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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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제주 4·3사건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에 파고들어 그 상처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눈길을 돌리면서 이 학살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세르비아 학살 등도 같이 다루고, 그 학살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군부정권이 사라진 후 등장한 김영상 정권 아래에서도 여전히 국가폭력이 존재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주인공 조한나의 사연을 통해 드러낸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하고, 잊고 있던 기억들을 다시 환기시켰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조한나가 번역한 작품의 작가 마르코의 집에 머물면서 학살의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과거사를 현재까지 끌고 와 풀어내는 부분이다. 과거의 기억을 따라 올라가면 제주 4·3사건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독일 유학 당시 만난 대학 선배 기표와의 이야기는 다시 한국 현대사의 정치조작 사건과 이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가 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생략되어 있다. 단지 현재의 삶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건의 재판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그 재판을 보도한 언론이 얼마나 악의적이었는지 말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사실적이고 간결하게 알려줄 뿐이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는 <꽃보다 언니> 덕분에 한국에 많이 알려졌다. 유명 관광지 너머의 역사적 비극을 말한다. 그녀가 번역한 작품의 작가 마르코의 집에 머물고, 그와 대화하면서 구 유고슬라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시기에 난민 문제가 생기면서 국경이 강화되고, 그녀의 국가 표기 때문에 생긴 작은 에피소드가 국가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한다. 전쟁과 학살은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그 수행자들이 개인이라고 해도 그 권력을 쥐어준 것은 국가다. 조한나가 간첩단 사건으로 안기부 담당자의 폭력에 휘둘릴 때 그 담당 뒤에 가려진 국가폭력이 존재한다. 이 폭력과 유사한 것 중 하나가 홀로코스트 재판에서 나온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다.


어느 순간 익숙해진 단어 중 하나가 ‘인종청소’다. 이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데 함축된 단어의 위력을 쉽게 알려준다. 이후 이 단어가 다른 곳에서도 사용되었다. 인간이 저지르는 학살을 대표하는 두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국가 앞에 이런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의 감정은 어떨까? “죄의식은 늘 피해자들의 몫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국가의 억압에 의해 군에 차출되어 원하지 않는 살인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눈 앞에서 피를 쏟으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본 사람의 경우다. 이 느낌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그의 삶을 쥐고 흔든다. 삶에 이 사실을 숨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불쑥 불안과 공포가 찾아와 그를 흔든다. 그의 삶을 이해하는 한 모습이다.


그렇게 분량이 많은 소설은 아니다. 예상보다 훨씬 가독성도 좋다.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냥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조한나 가족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올 때 잠깐 숨을 삼킨다. 비극은 결코 한시적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비극의 한 사람, 한 국가에 한정하지 않고 그 폭을 확대하면서 사유의 폭과 깊이를 늘인다. 그리고 시간 속에 생략된 이야기를 순간 떠올리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가볍게 이야기를 풀기에는 그 비극과 폭력의 희생자들 모습을 다른 곳에서 너무 많이 봤다. 자신이 당한 사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몇 가지 이야기는 생각을 더 복잡하게 한다. 군부 독재가 사라진 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들이, 유산이 남아 있다. 아직 새벽이 오기 전이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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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맑음, 때때로 흐림
마연희 지음 / 처음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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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해외 여행은 한 것은 2019년 연말 즈음이었다. 그 후 2달만에 코로나 19로 하늘길이 막혔다. 이때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2021년이 되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들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살짝 열린 문이 다시 조금씩 닫히고 있다. 아마 내년이면 올해보다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나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동안 듣던 여행 팟캐스트나 여행 에세이 등을 멀리 했다. 이런 방송을 듣고, 책을 읽다 보면 나가고 싶은 열망이 더 커질 것이 뻔하니까. 그러다 살짝 가능성이 비치자 한 권씩 읽게 된다. 이 책도 그래서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길지 않은 나의 여행 경험과 여행 컨설팅 대표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들을 비교하며 읽는 동안 잠깐 여행의 즐거움을 누렸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은 책 가장 끝에 나온다. “아직도 여행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아직도 설레여서 다행이다.”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가장 강하게 맞은 해외 여행사 대표가 내뱉는 이 말은 진한 울림을 준다. ‘아직도’란 단어가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마 이런 느낌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풀어낸 수많은 이야기들과 관계 있을 것이다. 고객을 관리하면서, 고객의 사소한 실수를 처리하면서, 나에겐 진상처럼 느껴지는 손님을 대하면서도 운영했던 그 여행사를, 코로나 19로 2년 가까이 문을 닫고 있어도, 그 여행을 설레고 좋아한다고 하니 대단하다. 자신이 정말 좋아해야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가 여행사를 하면서 만난 고객들과 관계 있다. 단순히 고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여행지 등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같이 나온다. 삐삐섬의 미얀마 소년부터 방콕의 쿤 아저씨까지 다양하다. 이 인연은 짧은 만남부터 긴 시간 여행 파트너까지 다채롭다. 하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고객들이다.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 생기는 에피소드는 출산을 하러 들어가는 순간까지 고객 관련 업무를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은 이 여행사를 한 번 이용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늘 자유여행만 가는 나인데도 말이다. 물론 나의 첫 해외여행은 패키지였다.

