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머린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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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4년 일본에서 발간된 <칠드런>의 후속작이다. 솔직히 말해 <칠드런>을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한참 일본 소설들을 읽고 있던 시기고, 몇몇 작가의 작품들을 뒤섞어 읽던 시기라 더욱 그렇다. 저질 기억력 탓도 있겠지만 아마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생각한다. 책은 책장 어딘가 분명히 있을 테지만.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니 아직 읽지 않았지만 집에 모셔둔 작품들과 읽을까 고민하는 작품들이 무수히 나온다. 상당수의 작품들은 재간되어 나왔고, 나오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 당시 사지 못한 절판본을 살 수 있는 기회니까.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작품 속에 전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간극이 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바뀌었다고 하니 나중에 <칠드런>을 읽고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뭐 이렇게 말해놓고 읽지 않은 수많은 소설들을 생각하면 조금 머쓱하다. 전작이 진나이의 강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 중심이라면 이번에는 소년 범죄 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처음 도입부 등을 보면서 조금 혼란스러웠던 이야기가 끝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사실 최근에 이런 방식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한다. 여러 권을 함께 읽고, 한 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책 읽기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독서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이전에 한 번 들고 끝까지 읽던 시절과 분명히 다르다. 물론 이렇게 읽는다고 해서 이해를 잘 한 것은 아니다. 이 소설도 며칠 걸려 읽었는데 앞부분에서 조금 헤맸다. 혹시 읽었는지 과거를 돌아보고, 진나이라는 캐릭터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소년 범죄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연관성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둘은 별개의 사건이다. 무면허 난폭 운전으로 지나가던 사람을 차로 치어 죽인 다나오카 유마 사건이 중심이지만 ‘죽어’란 공포 메시지를 보내고 자수한 오야마다 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토는 이 두 소년 범죄의 담당이다. 등교거부학생인 오야마다 순에게서 자신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보낸 메시지는 모두 인터넷 등에서 누군가를 협박하거나 살해 등을 하겠다고 말한 사람들에게 갔다. 그가 어떻게 개인정보를 얻게 되었는지 말하는 부분은 개인정보보호의 허점을 잘 보여준다. 사회 곳곳에서 품어져 나오는 분노와 증오의 글들을 보면서 실행 가능성을 파악하는 그의 능력은 사실 대단하다. 실제 그가 예상한 일이 벌어지고, 이 사건을 예방하는데 무토와 진나이의 활약이 있었다. 뭐 그렇게 멋진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위험을 막은 것은 분명하다.

 

이야기의 핵심인 다나오카 유마가 행인을 치어죽인 사건은 유마의 과거와 연결된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었고, 초등학교 친구도 자신과 같은 소년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다. 무토는 이 사건을 파헤치면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말하고, 순간적인 감정을 토로한다. 작가는 이 소년 범죄를 무비판적으로 다루지 않고, 이 죄가 얼마나 한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진나이의 섬세하지 않은 말투에는 소년 범죄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쉽게 면죄부를 주지 않고 그 사건의 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문제가 되는 사건을 볼 때 평면적으로 보는 문제에 대한 반론이다. 쉽게 흥분하고 욕하지만 두 사람의 삶이 걸린 문제란 것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까지 생각이 더 나아가지 않는다.

 

소소한 이벤트와 과거 사건의 당사자가 등장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꼰다. 유마의 친구가 죽은 사건의 소년 범죄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고, 그 삶의 무게도 말한다. 진정한 반성이 얼마나 힘든지도. 물론 반성하지 않는 인물들도 있다. 현실적으로 모두 제대로 반성하면서 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까지 진나이가 관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나이는 무심한 듯, 귀찮은 듯, 황당한 듯 말하면서 누구보다 진한 근성과 열의를 가지고 있다.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다. 소년 범죄의 위험성과 잔혹성만 부각한 소설과는 차별점이 분명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소년 범죄를 생각하게 된다. 당연히 재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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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2 -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 강남 좌파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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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과 소득은 높으면서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강남 좌파라고 한다. 우파가 좌파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용어인데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외국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저자의 전작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를 읽지 않았다. 그 당시 왠지 모르게 이 단어에 거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읽었다면 강남 좌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생긴다. 그리고 저자도 말했듯이 얼마 전 ‘조국 사태’에서 강남 좌파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표출되었다. 우리가 조국 법무장관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 속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거대한 프레임 중 하나는 1%와 99%의 대결 구도다. 좀 더 나가면 10% 대 90% 정도일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20% 대 80% 사회로 보면서 우리 사회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강남은 아니지만 강북에 집이 있고 연봉도 1억인 지인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보고 싶어하지 않는 현실을 보고 과연 누가 중산층일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아마 고소득 전문직 정도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면 상위 몇 개 대기업 부장급 정도.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실제 부동산 정책에 어떤 결정을 할지는 많은 부분 알 수 있다.

