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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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포틀랜드 체류기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를 이우일이 내었다. 그로부터 거의 2년만에 그의 아내인 선현경이 하와이 체류기 <하와이하다>를 내었다. 그림은 이우일이 그렸고, 에필로그만 이우일이 썼다, 인터넷 서점에서 선현경을 검색하면 이우일처럼 많은 작품 목록이 나온다. 글과 그림에 재능 있는 부부다. 하와이하다란 제목도 포르투갈어 ‘창문하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창문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하와이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하지만 모든 체류는 그곳을 통해 세상을 보고 만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재밌는 제목이다.

 

원래 1년 예정으로 떠난 일정이 거의 1년 9개월로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우일의 보디보드 사랑이다. 물론 저자의 친구 관계나 날씨 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모두 시간순으로 펼쳐진다. 처음 하와이에 발을 내딛고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을 울린 사연부터 중고차를 사면서 고생한 이야기는 왠지 전혀 낯설지 않다. 숙소 주인이 운 사연은 조금 특이하기는 하다. 시끄러운 손님들 때문에 숙박업 허가가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는 남 눈치 보면서 최대한 조용히 싸우는 두 부부의 모습이다.

 

오래 탄 중고차 중고 BMW를 산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차는 주행거리와 출시연도를 무시할 수 없다. 포틀랜드에서 차 없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면 이 섬은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휴양지이고, 섬이다 보니 물가도 결코 싸지 않다. 짧은 괌 여행의 경험에 의하면 차 없이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차를 사고 난 후 고장의 연속이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오래 탈 차가 아니다 보니 중요한 것만 고치고 탄다면 문제없다. 초기 수리비용을 좀 낸 이 부부는 이 차를 잘 타고 다닌다.

 

이 체류기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보디보드다. 이 부부의 보디보드 사랑은 지극하다. 파도 좋은 하와이에서 이 부부는 이 스포츠를 아주 즐긴다. 어떤 순간에는 죽을지 모른다는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좋으 파도를 타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곳곳에 묻어난다. 특히 우일의 열정은 대단하다. 방구석 인간이었다고 하는데 바뀌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들은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귄다. 바다에서, 훌라춤 교실에서. 물론 이들 대부분은 저자인 선경의 친구들이다. 저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잠시 우일의 시선이 담기는 순간은 200여 컷의 일러스트다. 이 일러스트가 은근히 재밌다.

 

체류 기간이 늘어나고,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들로 이야기가 채워져 있다. 일상 속에서 편견이 바로 잡히고, 사소한 실수를 하고, 우정을 맺는 과정들이 에세이 곳곳에 나온다. 인터넷 세상에 살다 보니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도 실물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잠시 머물다 갈 생각에 짐을 더 늘이지 말아야 하는데 우일은 알로하셔츠에 빠졌다. 그런데 이 셔츠의 유래가 재밌다. 현지인들이 만든 게 아니다. 일본의 원단, 중국인의 도안, 관광객들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옛날 일본 조폭 영화에 이 알로하셔츠가 자주 나왔던 것을 기억하기에 이 유래에 공감했다.

 

