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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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위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읽었던 작품들 모두 나의 심금을 울렸다. 처음 시작은 <허삼관 매혈기>였지만 영화로 본 <인생>이나 다른 작품들도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내가 추천한 위화의 소설들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고, 나 자신도 위화의 신작이 나오면 언제나 위시리스트에 올리거나 구입한다. 그런데 소설에 비해 산문집은 조금 낯설다. 위화의 소설과 문장 등에 대한 평가를 어디선가 읽은 듯한 글 때문에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 글이 착각인지 현재는 불분명하다.

 

이 책의 제목과 간단한 책 소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가 한 명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의 음악 관련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기에 위화도 이 산문집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산문집은 음악보다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그리고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감상과 평론은 내가 얼마나 위화를 몰랐는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읽으면서 평론가 신형철이 왜 이렇게 이 산문집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단순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분석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읽은 책들은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고, 가지고 있는 책들은 살짝 독서의 열의를 다지게 만들었다.

 

앞에서 착각했던 위화의 문장에 대한 글은 그가 어려운 단어나 문장을 사용하지 않고 쉬운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전문적인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아 그랬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산문들은 결코 쉬운 단어나 문장이 아니다. 처음에 위화란 이름과 한 쪽의 분량을 보고 예상한 시간을 훨씬 초과한 것도 바로 이런 착각의 결과다. 작가에 대한 그의 분석은 정밀하고 통찰적이고 새로운 시선이 많다. 글들은 작품보다 작가에 더 집중하는데 작가의 삶을 다루면서 평론가처럼 글을 풀어내었다. 솔직히 말해 쉬운 글이 아니었다. 이렇게 어려운 작품들을 분석해낸 글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들이 얼마나 읽기 편한 소설인지 떠올리게 된다. 이 산문들 대부분이 90년대 후반에 쓴 것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나의 착각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어렵다는 윌리엄 포크너나 카프카 분석은 뒤로 하고 관심은 후안 룰포에 많이 집중되었다. 마르케스가 존경한 대목이 시선을 끌었고, 그 작품 <뻬드로 빠라모>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번역된 작품이다. 포크너의 작품들이 집에 있는데 그가 분석한 내용이 나중에 읽을 때 다시 떠오를지 확신할 수 없지만 작은 용기를 주었다. 예전에 카프카를 읽으면서 미로를 해맨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다시 체호프에 관심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주홍 글자>는 영화의 기억을 먼저 더듬게 만들었다. 이렇게 문학 이야기는 문장과 선율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로 넘어갔다.

 

