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의 남자들
박초이 지음 / 문이당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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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누렸다. 특히 앞의 두 편은 읽으면서 예상했던 장면들로 마무리되지만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나머지 일곱 편도 각각 다른 재미와 혼란 등을 던져주면서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출간된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앞으로 뒤틀린 감정과 시선으로 이야기를 장르 문학처럼 풀어내는 소설을 쓴다면 나의 관심은 더 높아질 것 같다. 이미 이 단편집의 몇 작품은 아주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은 표제작 <남주의 남자들>이다. 남주라는 여자를 회사 밥 친구로 삼은 화자의 시선 변화와 자각이 아주 재밌다. 남주가 자신과 화자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말하고, 자신이 보여준 친절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는지 말할 때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선입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말하고 화자를 일깨워주는 과정과 결혼 한 달 앞둔 화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양파 껍질 까기 같은 재미가 있다. 자신이 믿은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현실을 아주 멋지게 그려내었다.

 

<거짓 없이 투명한>은 한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 남자가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여행을 다녀온 아내를 의심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아내의 이혼에 화를 낸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마지막 장면으로 뒤바뀐다. <경계의 원칙>은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보던 사람과 그가 찍던 커플의 모습을 주로 다룬다. 그의 과거와 고객의 거짓된 현실이 교차하는 장면들은 우리가 보는 삶의 이면들 생각하게 한다. <강제퇴거명령서 - 2039 평성>은 법대 친구가 오래 전 통일 후 북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송을 소재로 했다. 이 소송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공지능 로봇들이 화자를 대하는 모습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이름만 남은 봄날>은 80년 5월 광주가 분명한데 파면적인 이미지들이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간단한 해석을 본 후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그 당시 상황들이 연결되었다. <묵도에서 기다리다>는 박제상 이야기다. 혹시 해서 검색하니 왕자를 일본에서 귀국시키고 죽은 그가 맞다. 그가 받은 고문과 인간의 놀라운 회복력이 더 눈길을 끈다. <개들의 산책>은 개들이 모이는 곳의 풍경을 그렸다. 단순히 풍경만 그린 것이 아니라 반려견을 통해 그들의 삶을 간결하게 다룬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나오고, 그녀가 가진 선입견이 어떻게 깨어지는지 보는 것도 재밌다.

 

<율도국 살인사건>은 홍길동이 세운 그 나라에서 생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지들이 먼저 부각되는데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율도국은 미성년자 매춘업소다. 파편화된 이야기가 나오고, 비극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소녀들은 실제로 쉽지 않은 삶이다. <흡충의 우울>은 산후우울증에 빠진 화자 이야기다. 2년 동안 연락되지 않은 남편을 힘겹게 찾아 연락하고, 찾아간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가이드다. 남편이 그녀를 피하는데 그 이유가 마지막에 드러난다. 캄보디아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녀가 집착하는 활자중독은 가슴 속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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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받으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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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살(煞):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재밌게 읽었다. 주변의 평도 좋아, 읽었다가 한국 무속 공포소설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전체적인 균형감은 조금 떨어졌지만 가독성이 좋고 서늘한 재미가 있었다. 이번 작품은 전작보다 안정적인 구성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가독성은 변함없다. 1876년의 과거와 1976년의 현재로 나누고, 현재 진행형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그 사건이란 것이 진행되면 될수록 섬뜩하고 잔혹하다. 당연히 이 사건은 100년 전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100년 전 경상도 섭주란 가공의 마을에서 사교의 교주 장일손이 자신의 신도였던 사또 김광신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는 흔한 김광신의 후손들까지 죽을 것이란 저주를 내린다. 형을 집행한 것은 망나니 석발이다. 석발 또한 장일손의 저주를 받는다. 그의 눈에 잘린 장일손의 머리가 끝없이 나타난다. 이 저주를 푸는 방법이 김광신을 죽이는 것이다. 현직 사또를 죽여야 한다. 쉬울 리 없다. 죽이는데는 성공하지만 그는 관병에게 쫓긴다. 이때 또 하나의 저주가 섭주에 내려진다. 그것은 석발을 도와준 무당의 것이다.

