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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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을 읽었다. 상당히 두툼해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일본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인데 가끔 이름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작가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작품들을 검색하니 읽은 책들이 보인다. 생각보다 많다. 읽으려고 사 놓고 묵혀 둔 책들도 보인다. 이 소설에 대한 재밌는 소개가 하나 있다. 무려 열한 개 신문사에서 동시 연재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대단하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던지는 문제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야기의 구성 또한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처음에는 몰입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 빠르게 빠져들었다.


대안학교 미래 학교의 옛 터에서 어린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백골 시체가 발견된다. 노리코는 이 시체가 미카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미카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미래 학교 유치부의 미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보여준다. 미래 학교에 대한 두루뭉술한 윤곽은 독자로 하여금 오해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미카의 모습은 이 학교를 나의 경험으로 판단하게 한다. 노리코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이 미래 학교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하지만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어린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 후 그 소녀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노부부가 등장한 후다. 미래 학교가 판매한 샘물이 문제를 일으키고 노리코가 방문한 학교는 문을 닫았다.


노리코가 미래 학교 여름방학 캠프에 간 것은 반 친구 유이의 엄마가 이 학교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특징 중 하나가 ‘문답’인데 이것이 아이의 공부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미래 학교에서는 문답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자유로운 사고와 발표가 특징이다. 홍보 영상의 샘과 학교 생활은 아이를 매혹하기 충분하다. 반의 최고 인기인 유이와 함께 간다는 것도. 학교로 가는 길은 험하고 힘들다. 현장에 도착해서 마주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친해지고 싶은 유이와 다른 반이 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 그녀 곁에 미카가 나타난다. 유치부의 소녀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미카와의 만남은 노리코가 이 캠프를 재밌게 즐기게 만든다.


노리코가 이 캠프에 참여한 것은 모두 세 번이다. 두 번은 미카를 만났지만 마지막에는 만나지 못했다. 사고가 생긴 것은 두 번째 참여 후에 일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이후 노리코는 변호사가 되어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한 워킹 맘과 다를 바 없다. 남편은 같은 변호사이지만 다른 사무소 소속이다. 나이 마흔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이제 그 어린이집을 나와 다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야 한다. 국공립에 지원하지만 쉽지 않다.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이 경험과 미래 학교의 교육과 조금씩 대비되고 맞물려 진행된다. 현실과 이상의 육아와 교육이 이야기 속에 녹아 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는 두께가 부담된다. 담고 있는 이야기도 결코 가볍지 않다. 30년 전 있었던 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은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죽은 아이의 정체가 궁금하고, 미래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소송도 흥미롭다. 샘물 사건 이후 원래 있던 학교와 생수 공장은 폐쇄되었지만 다른 곳의 학교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 교육체계에 대한 불신이 한몫 했다. 나쁘게 해석하면 한 사이비 종교 단체의 행위로 볼 수 있지만 노리코가 경험해서 들려준 캠프의 모습을 보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샘의 물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보면 종교적 기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옴 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을 떠올렸다고 한 부분은 묘한 설정이다.


하나의 사건과 여러 개의 소송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이 각각의 입장을 말하게 놓아둔다. 특별하게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자신이 미래 학교 여름 캠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여향을 미칠지 돌아보는 장면들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남편과 이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하는 부분을 이야기할 때 남편이 말한 대목은 일에 대한 애정과 깊은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미래 학교가 어린 아이들을 부모와 떨어트린 후 생활하게 하고, 자신들의 삶의 형태를 유지하는 모습은 나에게 낯선 설정은 아니다. SF나 판타지 소설에서 가끔 나오는 설정이다. 나에게 인상적인 것은 이런 설정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기억과 선택의 문제다. 담담하고 서늘한 문장과 표현들은 이것을 잘 드러낸다. 곳곳에 놓아둔 묵직한 문제는 깊이 생각할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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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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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한때 가장 즐겨 읽었던 문학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하는 문학상들이 조금씩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문학상 수상작에 눈길이 간다. 문학상 수상과 함께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장례식장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진짜 우리의 밤이 시작된다는 소개글이었다. 20대 남녀의 방황과 성장, 죽음의 의미를 깊고도 무겁지 않게 그린 작품이란 소개는 눈길을 확 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왠지 모르게 긴 시간 집중을 하지 못했다.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 있거나 지루한 이야기가 아닌데 말이다. 체력 저하로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도 아니다. 단순히 취향 탓을 하기엔 궁금한 점도 많았고, 잘 읽혔다. 왜 그랬을까?


