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스파이 2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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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권을 다 읽었다. 2권을 읽으면서 1권에서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많이 완화되었다. 핌이 자신을 3인칭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나 아들 톰에게는 평대를 하고, 상사였던 잭에게는 존대를 하는 장면의 전환에도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문 중 하나였던 왜 핌이 갑자기 정보국을 떠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인터넷 서점 책소개만 잘 읽어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늘 그렇듯이 뒤늦게 발견했다. 덕분에 소설을 더 재밌게 읽게 되었다. 천천히 음미하듯이, 그 상황을 그려내듯이 읽다 보면 예상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1권의 연속선상에서 핌은 계속 글을 쓰고, 잭은 핌의 흔적을 뒤쫓는다. 그의 아버지가 보궐선거에 출마하는데 이때 일어난 일들은 정치판을 조금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기꾼인 아버지가 지지자를 모으고, 승리를 위해 음모를 꾸미거나 거짓말을 하는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자신이 저지른 사기 행각에 분노한 여성을 도와주는 핌과 이 상황을 아주 유능하게 넘어가는 장면은 이 소설 전체 구성과 이어져 있다. 양심과 허세의 세계가 충돌할 때 양심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증거와 그 증거를 제대로 알려줄 매체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SNS가 있다면 다른 문제이겠지만 그때는 그 통로가 일방적이었다.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장교로 입대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악셀을 만난다. 상대 국가의 스파이로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잘 설계된 접근이다. 본래의 의도를 살려 적국의 정보를 빼내려고 하지만 배신의 기억은 양심을 흔든다. 악셀이 느끼는 공포와 위험은 그를 배신자의 길로 이끈다. 양심의 짐을 덜어내지만 자신의 조국에는 또 빚이 쌓인다. 작가는 배신의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미국으로 넘어간 다음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비밀정보라고 넘긴 것이 다음 달 잡지에 실리는 일 같은 것이다. 긴박하고 은밀할 것 같은 첩보전을 살짝 뒤틀어 놓았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 릭은 실제 작가 아버지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작가 후기에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닮았다. 릭이 핌을 변호사로 만들려고 한 것은 그의 변호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공한 작가에게 연락한 아버지의 모습도 겹쳐진다. 생활비를 주지만 결코 그 금액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닮았다. 실제 핌은 자신이 돌아다닌 곳에서 수없이 아버지를 만난다. 그 아버지는 돈을 구걸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에게 자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 관계는 이렇게 삶을 옭아맨다. 그의 떠남이 대립하는 두 진영에게 큰 혼란을 준 것은 다른 문제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인 잭 등의 이야기는 핌의 회고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핌의 기억과 현실의 괴리를 바로 잡아준다. 과거의 대화 속에서, 기억 속에서 현재 그가 있을 수도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냉전이 끝난 지금에서 보면 이들이 보여주는 대결이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 당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줘야만 했다. 실적이란 이름 아래 최말단에 있는 스파이나 정보원들은 잠시 사용되고 폐기되는 용도였다. 이 소설의 제목이 되는 완벽한 스파이도 악셀의 입에서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 진영으로 넘어간 정보원은 내부 스파이들 목록을 내주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큰 위험이고 일이다. 실제 이런 일들이 몇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작가의 소설은 나에게 쉽지 않다. 가끔 명성에 끌려 도전했다가 나와 맞지 않아 중단한 작가들이 생기는데 존 르 카레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이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작은 돌파구 하나를 발견한 것도 같은데 솔직히 다른 책을 읽어야만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이 칭찬을 솔직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 어쩌면 따라가기에 너무 급급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소설 내용이 뒤엉키고 모호한 부분들이 충돌하고 있는데 시간 나면 조용히 정리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머릿속에서 수도사가 되었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물음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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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스파이 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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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존 르 카레의 1986년 작품이다. 이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었지만 여전히 어렵다. 너무나도 유명한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도 나에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몇 권 더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들도 꽤 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데는 다시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이제는 어느 정도 조금 묵직한 소설도 익숙해져서 이전보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한몫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현재 2권을 읽고 있는 중인데 1권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아마 끝까지 읽고 서평을 쓰면서 생각과 내용을 정리하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영국 정보국 요원 매그너스 핌과 그의 행방불명을 두고 뒤좇는 상사 잭 등의 이야기다. 영국 데번주 남부 바닷가 마을에서 매그너스 핌이 택시에서 내리면서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 장례식 이후 이 마을의 미스 더비네 집에 왔는데 왜 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왜 이 집인지도 아직은 설명이 없다. 그리고 그가 집을 떠나기 전에 그의 아내와 미국 정보원 등과 만찬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 묘사가 이어지고, 핌에게 아버지 릭의 부고가 도착한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전개다. 그런데 핌이 아버지 장례식 이후 복귀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가 스파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냥 무심코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또 그가 가지고 나간 번박스를 생각하면 더 심각해진다. 이 심각한 상황을 뒤좇는 인물이 매그너스를 스카우트한 잭이다.


