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 트레킹 - 플라톤부터 러셀까지 철학자들과 함께한 영국 종단기
게리 헤이든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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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며칠을 연속으로 걸었던 적은 없다. 한참 유행하던 국토대장정도 가지 않았고, 지리산 종주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나다보니 이렇게 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에세이에 빠지고, 단순히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한 소설에 감탄했다. 이런 나에게 영국 종단과 철학의 결합이란 이 책이 매혹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두께도 그렇게 두껍지 않으니 부담 없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읽기 시작하면서 산산조각 났다. 예상하지 못한 문장과 구성 때문이다.

 

문장은 건조하다. 어느 시인의 산문집에서 꽃과 나무 이름을 아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글을 만드는지 읽은 적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의 저자도 자신의 글재주가 조악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묘사는 늘 막연하기만 하다고. “살림 지대를 지났다고 말할 수 있을 뿐, 나는 어떤 종류의 나무가 있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들판을 가로질렀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어떤 종류의 농작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면서 꽃과 나무와 농작물에 대해 쓴 글을 거의 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삭막한 문장들이다. 하지만 이 삭막함을 가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걸으면서 느낀 감정과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인용한 철학자 등의 글이다.

 

스코틀랜드 북부 땅끝에서 잉글랜드 남서부 땅끝까지 약 1900킬로미터의 거리를 도보로 종단한다. 3개월 동안 250만 걸음을 걷는다. 남한을 한바퀴 삥 둘러도 이 정도 거리는 되지 않는다. 중간에 텐트 등을 집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가장 힘든 초반 코스를 무거운 짐을 지고 걸었다. 며칠 만에 아내인 웬디의 발에 거대한 물집이 잡혔다. 어쩔 수 없이 쉬어야만 했다. 이런 고난이 있었지만 이 부부는 무사히 종단을 마쳤다. 그 과정은 물론 간단하지 않았다. 벌레와 곤충과 추위와 통증과 힘겨움 등을 견뎌야 했다.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그 기분이 느껴졌고, 순간적으로 왜 이렇게 힘든 도보 여행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여행은 웬디가 바라던 것이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5년 동안 영어 선생을 했다. 대단히 활동적인 여성이다. 낯선 외국이란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의 국토대장정처럼 영국에서도 이 종단을 꽤 많은 사람이 시도하는 모양이다.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종단이 끝날 무렵 이들의 몸 상태는 최고조에 달했다. 초반보다 편한 길은 몸을 더 가볍게 한다. 중간에는 자신들의 예산을 생각하지 않고 텐트도 보낸다. 숙소와 먹는 것이 좋아지면서 상태도 좋아진다. 적지 않은 나이고, 긴 시간 동안 걸은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열정과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감정을 저자는 그저 담담하게 적어나간다.

 

모두 여덟 코스로 나누었다. 각 코스마다 철학자 한 명씩 넣었다. 하지만 그 철학자 한 명이 그 코스 전체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걸으면서 느끼고 깨닫고 배운 것들을 철학자나 시인의 글을 통해 적절하게 풀어내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기획하고 걸은 길이 아니다 보니 이런 구성이 되었다. 에피쿠르스에서 장 자크 루소까지 이어지는 이 여정을 이들만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동양에 대한 약간의 환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철학자와 하이쿠 시인 바쿠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이런 생각이 또 다른 편견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여행을 떠나기 전 이들은 앞으로 겪을 시련과 고난을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욱신거리는 등짝과 물집 잡힌 발바닥 때문에 낭만이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힘든 여정을 지나면서 몸은 환경에 조금씩 적응을 하고, 조글을 걷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생각한다. 어떤 순간 육체적 도전은 그 이상이 무엇이 되었다. 종교인들의 순례의 열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감정과 깨달음은 마지막 코스를 걷는 순간에도 변함없다. 이제 이 모든 길들이 하나로 다가온다. 부분적인 좋고 싫음이 아니라.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들의 만족감이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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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괜찮아 - 욕심 없는 부부의 개념 있는 심플 라이프
김은덕.백종민 지음 / 박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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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유행했던 시절 소유하는 것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었다. 늘 많은 것을 가지기 보다는 좀더 간소한 삶을 원했다. 집에 있는 가구나 전자제품은 최소화했지만 버리지 못하는 취미가 하나 있었다. 수집욕이다. 한때는 열심히 비디오테이프와 CD를 모았고, 최근 10년 동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책을 샀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인터넷서점을 들락거리고, 포인트와 도서상품권 등으로 책을 산다. 당연히 카드 결제도 같이 이루어진다. 이런 상태니 집은 점점 좁아진다. 책제목처럼 없어도 괜찮지만 아깝고 불안하다. 그러다 심플 라이프에 대한 글들이 나왔다. 이 책도 그렇다.

