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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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을 아주 강렬하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간결하고 거침없이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더 그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펼쳐지는 이야기와 그 속에 담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는 이 작가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주었다. 하지만 이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긴다.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현실 사회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담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 한 편의 영화 같은 속도로 달려간다. 그래서 속도감에 비해 읽는 독자들은 그 문제의식을 강하게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 좀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목차는 손, 발, 귀, 입, 눈, 머리, 심장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극중에서 하나씩 나타나는 신체의 일부분이자 카인의 증표이다. 광화문에서 잘린 손이 발견되었고, 이 손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정상훈의 아내에게 형사가 찾아간다. 그 아내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던 서희다. 아버지 김승철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서희가 보궐선거에 나간다. 여당의 표밭에서 당선된다. 서울 광역수사대 강력계 형사 주민서가 그녀를 찾아간 것은 손에 끼어진 반지 때문이다. CS그룹 직원 반지다. 이렇게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민서와 서희가 만나고,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뒤쫓는다.

 

서희는 상훈의 아내였지만 둘은 섹스가 없었다. 상훈의 양부와 서희 아버지가 주선한 만남으로 결혼했다. 이때 서희는 지도 교수와의 관계로 피폐해져 있었다. 3년의 명목상 부부 관계에서 이혼도 상훈이 원했고, 별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정말 법적인 부부였을 뿐이다. 그런데 서희가 국회의원이 되고, 민서가 찾아오면서 그의 행적이 중요해진다. 상훈은 회사 포상을 받은 후 휴직 상태다. CS그룹은 해능시에 거대한 재생에너지산업단지를 조성하려고 한다. 관과 합작 사업이다. 문제는 이 해능시 한 가운데 자리잡은 우성 조선소다.

 

서희의 아버지는 해능시의 재생에너지산업을 위한 입법 활동을 하던 중 돌아가셨다. 얼떨결에 국회의원이 된 그녀에게 아버지 친구들이 바란 것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 입법 활동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다른 국회의원이 초청한 자리에 가서 만난 인물이 CS그룹 직원이다. 그는 노골적으로 서희를 협박한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한국 최고 기업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어떤 그룹을 암시한다. 이미 금력으로 국가 공무원들을 자신의 손 아래 둔 그룹이다. 최근에 같이 읽고 있는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에서 이 부분을 잘 보여준다. 기업이 어떻게 언론과 사법, 행정부 등을 쥐고 흔드는지 말이다.

 

민서의 수사는 특유의 감과 탁월한 수사력으로 금방 핵심에 다가간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그의 수사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동떨어진 네 개의 사건을 하나로 엮어간다. 모두 CS그룹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있다. 이 수사에서 작가는 친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간결하게 풀어나간다. 관련자들을 빠르게 찾아가고, 특별히 수사 대상을 자극하지 않는다. 물러날 때를 잘 파악하고, 다른 방식으로 핵심에 다가간다. 그 사이에 살인 사건은 계속 이어진다. 필요한 순간에는 서희와도 연락을 한다.

 

작가는 한 장이 끝날 때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은 이야기를 넣는다. 어딘가에 기록된 것이 분명한데 출처가 나오지 않는다. 기업과 인간과 짐승과 사제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응답문은 각 장의 신체 부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 거대한 음모의 일각을 보여준다. 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힌 후에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메이드 인 강남>에도 나왔듯이 그들은 법 위에 존재한다. 공무원들은 국민이 아닌 금력의 공복이 된다. 자신들의 비리와 부패를 숨기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다. 언론과 공권력이 침묵한 자리를 대신하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허망하게 무너진다. 그렇게 두툼하지 않은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언젠가 한 번 보고 둘을 비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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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지음, 김지선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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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작은 마을 오름베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다. 인터넷 서점 목차를 보고 2009년 10월에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시간대에 벌어지는 것은 한 소녀가 오줌을 누다가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이 전부다. 분량으로 치면 몇 쪽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건이 8년이 지난 후 2017년 겨울에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 그것은 8년 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온 두 명의 전문가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 명은 발견된 후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한 명은 실종 상태다. 그리고 8년 전 시체를 발견한 말린이 현지 사정에 밝다는 이유로 조사단에 포함되었다.

 

만신창이 상태로 발견되었고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은 프로파일러 한네다. 그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마을 소년 제이크다. 제이크가 그녀를 발견할 당시 입은 옷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제이크가 여장하기를 좋아하고, 발견 당시 여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이크가 한네의 일기장을 발견했지만 전달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일기장은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담겨 있다. 제이크는 이 일기장을 읽으면서 한네의 솔직한 자기고백을 듣게 된다. 그녀의 불안과 두려움과 사랑이 담긴 글이다. 하지만 제이크는 이 일기장을 단숨에 읽지 않는다.

