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자매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의 평이 좋아 선택했다. ‘후속작’을 속편으로 읽은 나의 오독으로 전작과 이어지는 소설로 착각했다. 읽으면서 전작의 주인공은 언제 나오지 하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러다 전작과 관계없는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사 놓고 읽지 않은 전작으로 이 소설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두 작품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고, 가족이란 점이다. 물론 공간적 배경도 같은 미시간 주 어퍼 반도다. 미국 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이곳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그래도 읽는 데는 무리가 없다.


소설은 두 명의 시점을 번갈아 표현한다. 이 둘은 딸 레이첼과 엄마 제니다. 레이첼은 스스로 엄마를 총 쏴 죽였다고 생각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녀가 엄마를 죽인 것을 보고 아빠가 자살했다는 이미지를 계속 품고 있다. 그런데 경찰의 보고서는 이것과 다른 사실을 알려준다. 열한 살 여자 아이가 매그넘을 쐈다면 그 반동으로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그녀가 쐈다고 생각한 총상과 다른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럼 왜 그녀는 이런 생각에 빠져 그 동안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언니와 이모는 왜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공식 자료를 통해 기억의 왜곡을 깨들은 그녀는 집으로 돌아간다.


옆집 아이가 수영장에 빠져 죽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다이애나가 거짓말을 하나 했다. 아이는 TV를 보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물에 젖은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혹시 하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해 시아버지의 산속 저택에서 살자고 한다. 자연림 속에서 두 사람이 생물학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리고 다이애나가 어떤 아이인지 알려주는 상황을 보여준다. 결코 평범하지 않다. 거짓말을 표정 변화 없이 한다. 물론 아직 아이라 엄마는 금방 그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엄마라는 사실이 이 아이의 결함을 계속 눈감게 한다.


정신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레이첼은 자신에게 반이 상속된 땅의 개발 소식을 본다. 언니가 몰래 땅을 팔 모양이다. 자신이 정신병원에 있으니 이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숨긴 채 집에 몰래 숨는다. 왜 그렇지? 이 의문은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어릴 때 유일한 놀이 친구였던 언니와 그녀는 이제 적이 되어 대립한다. 이 이유는 그녀의 기억을 통해 하나씩 밝혀지고, 엄마 제니의 기억 속에서 보완된다. 이 둘의 대결은 격렬하게 싸우기 보다는 숨고, 찾고, 도망가는 상황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언니 다이애나다.


사랑하는 딸의 이상을 깨달은 엄마는 현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숲 속에서 그들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의사를 만나 딸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상적인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다. 정서적 공감은 없고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호기심 때문에 동생 레이첼을 베개로 질식시키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 둘만 놓아두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둘째 딸을 지키면서 첫째 딸을 관찰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바로 레이첼이다. 그녀에게는 언니가 유일한 친구다.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이자 보호자인 엄마 제니가 보기엔 무시무시한 상황이 여러 번 일어난다. 제니의 글을 읽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계속 긴장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누가 진짜 살인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누가 진짜 살인자인지 알아채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교차하면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사실을 하나씩 깨닫게 되는 지금의 레이첼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족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이 살인이란 사회적 범죄로 이어지면 다르다. 만약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살인이 있다면 어떨까? 방대한 자연림은 이런 살인을 숨기기엔 최적의 장소다. 이런 생각들이 레이첼의 기억과 현실을 읽으면서 멈추지 않았다. 얼핏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긴장감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리스타 탐정 마환 - 평생도의 비밀
양시명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전작 <커피유령과 바리스타 탐정>을 재밌게 읽었다. 계간지 <미스터리>에 연재된 것을 모은 책이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장편은 어떨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이번에 장편이 나왔다. 먼저 반가웠다. 전작을 읽으면서 내가 품고 있던 의문 두 가지가 이번에 풀린다. 하나는 커피유령 할의 과거고, 다른 하나는 바리스타 탐정 환의 가정사다. 이번 이야기 속에 이 둘의 이야기는 엮이고 꼬인다, 부성과 아들의 감정이 충돌하고 뒤틀린다. 그리고 이런 부성을 담은 민화 평생도가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준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는데 작은 의문도 있다.


이 평생도는 보통의 평생도와 다르다. 아무리 민화라고 해도 그림은 돈 있는 사람의 소유물이다. 한 장짜리 간단한 민화라면 민초가 가질 수 있겠지만 병풍으로 만들 정도라면 ‘감히’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노비의 평생도라니. 백정 아비 말복이 자신의 신분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떠난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화원에게 노비까지 되면서 부탁했다. 화원은 아비를 노비로 굴릴 뿐 그림을 그려줄 마음이 없다. 하지만 아비의 간절한 염원은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기술에 지극한 정성을 담아 화폭으로 옮겼다. 걸작이다. 이 평생도를 탐낸 화원에 의해 노비는 쫓겨난다. 그리고 이 평생도는 하나의 전설로 만들어져 국내외를 떠돈다.


