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사를 믿지 마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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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펠만 가족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다. 이 시리를 띄엄띄엄 읽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가 출간된 것도 몰랐다. 음! 개인적으로 이 사랑스러운(?) 가족의 대활약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를 통해 이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왜냐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을 좀더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여운(?) 이자벨의 좌충우돌 대활약에 조금은 적응하게 되었다. 덕분에 정신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들에 더 익숙해졌다.

 

스펠만 가족은 탐정 가족이다. 이번 소설에서 이자벨은 세 가지 사건에 봉착한다. 하나는 그들의 사업을 위협하는 경쟁사 릭 하키를 몰아내야 하고, 다음은 제목에 나온 집사 실종사건을 풀어야 한다. 여기에 바텐더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하려는 엄마의 협박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힘든 것은 가족들과의 대결이다. 이 시리즈를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가족들과의 대결이 얼마나 힘들고 끈질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생 레이의 대활약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일으킨다. 뭐 이 때문에 그녀에게도 문제가 생기지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례조사 세 달 전, 항소, 기소, 판결 등이다.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아래 세부적인 제목을 보면 더 혼란스럽다.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펼쳐 읽기 시작하면 이 소제목들이 하나씩 이해된다. 번호도 역시. 이런 불편한 제목들에 비해 이야기는 간결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그리고 이 가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찰 헨리는 이번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작에서 이 둘의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시작은 열두 번째 전 남자 친구 코너로 문을 연다. 열두 번이라니 능력도 좋다.

 

또 다른 로맨스가 있다. 그것은 레이다. 그녀의 상대는 너무나도 범생인 프레드다. 가족들이 너무 좋아한다. 레이를 조정하는 또 하나의 장치다. 작고 귀여운(?) 악녀 레이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만으로 그녀가 순진해지고 착해지지는 않는다. 그녀의 귀여운 악행은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언니를 변호사 자료실에 밤새 가둬놓는 것이다. 이 불법 구금에 대응하는 가족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처리하지 않고 법정까지 간다. 덕분에 이자벨과 헨리 등은 아주 큰 재미를 누리지만.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큰 사건이 아니다. 살인이나 엄청난 음모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건들이 나온다. 작가는 여기에 살짝 양념을 치고 부풀려서 이야기를 만든다. 뭐 약간이란 표현에 거부감이 든다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엄청난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다른 소설에 비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월요일마다 방송하는 ‘안녕하세요’란 프로그램을 보면 이 가족도 평범하게 보일 사람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지 않는가. 그들과 엮인 사람들이 그냥 넘어가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큰 것 한 방은 없지만 자그마한 재미가 가득하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하려고 엄마가 요구한 변호사 등과의 맞선 자리나 사라진 집사를 대신해 잠입한 배우 렌의 집사 활약이나 헨리와의 미묘한 관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유머 가득한 대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펠만 가족의 활약은 계속해서 읽게 만든다. 그리고 언제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이어진다. 사실 이 의문은 해결하는 것은 천재적인 능력이 아니다. 우연과 끈질긴 작업과 노력이 곁들여진 결과다. 이런 과정들이 괴팍한 이 가족들과 우리를 이어준다. 사놓고 읽지 않은 이 시리즈를 빨리 읽고, 역자가 “오렌지냐, 어린쥐냐 그 차이지.”라고 번역한 원문도 시간나면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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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안창근 지음 / 청어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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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한국 스릴러 소설이다. 소품이 아닌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대작이다. 한국, 중국, 북한, 아프리카, 중동, 미국 등을 배경으로 첩보전이 펼쳐진다. 무대가 광활한 만큼 등장하는 인물도 많다. 한국은 기환, 미국 CIA는 톰, 마틴, 존 등이고, 중국은 흑표다. 이들이 각 지역에서 주연을 맡는다면 주변에서 탈북자 출신 CIA요원 NKCELL이나 암살자 등이 등장하여 또 다른 활약을 보여준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할 때 생기는 혼란과 중복이 이 소설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몰입도가 좋다.