많이 공감하는 부분은 우일의 수집벽이다. 나도 있으니까. 보디보드를 타러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고, 천정에서 썰겨 같은 것이 떨어져도 살아가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엄마인 선경이 딸의 노브라를 걱정하는 모습에 얼마 전 자살한 설리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의 경직성과 시선강간이란 표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딸이 유학을 떠난 후 상실감을 어깨 통증과 연결시킨 부분에서 감탄을 하다가 한의사가 오십견이라고 했을 때 실실 웃었다. 미국 의료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말하는 대목은 미국 보험 필수로 들린다. 마지막에 해변에 플라스틱들이 처리되지 않은 채 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남의 일같지 않다. 그들이 포틀랜드에 있을 때 오지 않은 가족과 친구들이 하와이에 있으니 오는 것을 보고 괜히 비틀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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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영화 - 지옥에서 돌아온 저세상 영화 리뷰 웹툰 부기영화 1
급소가격 지음, 여빛 그림 / 씨큐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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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웹툰이다. 이 콤비의 웹툰을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최근 몇 년 동안 잘 보지 않게 되면서 이런 정보에도 조금 멀어졌다. 한때는 영화광처럼 본 적도 있었다. 영화 기자의 도움으로 시사회에 참석해 하루 두 편 이상 본 적도 있었다. 영화 카페 시사회에 당첨되어 열심히 감상평을 쓴 것이 언제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 년에 수백 편을 본 것은 확실하다. 그 시절이 끝나고 책으로 넘어왔지만 몇 년 동안 영화도 가능한 많이 보려고 했다. 그런 시절이 끝난 후 이 책에서 다른 영화 열 편 중 끝까지 다 본 영화는 겨우 세 편이다. ~ 조금 참담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영화 세 편은 <인터스텔라>, <에일리언>,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이다. <Wall-E>는 뒷부분만 봤다. <테이큰 3>의 경우는 2편까지 보고난 뒤 왠지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 <출발 비디오여행>같은 프로그램에서 한 번씩 소개받은 작품들이다. 마지막 아홉 번째, 열 번째는 제외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고 온 직장 후배는 욕했다. 진짜 욕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후배 아내가 샀고, 회사 여직원도 샀다. 처음 이 소설에 대해 몰랐을 때 여성의 심리를 잘 다룬 멋진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여자의 성 욕망을 표현한 로맨스였다. 만약 소설처럼, 영화처럼 따라하면 아주 화를 입는다. 거울 보면 알 수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아주 충격적이다. 봐야할 작품이지만 볼 때와 보고 난 후의 느낌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멋지고 훌륭한 영화지만 이런 과거와 현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있다. 한국도 이와 비슷한 현실이 있지 않았던가. 너무 사실적인 묘사가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만들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저자가 관람하지 말고 목격하라고 한 것은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의미다.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은 비극과 학살이 잊혀지고 왜곡되었던가. 일본 우익은 위안부를 부인하고 있고, 북유럽의 신나치들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 어쩌면 이 웹툰책에서 얻은 최고의 성과다.

 

보지 않았지만 내용을 알고 있는 네 편 이야기를 하자. <테이큰 3>는 무서운 아빠 이야기고, <HER>은 인간의 외로움을 다룬다. <Wall-E>는 로봇의 사랑과 인류의 우주 방랑 종식기다. <그래비티>는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봐야할 작품이라고 하니 볼 기약 없다. 이 네 편의 영화들은 인터넷 짤로 참 많이 돌아다닌다.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사람들 중에 테이큰의 아빠, 옆집 아저씨 등의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도시괴담처럼 흘러다닌다. <HER>은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주저하게 되는데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듣고, 아니 보고 싶다. 스칼렛 요한슨을 볼 때면 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가 떠오르는데 목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본 세 편 중 가장 어려운 이야기는 역시 <인터스텔라>. 수많은 SF소설을 읽었지만 아직 중력과 시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 등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하면 앞부분을 보면서 졸았다. 시간, 속도, 중력 등의 과학 이야기는 주인공의 고난과 화려한 영상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이해해서 많이 본 것은 아니다. 케이블에서 재방송할 때 마지막 장면을 다시 봤는데 먹먹함이 그대로다. 거대한 행성에서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앤 헤서웨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에어리언> 시리즈는 너무 유명하다. 이 중에서 두 편 정도 극장에서 봤는데 아주 긴장하면서 봤다. 이 영화의 짤도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가. 각각의 영화가 분위기도 내용도 다른데 4편은 너무 나갔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 어떤 위험도 무시한다. 이 웹툰을 보면서 3편의 마지막 장면은 <터미네이터 2>가 떠올랐다. 다시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나오는데 이 웹툰 작가는 어떻게 이 시리를 표현할지 궁금하다. 아마 뒤로 가면서 억지로 캐릭터를 이어가는 이 시리즈를 결코 좋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괜히 <에이리언> 시리즈에 늙은 시고니 위버가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재밌게 본 영화다. 반복되는 상황을 그린 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사랑의 블랙홀>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SF 액션을 다룬다. 죽으면 다시 어떤 시점에 다시 살아나는데 이 경험치가 반복되면서 외계인의 침공을 무찌른다는 설정이다. 볼거리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는데 마지막 장면은 조금 아쉬웠다. 원작이 일본 소설인데 언젠가 읽고 싶다. 원작과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은근히 같은 시간대에 갇힌 사람들을 다룬 소설 등이 많은데 재밌는 작품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겨우 열 편으로 끝났는데 계속 연재중인 모양이다. 시간 내 찾아가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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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갇힌 소년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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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의 대표작인 <기억 전달자>를 집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놓은 것은 확실한 듯한데 말이다. 처조카가 <기억 전달자>의 원서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그러다 작가의 성장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정보를 보았다. <기억 전달자>는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언젠가 읽겠지만 이번 소설은 과연 그럴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최근까지 읽었던 자극적인 소설들에 비해 너무 평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예상한 장면 하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있지만 말이다.

