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시선 452
정현우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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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표지가 인상적이다. 한 꺼풀 벗고 나면 기존의 창비시선과 닮은 모습이 나온다. 이 표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집을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며칠 전 겨우 시집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시어들도 많지만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시인의 감성이 조금씩 가슴에 와 닿는다. 분명 오독도 많을 텐데 가슴 한 곳이 무겁다. 그가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들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삶의 모습들이, 그 때문에 겪어야 했을 상황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성 정체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시집의 1부와 2부에서 가장 많이 느꼈다.


이 시집의 제목은 시의 제목이 아니다. <귀와 뿔>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성 정체성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다. 성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무속 신앙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가족의 종교가 서로 갈리는 것일까? 그가 성당에 가는 이유는 신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강권이 더 큰 이유라고 분명히 말한다. 시집 속에서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들은 신앙이 없거나 약함을 보여준다. 섬세한 감성이 담긴 시어들은 단어들을 곱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한 번, 대충 읽은 듯해서 한 번. 이렇게 시를 읽다보면 어떤 시에서는 슬픔이란 감정이 전해지기도 한다.


“잘못이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라는 문장을 계속해서 읊조린다. 이 미묘한 말의 차이가 마음에 와 닿지만 머릿속에서는 정확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을 지우고 나서야 나는 / 웅덩이 속, / 나무를 베고 잠이 들었다”<달팽이 사육장 1>고 말할 때 그의 아픔이 가슴에 문을 두드렸다. <인면어> 속 이야기는 단순한 카스트라토 사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가 경험한 일이 아닐까?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용서>고 하면서 “견딜 수 있는 것들만 고통을 준다는 / 신은 / 없다.”라고 말한다. 이 용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엄마가 시에서 자주 보이는 반면에 아버지는 그 빈도가 훨씬 떨어진다. 첫 시에 잠시 나왔다가 다시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중간에 내가 놓친 것이 아니라면. 제4부에 등장한 아버지는 낚시와 사냥 같은 행위의 선배 역할을 한다. “천사가 오기까지 내기해 / 눈을 감은 사람이 지는 거야 / 먼저 죽으면 안 되니까 / 누구라도 따라 울어버리면 안 되니까” <여름의 캐럴> 이 시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어디서 이 슬픔이 온 것일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정말 자유롭게 형식을 변주한다. 기존 형식을 깨트리고 자신의 슬픔과 기억을 풀어내는데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 관심을 둬야 할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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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의 단식법
샘 J. 밀러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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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개하는 몇 가지 코드가 시선을 끌었다. SF소설, 슈퍼히어로, 단식, 동성애 등이다. 동성애의 경우도 슈퍼히어로와 엮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SF소설이란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눈길이 가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 슈퍼히어로는 조금 특별하다. 동성애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굶어야 그 능력이 발현한다는 점이다. 인간인 이상 굶게 되면 몸을 유지할 수 없다.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는 과정과 섭식장애를 엮었고, 주인공 맷이 커밍아웃한 것과 동성애 혐오를 묶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상당히 가독성이 좋고, 청춘 학원물의 재미도 가지고 있다.


맷은 자신이 비계덩어리라 생각하고, 마야 누나가 가출한 것은 학교 최고 인기인 타리크에게 뭔가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거부한다. 이 거부 행위를 단식병법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섭식장애인데 자신은 이 행위를 통해 자신의 숨겨진 능력이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며칠 굶주린 결과 그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냄새에 대해 엄청나게 민감해진다. 단순히 냄새에 민감해지는 것을 넘어 냄새의 기록에까지 도달한다. 냄새로 내가 지난 날 한 일을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실제 절친 사이였던 여자 중 한 명이 상대방 애인과 키스한 것을 알아챈다. 과도한 정보의 입력은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이 과도한 정보를 막는 연습을 한다. 심하면 음식을 먹어 막는다.


이런 단식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누나 마야가 사라진 것이다. 누나가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은 타리크다. 엄청난 외모를 가진 인기 최고의 축구선수다. 맷과 누나가 동시에 빠진 인물이기도 하다. 단식병법으로 초능력을 얻게 되면 타리크를 압박해 누나가 사라진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엄마에게 누나 실종 신고를 하자고 하지만 거부당한다. 완전히 연락을 끊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엄마는 동네 도축공장에서 일하는데 이 공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당장 월세가 밀린다. 누나의 가출, 엄마의 실직 가능성 문제, 맷의 섭식장애 등이 엮이고, 동성애 문제는 학교에서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유일했던 친구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문제가 참 많다. 맷은 단식에 점점 집착한다. 환상인지, 실재인지 알 수 없는 능력은 더 발현된다.


