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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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20년 전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트레이시의 모습과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예상한 것들이 모두 깨졌다. 음모론에 너무 빠져 들어 너무 나간 것이 실수다. 이 책의 마지막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진실은 잔인하다’는 것이다. 이 잔인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 당사자가 결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한다. 20년 전 동생의 실종 진실을 알고자 하는 형사 트레이시와 어떻게든 이 진실을 숨긴 채 넘어가려는 재판 관계자들의 대결은 멋진 법정극과 함께 계속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고 난 다음에 남는 여운은 아련함을 남긴다.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 트레이시는 고등학교 화학 교사를 하다 경찰이 되었다. 경찰이 된 이유는 동생 세라가 실종되었는데 마을 보안관 등이 성범죄 전과가 있는 에드먼드 하우스를 살인자로 찍고 이상한 재판을 진행한 것 때문이다. 동생이 실종된 후 세라에 대해 방송된 것을 모두 스크랩했고, 재판 기록을 뒤지면서 이 재판의 허점을 무수히 보았기에 충분히 납득할 수 없었다. 마음 한 곳에서는 혹시 세라가 살아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도 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그러다 고향 시더 그로브에서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간다. 세라의 유골이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섞어 가면서 트레이시와 세라의 관계를 보여주고, 이 사건을 다룬 재판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려준다. 시체 없이 정황증거만으로 에드먼드는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다. 트레이시가 원하는 진실을 위해서는 에드먼드가 받은 재판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생의 유해가 발견되고, 장례를 치른다. 이때 어린 시절 친구였던 댄을 만난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 그녀는 댄에게 자신이 가진 자료를 주고 검토를 부탁한다. 그리고 살짝 자신의 감정을 흘린다. 상당히 유능한 변호사인 댄은 이 재판의 허점을 많이 발견한다. 이런 이들의 행동이 마을 보안관의 눈에는 거슬린다.


한 소녀의 실종과 허술한 재판 진행은 한 가족을 완전한 파멸로 이끈다. 언니 트레이시는 20년 동안 진실을 찾아 돌아다니고, 실종 당시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간 아버지는 자살했다. 얼마 후 엄마마저 죽었다. 그렇게 원했던 화학 교사도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만 두었다. 보안관은 그녀가 이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안관에게 돌리기 딱 좋게 만든다. 음모론의 많은 조건을 갖추었다. 다시 재판을 받기 전 증인 등을 찾아간 그녀에게 그들이 보인 반응은 상황을 더 의심스럽게 한다. 사실이 거짓과 뒤섞이면 사람들은 사실조차 거짓이라고 판단한다. 비극의 발단 중 하나다.


형사 트레이시의 활약보다는 과거 의혹을 파헤치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시애틀 형사이지만 자신의 사건을 파고들기 보다 시간을 내어 고향에 와서 과거 사건을 다시 검토하는데 더 시간을 쓴다. 여기에 새로운 로맨스를 하나 집어넣고, 눈 폭풍 속에 갇히게 되는 마을을 만든다. 그리고 그녀를 싫어하는 상사가 동생의 유해 발견에 따른 재조사를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빚어지는 갈등도 같이 보여준다. 아마 다음 시리즈에서는 이 부분들이 좀더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러저리 뛰어다니는 트레이시의 모습을 보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는 법정 장면이다. 존 그리샴의 후계자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슬로언 시리즈’도 읽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하다.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의 진한 활약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쓸데없이 의심만 늘어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작가가 살짝 밀어 넣은 장면들이 그 의심을 부채질했지만 말이다. 후반부 눈 폭풍 속에서 펼쳐진 잔혹한 진실은 긴박감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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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숨 - 혼자하는 숨바꼭질
전건우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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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흥행에 발 맞춘 기획 소설집이다. <오징어게임>을 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몇 가지 추억 놀이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안다. 이 앤솔로지도 추억의 놀이들을 배경으로 호러, 공포, 미스터리 등을 풀어낸다. 읽으면서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거나 사라진 놀이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늘 반가운 작가들과 새로운 작가들의 만나게 되어 신났다. 예전이라면 이런 기획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런 종류의 출판이 재밌어진 것을 보면 나도 많이 바뀐 모양이다.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대박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것 정도랄까!


첫 단편은 반가운 작가 전건우의 <얼음땡>이다. 이 단편에서 추억의 놀이 얼음땡은 솔직히 말해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더 많이 했다. 추억은 잠시 뒤로 하자. 소설 속 주인공 조상우는 나이 마흔에 사채업자에게 쫓긴다. 이 모든 상황에서 달아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목을 매어 죽는 것이다. 목을 매는 순간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30년 전 친구들과 함께 얼음땡 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게 쫓긴다. 살기 위해 얼음을 외친다. 이 얼음을 풀어주는 누군가가 땡을 외쳐야 한다. 이 게임은 30년 동안 끝나지 않았다. 약간 감상적인 면이 있지만 서늘하고 긴박감 있게 상황이 전개된다.