이런 평생도를 탐내는 사람들은 많다. 마환에게 이 노비의 평생도를 찾아달라고 온 신창성도 마찬가지다. 거액의 의뢰금과 평생도에 대하 호기심에 마환은 이 일을 시작한다. 그에게 그림을 판 사람을 찾아가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소개 받는다. 소개와 조사를 통해 이 그림이 그려진 영월에까지 가게 된다. 영월은 할의 고향이다. 할은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커피 맛도 못 느끼지만 전생의 기억이 환으로 하여금 커피숍을 열게 했다. 이때 생긴 몇 가지 사건들이 전작의 단편들이고, 마환이 바리스타 탐정으로 불리게 된 원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과 환이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 할이 차를 두려워하면서 같이 외출할 경우 생길 환이 사고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평생도가 가졌다고 하는 영험한 기운은 많은 소유자를 매혹시켰다. 이 그림의 기운을 행복하게 누리면 그만이지만 욕심은 멈추지를 못한다. 의뢰자도, 이 그림을 몰래 훔쳐간 사람도, 살인자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이 그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인물은 그 당시 영월을 찾아온 일본 여인의 후손이다. 도쿄는 환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 마선명 때문이다. 중간중간 흘러나온 환의 과거를 읽다 보면 평생도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다.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다음 권이 나온다면 일본과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면 나의 바람일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세 남자의 이야기와 평생도를 둘러싼 탐욕이 뒤섞여 잘 흘러간다. 그 세 남자는 노비 말복과 할과 환이다. 환이 노비의 평생도를 추적하는 과정은 그렇게 극적이거나 긴장감이 흘러넘칠 정도는 아니다. 살인이 일어나지만 이 살인을 적극적으로 추적하지도 않는다. 그의 관심은 평생도에 있다. 결국에는 그 범인을 잡지만 바리스타 탐정의 추리가 빛나면서 생긴 결과가 아니다.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더 공을 들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개인의 취향이라고 할까. 그리고 마선명의 속내가 이번 소설에서 나오는데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다. 이 둘의 화해가 앞으로 펼쳐질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소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할의 활약이 이번에는 적었는데 더 많아지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물섬 - 영웅들의 섬
신도 준조 지음, 이규원 옮김 / 양철북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보물섬하면 가장 먼저 어릴 때 읽었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이 떠오른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 기억도 희미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영향 때문인지 이 소설도 읽으면서 보물에 대한 생각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나오키상 수상작과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재미란 측면에서 나오키상 수상작은 늘 믿을 수 있는 상이지 않은가. 오키나와는 몇 년 전부터 계속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상황 등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둔 곳이다. 그러다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은 이 섬들을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로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1952년부터 1972년까지 20년의 긴 세월 동안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세 남녀를 묶어주는 인물은 코자에서 영웅으로 불렸던 온짱이다. 온짱은 미군기지에서 물자를 훔쳐내는 일을 한다. 이들을 센카아기야라고 부른다. 이 패거리는 극동 최대의 가데나 미 공군기지를 털러 간다. 늘 최상의 ‘전과’를 올렸던 그가 이번에는 잠입에 실패한다. 어디서 실패한 것일까? 무리들은 흩어져 달아난다. 총을 맞아 죽는 센카아기야도 있다. 이 혼란 속에 구스쿠는 탈출한다. 밖에서 온짱을 기다리던 야마코를 만나 달아난다. 온짱의 동생 레이는 기절한 채 체포되고, 온짱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구스쿠, 레이, 야마코 등은 온짱의 흔적은 쫓는다.


온짱은 어디에 갔을까? 시체라도 있다면 포기하겠지만 시체조차 없다. 그러다 탈옥한 레이에게서 밀무역단에 협박당한 이야기를 듣는다. 코자의 영웅으로 불리지만 밀무역단을 상대할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이 밀무역단의 한 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 이 시절 감옥은 수용인원을 훨씬 초과한 상태로 운영 중이다. 정치범, 사상범, 잡범, 살인범 등이 함께 갇혀 있다. 이것이 나중에 폭동을 불러오고, 이 폭동을 둘러싸고 파벌이 나누어진다. 이 폭동을 시점으로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이 바뀐다. 구스쿠는 경찰로, 레이는 폭력배로.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이 극단의 조직은 현실의 다른 부분을 엿보게 한다.