정보국을 떠난 핌은 자신의 성장기와 아버지 릭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는다. 그의 아버지 릭은 어릴 때부터 사기를 친다. 사기꾼 아버지와 순수한 영혼을 가진 매그너스의 성장기는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수많은 회사를 설립해 사기를 치는데 모든 사기가 성공적이지는 않다. 사기꾼 이버지와 떨어져 살아도 그의 삶은 그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한때 수도사가 되려고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아들 톰과 상사 잭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잠시만 방심하면 바뀐 대상 때문에 헷갈린다. 중간중간 이상한 번역도 낮은 집중력을 더 깨트린다. 호칭이 수시로 바뀌면서 이 혼란을 더욱 부채질한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일까?


정보국 요원이 사라진 것은 정보의 유출과 함께 기존의 내부고발자들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가 체코 등의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갔다면 지금까지 심어둔 모든 정보원을 철수시켜야 한다.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섣부르게 진행할 수는 없다. 핌을 스카우트하고 키운 잭 브라더후드는 한때 핌의 아내 메리의 정부였다. 핌이 전 부인과 헤어지고 그녀와 결혼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잭을 비롯한 정보요원들은 집을 온통 뒤집고 어떤 단서 하나라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가 넘어갔다는 단서도, 아니라는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보도 제한을 걸고, 핌을 찾아내거나 이 불안정한 상황을 진정시킬 확실한 정보를 발견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1권의 내용만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핌의 회고록 역할을 하는 부분이 주는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과 심리 묘사 등은 좀더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희대의 사기꾼인 아버지와 그의 부하들이 벌이는 시기 행각은 또 어떠한가. 1권을 읽다 보면 단순히 정보국을 떠난 것인지, 아니면 정보권이 걱정하는 것처럼 조국을 배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리고 한 정보국 요원의 실종이 스파이 세계에 어떤 긴장감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조금 엿볼 수 있다. 2권을 모두 읽고 난 후 이 책의 감상은 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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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1
제니 한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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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콤한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다. 이런 장르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데 넷플릭스에 나왔다는 소식에 혹해 선택했다. 거기에 주인공 가족이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하니 살짝 더 관심이 갔다. 예고편을 조금 보니 아주 재밌다. 여주인공 라라 진 송은 한국계 엄마는 사고로 죽었고, 아빠와 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산다. 이 가족에게는 가족 같은 옆집 오빠가 있다. 조시다. 조시와 언니는 서로 사귀었는데 언니가 스코틀랜드 대학교로 가면서 헤어졌다. 조시가 헤어지자는 소식에 울고불고하지만 언니의 결심은 굳건해 보인다. 이때 그녀는 자신이 먼저 조시 오빠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자신만이 읽기 위한 편지를 썼다는 사실도.