처음 만나는 작가는 홍정기다. 사실 이 이름보다 네이버 블로거 ‘엽기부족’이 더 친숙하다. 작가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그가 선택한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그것도 혼자하는. 이 혼숨은 일본 도시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어로는 ‘히토리카쿠렌보’이다. 작가는 학교 괴담과 학교 폭력을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형을 이용하 주술은 낯설지만 쫓고 달아나는 과정은 상당히 긴장감 넘친다. 일본 도시전설을 끌고 온 것은 조금 아쉽지만 섬뜩한 살인과 그 이유를 알려주는 마지막 설명은 멋진 반전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


<야, 놀자!>의 양수련도 반가운 작가다. 그의 바리스타 탐정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이 단편에서 추억의 놀이는 ‘땅 따먹기’다. 이 놀이가 묘 뺏기 놀이로 변주했다. 묘를 밟고 논다는 것이 조금 낯설지만 나중에 그 사연이 나와 뭉클했다. 주인공 혁이 평생 잊지 못하는 소녀가 묘이다. 잠시 논 친구지만 강하게 각인되었다. 40년 전 사천 외할아버지댁에 놀러가서 한동안 즐겁게 보낸 추억을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그때 기존 놀이를 변형해서 즐겁게 친구들과 놀았던 윤이 입원했다는 현실은 과거의 향수를 더욱 부채질한다. 매끄럽게 전개되면서 중늙은이의 향수를 자극한다. 예상한 존재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과거사가 반전처럼 흘러나온다.


다른 앤솔로지에서 만난 작가가 조동신이다. <불망비>는 ‘비석치기’를 소재로 한다. 기본적으로 탐정물이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민속놀이 축제가 벌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비석치기다. 결승전에 참가한 정두수가 니코틴 중독으로 죽는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 죽었다. 살인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완전범죄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이 놀이에 참가한 두 여자를 용의자로 생각하자 부모는 탐정에게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탐정 조대현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콤비 상당히 매력 있다. 정두수의 바람기와 과거의 자살 사건 등이 엮인다. 문장이나 전개가 조금 거친 면이 있다. 트릭을 보면서 시체 검시할 때 그 흔적을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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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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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라는 단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의미는 ‘빠르다’는 것이었다. 젓가락의 의미하는 단어 ‘저’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젓가락 쾌가 있다는 것은 몰랐다. 쾌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 소설 속에 나와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젓가락하면 ‘저(箸)’가 먼저다. 이 소설 덕분에 한자를 한 자 더 배웠다. 그리고 큰 착각을 하나 했다. 그것은 이 연작단편집 기획을 일본 출판사가 했다고 추측한 것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작가 미쓰다 신조 덕분이다. 약간 비겁한 변명이긴 하다. 실제는 대만 출판사에서 기획한 것이다. 미쓰다 신조를 제외하면 대만과 홍콩 작가로 작가들이 구성되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제로 ‘젓가락 괴담 경연’이 붙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처음에는 읽혔는데 뒤로 넘어가면서 뒤에 등장한 작가들이 앞의 작가들 작품을 자신의 소설 속에 끌고 들어와 묘하게 연결시킨다. 이 연결의 백미는 샤오샹선의 <악어 꿈>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등장한 찬호께이가 앞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면서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이전 이미지들을 새롭게 만든다. 뛰어난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는지, 그 결과물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아주 재밌고 풍부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미쓰다 신조의 <젓가락님>은 하나의 도시전설을 학교에 끌고 와 서늘하게 느끼게 만든다. 젓가락님 의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솔직하게 잘 보여준다. 이 의식에 참여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이 주술을 다룬다. 가장 분량이 적다. 왠지 모르게 쉽게 집중해서 읽지 못했는데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뒤 서늘했다. 하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팔십사일 동안 쌀밥에 젓가락을 꽂아 기원해야 하고, 아홉 명의 참여자 중 한 명만 살아 남는다. 무시무시한 도시전설이다. 한때 유행했던 분신사바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다른 방식의 의식이다.


