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들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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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다. 전작 <다이스맨>이 조금 취향을 탔기 때문이다. 엽기적이고 기이한 행동에 내가 그렇게 공감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상당히 많이 웃으면서 읽었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현대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날카롭고 유쾌한 비평이 아주 재미있었다. 빌리의 냉소적인 말투와 황당한 말장난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예전에 이런 실없는 농담을 보면 ‘뭐지?’하는 반응을 먼저 보였는데 이제 나도 많이 내려놓게 된 모양이다. 아니면 작가의 농담이 취향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SF소설로 분류한다. 우리가 아는 SF소설과 조금 궤를 달리하지만 FF들이 등장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이 구분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이런 분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빌리가 외계인을 만나는 과정을 보면 조금 황당하다. 비치볼 같은 모양에 은회색 털로 뒤뎦어 있는 모양이다. 바다로 버리면 다시 배로 올라온다. 나중에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 이 외계인이 아이들과 놀게 되면서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람처럼 루이란 이름도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 FF들이 상당히 능력이 많고 뛰어나다. 그 중 하나가 해킹 실력인데 국가정보기관 NSA를 해킹한다. 이때만 해도 빌리와 그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루이와 다른 아이들이 놀면서 한 아이가 다치고, 루이의 존재가 외부로 드러나면서 빌리의 모험이 시작된다.


소설은 크게 빌리 모턴의 <내 친구 루이>와 루크의 보고서란 두 이야기를 기반으로 흘러가고, 그 사이에 다른 문서의 인용이나 뉴스 보도가 들어 있다. <내 친구 루이>는 빌리의 시선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적은 것이다. 내가 낄낄거리며 유머와 날선 비판에 공감한 대목들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 70대 노인이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고, 히피처럼 산 후 멋진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얻은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외계인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모험 세계로 빠졌다. FF들이 해킹으로 부정하게 돈을 모은 기업 등에서 빼낸 돈을 돈 세탁하는데 돕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이 일을 하는 도중에 정부 기관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뭐 그 이전에 테러리스트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었지만.


이 소설 속 외계인들은 지구를 침공해 파괴하고 공포를 불러오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로 와서 재밌게 놀려고 한다. 현대 사회 제도와 행동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분석해 풀어낸다. 그들이 지닌 해킹 기술 등을 이용하면 미국이나 다른 국가를 파멸에 이끌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실제 파괴한다고 해도 다음 세대가 다시 이런 이데올로기를 재생시킬 것이란 지적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은 변혁은 한계가 분명하다. FF들이 훔친 돈으로 소상공인들을 도왔을 때 나타난 몇 가지 행위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씨앗을 뿌리고, 그 시간이 놀이란 행위를 통해 발현하기 기다린다. 이 소설에서 진지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FF들의 ‘그냥 재미로’ 행위는 권력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FF를 위험한 테러리스트로 분류하고, 이들을 잡아 고문하려고 시도한다. 인간의 법을 외계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법리적 문제도 같이 나오는데 재밌다. FF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분석과 황당한 소문 등은 이 소설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다. 이 소설이 나올 당시 민주당이 집권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몇 가지 행동은 경악할 만하다. 어쩌면 작가가 이해한 미국의 양당 제도의 한계를 적확하게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곳곳에 풍자와 농담이 흘러 넘치고, 황당한 듯한 은유와 비판을 통해 현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그리고 사실을 정보 왜곡 등으로 뒤틀어버리는 작업 등과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모습을 같이 엮은 장면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읽는다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우리가 몰랐거나 무시했던 사실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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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산다는 것 -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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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선 시대 왕비로 추대된 모든 왕비를 연대순으로 다룬다.

저자 신병주는 가끔 스쳐 지나가듯이 보는 역사 관련 방송에서 본 낯선 인물이다.

방송에서도 사료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봤는데 사료가 승자의 기록임을 감안하면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이란 부제와 달리 단순한 자료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어 읽다 보면 금방 지루해진다.

생전에 왕비가 되지 못했던 비나 빈 등이 사후 왕비로 추대되는데 이들까지 모두 다루었다.

덕분에 그 왕비에 대한 기초 자료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재미는 없다.

왕비로 간택된 여성의 이름이 한 번(내 기억에 의하면 그렇다)만 나온다.