 

1987년 6월 여의사로 오랜 세월을 보낸 캐티가 자신의 집 근처에 있었던 어사일럼을 보고 옛 기억을 떠올린다. 최근에 읽은 책에 의하면 이 어사일럼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이 시설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미래가 사라지는 일이다. 작가는 이 공간을 다루지 않고,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시간은 1910년 9월부터 1911년 10월까지다. 이야기는 월 단위로 펼쳐지는데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잘 묻어난다. 어쩌면 이 시대는 그런 순수함이 지금보다 훨씬 풍부했던 시기였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1911년에 찍은 한 장의 소년 사진에서 이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한다. 그 사진에서 아이가 정신적 충격을 경험했거나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혼이 난 상처받은 아이란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반론도 할 수 있지만 작가가 평범한 시골의 풍경과 삶을 그려내면서 반전처럼 펼친 이야기는 이 인상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복원했는데 어떤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물론 제분소가 폭발한 이야기에서는 장르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부작용이 작용하기는 했다.

 

캐티는 여의사가 되고 싶어 의사인 아빠를 가끔 따라 다닌다. 그녀의 집에 가정부로 페기가 들어오는데 페기의 동생 제이콥이 자폐 성향이 두드러지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이콥은 동물들을 아주 잘 다루고 돌본다. 이런 제이콥에게 캐티는 관심이 있고, 작은 관계를 이어간다. 제이콥에 대한 아빠의 설명을 보면서 이 시절에 이런 자상하고 분별력 있는 아빠가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아빠 덕분에 캐티는 제이콥을 두려워하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제이콥과의 작은 우정도 그녀 집에 있는 두 마리의 말이 없었다면 생길 수 없었다. 나중에 그가 캐티에게 작은 고양이 선물까지 주지 않는가.

 

아이의 성장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갑자기 부쩍 크게 만들기도 한다. 이 소설 속 마지막 장면은 그런 역할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소년에게 일어난 일과 캐티가 이해하는 일은 같을 수 있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다르다. 침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소년의 기억이 손자들의 어사일럼 시설로부터 되살아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작가는 할머니의 미래를 알려주면서도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숨긴 채 평범한 일상으로 이야기를 채우다 반전을 벌인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를 하나 꼽으라면 ‘그 후 이야기’들이다. 간단한 후일담은 과거를 회상하는 설정이기에 가능했겠지만 던져놓은 이야기의 답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잔잔하고 밋밋하지만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나름의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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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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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노인이 한 살 더 먹고 돌아왔다. 이번 이야기의 시작은 발리다. 훔친 돈으로 발리의 호텔에서 친구인 사기꾼 율리우스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다. 호텔 지배인의 입장에서 그들은 VIP 고객이다. 최소한 그들의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알란은 이 지배인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기계 하나를 얻는다. 태블릿이다. 이 기계는 알란에게 세상의 온갖 정보를 전달해준다. 율리우스는 곧 101세가 될 알란을 위해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거대한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다. 벌써 불안하지 않는가. 맞다. 이 열기구가 우연한 실수가 겹치면서 두 노인만 태우고 하늘을 날아간다. 이때부터 새로운 모험이 펼쳐진다.

 

전작이 과거 역사 속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현재 역사를 다룬다. 당연히 등장인물들은 현재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다. 먼저 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북한의 김정은이다. 지금도 얼마나 열심히 셰계를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가. 알란과 율리우스가 탄 열기구가 인도양 어딘가에 추락하고 구조 신호를 보냈는데 이것을 본 배의 국적이 북한이다. 이 배는 농축 우라늄 4킬로그램을 몰래 실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알란은 자신을 핵 전문가로 소개한다. 이전에 그가 핵폭탄 개발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핵 전문가가 필요했던 북한은 핵폭탄만큼 위험할 수도 있는 노인과 엮인다.

 

북한에 도착한 알란 일행이 보여준 활약은 극도로 폐쇄적이고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국가의 허점을 파고든다. 여기에 김정은 초대한 스웨덴 외무장관이 오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한다. 물론 농축 우라늄 4킬로그램은 당연히 들고 간다. 뉴욕에서 잠시 트럼프와 만나 작은 해프닝을 만든 후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빈털터리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에 소질 없는 여인을 만난다. 잠시 그녀와 함께 하면서 주문용 관을 만들어 돈을 벌지만 잘못된 배달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핵이 아니라 북유럽의 인종차별 문제가 전면에서 다루어진다. 인종차별주의자가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또 다른 모험이 시작된다.