쉐시쓰의 <산호 뼈>도 왠지 모르게 시점을 혼동하면서 재미가 조금 반감되었다. 젓가락님 의식보다 젓가락 그 자체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산호로 만든 비싼 젓가락이고, 이 젓가락에 왕선군이란 조상이 머물고 있다는 설정이다. 도사를 찾아가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신과 귀신에 대한 이론을 풀어내고, 과거 사연을 하나씩 흘리면서 관심을 앞으로 집중시킨다. 이 단편에서는 의식보다 젓가락 자체에 더 비중을 준다. 조상 대대로 물려준 가보란 것과 왕선군에게 소원을 빌면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설정들이 흥미롭게 풀린다. 마지막 부분은 살짝 전형적인 부분이 있다.


예터우쯔의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SNS 등과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유튜버가 방송 중에 죽는데 이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다. 홍콩에 실재하는 지명을 등장시키고, 하나의 가짜 도시전설이 어떻게 스스로 생명을 얻고, 확산되면서 그 자체로 몸집을 키우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SNS와 유튜버들이 이 죽음을 장사 등에 이용하는데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 작품도 내가 처음부터 놓친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살짝 서술 트릭을 쓴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설정이 나온다. 귀신 신부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가장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악어 꿈〉을 쓴 샤오샹선은 이 단편에서 앞에 나온 이야기를 아주 멋지게 연결시키고 마무리한다. 젓가락님 전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서 변질되었는지 보여준다. 독재정권 시절 있었던 8명의 아이들 실종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고.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을 떠올렸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이야기 중 하나는 남녀차별이 만들어낸 비극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운명이란 단어가 왜 고대 시대에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는지 알게 한다. 이 단편도 서술 트릭을 사용하고, 앞에 등장한 이야기를 이 속에 끌고 들어와 깔끔하게 끝낸다.


미쓰다 신조와 함께 가장 유명한 찬호께이의 <해시노어>는 샤오샹선이 마무리한 부분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앞에 나온 이야기들이 호러, 미스터리 등이었다면 이 소설은 판타지. SF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부분이 있지만 읽는 재미는 대단하다. 솔직히 말해 중국 만세를 외치는 듯한 부분으로 읽히는 점이 있어 조금 거슬린다. 나의 오독이라면 사과한다. 홍콩 작가답게 무대를 다시 홍콩으로 옮겨 풀어내면서 살짝 트릭을 사용한다. 맘껏 읽다가 쉽게 당했다. 사건을 해결한 후 길게 풀어낸 부분은 조금 지루한 부분이 있지만 앞에 펼쳐진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작품들은 유명 작가들의 단편이 아니라 아주 낯선 작가들의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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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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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었다. 이 작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필립 말로 시리즈가 생각난다. <빅 슬립>이 워낙 유명해 먼저 읽었는데 솔직히 말해 취향과 맞지 않았다. 당시 나의 취향은 이런 하드보일드 소설이 아니었다. 그러다 시리즈 다른 소설을 읽고 재미를 느꼈다. 도서관에서 한두 권 빌려 읽었는데 나중에 시리즈를 모두 모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나의 나쁜 습관이 작용했다. 사 놓고 묵혀두기. 그리고 어떤 소설을 읽었고, 읽지 않은 소설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열심히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해놓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필립 말로 이야기가 나오면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지만 늘 마음뿐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나는 이 단편집도 필립 말로가 등장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장편일 것이란 추측이다. 첫 단편을 읽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각각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까지 모두 다른 인물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책을 모두 읽은 후 낯익은 제목을 검색하고,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 중 최소 한 편은 다른 단편집에 실린 것을 찾았다. 번역된 제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이 있었고, 인터넷서점에 나온 샘플 문장으로 같은 작품이란 것을 확인했다. 만약 내가 그 단편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서로 비교할 수 있었을 텐데.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비교해보고 싶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편을 재밌게 읽었고, 여운을 남기는 소설은 <호텔 방의 여자>였다. 다른 단편집에 실린 <사라진 진주 목걸이>이 제외한 소설들은 호텔이 중요한 공간이거나 호텔 직원이 등장한다. 대부분 탐정이 등장하고. 술과 담배와 총과 여자가 항상 나온다. 이런 설정이나 전개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당시 출판계의 현실이 많은 작용을 했다고 한다. 적은 원고료와 독자의 요구 조건 등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다시 다른 단편집에 눈길을 준 것은 대표 캐릭터인 필립 말로가 등장하지 않는 소설들이 나온 드물기 때문이다. 


