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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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더 유명한 소설이다. 예전에 뮤지컬과 영화로 본 것 같은데 메인 주제곡을 빼면 나머지 기억은 가물가물한다. 워낙 간결한 내용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는데 책을 받고 읽다 보니 생각보다 분량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 읽은 <프랑켄슈타인>도 마찬가지였지만 너무 유명한 고전의 경우 왜곡되고, 편집된 영상 이미지 등이 더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뭐 원작을 읽고 영화를 뒤에 봐도 이런 현상은 자주 일어나지만 말이다. 그래도 원전을 읽으면 한정된 시간에 연출하면서 생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부분에 있기도 하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의 기억은 소설 속 두 주인공에 대한 사랑을 잘못 기억하고 있다. 뮤지컬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내 기억의 착각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오페라의 유령과 크리스틴이 연인이 되어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으니 아니다. 파리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오페라의 유령이 존재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그 유령은 믿기 힘들다. 당연히 이 극장을 물려 받은 두 단장이 계약서에 표기된 오페라의 유령의 조건을 대충 훑어봤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벌어지는 몇 가지 사건과 사고는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사실 이 부분은 이야기의 곁다리다.


영상 등으로 요약된 부분의 핵심은 오페라의 유령과 크리스틴의 관계다. 이 소설 속에서 유령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극장을 어둠속에서 지배한다. 크리스틴을 훈련시켜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만들어낸다. 그 자신도 아주 탁월한 음악 실력을 보여준다. 왠지 모르게 라울 드 샤니 자작은 존재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기억 속에서 크리스틴은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 배역의 벽을 뚫지 못해 실력 발휘하지 못하는 가수였는데 원작을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실력은 오페라의 유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일취월장했다. 라울과의 인연 이야기도 원작에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나오고. 크리스틴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페라 등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인 에릭의 사연을 너무 간결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원작은 페르시아 인을 등장시켜 그의 불행했던 과거를 자세하게 되살린다. 더불어 그가 얼마나 뛰어난 건축가이자 마술사인지 알 수 있다. 나이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면 속에 숨겨져 있는 추악한 외모에 대한 묘사는 결코 영화 등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외모라니. 첫 생일 선물이 가면이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의 뛰어난 건축술이 어떤 공부를 통해 얻은 것인지 말하지 않는다. 타고난 천재라는 듯 말하지만 건축이 그렇게 쉬울 리 없다. 그렇지만 파리 오페라 극장 건설에 그가 참여했고, 이 참여 속에 그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돌아다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무서워한 이유도 바로 이 은밀함에 있다.


사랑.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크리스틴을 놓고 오페라의 유령 에릭과 그녀의 어린 시절 친구 라울이 경쟁한다. 크리스틴은 처음에 에릭의 이름도 몰랐고, 수호 천사 정도도 알고 있었다. 그의 교습으로 실력이 올라갔지만 한 남자로 사랑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어린 시절 바다에서 스카프를 건져준 라울이다. 라울도 당연히 크리스틴을 사랑한다. 하지만 문제는 오페라의 유령 에릭이다. 그는 크리스틴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가 살아온 과정을 보면 이 감정은 평범함에 대한 갈구이자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 왠지 모르게 읽으면서 <미녀와 야수>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어쩌면 내가 바란 것은 크리스틴이 외모의 공포를 넘어 에릭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원작을 읽고 나면 그곳에서 파생한 영화나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긴다. 원작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과 내가 상상한 장면을 연출자가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공간인 지하는 뮤지컬에서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고문실로 알려진 곳에서 그들이 경험한 환상과 심리적 고문 등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번 번역은 기존과 조금 다르다. 좀더 현대적으로 번역되어 있다.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처음 책으로 이 원작을 대하는 사람들이면 좀더 가독성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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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청년, 호러 안전가옥 FIC-PICK 3
이시우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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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편들도 <밀리의 서재>에 연재되었던 소설들이다. 이 플랫폼을 구독하지 않아 이런 작품들이 있었는지 몰랐다. 리디북스에서 단편들이 올라오는 것을 봤지만. 제목에 나오는 세 단어를 보면 이 앤솔로지에 참여한 작가들처럼 나의 20대를 떠올리게 된다. 읽다 보면 내 시절과 다른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남자란 것이고, 전세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학력 차별이 덜 한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있었는데 내가 다닌 회사가 적었거나 내가 잘 느끼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친구나 후배 등은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집에 대한 공포를 가지거나 보증금 돌려받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첫 문을 연 이시우는 처음 만난 작가다. 황금가지에서 주로 장편을 낸 모양인데 이번에 단편에 참여했다. 처음 읽다 보니 작가의 성향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래쪽>이란 제목처럼 맨홀 밑 지하 관로를 공포로 조금씩 채워가는 과정은 상당히 서늘했다. 약 1년 전 경험을 털어놓는 형식인데 무서운 이야기 형식이다.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조금씩 풀어내고, 우리가 눈 감고 있는 다른 존재를 조금씩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작가가 창조한 지하 관로 세계가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꼭 주인공일 필요도 없으니까.