 

100년 시간이 흐른 뒤 섭주에 개척 교회가 들어선다. 젊은 목사 김정균은 성공적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흔한 시골 마을의 풍경 속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무당의 딸 묘화를 구박하는 여자 세 명에게서 비롯한다. 교회에 오려는 묘화를 마을 여고생 세 명이 막은 것이다. 목사 정균도 이것을 보고 막지 않는다. 왜일까? 이 이유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다. 그것은 목사가 어릴 때 귀신을 보았고, 그가 들러붙어 굿으로 겨우 떨쳐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다시 귀신 때문에 몸살을 할 수 있다. 목사가 된 후에도 그는 이것을 잊지 못한다.

 

묘화는 여자들의 구박과 폭력을 겪은 후 호수에서 몸을 씻는다. 그때 황금빛 십자가가 자신에게 온 것을 줍는다. 예수와 닮은 듯한 인물을 마주한다. 이때부터 묘화는 이적을 발휘한다. 걷지도 못한 할머니를 걷게 하고, 취직이 되지 않던 아이가 큰 회사에 합격한다. 이런 좋은 일 이면에 그녀를 괴롭혔던 두 소녀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 그들이 묘화에게 한 행동의 반작용이다. 먼저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흉악한 장면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 그 아이들 중 한 명인 순남이가 뱀에게 손을 물려 죽는다. 절망에 빠진 순남의 부모는 묘화에게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다.

 

토속신앙과 외래 신앙의 대결이 흔한 양상이라면 박해로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금생재륜교란 사교를 내세우고, 이 사교의 놀라운 술법은 현실에 그대로 적용한다. 이 때문에 공포는 강화되고, 삶은 이어진다. 솔직히 말해 이 술법이 너무 쉽고 과장되어 있어 공포감이 조금 떨어진다. 작가가 공들여 세운 공포의 경계 깊숙이 들어가면 너무 허술한 술법이 몰입도를 깨트린다. 공들인 공포는 여전히 넓려 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싸움이 벌어지고, 학살이 일어난다. 악의 힘은 변함없는데 교회 목사의 힘은 무력하다.

 

많은 이야기를 깔아놓았고, 많은 의문을 남겼다. 미지의 힘은 그대로고, 술법은 너무 쉽게 이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인간의 욕망이 세대를 넘어서 이어질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 사이에 공포는 여전히 서늘함을 던져준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충분히 형상화하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욕망에서 비롯한 잘못과 실수와 공포를 다루는 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인가. 그리고 두 번에 걸쳐 여운을 남긴 것은 왜일까? 아쉬운 대목들이 있지마 한 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만드는 서늘함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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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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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머릿속에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단편 소설은 없다고 인식되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면 금방 그의 단편들이 실린 책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말이다. 단편 소설집으로 출간된 책은 이 책이 처음 아닐까 생각하지만 쉽게 자신할 수 없다. 물론 연작 단편집은 이전에도 있었다. 저질 기억력은 가끔 이렇게 나를 혼란스럽고, 자신 없게 만든다. 덕분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단편 소설집이란 것이 나를 강하게 유혹하기는 했다. 작가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모았다는 것은 또 다른 유혹이다. 이 단편집을 모두 읽고 난 후 이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여덟 편이다. 글 쓰는 것이 직업인 작가를 소재로 한 탓인지 어디까지 자신의 경험을 담고 있는지 솔직히 궁금하다. 물론 <죽이러 오는 자> 같은 작가는 아닐 것이다. <작가 만담> 속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었을까? 아니면 <기코쓰 선생>처럼 작가를 생각하는 것일까?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다양한 장르의 분위기에 놀라고 즐거워했다. 그리고 다시 이전에 읽었던 본격 추리를 다룬 그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단편집의 몇 편은 서늘하고, 재밌는 반전이 펼쳐진다. 물론 코믹한 작품도 있다.

