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상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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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작품이다. 편집자의 후기를 읽기 전까지 이 소설이 이렇게 오래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집에 쌓아 둔 작가의 소설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언제 시간 나면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 미스터리 소설들에 빠져 보려고 계획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독서 순서는 출간 연도 순이었다. 그런데 편집자 후기를 읽고 다른 방식으로 읽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덕분에 모셔 둔 책들이 아닌 것들도 먼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이 작가의 초기 걸작에 빠져 정신없이 모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숫자에 눌려 감히 도전을 못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 에도 시대 시리즈 한두 권 정도는 읽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는 자신할 수 없다.


인터넷 서점에 장편소설로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첫 단편이자 표제작인 <인내상자>를 조금은 덜 집중한 채 읽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중에 펼쳐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다음 단편을 읽을 때도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비슷한 이름이 나오면 앞 단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름 열심히 찾았다. 아마 이 찾기는 책 끝까지, 편집자의 후기를 볼 때까지 이어졌다. 미련하고 둔감한 나의 작은 집착이다. 그리고 편집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놓친 <인내상자>의 숨은 매력을 발견했다. 무심코 읽은 문장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었다.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문장과 그 단편집이 생각난 것도 이 편집자의 후기 덕분이다.


편집자의 후기에서 말했듯이 어떤 소설은 여러 번 읽어야 그 의미가 제대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학창 시절 선입견과 편견으로 단편을 엉망으로 해석한 적이 있다. 나중에 다른 단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열심히 파악하려고 한 글은 생각보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과거가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글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집중도와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무심코 읽었던 단편의 의미가 편집자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다가올 때 다시 앞으로 돌아가 문장을 확인하고 그런 의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십육야 해골>이다. 내가 놓친 문장과 숨은 의미는 이 소설을 다르게 읽게 한다.


<유괴>란 단편에서 유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유괴나 납치의 의미를 소설 속에서 풀어낼 때 크게 공감했지만 일반적인 생각만으로 현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에 흘러나온 말과 그 시대의 사건 해결 방식 등은 낯설지만 재밌다. <도피>도 예상을 벗어난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무라이를 보디가드로 고용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일어난 사건은 그 사무라이 때문에 어긋난다. 재밌는 이야기는 그 뒤에 나오는 사무라이의 과거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검술 실력에 대해 얼버무린 부분은 또 다른 재미다. <무덤까지>는 읽으면서 앞에 나온 <유괴>의 다른 모습으로 삶의 철학이 바뀐 부부의 숨겨진 비밀을 엿보았다. 미아였다가 이 집의 양자 등으로 들어온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사연도 섬뜩하면서 가슴 아프다.


<음모>는 한 관리인의 다른 면모를 잘 보여주는데 마지막 반전이 재밌다. 한 사무라이의 집에서 발견된 관리인에 대한 다른 기억들은 우리의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울>은 읽으면서 하나씩 풀려나오는 이야기에 그냥 빠져들었다. 처음 음식을 버린 사연에 공감할 때 기울어진 두 여인의 삶이 가슴속에 들어왔다. 거부의 후처가 된 친구에 대한 질투의 감정은 친구의 약점을 듣는 순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녀의 과거사를 읽다 보면 어떤 선택을 해도 공감할 것 같았다. <스나무라 간척지>는 현실에서 시작해 과거의 추억으로 넘어간다. 그 시절 힘들었던 삶의 기록이 나오고, 숨겨 둔 감정은 어느날 갑자기 밖으로 드러난다. 물론 여전히 가린 채 있어야 하는 비밀도 있다.