섭식장애가 지닌 문제보다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더 집중한다. 자신이 얻은 능력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서 유혹에 잠시 빠진다. 그가 사람들에게 잠시 능력을 보여준 것은 피구를 통해서다. 상대방이 날린 주먹이 너무 느려 피할 수 있지만 맞아주는 일도 있다. 음파를 통해 도시의 수많은 소리를 듣는다. 도축공장의 미래도 알게 된다. 파티에 가서 카드를 하는데 엄청난 금액을 딴다. 이 장면을 보고 도박장에서 돈을 따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미성년자다. 아쉽다. 타리크의 친구들이 그를 괴롭히지만 타리크는 직접적인 가해를 하지 않는다. 도대체 누나와 타리크 혹은 그 친구들과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의문은 중반 이후까지 이어지고,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사실 하나가 엮이면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성인 1일 권장 칼로리는 남성의 경우 2700칼로리다. 그는 하루에 1000칼로리도 먹지 않는다. 점점 더 줄인다. 엄마가 음식을 산처럼 쌓아두지만 먹는 척만 한다. 그의 섭식장애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맷의 아버지는 집을 나간 후 연락을 끊었다. 이 소설에서 <길 위에서>와 <다르마 행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버지가 좋아했고, 불교 신자가 되게 한 작품이다. 맷은 유대인이다.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타리크가 아랍계란 점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이 아니다. 점점 더 적게 먹으면서 더 능력을 각성하지만 그 대가는 죽음일 수 있다. 그가 섭식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엄마는 알코올의존증이 있다. 서로 말하기 쉽지 않다. 문제는 점점 더 곪아간다.


흔하게 알던 슈퍼히어로 장르와 완전히 다른 전개다. 초능력을 각성해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각성 과정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도 놀랍고, 그 와중에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하는 것은 더 놀랍다. 십대 청소년이란 사실을 감안해서 하는 말이다. 초능력이 현실에서 발현된다고 해도 경제 문제는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슈퍼히어로를 내세운 러브스토리인지도 모른다. 어떤 점에서는 성장소설과 닮았다. 섭식장애란 무거운 주제를 SF소설로 유쾌하고 재밌게 풀어낸다. 퀴어 문제는 또 어떤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조금 더 성장하고, 각성한 그가 보여줄 활약이 기대되고, 현실의 높은 벽을 어떻게 넘어설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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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다 에프 그래픽 컬렉션
루이스 트론헤임 지음, 위베르 슈비야르 그림, 이지수 옮김 / F(에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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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애정하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중 한 권이다. 이 그래픽노블은 도입부가 충격적이다. 휴가지에 도착하자마자 약혼자가 간판에 목이 잘려 죽는다. 바람 때문이라고 하지만 황당한 상황이다. 그의 죽음은 파비엔느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녀가 기댈 것은 약혼자 롤랑의 노트뿐이다. 노트에 기록된 숙소를 찾아가고, 투우장에도 간다. 롤랑은 노트에 함께 휴가를 보낼 계획을 꼼꼼하게 작성해 놓았다. 홀로 남은 파비엔느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벗어나는 방편으로 그 노트의 일정을 혼자서 따라간다. 그러다 현지인 파코를 만난다. 얼핏 보기엔 술꾼 같고, 어떻게 보면 여행자를 유혹하려는 난봉꾼 같다. 유령처럼 부유하면서 일정을 따라가던 그녀에게 파코는 작은 침입자다. 실제는 친절한 현지인이다.


파비엔느가 롤랑의 일정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에는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과 함께 휴가를 즐기려고 온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강하게 대비된다. 아주 정적인 그녀의 모습에 변화를 던져주는 역동성은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서 온다. 걷고, 보고, 멈춰 있는 그녀가 하나의 풍경처럼 보인다. 우연히 날아온 배구 공이나 몰래 다가온 아이들이 이 정적인 풍경을 깨트린다. 그녀의 시선이 휴가를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줄 때 그녀가 느낀 상실과 혼란이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점으로 표시된 눈의 모습이 왠지 가슴 아프다.


