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어도, 예스
메리 베스 킨 지음, 조은아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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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멋진 소설이다.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삶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한다. 선택과 기억의 퇴적들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 간략하고 핵심만 풀어놓으면서 변하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작은 실수, 혹은 잘못된 한 발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틈새로 어떻게 비극이 들어오는지, 이 비극을 마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마주하는 순간조차도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한 순간들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불완전하고 불안해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마주 보기를 포기한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조차 그 감정 속에서 살았고, 그가 기억하고 추억한 것을 보여주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프랜시스 글리슨과 브라이언 스탠호프는 신입 경찰로 처음 만났다. 둘을 파트너가 되어 움직였지만 곧 다른 곳으로 배치된다. 프랜시스는 브라이언에게 교외 마을 길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 레나와 결혼한 후 길럼으로 이사한다. 레나는 낯선 마을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지만 외로움을 느낀다. 이때 옆집에 브라이언 가족이 이사온다. 동료 경찰의 아내 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앤이 거부한다. 앤은 유산 경험이 있다. 레나가 셋째 케이트를 낳기 얼마 전 앤이 피터를 낳았다. 작가는 여기서 말한다. 피터와 케이트는 그들의 시작부터 함께 했다고. 이 아이는 아주 친하게 지낸다. 같이 성장한다. 둘은 너무나도 밀착되어 있다. 앤은 이런 케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랜시스는 차곡차곡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지만 브라이언은 그렇지 못하다. 브라이언은 앤과 불화가 있지만 정면에서 이 상황을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기만 한다. 앤은 약을 먹는데 먹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한 마트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어린 피터에게 상처다. 여기에 케이트까지 만나지 못하게 하니 어린 피터는 둘만의 도피를 생각한다. 이 순수한 열정이라니. 어린 소년 소녀가 늦은 밤 처음으로 키스를 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우연히 이 장면을 레나가 본다. 감정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앤에게 말한다.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피터가 프랜시스 집에 와 경찰에 연락해달라고 한다. 비극의 시작이다.


그날 밤 사건은 두 가족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앤은 정신병원으로, 피터는 조시 삼촌의 집으로. 아빠와 함께 살던 피터는 브라이언이 경찰을 그만 두고 떠나면서 삼촌과 살게 된다. 엄마를 방문하지만 그녀는 원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소년은 공부도 잘하고, 달리기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좁다. 엄마를 보고 싶어하고, 케이트를 그리워한다. 인생의 전환점 중 하나에서 그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다행이라면 삼촌 조지가 그의 학업을 계속 이어가게 했고, 아빠와 엄마가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몰랐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작가는 피터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받은 상처와 그리움을 차분하게 드러낸다.


케이트도 피터를 그리워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아빠는 재활을 열심히 했고, 그녀는 이런 사고의 원인이 궁금했다. 자라면서 그녀는 앤과 피터를 구분했다. 사건을 일으킨 것은 앤이지 피터가 아니라고. 이성은 이 사실을 알려주지만 감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른 가족들은 그렇다. 뉴욕에서 다시 피터를 만나 사귀고, 둘이 결혼한다. 피터 주변을 맴도는 앤을 발견한 것도 케이트다. 앤에게 주의를 주지만 결혼 후 도시 외곽에 살 때 다시 찾아온 앤을 발견하고 무시한다. 그녀에게 도움을 손길을 바랄 때조차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는 순간의 감정 표현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다. 쉽게 용서하거나 두려움을 떨쳐내지 않고 그 감정의 흔들림을 직시한다.


삶은 자주 충동을 불러온다. 이 작은 충동에 굴복하는 순간 삶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작은 행위들이 쌓여 거대한 퇴적물을 만든다. 이때 다시 되돌기에는 너무 힘들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알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문제 인식이 아주 늦을 경우가 너무 많다. 문제를 인식하지만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도 많다. 작가는 이런 삶의 모습을 긴 세월 동안 두 가족을 통해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묻지만 쉽게 ‘예스’라고 말하지 못한다. 노년의 레나와 프랜시스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삶을 풀어내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다시 한번 더 말한다.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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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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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서점에서 작가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나에게 낯선 책들이 무수히 나타난다. 그가 그림으로 참여한 책 제목들이다. 이우일을 처음 에세이 작가로 인식한 것이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그의 본업을 잊는다. 아내 선현경의 에세이 <하와이하다>에 그림으로 참여한 것을 본 것도 이런 착각을 더 부채질했다. 사실 그는 그림작가로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다. 내가 무지해서 잘 몰랐지만 제목은 자주 들었던 책들이다. 그림작가라는 직업이 그가 해외에 몇 년 동안 머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부럽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와이 생활을 접고 한국에 귀국해 하와이에서 배운 부기보드를 탄 이야기를 이번에 내놓았다.