 

현재 저자들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서야 했다. 이 책은 ‘미니멀라이프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 너머의 실제를 마주하는 현실의 어려움’을 담고 있다. 실제로 그들의 삶을 읽다 보면 과연 나는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몇 개는 실천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의 욕망과 욕심을 알고, 가족의 바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부가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된 데는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 한 도시에 한 달 살기 같은 긴 세계여행 말이다.

 

이들에게 없는 것들은 우리가 늘 불안해하는 것이다. 직장, 집, 냉장고, 자동차 등이 대표적이다. 직장이 없다는 것은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의미다. 이것은 다시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일이다. 월요일 아침 갈 곳이 없는 그와 60이 넘은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는 모습의 대비는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면에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은 눈길이 간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삶이 나태해지는 것이다. 불규칙한 삶에 빠져 건강을 해치고, 방만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이미 외국에서 경험했기에 조금 더 쉽게 넘어간다.

 

집은 나도 없다. 주변 사람들은 불안해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직장이 있기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월세도 부담스럽다. 커피 값이 없어 카페도 가지 않는 이들이다. 방을 공유해서 월세의 일부를 마련한다. 임대주택을 기다리지만 쉽게 나오지 않는다. 통잔 잔고가 빌 때면 늘 불안하다. 그래도 열심히 글 쓰고, 강의하면서 비용을 마련한다. 해외여행도 다녀온다. 집에 온 사람들이 콘도 같다는 말을 할 정도의 간소함으로 가득한 집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황량할 것 같지만 이들의 삶에는 딱 맞다.

 

냉장고 없는 삶이 가능할까? 이들은 아주 작은 김치냉장고가 있을 뿐이다. 작은 냉장고는 음식을 쌓아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날 먹을 것만 사서 먹는다. 밥상은 간결하고, 버리는 음식은 없다. 이 냉장고 이야기는 다른 쪽에서도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냉장고가 있을 때보다 훨씬 식비가 적게 든다고. 당연히 자동차도 없다. 불편하다. 차로 가면 금방 가는 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카셰어링을 이용해서 불편함을 최소화한다. 실제로 차는 없어도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뿐 사는데 지장없다. 오히려 차에 의존하면 살이 찌고 병에 더 걸리기 쉽다. 물론 운동을 하지 않고, 음식 조절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해당한다.

 

현대인의 필수품처럼 된 스마트폰 데이터도 없다. 집에서 밤 열시면 무선공유기도 끈다. 이것은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기가 도전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잠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나의 현실을.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사회생활이란 이름 아래 우린 너무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관계가 힘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심플한 삶을 계획한다면 어떨까? 이것이 때로는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 이들이라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집과 차 대신 다른 방법을 고민했고 그 끝에 남들과 다른 노후를 설계하고 있다. 이들은 말한다.“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불안감이나 스트레스까지 없앨 수는 없다.”라고. 현실이다.

 

비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운다는 의미는 다시 무언가를 소비하고 들이지 않겠다는 삶의 변화를 내포하는 ‘거사’다.”라고까지 말한다. 이들이 비우는 과정을 말해줄 때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몇 개 보인다. 그들의 팁은 눈여겨 볼만 하다. 현실에서 매 순간 스스로 길을 정하거나 의지를 다져야 한다. 혼자 살 수 없는 인생임을 분명히 말한다. 마음과 정신이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기다림이 되기와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정도로만 덮쳐오기를 바란다. 바라는 것은 이 정도란다. 사실 이들의 생활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니 부러운 점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필요 없이 많이 가진 것이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버려야 하는데 욕심만 쌓여간다. 한 번쯤 이런 극단적인 심플 라이프를 해보고 싶다. 최소한 하나라도. 가능하면 둘 이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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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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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배명훈의 단편집이 나왔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 흔하지 않은 sf작가 중 한 명이다. 처음 그의 단편을 읽었을 때 기대했던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광대한 우주를 누빌 것 같았는데 장편으로 나온 소설은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만났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은 탓이다. 물론 이 단편집에는 배명훈의 작품만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나의 기억에 혼선을 불러왔고, 이 혼선이 배명훈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은 왜곡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는 계속 같은 작업을 했는데 나의 기억이 멋대로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모두 열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 다른 이야기인데 같은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은경이다. 별 뜻 없이 지은 것이라고 소설 속에도, 후기에도 말한다. 하지만 이 작업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혹은 그의 사랑과 관계된 이름이 아닐까 하고. 이런 추측과 동시에 이 단편들이 혹시 하나의 연작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같은 이름과 고래의 노래 등이 등장하면서 괜한 상상을 해본 것이다. 물론 이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만의 단편집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안녕, 인공존재!> 이후 처음이다. 앤솔로지 형식으로 참여한 단편집은 검색하니 몇 권 보인다. 몇 권은 가지고 있고, 몇 권은 그렇게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은 첫 단편집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이런 상태니 위에서 말한 혼선이 생길 수밖에. 단편집을 읽을 때면 늘 호불호가 생긴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불호는 없다. 다만 조금 더 흥미로운 작품만 있을 뿐이다. <유물위성>, <티켓팅 & 타켓팅>, <예술과 중력가속도>, <예비군 로봇>, <초원의 시간> 등이 그 작품들이다.

