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아이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권일영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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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오랜만에 시게마쓰 기요시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지 않았지만 아주 강렬한 느낌을 받은 몇 작품 때문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다 아주 자극적인 표지와 섬뜩한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이 눈에 띄었다. 7년 전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반 학생들을 독살한 사건이다. 단순히 그 사건을 파헤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는 7년이 지난 후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장 먼저 가족을 묻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도 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재혼으로 만들어진 부자 사이를 말이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대체 자식의 무엇을 믿어야 하고 어느 부분을 읽어 내야만 하는 걸까”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와 관련된 사건이 터지면 항상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가해자의 부모라면, 혹은 피해자의 부모라면 하고. 현재 모습을 보면 사이코패스의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가해자 가족이 된다면 어떻게 피해자 부모에게 사과하고 아이를 바르게 키울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하지만 피해자라면 어떨까? 현실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건 사고를 보면서 내 속에서 강하게 꿈틀거리는 분노를 발견한다. 그 피해의 정도에 따라, 그 가해자의 사과 여부와 재발 가능성에 따라 그 분노와 행동은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것은 머릿속 상황일 뿐이다. 작가는 보통 이렇게 흘러가는 이야기 대신 더 끔찍한 상황을 설정하고 풀어낸다. 어떤 대목은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지만 머릿속은 그 가능성에 서늘해진다.


한적한 뉴타운 아사히가오카의 한 중학교에서 급식 독살 사건이 생긴 지 7년이 지났다. 급식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다. 아이들이 독에 중독되어 죽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독극물은 어디에서 구했을까? 경찰 발표에 나온 것을 보면 보통의 사이코패스와 별 차이가 없다. 작가는 단순히 이 소년을 뒤쫓기보다 재혼 후 가족이 된 중학생 아들 하루히코와의 관계에 더 집중한다. 피가 아닌 법률에 의해 가족이 된 후 그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결혼 전 하루히코가 학교에서 당한 학폭 등을 감안해서 이사하고, 싼 가격에 산 집을 리모델링해 나름 세심한 배려로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이사 와 보통의 화목한 듯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7년 전 사건에서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들을 목요일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미성년자 사건이다 보니 얼굴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고, 얼마 전 풀려났다. 시미즈와 새가족들이 이사한 동네에 이 사건의 가해자 주택이 있었는데 그곳에 갔다가 하루히코를 보고 이웃집 아줌마가 놀란다. 자세히 보니 닮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하루히코를 보고 당시 선생이 기절한다. 전학 당시 분위기가 닮은 점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시미즈에겐 충격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 하루히코가 아닌 옆집 여학생 마야에게 듣는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 독극물로 죽었다. 이렇게 7년 전 사건 가해자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 마을을 덮는다.


