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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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나 데이터>의 새로운 번역본이다. 같은 번역자가 출판사를 달리해서 개정판을 내는 것을 자주 보지만 이처럼 다른 번역자가 새롭게 번역하는 것은 흔치 않다. 물론 고전으로 넘어가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출간된 것이 몇 년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아주 낯설다.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로 첫 쪽을 비교해보니 두 번역가의 문장이 다른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원문과 비교해서 읽는다고 해도 잘 모르니 어느 쪽이 더 나은 번역인가 하는 것은 넘어가자. 이 부분은 원서 능력자들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목의 경우는 이전 출간본이 원서를 따랐다면 이번에는 책 내용을 따라했다. 이것도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갈릴 것이다. 다만 이전 제목을 아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번 책 제목이 조금 낯설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DNA수사가 소재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과학 수사의 한 방법으로 DNA수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DNA정보를 한 곳으로 모으지는 않는다. 정보가 한 곳으로 모이면 이 정보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행정 관료들이 원하는 일이다. 한국 같이 지문을 등록하는 나라가 거의 없음을 감안하고, 지문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한 곳에 모은다면 어떻게 될까? 소설 속에서는 범죄 예방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행정 편의주의다. 이 때문에 범죄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개인의 정보가 한곳에 모이면 그만큼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가는 이런 부분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지는 않는다. 늘 이 부분은 아쉽다.

 

DNA를 통해 범인의 몽타주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경찰의 일을 더 쉬워진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이런 DNA 수사 시스템을 반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정보들을 한 곳으로 모은다면 어떨까? 한국 지문 등록처럼. 그리고 이 정보를 특정한 세력이 자신들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다면? 완벽하게 모든 국민의 DNA가 등록되지 않았다면? 시스템의 해킹 가능성은? 간단해 보이는 시스템의 이면에는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당연히 이런 문제점들을 차분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로 빠지면 장광설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간단하다면 이야기 전체의 힘이 많이 부족해진다. 이 소설의 약점이다.

 

DNA 프로파일링이란 이름을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범인이 DNA검사를 할 수 있는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발적인 범죄들의 검거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스릴러 등에 나오는 연쇄살인범들은 이런 증거를 남겨두지 않는다. 혹시 남겨두었다고 해도 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다. 작가는 유전자의 유사성을 통해 등록된 가족들로 범위를 축소하고, 프로파일링된 몽타주로 범인을 잡는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아마 이렇게 된다면 많은 범죄들이 초기에 해결될 것이다. 아사마 형사가 경찰이 심부름꾼처럼 느낀 것도 이 때문이다. 발로 뛰는 형사가 거의 사라지고, 프로파일링된 정보에 따라 잡기만 할 것이다.

 

DNA검사란 설정에 한 가지를 더했다. 바로 이중인격이다. 주인공 가구라 연구원은 이중인격자다. 그의 또 다른 인격은 류다. 대단한 도예가였던 아버지가 자신의 작품과 프로그램으로 만든 작품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살한 순간 다른 인격이 생겼다. 여기서 작가는 과학과 인간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가구라가 유전자에 의해 인간의 성격 등이 결정된다고 믿는 반면 류는 화가처럼 그림을 그린다. 이런 경우 가구라와 류의 인격이 번갈아 등장해서 상황을 꼬고, 내적 갈등이 깊어지는 설정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뻔한 길 대신 더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진행으로 이어간다. 류의 존재를 오랫동안 숨겨놓는 방식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DNA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만든 천재소녀와 그 오빠가 죽고,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란 설정에서 시작한다. 가구라의 모발 하나가 현장에 떨어져 있어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 그를 발견한다. 가구라는 무죄를 말하면서 다테시나 남매가 남긴 단서를 쫓고, 이런 그를 경찰들이 뒤쫓는다. 일본계 미국인 리사의 도움으로 극적 순간에 탈출한다. 이 남매가 작업한 숨겨진 별장으로 가지만 단서는 보이지 않고, 경찰의 수사망만 좁혀진다. 일본 경찰청과 경시청의 대립 속에 아사마 형사는 단서를 잡으려고 한다. 여기에 가구라의 환영이 분명한 스즈란이 같이 동행한다. 도망치고, 쫓는 과정 속에서 그 어떤 정보도 발견하지 못한 연쇄살인범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NF13이 의미하는 바가 드러난다. 세부적인 아쉬움 속에서도 속도감과 재미는 어느 정도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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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기생충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시온 그림, 현정수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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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 연구들은 사랑을 하는 남녀가 내품는 호르몬에 대해 말한다. 이 물질이 효력을 발생하는 기간은 겨우 몇 개월이다. 언론에서 설레발을 친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시간이 왜 몇 개월 혹은 몇 년에 머무는지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더 많이, 더 깊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기생충으로 바꾸면 어떨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신경전달물질이 현대인의 수많은 질병들을 고치는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이 상상력이 그렇게 황당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뭐 실제 그렇다면 ‘나’에 대한 또 다른 철학적 문제가 생기겠지만.