 

<유물위성>은 이야기 구조가 낯익다. 한참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마지막에 큰 반전을 만든다. 혹시 했던 것이 사실로 이어질 때 반갑다. 그런데 이 작품은 또 그 다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표제작인 <예술과 중력가속도>는 읽으면서 <무한도전>의 우주특집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비행 고도로 무중력을 만들었던 것이 이 소설에서는 더 확장된다. 이야기 서두에 식사 중 금지라고 한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 미모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보여준다. 허약한 의지의 남자들이란. 하지만 마지막으로 가면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예비군 로봇>은 황당하지만 재밌다. 기계지성체의 공격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은경의 노력이 한편의 코미디다.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에 예비군에 편입되는 것과 전자인식매체로 인한 착각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기계지성체의 놀라운 연산 능력이 해탈에 도달하는 것 같은 장면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티켓팅 & 타켓팅>은 <예언자의 겨울>과 고래의 노래를 공유한다. <예언자의 겨울>이 핵전쟁 이후 고래들과 핵잠수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티켓팅 & 타켓팅>은 그 어렵다는 인터넷 예매를 소재로 유쾌하면서도 코믹하게 다루었다. 인터넷 예매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예매 성공에 대한 비법은 꽁꽁 숨겨두고 있다.

 

<초원의 시간>은 타임머신 이야기다. 물론 직접적으로 타임머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초원에서 벌어진 전쟁 속에서 한 천재 소녀를 구하기 위한 작전과 현실 문제가 엮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늘 미래의 도움이 일어난다. 초원이란 지역을 공유하는 <양떼자리>는 추억과 그리움과 환상 등이 섞여 아름다운 마무리로 이어진다. 초원 사람들의 너무나도 뛰어난 시각과 양산으로 가린 여자의 모습은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조개를 읽어요>가 <양떼자리>의 상상력과 이어진다. 누나와 읽는다는 것과 우주라는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D>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문자에 대한 이야기다. 알파벳 D, 한글로는 ㄷ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우리의 일상에서 한 글자를 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되었던 <픽셀>이 떠올랐다. <홈스테이>는 눈수술을 받으려고 지상에 내려온 화자가 귀로 금지된 로봇을 발견한다는 설정인데 전기자동차의 무소음 문제가 떠올랐다. 차에 소음을 넣어 사람들이 차가 온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려는 작업 말이다. 이렇게 이 열편의 작품들은 밀도 있는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나의 머리를 자극한다. 먼 훗날 다시 읽으면 또 어떤 것들이 떠오를지 괜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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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5 - 뭐야뭐야? 그게 뭐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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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권의 이야기 진행 방식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늘 콩고양이와 비둘기와 닭과 두식이 등의 조연으로 활약했던 것과 다르게 말이다. 사람이 전면에 나서자 이 귀여운 동물들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두식이와 아버지 콤비의 활약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고, 짠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콩고양이와 두식이의 감정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열심히 뛰어놀고, 장난치고, 편안하게 쉰다. 본능에 충실한데 이것이 가끔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로 발전한다. 안경남의 피규어 사건은 보는 순간,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들이 얼마나 이것을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 이상은 등장하여 콩고양이와 두식이와 놀고 장난치고 감정을 나눈다. 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콩고양이를 안고, 잠든 그들이 깨지 않기를 바라며 움직이지 않는다. 이 같이 애정 가득한 시선과 행동은 이 집안 모두에게 적용된다. 내복씨가 자신의 가발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아도 그렇게 화를 내지 않는 모습이나 피규어를 파묻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지만 두식이가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콩고양이의 천적과도 같은 마담 북슬도 두식이를 위한 비옷을 사는 등 이들은 점점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재미난 에피소드가 이번에는 많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가장 재밌었던 것은 역시 마담 북슬이다. 마담 복슬이 두식을 이용해 숨은 아빠를 찾아내는 장면과 마트에 가서 보여준 행동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물론 두식이와 함께 산책 가서 비 맞고 다니다가 사진이 찍혀 SNS에 올라간 것이나 새로운 주인을 만날 것이란 예상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물웅덩이에서 좋다고 뛰어노는 두식이의 행동이 복선을 깔아 놓는데 예상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웃게 만든다. 이 단순한 그림체가 나를 감정을 휘두른다.