누군가를 짝사랑하면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손으로 쓰던지, 이메일로 쓰던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그 감정들을 담아둔다. 이 감정의 편지는 혼자만의 것이고, 절대 상대편에게 갈 일이 없는 편지다. 그런데 이 편지가 남자들에게 발송되었다. 다섯 명의 남자 모두에게 말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학교 최고의 인기인이자 미남인 피터 카빈스키가 편지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편지 속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 편지가 발송된 것을 안 라라 진은 집으로 달려간다.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피터도 문제지만 조시 오빠는 더 문제다. 그는 언니의 전남자친구이지 않는가. 조시가 편지를 들고 다가온다. 이 편지에 담긴 감정이 혼란스러워 묻기 위해서다. 라라 진의 언니 마고가 떠나 가슴 아픈 그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온다.


자신이 조시 오빠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결코 알리고 싶지 않은 라라 진은 피터에게 갑자기 키스를 한다. 둘이 사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사실 피터는 그녀의 첫 키스 상대이기도 하다. 어릴 때이지만 피터의 전 여친 제너비브와 옆집에 살면서 친했던 적도 있다. 제너비브는 학교 최고의 미녀이기도 하고, 피터를 꽉 쥐고 있다. 피터는 제너비브에게 차인 상태다. 피터는 제너비브의 질투심을 불러오고, 라라 진은 조시 오빠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고 알려주기 위해 둘은 계약 연애를 하기로 계획한다. 당연히 이 알콩달콩한 계약 연애는 서서히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고. 원래 목적을 살짝 어긋난 수준으로 나아간다. 물론 이 과정에 온갖 장애물이 놓여 있다.


정말 잘 읽힌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삶 일부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인종 차별적 요소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작가 자신도 한국계이고, 라라 진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보니 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보쌈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 이상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쌈이 아니다. 세상에 오븐에 보쌈을 굽다니. 목살을 소금에 절인다고. 이 짠 음식을 야채에 싸먹는다고 하지만 짜다. 가끔 한국음식에 대한 낯선 요리법을 만날 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익숙한 한국 과자들이 나왔을 때는 괜히 반가웠다. 이들이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미국에 사는 후배가 떠올랐다. 잘 알지도 못하는 그의 두 딸이 왠지 라라 진과 겹쳐보인다.


유쾌한 소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예전에 한창 보았던 미국 하이틴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다. 라라 진의 계약 연애는 그녀의 성장을 담고 있다. 최고의 인기남이자 허세 가득한 피터와 사귀는 척하면서 자신의 경험치를 조금씩 높인다. 1편만 나왔다면 다음에 이 둘이 어떻게 될지 엄청 궁금했지만 다행스럽게 3권까지 한꺼번에 나왔다. 2권에서 이 둘이 어떤 상황인지 안다. 안다고 해서 이 둘의 연애가 어떤 과정과 소동을 불러올 지까지는 알 수 없다. 중늙은이가 이들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 나이 때의 감정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157센티미터(사실은 156에 더 가깝다) 라라 진의 성장이자 연애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늘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편지 발송의 미스터리가 풀리는데 솔직히 예상한 부분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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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신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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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로 세계문학상 수상한 후 소설을 계속 내었지만 나는 몰랐다. 어쩌면 그 순간은 알고 있었지만 그냥 지나갔을지 모른다. 엄청나게 강한 인상을 남긴 작가이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면, 혹은 외국작가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첫 작품이 아니라면 이 작가의 출간 이력이 더 빠르게 다가온다. 이동원도 마찬가지다. 세계문학상 수상자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가장 강하게 나를 당긴 것은 책 소개에 나온 한 문장이다. “넌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건 신이 아니라 무신론자야.” 자칭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나를 흔들기에 충분한 문장이다.