다섯 편의 소설들이 모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준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첫 단편인 <황금 옷을 입은 왕>의 스티브가 마음에 든다. 호텔 경비직 실직으로 어쩔 수 없이 탐정이 된 그의 활약을 읽으면서 다음 등장을 기대했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재즈 뮤지션 레오파디 살해 위협을 파헤치고 진실을 쫓는 과정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영리한 살인자>는 한 영화제작자의 죽음을 파고들어 그 뒤에 숨겨진 사실을 찾아낸다. 어떻게 보면 뻔한 설정일 수 있지만 건조한 문장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강한 인상을 준다. 갱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보면서 옛날 갱스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라진 진주 목걸이>는 탐정이거나 한때 용의자였다가 친구가 된 두 인물의 술 냄새 가득한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들이 차를 몰기 전, 또는 운전하면서 마시는 장면 묘사를 보면서 잠시 추억에 빠졌다. 지금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호텔 방의 여자>는 가장 분량이 짧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다.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이다. <시라노 클럽 총격 사건>은 왠지 모르지만 앞의 작품처럼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도입부 부분을 정독하고 기억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카마디의 활약을 보면서 앞에 나온 인물의 능력이 더욱 비정상적으로 다가왔다. 사건이 해결되는 장면도 역시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펄프 픽션에 매력을 느낀다. 대실 해밋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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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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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가 쓴 첫 소설이다. <지대넓얕>이 워낙 인기를 얻어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팟캐스트로 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책으로 읽자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그러다 채사장의 첫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봤다. 워낙 글을 쉽고 재밌게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 펼쳐 읽으면서 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 힘들었다. 작가가 만든 세계와 그가 풀어낸 철학들이 나의 머릿속에 춤을 추지만 함께 섞여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곱씹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마. 주인공의 이름이다. 인터넷 검색하면 인도 신화 속 신과 제례에 올리는 특별한 음료와 마약이란 간단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나에겐 <소마신화전기>란 만화가 더 익숙하다. 이런 것들을 뒤로 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한 소년의 삶이 그 속에 녹아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신을 믿는 소년 소마가 아버지가 쏜 화살을 찾으러 떠난 후 마주한 장대한 삶을 그려낸다. 그 이야기는 갑작스러운 비약과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로 가득하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오래 전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파우스트>의 느낌을 받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판타지 소설 속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다.


소마가 살던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가 화살을 좇아다녀온 후 본 마을의 모습은 학살의 현장이다. 죽은 어머니 시체 옆에 머물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그를 말에 태우고 떠난다. 그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한다. 그를 데리고 간 인물은 한 국가의 귀족이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여기서 시점이 바뀐다. 아이의 시점이 아닌 아이를 관심있게 관찰하는 한나의 시선이다. 소마는 자신의 기억을 잊고, 하나의 아들처럼 자란다. 하지만 권력은 욕망을 뒤로 숨긴 채 슬며시 집안으로 들어온다. 오만한 귀족 아이가 양자가 된다. 둘이 좋은 형제가 되어 서로 돕는 이야기도 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아들은 오만하고 이기적이다.


이 두 아들의 갈등을 심화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지만 작가는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짧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백인들의 세계에서 비백인은 좋은 대우를 받기 힘들다. 왕실기사단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지만 이 인연도 결코 좋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악의는 정체를 숨긴 채 살며시 찾아와 오해의 씨를 뿌린다.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난 전개를 펼친다. 그리고 자신의 본래 이름을 알게 되고, 자신이 소마라고 외친다. 영웅의 서사시가 펼쳐질 것 같지만 긴 세월이 흐른 후 마주한 소마는 무자비하고 잔혹한 용병 부대장이다. 적들에게는 아틸라의 현세라고 불리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이후 펼쳐지는 소마의 행적은 영웅이라 불려고 별 무리가 없다. 지혜롭고 용감하고 무자비한 군 사령관으로 적들을 무찌른다. 승리는 당연하다. 예전의 오해를 풀고 화해할 것 같았는데 또 다른 길을 간다.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예측하기 힘든 이야기에서 우린 역사의 사실과 삶의 철학과 인간들의 헛되고 뒤틀린 욕망이 빚어낸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카이사르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것을 개혁하려는 의지는 시간 속에 조금씩 사그라든다. 간결하게 다루어진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발견한다. 전장을 달리던 말들이 마구간에 머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소마의 생활 습관이 어떻게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지 보면서 가슴 한 곳이 아렸다.


단순히 소마란 인물의 영웅담이나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이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야기의 비약 속에 가려진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이어야 하고, 개혁의 실패와 종교 등에 대한 설명은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 칭기스 칸의 몽고가 세상을 정복한 후 왜 그렇게 빨리 멸망하게 되었는지 말하는 대목 중 하나가 한 곳에 머물면서 나태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전장을 달리며 전우애를 쌓은 이들이 권력을 쥐자 몸에 살이 붙고, 기존 귀족처럼 변한다. 권력과 욕망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소마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생각할 거리가 가득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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