 

이번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아버지다. 언제나 존재감이 없고, 순식간에 투명인간으로 변하는 그가 두식이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에 선 것이다. 여기에 늘 애완동물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던 마담 북슬도 살짝 조금씩 마음을 연다. 하지만 마트에 가서 비싼 고양이를 보고 콩고양이들도 그런 품종이 아닐까 하고 살짝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직 멀었다고 느끼게 한다. 물론 두식이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2 권에서 가장 걱정했던 내복씨는 골골하는 듯하지만 정정한 모습을 보여줘 관대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본가에서 개를 몇 마리 키워 그 힘듦을 알기에, 나의 지속적인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기에 금방 이 생각은 사그라진다. 몇 개의 이야기는 너무 인간적인 시선에서 해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가장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한 것을 감안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또 이번처럼 주연으로 내세우는 인물을 바꾸면서 색다른 느낌을 들게 한다. 개성 강하고 다양한 인물과 동물이 등장하여 많은 변수와 이야기를 만든다. 가끔은 앞에 등장한 아이템이 추억을 떠올려주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든다. 언젠가 또 새로운 식구가 하나 늘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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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불화 명작강의 - 우리가 꼭 한 번 봐야 할 국보급 베스트 10
강소연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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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왜 한국은 이런 작품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의 무지의 소산이다. 서양 미술에서 도상학적으로 작품을 해석할 때 나의 머릿속에 한국 미술은 없었다. 이런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미술 교육이 서양 미술 중심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화가의 그림이라고는 몇 명의 유명 화가의 그림이 전부였다. 불화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니 절에 가도 그 그림들이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등산하다가 잠시 쉬는 곳, 산에 간 김에 들르는 곳 이상이 아니었으니 불화를 유심히 볼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불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사찰 열 곳, 불화 열 작품이다. 절 중에서 가본 곳은 두 곳이 전부다. 해인사와 법주사를 제외하면 이름도 모르는 절이 몇몇 있다. 이런 지식이니 그곳에 있는 불화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본 절도 그냥 산책하듯이 가볍게 둘러본 것이 전부다. 뭔가 아는 척한다고 사천왕상이나 대웅전이나 벽화를 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그림이 그 그림 같다. 책에 실린 열 곳의 사찰을 빼고 다른 사찰에서 대웅전이나 다른 건물에 그려진 불화를 본 적은 많지만 충분한 지식이 없다 보니 보이는 것 이상을 알기는 어려웠다. 가끔 만나는 십우도 정도가 나의 한계라고 할까.

 

이 책은 사찰 열 곳과 열점의 불화를 단순히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불교의 경전과 사상을 같이 다루면서 각각의 그림이 지닌 도상학적 의미를 풀어서 설명해준다. 무심코 본 그림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화가가 그린 선 하나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관음보살이 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 어떤 시대를 알려주는지 등의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전해준다. 부처의 손가락 동작이 의미하는 바나, 들고 있는 물건의 의미도 같이. 이 때문에 처음에는 빠르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틀어졌다. 어떻게 보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처음 읽을 때 느낌을 조금 받았다고 해야 하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말 그대로 적용되었다.

 

관세음보살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관세음보살을 주제로 한 불화를 고찰할 때에는, 이 같은 보편성 속에서 각 시대별 특수성을 찾아내야 합니다.”란 문구를 봤다. 단순히 불화로만 보았던 하나의 그림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괘불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석가탄신일 같은 날 절에 가면 큰 불화가 걸려 있는 경우를 한두 번 보는데 그냥 큰 불화로만 생각했다. 그 그림이 어떤 의미인지,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큰 그림을 그렸는지 등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실제로 큰 그림이라고 생각만 했지 그 그림을 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는지도 몰랐다.

 

불화를 볼 때 자세히 들여다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동양화를 보면서 그냥 여백의 미만 생각했지 실제 얼마나 정밀한 그림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실제 그 시대를 기록한 기록화나 초상화를 보면 엄청나게 정밀한 그림을 보게 된다. 사진이 없던 시절에 화가들이 해야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종교화의 경우는 자신들의 종교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당연히 불교를 모르면 그 의미들을 알 수 없다. 나의 얕은 지식은 금방 한계를 드러내고 저자의 설명으로 눈을 돌린다. 물론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반가운 설명이 하나 있었다. 안양암의 <지장시왕도>다. 이 그림은 <신과 함께>란 만화 덕분에 낯설지 않았다. 이제는 절에 가면 법당이나 벽에 그려진 그림을 조금 더 자세히 쳐다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괜히 아는 척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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