 

8년 전 사건 현장에서 다른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들의 노력으로 그녀의 정체가 밝혀진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오래 전 사라진 그녀가 어떻게 그곳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일까? 그녀는 8년 전 난민이었다. 그 당시 난민을 관리하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오름베리의 사람들 중 일부는 이 난민들에게 불만이 많다. 자신들의 삶에 비해 이들이 너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린과 안드레아스 사이에 벌어진 작은 논쟁은 이 난민 문제를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두 관점을 잘 보여준다. 8년 후 오름베리는 또 다른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지역민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내는 말린의 논리 속에서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이 실려있지만 경제가 몰락한 동네라면 이 주장이 더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 이야기는 말린과 제이크가 번갈아가면서 화자로 등장해 풀어낸다. 하지만 직접적이지 않지만 한네가 일기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다. 실제 마지막으로 가면 한네가 화자로 등장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다. 말린은 떠나온 동네에 다시 온 것이 불안하고, 제이크는 자신의 복장 성향이 알려질까 두렵고, 한네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무섭다. 눈과 숲으로 둘러쌓인 마을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파헤친다.

 

말린은 어릴 때 사고 때문에 오름베리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이 수사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기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삶과 현실은 오름베리로 오면서 충동한다. 잊고자 했던 일은 다시 되살아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선택한 남자를 자신도 모르게 밀어내는 행동을 한다. 잊기 위해 떠난 곳이지 싫어서 떠난 곳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그녀의 엄마다. 그녀의 선택에 의문을 계속 제기한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사실들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이 균열이 조금씩 벌어진다.

 