 

코사카 켄고는 아주 심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이 증상 때문에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힘들어 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은 가지도 못한다. 작은 집안은 병원처럼 소독제 냄새가 가득하다. 회사를 그만 둔 후 유일한 취미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 일에는 꽤 좋은 솜씨를 발휘한다. 하나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든 후 이즈미라는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가 바이러스를 만든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바란 것은 한 소년을 만나 친해지라는 것이다. 성공하면 적은 돈도 주겠다고 한다. 심한 결벽증 환자 코사카는 이렇게 대인기피증이 있는 소녀 사나기 히지리를 만난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두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나기는 코사카가 받기로 한 돈의 반을 받기로 약속하고 친해진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나기는 코사카의 깨끗한 방에 침입한다. 친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녀의 병도 한몫한다. 둘의 첫 만남에서 서로의 문제점을 말하지 않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사나기의 병 문제가 터졌을 때 둘은 조금 더 서로를 알게 된다. 이렇게 조금씩 관계가 쌓이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사랑은 기생충에 의한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설정이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코사카의 결백증도, 사나기의 대인기피증도 이 기생충이 만들었다. 약을 먹으면 이 증상은 사라진다. 작가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이 두 사람처럼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임상 사례를 보여준다. 이 기생충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 이야기도 같이. 이 둘이 서로를 알면서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간 것은 어느새 조금씩 잊혀지고, 이 강렬한 기생충 이야기가 전면에 나선다. 앞에서 말한 사랑의 호르몬 이야기를 떠올린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기생충의 의지는 커플을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을 머릿속에 자리잡은 기생충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반전 장치를 남겨둔다.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묵직하다.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기생충의 힘을 새롭게 극대화한 상태에서 인간의 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무겁게 철학적 문제를 다루기보다 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선택과 감정을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그리고 몇 가지 앞부분에 깔아놓은 몇 가지 설정들은 뒤로 가면서 힘을 얻는다.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서 밝은 느낌은 잠시 나올 뿐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밝음과 새로운 가능성의 희망이 여운을 남긴다. 사랑이란 추상적 감정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시간이다. 이런 기생충이라면 몸속에 키우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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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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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레 요코의 소설을 좋아한다. 많지 않은 분량인데도 그 여백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고 보면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기억나는 작품은 두 권이 전부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카모메 식당>과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뿐이다. <연꽃 빌라>의 경우 후속작이 나왔지만 왠지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그 후 이야기에 대한 궁금함도 있지만 그 당시 읽고 내가 상상한 것과 달라지는 부분이 살짝 두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읽게 되면 만족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작은 핑계다.

 