이 소설 속 두 남녀 재호와 마리는 모두 정규직을 바란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수많은 아르바이트 이력이 나온다. 공채도 넣어보고, 공무원 시험도 보지만 그들의 형편상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고 경쟁도 치열하다. 이 두 남녀가 장례식장 알바를 끝내고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에 간다. 이 밤의 풍경은 결코 낯설게만 보이지 않는다. 장례식장은 서대문 근처인데 마리의 집은 동인천이다. 택시 타고 가면 알바비의 반 이상이 날아간다. 첫 전철을 타고 가는데 이때 맥도날드는 좋은 휴식 공간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재호가 마리 곁에 있어 준다. 그리고 밤의 도시를 거닌다. 이 밤의 풍경은 내가 술을 마시고 차를 기다리던 그 풍경과 다르다.


이들이 밤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지역은 대부분 광화문과 종로 일대다. 나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공간을 확장하지만 마리의 집에 가는 전철이 1호선이다 보니 그곳에서 계속 돌아다닌다. 그리고 재호의 집은 서대문에 있다. 그의 기억과 추억이 강하게 묻어 있는 곳이다. 밤의 도시를 돌다 재호는 마리가 잠든 줄 알고 자신이 누나를 목 졸라 죽였다고 고백한다. 위험한 목 조르기 게임을 하다가 죽였다고. 자신이 목 졸릴 때 느낀 희열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날 이후 그는 흰 뱀을 본다. 장례식장 나무에서도, 집의 나무에서도, 환상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살인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만 나중에 풀린다. 딸의 죽음은 부부를 헤어지게 한다.


재호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줄여서 ‘아죽사’라고 부른다. 은행 지점장을 은퇴한 후 이 모임을 이끌면서 사람들의 죽음을 돕는다. 상조회사 천국상조의 팀장이 아버지를 좋아한다. 재호가 밤 거리를 돌아다닐 때 이 상조회사의 옷을 입고 다닌다. 이혼한 부부이고, 엄마가 재혼해서 다른 아이를 낳았지만 옛날 집에 가끔 온다. 전처와의 관계 때문에 팀장과의 관계가 나아가지 못한다.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재호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일본인 히로시는 고베 대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한국에 머물고 있다. 아죽사 멤버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과거의 죽음이 이야기 속에 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밤의 도시는 낯과 다르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이 밤의 도시를 묘사한다. 한때 내가 즐겨 다녔던 공간들이 나와 반가웠다. 물론 낯선 곳도 있다. 재호와 마리의 가족 풍경은 흔히 말하는 보통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재호는 이혼한 엄마가 재혼 후 낳은 아들과 함께 오고, 마리의 아버지는 도박 중독이라 딸에게 돈을 강탈해간다. 마리가 이런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 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꿈꾸지만 취업난으로 이것도 쉽지 않다. 취업난이란 단어를 볼 때와 구인난이란 단어를 볼 때면 늘 이 어울리지 않는 비대칭에 의문이 생긴다. 단순히 고강도, 저임금 문제만 있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더 자세히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밤의 풍경 속에 환상적인 장면도 나오고, 낯의 결심을 다룬 장면도 나온다.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사연을 듣는다. 여기도 죽음이 관련되어 있다. 재호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도시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살면서 발로 걷고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변화다. 알바 동료인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지진이 주는 공포가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려주었다. 히로시의 부모님이 고베 대지진으로 죽은 것과 대비된다. 소설은 많은 공백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 설명이나 상황은 생략되어 있다. 가끔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다. 정규직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앞날에 좋은 결과가 오길 바란다. 괜히 밤의 종로가 그립다. 너무 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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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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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가족에 대한 반감이 가득하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따스함과 위안의 상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제목 같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 가족이다. 가족의 좋은 점을 부각한 소설도 많지만 가족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다. 살다 보면 우리에게 강요된 가족의 이미지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하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 때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설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정말 다양한 모습의 가족을 만난다. 이 소설도 그런 가족의 모습 중 하나다.


