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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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다. 솔직히 말해 SF 단편 앤솔로지란 사실 이외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성 작가의 단편에서 가끔 매너리즘이 섞인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의 SF 불모지 이미지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좋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취향을 벗어난 경우를 자주 보다 보니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낯선 9명의 신진 작가가 쓴 SF 단편에 큰 기대는 쉽지 않다. 이런 섣부른 예측은 첫 단편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날아갔다. 나의 오만이, 착각이, 섣부른 판단이 산산조각났다. 즐거운 일이다. 이후 아홉 편의 단편들은 나를 새로운 기대로 물들게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신조하의 <인간의 대리인>이었다. 변호사가 쓴 법정극인데 밀도 있고 간결한 문장이 나를 훅 끌어들였다. 무뇌증이었지만 인공뇌를 이식받은 변호사가 인공지능 판사의 법정에서 인간 변호사와 대결하는 것을 다룬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판사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부분을 담아내면서 미묘한 감정과 숨겨진 사실 등을 뒤섞어 반전을 펼친다. 디테일도 상당히 잘 살아 있다. 유이립은 몇 권의 단편집에 이름을 올린 작가다. 물론 나에게는 첫 작품이다. 그의 <스키마 리셋터>는 타인의 의식을 조작해 의견을 바꿀 수 있는 기계 이름이다. 한 자동차 대기업의 노사관계나 하청업체 대표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재밌게 비튼다. 관찰 보고서처럼 진행하는 것도 아주 잘 풀어내었다.


임하곤의 <나와 올퓌>는 휴머노이드 올퓌와 동행하면서 생긴 이야기를 다룬다. 이 미래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기존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로 생활한다. 나는 손녀를 만나기 위해 구형 태양관 자동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그 길위에서 만난 휴머노이드가 올퓌다. 팬더믹 현실의 미래 버전이자 인간의 혐오 범죄를 뒤섞었다. 최희라의 <영원>은 심리학자 한설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현재 세계에 대한 저항과 이 세계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특별한 아이 영원에 대한 것이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로봇 인피니티와의 유대와 아이를 통해 입력된 인간 아님에 대한 정의가 로봇 3원칙과 충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짝 철학적 고민도 필요하다.


표제작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는 이세형의 첫 단편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여자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남편 이야기로, 마지막에 새롭게 바뀐 세상에서 감정을 팔면서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결혼식 하객 대행업에서 시작해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우리의 감정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클레이븐의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는 표제작의 제목 패러디 같다. 도덕 베타 버전 4.0 이상이 되어야 택배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좌절한 정수가 본 미래의 풍경은 강력한 통제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일탈은 일어난다. 그런데 화형이라니… 의도와 도덕적 행동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고, 예상하지 못한 결말과 섬뜩한 미래의 모습에 암울한 재미를 느낀다.