무식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내가 한국에서 보드를 탄다고 하면 한국 파도가 탈 정도가 되나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동해에서 서핑을 한다고 할 때 내 머릿속은 영화 등에서 본 멋진 배럴을 만드는 파도만 떠올랐다. 동해 파도를 제대로 본 적도 없고, 서핑은 하나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가 보여준 우리나라의 주요 서핑 스폿은 생각보다 많았고, 생각보다 많은 서퍼들이 그곳에서 파도를 탄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생각을 다르게 하게 했다. 거대한 파도가 아니라도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겨울 바다라면 더욱 그렇다. 책을 읽다 보면 파도 타기에 대한 열정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50대가 이렇게 몸으로 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달려들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위험한 일에.


이 에세이에 그림작가 이우일의 네 컷 만화가 많이 실려 있다. 주로 ‘미래의 나’가 등장해 현재와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것인데 상당히 재밌다. 과거의 내가 전혀 생각조차 못한 일을 하는 현재의 내가 등장한다. 미래의 내가 보기엔 현재의 나는 아주 미숙하다. 시간은 종종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릴 이끈다.  장롱면허가 어떻게 운전대를 잡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을 보면서 필요가 만들어낸 현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파도를 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그를 보면서, 혹은 그 옆에 앉은 그의 아내를 보면서 내 경험 중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를 태우고 다닌 그의 아내의 노고에 또 다른 과거가 떠올랐다.


서핑에 대한 그의 경험을 상당히 간결하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느낌을 잘 포착해 간결한 문장에 유머를 담아 풀어내었는데 개인적으로 한 템포 늦게 웃게 된다. 위대한 힘에는 항상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거창한 말과 달리 현실은 소소하다. 서퍼들이 바다 위에서 눈치를 보는 것이나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나의 머릿속에 콕 박힌다. 시계를 찬 그에게 시간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실제 파도를 타는 시간은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도 몇 십 분이 되지 않는다. 파도를 타기 위한 준비 과정이 상당히 길게 걸린다. 겨울 바다에서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두툼한 옷도 필요하다. 장갑도 필수다. 이것을 잊고 나와 다시 호텔로 돌아간 이야기는 요즘 자주 깜박하는 나를 떠올린다.


상어보다 해파리가 무섭다는 것은 현실 바다의 상황을 잘 알려준다.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바다에서 오줌을 참는 그를 보면서 생각하지 못한 행위에 놀란다. 그의 아내가 집게로 해변의 쓰레기를 줍는다는 작은 언급은 더욱 놀랍다. 바다 위에서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사연을 읽을 때면 순간의 올바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알게 된다. 우린 가끔 사소한 것에 목숨을 너무 건다. 일기와 만화와 에세이가 한 곳에 녹아 있다. 담담한 글쓰기는 천천히 그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본 풍경 묘사는 우리 삶에도 적용 가능하다. 작가는 파도타기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도전하게 한다. 그럼 나는? 이 책에 실린 그림들도 작가가 처음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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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수영 지음, 박수연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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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이다. 오래전 시화전을 몇 번 본 적은 있다. 시그림집은 처음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시그림집이 아니고 김수영 시인의 시들이다. 예전에 한 번 도전한 후 이해하지 못해 포기했던 시들이다. 김수영을 인용하고 찬양하는 작가들을 자주 보다 보니 그의 시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를 구해 놓고 오랫동안 묵혀 두고 있는데 이 관심 때문이다. 그의 시전집도 사 놓은 것 같은데 찾지는 못하겠다. 이번 시그림집에는 <김수영 전집 1 시>와 다른 편집을 한 시들이 상당히 나온다. 단어나 행구분이 대표적이다. 시를 읽을 때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행 구분이 의미하는 바이다. 아직도 잘 모른다.


80편의 시를 열 개의 꼭지로 나누었다. 해설을 보니 그의 마지막 시가 <풀>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가장 강렬하게 남은 김수영의 시다. 다른 곳에서도 자주 본 시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풀> 부분) 이 낯익은 시어들을 다시 만난 시들은 거의 없다. <거대한 뿌리> 같은 경우는 시집 제목으로 기억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판타지 소설 속 세계수 같은 이미지다. 그런데 그냥 굵은 뿌리만 그렸다. 서로 다른 시각을 경험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가 어려웠다. 나의 한계다. 철학자나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그의 시집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봤기에 이 부분은 상당히 아쉽다. 아마 다음에 또 한 번 더 도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된다면 <김수영을 위하여>를 먼저 읽을지 모른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사실 나의 기억을 상당히 조정하게 되었다. 그의 너무나도 직설적인 시어들이 아주 낯설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시어들이 욕과 함께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때도 이런 시어들을 썼다는 사실에 놀란다. <“김일성 만세”> 같은 시는 현대 한국 정치를 생각하면 정말 발표하기 어렵다. 실제 이 시는 21세기가 되어서 발표되었다.