이 단편집을 읽다 보면 정말 이 시대에 화재 사건이 많았던 모양이라면서 놀란다. 목재를 사용해 집을 짓던 시절이니 화재에 약할 수밖에 없다. 나무와 불은 조금만 소홀하게 다루면 화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화재 속에 가려진 인간의 욕망은 그 불을 더 키운다. 내가 <인내상자>를 읽고 난 후 다른 단편들을 이 ‘인내상자’ 속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 것도 이 욕망들 때문이다. 어떤 불은 자신의 사랑 때문에, 어떤 불은 처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불은 저주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조금씩 흘러나온 비밀들은 화재 등과 엮일 때 더욱 잔혹하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되는 기억력 감퇴를 편집자가 말할 때 다시 나의 저질 기억력을 떠올린다. 단편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편집자의 후기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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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son Lake Road 크림슨 레이크 로드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2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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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빠르게 후속작이 나왔다. 1년이 되지 않은 시간이다. 반가운 일이다. 소설을 다 읽은 후 첫 느낌은 전작보다 좋다는 것이다. 이전 글을 찾아보니 더 풍성한 이야기를 위해 후속작이 필요하다고 썼다. 이야기도 전편보다 간결해진 것 같다. 하지만 악은 그대로이고, 더 무시무시한 일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편에서 깔아 둔 이야기 하나는 예상한대로 흘러가는 듯하면서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FBI 특별요원 케이슨 볼드윈의 여자 친구가 임신한 사실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이야기에서 다루어지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소녀의 실종 등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전작보다 더 깔끔하게 소설이 나왔다. 물론 예상한 범인은 그대로라 조금 아쉬웠다.


연방 검사 제시카 야들리는 검사를 사직하고 한적한 동네 변호사가 될 계획이다. 이때 FBI요원 볼드윈과 개릿 형사가 크림슨 레이크 로드란 황폐한 지역에서 죽기 직전의 피해자를 구출한다. 그녀는 요가 강사 안젤라 리버다.  4주 전 이 동네에서 캐시 파르가 성폭행과 구타 끝에 살해당했다. 그런데 이 둘의 공통점이 야들리에 의해 밝혀진다. 화사 샤프롱의 죽음 4부작 그림 속 장면과 같은 모양이란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두 명의 피해자가 더 나올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 업무는 야들리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연방 검사직을 그만 두었고, 업무 인수인계 중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것도 아니다. 검사직이 끝나는 날까지 그녀는 이 일에 매달린다.


운 좋게 살아남은 리버는 빠른 육체적 회복을 보여주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야들리와 처음에는 검사와 피해자로 만났지만 어느 순간 둘은 좋은 친구가 된다. 죽음 바로 앞에서 돌아온 리버와 연쇄살인범의 아내였던 야들리의 만남은 서로를 드러내고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 시간은 우정이란 이름으로 쌓여간다. 딸 타라가 처음 본 엄마의 친구다. 이들의 만남은 한정된 시간 속에 있다. 바로 야들리의 이사 때문이다. 그러다 리버가 동거하는 남자 친구 내과 의사 마이클 재커리 집에 간다. 멋진 집이다 타라와 함께 갔는데 비어 있는 수영장이 있다. 리버는 타라에게 이 수영장을 이용해도 된다고 말한다. 이 말대로 타라는 친구들과 놀러 오고, 야들리는 집안에서 연쇄살인의 단서를 발견한다.


야들리가 퇴직을 준비할 때 볼드윈은 캐시 파르의 딸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현장에 간다. 실종일까? 아니면 가출일까? 피해자 캐시의 남편 터커 파르는 얼마 전 감옥에서 나왔다. 그의 딸 하모니의 실종 사건으로 18년 전 사건이 드러난다. 그는 열네 살 된 수 엘렌 존스를 납치한 적이 있지만 절사상의 문제 등으로 풀려난다. 당시 수 엘렌 존스의 오빠가 이 장면을 보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터커만 세워놓고 지목하는 행위가 문제되면서 풀려났다. 이런 절차 상의 문제는 사법 사건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항상 나오는 대목이다. 경찰들이 용의자 등을 잡을 때 미란다 원칙을 꼭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절차와 법적 허점을 파고드는 대목을 이 소설은 하나 더 보여준다. 마이클 재커리가 용의자로 잡혀 연방 대배심 심리를 할 때다.