나머지는 모두 부친의 이름과 역시 어디 누구의 딸로 적힌 어머니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여성에게 제대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 시대였던 적도 있지만 왕비에게도 이름이 있을 텐데 이 책에서는 발견하기 힘들다. 이름이 없다면 없다고 기록해야 할 텐데 그런 기록도 없다.

다루고 있는 왕비가 많다 보니 깊이 있는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고, 기록된 사료를 바탕으로 건조하게 옮겨 적기만 했다.

드라마에 자주 다루어진 왕비 등에 대해서는 간략한 설명이 들어 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거의 없다.

구체적인 부분과 생략된 자료를 채우는 상상력이 빠져 있다 보니 이야기가 힘이 없다.

힘없는 기록은 몰입도를 떨어트리고, 비슷비슷한 왕후의 호칭은 머릿속에서 쉽게 뒤엉킨다.

모두를 담은 기록이 자료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대중 역사서로는 아쉽다.

연대순으로 기록하기 보다는 그 왕비들의 역할이나 추숭된 방법 등으로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조선 시대를 연대순으로 한 번 훑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솔직히 머릿속에 남는 것이 많지는 않다.

쉬어가는 페이지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운 평가나 이야기가 없어 그렇게 신선하지 않다.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에서 정치적 갈등을 감당했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이 자세하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의 역사를 보는 눈이 부족한 탓일까?

계속해서 읽다 보면 특정 가문에서 연속적으로 왕비로 간택되는 경우가 있는데 가문별로 정리된 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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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김세화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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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기자 출신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생각보다 빠르게 읽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를 미스터리로 녹여내었다는 점에서 많은 현실성을 담고 있다. 김환이란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방송사 내부의 갈등과 시청률을 우위에 내세운 방송의 문제를 잘 지적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실제 있었던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장면들도 나온다. 그리고 기억이 아닌 기록의 확인을 통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의 탐정과 다른 점이다. 물론 이 기록들을 기억하고, 취합하고,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기자들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들이 많이 나온 적이 있다. 일반 대중들이 정보를 수집하기 힘든 현실과 발로 뛰면서 취재하는 기자들의 특징을 잘 녹여낸 시절의 이야기다. 최근 이런 작품들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한국에서 탐정이란 직업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다 보니 이런 역할을 기자들이 가끔 맡아서 진행한다. 최근에는 탐정 역할을 맡는 인물들이 나와 멋진 탐정물들이 나오고 있지만 말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김환이란 주인공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화려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기억과 기록의 확인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잘 만들면 시리즈도 가능할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 전 있었던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이 떠올랐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모르지만 몇 가지 상황들이 그 사건을 바로 연상시켰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 검색하니 유골 발견 부분의 이야기가 이 소설 속 설정과 너무 닮았다. 현재 개구리 소년 사건은 영구 미해결 사건으로 처리되었고, 소멸 시효도 끝난 상태다. 다행이라면 이 소설은 그런 마무리가 아니란 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힘을 발휘한다. 오랜 시간 동안 발견되지 않은 유골이 갑자기 발견되고, 유골에 남은 흔적이 단순한 저체온으로 죽은 것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럼 남는 가능성은 누군가가 죽였다는 것이다.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방송 기자 김환은 10년 전 용무산에 사라진 아이들 수사를 리포트한 기자다. 10년 동안 이 사건을 뒤쫓았고, 이제 그 시체가 발견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한 아이만 죽은 것이 아니라 세 명의 아이가 죽었다. 두 명의 쌍둥이 자매다. 경찰은 연인원 30만 명을 동원해 산을 수색했지만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등산을 하던 사람이 이 시체를 발견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과거 수사를 떠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사건을 쫓는 것이다. 과거 수사를 떠올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방송국의 기록들이다. 이 기록들이 현재 사건을 쫓을 때 도움을 준다. 이 둘의 연결이 군더더기 없이 상당히 매끄럽게 이어진다.