시미즈는 어느 날 편의점에서 학생들이 그 사건의 범인 우에다를 님까지 붙여 속삭이는 것을 듣는다. 만화 잡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쪽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본다. 하루히코와의 대화는 서로 거리를 두고 겉돈다. 정중하지만 아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친한 척한다. 하루히코가 이전 학교에서 당한 폭력은 홀엄마에 대한 아이들의 저열하고 비열한 언어와 합성 사진 폭력 등이었다. 학교는 언제나 이런 문제에서 제3자로 물러나 비겁해진다. 하루히코가 바라는 것은 엄마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엄마가 웃는 것을 바라는데 자신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챈 새아버지가 다가오자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다. 이것이 목요일의 아이 우에다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새롭게 사귄 친구의 정체는 무엇일까?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읽다 보면 그 무거움과 어둠에 마음이 어지럽다. 머리도 혼란스럽다. 뒤로 가다 보면 예전에 본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이나 설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에다가 하나의 도시 전설이나 신화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뭐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까? 그 마음이 세상의 종말을 바라는 부분으로 이어질 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가 떠오른다. 인간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몰고 간 그 만화 말이다. 악에 대해 작가는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백미는 우에다가 말하는 세상의 종말과 그 뒤에 숨겨져 있는 감정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든 부분이다. 사람이 저지르는 악을 우리의 이해 한도 속으로 우겨 넣으려고 한 시도를 비판한다. 가볍게 읽기 어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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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타로 한국추리문학선 11
이수아 지음 / 책과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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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문학선 11권이다. 검색해보니 이 문학선도 상당히 읽었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조금 갈리기는 했지만 한국 추리문학을 읽는다는 재미는 충분히 누렸다. 이 소설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한국추리문학선이란 브랜드였다. 그리고 읽으면서 예상 외의 재미에 놀랐다.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머릿속에서 가상 캐스팅도 몇 명 해보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최근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서 젊은 배우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큰 미해결 사건을 바닥에 깔아두고, 다른 살인 사건들을 해결하는 방식이라 드라마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마담 타로는 사라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경찰을 그만 두었다. 타로를 선택하게 된 사연이 나오는데 경찰이라고 어디나 들어갈 수 없다는 현실이 잘 드러난다. 이런 곳을 살짝 들어가는 인물이 바로 무당이었기에 선택한 것이 타로 점이다. 자신이 배운 심리학 등을 이용해 타로 점을 보는데 내공이 쌓이면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것을 이용해 동생의 행방을 쫓는데 언제나 한 발 늦는다. 그러다 경찰에게서 연락이 온다. 동생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죽었던 모습과 똑같다. 엄마를 죽인 범인으로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 있는데 말이다.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니 동생이 아니다. 동생과 신분증을 바꾼 다른 사람이다. 다시 동생을 찾으러 간다.


불행한 가족사가 있는데 마담 타로가 먼저 집을 떠났다. 그 후 엄마가 죽었고, 배우를 꿈꾸었던 동생은 텐프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마담 타로가 된 것도 텐프로들을 만나 동생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다. 화류계 여성들을 상담하다 경찰에게 단속되면서 그녀의 과거사가 하나 흘러나온다. 이혼했다는 정보다. 단속 경찰서에서 예전에 알던 후배 경찰 성훈을 만나고, 성훈은 전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러다 전 남편과 부딪히고 사건 파일을 우연히 본다. 그녀의 눈에 피해자의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전 남편과 대화를 하는지, 싸움을 하는지 모를 이야기를 하다 이 사건에 대해 말한다. 싸움이 더 커지지만 타로 탐정이 처음 활약한 이야기다.


이렇게 마담 타로는 탐정처럼 몇 개의 살인 사건에 간여한다. 어떤 사건은 경찰 시절 돌보던 나비 문신을 했던 소녀를 찾다가 보험사기처럼 보이는 사건을 마주한다. 그리고 어느날 한 마담이 찾아와 동생의 행방을 알려면 자신의 지인이 죽은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경찰이 아니다 보니 사건 파일을 찾을 수 없다. 후배 성훈의 도움으로 파일을 얻는다.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다른 에피소드처럼 이럴 때마다 그녀는 타로 점을 친다. 타로가 바로 범인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게 해준다. 이 시각은 다른 정보와 엮이면서 범인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타로 탐정으로 점점 성장한다.