 

<글 쓰는 기계>는 유망한 작가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넣는 기계다. 글을 빠르게 쓰지 않으면, 무저갱 같은 곳에 떨어진다. 물론 무의미한 글자들은 해당사항이 없다. 출판사 지하에 이런 장치를 해놓고 베스트셀러를 몇 명 배출했다고 할 때, 그리고 나중에 이 작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에 벌어지는 장면은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준다. <죽이러 오는 자>는 한 소녀의 팬레터와 연쇄살인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무작위, 무차별 연쇄살인처럼 보이지만 이 살인에는 한 가지 패턴이 있다. 경찰들은 아직 이 패턴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은 그 패턴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현대인에게 마감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작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감 이틀 전>은 느린 글쓰기를 가진 작가가 이 기간 동안 쏟아내는 온갖 망상들을 다룬다.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생각하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기코쓰 선생>은 남녀 고등학생이 현역 소설가를 만나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에 출판계의 현실과 문제점을 담고 있다. 팔리지 않는데도 왜 책을 계속 낼 수밖에 없는지 알려주고, 작가의 뒤끝은 보여준다. <사인회의 우울>은 고향 서점에 사인회를 가게 된 신인 작가의 불안과 그 현장의 해프닝을 재밌게 다룬다. 물론 마지막에 펼쳐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그 불안의 근원이다.

 

<작가 만담>은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다. 둘의 성은 아쿠타가와와 나오키다. 이 만담을 읽다 보면 우리가 친구들과 하는 실없고 한심한 이야기들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작가들과 소설에 대한 것이란 차이는 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이런 쪽에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는 약속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이야기들이 쌓여 서늘한 마지막 반전으로 이어진다. <꿈 이야기>는 꿈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없는 곳에 나타난 소설가가 기존 작품을 각색해서 영웅이 된다. 자신의 진짜 이야기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마지막 장면은 흔한 설정이지만 잠시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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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의 질량 한국추리문학선 6
홍성호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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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제목, 출판사를 보고 선택한 소설이다. 현대적 감각과 살인자의 강한 모습 등을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 내용을 보면서 조금 실망했다. 예상과 다른 전개와 구성이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8~90년대 한국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인 김내성의 소설 <마인>에게 헌상하는 처절한 오마주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 <마인>을 읽지 못했다. 집에 재간된 책 중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읽게 되면 이 소설이 새롭게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기대와 다른 전개와 구성이지만 가독성은 상당히 좋다.

 