김동식의 <복층 집>은 혼자 사는 낭만을 공포로 바꾼다. 외관과 달리 여성 취향의 인테리어가 혜화의 눈을 사로잡는다. 좋았던 것은 이때뿐이다. 친구들이 와서 툭 던진 말들과 집안의 이상한 느낌이 점점 고조되면서 불안과 공포를 조성한다.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공포의 공간으로 바뀌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 등이 가슴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집에 나갈 때 집 안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 사진을 비교하는 일상을 산다니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멋진 심리물인데 마지막 장면은 왠지 불필요 없이 과한 듯하다.


허정의 <분실>은 고시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싼 가격 때문에 들어간 석진은 낡은 방에서 사람 크기만 한 얼룩이 침대 쪽 벽에 있다. 왠지 신경 쓰인다. 다른 방을 찾지만 없다. 인강도 불펌으로 듣는다. 문제는 얼룩 부근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지우개로 지우고, 커터 칼로 긁어본다. 가장 호율적인 방법은 다른 방 아저씨가 준 약을 사용하는 것이다. 얼룩이 잘 지워진다. 그런데 실수로 약을 엎질러 자신의 기록 등이 지워진다. 그리고 늦은 밤 카드 대금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전화가 온다. 사기 전화가 분명하다. 이때부터 상황은 꼬이고, 이성은 마비된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흐려진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장면은 흔하지만 서늘하다.


전건우의 <Not Alone>은 학벌 때문에 사내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 앱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쌓다가 겪는 이야기다. 경찰서에서 누군가가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하면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다. 앱으로 상대방을 어떻게 하려는 욕망이 넘쳐나고, 진짜 친밀한 관계를 쌓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난다. 그런데 이 남자가 수상하다. 왠지 모르게 스토킹을 당하는 느낌이다. 경찰에 신고해도 실체가 없다. 생명의 위험에 빠지거나 사건이 발생해야만 경찰이 움직인다. 하지만 진자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온다.


조예은의 <보증금 돌려받기>는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경험한 일이다. 전세가, 월세가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데 집주인들은 새로운 입주자가 없다는 이유로 보증금 반환을 늦춘다. 대낮에도 해가 들지 않고 한밤에도 가까운 유흥가 때문에 시끄러운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보증금이 있어야 새로운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집의 환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젓는다. 빨리 보증금을 빼 동생 학원비로 써야 한다. 엄마의 독촉 전화가 오고, 새롭게 이사할 집 이사 일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집 밖에서는 문제가 있는 듯한 학생들이 머물고 있다. 상황은 꼬이고, 앞은 깜깜하다. 작가가 의미 없는 듯한 설정을 쳐내고, 무심코 보고 지나간 설정 하나를 무섭지만 약간 통쾌하게 그려낸다.


남유하의 <화면 공포증>은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간결하게 보여준다. 남자친구와 영화관에서 본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이 남자의 증상이 이상하다. 화면 스크린을 머리로 들이받고 피범벅인 채 쓰러진다. 외국 네티즌의 정리에 따르면 ‘화면 공포증’이다. 작가의 말을 보면 그가 지하철이나 삼성역에서 본 것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다. 화면 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의 처절한 노력과 우리 일상 주변에 얼마나 화면들이 많은 지 보여준다. 갑작스럽게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화면 공포증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이 좀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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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시 속 인형들 1 안전가옥 오리지널 19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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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시기가 확정되어 있지 않은 미래의 메가시티 평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이버펑크 범죄수사물이다. 왜 평택이란 도시를 지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책 속에 나오지 않는다. 이 도시를 이미 다르 작품에서 선보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읽은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소설은 두 번째다. 다른 앤솔로지에서 단편으로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작가 목록을 보면 낯익은 제목과 낯선 제목들이 교차한다. 생각보다 많은 소설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은 연작소설집이다. 메가시티 평택의 샌드박스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 중 한 권일수도 있다. 작가와 프로듀서의 말에 의하면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χ Cred/t>는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에 당선되어 <대스타>란 앤솔로지에 실렸던 이야기다. 아직 <대스타>를 읽지 않아 재밌게 읽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의 극단적인 모습과 경계가 무너진 인간 복제 및 유전자 조작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에 ‘χ Cred/t’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되었는데 작가가 친절하게 카이 크레디트라고 말해준다. 카이는 넷 소아이어티 사상 최고의 수퍼스타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아이가 아니다.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다. 놀라운 것은 이 카이를 100개나 복제해 방송을 만든다는 것이다. 방송 중 카이들 중 한 명이 죽이고,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 수사를 진강우 검사와 주혜리가 해결한다. 실제 현장에서 고생하는 인물은 주혜리다.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들은 좀비들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힘든 알바를 하고 있는데 강우 검사에게 연락이 온다. 시간 의뢰다. 의체를 사용하고 있는 노인들이 다른 노인들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란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미래의 노인들도 현재의 노인들처럼 자식들에게 등골을 빼먹히는 현실을 그려낸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의해 의체를 단 노인 등이 다른 노인들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프로그램 언어다. 너무나도 쉽게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쉬운 일 뒤에 숨겨져 있는 욕망이다. 미래에 이런 좀비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흥미진진하다.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은 음모론자들의 해킹으로 생긴 문제를 다룬다. 사건 해결을 위해 해커를 쫓던 혜리는 범인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문을 열고 나가면 되는데 열림 화면이 없다. 방법은 하나, 화면에 나온 게임을 클리어하면 된다. 고전게임 둠이다. 갇힌 공간 속에서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음모론을 배경으로 한다. 대표적인 음모론 중 하나가 지구평평설이다. 샌드박스 속 고속엘리베이터가 폭주하고, 충돌 직전까지 간다. 긴박한 과정 속에 터져 나오는 작은 유머는 살짝 웃게 한다. 작은 소품이지만 재밌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아주 흥미진진했다.