한국은 노령 사회로 진입했다. 65세 노령 인구가 16%를 넘어갔다고 한다. 늙으면서 생기는 병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치매와 중풍 등이다. 사회가 이 노인들을 돌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가족들이 노인들을 돌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그 상황을 극단적으로 풀어냈다. 가족 간병이란 예민한 소재를 다루면서 각각의 입장을 풀어낸다. 작가는 네 명의 자식들을 한 명씩 화자로 내세우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부모를 내세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상황과 입장에 몰입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너무 적나라한 현실에 불편한 감정도 수없이 느낀다. 머릿속에 옛날 속담도 오간다.


찰떡에 질식하는 아내와 칼에 찔린 남편 이야기로 시작한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그들이 낳고 키운 아들딸 넷은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이후 이들의 시선에서 이 가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들 보기에는 부럽기만 한 가족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가족이 만들어내는 문제와 충돌하고, 각자 다른 속내와 현실이 엮인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엄마 이정숙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순간부터다.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면 자식들이 조금 더 편하겠지만 요양병원의 부정적인 모습을 본 노부부는 거부한다. 결국 차녀이자 셋째인 김은희가 부모의 집에 들어와 간병한다. 다른 자식들은 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부담감을 덜어낸다.


오랜 간병 생활은 서로를 지치게 한다. 부모의 입장은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힘들게 사는 딸을 자신들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하고, 딸은 부모의 고압적인 태도와 길어진 간병 생활에 정신적으로 지친다. 서로가 상처주는 말과 행동이 늘어나지만 집밖에 머무는 다른 형제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은희는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다른 쪽으로 푸는데 이것도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대상이 동생의 친구이고, 그의 평판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어머니의 생일날이다. 다른 형제들은 제때 오지 않고, 큰딸만 떡을 몇 개 사서 올 뿐이다. 쌓였던 감정이 이때 폭발한다. 나중에 첫 장면의 사건이 벌어진 날이란 것을 알려준다.


김현창은 의사다. 부모의 자랑이지만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아버지가 질책을 한다. 의사인 너가 왜 몰랐냐고? 이성보다 감정적인 표현이다. 신문에 칼럼을 쓰는데 좋은 리뷰를 받지만 병원에서는 좋게 보지 않는다. 그의 글과 병원의 이익이 충동하기 때문이다. 그가 의사가 되었을 때 엄마는 의사 며느리를 원했다. 그런데 간호사와 결혼했다. 아내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모시기를 거부했다. 자신의 엄마가 암 4기라고 하니 집에 모시고 싶다고 말한다. 상황과 입장의 차이가 만들어낸 이 장면은 현창을 분노하게 한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것은 김인경의 남편 이야기로 넘어가면 더 심해진다. 불편하고 불쾌하고 짜증나는 상황이 나열된다. 읽으면서 나도 그런 적이 없는 지 돌아보았다.