 

저자가 가장 먼저 불평등을 말하면서 1% 대 99% 사회를 내세운 것은 위와 같은 한국인들의 왜곡되고 과장된 기준도 한몫한다. 노동 귀족에 대해 나 자신이 열심히 주변 사람들에게 변호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들은 이미 기득권 세력화되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상위 10%에 포함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는 충분히 10%에 포함된다. 이것을 대물림하기 위한 투표를 했다는 사실과 과반 이상이 찬성했다는 부분에서 노동 귀족이란 표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진보가 1% 비판에 집중하면서 노동 내부의 계급화를 놓치고 있는 부분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조국 사태를 단순히 진영 논리로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이다. 검찰 개혁이 지나치게 과잉대표돼 있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건들에서, 사법농단에서 우린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거나 자신의 조직에만 충성하는 것을 봤다.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동시에 놓고 본 것은 검찰이 어떻게 조국과 그 집안을 털었는가 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 검찰이 적폐 청산의 칼이 된 것에도 동의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조직 비리에 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봤다. “진영 논리에 열광할망정, 평등엔 무관심하다.”란 지적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보수 언론에서 청와대 고위직들이 강남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공격한 것도 이런 아픈 부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 실세들은 소위 386세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이들을 빼고 운동권을 말하기는 힘들다. “운동권이 거시적으론 권위주의 정권에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미시적으론 권위주의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다.”란 지적은 맞다. 우린 알게 모르게 나이와 직위의 권위를 내세운다. 시대의 효용이 끝났지만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그들이 위에 있을 때 진보는 보수화된다. 진보의 위선을 말할 때 나는 순간 뜨끔했다. 나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한 위선적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해당되는 것들이 몇 개 보이기 때문이다. 불공정함에 둔감한 것도, 알면서 눈을 깜는 것도 권위주의 사고와 관계있다.

 

강남 좌파를 존중해야지만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화는 곤란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진보의 우선적인 사명을 불평등 해소와 완화, 정치는 불평등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부분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이것을 한꺼번에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80% 계층 사람들이 정치에 더 많이 나서야 하지만 현재 정치 구조에서 이것은 쉽지 않다.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검찰총장과 앞으로 생겨야 할 공수처장의 임명을 대통령이 하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동의한다. 로스쿨이 또 다른 권력 세습이나 자기 조직 강화 등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진보 학자의 올바른 지적이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고 해도 진보 진영은 이것을 검토하고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86세대와 그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높은 벽은 이제 점점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어가고 있다. 읽으면서 내가 놓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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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크 에프 그래픽 컬렉션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에밀리 캐럴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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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할스 앤더슨의 원작을 그래픽노블로 만든 작품이다. 성폭행 당한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가는 여고생의 일상과 내면의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목처럼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그 상황을 말해야 하지만 말하지 못한 멜린다의 모습은 수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그것을 해내었을 때 삶이 또 어떻게 변하는지 이 그래픽노블은 잘 보여준다. 읽으면서 실어증에 걸린 것인가 하는 생각을 먼저 했지만 완전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의 관계로부터 멀어지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데 힘들 뿐이다. 소설을 찾아보니 어딘가 낯익은 표지가 보인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올라간 멜린다는 이전에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진다. 파티에서 그녀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신고하려고 한 것 때문에 오히려 왕따가 된다. 그들은 그녀를 경찰에 신고한 아이로 기억하지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사실 그녀 자신도 그 당시에는 이 성폭행을 크게 자각하지 못했다. 성폭행 당한 사실을 부모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작가는 왜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 사이가 멀어져 있고, 부모와 소원한 관계란 것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그녀가 부모와 더 멀어지게 만든다.