 

전 세계를 무대로 첩보전이 벌어지지만 중심이 되는 곳은 한국이다. 2005년 APEC회의가 그 목표다. 아시아 태평양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에 알 카에다의 조직 중 하나가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 이 정보를 먼저 얻은 곳은 CIA다. 하지만 이 첩보를 무작정 신뢰할 수 없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CIA는 터키와 중동을 무대로 이 정보가 진짜인지 확인하고, 동시에 중국의 정보상인 흑표에게 이것을 확인해달라고 한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CTA 직원인 기환이 첩보 하나를 산다. 이 정보는 자투리다.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첩보전은 속고 속이는 전쟁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CIA가 선택한 인물은 중국의 흑표와 아랍인 오마르다. 오마르가 알 카에다 조직원 중 한 명을 통해 정확한 정보에 다가가려고 하는 반면에 흑표는 한국에 직접 와서 조폭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오마르의 활약은 사실 많지 않다. 실제는 CIA요원 톰이 중심에 있다. 하지만 흑표는 다르다. 그는 한국 조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한국어도 능통하다. 거기에 각 나라에 정보 라인을 깔아놓고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CIA를 통해 구입한 마약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다.

 

이 세 집단의 활약을 볼 때 가장 무력한 것은 기환이다. 탁월한 첩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정보 조직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고 우연이 겹쳤다고 해야 하나? 그의 정보원이 죽고 그를 통해 새로운 단서를 얻는 과정이 너무 쉽다. 그리고 이 정보를 분석하는 CTA 직원들이 너무 쉽게 암호를 푼다. 물론 기환이 이 와중에 홀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대활약을 펼친다. 로맨스도 살짝 펼쳐진다. 하지만 다른 두 조직에 비해 느슨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개인적인 편견인지 모르지만.

 

CIA의 활약은 사실 기존의 스파이 소설을 그대로 보여준다. 속고 속이고, 전투가 벌어지고, 배신과 복수가 펼쳐진다. 활동 무대는 한 지역에 고착되지 않고 다양하면서 넓게 퍼져 있다. 아랍인 정보원을 통한 작전은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들이다. 중국 정보상 흑표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다. 암흑가에서 첩보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정보의 흐름과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와 CIA가 보여주는 첩보전은 누가 먼저 속이는 것을 들키는가 하는 싸움이다. 먼저 당하는 자가 죽음에 이른다. 개인 대 개인 싸움이 아닌 조직 대 조직 싸움이다.

 

이 다른 세 조직이 중심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인 APEC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힘이 조금 약하다. 마지막에 펼쳐지는 반전의 음모는 앞에 깔아놓은 수많은 설정과 배경에 비해 너무 힘이 약하다. 반전에 이르는 과정도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큼의 설정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각각의 주인공들을 잘 묘사했고 낯선 이국의 풍경과 첩보전을 안정된 문장 속에서 잘 녹여내었다. 큰 한 방은 없지만 충실함이 돋보이는 첩보소설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떨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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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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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캐릭터에 있다. 캐릭터가 중심을 잡고 이야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제훈과 고문관 인호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둘이 보여주는 활약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단하다. 이 대단함이 엄청난 활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행운과 대담함과 의지가 함께 작동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비교적 간결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몰입도를 높여준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단숨에 달려가게 만든다.

 

종말과 좀비를 다룬다. 우선 좀비를 다루는데 소설이 품고 있는 종말론적 상황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에는 좀비와 종말을 다룬 두 권의 소설이 생각난다. 한 권은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스티븐 킹의 <셀>이다.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택한 것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한 원인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죽음과 이어질 때 그 공포는 더 깊고 넓어진다. 생존을 위한 노력은 상황이 더 힘들수록 더 처절해진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왠지 모르게 그런 처절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김전일 시리즈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지만 김전일과 그의 여자 친구는 무사한 것처럼 말이다.