이 에세이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 있다. 발리, 태국, 하와이 등이다. 각 에피소드에 나오는 문제들도 아주 다양하다. 나라의 국빈이 리조트를 모두 빌려 다른 곳으로 가야 하거나, 장애인을 위한 계획을 짜거나, 멋 모르고 비싼 세탁 서비스를 이용한다. 주차 실수도 빠질 수 없다. 아이가 여권에 낙서를 해서 급하게 단수 여권을 만들고, 사라진 유모차 때문에 안절부절한다. 가장 놀라운 이야기라면 비행기 비상구가 일회용이란 것이다. 이 실수가 빚어낸 여파로 당사자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다른 여행객들은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부터 망친다. 그리고 여행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돈이나 물품 분실 문제도 같이 다룬다. 어떻게 보면 여행사 사장님의 고객 관리 체크 리스트 같다.


많은 경험담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비롯했다. 고객들의 성향에 따라, 사건의 무게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렇게 보상을 해주면 회사 이익이 날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늘 있지는 않을 것이다. 팁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준 팁이 어떤 경우는 너무 과했고, 어떤 순간은 너무 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팁은 정말 어렵다. 여행자 보험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에피소드는 읽으면서 불안불안했지만 상당히 잘 마무리되었다. 작가가 가진 공황 장애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느꼈다는 그 무서움의 원인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마지막 가족 여행은 읽으면서 살짝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의 지난 여행 기억을 생각보다 많이 떠올렸다. 왠지 앞으로의 여행보다 과거 여행 회상을 더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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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관 - 국내 최초 군대폭력 테마소설집
윤자영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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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작가들이 군대 폭력을 대해 이야기를 썼다. 소개글에 넷플릭스 드라마 애야기가 계속 나온다. 아마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영향으로 기획되었을 것이다. 군대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작품들에 나왔다. 나에게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렇게 군대 폭력만 다룬 소설집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발 빠른 기획이다. 이 네 편의 소설들은 그 시대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읽다 보면 과거 이야기도 나오고, 비교적 요즘 이야기도 다룬 것 같은데 특정 시대를 알려주지 않는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이 시대는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다. 속된 말로 ‘나 때는 말이야’란 단어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르게 그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윤자영이 쓴 단편 <살인 트리거>는 현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국민학교란 명칭이 나왔다는 것부터 오래 전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작가는 이 단편에서 작은 서술 트릭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충식과 최호남의 악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호남이 어떻게 머리를 써 자신의 위치를 높였는지 하나씩 보여주는데 치밀하고 교묘하게 친구들을 이용한다. 자신이 권력을 직접 쥘 수 없기에 권력자 옆에 붙어 호가호위한다. 국민학교, 중학교 등에서도 문제였지만 군대에서는 더욱 악질적인 행동을 한다. 첫 장면에서 최호남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한 이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살짝 가리고 비틀면서 예상 외의 반전을 펼친다.