마이클 재커리 집에서 발견된 증거물들은 그가 범인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아 성공하고자 하는 변호사는 능력 있고 상대방의 허점을 아주 파고든다. 이 소설의 법정 장면은 읽다 보면 변호사의 승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비록 너무나도 분명한 증거물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치열한 법정 싸움은 최대한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리버를 발견할 당시 FBI요원과 형사의 진술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형사와 경찰의 차이점과 허술하게 관리되는 개인 의학 정보 등이 드러난다. 물론 전작처럼 능력보다 남성 우월주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된다. 능력 없는 조직의 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소설에서 타라의 활약이 조금 나온다. 전편에서 아빠와 만나 그녀 속의 악이 발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엄마가 그녀에게 화학적 정보를 요구했을 때 바로 답을 내놓거나 아빠의 그림을 몰래 거래할 때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은 서늘하고 아주 멋지다. 아빠가 사프롱의 그림을 보고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챈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계속 읽다 보면 추악하고 잔혹한 사실과 마주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무서운 현실이다. 법 절차의 중요성과 예산 문제 등이 살짝 흘러나오는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면서 야들리의 고뇌와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나의 기다림이 엮인다. 다음엔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 법정은 또 어떻게 움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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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은수를 텍스트T 3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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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레이코란 이름은 아주 낯설다. 하지만 이 작가가 쓴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아주 낯익다. 처음 전천당 시리즈를 TV에서 잠깐 볼 때만 해도 한국 작가의 동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을 보고 일본 작가의 소설이란 것을 알았다. 그후 가끔 ‘전천당’ 애니를 볼 때면 그냥 무심코 본 그림에서 일본의 흔적들이 보였다. 나의 이 둔감함이란…. 어린이 소설을 쓴 작가의 소설이란 점에서 솔직히 약간 주저했다. 내 취향에 맞을지, 아니면 이 이야기를 나중에 아이에게 들려주어도 될지 생각하면서. 결론만 먼저 말하면 이 소설은 나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읽으면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세 편이 실려 있다. 분량만 놓고 보면 중편 정도다. 표제작 <어떤 은수를>을 읽고, 일러스트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십이국기> 시리즈가 떠올랐다. <십이국기> 시리즈를 다 읽지도 않았는데 예전에 본 애니와 그림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다른 두 편도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판타지를 인간의 욕망과 엮어서 풀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작가 목록을 찾아보면서 무심코 지나간 소설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야 할 책들이 더 늘어난 것만 같아 걱정이다. 가장 먼저는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인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은수를>은 은수란 신비로운 생명체와 거부 세이잔의 재산을 둘러싼 경쟁을 다룬다. 세이잔은 자신이 죽은 후 전 재산을 한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말한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은수를 키워 온 사람에게 상속하겠다는 것이다. 세이잔은 결혼을 두 번 했지만 자식이 없다. 그와 인연이 있는 친지들이 그 재산을 탐내지만 일단 그의 선택을 먼저 받아야 한다. 이렇게 선택받은 다섯 명은 각가의 은수 이야기를 한 명씩 풀어놓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은수를 가지고 있었는데 쌍을 맞추려다 망하거나 은수의 알에 대한 관심을 가지거나 자신의 세계를 처음 깨닫거나 등등의 이유가 은밀한 음모와 함께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세이잔의 의도와 진실은 반전의 연속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다.


<히나와 히나>는 열두 제도의 귀족 아들을 때려 등대섬에 유배 온 요키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히나라는 연인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욕심이 아주 많은데 사랑에 빠진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날 밤에 생긴 사건도 그 때문이다. 열여덟 살 요키는 등대의 불을 밝히면서 5년의 시간이 지나길 바란다. 어촌에서 산 그에게 섬 생활은 힘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외로운 그의 마음에 파고드는 어둠이다. 히나가 알려진 진실이 그의 마음 속에서 어둠을 키웠다. 그러다 실수로 히나를 죽이기 위해 만든 칼이 발등에 떨어져 상처를 입는다. 그날 밤 등대불을 켜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파손된 배의 흔적이 섬에 오고, 절망한 그에게 한 소녀가 나타난다. 파편 속에서 겨우 살아난 그녀의 이름도 히나다. 한정된 공간, 서로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불안한 상황, 그리고 결국 말하게 되는 진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한정된 공간과 적은 사람들로 이렇게 이야기를 확장하다니 대단하다.