위화는 음악을 어느 날 갑자기 듣기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들은 모양이다. 그가 풀어낸 작가와 작품들의 분석과 차이콥스키 찬양은 이전에 읽었던 수많은 음악 에세이의 기억을 더듬게 만들었다. 한때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듣기만 한 클래식 음악과 재즈가 다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음악과 문학을 연결해서 풀어낸 글들을 읽으면서 중국의 성조가 먼저 떠올랐고, 수많은 작가들이 클래식에 대한 자신들의 감상을 소설 등에 녹여낸 것들이 생각났다. 언제쯤 나에게도 이런 귀를 열릴까 하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먼저 다가왔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 수준 높은 글들은 나의 중구난방 독서와 음악 듣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작품 깊이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졌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산문집도 읽으면서 오래 전 읽었던 소설이나 들은 음악들이라 나의 감상보다 작가의 감상에 휘둘린 부분이 많다. 아마 시간이 지난 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소설이나 음악을 읽고 듣게 된다고 해도 위화의 평가가 제대로 떠오를지는 자신이 없다. 하루키의 글들처럼 말이다. 그래도 이 산문집은 위화에 대한 기존 인식을 깨트리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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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위크
강지영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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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작가 8인이 쓴 앤솔러지다. 특이한 것은 어위크란 24시간 편의점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과 전건우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쓴 것이다. 보통의 앤솔러지가 주제 하나를 던져주고 단편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이 앤솔러지는 시작과 마무리를 한 작가에게 맡기고, 다른 작가에게는 편의점만 들어가게 한 후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내게 만들었다. 덕분에 각 단편들은 작가들의 상상력 속에서 자유롭게 펼쳐졌고, 이런 구성의 다른 단편과 다른 구성이 되었다. 첫 단편이 끝났을 때, 혹은 다음 이야기가 시작할 때 이야기꾼이 개입할 것 같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연관성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전건우의 이야기는 한 배달원이 경찰의 총을 주은 후 현금수송차량에서 돈을 탈취하고 달아나려는 계획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계획한 것과 달리 차에 탄 인원도 다르고, 차는 오토가 아닌 스틱이다. 현금 수송 가방은 왜 이렇게 무거운지. 이들은 수많은 목격자와 증거 영상을 남기면서 달아난다. 그리고 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편의점에 들어간다. 알바를 인질로 잡아 이 상황을 넘어가려고 하는데 이 편의점도 알바생도 이상하다. 인질이라는 두려움이 전혀 없고, 그들에게 편의점 음식을 대접하고, 무료하니 이야기까지 들려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일곱 작가의 이야기가 한 편씩 펼쳐진다. 에필로그는 당연히 스포일러이니 생략.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요일을 달고 있다. 첫 이야기는 정명섭의 <대화재의 비밀>이다. <한성 프리메이슨>에서 만났던 평리원 검사 이준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조선 궁궐 화재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누가 화재를 일으켰는가 보다 어떻게 그 사실에 다가가는가가 재밌다. 그 시대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데 읽다보면 이 작가의 작품은 장편보다 단편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음 이야기는 가장 재밌게 읽은 두 편 중 하나다. 김성희의 <옆집에 킬러가 산다>인데 자기소개서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왜 그가 이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아파트에 이사 왔는지, 이 아파트 이웃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문제 있는 이웃들을 또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여준다. 코믹하게 풀어내면서도 반전이 있다. 처음 읽는 작가인데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다.

 

오랜만에 읽은 노희준의 <당신의 여덟 번째 삶>은 SF다. 시간 여행을 다루면서 다중우주와 AI와 기본소득 등을 엮고, 시간 여행의 패러독스를 정면으로 다가간다.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 이 단편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신원섭의 <박과장 죽이기>는 남편 박과장을 죽이려는 수진과 그런 수진을 사랑하는 민의 이야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수진이 담담한 보습을 보여주는데 반면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민의 심리 묘사가 너무 격정적이다. 완전범죄를 이루고 난 뒤의 마지막 반전도 조금 어색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 있었던 열병합발전소 화재 사건이 떠오른다.

 

강지영의 <러닝패밀리>는 어떻게 보면 코믹하고, 어떻게 보면 섬뜩하다. 그녀가 지금까지 쓴 단편들이 흔적이 그대로 녹아 있다. 러닝패밀리라는 게임이 도시괴담을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며칠 동안 결석한 선우를 찾아간다. 선우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스마트폰이 없고, 러닝패밀리라는 게임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선우가 이상한 구멍 속에 빠져 있다. 이 구멍이 러닝패밀리라는 게임과 연결되어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꼬인다. 소현수의 <아비>는 읽으면서 음주운전 가해자의 배우자 보영이 무슨 잘못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뻔뻔하게 ‘내가 죽였냐’하고 말한다면 말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피해자 가족이 무속인이고, 보영이 남편이 악귀에게 계속 죽은 꿈을 꾼다는 설정이 예상한 결말로 이어졌지만 그 서늘함을 잘 전해진다.

 

마지막 단편은 정해연의 <씨우세클럽>이다. 얼마 전 <내가 죽였다>로 약간 코믹한 추리에 더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작품도 그런 계열이다. 미모와 공부 모두에서 탁월한 연서가 음모론 때문에 취직 못하다 편의점주가 되었다는 설정과 그녀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아주 재밌다. 그리고 이번 작품도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 작품 속에도 녹여내었다. 프렌차이즈 그룹 회장의 갑질과 성추행 등을 말이다. 편의점주들 모임의 이름이 씨우세클럽이고, 이들이 모인 이유는 회장 갑질 때문에 빠진 매출액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주인공 연서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몇 명 보이는데 다른 작품에서 이들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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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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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원서의 한자를 보면 잔혹범죄가 아니고 엽기범죄가 적혀있다. 한 권이 아니라 시리즈인 듯한데 다음 이야기도 번역되었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것 같은데 과연 이 엽기적인 살인과 자살 등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궁금하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살인 장면을 떠올리면 그 잔혹하고 참혹한 모습을 정면에서 들여다볼 자신이 솔직히 없다. 19금은 당연하고, 어느 정도 이미지 변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원작을 심하게 변형한다면 재미가 반감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드라마 한 편 정도는 보고 싶다.