박해로의 <고문관>의 무대는 다시 섭주다. 군대보다 의경으로 이야기를 옮겼지만 내부반의 폭력은 여전하다. 설마 섭주일까 했는데 그 동네가 나오자 섭주에 대한 집착에 살짝 감탄했다. 계부가 무당인데 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대에 간 심소남은 군대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계부가 준 부적을 가지고 생활하는데 헛것이 보인다. 의경의 고문관으로 불리는 그를 고참과 동기들이 그를 갈군다. 빽 좋은 후임은 하극상을 저지른다. 작가는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각자의 사연 속에 허세를 집어넣어 살짝 부풀린 부분도 있지만 폭력의 아래로 흐르는 성향을 그대로 적용한다. 이 소설의 파국은 우연인지 모르지만 정명섭의 <사라진 수첩>과 닮은 꼴이다. 물론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불청객이 올 무렵>의 문화류씨는 처음 만났다. 개인적으로 공감할 부분이 많지만 설정 부분에는 살짝 거부감이 든다. 아마 개인 취향 문제일 것이다. 제대 후 예전에 있었던 군대 폭력을 다룬다. 때린 놈은 잊어도 맞은 놈을 잊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가장 높이 날고 행복한 순간 추락하는 과정을 한 편의 연극처럼 보여준다. 박종운은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고,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여자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한 상태다. 군 후임들을 불러 여자 친구를 소개하고 행복한 꿈을 꿀 때 불청객처럼 초대하지 않은 후임이 나타나 그가 저지른 군대 폭력을 까발린다. 최근 연애인들이 성공한 후 학폭으로 추락한 것과 닮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독하다.


정명섭의 <사라진 수첩>은 군대 내 폭력과 왕따의 희생자가 소총으로 부대원들을 죽인 후 그 이유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군대 폭력과 한 사병의 일탈로 간단하게 마무리하려는 사단장 등의 의도를 깨트리는 헌병 강민규 상사의 수사를 다룬다. 관심사병 정 이병이 왜 이런 참혹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살인을 막을 수는 없었는지를 파고든다. 실제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어디까지 옷을 벗는지 모르겠지만 사단장 등은 사건을 축소시킨다. 군의 폐쇄성과 군 폭력의 확대 등이 왜 계속 발생하는지 그 이유 중 하나를 보여준다. 읽으면서 생기는 호기심 중 하나는 어떤 이유로 사단장 등과 강 상사의 뒤틀린 관계가 생겼을까 하는 것이다. 강 상사가 전역 후 탐정으로 활동하겠다고 했는데 그가 주인공이 소설이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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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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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아지면서 가능한 두툼한 책들은 뒤로 미루어 둔다. 이 책처럼 600쪽짜리 책은 더욱 그렇다. 가성비 때문에 사 놓고 묵혀둔 책이 얼마나 책장에 많은 지 생각하면 늘 두툼한 책은 뒤로 밀린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표지의 사진과 1968년이란 연도와 뜨거운 시대에 두 여성의 엇갈린 삶과 우정이란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다. 예전처럼 시간이 많으면 이틀 정도면 모두 읽을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이틀 정도 더 걸렸다. 재미가 없거나 지루해서 가 아니라 읽을 시간 부족과 내 저질 체력 때문이다. 읽으면서 시간의 순서가 뒤섞이면서 혼란을 잠시 겪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 혼란은 금방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아주 멋진 소설 한 편을 읽었다는 감동에 빠진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조지의 시선으로 끌고 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오는 경우는 조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앤을 본 경우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앤은 자신의 신분에 불만이 많다. 자신의 가계에 드리운 남부 농장주의 흔적으로 지우기 위해 중간 이름 앤으로 불리길 바랐다. 기숙사 배정에서도 자신과 신분이 다른 학생이 같이 배정되길 바랐다. 조시는 대학에 오면서 생각조차 못한 일이다.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지만 어느 순간 삶의 길이 갈라진다. 갈라지기 전까지 대학에서 그들이 경험한 것들은 반전 시위, 민권 운동, 히피, 우드스톡, 대마초와 마약 등이다. 작가는 이 시대의 한 장면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준다. 이제는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다.