강한 비상을 준비하던 아나운서 선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바로 다음 장은 이 선재의 몰락 후 모습이다. 누나가 찾아와 조카 딸 수아의 실종을 말한다. 정직한 기자 선재를 존경했던 조카 수아의 실종은 오보 방송 이후 몰락한 선재를 다시 밖으로 이끈다. 해커 출신 성원을 찾아가 수아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풀어달라고 한다. 선재는 음주운전 사고로, 성원은 해킹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열린 노트북에 깔린 어둠의 메신저는 사이비종교단체가 보낸 ‘정화의 날’ 문자가 떠있다. 하지만 이 메신저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그 기록이 사라진다. 선재는 이 단서를 가지고 새예언의 정체를 폭로하는 단체 에메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30년 전 고등학교 시절 친구 동명을 만난다.


동명은 자신이 새예언의 초대 교주였다고 말한다. 자신이 신의 말을 전달했고, 이것이 교세를 불러왔다고 말한다. 일본 선교 중에 이 능력으로 세를 불렸지만 잠시 능력이 사라지면서 세는 꺼졌었다. 힘들어하는 여자를 구하면서 이 능력을 사용했고, 그녀의 남편이 되어 목사였던 장인을 도우면서 그 능력을 쓴 것이 목사 등의 탐욕을 불러왔다.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간 후에는 이 능력이 사라졌지만 교세는 더 불어났다. 거짓 믿음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떠났고, 인간의 탐욕으로 탑을 쌓은 종교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더욱 거대해졌다. 기존 교회에 가서 친해진 후 신도들을 새예언으로 이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천지의 추수꾼이 떠올랐다.


선재의 오보는 유력한 대권 후보 류병두의 불법 리베이트 스캔들이다.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가 이 스캔들로 죽었고, 비서관이 오보의 원인으로 선재를 지목하고 자살하면서 그는 처참하게 몰락했다. 선재는 수아를 찾아 새예언으로 갔는데 이 모든 과정이 그를 새예언으로 이끌기 위한 작업이었다. 새예언은 선재의 오보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게 돕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왜 선재가 불명확한 화면에도 불구하고 오보를 내보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하나씩 풀어낸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은 사실 하나를 왜곡하거나 사실 확인을 게을리한 대가를 이 소설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물론 이것은 그 인물이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할 때 가능하다.


새예언의 전도자는 선재가 눈물을 흘리고, 신념이 흔들리게 만드는 에피소드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정보를 모아 신도를 모으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새예언의 교세가 커지면서 온갖 직업의 신도들이 모였다. 에메트를 테러한 신도들 중 일부는 교사다. 사회 각계 각층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말에 왜 사이비종교단체에 가입했을까 하는 물음은 큰 의미가 없다. 대형교회의 부패를 보면 그 답은 쉽게 나온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동명의 입을 통해 정통 교회와 이단을 구분한 내용이 강하게 와 닿았다. “정통 교회가 성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살지를 못해서 실패했다면 이단은 애초에 가르침 자체가 왜곡되어 있었다.” 왜곡된 가르침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망가뜨린다고 할 때 고개를 끄덕였다.


보도기자 출신 선재와 사이비종교단체의 결합만 놓고 보면 사이비종교의 이면을 파헤치는 소설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이비종교 단체가 권력을 탐하고, 내부 갈등이 발생하고, 정치인이 반격을 가하는 것까지 엮으면서 처음 예상한 전개를 벗어났다. 사이비종교를 다루면서 기성 종교의 문제점도 같이 파헤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스릴러 소설처럼 변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쉽게 밝혀지고, 견고해 보였던 것이 깨어지면서 가독성은 높이고 재미있어졌지만 치밀하고 세밀한 구성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종교에 대해, 진실에 대해 묵직한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더욱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 종교와 믿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나와 어느 정도 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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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관한 증명
이와이 게이야 지음, 김영현 옮김, 임다정 감수 / 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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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순간 수학이 어려워지면서 관심을 끊었다. 그렇다고 수학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시험 위주의 풀이에 질렸고,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수학 전공자 같지만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솔직히 머릿속으로 산수도 잘 못한다. 이런 내가 뛰어난 수학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에 눈길을 주는 것은 어릴 때 좋아했던 과목 중 하나가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수식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왜 영화 등에서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칠판 가득 암호 같은 수식을 적어 놓지 않는가. 이 소설도 그래서 선택했다.