참여를 다룬 시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김수영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아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번전서가 / 표준이 되는 한 / 나의 손 등에 장을 지져라 / 4.26 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 차라리 /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육법전서와 혁명> 일부)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서 그 날카로운 통찰력에 놀랐다. <“김일성 만세”>에서 이 단어를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로 인정하라고 한 부분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시대 이런 시가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실제로는 이 시가 사후에 알려졌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시집의 제목은 이 시그림집 마지막 시인 <눈>의 마지막 행이다. 이미지를 떠올리면 황량한 폐허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책에 담긴 시그림집들은 개인적으로 나의 이해와 취향과 많이 다르다. 직관적으로 그린 그림들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그림도 많다. 시와 그림을 다시 한 번 더 봐야 한다. 역사, 생활고, 사회문제, 희망, 기대, 자기반성 등을 그는 어떤 순간에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욕설이 난무한다. 어떤 시는 여성 비하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오독도 있고, 시대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최근 시를 읽으면서 이제 시가 조금 이해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의 착각이었음을 이번에 또 확인한다. 얼마 전 한 시집을 읽다가 난해해 잠시 중단한 적도 있다. 다시 또 그냥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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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멈추면 나는 요가를 한다 바통 4
김이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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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작가가 요가를 소재로 쓴 글을 모은 단편집이다. 바통 시리즈 4권인데 이번 앤솔로지를 읽고 이전 시리즈에도 관심이 생겼다. 아마 기회가 닿으면 이 시리즈를 한두 권 더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단편집을 읽기 전에 김혜나의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을 읽고 요가에 관심이 갔는데 바로 이 단편집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보여 약간 주저하다 선택했다. 그러다 잊고 있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잠시 이전 기억을 되살렸다. 집에 책만 있고 저질 기억력에 따르면 한 번도 읽지 않은 작가의 단편도 실려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재밌게 읽었다.


이 단편집의 작가들이 모두 요가를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김혜나와 정지향의 글을 보면 전문적으로 배웠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다른 네 명의 작가는 이 단편집에 참여하기 위해 요가에 다시 발을 딛은 사람도 있다. 각자의 경험이나 단편집 참여 등으로 이들의 글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최정화의 단편에서는 요가란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그림과 동작과 요가를 소재로 한 단편임 감안하면 요가 동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요가 구루들이 저지른 성추행과 성폭행의 기록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광범위해서 놀랐다. 동작과 호흡을 강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무협을 떠올린 것은 내 취향 탓일 것이다.


요가를 우아한 행위 정도로 생각한 아줌마의 시선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단편이 김이설의 <요가 하는 여자>다. 태권도 학원에서 태보와 요가를 가르치는데 이 단련법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다. 새로운 회원을 데리고 오면 할인해주는 방식 등 낯익은 상황들이 많이 나온다. 김혜나의 <가만히 바라보면>은 어떤 대목에서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의 연장선이란 느낌이 들었다. 트랜스젠더와의 교류와 자신이 경험한 수련법을 뜨거운 파타야의 열기와 뒤섞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오래 전 땡볕 속 파타야를 배낭 하나 매고 걸었던 그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련자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매혹적이다.


박생강의 <요가고양이>는 이제 기억도 희미해진 <수상한 식모들>을 잠시 떠올려주었다. 팬더믹 이후의 삶과 엮어 한 편의 판타지처럼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가의 기원을 이집트로 보고, 고양이의 목숨이 아홉 개란 설정을 묶어 풀어내는데 재밌다. 장편으로 발전시켜도 좋을 것 같다. 박주영의 <빌어먹을 세상의 요가>도 팬더믹과 요가를 엮었다. 안식년에 해외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팬더믹이 발생해 집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층간 소음이 발생한다. 오해와 이해 사이를 오가고, 바뀐 일상이 삶을 조금씩 무너트린다. 갇힌 일상 속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을 요가와 자연스럽게 엮었다.