<마녀의 딸들>은 마을에 종이 올릴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키아란 소녀가 정원에서 즐겁게 생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한 그림을 발견한다. 어떤 소녀와 엄마를 그린 그림이다. 화난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날 밤 카이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림 속 소녀는 자신이 일곱 번째 카이라고 소개한다. 그녀가 왜 죽었는지, 이 집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그녀 앞에 존재했던 카이들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위험한 보물찾기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전의 카이들이 죽은 이유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마녀의 정체도 조금씩 알게 된다. 진짜 비밀을 알기 위해 여덟 명의 카이들은 여덟 번째 카이의 몸속에 함께 거주한다. 어떻게 보면 다중인격을 다룬 소설처럼 보인다. 진실이 밝혀진 후 세상으로 나가는 그녀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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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미스터리 컬렉션
홍정기 지음 / 북오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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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가의 단편집을 한 권 읽었는데 새로운 단편집이 한 권 또 나왔다. 요즘 부쩍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검색했더니 그렇게 많은 책이 아니다. 단기간에 자주 보다 보니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이번 단편집에는 여덟 편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호러와 미스터리가 섞여 있는데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가족의 상실 등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은데 상당히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엽기적이라 읽으면서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편을 읽은 후 일본 호러물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분위기의 소설 같았다. 나의 착각일까?


<쓰쿠모가미>는 일본 전래 민간신앙으로 시간이 지나 오래된 물건에 신이나 정령이 깃든다는 의미다. 작가는 사드의 희귀본을 끌고 와 이야기를 섬뜩하게 펼친다. 헌책방에서 훔친 사드의 책에 깃든 악령이 가족을 파괴하는 모습은 아주 잔혹하다. 한때 헌책방을 돌면서 포스팅하던 작가의 블로그가 떠오른다. <Low Spirit>은 하나의 캡슐로 극상의 쾌락을 느끼는 약 이야기다. 한 회사원의 불만에서 시작해 사회 현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 빠르게 펼쳐진다. 부작용이 없다는 평가 속에 자판기에서도 팔린다. 과거 술, 담배 자판기가 떠오른다. 이 약을 다량으로 먹고 식물인간처럼 된 사람이 나온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계를 다루기보다는 현실을 축소해 반전을 보여준다. 분량을 더 늘여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슬럼프>는 첫 소설의 성공 이후 후속작의 실패와 좌절을 다룬다. 새로운 작품을 도저히 쓸 수 없는 현실에 그가 존경하는 작가가 한 장소를 소개해준다. 작품만 쓸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할까 하는 생각이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공간에서 얼떨결에 계약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 채. 그 계약 내용은 너무나도 섬뜩하다. 참혹하다. <조난>은 육아의 고통 때문에 아들을 학대한 아내와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산행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야기다. 읽으면서 아빠의 욕심과 산행에 이질감이 조금 느껴졌다. 추락한 후 일어난 사건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의 존재는 모두 읽고 난 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다. 사실인지, 아니면 단순히 뇌내 망상인지 말이다.


<미안해>는 아빠의 교통사고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 고등학생이 엄마를 죽이겠다고 마음먹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엄마의 학대를 견디면서 엄마를 죽이고 집을 떠나려고 한다. 엄마를 죽이는 장면에서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 있는데 얼마 전 비슷한 단편을 다른 곳에서 읽었다. 현대 사회의 비극 중 하나다. <크리스마스의 유령>은 화재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남편 이야기다. 가족을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후 일용직과 술로 전전한다. 죽을 용기가 없어 힘들게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다 옛 동네에 온다. 그리고 분노한다. 예상하지 못한 처참한 행동을 하는데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진 그 사건은 서늘하고 무섭다.