읽고 난 후 평범한 대한민국 경찰이 갑자기 명탐정이 되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하나의 사건만 들여다보고, 경찰이 얻지 못하는 정보를 얻고, 여유를 가지면서 범인을 잡는 게 더 쉬워진 것이다. 실제 범인을 잡는 것은 여전히 경찰들이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진행에 아쉬움을 느낀 부분은 마지막 연쇄살인범의 등장이다. 비약적인 전개이고, 상황을 납득할 만한 설명도 부족하다. 현실에서는 상상 이상의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소설이란 것을 감안하면 좀더 설명이나 복선 등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랬다면 더 긴장감을 느끼고, 예상 외 상황을 복기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혼한 전 남편과 자주 부딪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 이야기에서 이들의 진전된 관계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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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있는 계절
이부키 유키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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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청춘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1988년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연작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계속해서 나오는 인물들과 개가 있다. 인물은 유카와 고시로이고, 개는 미술부 부원인 하야세 고시로의 이름을 딴 고시로다. 사람과 개의 이름이 똑같다. 우연히 부른 이름이 개의 이름으로 정착했고, 개는 주인에게 버림받아 홀로 남았다. 어린 개는 미술부원들의 사랑을 받는다. 집에 데리고 갈 사람들이 없다. 유기견 보관소에 가거나 학교에 남아야 한다. 밖으로 내보내려는 교장과 학생들의 대화는 날카롭기보다 현실적이다. 결국 학생들이 돌보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미술부실에서 기른다. 그리고 고시로의 시선이 짧게 나오면서 다섯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첫 이야기에 나오는 유카와 고시로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엇갈린 시간 속에서, 다른 학생들의 기억 속에서 교차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둘의 미래를 계속 그려보게 된다. 작은 도시와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한 학생의 이야기 속에 과거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술부가 고시로를 돌보면서 기록한 일지는 이 연관성을 더 높여준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이 이름들이 나오면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단편적이나마 그들의 삶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이것이 극대화된 부분이 최종화다. 2019년 여름에 벌어진 모임은 아주 멋진 후일담을 담고 있다.


긴 세월을 다룬다. 이 시간들은 많은 변화를 담고 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나오고, 일본의 대지진이 두 번이나 발생하고,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도 있었다. 실제 소설 속에서 직접 다루어지는 사건은 고베 대지진이다. 피해자 중 한 명을 이야기 속에 담고 그 참상의 일부만 보여주는데도 울컥한다. 옴진리교 사건과 고베 대지진은 모두 1995년에 발생한 대사건이다. 이런 대사건이 일어나도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효율을 따지는 한 소녀가 진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춘 소설의 백미는 F1를 둘러싼 두 소년의 관람기다. 소위 말하는 전교1등과 평범한 한 학생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같고, 우연히 얻게 된 표로 아주 멋진 추억을 쌓는 과정이 뜨거운 열정을 전해준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학창 시절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물론 다른 나이지만. 원조교제를 하는 학교 최고 미녀와 그녀를 좋아하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소년이 비밀을 공유하고, 소녀가 지닌 아픈 현실을 풀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현실의 비참함과 아픔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누나가 학교 선생으로 나타났을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고시로의 감각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오래 전 본 일드와 주제가가 나오고, 그때의 나를 잠시 돌아본다.


고3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들려주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고시로와 엮이면서 과거의 흔적을 미래로 이어간다. 그 흔적들 중 일부는 고시로를 돌보는 모임, 약칭 고돌모의 기록에 나타난다. 어떤 대목에서는 부풀려진 부분도 있다. 시대의 흐름 속에 기록과 기억은 점점 쌓여 간다. 작가는 이 기억을 기록으로 기초를 닦고, 추억 속 상황을 불러와 멋지게 펼쳐놓는다. 다양한 학생들의 다양한 삶과 선택과 현실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어린 시절 한 무모한 행동이나 사랑했던 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 순간의 아픔과 그리움들이 복잡하게 감정을 휘저어 놓는다. 그때는 죽을 것 같이 아프고, 보고 싶어 했던 감정들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지나왔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또 다른 감정들이 오겠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재밌게 읽었는데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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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도로 퇴근한다
신재현 지음 / 처음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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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4박5일 일정이었다. 이틀은 성산 근처에서, 이틀은 한림에서 머물렀다. 두 숙소의 공통점은 미온수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최소 한 시간 이상은 아이와 수영장에서 놀았다. 그 나머지 시간은 천천히 관광지를 둘러보거나 비자림을 걷거나 카터나 말을 탔다.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를 덧붙이면 해변에서 잠시 놀았다는 것이다. 가을의 찬 바람은 아이를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거의 매년 오는 제주도이다 보니 옛 추억을 더듬기도 한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처음에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생활이 나왔다. 그리고 오래 전 제주도에 있는 회사로 직장을 옮긴 후배가 떠올랐다.


