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고 이것이 하나의 장치자 배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집사 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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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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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바 가즈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한 집안 여성 3대를 다룬 <아카쿠치바 전설>이다. 개인적으로 그해 나온 미스터리 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사쿠라바 가즈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사실 몇 작품을 읽어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작가가 많은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당연히 전작 작가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몇 작품 읽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길을 끌게 된 것은 작가 이름과 함께 ‘대출 광고’라는 단어 때문이다.

 

지금도 케이블에는 대출 광고가 넘쳐난다. 몇 년 전 유명 탤런트가 대부업 광고에 나왔다가 혼 줄이 난 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저축은행이나 비슷한 금융권을 통한 광고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온다.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리로 착취하는데 그 빚의 고리를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대부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2-3년 안에 원금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출하게 되지만 실제 원금은 그대로인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한때 카드 돌리기 신공을 발휘해서 카드 값을 막았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대부업을 통해 대출한 사람들은 대출을 통해 돌려막기 하는 것이다. 그러니 원금이 사라질 수가 없다. 한 번에 몫돈이 생기기 전에는.

 

작가는 대출광고에 넘어가 다중채무자가 된 두 사람을 중심에 내놓는다. 사바쿠와 사토루다. 다루고 있는 시간은 2009년 팔월부터 2020년 유월까진데 실제 중심이 되는 시간은 2009년 십이월까지다. 불과 사개월 정도다. 하지만 이 시간은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충분하다. 각 장의 제목으로 나오는 단어도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데 읽다보면 크게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뒤로 가면서 하나의 큰 틀이 되어 이야기에 맞물려 돌아간다. 단어와 인물이 연결되면 더 분명해진다.

 

사실 읽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적지 않게 사용된 쉼표가 몰입을 방해했다. 단순한 호흡만 흐트려 놓은 것이 아니라 앞뒤 문장의 의미를 되짚게 만들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장치가 너무 쉽게 읽으면서 이 상황들을 지나가지 않게 하면서 좀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런 장치는 외국어 차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모두 ‘사’로 시작하는 이름으로 각 장을 꾸민 것과 묘하게 연결된다. 그냥 빠르게 읽다 보면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고 지나가는데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면 금방 이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목차로 돌아온다. 과연 작가의 의도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프롤로그 두 번째 장은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제목처럼 토막난다. 왜 살인을 했을까 의문을 품자마자 이야기는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이 만났고 어떤 만만을 이어왔는지 각자의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각 화자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피해자가 되는 사바쿠도 살인자가 되는 사토루도, 사토루의 대학 동기인 사토코나 헌책방 주인인 사토도. 각 화자를 통해 상대방과 자신을 말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의문이 생기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시대가 만들어낸 환상이 어떤 부작용을 불러오는지 알 수 있다.

 

사바쿠도 사토루도 다중채무자다. 사바쿠는 프리터로 겨우 이자만 갚아나가고 있는 반면에 사토루는 대학을 다니면서 진 빚으로 고생하고 있다. 빚의 성격은 다르지만 둘은 이 때문에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사토루의 경우는 사실 자신의 부유한 아내에게 말하면 쉽게 갚을 수 있는 금액인데 왠지 모르게 그는 이 빚을 청산하지 않고 있다. 대학교수와 번역가라는 직함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실 그가 사바쿠를 죽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돈인데 그녀의 빚도 그와 같은 3백만 정도다. 이 금액은 사토루 집 애완견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면서 들어간 금액과 비슷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이 돈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부유한 사람에게는 자기 위안을 위한 조그만 지출일 뿐이다. 양극화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현실이다.

 

이 둘 외에도 등장하는 화자들은 돈이나 다른 것에 대한 빚이 있다. 삶이 지닌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는데 삶의 어두운 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결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얼마 전 한국영화로도 제작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신용카드로 인한 한 인간의 파멸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대출로 인한 비극이다. 실제 주변에서 ‘아차’하는 순간 이런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기에 더 공감이 간다. 일본과의 경제적 차이와 두 나라의 시간 차이를 생각할 때 지금 머릿속을 스쳐지나 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다. 수많은 하우스푸어를 생각할 때 결코 멀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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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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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트린 댄스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다. 이번에 다루는 것은 인터넷 블로그와 익명의 댓글들이다. 댄스가 등장한다는 자체가 좋은 일이 아니니 당연히 순기능보다 역기능에 더 중점을 둔다. 하지만 이런 역기능을 읽다보면 예전에 흘러나온 혹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당연히 악플이고, 다음은 거짓 혹은 장난으로 올린 포스트 하나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면서 엉터리 정보 등을 확산하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정보를 왜곡하거나 물타기하는 등의 그 유명한 댓글부대도 있다.