전국적인 관심을 끈 사건일 경우 수많은 제보가 들어온다. 황당한 제보도 엄청나다. 이 사건에서 언론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는 신뢰할 수 없는 제보에 따라 피해자 집안을 파헤친 것이다. 이것을 방송국은 그대로 송출한다. 이 방송을 거부한 기자의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환은 그 정도로 대찬 기자가 아니다. 언론과 경찰의 협력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이 모습은 나중에 한센병 환자촌에서 다시 한 번 벌어진다. 김환이 그들에게 폭행당했는데도 그 어떤 신고 등이 없는 부분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문둥병 환자들의 난입에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된다. 김환이 머리로 이해하지만 몸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뒤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이학진은 아이들 실종과 관련 있다. 쌍둥이 집 마당을 파헤친 기사가 바로 그다. 그는 이들을 위해 2천만 원을 기부했는데 이 기사를 쓴 인물이 김환이다. 직장인인 이상 여기저기 엮일 수밖에 없다. 이 돈을 유가족은 거부했다고 한다. 이학진의 죽음이 단순한 강도 살인일 수 있지만 김환은 그의 아내를 만나고, 기억을 기록으로 확인하면서 하나의 가설을 만든다. 새로운 죽음은 가끔 정체된 사건의 새로운 출구가 되기도 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조그만 단서가 하나씩 맞춰지고, 예상외의 결말을 맞이한다. 이 결과는 상당히 납득할 만한 것이다. 인간의 탐욕과 우발적인 실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상당히 좋은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방송사 내의 문제도 남아 있으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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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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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이 작가의 다른 책 제목은 조금 낯익다. 아마 북카페에서 자주 본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271번째 책이다. 열린책들 출판사도 상당히 많은 고전을 내놓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의 장르를 역자는 환상소설로 규정한다. 후기에 “환상 문학에서는 확고한 현실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서로 뒤섞이며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작품 속 인물 혹은 독자에게 혼란과 망설임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비현실적인 일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판타지와 구별한다. 이 정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앞으로 읽을지도 모르는 다른 환상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최근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1장의 ‘맺음말을 대신하는 머리말’을 무심코 읽고 지나가면서 생긴 문제다. 물론 세심하게 읽었다고 해도 마지막 반전으로 풀어낸 편자 후기를 보지 않으면 오해하기 딱 좋다. 솔직히 말해 많지 않은 분량이고, 어려운 문장도 아닌데 상당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가끔 이런 작품들을 만나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1923년 작품이란 것을 감안해도 나의 취향과 조금 다른 듯한데 이 부분은 다른 작품을 한두 편 더 읽고 난 다음에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첫 작품 이후 완전히 반한 작가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1909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룬다. 며칠 동안 일어난 연쇄 자살 사건(?)을 파헤친다. 이 연쇄 자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살자들이 모두 예술가들이란 점이다. 이 공통점이 밝혀지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유명 궁정 배우 오이겐 비쇼프가 죽은 채 발견되는데 이 부분이 소설의 시작점이다. 비쇼프는 소설의 화자인 요슈 남작이 아내의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이 만난 자리에서 아주 흥미로운 자살 사건 이야기가 나온다. 화가인 동생이 자살한 후 동생이 자살한 이유를 찾으려고 한 형도 자살한 사건이다. 현장은 밀실이고, 방에서 들린 소리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살인자일까?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일까?


비쇼프의 죽은 현장에서 발견된 물건과 정항증거는 요슈 남작이 살인자라고 말한다. 비쇼프의 처남은 남작을 살인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 현장에 있던 한 엔지니어가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변론한다. 여기에 의사까지 합세한다. 그리고 엔지니어는 범인상에 대한 새로운 해설을 한다. 남작은 저택을 떠날 생각을 하는데 엔지니어의 만류와 상황 등이 꼬이면서 머문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비쇼프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러다 발견한 곳에서 다시 엔지니어를 보게 되고, 또 다른 정보를 통해 화가로 전시회를 연 약사의 존재를 인식한다. 문제는 이 여성 화가가 자살을 시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은밀한 살인자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무엇인가가 살인을 하는 것일까? 의혹을 불러온다.


엔지니어와 남작이 계속 사건을 파고들면서 발견하는 것이 심판의 날의 거장이란 존재다. 과연 그는 누굴까? 결국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린 아주 낯익은 존재를 마주한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력이 자리한 곳은 공포가 자리한 곳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살자들이 마지막에 마주한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과대하게 평가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이 끝난 다음에 읽게 되는 후기에서 진실을 마주한다. 교묘한 연출이다. 평소처럼 역자 후기처럼 이 부분을 읽지 않고 지나갔다면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을 놓쳤을 지 모르겠다. 이 부분이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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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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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유제니디스란 이름 솔직히 낯설다. 이 작가의 소설도 처음 읽었다. 그런데 이력을 읽다 보면 낯선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에 끌려 사 놓은 <미들섹스>와 첫 장편소설이라는 <처녀들, 자살하다> 등이 보인다. 아마 두 소설 모두 집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찾는다고 해도 바로 읽을 가능성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이 단편집에 끌린 것은 작은 오독과 퓰리처상 수상작가란 사실 때문이다. 오독은 첫 단편소설집이 유일무이한 소설집이란 사실과 그가 아주 나이 많은 작가로 착각한 것이다. 물론 적은 나이는 아니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가끔 나이에 대한 착시 효과가 생긴다. 언제나처럼 이름 있는 문학상에 약하다.