이번에는 작가의 에세이를 처음 읽었다. 기대한 이상의 재미가 솔직히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일상의 소소한 관찰이 주는 재미를 던져주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냐고 하면 아니다. 동물 애호가의 모습을 곳곳에서 보여주는 것을 보고, 그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낼 때 고개를 끄덕인다. 애정 어린 관찰과 작은 행동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새에게까지 시선을 주고, 작은 돌봄을 실천하는 모습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아저씨 고양이의 이름은 시마짱이다. 작가가 붙였다. 길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대담하게 돌아와서 작가가 주는 사료를 먹는다. 애교 따위는 부리지 않는다. 살쪘고 단춧구멍같이 작은 눈을 가졌다. 무뚝뚝하고 밖에서 보면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작가가 주는 사료를 먹고도 옆집에서 또 먹는 대식가이기도 하다. 시마짱 덕분에 작가는 사료회사로부터 등업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을 정도다. 이렇게 앞부분에 시마짱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았기에 고양이 에세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그녀가 좋아했던 설치류와 주변에 있는 개와 새와 혐오 곤충 모기 등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동물 및 곤충 관찰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에세이를 쓴 기간이 결코 짧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시마짱이 왔을 때 있던 옆집의 고양이가 죽은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마짱과의 추억을 불러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틈틈이 연재한 것을 책으로 내었다면 그 정보가 궁금하다. 이런 사소한 호기심을 불러오는 것은 역시 시마짱 때문이다. 길고양이 시마짱이 일상에 들어왔다가 사라지는 과정과 그 사이를 채우는 다양한 동물들 이야기는 역시 작가의 애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가 그녀가 잠시 모니터를 통해 쳐다보는 다른 고양이 사진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글 속에 남자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방사능과 모기를 연결한 이야기는 두려움을 담고 있는 반면에 동일본대지진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동물들 이야기는 분위기도 이미지도 사뭇 다르다. 모기와 고질라의 연결은 억지지만 코믹하고, 지진을 경험한 동물들은 인간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 둘은 현실에서 견뎌야 하는 것들이다. 관찰과 경험을 통해 고양이들 이야기를 풀어낸 부분이 많은데 한 번도 제대로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에게 낯선 경험이다. 몇몇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낯선 것도 많았다. 아마 고양이의 특성에 따라 다른 부분도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 시마짱에 대한 애정으로 글을 마무리하는데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작가는 그때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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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여행을 떠났으면 해 - 그저 함께이고 싶어 떠난 여행의 기록
이지나 지음, 김현철 사진 / 북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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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여행을 왜 떠날까? 실제 지루한 여행의 기록이라면 누가 읽을까? 이런 물음 뒤에는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이 있다. 애를 키우는 부부라면 누구나 함께 가고 싶어하지만 두려워하는 여행이 바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멀리 가는 여행이라면 애가 비행기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고, 현지에서 탈이 났을 때 걱정도 하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떠나지만 여행의 반경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점점 넓어진다. 그런데 이 부부의 여행은 미국이 시작이다. 대단하다. 아이가 비행기 안에서 12시간 정도를 잘 보냈을까 하는 물음이 먼저 떠오른다.

 

솔직히 이 에세이에서 기대한 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겪게 되는 즐거움도 있지만 어려움들과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나의 바람을 그냥 지나간다.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는 가족, 사랑, 아이, 여행의 감상 등이다. 뭔가 실질적인 여행의 방법으로 들어가면 간결한 짐에 머물 뿐이다. 누구나 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짐싸기다. 현지 음식을 먹인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아이들에게 이것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의 기차 이동 이야기는 아이의 적응력과 현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용기와 열정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부러운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 바와 다르지만 공감하는 문장과 감상들이 자주 나온다. 가장 먼저 “어쩌면 집은 건물이 아닌 사람이 아닐까.” 같은 문장이다. 이것이 그녀만의 생각은 아니지만 우리는 잘 잊고 지낸다. 부동산의 가격이 높아질수록 이것은 더 심해진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별로 볼 것 없다는 동생에 말에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서울을 평가할 때 흔히 하는 말과 같다. “우리는 낯섦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설레기 위해.”라는 말은 여행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작가도 말했듯이 같은 도시를 여러 번 가는 것은 갈 때마다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도시를 말할 때 늘 빠지지 않는 것은 사람 이야기다. 이 가족이 간 곳에서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작은 친절을 베푼다. 샌프란시스코의 버스와 스리랑카 기차 이야기는 순간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의 속도와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물론 버스나 기차에 타면 이들과 같은 애정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속도란 부분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작은 배려와 행동들은 그 나라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사진들 대부분은 작가와 남편과 아이를 향해 있다. 풍경도 나오지만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남편 자랑은 아주 심하다. 친구에서 부부로 이어진 이들의 여행에 아들 얼이 나중에 동반했고, 지금까지 이어진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라는 그 힘든 과정 속에서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여행을 이들은 떠났다. 그녀의 곁에는 남편이 있다. 여행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도 남편이라고 말한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한 여행에서 그녀는 자신이 입고 싶은 옷과 액세서리를 단다. 잘 정돈되고 깔끔한 옷은 작은 감탄을 자아냈는데 이 비결도 바로 남편이다. 같은 남자 입장에서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감탄해야 하나.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은 언제나 아이가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다. 부모가 가고 싶은 곳을 간다. 물론 아이의 상태도 감안의 대상이다.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텐데”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한다. 이 부분을 작가는 현대 과학의 일부를 통해, 경험을 통해 반론한다. 이 여행의 경험은 다른 방식을 통해 몸에 기억된다. 작가의 이 말에 공감한다. 현실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르다. 이 부부처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여행했다면 다를지 모르겠다. 5년 15개국 30도시라니 대단하다. 월급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더. 실용적인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여행을 하는 부부가 있다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떠나고 싶다.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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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 한빛비즈 교양툰 한빛비즈 교양툰 1
갈로아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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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곤충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면 기겁한다. 한때는 손으로 때려 잡은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도구가 없다면 그냥 놓친다. 신발이라도 신고 있다면 그냥 밟겠지만 맨손이라면 아~ 그냥 보내드린다. 지금 곤충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퀴벌레라는 것은 나의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잘 보여준다. 나비나 벌이나 잠자리 등도 있는데 굳이 이런 인간 혐오류를 먼저 떠올리다니. 이런 나의 낮은 지식은 학창 시절 생물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자란 후에도 이런 장르를 거의 읽지 않은 탓이다. 목차를 볼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곤충이 바퀴벌레였으니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만든다.