 

제훈은 일병이다. 그의 여자 친구 영주는 예쁘다. 우연과 행운이 겹치면서 그녀와 사귀게 되지만 이 행복은 군입대로 사라진다. 그런데 그의 부대가 강원도 산골 오지가 아니다. 서울 시내다. 시내면 쉽게 만날 것 같은데 아니다. 그의 부대는 특급호텔 옥상이다. 옥상에 군부대가 주둔한다는 것을 얼마 전 회사 직원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예쁜 여자 친구를 둔 군바리가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하다. 그녀가 보낸 편지 한 통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여친을 위해 금연까지 하면서 휴가를 기다리는데 그놈의 인플루엔자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세계는 알 수 없는 인플루엔자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 완치의 길이 열리지만.

 

작가는 이 소설의 설정에서부터 패러디와 풍자로 가득하다. 인플로엔자가 돌 때 불과 몇 년 전 신종플루 사태를 비튼다. 여기에 예방약까지. 그런데 이 소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예방접종을 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좀비들이 처음 나타난 곳이 미국과 한국과 일본이란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또 인호의 입대 전 이력이 종말을 바탕으로 한 게임임을 감안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의 전작 <게임의 왕> 시리즈에 등장한 세 소년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카메오처럼 등장하는데 강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갑작스런 좀비의 공격과 고립된 군부대란 설정은 결국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좀비가 인간을 공격해서 먹고 감염시키는 것처럼 인간도 음식을 먹어야 산다. 고립된 공간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옥상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 당연히 내려가서 식량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서울의 현실에서 여친을 걱정하는 제훈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에게 가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동시에 좀비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일병과 이병의 힘겨운 탈출과 도전이 시작한다. 그 끝은 다른 종말과 좀비를 다룬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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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였다
미리암 케이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이상빈 추천 / 이숲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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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끊임없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이나 그 당시 사진 등을 보면 홀로코스트 혹은 쇼어 등이 일어난 장소의 참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산업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라면 그 이후 얼마나 많이 다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이슈화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일제나 친일에 대해 이 만큼 다루어졌을까? 우리는 이제 그만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좋다. 맞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그럼 과연 누가 이 과거를 진솔하게 진심을 담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나? 용서 이전에 필요한 것이 빠진 상태를 생각할 때 ‘과거는 미래를 향해 울리는 경종’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반복을 생각할 때 더욱더.

 

이 만화는 기존 홀로코스트나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이야기와 조금 궤를 달리한다. 헝가리 유대인 엄마 에스텔과 딸 리사의 참혹한 여정을 다룬다. 이 여정의 시작은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독일군이 그 마을에 오게 되고 그녀의 미모를 탐한 장교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여기에 독일군을 쫓아내고 진주한 러시아군까지 가세하면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몸을 내던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군이 갑자기 죽으면서 눈보라치는 상황에서 달아나야 한다. 이런 여정을 거친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낸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작가는 단순한 흑백과 컬러라는 색의 구성으로 어둡고 아픈 과거와 밝은 현재를 대비시킨다. 이 구성을 금방 이해하게 된 것은 색뿐만 아니라 윤곽에서도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힌다. 기존의 2차 대전 유대인과 다른 이야기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자신들의 삶의 바탕인 신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신들이 와인통에 산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은유지만 가슴 한 곳을 파고들어 그들이 느낀 절망이 와 닿는다. 생존을 위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줄 때 그 현실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읽다가 느낀 점 중 하나는 리사가 아이와 함께 낯선 사람의 집 문을 두드릴 때 그녀를 흔쾌히 모녀를 받아들인 것은 남자다. 왜일까? 그녀의 미모 때문이라면 다른 수작을 부렸을 텐데 그것은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여자들이 좀더 현실적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만난 사람들 때문일까? 이것은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바뀐다.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인물은 집주인 남자고 그녀를 도와주는 주변 사람은 여자다.