파비엔느와 파코가 만나고, 서로가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다. 파코가 말한 어린 시절 불행과 그가 모으는 세계 각지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단순한 호기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수집이 타인의 죽음으로 즐거움을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란 사실이 드러나고, 롤랑의 사고 내역을 알게 되면서 둘은 한 발 더 다가간다. 죽음을 애도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정해진 일정을 따라 가는 그녀가 파코를 불러 저녁 식사를 하는 부분에서 죽은 약혼자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녀가 들고 있던 노트의 의미도. 작가는 이렇게 무엇인가를 직접 보여주고 알려주기 보다 이야기 속에 하나씩 녹여낸다. 무심코 본 장면이 다시 볼 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행용 가방 하나의 의미는 강렬하다. 처음에는 무거워서 차에 그냥 실어 두었다면 나중에 휴가지를 떠날 때는 그 가방을 차 밖에 둔다. 약혼자에 대한 애도와 관계를 암시한다. 그녀가 숙소로 돌아갈 때마다 강하게 짖던 개는 케밥 하나에 조용해진다. 파코는 자신의 오줌을 부었었다. 그녀와의 동행 이후 파코의 대응 방법도 바뀐다. 작가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 일상의 삶을 곳곳에 뿌려 놓았다.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과 그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사건이지만 타인들에게는 그 사건이 일회성 관심사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휴가를 즐기려고 왔다. 파코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파비엔느도 자신의 삶을 점점 찾아간다. 표정과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그렇게 두툼하지도 않고, 대사가 많지도 않다.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잠깐 멈춰 그림에 집중한다. 관광객의 표정과 여행 온 가족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의 감정을 느낀다. 펜으로 그린 섬세한 그림은 사람들의 다양한 체형과 역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듯하지만 무표정한 표정과 감정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채워지지 않고 남은 공백을 통해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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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1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i origin이었나 엘베.나오고 참혹한 씬이.겹쳐 떠오르네요. 도입부 소개해주시는.부분에서^^,,

행인01 2021-07-15 11:16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지 않아 이미지가 겹쳐지지는 않네요.
언제 기회가 되면 영화 한 번 봐야겠네요.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 - 치열하고 찬란했던 그 날
은상 지음 / 빚은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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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학원물이란 단어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다. 1989년 여름이다. 공간은 안면도다. 정치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이 학교 안에 갇히면서 생기는 일을 다루었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좀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좀비와 조금 다르다. 기생충 감염이란 방식으로 이성을 상실하고 기생충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설정이다. 바이러스의 진화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점은 흔한 설정이지만 이 소설을 약간 상황을 비틀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의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은 타인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 캠프는 국회의장이 미래의 투표권자에게 사전 선거 목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안면도로 설정한 것은 폐쇄된 공간의 필요성 때문이다. 이 캠프에 참여한 학생 수는 무려 천 명이다. 높은 분의 지시가 있으니 학교에서 차출해서 보낼 수밖에 없다. 이 소설 속 중요인물 중 석영과 상훈은 학교에서 문제가 있어 보냈고, 충청도 짱 현웅은 어머니 때문에 참가한다. 국회의장의 쌍둥이 남매 충걸과 유선은 아버지의 목적에 의해 보내졌다. 다양한 이유로 이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은 상훈의 실험과 한 소년의 악의적 장난이 결합하여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번진다. 재미 있는 점은 이 사건을 확장시키지 않고 캠프 내부에서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외부의 도움이 있었다.


초반부에 일어나는 몇 가지 일들은 전형적인 학원물이다. 누군가에게 눈길이 가고, 권력자 아버지에게 순응하는 아들과 이에 반발하는 딸, 자신이 원해서 짱이 되지 않은 아이 등의 사연이 간결하게 흘러나온다. 석영이 이 캠프에 참가한 이유는 오토바이를 훔쳐 타서 그렇고, 상훈은 소문난 똘아이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 문제아들을 보낸 것이다. 충청도 학생들이 많은 것은 그 지역에서 차려진 캠프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학원물에 가까운 인물은 현웅이다. 덩치는 컸지만 순했던 그가 어떻게 충청도 짱으로 성장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한 편의 협객 소설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카리스마가 강한 존재다.


상훈이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 만들어낸 기생충은 뇌에 자리를 잡고 처음 눈을 마주한 인물에게 복종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이 제조한 기생충 약을 먹는 것이다. 우연히 석영과 유선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상훈은 자신의 기생충 캡슐을 유선에게 준다. 이 기생충에 중독된 인물을 자신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쌍둥이 오빠에게 장난을 치러 갔다가 허술한 연기 덕분에 자신이 먹는다. 다행스럽게 그녀는 상훈을 찾아와 약을 먹고 해결하지만 나머지 캡슐을 빼앗겼다. 문제는 이 약을 한 사람에게 먹이지 않고 모두가 마시는 물통에 넣은 것이다. 이것은 상훈도 실험하지 않은 일이다. 무더운 여름 모두가 물을 찾을 때다. 기생충은 번식하고 아이들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눈빛이 바뀌면서 좀비처럼 바뀐다.


이 소설 속 아이들은 좀비처럼 바뀌는데 이유는 신선한 고기와 피를 원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좀비로 된 아이이에 물린 아이나 피를 통해 전염된 아이들도 좀비가 된다. 같은 좀비는 물지 않는다. 좀비가 아닌 사람을 찾아가 물어뜯는다. 좀비로 변하는 순간 눈을 마주하고 자신의 지배 아래 둔 아이들은 문제가 아니지만 감염된 아이들이 너무 많다. 다행이라면 높은 담장 속에 갇혔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상훈의 일기에 나오는 해충제를 먹는 것이다. 문제는 상훈도 물려 좀비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석영이 이 변화를 눈치채고 자신의 지배 하에 둔 것 정도랄까. 하지만 약을 만들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만약 이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면 감염을 제어할 수 없을지 모른다.