 

현실 역사 속에 뛰어든 알란 일행은 자신들이 의도한 행동이 어떤 문제를 불러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의 표현처럼 알란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으면서 문제들과 만났을 뿐이다. 101살이나 먹은 노인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 어떤 위협과 어려움에도 그는 결코 겁을 먹지 않는다. 대범하게 자연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가 만난 문제와 그의 대처방식이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바로 김정은, 트럼프, 마르고트 발스트룀, 앙겔라 메르켈, 푸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작처럼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가는 곳마다 사건이 벌어진다. 작가 특유의 풍자와 유머는 여전하다. 정치인과 국가와 사건들에 대한 그의 풍자와 비평은 어떤 부분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지만 유쾌하고 세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이 소설이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가 트럼프의 당선과 가짜 뉴스의 이면에 푸틴 등이 있다는 것인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할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다음 모험을 기대할 것이다. 누가 말한 것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 아니 사건도 많지 않은가. 점점 더 세계가 우경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하얀 아스파라거스가 실제 있다. 한 번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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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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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문학상 수상작들을 많이 읽지 않았다. 사실 <혼불>이란 장편도 읽지 않았고, 그 작품도 잘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문학상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문학상이 있고, 예전에는 무조건 읽었던 문학상도 있지만 이제는 점점 문학상에 지쳐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 수상작은 언제나 관심을 두게 된다. 사실 이 소설도 읽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기존 역사소설의 문법과 다르고, 호락호학 독자로 하여금 따라오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말에 더 고민되었다. 하지만 문학상 수상작이란 것과 고민하게 만드는 소개글 덕분에 오히려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이 소설을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조선 정조 시대에 끌고 들어오고, 그 그림 속 인물 중 한 명을 300년 전 장영실일 수 있다고 했을 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솔직히 말해 장영실이 나왔을 때는 왠 국뽕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김홍도를 이탈리아까지 보냈다는 말에는 할 말을 잃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설이 나를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가 없을 때다. 이 상상력의 원천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거기에 프리메이슨이란 존재도 같이 말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어떤 실체를 가지고 등장하지는 않는다. 뭐지?

 

정조 15년 1791년 천주교 신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한다.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들이다. 이들을 심문하는 최무영은 많은 갈등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묘사한 장면을 보면서 처음 서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하는 유학자의 고뇌가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윤지충의 집에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사본을 가지고 궁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조선의 화풍과 다른 그림이고,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기에 추측이 난무한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에 정조가 집착하고, 그림 속 인물과 구도 등을 풀어낼 때 조금 허황되게 들렸다. 조선의 한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모사도가 제대로 된 그림일 가능성과 유화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을 이 부분에서 나와 삐걱거렸다.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은 정약용과 장악원의 도향이란 소녀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둘의 로맨스로 포장할 수 있지만 도향이란 소녀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인물로 약용이 나온다. 약용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궁중 연향에서 비존재의 존재를 기록하는 모습은 과연 이 소설이 역사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향만 연주 가능하다는 변음이란 것도, 그녀가 심역사 속 불을 다스리는 소녀란 설정도 마찬가지다. 장면에 대한 훌륭한 묘사도 이런 설정들이 앞으로 나오는 순간 왠지 거부감이 생긴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나인데도 말이다.

 

초라니패 이야기에서 정여립을 다시 부활시켰다. 하지만 그의 이상과 사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다. <최후의 만찬> 속 이야기에 비해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이 패거리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과 그들의 무기에 담긴 힘은 또 하나의 재미다. 그들이 외치는 세상과 복수는 작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실제 그들이 무대에 등장했을 때 모습은 예상을 초월했다. 이들이 세상의 향기를 훔쳤다고 하는 부분에서 또 한 번 판타지의 향기를 느꼈다. 기존 역사 소설의 문법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만약 진중한 역사 소설을 좋아한다면 비추다.

 

내가 알고 있는 정조와 정약용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 이미지는 내가 임의로 만든 것이라 실제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천주교 탄압이나 순교에 집중하지 않은 것은 박수칠 부분이지만 왕의 반대편에 선 인물들 목소리는 간결한 문장과 세력으로만 나와 그 힘이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기존 역사 소설에 익숙해 이 소설의 작법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제된 생각과 관찰이 좋은 문장으로 풀려나와 음미하면서 읽으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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