학교 선생인 큰딸 김인경의 문제도 심각하다. 아들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친다. 나이 든 자신이 교사 생활을 하는 것을 뒤에서 욕하는 교사도 있다. 형제자매 없고, 좋은 대학 나온 남자라 결혼했는데 이것이 결혼 생활의 문제가 된다. 이 남편이 보여준 행동은 욕을 내뱉게 한다. 아들의 사고로 스트레스가 가득한데 동생 은희가 성질을 낸다. 서로 다른 상황과 입장이 충돌한다. 각자의 힘든 위치에서 볼 때 서로가 더 편한 것처럼 보인다. 이해보다 자기 입장이 우선이다. 은희가 보는 것과 달리 그녀의 삶도 힘들다. 남편 욕이 절로 나온다. 막내 현기와 그 부모의 이야기는 이 가족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자신들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가는 삶의 모습은 참으로 잔혹하다.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은 우리 사회의 뒤틀린 단면을 보여준다. 불편하고 불쾌하고 잔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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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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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작가다. 왠지 모르게 와타야 리사의 소설들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읽었다. 물론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아주 가끔 이런 작가들이 있다. 나의 수집욕과 이벤트 등이 겹쳐서 생긴 우연이다. 보통 이런 작가의 경우 출간 목록이 늘어나게 되면 놓치는 책들도 늘어난다. 한때 열심히 모으려고 한 작가들 몇몇은 너무 많이 나와 포기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본 작가로는 미미여사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이 있다. 다른 나라 작가까지 포함하면 너무 늘어나니 여기서 멈추자. 인터넷 검색하다 낯익은 표지들이 보여 간단히 적어보았다.


와타야 리사의 소설 중에서 드물게 두툼한 책이다. <꿈을 꾸다>가 400쪽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다른 책들은 200쪽 안쪽이거나 300쪽에 미치지 못한다. 처음에 책을 받고 두툼한 두께에 놀랐던 이유다. 솔직히 말해 퀴어 로맨스 소설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책소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아이가 처음부터 좋아한 선배 소우와의 사랑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소우의 친구와 함께 온 연예인 사이카를 만났을 때는 작은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다. 두 커플이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에서 만나 술 마시고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사이카에 조금 놀랐지만 전혀 생소한 장면은 아니다.


행복해 보이는 두 커플, 문제라면 사이카가 이제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이라는 것 정도다. 사이카의 현재 연인도 그녀가 먼저 대시를 했다. 아이는 소우와 결혼을 꿈꾸고 있다. 천둥 번개 사건 이후 사이카는 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쌓아간다. 흔한 우정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진상 고객으로 고생할 때 도와준 것도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아이가 소우와 결혼할 것이라고 하면서 사이카의 상태가 나빠진다. 연기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다. 사이카를 찾아갔는데 그녀가 고백을 한다.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다.” 라고. 학창시절부터 좋아한 선배와 미래를 꿈꾸던 아이에게 이 말은 황당한 일이다. 한 번도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카도 남자 친구가 있지 않은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관계. 그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관계. 이런 관계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감정은 사아카에게서 아이에게로 흘러가고 결국 뒤섞인다. 자신이 짝사랑했던 남자친구를 떠나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이카에게 간다. 작가는 여기서 동성애 성향이 아이에게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양성애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이카이고, 그녀가 여자라고 말할 뿐이다. 타고난 천성에 의해 여성만을 좋아하는 동성애자와 이 둘은 다르다. 아이이기에, 사이카이기에 좋아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방법도 서툴다. 낯설다. 남자에 익숙한 몸 동작은 둘 사이의 행위에 불편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느끼는 희열과 사랑은 결코 이전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아주 섬세하다.


연예인과의 연애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성 간의 스캔들도 문제인데 보수적인 일본에서 동성애는 더 문제가 된다. 이제 인기를 더 얻어가는 사이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동성이기에 사이카의 집에 아이가 들어와서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속사도 그렇게 생각한다. 둘 만의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사랑은 더욱 커진다. 그러다 터진 스캔들. 소속사가 큰 돈으로 막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 둘이 헤어질 것을 강요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사이카와 현실을 생각하는 아이의 충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약속 등이 교차한다. 예상하지 못한 파국이다. 그 이유도 믿었던 사람에 의한 것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전개의 연속이다.