 

시리즈를 읽을 때면 늘 느끼는 괴리감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다. 적어도 다음 책이 나오려면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나가는데 책 속 시간은 겨우 며칠 혹은 한두 달인 경우다. 이런 시간 차이는 첫 부분을 읽을 때 더 심하다. 그리고 가끔 때로는 자주 다른 책과 내용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다고 내가 다시 앞 권을 찾아서 내용을 복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읽는다. 왜냐고? 당연히 앞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충분히 재미있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전에 서평은 썼다면 그것을 한 번 읽기는 한다.

 

전작의 서평 중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다. ‘조금 늦게 혹은 적시에 댄스가 나타나 방해’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번 작품에도 변함이 없다. 하나의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뀐 장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벌어지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반전이고 탁월한 능력이지만 너무 많아지면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생긴다. 이런 감정이 살짝 생기는 것은 아마 장면이 바뀌는 마지막 장의 문장에서 오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 순간 숨을 멈추고 다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댄스의 방해로 제대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 다시 멈춰야 한다.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란... 뭐 즐거움이자 재미기도 하지만.

 

도로변에 하나의 십자가가 놓여 있다. 이상한 것은 추모일이 지나간 날이 아니다. 내일이다. 평소 같으면 장난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소녀가 납치되어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나면 다른 문제다. 그것이 연속으로 일어나면 분명한 사건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사건을 만든다. 지난 번 펠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캐트린은 다시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그 현장은 이제 모든 증거가 텍스트로 이루어진 인터넷이다. 사건의 단서를 찾아낸 곳이 유명 블로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블로그 등에 대해 경찰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진짜일까? 그래서 다시 한 명이 등장한다. 인터넷 전문가이자 교수인 존 볼링이다.

 

전문가의 등장은 이야기에 폭과 깊이를 더해 준다. 그냥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의 문제점을 이야기 속에 녹여낼 수 있다. 그를 통해 찾아 들어간 블로그는 칠턴 리포트로 불리는 유명 블로그다. 이 블로그 운영자는 이슈를 만들고 이를 찾아온 사람들은 이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단다. 즉 그는 문제점이나 이슈는 만들지만 댓글을 직접 달아 한 방향으로 댓글을 의도적으로 유인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단어나 실명은 블라인드 처리해서 문제를 피한다. 바로 이런 교묘한 작업이 단순한 사고였을 하나의 사건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다. 거기서 도로변 십자가 킬러가 생긴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잘 읽힌다. 분량만큼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후안의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사는 범인을 캐트린의 엄마로 지목한다. 순간 기억을 되살려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교묘한 정치 검사들의 작업이 현장에서 범인을 열심히 쫓아야 하는 형사들의 힘을 뺀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이 분노했다. 감정적으로 캐트린이 범인 쫓는 것을 중단하고 엄마의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금전적으로 소송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를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성은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사건이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닌 상황이라면 더욱더.

 

블로그를 다루니 당연히 악플들이 나온다. 그 글들은 조금도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 악플은 나쁜 소문처럼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만든다. 판단은 흐려지고 자신이 본 것을 거기에 껴 맞춘다. 증인 중 한 명이 이야기를 만들어서 정확한 증언을 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캐트린의 전문 분야가 동작학임을 생각하면 그의 거짓은 너무 쉽게 밝혀진다. 이것은 인터넷을 통해 번진 헛소문이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다. 자신을 공격한 인물의 얼굴도 확인하지 않는 피해자가 상상한 것을 본 것처럼 말하는 것과 함께.

 