오상진. 추리소설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희귀본 수집가다. 신작 출간기념회에서 이 작품의 동기를 설명한다. 노숙자가 된 친구의 아버지가 살인했던 이야기다. 출간기념회라고 하지만 그의 팬 카페 회원들과 출판사 관계자와 지인들이 모인 작은 모임이다. 첫 장면이 마인의 블로그인데 이 모임 속에 마인이 존재한다. 김내성 작가의 원작을 읽지 않아 마인이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 김내성 작가에게 바치는 소설이고, 작중 주인공 이름이 김내성이고, 여러 차례 재간된 <마인>의 희귀본을 둘러싼 이야기를 감안하면 읽은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설 같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출간기념회는 잘 마무리된다. 오상진은 회장 정진영과 함께 집으로 간다. 주인공 김내성도 후배와 함께 한 잔 더 한다. 다음 날 오상진이 아버지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중에는 그가 살인용의자로 체포된다. 사망추정시간 동안 그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말한다. CCTV로 확인하니 누군가가 후드에 모자를 쓴 채 오상진의 차를 타고 아버지집으로 간 것이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의 살인을 강하게 주장한다. 아직 한국에서 가중처벌되는 존속살인 용의자다. 하지만 김내성이 볼 때 이 사건은 허술한 부분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여기에 오상진이 모은 추리소설 희귀본이 많이 비어있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오상진이 살인을 했는가 하는 전반부고, 후반부는 마인의 정체를 둘러싼 이야기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 김내성이 탐정 역할을 한다. 아인 김내성과 이름이 똑 같은데 이것도 사연이 있다. 이 사연이 후반부에 예상하지 못한 작은 재미를 준다. 작가 능력보다 탐정 능력이 더 좋은 김내성은 오상진을 함정에 밀어 넣은 사람을 금방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준다. 하지만 왜 이런 함정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은 그들만 안다. 이 과정은 고전 추리의 한 장면과도 닮았다. 이 장면은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된 후 베스트셀러 작가인 오상진의 본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다. 양형조사관인 작가가 설정한 장면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김내성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김내성이 오상진에게 범인들의 탄원을 위해 내 건 책은 <마인>의 초판본이다. 아직 한국에서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첫 장면에 나온 마인은 아직 제대로 활약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김내성은 마인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장면도 사실 고전적이다. 홍성호 작가가 아인 김내성의 <마인>을 오마주하기 위해 이런 문장과 구성을 했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아니라면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은 여담이지만 예전에 김내성 전집을 친구가 가지고 있었다. 세로본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김내성이란 존재를 잘 몰랐었다. 알았다면 아마도 내가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이 친구가 자기 선배에게 양도했다고 했는데 아마 그분은 그 가치를 아시는 분일 것이다. 다른 책들까지 읽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마인>은 빠른 시간 안에 읽어보고 싶다.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런 오마주 작품이 나왔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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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붓다
이응준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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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응준의 글을 읽었다. 그의 두툼한 산문집 <영혼의 무기> 이후 처음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응준으로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나온다. 소설, 에세이, 시집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다. 이 중에서 읽은 것은 몇 권 되지 않고, 몇 권은 집에 있다. 옛날에 헌책방과 대할인 시대에 사놓은 것이다. 이 책들은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다가 그의 글을 읽을 때 잠시 떠올랐다가 다시 잊혀진다. 모아놓은 책이 늘어나면서 이런 작가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늘 정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욕심은 많고 게으른 탓이다.

 

솔직히 이 책은 얇아 선택했다. 200쪽이면 하루에,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얄팍한 생각이 있었다. 실제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지 않아 읽으면서 ‘뭐지?’ 하는 의문을 계속 떠올렸다. ‘몽유병의 여인’이란 바의 주인은 F형이란 가명으로 불리는데 시인 함성호,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 등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내가 이들의 이름을 몰랐다면 그냥 등장인물이구나 하고 지나갔겠지만 말이다. 이들을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또 무엇인가. 출판사 은행나무를 그대로 말하고, 편집장도 말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붓다란 제목이 들어가 있어 불교 이야기가 나올 것이란 추측을 먼저 했다. 그런데 부처는 거의 나오지 않고 기독교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온다. F형을 말할 때는 나치에 부역한 적이 있는 시인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이야기 속에 넣어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지만 분명한 이야기의 흐름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답답하다. 정한심이란 여성의 존재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체가 있는 존재일까? 그녀가 그림자 정부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이야기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김봉석은 또 무엇인가? 혹시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망상인가? 마지막에 롯데월드로 돌진하는 그의 모습은 돈키호테와 다름없다. ‘뭐지?’

 

많은 의문과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풍자와 비유와 은유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어떤 대목에서는 반복적인 문장이 나온다. 이때는 다시 ‘뭐지?’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해피 붓다를 말하지만 그 실체를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실제 많은 정보 속에서 몰랐던 것도 상당히 있다. 러시아 혁명의 해당 월이 우리가 알고 달과 다르다는 것이다. 10월 혁명이 우리 달력 기준으로 11월이란다. 뭐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다. 이런 재미들 속에 던지는 수많은 질문과 단순한 이야기 속의 알 수 없는 일들은 쉽게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다. 또 어느 선까지 자신의 경험과 현실을 연결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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