 

시작은 싼 숙소를 찾던 대학생과 중개인이 참혹한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 나올 수 있는지는 이미 많은 장르 소설 속에서 경험했지만 역시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초보형사 도도가 미해결 사건파일을 암기하다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한다. 어느 택배 배달원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피해자가 미해결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였다. 이름은 미야하라 아키오다. 그는 자신이 자살하는 장면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었다. 스마트폰에 남겨진 영상에는 다른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교도소 독방에서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다. 자살자는 사메지마 데쓰오다. 머리를 벽에 찧어 자살했는데 기절한 채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이 감시 카메라에 잡혔다. 이런 자살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가장 먼저 초자연적인 현상이 떠올랐지만 그것과는 상관없다. 그렇다면 한때 유행했던 최면일까? 최면으로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란 질문이 절로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도 등은 자살로 죽은 사체의 뇌를 해부하고, 심리학자를 만나 다른 가능성을 검토한다. 결론은 이 자살자처럼 죽는 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자살 사건이 또 일어난다. 그리고 이전의 자살 장면들이 방송국에 알려지고, 인터넷에 올려진다. 누가 이런 영상을 올리는 것일까? 사메지마 사건을 재수사하던 중 고소했다가 취소한 한 여성의 찾아갔는데 그녀가 자살했다. 이 집에서 노비 선생으로 불리는 다모쓰를 만난다. 그는 자살한 여성이 방문했던 정신과 클리닉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왜 그녀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부모에게 듣는다. 인간의 비열하고 잔혹한 행동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당연히 부모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 엽기적인 자살 사건을 파헤칠수록 잔인하고 참혹한 현실이 드러난다.

 

도도는 아주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자는 잘 쓰지 못해 그림으로 기록한다. 경찰서에는 친한 친구인 경찰이 있다. 그런데 그녀가 어느 날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도도는 이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단서를 조사한다. 이 사건과 비슷한 사건들을 찾아낸다. 사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누가 범인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엽기적인 자살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이 누군지 짐작 가능해진다. 엽기적이고 참혹한 살인 혹은 자살 장면을 제외하면 추리소설의 긴장감은 조금 떨어진다. 이 빈틈을 채워주는 것이 엽기성과 등장인물의 강한 개성이다. 물론 사신 여사를 제외하면 아직 그 빛을 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읽으면서 사형이 가해자에게 한 번의 죽음만 선사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죽음보다 더 한 공포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자살자들이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때 느낀 쾌감을 누리면서 자살하는 현상은 공포보다 쾌락이 더 크다. 물론 자신이 그 고통을 그대로 느낀다면 정말 잔혹한 처형일 테지만 내 이해의 한도 안에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죽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을 계속해서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잔인한 복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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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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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히치콕의 <이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광장공포증이 있는 주인공 애나가 창밖으로 이웃을 엿보는 설정과 살인사건 때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고, 엿본다는 것이 <이창>의 설정과 동일하다. 실제 이 소설 속에는 고전 영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당연히 히치콕의 영화들이 나오고, 그 속에는 <이창>도 있다. 소설 속 몇몇 장면들을 보면서 예전에 본 영화들의 이미지나 설정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여 가능한 반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결과는 나의 예상과 다른 반전으로 이어졌고, 그 강렬한 흡입력에 끝까지 빨려들어갔다.