<슈퍼히어로 프로듀서>는 예상한 설정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 겹쳐 있다. 이 단편 속에 주혜리의 과거가 조금 흘러나오고, 한국 교육시장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만들어진 슈퍼히어로 스위치와 빌런의 존재, 여기에 방송이 곁들여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슈퍼히어로가 필요 없는 사회가 가장 좋지만 현실의 부폐와 비리는 오히려 자신들의 욕망을 대신 해소해 줄 히어로를 갈망한다. 연출과 사실이 교차하고, 성적 제일주의에 빠진 한국 부모를 구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그렇게 나쁜 교육 현장을 경험한 부모들이 자신의 성공에 취해 자신의 아이들을 아동학대로 내몬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마지막 단편 <트윈플렉스>는 휴머노이드와 또 다른 안드로이드의 학대를 다룬다. 실제 인간의 유전자 복제 등을 통해 만들어진 이 안드로이드는 그 본체의 시선 등을 공유한다. 텔레파시가 통하는 쌍둥이 같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른다. 이 단편 속에는 성차별, 성 취향, 강요된 폭행과 학대 등을 넣고, 뒤틀린 욕망과 권력이 만들어 낸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법 위에 올라선 부유층의 존재는 읽는 내내 불편했고, 이것이 미래의 상상만이 아니란 사실에 조금 암울했다. 그리고 작가가 소개하는 몇 가지 놀라운 무기 등은 앞으로 펼쳐질 액션 등에 멋지게 활용될 것 같다.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세계를 키우고 가꿀지 궁금하다. 더 읽고 싶은 작가가 또 한 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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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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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김성종의 소설이 먼저 떠올랐다. 오래 전 아주 재밌게 읽었고, 형사 오병호에 매혹되었던 소설이었다. 그런데 작가 이름이 낯익다. 작년에 <달콤한 숨결>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다. 위시리스트에 두 권을 올려두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점에서 검색을 하니 구판본이 보인다.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으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책들이 더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절판된 책이 나온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해설을 읽다 보면 다른 소설들도 상당히 많다. 미출간 책들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이 정도 무게와 가독성을 가진 작가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변호사 사가타 사다토는 검사 출신이었다. 하나의 사건을 경험한 후 검사를 그만 두고 변호사가 되었다. 재밌는 것은 이 소설 이후 사가카 검사 시리즈가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변호사 사가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실제 이번 소설에서 사가타가 나오는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요한 변론을 맡고 있지만 그가 발로 뛰면서 증거 등을 모으는 장면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검사의 일상과 그가 변론을 맡은 사건의 관계자의 과거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이 부분에서 살짝 트릭을 사용해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든다.


이 사건 7년 전 한 소년이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었다. 의사 다카세의 아들이다. 아이가 잘못했거나 다른 요인이 있었다면 죽은 아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지만 이 운전자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과속까지 했다.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역 공안위원장이란 직위가 그를 불기소처분으로 결론 짓게 한다. 경찰이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한 부모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이유를 알기 위해 전화하고, 경찰서까지 찾아가지만 조사서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그를 밖으로 밀어내려고만 한다. 이때 담당 형사가 나타나 분노한 아버지의 손찌검을 받으면서 쫓아낸다. 형사의 행동이 이 결과를 더욱 의심스럽게 만든다.