 

고생대, 중생대, 대멸종, 신생대 등의 이야기는 지구의 탄생과 해상 동물과 육상 동물의 발전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단계다. 이 당시에도 곤충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지금도 생존해 있다. 계통학적인 곤충의 설명을 하고, 유전적으로 진화한 곤충의 외형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날개와 외골격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곤충을 볼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와 진보를 구분한다. 사실 우리가 가장 혼란스럽게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가 진화와 진보다. 특히 진화를 진보로 착각한다. 진화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데 우린 이것을 진보라고 읽는다. 이 오독과 오해가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넓게 스며들어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과학은 유동적이다. 과거의 발견이나 학설이 후대에 와서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 진화론을 말한 다윈의 학설이 새로운 발견으로 입증되기도 하고, 학창 시절 배웠던 몇 가지 학설은 이제 그 힘을 잃고 있다. DNA를 분석하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단순한 해부만으로 알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퀴벌레와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곤충을 볼 때 얼마나 놀랐던가. 이것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숲에 사는 바퀴벌레의 경우 아주 깨끗하다는 것이다. 바퀴벌레가 얼마나 강한 임팩트를 주었으면 작가도 2화에 걸쳐 바퀴벌레의 역사와 퇴치와 기원을 다루었겠는가. 갑자기 영화 <설국열차> 속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만화 속 한 컷 때문일까?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 중 하나가 곤충과 식물의 공진화다. 곤충들이 식물에 기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공생 관계는 다른 생물이 식물을 먹는 것을 막아준다. 꽃과 꿀을 생각할 때 꽃이 주는 꿀의 양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기에도 전략은 숨어 있다. 이런 자연계의 생존 전략을 작가는 잘 포착해서 간결한 설명을 곁들인다. 여기에 기존 과학 이론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종의 발견이나 연구 결과에 따라 바뀔 가능성 또한 열어놓았다. 그리고 개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프로이트가 곤충의 성에 한 컷 등장한 것을 봤기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많은 곤충을 의인화하고, 곳곳에 다양한 문화 코드를 풀어놓았다. 물론 의인화로 인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문구들을 곳곳에 넣었다. 하지만 이 만화의 재미는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곤충의 진화 셜명과 함께 마이너 문화의 패러디를 적극 활용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이것을 빨리 파악할 때 더 분명해지는 아쉬움이 있다. 등장인물을 눈을 가렸지만 누군지 쉽게 알 수 있고, 작가 자신이 등장해 설명에 재미를 더한다. 일반적인 곤충 등을 설명한 책들이 지니는 무거움과 재미없음을 이 책은 싹 지웠다.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곤충을 더 깊게 더 넓게 알고 싶다면 전문서적으로 가야하겠지만 나같은 일반 독자에게는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 이런 자연과학 교양 만화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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