 

누군가가 창밖을 본다는 것은 일상적인 행위다. 하지만 꾸준히 본다면 어떨까? 물론 이것은 범죄가 될 수 있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창밖 풍경에 눈길을 더 줄 수밖에 없다면? 그러다 누군가가 죽는 모습은 본다면? 솔직히 말해 흔한 설정이다. 앞에서 말한 영화 <이창>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이 설정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하지만 이 설정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표면적 설정 속에 사연을 집어넣고, 스릴을 느끼게 만들고, 반전으로 이끄는 것은 노력과 재능이 필요한 일이다. 이 작가는 이것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애나가 광장공포증에 걸린 이유가 나중에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은 예상했다. 애나는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였다. 하지만 병에 걸리면서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창문도 열지 못한다. 그녀의 일상은 이웃을 엿보거나 인터넷으로 체스를 두거나 심리학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조언하는 일이 전부다.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먹지만 술과 함께 먹는 잘못을 범한다. 이 행위가 병을 고치기보다는 악화시킨다. 이런 일상 속에서 러셀 가족이 이사 온다. 엿보기는 그녀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그 집을 엿본다. 그러다 그 집 아들 이선이 초를 들고 방문한다. 연약해 보이는 십대 소년이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그녀에게 새로운 연결이 생긴다.

 

광장공포로 극도로 폐쇄적인 그녀는 늘 정해진 사람들과 만난다.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연결은 상관없다. 이런 그녀에게 이선과 그의 엄마가 연속으로 방문한 것이다. 이선의 엄마 제인은 그녀의 집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초상화까지 그려준다. 그녀는 엿보기로 그녀가 러셀 집안에 있는 것을 봤다. 그런 어느 날 아주 큰 비명소리를 듣고, 제인이 피를 흘리고 반짝이는 뭔가가 몸에 꽂혀 있는 것을 본다.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시체는 없고, 제인이라고 말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가 알던 제인이 아니다. 신분증까지 확인한다. 제인 러셀이다.

 

그날 밤 그녀가 본 것은 뭐지? 그녀가 지켜본다는 것을 안 러셀 부모는 그녀에게 그만 엿보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 사건에 더 집착한다. 과연 그녀가 환상을 본 것일까? 포도주와 향정신성 약을 같이 먹는 그녀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별거 중인 남편과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왜 별거를 했는지, 왜 그녀가 광장공포증에 걸리게 되었는지는 중반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것이 또 하나의 반전으로 작용하면서 그녀를 극한상황까지 몰고 간다. 이것 또한 다른 반전을 위한 장치이자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사용한 설정이다. 이렇게 작가는 충실하게 반전을 풀어내고, 다른 반전을 위한 장치를 깔아놓았다.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과거를 제외하면 현재는 대부분 애나가 거주하는 건물과 그녀가 엿보는 집들이 배경이다. 제인 살인 사건에 집착하는 그녀가 딱 한 번 집밖으로 나간다. 제인이라고 말한 여자를 쫓아가기 위해서다. 이것이 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그녀가 받은 메일이나 찾아낸 사진을 경찰에게 제시했을 때 장면은 연극의 무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선, 경찰, 이선의 아버지, 세입자 데이비드 등이 차례로 등장하는 장면은 특히 그랬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사실 하나와 반전이 펼쳐진다. 다른 반전을 위한 또 다른 준비다.

 

한정된 공간과 등장인물을 가지고 600쪽이 넘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이 한정적인 자원들을 고전 영화와 뒤섞어 독자가 상상하고, 범인을 추리하게 만든다. 독자가 예상하고 추리한 것이 맞을 때는 기쁘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나올 때는 더 즐겁다. 이 작품은 실제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과연 결말을 알고 있는 내가 그 영화를 어떻게 즐길지도 궁금하다. 출연 배우들의 프로필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히치콕과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딱 맞는 소설이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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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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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공중전화 세대인 내가 휴대전화를 거쳐 스마트폰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생각조차 못했다. sf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가능성을 살짝 엿보던 시절이었다. 한때 휴대전화 사용을 거부한 적도 있었지만 취업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어쩔 수 없이 사용한 것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이어졌다. 이 스마트폰과 내가 함께 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거의 하루 종일이다. 물론 이것을 두고 화장실을 가거나 집에서 잠시 제쳐두는 순간은 있지만 시간이 나면 다시 든다. 대화를 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하고,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연다. 나의 일상은 이제 이 스마트폰과 함께 하고 있다.