두 여성이 사랑한다고 하는데 사회적 제약이 많다. 연예인 활동뿐만 아니라 아이의 집안도 반대한다. 이성과 감정이 충돌한다. 이 소설에서 아이가 사이카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일시적이고 충동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둘의 사랑이 얼마나 단단한 지, 깊은 지는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우선이다. 아이와 사이카의 전 남자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타의에 의해 만나지 못한 시간이 길어졌지만 둘 사이의 사랑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동성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아이가 다른 매력적인 여성에게 눈길이 간다는 표현이 나올 텐데 아니다. 남자에게 눈길을 준다. 하지만 사랑은 사이카에게로 향해 있다. “그 어떤 제약 없이 오직 두 여성의 사랑에만 몰두했습니다. 본래 사랑에는 낡음도 새로움도 없으니까요.” 라는 시마세 연애문학상 수상 소감이 가슴에 더욱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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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머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이크 큐라토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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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에프 그래픽 컬렉션]의 신작이다. ‘람다 문학상’과 ‘골든 카이트 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말해 이 상들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검색하니 람다 문학상은 LGBT 문학상이고, 곤든 카이트 상은 어린이 책 작가 및 일러스트레이터 협회에서 수여하는 상이라고 한다.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더 많은 내용이 나오겠지만 여기서 멈추자. 람다 문학상을 받았다는 의미는 이 그래픽노블에서 게이를 다룬다는 것이다. 최근 LGBT 문학을 다룬 작품들이 대중 속으로 퍼지고 있고,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양성과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1995년이다. 이때는 아직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강할 때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 당시는 더 심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담은 자전적 요소가 있다.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그래픽노블이다. 이 이야기에서 한 소년 에이든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남자들만 모인 보이스카우트 캠프가 공간적 배경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 전에 참여한 캠프인데 이야기 속에 학교 폭력 등이 나온다. 에이든은 중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와 이 캠프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아직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잘 모르고 있다.


아이들의 장난과 농담 속에는 혐오의 표현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다.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아직 이 시기는 그 정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남자 아이들이 장난치는 장면에서 게이란 표현이 나오고, 혐오의 감정이 깔려 있다. 친구끼리 장난칠 때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 대부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순간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냈다. 아이들의 저질 장난에 동조하면서 웃는 아이들과 불편한 감정으로 이 상황을 보는 에이든의 모습은 앞으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암시와 같다. 그리고 착하고 멋진 일라이어스의 존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에이든은 필리핀계 미국인이다. 그의 외모를 비하하는 행동이 나온다. 이 혐오 감정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친절한 일라이어스는 외로움을 덜어주고, 그에게 자꾸 시선이 가게 한다. 일리이어스 입장에서는 진한 우정을 생각했지만 어느 날 에이든의 돌발적 행동으로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다. 이 감정은 에이든도 마찬가지다. 기존 가치관에서 동성애는 문제가 많다. 자신이 남자에게 끌린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을 혐오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과 좌절을 느낀다. 펜팔 친구 바이올렛에게 이 감정을 표현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 더 불안하다. 절친의 의미로 나눈 팔찌도 버려지면서 이 감정은 더 심해진다.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나의 불안감도 커진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속내를 마음 놓고 터 놓은 바이올렛마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혼란과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과 자기 혐오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한다. “설령 그 모두가 너를 버렸다 해도… 너는 너 자체로 충분히.”라고. 이 문장은 이 상황 이외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감을 끝없이 조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말이다. 있는 나 자체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더 신경 쓰면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이다. 작가의 말에서 “두려움과 희망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신의 결함, 존엄함과 더불어 다 같이 묶여 있다.”고 말한다. 에이든에게는 이 위험한 순간 좋은 친구가 옆에 있다. 정말과 공포 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오른다. 거칠고 간략한 선으로 그림을 표현하고 있지만 구성이나 곳곳의 배경이 상당히 섬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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