작가는 오키나와의 역사적 사실들을 곳곳에 배치해두고, 그 속에서 세 남녀가 마주한 비참한 현실을 풀어낸다. 신탁통치 중인 오키나와는 미국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고, 수많은 토지를 미국 부대에 빼앗겼다. 점령지 군인들처럼 외박 나온 군인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만행과 참사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폭행, 강간, 살인, 음주운전으로 인한 살해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읽다 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만행도 문제지만 처벌은 더 문제다. 사고 친 미군 병사를 헌병이 데리고 가면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 그것이 살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과 분노가 엮이고 꼬인다. 여기서 조폭들도 패가 갈린다.


형사가 된 구스쿠에게 미군 정보원 어빈이 접근하다. 구스쿠는 그들의 정보원이 된다. 그 날 밤 온짱의 정보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찰 업무도 바쁜데 어빈의 일도 처리해야 한다. 물론 어빈이 그를 주시한 것은 그의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조폭이 된 레이는 또 다른 단서를 조사 중이다. 그런데 이것이 두목의 귀에 들어간다. 경고를 받는다. 이때 그를 찾아온 감옥 동료가 있다. 그처럼 강건파였던 다이라다. 그는 나하파 두목의 요청으로 미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을 한다. 구스쿠가 어빈을 만났을 때 이런 무리가 그들을 습격하려고 한 적이 있다. 미군에 대한 분노는 이런 식으로도 표출된다.


야마코는 열심히 공부해 학교 선생이 된다.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유창하게 학생을 이끌지 못한다. 길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하나의 강박에서 벗어난다. 이때 한 소년을 만난다. 바로 혼혈인 우타다. 우타는 말을 하지 않고, 레이를 좇아다닌다. 구스쿠가 해결한 살인 사건의 첫 발견자이기도 하고, 이 세 명의 남녀와 이어진 소년이다. 야마코가 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어느 날 미군 비행기가 학교에 추락하면서 아주 끔찍한 일이 생긴다. 미군은 작은 배상을 하지만 사죄하지는 않는다. 이 일이 야마코로 하여금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렇게 세 남녀는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한 영웅의 흔적을 찾고, 좇는 이들의 삶은 현실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경찰, 조폭, 선생 등으로 삶이 나누어져 있지만 그들 마음속에 온짱은 아직도 살아 있다. 불행한 오키나와의 현실은 숨겨진 정보와 은밀한 정치적 거래와 일상적인 사건 사고로 뒤덮여 있다. 전쟁 당시 본토의 특고 경찰이 미군의 하수인이 되어 오키나와인들을 몰래 고문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기시감처럼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마코가 속한 단체가 주장하는 본토 합병론은 얼핏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키나와가 본토에 의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소설 앞부분에 미군을 욕하면서 본토를 빼놓아 의아했는데 역사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의 사고는 그 원인까지 알기는 무리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나의 지식을 새롭게 만들었고, 이 세 남녀의 삶과 온짱의 미스터리는 읽는 재미를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작가는 무정부주의자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 시골에 내려가 목동과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부터 그는 산에 관심을 둔 것 같다.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책 곳곳에서 군주제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의 급진적인 사상은 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산을 신성시하고 숭배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모습 등은 잘 포착해서 들려준다. 처음에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생각보다 더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간결하지만 생략된 부분이 있어 방심하면 문맥을 놓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때마다 앞으로 돌아가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산과 그곳에 사는 동식물과 광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대목은 읽으면서 산에 대한 에세이인지 광물에 대한 에세이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낯선 명사와 단어들이 집중력을 방해한다. 얼마 전에 읽은 <언더랜드>에서도 이런 경험을 했다. 솔직히 돌의 결정이나 화석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숲으로 들어가고, 산의 풍경과 산사태 등으로 이어지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르다. 벌목과 산사태의 관계가 나오고, 조그만 산골마을은 벌목으로 산사태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제방을 쌓기엔 자본이 너무 부족하다. 한 에피소드에서 눈에 파묻힌 산골동네가 며칠 후 이웃의 노력으로 구출된 이야기가 나온다.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산사태 등을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높은 산은 만년설이 쌓여 있다. 날이 더워지면 빙하가 녹는다. 이 녹은 물이 작은 내를 타고 내려가면서 많은 일들을 한다. 우리가 무심코 보고 지나간 수많은 초목들이 높이에 따라, 지리적 환경에 따라 바뀐다. 기후는 또 어떤가. 밑에서 볼 때는 구름이 산을 뒤덮고 있지만 높은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구름만 내려다보일 뿐이다. 산을 내려가면서 비 등을 맞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왜?’라는 의문이 들지만 계속 정상에 머물 수는 없다. 해의 운행 방향에 따라 자라는 나무의 품종이 달라지는 부분도 우리가 쉽게 놓치는 풍경이다. 산에 대한 애정과 세심한 관찰과 공부가 함께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는 정보다.