한때 제주도에 갈 일이 생기면 후배에게 전화해 맛집이나 볼거리 등을 물어봤다. 덕분에 저렴하고 맛있는 횟집에서 잘 먹었다. 아쉬움이라면 가족들 때문에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아내와 제주도에 다시 왔을 때 후배가 보내준 관광지에 대한 간단한 정보다. 2박3일 일정이었는데 거의 제주도를 한바퀴 돌았다. 지금도 그때 둘러본 곳을 가거나 지날 때면 그 추억이 샘솟는다. 시간의 변화 속에, 동행자에 따라 가지 못할 때는 아쉬움을 품고,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다시 제주도가 생각나면 옛 기억을 들추면서 다시 가보고 싶어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현직 교사다. 서울에서 부장 교사를 하다 제주도에 반해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갔다. 흔한 제주살이나 이주기와 다른 점은 이 부부가 둘 다 교사란 점이다. 더 놀라운 점은 저자가 다시 시험을 봐서 제주도 교사가 된 점이다. 대단하다. 현재까지 그들이 제주도에 산 시간은 4년이다. 2년은 성산 근처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마 이번 제주 여행 전에 이 책을 봤다면 갈 곳이 몇 곳 더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가을 억새들을 보았지만 산굼부리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년 가을에 가게 된다면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저자의 제주 사랑이 가득하다 보니 좋은 점만 늘어놓는다. 제주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보다 타운하우스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린다. 편함과 필요함의 결합이다. 이들과 어울리고, 교류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서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제주에 살기 때문에 여행자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글 곳곳에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녹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내가 자란 곳도 바닷가 도시인데 사실 이 부분은 잘 인식하지 못했다. 어릴 때 누가 이런 것에 신경 쓰겠는가. 캠핑의 천국이란 단어를 보고 이번 여행에서 본 캠핑장이 먼저 떠올랐다. 서울 등의 캠핑 마니아들인가 하고 생각했다. 괜히 캠핑차 대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읽으면서 본 사진 속 풍경은 낯익은 곳이 상당하다. 아마 잘못된 기억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제주 여행에서 느낀 것은 제주도 해변 풍경이 조금씩 혹은 많이 달라 잠깐 머물다 가기 좋았다는 점이다. 해변 카페를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고, 아이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어 가지 않았다. 우도 예찬을 보면서 몇 년 전 우도에서 1박한 것이 떠오른다. 경로 우대 받을 수 있는 노인이나 어린 아이가 있으면 차를 가지고 갈 수 있는데 저자는 아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사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이 조건을 생략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도는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가 생각보다 많다. 과장된 먹거리도 있지만 천천히 머물고 싶은 곳이다.


제주도 사람들도 호캉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고, 서울 사람들이 호캉스 가는 것을 떠올렸다. 코로나 19 때문에 제주도 겨울이 성수기처럼 되었는데 아쉽다. 연말에 한 번 더 가자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서 지난 여행에서 놓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제주에 오래 산 후배가 보기에는 별것 없는 것들이겠지만 우리에겐 신선하다. 4년 산 그들도 제주도가 이제는 이전처럼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느낌을 전한다. 물론 저자는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주도 한달 살기를 떠올리는데 직장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늘 제주도 앓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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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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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 몰랐던 사실 하나. 이 소설이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과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어떻게 이어질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마지막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보고 각자 자기만의 서사를 펼쳐나간다고 하는데 지성의 집에 살았던 그녀의 시선이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일단 지성의 시선을 따라 가보자. 부제도 ‘지성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읽다 보면 내가 아는 출판사와 신문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면서 소설 속에서 다룬 이야기의 사실 여부가 궁금해진다.