기본적으로 조지의 삶을 따라간다. 변혁의 시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그 시절 대학생들이 추구하던 것을 그대로 누린다. 그러다 한 잡지사에 비서로 들어가면서 경력을 쌓는다. 학창 시절 경멸하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잡지이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좋은 상사가 있지만 그들의 결혼 이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올 때면 그 허상이, 허영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성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 관계를 갖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것은 일시적이지 않고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을 하나의 회사 전설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당사자에게 왜곡된 채로 전달된다. 웃게 만드는 후일담이다.


그 당시에도 기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대학생이 히피처럼 살고, 민권운동에 헌신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학번들이 모두 학생운동에 참여해 데모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 당시에도 많은 학생들은 보통의 대학생활을 했다. 물론 대학에 제대로 가지 못한 시절도 있지만. 조지가 대학을 떠나 잡지사에서 마주한 현실세계가 바로 이런 곳이었다. 하지만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든다. 우리가 흔히 옛날엔 말이야 같은 말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작가는 서로 다른 두 태생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보여준다. 가정 내 폭력이 일상이었던 조지와 흑인 하인에게 거리를 둔 채 주인처럼 살았던 앤의 삶을 말이다. 앤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그녀가 왜 그렇게 부모에게 더 적대적이 되었는지 알려준다.


삶은 언제나 선택과 실패의 연속이다. 조지가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두 남자 모두 문제가 있었다. 두 남편에게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행복 중 하나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만남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앤의 아버지 터너와 조지의 사랑 이야기다. 우연한 만남은 둘을 사랑으로 이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남녀의 사랑일까 하는 부분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디가 “결혼은 당신들 두 사람의 무의식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지 못해요. 조젯은 당신에게 딸을 대신할 수 없고, 당신은 조젯에게 그를 버린 아버지를 대신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작가는 여기에 살짝 유머 하나를 얹는다.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작가 지망 웨이터가 이 말을 기억해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려고 한다고.


조지와 앤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앤이 선택한 남편의 눈동자에 대한 칭찬이 불러온 오해가 원인이다. 단순한 칭찬이 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편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다. 이후 이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다. 앤의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다. 경찰 살해범으로 신문에 나온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와 재판 장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그 남편과 살고 있었다는 것에 먼저 놀라고, 그녀의 진술이 주는 강한 독선과 아집이 사실처럼 다가왔다. 현재도 비백인에 대한 경찰들의 시선과 폭력 행위가 수많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가 수감 생활하는 동안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데 그 강철 같은 의지와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앤을 보여줘 놀랐는데 이 이야기가 끝날 때 고개를 끄덕였다.