소설은 재판 3일을 다루면서 과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낸다. 사가타가 이 도시에 온 감회를 처음에 풀어낼 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과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검찰의 기대를 크게 받던 그의 갑작스러운 퇴직과 그 이유가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은 이 소설에서 핵심으로 삼고 있는 부분이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사가타 변호사와 대립하는 쇼지 검사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 부분은 점점 더 강해진다.


다카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읽는 내내 분노하게 했다. 분명한 증인이 있는데 어린 학생이란 이유로 증언이 무시된다. 다카세 부부가 바란 것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지만 권력은 이것을 무마시킨다.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음주운전자가 반성하지 않고 다시 술 마시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폭발한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들이 분노하지만 행동하지 않은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낀다. 나라면 무엇인가를 들고 가서 복수를 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이 복수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의 대다수 사람들은 다카세 부부들처럼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겹치게 되면 살의는 더욱 커지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잘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했다.


대단한 가독성을 보여준다. 다카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나 사가타의 사연 등은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작가는 이 두 사건을 같은 이야기 속에 녹여 내면서 검사와 경찰의 균형을 잡았다. 좋게 말하면 견제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권력 유착 비리를 보여준다. 이런 부패와 비리에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선량한 피해자들이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피해자를 잘 녹여내었다. 철저하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을 보여주고 변론하면서 사실에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최후의 증인과 그의 증언이 만들어낸 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한번 왜 이 작가의 작품들을 독자들이 칭찬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런 독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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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서 - 자칭 리얼 엠씨 부캐 죽이기 고블 씬 북 시리즈
류연웅 지음 / 고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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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웅을 주로 단편집에서 만나다 경장편으로 만났을 때 이 작가 이름을 완전히 기억하게 되었다. 한 편을 제외하면 그의 소설들은 주로 앤솔로지에서 만났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그 소설들을 모두 기억할 리는 없고, 이 글을 적으면서 찾아보니 기발한 발상에 놀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를 보고 무슨 소설이지 의문을 품었는데 과거 이력을 보니 조금은 고개가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외모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왠지 괴물 같은 이미지를 사전에 심어주는데 이 소설은 힙합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다. 책소개에도 그렇게 나온다.


아직 나에게 힙합은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힙합의 가사나 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힙합 음악과 그 주변 세계를 그려낼 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본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쇼미더머니>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우원재란 뮤지션에 입감한 듯한데 이 뮤지션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 시간이 나면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이 뮤지션에 대한 호평을 이전에 한번 다른 래퍼에게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이 이름은 잊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 나의 취향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릴뚝배기와 조헤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둘은 같은 인물이다. 무명의 래퍼 릴뚝배기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면서 생긴 캐릭터가 조헤드다. 실제 이 두 이름은 하나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그 이름을 여기서 적기가 조금 민망하다. 처음 릴뚝배기의 시간 제한 미션이 먼저 나온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모든 것을 힙합에 바친 릴뚝배기가 1집을 내고 랩을 버리려고 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있다. 스스로 ‘힙합의 신’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중퇴할 때 내뱉은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란 맹세가 불러온 현상이다.


릴뚝배기가 올린 동영상에 항상 달린 댓글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란 문장이 붙어 있다. 진짜 팬을 찾기 위해 신이 하루의 시간을 준다. 그리고 조헤드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우승으로 유명해졌다. 소속사도 생기고, 이전 동료 무알콜과 헤어졌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얼마나 많은 지 잘 모르지만 방송 한 번의 효과는 분명하다. 조헤드의 이야기가 나올 때 평행우주를 이 이야기에 끌고 들어왔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조헤드가 SNS에 올린 글 하나가 문제가 되면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을 보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같다.” 여기서 ‘ㅈ’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단어다. 방송국 쇼케이스를 준비하던 중이고 유명해진 래퍼의 이 문장은 큰 반향을 불러온다. 1집 발매 쇼케이스가 취소될 수도 있다. 이것을 무마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급박하게 진행된다. 한국이라서 가능한 하루만의 뮤직비디오 촬영과 편집을 현실과 편집 기술을 통해 책 속에서 구현한다. 처음 나온 릴뚝배기의 이야기가 다시 교차하고, 그의 간략한 과거사를 찾아간다. 무엇보다 그의 동영상에 꾸준히 댓글을 단 진짜 팬을 찾고 싶다. 이 과정에서 힙합의 무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조금씩 보여준다. 이 현실적 변화가 시선을 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진짜 팬의 등장과 분 단위로 쪼개진 마지막 장면은 리얼 부캐와 진짜 캐릭터의 합체로 이어진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멘트가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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