강윤정의 <대통령의 자장가>는 미스터리를 다룬다. 대통령의 인공자공 기계가 움시스가 납치된다. 이 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다. 어떻게 청와대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이어지는 납치범의 협박과 추적과 사건 해결과 정치적 목적 등이 뒤섞인 마지막은 잘 만들어진 단편 추리소설과 같다. 이성탄의 <정신의 작용>은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업로드해 사후에도 유지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다룬다. 인간 뇌 속에 담긴 수많은 정보와 지식 등을 업로드하는 과정에 생기는 문제를 보여준다. 마지막 설정은 왠지 과한 설정을 빠진 것 같다. 안리준의 <미래의 죽음>은 미래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하나는 아내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본 아내 미래의 죽음 후를 본 매리의 장면이다. 프로그램 제작과 확정된 미래에 대한 생각 등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상당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본 미래의 모습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은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고전 SF에서 많이 다룬 시간 패러독스에 대한 작은 오마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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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책방
박래풍 지음 / 북오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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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현대 서점에서 근무하는 사람 둘이 우연한 사고로 갑자기 16세기 조선으로 타임슬립한다. 때는 중종, 기묘사화가 일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절이다. 보통의 판타지라면 타임슬립한 인물들의 좌충우돌하는 활약을 보여줄 텐데 이 소설은 책방이란 설정에 충실하다. 타임슬립한 박선우 점장과 김연희 대리는 조연으로 그곳에 머문다. 훈구파가 득세하는 시절로 간 이들은 우연히 만난 어기남의 도움으로 이 시대에 안착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군부대 도서 납품을 위해 가지고 있던 현대 베스트셀러 서적들이 전부다. 하지만 이 베스트셀러는 새로운 학문에 목말라하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좋은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타임슬립물처럼 왜 이들이 이 시대로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기남이 이들을 환대한 이유는 용화사 스님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형님은 훈구파의 모략에 의해 자살로 죽임을 당한다. 그의 아버지 어득강은 훈구파의 바람이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리다가 이런 비보를 접했다. 형 어기선에게는 서로 연모하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훈구 세력의 핵심인 심준의 딸 민주다. 민주는 나중에 조선책방에 와서 일하고, 심준의 음모를 깨트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원수의 딸이란 오명과 어기선의 죽음이 어떤 사실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는 아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특정 세력에 독점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책을 손쉽게 읽게 된 데는 활자 혁명과 교육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로 마찬가지다. 조선의 사대부는 중국을 사대하고, 자신들이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고자 한다. 명 나라의 서적들은 높은 가격으로 수입되고 있지만 서민들은 한글로 된 언문서적만 겨우 볼 뿐이다. 어득강이 민간에 서사를 만들어 지식을 만인에게 알리려고 하지만 시민들이 깨어나길 바라지 않는 훈구파는 이 시도를 원천봉쇄한다. 이때 선우 등의 도움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난 후 급제한 기남이 중종에게 이 책을 받쳐 신뢰를 얻고, 민간 서사에 대한 허락을 받는다. 이 책방 개설은 기남의 친구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민간 서점 조선책방과 대립하는 백록동이란 서점도 있다. 훈구파가 세운 국가 운영 서점이다. 작가는 이 두 서점의 대립과 대결을 그려내는 대신 조선책방에 21세기 베스트셀러를 언문으로 번역해 들여놓는다. 그리고 현대 서점의 서비스와 마케팅을 같이 진행한다. 이 행위 속에 현재 대형 서점 등이 가진 문제와 한계 등을 살짝 풀어놓는다. 우리가 무심코 보고, 지나간 곳이 어떤 고민으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지 알려준다. 현대 서점의 서비스 등을 부각시켜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을 텐데 이 부분을 간결하게 처리한다. 대표적인 것이 저자나 추천인의 사인본이다. 이 정보를 관보에 올려 마케팅에 성공한다. 이 부분에서 역사의 자료를 사실적으로 녹여내었는데 흥미로운 지점이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등장시켜 작은 재미를 배가시킨다. 조금 낯선 인물인 양인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이나 너무나도 유명한 의녀 대장금이나 기생 황진이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이들을 등장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그 시절의 인물들에게 알맞은 현대 서적을 추천하면서 책이 지닌 힘을 조용히 강조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책을, 죽인 연인을 그리워하는 이에게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같은 시집이다. 물론 현대적 감수성을 조선 시대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판타지 소설이니 큰 무리가 없다.


전체적으로 치밀한 설정과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보다 쉽게 타임슬림에 적응할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16세기 조선에 21세기 베스트셀러를 판매한다는 목적에 맞는 전개와 구성이다. 그래서 아쉬운 대목도 있다. 어기남과 훈구파의 대립이나 조선책방과 백록동의 대결 등을 부각시켜 오락적인 요소를 더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현대적 택배 시스템 같은 화살배달 같은 에피소드도 하나 정도 넣었다면 어땠을까? 혹시 이 책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개인적으로 영화 제작을 밀고 싶다. 분량이나 내용 등이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터임슬립을 철학적 논제인 부분과 전체 속에서 돌아본 부분과 시간의 선형성에 대한 인식을 깨트리는 부분은 가벼운 듯한 이 소설에 무게를 더한다. 유쾌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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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무죄
다이몬 다케아키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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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작품이다.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가 되었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내려진 기존 판결의 흔적은 그대로 따라다닌다. 원죄(冤罪) 사건을 다루면서 21년 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복잡하고 어려운 구성보다 인간의 심리와 사법 제도에 초점을 맞추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한자가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원죄는 어느 순간부터 기독교 교리에 나오는 원죄(原罪)에 더 익숙해졌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원죄(冤罪)는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의미한다. 솔직히 말해 소설을 읽으면서 이 단어 때문에 혼란을 겪은 적이 상당히 많다.