 

말하지 못하는 그녀는 많은 오해를 산다. 왕따의 원인이 된 경찰서에 전화한 애라는 소문이나 자신이 당한 일을 어릴 때 친구에게 용기 내어 전하지만 질투 탓이란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이런 일상은 그녀의 학교생활을 엉망으로 만든다. 전학 온 친구가 친한 척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좋은 클럽에 가입해서 인정받는 것이다. 멜린다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학내 상황을 알려주는 장면들을 보면 예전에 본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주류로 나가려고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 말이다.

 

멜린다를 성폭행한 남자 앤디가 다시 눈에 들어왔을 때 그녀가 느낀 공포와 두려움은 아주 강하다. “기억을 없앨 수 있다고 해도, 그 짐승은 내 안에 남아 나를 옥죄어 올 것이다.” 이 문장은 그녀의 심리 상태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자신만의 공간 속에 숨어 자신의 머릿속 생각들을 껴안고 있을 수 있다고 느끼며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어 한다. 그가 그녀의 곁에 오고, 머리카락을 만졌을 때 구토한 것은 그 날의 공포와 두려움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앤디를 조심하라고 화장실 벽에 글을 남겼는데 여기에 덧붙이는 글들도 그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공감하는 글들이다.

 

표지의 나무는 미술 수업 시간에 미술 선생이 준 소재다. 그녀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려고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본다. 집에서 잘린 나뭇가지를 보고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절망감과 고통을 작은 조형물로 표현하는데 상당히 섬뜩하다.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선생과 이야기하는 공간이 미술실이다.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글 등을 보면 이것이 그때만의 기억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계속 반복되는 아픔과 고통임을 말한다. 몸에 새겨진 아픔은 상처가 치유되면 사라지지만 마음에 새겨진 고통은 살아있는 동안 반복된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2차 피해자를 줄이는 것 정도일 것이다. 이것도 상당한 일이다.

 

이 그래픽노블에서 그녀가 소리치고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이 한 번 등장한다. 앤디가 그녀만의 공간에 들어와 다시 성폭행하려고 할 때다. 처음에는 공포에 짓눌리고 입도 뗄 수 없었지만 한 번 터진 목소리는 그녀 속에 갇혀 있던 두려움을 털어내고 그 폭행에 대항해 싸우는 힘과 용기를 준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녀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는 도망치고, 경찰에 전화했지만 말하지 못한 것을 이번에는 제대로 해낸다. 멋진 장면이지만 현실에서 과연 이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에 그녀가 현실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언젠가 소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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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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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놀란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만행 중 하나를 아주 잘 표현해낸 것이다. 전쟁 물자 핵심 중 하나인 석탄을 캐기 위해 어떻게 식민지 사람들을 모으고, 속이고, 억압하고, 폭행 등을 가했는지 작가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것은 이 소설의 주 무대인 전후 탄광을 다루기 위해서 필수적일 수 있지만 사실 일본인 광부만으로도 충분하다. 덕분에 우린 전쟁 당시 조선인들을 어떻게 강제로 탄광으로 끌고 가게 되었는지,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등을 일본 작가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첫 권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리즈 첫 권은 반갑다. 그리고 이 작품은 하야타라는 순진한 청년이 무시무시한 연쇄살인을 거치면서 어떻게 한 명의 탐정으로 성장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가 학도병으로 있다가 패전 후 탄광촌으로 오게 된 과정을 앞부분에 설명한다. 순진하게 탄광촌 악질 야마에 끌려갈 뻔한 그를 구해준 인물은 아야자토 마노루다. 한때 조선에서 광부를 모집한 이력이 있다. 그는 정남선이란 조선인을 속여 탄광에 데리고 온 적이 있다. 하야타를 구한 것도 이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인연으로 하야타는 아야자토가 일하는 탄광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초보가 탄광 갱도를 들어갔다 나오면서 느끼는 공포를 앞부분에 풀어놓는다. 실제 그가 이 탄광에 취직하는데 아야자토의 보증이 큰 역할을 했다. 현대화되고, 안전장치가 잘 된 탄광촌을 최근에 봤기에 이 시절 탄광촌이나 전쟁 당시 탄광촌의 환경은 무지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갱도에 묻히는 사고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지 않는가. 더 열악하고 안전에 소홀한 그 시절이라면 사고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실제 이런 안전장치들도 모두 돈이다. 식민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좋은 환경 속에서 일하게 만들 마음이 정부도 탄광회사도 없었다. 만약 한다고 해도 일본인들이 우선일 것이다. 이런 현실을 하야토는 몸으로 겪으면서 하나씩 알게 된다.