제이크는 엄마가 암으로 죽고,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의 희생자다. 한네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마을의 숨겨진 수많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이 정보는 어느 순간 힘으로 바뀐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벌어지는 일이지만 정보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단순히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모두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반전의 순간은 예상 외의 시간에 찾아온다. 이 사건이 그가 한 발 더 나아가게 만든다. 답답하고 황량한 이 마을에서 짧지만 통쾌한 순간은 이때가 처음이다. 거대하고 깊은 숲과 많은 눈이 만들어낼 아름다룬 풍경은 읽는 내내 사진이나 영화 등에서 본 풍경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예상한 것보다 가독성이 더 좋다. 긴박한 전개는 아니지만 세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풀어낸 이야기가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설마 했다. 그런데 그 설마가 맞았다. 삶에서 강한 확신과 믿음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8년 전 씨앗을 뿌린 사건이 태풍으로 변해 현재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 과학 수사가 큰 힘을 발휘하지만 이것을 발견하고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좋은 수사관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한네와 페테르는 좋은 콤비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계속 보여주는 것은 가족, 사랑, 사회적 관심 등이다. 작가가 안드레아스를 통해 말한 부분은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전쟁과 기아에서 도망쳐야 했던 게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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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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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롭고 재밌는 소설이다. 납치된 소녀의 잔혹 복수극을 보여주는데 그녀의 반격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차분하게 다룬다. 동시에 납치된 소녀들을 찾는 FBI 요원들이 등장한다. 이 둘은 교차하면서 진행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번역 제목처럼 복수하고, 기억하고, 복수하는 행동이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에 소녀의 복수는 무섭다. 소녀의 잔혹한 복수는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읽으면서 혹시 시리즈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덱스터>와 맞먹는 안티히어로로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소녀 리사 일랜드는 임신했다. 이 임신 소녀를 납치해 아이를 낳아 파는 조직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결코 평범하지 않는 리사가 이 조직에 납치된다. 리사는 학교에서 소시오패스로 불릴 정도로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필요에 따라 감정의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다. 여기에 아주 뛰어난 기억력과 응용력을 가지고 있다. 납치범들은 리사를 그냥 십대 임신 소녀로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월등한 이 악당들은 리사를 다루는데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끔찍한 실수다. 리사는 납치되는 순간부터 탈출과 반격을 준비한다. 그녀 주변에 있는 모든 일상적 도구들의 용도가 바뀐다. 소설을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위험한 도구들이 엄청 많다. 아이를 키우면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도구들이 주변에 늘려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도구들이 크고 작은 상처에 작용할 뿐이다. 그런데 이 도구들이 리사에게 간다면, 그녀의 응용력이 힘을 발휘한다면 다른 용도로 변경된다. 리사는 이것을 속이기 위해 아주 천천히 하나씩 준비한다. 예전에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에서 이미 이런 응용과학을 본 적 있지 않은가. 그리고 리사는 자신을 연약한 임산부로 연기한다. 납치범들의 작은 폭력에는 그냥 당하기만 한다. 이 모든 상황과 인물들을 복수하기 위해 기억하고 결국 복수한다. 무서운 소녀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은 FBI요원 로저 리우다. 그는 약간의 과잉기억증후군과 엄청난 시력을 가지고 있다. 동료 롤라는 후각이 아주 뛰어나다. 이 둘은 납치된 소녀의 흔적을 쫓는다. 리우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스스로 원해 실종 혹은 납치 사건 담당자가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그가 경험했던 일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란 점은 그를 더욱 힘들게 한다. 독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리사의 잔혹한 복수에 공감하게 된다. 가해자들이 형기를 마치면 풀려나는 현실에 비추어 피해자는 영원히 고통받는 상황을 대비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단순히 리사의 반격 준비만 다루지 않고 그녀의 삶을 파고들어 그녀가 감정이 없는 괴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리사는 특수부대 출신 아빠로부터 주짓수를 배웠고, 엄청난 성공률을 자랑하는 변호사 엄마를 두고 있다. 결코 평범한 부모들이 아니다. 임산부라는 사실이 육체적 반격을 힘들게 하지만 그녀가 가진 지식들은 아주 무서운 한 방을 가지고 있다. 읽으면서 어떤 반격을 할까 계속 궁금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치로 복수한다. 물론 아직 사회를 잘 모르고 경험이 부족한 것을 드러내지만 그 한 방은 아주 강렬하다. 또 독하기는 얼마나 독한가. 복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것을 실행에 옮긴다. 이 납치의 경험이 그녀의 육체마저 강인하게 훈련하게 만들었으니 어찌 다음 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테이큰>의 리암 리슨처럼,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한 엄마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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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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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모리아티의 작품과 자주 헷갈리는 작가가 한 명 있다. 조조 모예스다. 이 책 이전에 두 사람의 작품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왜 헷갈리는지 모르겠다. 아마 로맨스 소설가라고 착각하고, 자주 가는 카페에서 두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다 리안 모리아티가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는 글을 보고 뒤늦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워낙 두툼한 분량이라 <허즈번드 시크릿>을 사놓고 묵혀만 두었다. 물론 이 책의 분량은 그 책을 넘어선다. 요즘 왠지 두툼한 책이 부담스럽다. 책 읽을 시간이 점점 줄다보니 그런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장르상 추리 미스터리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전작들의 엄청난 성공을 떠올리면서 어떤 작품일까 기대도 많이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추리, 미스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과연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로맨스 소설이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약간의 스릴러 요소가 있는데 긴장감을 엄청나게 고조시키는 구조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단 한 명도 죽지 않는다. 스포일러인가? 소설 중 프랜시스의 말이 떠오른다.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홉 명의 남녀가 최고급 건강휴양지 평온의 집에 온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한때 로멘스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프랜시스, 복권 당첨으로 인생이 바뀐 벤과 제니퍼, 자살한 아들 때문에 고통받는 나폴레옹, 헤더 부부와 딸 조이, 험악한 외모를 가진 50대 중년남 토니, 네 딸의 엄마이자 자신이 뚱뚱하다 생각하는 카멜, 지나치게 잘 생긴 외모의 이혼 전문 변호사 라스까지 모두 아홉 명이다. 이들은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완벽한 타인들이다. 작가는 이 아홉 명과 휴양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섞고, 숨겨진 아픔과 비밀을 하나씩 밝히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느 순간 강하게 빠져든다.

 

로맨스 작가 프랜시스는 인터넷 연애사기를 당하고, 신작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최악의 서평에 상처를 받았다. 천성적으로 활발하고 순진한 그녀는 이 생각에 고통 받는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휴양지는 술과 인스턴트 음식 반입을 금지한다. 당연히 스마트폰도 사용불가다. 이런 환경 속에서 놓인 아홉 명은 묵언을 강요받고, 스무디 음식을 먹고, 필요하면 마사지를 받고, 태극권을 수련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평범한 휴식은 휴양지 원장인 마샤의 놀라운 계획에 의해 하나씩 깨어진다. 그녀는 휴양지에 들어온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고, 완벽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완벽히 새로운 경험이 위험하다는 점이다.