가장 낯선 작가가 정지향이다. 처음 읽는다. <핸즈오프>는 요가 수련자에게 스승이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에 반대되는 행위다. 현대 요가의 탄생과 부작용에 대해 짧게 보여주고, 올바른 동작을 도와주는 핸즈온의 좋은 점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도움의 손길이 다른 쪽으로 흘러갈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미숙한 선생의 핸즈온이 불러온 이후가 씁쓸하다. 최정화의 <시간을 멈추는 소녀>는 제목을 보고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바로 떠올랐다. 지구온난화와 인간의 무차별 자원개발을 북극의 가상부족 소녀를 등장시켜 강렬하게 표현했다. 만년설이 녹은 후 얼음 밑에 있던 온갖 세균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뉴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멈추는 것이 국지적인 현상이란 점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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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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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파타프를 검색하면 묘비명이란 해석이 먼저 나온다. 실제 이 소설 속에서 묘비명을 여러 번 말한다. 도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다니면서 상당히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서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년에 겨우 몇 번 내려 가는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도 스쳐 지나간다. 지금의 도시 모습과 비교하면 그때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자주 가지 않는 도시는 그냥 지나가고, 현재 살고 있는 서울에만 한정해도 그 빠른 변화와 다른 모습에 놀란다. 고속 성장하는 도시의 변화는 한 해 한 해 다르다. 여기에 올림픽 개최는 그 속도를 높인다. 작가의 2020 도쿄 올림픽에 대한 글은 그 아쉬움을 담고 있다.


기존의 온다 리쿠 소설과 많이 다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소설보다 에세이 같이 느껴진다. 도쿄를 기점으로 교토와 오사카, 고베 등을 다루는 작가 K의 시점을 다룬 piece와 자칭 흡혈귀라고 말하는 요시야의 시점을 다룬 drawing과 K의 희곡인 [에피타프 도쿄]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은 절대적으로 piece가 많다. 낯선 지명과 낯익은 지명을 돌아다니면서 도시의 역사를 탐방하는 K의 이야기는 아주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도 나와 반갑지만 그 역사란 것이 결코 좋은 사건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사실들은 기억을 새롭게 하고, 지식을 덧붙이기에 충분하다.


오래 전 도쿄를 한 번 여행한 적이 있다. 짧은 기간 머문 것이라 대표적인 지역만 둘러보았지만 영화, 드라마, 만화, 소설 등에서 늘 마주한 곳을 눈으로 보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어쩌면 내가 영상 등으로 기억하는 도쿄가 그 사이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들이 도쿄타워가 아닌 스카이트리에 몰린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였을 것이다. 도쿄 전망대의 대명사였던 도쿄타워가 그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스카이트리가 나오는데 전망대가 아닌 미술전시실이다. 내가 간 당시의 복잡함을 생각하면 조금 낯선 모습이다.


읽다 보면 반가운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 작가나 작품명이다. 이 작품들에 나온 도쿄의 풍경이 어쩌면 내 머릿속 도쿄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지명보다 작가 이름이나 작품이 더 낯익다.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품도 나온다. 내가 놓친 곳들이 나올 때면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순간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등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걸었던 곳은 더 분명하게 떠오르는데 이것이 나의 경험인지, 단순한 이미지의 연상인지 궁금하다. 작가가 한국과 중국과 도쿄의 공기와 냄새가 다르다고 한 부분을 보면서 이 미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한 내가 둔감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 속에 묻혀 있다 보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흡혈귀라고 말하는 요시야다. 햇볕 속을 걸어다니고 특별히 피를 빠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데 이전 기억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티벳의 달라이라마가 연상되는 설정이다. 요시야의 불사는 환생이다. 그가 K의 미행을 알아 챈 대목에서 도시에 많은 것으로 거울을 말하는데 공감한다. 고전 스파이 영화처럼 누군가를 미행한다면 너무 쉽게 그 정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가 아베 고보의 소설 한 권을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관심이 생긴다. K가 쓰는 희곡 [에피타프 도쿄]의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이 떠오른다. 뭐 잠시 이 작품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갔다가 신선한 전개와 구성에 잠시 혼란을 느꼈다. 동일본대지진을 다룬 이야기가 나와 기록을 확인하니 2011년 3월이다. 소설 속 3월 모일의 기록은 이때 있었던 일을 다룬다. 수많은 이야기 중 한 편에서 괴수가 도쿄를 침범한다. 고질라를 떠올리게 하는데 왜 핵 실험을 한 미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오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의문이 조금 풀린다. 그리고 희곡 [에피타프 도쿄]를 읽으면서 상당히 매력적인 설정이라 한 편의 소설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왠지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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