산에 대한 인간의 숭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백두산을 성산으로 부르지 않는가. 작가는 중국의 태산, 히말라야의 높은 산들과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을 이야기한다. 특히 올림포스 산에 대한 부분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부분인데 기억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종교와 인간의 숭배에 대한 부분이기도 하다. 권력은 신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든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들 중 하나가 정복욕이고, 그 결과 중 하나가 피 튀기는 전쟁이다. 그의 말처럼 산이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데 탐욕이 그 산을 파헤치고 헤집는다.


읽으면서 의문을 품게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늑대 이야기다. 최근 연구나 관찰에 의하면 늑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왜곡되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비열하고 못된, 피비린내 나는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늑대”란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럽 동화 속에서 자주 본 모습이다. 작가는 또 인간이 특이하게 비열하다고 말한다. 육식동물에 감탄하며 찬양한다고. 대표적으로 독수리를 말한다. 목동과 독수리가 싸워 수리종이 희귀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19세기 말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려한 표지가 먼저 시선을 끌었고, 지하 도시, 핵폐기물 처리시설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선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연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이 6년간의 집필로 완성한 이야기는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나의 예상은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둘러싼 문제들에 집중해 사회 문제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문제점보다 현실을 보여주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지만 이 부분을 파고들어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가 놓친 것일까?


화려한 표지와 달리 책 속의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인터넷 서점의 사진을 보고, 그 이미지가 명확해진 것도 있다. 참고 자료에 대한 정보를 책속에 표기해 놓았는데 인터넷주소를 그대로 치기도 쉽지 않다. QR코드를 넣어두었다면 좀더 쉽게 찾아보지 않았을까? 점점 게을러지는 나의 모습이 반영된 표현이다. 이런 책의 인상과 달리 내용은 놀라운 점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너무 많아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이미지 형성에 많은 부분 실패했다. 자료를 찾아가면서 읽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우리가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세 실무 그룹이 인류세를 현재의 지질시대로 정식 채택하도록 권고했다’고 말하고, ‘그 시작점을 핵 시대가 도래한 1950년’이라고 한다. 이 인류세란 단어를 다른 책 속에서 이미 봤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 단어는 지구온난화와 연결된다.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노출된 순록 사체에서 탄저균 포자가 방출되었고, 동시베리아 숲에서는 수만 그루의 나무가 사라졌다. 그린란드 북서부에서는 만년설 아래 봉인했던 냉전 시대 미군 미사일 기지가 노출되었고 유독성 화학물질이 같이 폐기되어 있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문제점을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지구온난화란 문제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까?


언더랜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숲 속 나무 아래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균근성 곰팡이가 숲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파리 지하 속 도시 이야기다. 카타콤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부분은 일부였다. 이 땅속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다. 마지막은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일들이다. 전통적인 사냥은 힘들어졌지만 이 땅의 지하자원을 노린 자본이 녹은 대지를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지하 공간에서 현재의 사하라 같은 모래의 흔적이 있다고 하니 상상력이 꿈틀거린다. 수십 수백만 년 전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어떤 문화가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의 가장 대단한 점은 이 모든 공간을 저자가 직접 경험했다는 점이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그 공간을 가게 되었는지 알려줄 때 어떤 곳은 그 위험성이 그대로 느껴질 때도 있다. 안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해도 작은 사고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개발 이야기 속에 자본의 논리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얼마나 많은 기계들이 땅 속에 그냥 폐기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핵 폐기물을 보관하기 위한 시설도 읽다 보면 상상력이 발동한다. 만약 이것이 폭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재밌는 부분은 이 보관소를 먼 후손들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기호 등에 대한 논의다. SF작가까지 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수많은 문학 작품의 인용이다. 낯익은 작가와 작품도 있지만 낯선 것도 많다. 다른 문화의 환경과 경험 차이다. 단순히 그곳에 가서 경험한 것을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의 상황을 문학 작품 등과 엮어서 이야기한다. 상상력의 공간이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런 문학보다 현실적인 모습들이다. 우리가 몰랐고, 은폐했고, 기대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이 저자의 문장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저자가 경험한 공간들이,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린다. 능력이 되면 소설로 만들고 싶은 공간들이 가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