 

나만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 아내도 아이도 마찬가지다. 카톡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캡쳐된 정보를 서로 보낸다.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먹은 음식이나 물건을 올린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외국어가 나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영상이니까. 송금은 당연히 앱에서 하고, 인터넷결제는 가능한 간편 결제 시스템을 이용한다. 중국 출장 갔을 때 중국 직원들이 현찰을 들고 다니지 않고,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사용해서 결제하고 있었다. 솔직히 외국에서 현찰을 내고 음식이나 물건을 사면 잔돈이 남는데 이것이 불편하다. 그들이 현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만약 자주 중국 출장을 갈 일이 있다면 아마 통장 개설하고 중국 페이들을 사용할 것 같다.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진 사람들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한다. 저자가 만든 포노 사피엔스 등급에 의하면 최소 5등급 정도는 된다. 필요한 앱을 찾아서 깔지만 생활이 단순해지면서 사용하는 앱만 사용하지 새로운 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코딩 능력이 없으니 프로그램을 짤 수도 없다. 필요하면 배우겠지만 그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10등급은 멀고 먼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원하는 앱을 찾지 못하면 포기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뛰어난 검색 능력과 이것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기어코 찾아낸다. 나에게 놀랍기만 한 일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을 이용하는 사업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손님은 왕’이라고 계속 말한다. 이때 말하는 왕의 의미는 갑질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조금 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산다. 잠시만 머물러 있어도 게임을 연다. 뉴스도 앱으로 본다.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드라마 등을 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중늙은이의 눈에는 불편해 보이지만 그들은 아니다. 게임이 종합문화란 이야기를 듣고, 영화와 비교하면서 긍정하게 되었는데 이 책도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을 마냥 나쁘게만 보지 않게 만든다. 단 중독은 피해야 한다.

 

얼마 전 중국 왕홍에 대한 글을 블로그 글을 읽은 적 있다. 그게 가능해? 가 첫 질문이었다. 알리페이 등으로 거지가 구걸한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들었고, 한국에 알리페이를 위한 QR코드가 나와도 무심코 봤는데 너무 한국 상황에 매몰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기술 혁신으로 기존의 제조업 강자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업체들이 부상한 이야기는 시장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우버가 몰고 온 엄청난 변화는 각 지역별 다른 서비스명으로 바뀌었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이 앱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기존 서비스의 불편함을 감수할 마음이 없다. 그 비용이 조금 더 비싸다고 해도 말이다.

 

팬덤의 중요성을 말한 부분은 공감한다. BTS의 성공담은 개인적으로 새로운 부분이 많다. 홍보 마케팅 등은 기존 유통망의 권위를 무너트린다. 솔직히 방탄소년단으로 나왔을 때 이들이 이렇게 성공할지는 몰랐다. 그들만큼 좋은 노래와 춤 실력 등을 가진 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보다는 e-스포츠란 단어를 더 사용하는데 이것의 시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몇 년 전 롤에 대한 기사를 읽고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아직도 게임은 기존 매체에서 많이 다루지 않는다. 기성 세대가 즐기는 게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잘 모르는 업체들이 엄청난 금액으로 매각되는 것을 본다. 바뀐 문화가 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어느 날 보게 된 수많은 무슨 무슨 tv 등은 이제 작은 기업이 되었다. 어른들은 먼저 부작용을 말한다고 말하면서 그 이면을 보라고 말한 저자에 동의하는 부분도 이런 현상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왜 이렇게 빠르게 문화가 바뀌게 되었는지 말한 부분 중 공산당의 역할 부분은 공감한다. 한국도 개방 전에는 대기업들이 이렇게 성장했으니까. 미세한 차이의 예로 카카오뱅크 이야기를 했는데 귀여움이 국민에게 어필하는 과정은 다른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바로 기업의 관료 문화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바뀌고 있는 현대 문명을 풀어내었는데 문화의 한 부분만을 다룰 뿐이다. 데이터 분석은 자신의 원하는 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을 수밖에 없다.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에 맞는 데이터가 모이면서 현상이 더 거대하게 보인다. 물론 이 현상들이 거짓말이란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모든 것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포노 사피엔스가 등장했고, 이들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부분에는 동의한다. 좀더 열린 시각으로 급속히 변하는 과학에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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