 

내 눈이 맞다면 연필로 그린 만화다. 선으로 표현된 감정은 분명하고 풍경은 섬세하다. 수많은 학살의 와중에 생존했다는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녀가 생존을 위해 그 마을과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의 정체를 알거나 정복자로 온 군인에게 어떤 비참함을 당했는지 보여줄 때 그녀의 강인한 생존력과 희망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과정과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여운을 남기면서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해설에서도 나왔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보여준 행동은 큰 충격이다. 평화가 찾아온 가정에서 잊고 있던 폭력의 기억이 아이를 통해 드러날 때 그 섬뜩함은 정말 대단하다. 작가와 엄마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임을 생각할 때 그 기억을 벗어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물론 프리모 레비 같은 경우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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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4 - 전국시대 화폐전쟁 4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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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시리즈가 4권까지 나왔다. 이 중에서 읽은 것은 불과 2권이다. 음모론적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2권과 바로 4권이다. 개인적으로 2권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때문에 화폐전쟁 시리즈가 출간되면 늘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1권을 샀지만 왠지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변덕이다. 순서대로라면 3권을 읽어야 하지만 의무감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요즘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열심히 읽고 다시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늘 그때뿐이다.

 

전국시대란 부제가 달려 있다. 그 유명한 중국의 전국시대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제목과 함께 새롭게 다가온다. 전국시대 말에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것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삼국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화폐의 블록화가 그것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의 달러, 유럽의 유로, 아시아의 야위안이 삼국의 위치에서 경쟁하는 모양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한도 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기축통화 전쟁’이다. 자국의 화폐를 세계의 화폐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공작을 다룬다. 대단히 흥미진진한 전개다.

 

우리는 흔히 달러를 당연한 기축통화로 알고 있다. 경제사를 조금만 배운 사람이라면 이런 과정이 어떤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 알고 있다. 그 유명한 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등을 지나 현재의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사실 학창시절 이 부분을 배울 때 그냥 외웠다. 왜 이런 전개가 되었고 어떤 배경이 있는지 제대로 배우지도 공부하지도 못했다. 가르쳤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당시 학교의 주류는 미국 경제학을 배운 교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배운 대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고 배움이 짧았던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 언론 등을 통해 얻은 정보가 결합하여 나의 얄팍한 경제 지식이 되었다. 공부가 부족하고 대충한 결과다.

 

화폐전쟁이란 제목처럼 유럽과 미국과 소련이 어떤 화폐전쟁을 펼쳤는지 앞부분에 보여준다. 이 과정은 2권의 음모론과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겹치기도 하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상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바람이 어떤 정책으로 이어졌는지 보여줄 때, 특히 미국의 채무경제를 말할 때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몇 가지 의문이 확 풀렸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경제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되었다. 물론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문제점 몇몇은 알게 되었다. 이것은 상당히 큰 소득이다.

 

기축통화 전쟁에서 미국 루스벨트의 노력을 다룬 부분은 기존에 알고 있던 이미지를 깨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차 대전과 냉전을 화폐전쟁으로 풀어낸 부분은 역사를 분석하는 다른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경제에 대한 기본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실물경제와 화폐와 생산성 등의 기본적인 개념이 재정립된 것이다. 여기에 유로의 탄생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경쟁과 조정 등은 저자가 주장하는 아시아공통화폐 야위안의 탄생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것은 다시 미국의 경제, 유럽의 정치, 아시아의 역사 문제와 엮이면서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몇몇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심하게 본 것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앞에서도 말한 야위안이고, 다른 하나는 현 세계 경제와 관련 있는 미국의 채무 화폐다. 통화 정책에 대한 정답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지금의 저금리와 통화 확대 정책이 분명히 미래의 성장 동력을 갉아 먹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저자가 미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고 미국 경제가 채무 화폐 경제로 바뀌면서 거대한 달러 보유국들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말할 때 단순히 이것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중국 생산 및 미국 소비’와 ‘중국 저축 및 미국 차입’이라는 공생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줄 때 얼마나 거대한 거품의 위험 속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솔직히 쉬운 책이 아니다. 분량도 많다. 단숨에 읽기 어렵다. 전문가라면 물론 다르겠지만 일반인이 이 책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배경 지식 없이 읽게 되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미국 경제 문제와 유럽의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문제 등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다시 저자가 주장하는 야위안과 관계있다. 단순히 화폐 통합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소득과 경제 수준과 생산성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복지 포퓰리즘으로 그리스가 망했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단순히 이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야위안의 탄생과 화폐 블록화와 각 나라의 경제 격차 등은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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