 

스릴러 요소가 강하게 부각되는 순간에도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그렇게 고조되지 않는 것은 프랜시스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에 크게 한 방한다. 프랜시스보다 나의 시선을 끈 인물은 나폴레옹 가족이다. 쌍둥이 중 아들 잭이 죽은 후 이 가족은 영원한 고통 속에 빠졌다. 전날까지 문제없었다고 생각하고, 아침에 쓰레기까지 버린 아들이 자살한 것이다. 이 가족 세 명은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한 부분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괴로워한다. 아빠는 알람에 바로 일어나지 않은 것을, 엄마는 천식 약의 부작용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을, 딸은 쌍둥이 오빠의 이상함을 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자책한다. 가족 내에서 억압된 감정은 대화와 감정의 교류가 사라진 채 함께 견디는 것으로 변한다. 자식을 잃는다는 상실감을 절절히 느낀다.

 

작가는 이렇게 아홉 명의 손님과 마샤 등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뒤흔들었고, 뒤흔들고 있는 사항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당연히 이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내가 스릴러라고 느끼지 못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결과들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유쾌하게, 무겁게, 서늘하게 엮어낸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이다. 왠지 모르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게 생각보다 빠르게 달려갈 것 같다. 아니면 신작이 나오면 위시리스트에 올릴지 모르겠다. 음, 읽을 책이 점점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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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새 스토리콜렉터 78
수재나 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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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읽자마자 이 작가의 독특한 문장에 빠졌다. 마지막 마침표를 읽기 전에는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기 어렵다. 단순한 문장 같은데 두 번 꼬였다고 해야 하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오독의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 문장 구조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더딘 속도로 읽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강한 액션이 있는 소설도 아니다. 일본하면 같이 떠오르는 야쿠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읽으면서 이것이 스릴러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루스 렌들을 말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된다.

 

제목 <지진 새>를 보고 내가 모르는 일본의 전설 같은 새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진을 알려주는 새라니 놀랍지 않은가. 외국인들이 일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을 읽는 것은 일본 소설을 자주 읽는 나에게 조금 낯선 시각으로 일본을 보게 만든다. 비록 작가가 오랜 기간 일본에 머물렀다고 해도 이국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일본어로 출간된 책이 아니고 모국어로 출간되었기에 이 낯선 문화에 대한 설명이 많이 들어있다. 릴리가 집을 구할 때나 음식의 어려움을 말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루시의 남친 데이지가 일하는 곳이 국수 가게인 것도 의도적인 것 같다.

 

신원미상의 여성 시체의 토막이 발견된다. 경찰은 이 시체의 주인을 릴리라고 추정한다. 당연히 경찰은 주변인들을 수사하고, 루시도 이미 만났다. 그런데 다시 경찰이 나타나 그녀를 경찰서로 데리고 간다. 경찰이 오기 전 그녀가 지진 새라고 부르는 새가 울었다. 취조실에서 벌어지는 작은 해프닝은 낯익다. 영어로 질문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과 어려움이 나오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그녀를 나중에 인식한다. 경찰들이 추궁하는 질문은 릴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루시고, 루시가 릴리와 다투었고, 조금 있다가 그녀를 뒤따라갔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아닌가.

 

작가는 이 취조실에서 루시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형사와 대화하는 와중에 그녀가 처음 릴리를 만났던 상황이나 일본인 연인 데이지를 만났던 상황을 되돌아본다. 어느 순간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오빠만 일곱 명 있었던 일이나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던 부모의 기대나 예상하지 못한 사고 등이 간결한 이야기 속에 풀려나온다.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어 떠난 그녀의 선택지에서 중국은 배워야 할 문자가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럼 한국은 하는 질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렇게 도착한 일본에서 그녀는 기술서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일본 친구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체류 기간 동안 많은 경험을 한다. 현악사중주의 일원이 되어 연습하고, 다도 모임에 가기도 한다. 사고와 분위기 때문에 그만 두게 된다. 이런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인물이 빗속에서 사진을 찍던 데이지다. 그와 만나 금방 연인이 된다. 처음에는 그녀의 외모 설명이 없었지만 릴리가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묘사가 나온다. 이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릴리와 만나고, 데이지와 사랑을 나누고, 데이지의 사진 속에서 옛 연인 사치의 존재에 빠져 집착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녀의 심리 묘사는 계속 바뀐다. 특히 릴리에 대한 회상은 더욱 그렇다.

 

일상, 만남, 사랑, 여행 등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이 소설이 스릴러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살인자는 루시라는 의도된 길을 따라간다. 작가는 자신과 대비되는 릴리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연인 사이가 틀어질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이 가능성이다. 외국 독자라면 낯선 일본 문화가 더 흥미로울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 뻔한 관계가 어디서 엇나갈까 하는 부분이 더 흥미로웠다. 실제 그 장면이 일어났을 때보다 루시가 받은 충격에 더 놀랐다. 이때의 감정을 풀어내는 문장은 앞부분과 닮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일상에서, 사건 속으로, 심리 묘사 등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주 훌륭한 구성이며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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