읽으면서 부러운 것도 있었다. 칠턴 리포트가 범인의 정보 수집을 돕고 희생자를 고르는 통로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 같으면 서버업체나 포탈이 너무 쉽게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내놓고 당연히 블로그는 폐쇄될 상황이다. 하지만 블로거는 정보를 내놓지 않고 캐트린은 설득은 하지만 강요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물론 정치인들은 꼬투리를 잡아 이 블로그를 폐쇄하려고 한다. 이 블로그가 다루고 있는 몇 가지 의제가 민감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는 결코 벌어질 수 없다. 아마 형사나 검사들이 수사 방해나 공모 같은 혐의로 강한 협박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검사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이야기와 반대로 더딘 진행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캐트린의 연애다. 등장인물들의 로맨스는 디버의 작품에서 늘 다루어지는 것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인물 볼링까지 등장해 경쟁자를 늘린다. 거기에 마지막 장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다음 권에서 펼쳐질 로맨스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건 속에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게 만드는 거장이 툭 던져놓은 하나의 소식이 로맨스 소설 시리즈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2년에 한 권 나오는 댄스 시리즈를 생각하면 그때쯤 과연 나의 저질 기억력이 이 일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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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여행 - 영혼의 휴식을 찾아 떠나는
미라 레스터 지음, 서은미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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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휴식을 찾아 떠나는’이란 제목이 앞에 있다. 일상에 지친 나에게 힐링이란 단어와 함께 이 문장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요즘 짜증이 많아지고 신경질을 부린다. 김어준의 말처럼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이 정치라고 했는데 그것인가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일정 부분 그런 것도 사실이다. 정치와 연결되지 않는 삶이 과연 가능한가 물었을 때 거의 불가능하다는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원인일까 하고 물으면 답은 ‘아니다’다. 좀더 차분하고 깊이 있는 사색과 명상으로 답을 찾아야겠지만 삶은 이런 여유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에게 그런 여유를 만들고 실천할 마음이 없다. 아쉽지만 뼈아픈 사실이다.

 

얼마 전 많은 분량의 책을 읽은 탓인지 이 책의 구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스러운 여행지 100곳이란 설명과 많은 사진은 확실한 유혹이었다. 많지 않은 글과 사진으로 구성된 책이라면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얄팍한 생각이 한몫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사진과 적은 글로 구성된 것과 달리 멋진 풍경과 건축물은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아 두었고 작가의 간략한 글은 곱씹게 만들었다. 물론 마음 한 곳에선 왜 이곳이 그렇게 중요한 장소일까, 우리나라는 왜 없을까, 작가가 구분한 10개의 장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었을까 등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열 개의 장은 사랑, 자비, 헌신, 건강, 치유, 온전함, 용기, 불굴의 정신, 인내, 풍요로움, 풍부, 감사, 정신적 구원, 지도, 이해, 관계, 결혼, 가족, 평화, 보호, 안전한 여행, 용서, 구원, 화해, 애도, 상실, 혼령, 깊은 믿음, 변화, 깨우침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단어들을 보면서 과연 이 미묘한 차이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의문을 가진다. 동시에 몇몇은 어떤 기준으로 분류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마음 한 곳에 이런 의문이 자리한 채 저자가 보여주는 성지 100곳은 눈으로 마음으로 들어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힐링이 아니다. 내가 몇 곳이나 가봤을까 였다. 불행하게도 가본 곳이 열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책 마지막 장에 나오는 분포도를 보면 대부분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다. 해외 나간 것이 몇 번 되지 않는 나에게 이런 결과는 좋게 말하면 앞으로 영혼을 정화할 곳이 많다는 의미다. 나쁘게 말하면 앞으로도 갈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란 의미다. 아마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몇 장소는 앞으로 가게 될 몇 번의 해외여행으로 방문할 기회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잊어버리거나 가지 못할 곳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은 힐링 여행의 욕망을 충동질한다.

 

구성은 단순하다. 열 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여행지를 기본 두세 쪽으로 다룬다. 그 중 최소 한 장은 사진이다. 이곳에 대한 글은 먼저 어떻게 이곳이 만들어지고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고, 다음 단락에서는 이곳에서 해야 할 것을 조용하게 충고하고 알려준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지 못했다. 저자가 보여주는 장소들 중 많은 곳이 나의 성향과 맞지 않고 너무 과장되게 포장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 문화적 심미안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비슷비슷해 보이는 곳도 몇몇 눈에 들어온다.

 

사실 힐링 여행이란 제목처럼 실제 힐링 효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나의 감성이 메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하나의 여행지란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물론 아쉬움을 주는 곳도 있다. 그곳에 가서 그냥 밖만 휙 둘러보고 나온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장소가 나오고 깊이 있는 사고까지 내려가지 않는 구성 때문에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앞으로 그곳에 가면 요기는 가야지 하는 여행 욕구만 더 불 질렀다. 이 책을 통해 힐링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부족하다. 하지만 힐링 여행을 위한 최적을 장소를 찾거나 자신이 간 여행지에서 여기 나오는 장소가 있다면 쉽게 꺼내어 참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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