수학자 두 명을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준다. 과거는 수학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료지의 시점이고, 현재는 그와 같이 특례입학을 한 구마자와의 시점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몇 가지 수학 증명에 대한 이론이나 학자 이름은 대부분 모른다. 수학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세계 3대 수학 난제가 있다는 것 정도다. 그 중에서 하나가 증명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작가는 수식을 설명하기 보다 수학자들의 우정, 질투, 좌절, 열정, 바람 등을 멋진 묘사 속에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는 자와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의 대립을 놓아두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료지는 온통 수학만 생각하면서 산다. 다른 과목은 다 성적이 별로지만 수학 하나만은 최고다. 이 재능을 고등학교 수학교사가 알아주면서 대학교수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논문 한 편을 쓰고 특례 입학했다. 이때 같이 구마자와와 사나가 동기로 들어왔다. 이 둘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출신이다. 이 둘은 학교에서 수학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테지만 료지와는 보는 세계가 다르다. 학창시절 담당교수의 지도 아래 료지가 이론 대부분을 쓰고 둘이 자료를 준비하면서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그 분야에서 지금도 가장 많이 인용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논문이다. 료지의 뛰어남은 그에게 조기졸업을 권유할 정도다. 그의 존재와 실력이 수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다.


료지의 재능과 열정에 질투와 선망의 감정을 가진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그를 대학에 데리고 온 고누마이고, 다른 한 명은 친구인 구마자와다. 고누마는 료지에 자극을 받아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 국립수리과학연구소로 간다. 구마자와가 료지의 공책을 6년만에 다시 보면서 그 공책을 가지고 고누마에게 간다. 이 책의 도입부다. 콜라츠 추측 증명을 쓴 공책이다. 이 분야는 구마자와도 고누마도 전공이 아니다. 구마자와는 대학에서 부교수를 역임하는 중이다. 현재의 시간은 이 공책과 그 증명을 둘러싼 구마자와의 아쉬움, 고뇌, 열정 등을 보여준다. 그 사이 사이에 료지와의 만남과 그에 대해 가졌던 감정들이 파편처럼 드러난다. 결코 료지를 뛰어넘을 수 없어 다른 분야를 전공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선택한 교수의 영향 때문에, 현실의 무게 때문에, 그 순간의 뒤틀린 감정 때문에 가졌던 감정들이다. 그래서 그가 살짝 료지가 발을 내딛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수식들을 풀어낼 때 그 열정과 희열에 감동한다.


료지의 천재성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볼 수도 없다. 고누마 교수가 떠난 후 온 교수가 논문의 작은 바늘구멍을 옳음으로 지적하고, 자신과 함께 수학을 연구했던 사람들의 떠남으로 느낀 외로움이 조급증과 술로 그를 잠식한다. 술은 그에게 외로움을 잊고 자신의 이론을 더 잘 보게 만들지만 몸은 급격하게 망가진다. 그가 이전의 교수와 친구에게 작은 도움을 손길을 내밀지만 그들은 그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마자와가 자신이 료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마지막 기회도 그가 날렸기 때문이다. 수학 밖에 모르는 삶을 산 료지이기에 현실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쉽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수학의 난제를 풀다가 미친 사람들 이야기가 이전에도 있었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면서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검색하니 한국의 화려한 수상 이력들이 나온다. 하지만 누군가의 글처럼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은 한 명도 타지 못했다. 한국의 뛰어난 수학자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수학 천재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늘 드는 의문이다. 물론 료지의 천재성이 화려하게 포장된 부분이 있겠지만 그 천재를 바라보고 천천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수학자들도 있다. 이 소설은 이 두 종류의 수학자를 나란히 보여주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오고 간다. 머릿속에 떠오른 수식을 풀어내기 위해 밤을 세우는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한때 내가 다른 것에 가졌던 열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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