21년 전 세 건의 유괴사건이 발생했고, 이 중에서 한 아이는 탈출에 성공했고, 한 아이는 죽은 채 발견되었다. 다른 한 명의 아이는 실종 상태다. 죽은 아이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한 명의 용의자를 검거하게 되었고, 자백과 명확한 증거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 용의자 이름은 히라야마 사토시다. 그는 학교 잡역부였고, 주민들의 신고에 의하면 소녀들을 도촬한다는 소문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를 진행하는 변호사는 바로 21년 전 탈출에 성공한 마쓰오카 지사다. 그녀는 유명 변호사 소속이고, 국민적 관심의 대상인 유아 추락 사건의 변론을 맡아 무죄를 받는다. 이런 그녀에게 시니어 변호사가 히라야마의 재심 청구를 맡겼다. 그녀가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말이다.


21년이 지났지만 지사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가 이 사건의 재심 청구를 맡은 이유는 한 사람의 원죄를 해소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악몽을 깨트리기 위한 것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악몽을 꾼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히라야마를 면회한다. 첫 인상은 그가 범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상만으로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다. 히라야마가 건성건성 그녀를 대하는데 그녀가 왜 이 사건을 맡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한 후 분위기가 바뀐다. 이전까지 다른 변호사들은 그를 유죄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상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판 기록과 증거 등을 다시 확인하면서 히라야마의 차에서 발견된 모발의 유전자 재검사에 새로운 희망을 건다.


지사가 변호사의 입장에서 사건을 파헤친다면 과거 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아리모리는 그가 범인임을 확신한다. 이 확신은 재심 청구 과정에 지사의 사연이 나올 때 잠시 흔들리지만 자신의 확신에 결코 휘둘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확신은 강요된 자백과 조작된 증거 자료와 결합해 그를 유죄로 만든다. 이 부분은 ‘정의란 이름의 죄’란 장에서 말하는 “경찰의 정의는 범인을 체포하는 것”과 이어져 있다. 그가 재심 재판을 무사히 마친 것과 달리 그의 파트너였던 형사는 자신이 저지른 불법 행위를 고백한다. 기존 판결이 뒤바뀌게 되는 순간이다. 이 판결과 달리 아리모리는 히라야마에 대한 확신을 거두지 않는다. 그의 죄를 밝히고자 노력한다. 이 노력은 증거 조작 등의 고백으로 동료 경찰의 냉대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의문의 전화 한 통이 오면서 사건은 좀더 복잡해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히라야마가 진범일까? 하는 의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무죄로 풀려난 히라야마가 지사에게 “고마워, 나 같은 살인자를 무죄로 만들어줘서.”라고 말할 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나가듯 얼핏 들은 이 말에 의혹은 깊어지고, 21년 전 사건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다. 아리모리에게 온 의문의 전화는 다른 범죄자의 존재 가능성을 알려준다. 그러다 과거의 흔적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의심은 더욱 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주한 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다. 가장 비열한 사실일 밝혀지고, 뒤틀린 확신과 개인의 탐욕과 강렬한 복수심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현장을 멋지게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일 수도 있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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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느와르 인 도쿄
이종학 지음 / 파람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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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회파 미스터리란 소개에 혹했다. 개인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재즈 칼럼니스트, 오디오 평론가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문외한이다 보니 낯선 이름이다. 작가가 적은 시나리오 이력을 보니 낯익은 영화 제목들이 보인다. 초창기 추리소설 제목을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한때 열심히 모았던 추리소설 책더미 속에서 그의 소설 한 권 정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 검색해도 대부분 재즈에 대한 책들이 나온다. 너무 오래 전 출간된 추리소설은 겨우 한 권 보일 뿐이다.