 

무수히 많은 신들이 살고 있는 일본에서 탄광촌이라고 모시는 신이 없을 리 없다. 그 중에서 검은 얼굴을 한 여우는 불길함을 의미한다. 실제 하야타의 동료 중 한 명이 이 여우 가면을 쓴 여자를 만났고, 다른 동료들은 이 여자를 이전에 만난 사람들이 사라진 사건을 이야기한다. 호러의 기반 중 하나인 마물을 이렇게 등장시킨다. 갇혀 있고, 덥고, 언제나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에게 이 소문은 은연중에 가슴 한곳에 자리 잡는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건이 생기고, 아야자토가 나오지 못하고,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조선인 출신 박씨가 집에서 금줄에 목맨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이 같은 날 벌어진 사건이다. 탄광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다보니 그 죽음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연쇄살인의 시작일 뿐이다.

 

처음부터 시신이 발견된 공간은 밀실이다. 안으로 문이 모두 잠겨 있다. 다른 죽음들도 마찬가지다. 시체가 늘어나고, 이 죽은 자들의 연관성이 드러나면서 자살이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런 밀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트릭을 깨트리는 것이다. 아마추어 탐정이 된 하야토가 세운 가설은 간단한 실험으로 실패한다. 사고 갱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야자토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에 탄광 측은 안전 등을 이유로 시간을 늦춘다. 이 늦춰진 시간이 그가 사건을 더 생각하고, 추리하고, 조사하는 시간을 갖게 만든다. 만주 건국대학 출신 엘리트에게 이 일은 딱 맞다. 그가 추리하고, 실패하고, 조사하고, 추리하는 과정 속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탐정으로 성장하는 그를 보게 된다.

 

이야기가 시작하고, 첫 사건이 벌어지면서 추리 애독자인 나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사건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나오면서 새로운 인물이 용의자가 되었다. 재미난 점은 마지막에 하야타가 용의자들에 대해 풀어낸 이야기가 내가 읽으면서 추리한 것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야타가 마물의 저주가 아닌 살인자로써 검은 얼굴의 여우라고 칭하는 부분은 그의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탄광촌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쌓이면서 그는 사실에 한 발 더 다가간다. 일종의 사회파 호러미스터리인데 이전보다 더 쉽게 이해되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겪은 아픔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리즈 다음 권에서 하야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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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질문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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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태어나고 자란 이 나라에서 내가 애국심을 느끼는 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동을 느끼게 만든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구조의 모순을 알게 되면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노도 결국 이 나라를 사랑하기에 생긴 감정이다. 어쩌면 이 감정은 교육에 의해 주입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아나키스트처럼 국가가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국가의 울타리가 없다면 개인은 너무 위험하고 무력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사회의 문제점들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고, 내가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생겼다.