열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인지 약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나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했다. 섬세하게 읽어야 하는 대목도 대충 읽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놓친 부분이 많다. 늘 그렇듯이 단편들이 들려주는 간결한 이야기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쉽게 다가가면 되는데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면서 재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대목은 나의 잘못된 이해로 이어진 부분도 있다. 미국의 정치와 현실 문제를 이야기 속에 담고 있는데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비판을 담고 있어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단편들이 발표된 연도를 보고 비교적 최근에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표제작 <불평꾼들>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캐시가 델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해 자신들의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불평꾼으로 불렸던 인디언 할머니의 이야기와 이어지면서 풀린다. 좀더 꼼꼼하게 읽었어야 하는데 놓친 부분이 많다. <항공우편>은 1990년대 동남아가 배경이다. 영적 수행이란 허상 앞에 놓인 한 젊은이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약을 먹으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을 단식 등으로 고치려고 한다. 몸의 자연치유력에 대한 환상이 몽환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미첼이 작가의 다른 작품 <결혼이라는 소설>에 나온다고 한다. 혹시 나중에 이 장편을 읽을 때 미첼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베이스터>는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 영화 <스위치>의 원작이다. 검색해보니 원작과 다른 내용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여성의 욕망과 그 여성의 전 남친의 이야기인데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읽고 난 후 조금 웃었다. 영화는 여기서 더 나간 것 같다. <고음악>은 자신의 전공과 현실의 금전 문제를 엮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작가가 풀어내는 고음악 정보에 놀랐다. 대중적이지 못한 예술 분야 종사자의 비애와 삶은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한다는 현실이 잘 엮여 있다. 불안한 미래가 예측되지만 이 부부의 굳건한 듯한 사랑은 눈길을 끈다.


<팜베이 리조트>는 은퇴 후 부동산 사업에 몰두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한 번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사업을 펼치다 망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아버지 이야기다. 주변에 평온한 노년을 보낼 재산이 있는데도 사업 욕심에 계속 재산을 말아먹는 어른들이 있다. 그 열정에는 감탄하지만 그들의 판단력에는 의문 부호를 던질 수밖에 없다. <나쁜 사람 찾기>는 그린카드 이야기에서 술 등으로 자신을 몰락시킨 남자 이야기다. 접근 금지 명령을 어긴 남편의 회상기가 풀어져 나오는데 노골적인 표현과 위트 넘치는 대화가 눈길을 끈다. 엇갈린 부부의 생각과 행동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탁의 음부>는 황당하고 놀라운 부족 이야기를 문을 연다.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야 많은 문화에 있는 것이라고 쳐도, 여덟 살 소년들을 엄마의 품에서 떠나게 한 후 어른 남성들의 구강 성교 도구로 삼는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또 다른 아이들이 이 일은 반복한다. 이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성별과 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들섹스>의 토대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자극적이지만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들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변화무쌍한 뜰>은 네 남녀의 심리와 행동이 쉽게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오해와 엇갈린 욕망 등이 조용히 표현되는데 좀더 섬세하게 읽었어야 했다.


<위대한 실험>은 아주 정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산층의 몰락과 점점 심해지는 빈부 격차 문제가 엮여 있다. 작은 인문 서적을 내는 출판사에 일하는 편집자가 의료보험료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는 데 읽다 보면 불안감보다 약간의 통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지면서 위대한 실험의 의미를 돌아본다. <신속한 고소>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영국 과학자와 인도계 미국 소녀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감을 쉽게 잡지 못했는데 뒤로 가면서 앞에 풀어낸 이야기들이 하나의 설정으로 변하면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도 소녀가 느낀 문화 충돌과 중년 남성의 일탈이 엮이면서 한 편의 멋진 스릴러처럼 이어진다. 사실 이 단편을 읽고 난 후 이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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