가부키초에서 열린 이계의 문이란 띠지 글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이계 판타지 모험물이었다. 하지만 장르는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하니 맞지 않다.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니 평범한 대학 교수 박정민이 나온다. 역사를 전공하는 교수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정치적 뒷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설정이다. 정민은 아내와 결혼 10주년 여행으로 일본에 왔다. 그의 장인은 판사 출신 정치인이고, 결혼 후 그의 좋은 배경이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삶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아내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런데 하나 불만인 것이 있다. 섹스에 목석 같은 아내다. 이런 아내가 온천 여행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와의 일본 여행에 가이드로 붙은 친구가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자 한국인이다. 디지 길레스피를 좋아해 별명을 디지로 지었다. 작가는 디지를 등장시켜 정민이 재즈를 접하게 하고, 일본과 미국의 재즈가 어떻게 다르게 발전하게 되었는지 소개한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녹이기 위한 인물이자 정민의 욕망을 현실화하는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그는 정민이 가부키초에서 받은 전단지 속 여인 쇼코를 찾는데 도움을 주고, 결국 연결시켜준다. 물론 이 이전에 작은 일탈을 하고, 흔한 초보의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여대생 에리카를 만난다. 처음 그가 에리카에게 속는 장면은 영화 등에서 흔히 보는 어리숙한 일반인의 모스 그대로다.


목석 같은 아내가 불만인 정민의 취미는 일본 AV를 모으는 것이다. 시대별 장르별로 10테라 정도 정리해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단하다. 이 경험이 소설 속 묘사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재즈와 더불어 작가의 작은 취미 생활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민의 전공은 일제가 세운 만주국에 대한 것이다. 박정희와 만주국을 연결한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후 역사와 정치를 관련해서 풀어낸 이야기들은 솔직히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많다. 눈여겨 볼 부분도 많지만 시선의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그가 파헤친 역사의 한 자락이 큰 주제가 될 것 같았는데 정민의 성적 일탈과 모험으로 이야기가 빠져든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평범했던 교수가 어느 계기를 시점으로 여자들이 들어붙는다. 정 마담부터 에리카까지. 아내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다 보니 뒤틀린 욕망이 한 순간에 폭발한다. 쇼코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상당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데 작가는 개인적인 사연으로 끝낸다.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고급 콜걸인 그녀가 그를 지배하면서 이야기는 개인적 욕망으로 흘러간다. 살인이나 액션 등을 기대했는데 어둡고 강렬한 욕망 속으로 빠져든다. 솔직히 기대한 전개가 아니다. 작가의 한국 아내에 대한 속내가 드러나는 문장도 하나 나온다. 읽은 독자라면 아마 알 것이다. 정민의 일탈이 지속되면서 상황은 더욱 뒤틀린다. 대학 교수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는 순간이다.


살인 사건도, 강렬한 액션도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의혹 중 하나는 정민의 아내 미숙의 과거사다. 가끔 그녀가 보여준 행동과 생각은 무언가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사실 이 소설에서 반전처럼 펼쳐지는 것도 이것과 관계 있다.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실제 드러난 진실은 훨씬 자세하다. 쇼코의 사연 중 하나를 과거 그 유명한 연예인 매니저 살인 사건과 연결시켰다. 이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기대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 소설의 아쉬움과 재즈 초보자인 정민을 통해 풀어낸 재즈 전문가의 감상이 뒤섞인다. 명반이라고 소문난 앨범을 몇 번이고 듣지만 전혀 몰입하지 못한 나의 과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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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삼킨 여자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김재희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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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픽업 아티스트의 세계를 그려낸 소설이다. 픽업 아티스트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나무위키의 정의가 좀더 분명한 것 같다. 특정 상대를 주요 타겟으로 하여 섹스나 금전적인 이득 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기꾼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단어다. 이 소설에서 설희연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여름 두 달 동안 바짝 일해서 일 년 동안의 월세를 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도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다. 기껏해야 한 사람당 1~2백만 원 정도다. 소액 사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녀에게 사기당한 남자들에게도 크게 부담되는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이 소설 속 남녀 형사는 바로 이 소액 사기를 수사한다.