68년 이후 우리의 삶은 분명히 엄청나게 풍족해졌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감옥의 모습은 점점 더 늘어나는 죄수의 숫자로 현실을 대변한다. 경제적 풍요는 상대적 빈곤으로 이어졌고,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가 심화된다. 이런 현상을 작가는 세밀하게 보여주기보다 간략하지만 분명한 현실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강한 인상을 준다. 이 소설에서는 남녀의 인칭 구분이 없다. 여성이라고 그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목에는 ‘her’이 들어가지만 내용에는 문맥으로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아내야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아 일반적으로 이렇게 표현하는지, 이번 작품에만 적용되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후 소설 속에 나온 이야기와 인물들과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 멋진 소설이다. 현대 미국의 한 단면을 알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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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독해줘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7
김하율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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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족>의 작가가 쓴 소설이다. 이전 소설을 재밌게 읽었는데 제목은 기억해도 작가는 잊고 있었다. 나의 저질 기억력 탓이다. 보통 관심 있는 소설을 발견하면 작가 이력을 보는데 이번에는 놓쳤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받을 때 예상한 쪽수보다 조금 더 많았지만 가독성이 좋아 아주 잘 읽혔다. 재미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요즘이 아니라는 생각을 바로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 19 때문에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많던 중국 판매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 오래 전 명동을 가게 되면 호객을 하는 사람들과 길 양옆에 가득한 화장품 가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노점들과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일본 엔화의 가치가 낮아지고, 중국 관광객들이 늘어나던 시기의 이야기다. 주인공 소민은 서른 살이고, 공시생 생활을 접고 친구 유화의 부모님 도움으로 명동 코스메로드 화장품 매장 페이스페이스 직원으로 취직한다. 이 매장에서 소민은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다. 다른 직원들은 조선족이거나 한족이다. 가장 중요한 고객이 중국인이다 보니 이렇게 구성되었다. 한때 면세점 직원들이 대부분 중국어 가능자들도 채워진 것도 생각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그녀가 화장품 매장에서 바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론을 먼저 공부한 후 실행으로 옮기는 성격도 현장 적응에 더디게 만들었다. 이 이론을 작가는 이야기 사이 사이에 넣어서 재밌는 상식들을 알려준다. 주요 고객들이 중국인이니 중국어를 해야 매상을 올리고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는데 그녀는 중국어를 못한다. 다른 직원들 과도 거리감이 조금 있다. 고시원을 나와 갈 곳 없는 그를 구해준 것은 부랄 친구라 부르는 강하오다. 그는 날씬한 몸매, 큰 키, 작은 머리를 가진 한마디로 모델 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다. 그를 보고 한족인 빙빙이 소개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뭐 이 때문에 나중에 오해를 받는다.


소민은 직원의 인스타를 통해 드래그퀸 버거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버거가 자신과 같은 옥탑방에 사는 부랄 친구 강하오다. 왜 하오가 자신의 방을 꼭꼭 닫고 다닌 것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소민은 하오에게 자신의 맨 얼굴을 화장해 인스타에 올리자고 말한다. 이 시도는 좋은 반응을 얻지만 소민의 정체가 밝혀지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된다. 하지만 좋은 점 하나는 소민의 매출 실적이 올라간 것이다. 하오가 사용한 화장품이 페이스페이스 것이다 보니 회사 회장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소민의 본사 정직원 채용을 미끼로 인스타에 많이 알려진 버거를 광고에 활용하려고 한다. 이 일은 이후 이런 저런 사건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게 한다.


소설은 가볍고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청춘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조선족 아줌마와 그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본 사람들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소민의 절친 유화는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부모님 식당에서 불판을 뒤집고 있고, 하오는 미대생이지만 호텔에서 일한다. 이들에게 대학 전공은 그냥 하나의 시도였을 뿐이다. 전공한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간결하게 녹아 있다. 다행이라면 이들은 절망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유화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 있고, 하오는 옥탑방이, 소민의 경우는 일단은 하오가, 정 안 되면 이혼한 부모 둘 중 한 명을 찾아간다는 계획이 있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아주 힘든 현실에서 무거운 어둠을 안고 살지 않는다. 물론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읽히고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톡톡 튀는 문장들이 시선을 계속 끈다. 감상적인 부분은 최대한 절제하고 상황을 밝게 그려내고, 다양한 캐릭터를 잘 배치해 이야기를 재밌게 만든다. 현실에 대한 묘사도 잊지 않는다. 사실대로 보여준다. 소민의 해고가 왜 문제없는지 말할 때, 해고 통지가 문자로 올 때 낯익은 과거의 한 장면을 만난다. 버거에 대한 소문의 원천을 찾았을 때 그 상황은 또 어떤가.  읽으면서, 모두 읽은 후 나의 머릿속은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면 재밌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들이 선택한 길은 이 소설의 제목과 이어진다. ‘구독과 좋아요’를 이 작가의 다음 작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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