1989년도는 아직도 군인의 시대였다. 위대한 보통 사람을 외친 군 출신 대통령이 있던 시기다. 세계는 민주화 열풍이 불었고, 한국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상훈이 만들어낸 기생충은 독재자들이 알게 되면 그 사용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나 자발적으로 좀비가 되어 위기를 벗어나려는 아이들이 자신의 지배자로 선택하는 조건 등은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와 신뢰, 독재가 무너진 시점 등을 엮으면서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누어 장면을 전환한 것도 속도감을 높인다. 인트로 장면은 이 좀비물이 결코 무섭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준다. 후반부의 몇 가지 장면들을 보면서 왜 이 시대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감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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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서클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5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희경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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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다섯 번째 소설이다. 현재까지 나온 다섯 권 중 네 권을 읽었다. 처음 읽을 때만 해도 ‘뭐 이렇게 허술하지!’라는 느낌도 있었는데 시대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수긍하게 되었다. 이번 작품도 현대 추리소설에 비해 짜임새나 트릭 등이 약간 헐겁지만 속도감과 캐릭터 등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리고 크림슨 서클이란 조직이 보여주는 범죄 행위는 어떻게 보면 뒤틀린 자경조직 같은 느낌도 준다. 자영조직이 악을 처단한다면 이 조직은 악의 점조직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작가 이전에 이런 조직을 소설 속에 녹여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놀라운 조직이다.


크림슨 서클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조직이다. 조직원들조차 누가 크림슨 서클인지 모른다. 크림슨 서클이 표시된 봉투 등을 받은 사람들은 이 협박에 따라야 한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불이행에 따른 처벌을 받는다. 거대한 자산가의 경우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이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음으로 이어진다. 실제 이 조직이 처음 런던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살해 협박이 현실로 바뀌면서 점점 위험한 조직이 된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파르 경감이다. 소설은 크림슨 서클의 협박에 굴하지 않은 제임스 비어드모어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크림슨 서클의 협박을 막기 위해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사립탐정 데릭 예일을 초대한다. 이 초대는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어둠 속 실루엣만으로 그 존재가 드러나는 크림슨 서클. 그는 범죄자들을 모아 거대한 악의 고리를 만든다. 상호 감시하고, 검은 돈을 세탁하고, 협박으로 거액을 뜯어낸다. 협박을 거부한 부자들이 몇 명이나 죽었다. 이 살인으로 파르 경감은 경질설에 시달린다. 그리고 탈리아 드러먼드라는 미모의 여성이 등장해 잭 비어드모어의 마음을 사로잡고, 새로운 사건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그녀가 취직한 곳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과 살인사건으로 의심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탈리아는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 보면 이런 인물이 범인인 경우는 많지 않다. 이야기의 진행 속에 드러나는 몇 가지 감정의 조각들은 그녀의 실체를 의심하게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크림슨 서클과 이를 쫓는 파르 경감과 데릭 예일 탐정의 대결이다. 이 범죄자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발견한 사람들이 죽은 채 발견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장면은 밀실 살인과 닮아 있다. 작은 트릭과 적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몇 가지 행동들이 나와 약간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고,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다. 나중에는 이 크림슨 서클이 정부를 상대로 엄청난 협박을 한다. 기존의 살인 행각을 생각하면 아주 위험한 협박이다. 지금까지 크림슨 서클이 보여준 살인들을 생각하면 무심코 대할 수는 없다. 파르 경감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예일 탐정과 힘을 합쳐 범죄자를 잡으라고 말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부에 범죄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점 조직으로 구성된 듯한 크림슨 서클이지만 이 정보가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조직에 위험이 되는 인물은 제거되고, 협박을 현실화시킨다.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짜임새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시대를 감안하고, 이 설정을 생각하면 놀란다. 밖으로 드러난 몇 명의 크림슨 서클 조직원들이 나오지만 두목은 실루엣 속에 숨어 있다. 이 조직원들이 모인 장면이 나오는데 적지 않은 인원이다. 약점을 쥐고, 협박을 하고,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조직이다. 누군가 실제 이런 조직을 만든다면 엄청난 위험이 될 것이다. 범죄와 관련된 행동을 하는 인물로는 탈리아가 있다. 그 반대편에는 파르 경감과 데릭 예일 탐정이 있다. 배후가 밝혀지는 순간 읽으면서 의심했던 장면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인다. 한 동안 잊고 있던 고전 추리의 재미를 살짝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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