서선익과 강아람은 같은 계급이다. 나이나 경력 차이가 상당히 나지만 아람이 프로파일러 특채 합격했기 때문이다. 이 둘이 설희연의 소액 사기를 수사하는데 경찰 후보생 한 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설희연이다. 서로 관할은 다르지만 정보를 교환하면서 설희연을 쫓는다. 주로 선인과 아람의 행위에 집중되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피살자 김만동의 죽음은 타살이 분명하다. 그의 죽음 전후에 그가 죽은 모텔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여자가 있다. 경찰은 그 여자를 설희연으로 추측한다. 설희연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니 주민등록증 사진만 나올 뿐이다. 그런데 나중에 구글에서 다른 이름과 함께 검색하니 어릴 때 사진이 나온다.


형사의 수사가 한 축을 이룬다면 설희연의 삶은 또 다른 한 축이다. 왜 그녀가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가출팸에서는 매춘을 강요당한다. 가장 낮은 곳을 전전한 그녀 곁에는 주성이라는 언니가 함께 있었다.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가 바로 주성이와 함께 월세를 구해 산 시절이다. 이 시절도 주성이의 결혼과 함께 사라진다. 나중에 주성이의 삶이 얼마나 불안과 두려움과 긴장으로 가득한지 나온다. 자신의 과거가 밝혀지면 일어나는 일 때문이다. 가장 편한 설희연과도 만나는 것이 두렵다. 남편이, 시댁이 자신의 과거를 아는 것이 겁나기 때문이다. 희연도 쉽게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못한다.


설희연은 평범한 얼굴이지만 아주 큰 가슴을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부끄럽고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가슴이지만 이제는 그녀의 생존 무기가 되었다. 심리학 서적들을 읽고 말과 행동과 톡 등을 조심스럽게 진행하면 자신의 먹이를 찾는다. 아주 작은 호의와 칭찬이 겹들여지면 남자들은 살짝 넘어온다. 늦은 데이터가 끝날 때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해야 한다고 말하면 남자들은 100만 원 정도는 생각보다 쉽게 빌려준다. 그 돈의 목적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가끔 그 남자에게 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상황을 생각하면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이 소설 속에 은연중에 나온다. 과거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에 박제되어 남아 있다.


소액사기범으로 설희연을 쫓는 두 형사, 선익과 아람은 서로 다른 세대와 젠더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의 대화를 읽다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엇갈린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둘의 성격이나 경험의 차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여기에 프로파일러이면서 방송인인 감건호와 여현정을 조연으로 등장시킨다. 방송국 풍경과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설희연을 쫓는 것이 선익과 아람이라면 김만동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내는 것은 여현정 등이다. 여현정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불법적인 수단들이다. 다른 소설에서 이미 만난 감건호인데 왠지 반갑다. 이것은 나중에 바리스타 탐정 마환의 등장으로 정점을 찍는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한 주인공을 이렇게 등장시키다니 재밌다.


이번 소설은 픽업 아티스트란 직업과 그 여성의 삶을 천천히 보여준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살인 등을 상당히 자제했다. 낯익은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반가움을 배가시키고, 천천히 풀어낸 여성의 심리 묘사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읽다 보면 설희연이 살인 사건의 범인인가 하는 의문보다 그녀의 불안정한 삶에 더 눈길이 간다. 사기꾼이지만 소박한 목표를 가진 그녀의 행동과 심리는 왠지 동정을 느끼게 한다. 억지로 사건을 만들기보다는 설희연과 픽업 아티스트란 일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흥미를 유지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조연으로 나온 사람들에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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