지성의 이야기는 크게 두 줄기다. 하나는 문학평론가였던 지성이 문화평론까지 하는 현실 속에서 마주한 출판과 진영 논리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어느 순간 우리를 집어삼킨 미투 운동이다. 개인적으로 추론하면서 읽은 문학평론가 지성의 분석과 이해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문학세상을 문학동네로 바꿔 읽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고, 신화일보는 조선일보로 당연하다는 듯이 연결시킨다. 소설가나 시인의 작품에 대한 정밀하면서 날카로운 분석은 나의 지적 이해와 상관없이 흥미롭고 상당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여기에 나의 지적 허영 한 자락이 살짝 발을 걸친다.


지성이 숙취 속에서 잠을 깬다. 옆에 낯선 여자가 나체로 누워 있다. 그녀의 이름은 나채리. 지성은 그 어떤 기억도 없다. 여자의 벗을 몸으로 그의 곁에 누워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술집에서 취한 상태로 만나 방으로 왔다는 것 정도다. 일이 있어 나가면서 그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하지만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고, 둘은 몸을 섞고, 같이 밥을 먹는다. 아내와 별거 상태에 있는데 나채리의 약간 살집 있는 몸이 그를 안정시킨다. 지성의 나이는 53세, 나채리는 스스로 35세라고 말한다. 정확한 것은 지성밖에 없다. 지성에게 나채리의 흔적이 조금씩 스며들지만 시간이 더 걸린다.


초반 문학계 내부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의 시선을 끌었다면 앞에 잠시 언급되었던 미투 운동이 지성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분위기가 확 바뀐다. 성공한 시인 민주를 강제로 성추행했다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그의 모든 일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는 기억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피해 여성 민주가 죽으면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질타 대상이 된다. 사실 여부에 대한 정확한 확인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락에 떨어진 지성의 이야기가 한 동안 펼쳐진다. 이런 그에게 힘이 되어준 인물이 나채리다. 자신은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지성은 진보 진영에서 글을 쓰고 평론을 했지만 진영 논리를 벗어나 사실을 두고 발언을 했다가 진보 진영에서 큰 반발을 마주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논리가 내쪽에서 작용한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지성의 사건에 반전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사실보다 자신들이 믿는 바가 더 중요하다. 이것은 지성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을 나중에 깨달았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그가 양심 있는 지식인이란 사실을 보여주지만 그의 삶이 과거 한국 평균 남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갑자기 성추행 등으로 무너진 민주당 대선 후보 등이 떠오른다.


자신이 내세운 가치관이, 동료와 친구들이 하나의 주장 때문에 자신을 거꾸로 찌른다. 과거의 나쁜 습관들이 미투 운동의 물결 속에 그들의 반성을 끌어내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보다 질타하고 추락시키고 모욕하기 바쁘다. 인간과 업적을 구분하기보다 하나로 묶어 쓰레기처럼 매도한다. 이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한다. 글과 사람을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간단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간단하기만 하겠는가. 지성의 몰락에 동참한 문인 등의 비판에 작가의 시선이 하나씩 담기고, 피해자의 주장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문제를 돌아본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실의 사건들과 연결된 것들이 하나씩 보인다.


지성의 이야기를 읽다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채리를 가끔 생각한다. 그녀가 왜 이 집에 따라왔을까? 그녀가 밝힌 사실 하나에 의문을 던진다. 뒤로 넘어가면서 하나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사실 여부는 다음 이야기에서 나올까? 한 셀럽의 몰락과 기억하지 못한 대화의 기록이 반전으로 이어지지만 그 이면에 나온 또 다른 사실이 진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 사실을 떠나 자신들의 생각을 내뱉고 서로 절연하고 욕하고 비난하는 댓글에 대한 짧은 묘사는 좋게 보면 공론과 토론이지만 나쁘게 보면 그냥 자기 욕망의 배설이다. 밝혀진 사실보다 자신들의 추론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현실 사건이 떠오른다. 여러 부분에서 현실의 사건과 모습들이 이 속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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