 

오랜만에 조정래의 소설을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대하장편에는 손이 가지 않고 권수가 많아져도 잘 읽지 않는다. 그래도 책 욕심은 있어 사놓은 책들은 쌓여간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을 즈음 변호사하는 후배와 잠시 이 소설의 내용 중 법쪽 관련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대답은 조금 충격이었다. 거의 대부분 사실이란 것이다. 전관예우의 문제야 알고 있던 것이지만 그런 엄청난 수임료를 한 번에 받는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 이런 판사와 검사가 있는 법정이라면 과연 법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들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검찰들의 작태를 잘 알 수 있다. 사법 농단 사태는 또 어떤가. 한국에서 법과 정의는 따로 노는 것 같다.

 

작가는 기자,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대기업 미술관 큐레이터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기자 장우진은 읽으면서 자연스레 주진우 기자가 떠올랐다. 이름도 그렇지만 그가 탐사 보도한 내용들이 그렇다. 대기업 비자금을 파헤치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그와 그의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 회유와 협박이 들어왔는지 잘 보여준다. 아주 큰 금액이 주는 유혹은 잠시 사람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는다. 누가 이런 유혹에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겠는가. 재밌는 부분은 그가 조사하려고 한 많은 사건들이 적들의 방해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가 조사한 사건들은 기사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한국 사회의 부정, 부패, 비리 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회의원 윤현기는 보신이 철저한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늘 의식한다. 정치자금을 받지만 뒷탈이 날 돈은 먹지 않는다. 이것은 그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고, 이전에 그가 모신 국회의원이 알려준 보신책이다. 지역신문에 대필로 글을 기고하지만 나름 열심히 노력한다. 대필자 고석민의 말대로 알 때까지 열 번이고 읽는다. 이것이 그를 유식하게 보이게 만든다. 나중에 지역구에 가서도 그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국회의원 자리를 놓칠 생각이 없기에 꼬투리 잡힐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다. 이 단체가 그에 대한 나쁜 정보를 내놓으면 상대방 후보가 이를 이용해 그를 낙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오너가의 사위였다가 비자금 문제를 일으킨 김태범은 재벌들이 어떻게 비자금을 만드는지, 언론을 장악하는지 잘 보여준다. 언젠가 삼성에 충성을 맹세했던 수많은 언론사 임직원들이 있지 않았나. 비자금을 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란 사실은 예전에 김우중의 해외 비자금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한 번 드러났다. 삼성의 비자금을 사법부가 어떻게 면죄부를 주었는지 알기에 결코 낯설지 않다. 오너가 옆에서 사장단들이 어떻게 부를 쌓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재벌이 어떻게 한국의 부동산으로 거대한 부를 쌓았는지 잘 보여준다. 김태범이 새로운 재벌에 충성하면서 돈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내면이다.

 

미술관 큐레이터 임예지는 재벌들이 왜 미술품 등을 사는지 잘 보여준다. 재벌가의 미술관이 부의 증식과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은 이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국보급 유물을 둘러싼 소송에서 전관예우의 힘이 드러나는데 이것은 김태범의 이혼소송이나 재벌가 자손들의 사회문제를 덮는데도 아주 위력적이다. 나중에 임예지가 양심에 찔려하거나 조각가 등을 중개하면서 높은 중개수수료를 챙기는 모습은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이다. 시간 강사 고석민이 한국 대학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생계를 걱정하는 장면은 얼마 전 읽은 책과도 연결된다. 대필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의 모습은 씁쓸하고,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또 하나의 정치자금 모금이란 사실은 새로운 사실이다. 그들이 되지 않는 책을 내는 이유가 이것이라니.

 

실명과 차명을 오가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파헤치는 작업은 박수칠만 하다. 가독성도 좋아 잘 읽힌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문장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뭔가를 가르치려는 느낌이 든다. 스웨덴 정치나 파리 등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듯한 부분도 조금은 아쉽다. 마지막에 가서 풀어낸 이야기는 한국 관료 조직이 어떻게 재벌 등과 결탁하고 그들의 부를 불려주는지 잘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아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더 분노한다. 한국의 미래가 있는지 의문이다. 작가는 이 모든 문제를 풀 대안으로 시민단체 활성화를 이야기한다. 건전한 시민단체가 늘어나고, 국민들이 제대로 투표를 한다면 이 암울한 현실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희망을 말하지만 그 희망이 아직 가슴에 절실히 와 닿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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