<떠도는 아이>는 불임과 난임 부부라면 공감할 부분이 나온다. 힘들게 어렵게 성공한 임신이 어이없는 사고로 죽자 이 부부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윗집에 노부부가 사는데 부부행위 도중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멈춘다. 그리고 이 부부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이의 손자국이 TV에 찍혀 있다. 이때 내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심란하다. <번식>은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가 책 마지막에 주석을 붙여 두지 않았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한 친구의 초대, 멋진 만찬, 여자들과의 즉석미팅, 원나잇 등이 빠르게 이어진다. 하지만 그날 이후 성기 주변에 생긴 이상한 증상은 흔한 성병이 아니다. 읽으면서 괜히 사타구니를 긁게 된다. 단편 속에 깔아 둔 복수극 하나는 요즘 일어나는 일들과 연결된다.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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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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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간단한 책소개를 읽고 리안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을 떠올렸다. 남편의 비밀이란 키워드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자마자 다른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비밀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출근한 줄 알았던 남편 오언이 남긴 쪽지를 받았고, 남편의 딸 베일리는 학교에서 60만 불이 든 가방을 들고 나온다. 여기에 남편이 일하는 회사의 회계부정 문제가 터진다. 머릿속은 빠르게 오언의 잠적이 이 사건과 관계 있고, 그가 남긴 돈은 부정한 방법으로 아내와 딸에게 남긴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이 추측은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하나씩 무너지고,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로 나를 혼란으로 몰아간다.


물론 내가 혼란스럽다고 해도 소설 속 주인공 해나와 딸 베일리만큼은 아닐 것이다. 남편의 상사가 FBI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오언을 오해하기 딱 좋은 수준의 이야기다. 실제 FBI 요원들이 그녀를 찾아오긴 한다. 그 흔한 수색영장 한 장 들지 않고 말이다. 그 이전에 텍사스 법원 직원이 찾아온다. 수상한 일 투성이다. 그의 잠적이 온갖 상상을 다 불러온다. 그리고 의붓딸 베일리와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도 않다. 하지만 둘은 힘을 합쳐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런데 베일리는 열여섯 살로 한참 예민한 소녀다. 자신의 아빠를 빼앗아 갔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믿고 따라야 할 어른이다. 불안정한 둘의 여행이 시작한다.


그 여행의 시작은 베일리의 어릴 적 기억이다. 텍사스 오스틴에 있었던 결혼식 장면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둘은 오스틴으로 온다. 베일리의 기억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아주 부정확하다. 성당에 가서 자료를 요청한다. 개인 정보이다 보니 거부가 먼저다. 그리고 둘은 오언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도시 곳곳을 뒤진다. 그러다 오언의 학창 시절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너무 형편없는 성적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다. 그런데 해나의 전 남친이자 변호사에게서 오언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온다. 오언의 공식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학교나 고등학교나 학력 등이 모두 거짓이다. 이때 과거 그를 본 한 남자와 있었던 일이 펼쳐진다. 그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공식 기록은 가짜이거나 없을까?


상당한 가독성을 가지고 있다. 잘 읽힌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라진 남편의 과거를 좇아 그를 찾아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실체를 찾아갈수록 더 알 수 없다. 베일리와의 작고 섬세한 갈등이 현실적으로 펼쳐진다. 둘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이 감정들을 풀어놓고, 그가 잠적한 이유를 계속 생각하게 한다. 해나가 사랑했고, 결혼했던 남자는 과연 누굴까? 베일리의 아빠는 맞는 것일까? 작가는 여기에 과거 이야기를 중간중간 끼어 넣는다. 그런데 그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가 아닌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 역행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종점에서 오언이 진짜 감정이 드러난다. 이보다 더 뜨거운 부성애가 있을까! 뭉클하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잔잔하다. 놀라운 사실들이 계속 나오지만 장면들만 놓고 보면 자극성이 거의 없다. 살인이나 심리적 스릴을 강조하는 장면이 없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조금 밋밋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천천히 풀어내는 진실과 잘 짠 구성은 계속 책에 눈길을 주게 한다. 화려한 연출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가슴 한곳으로 파고드는 장면과 섬세한 심리 묘사는 아주 멋지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는 남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그림자의 일부를 잠시 보았을 때 그 마음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혀진다. 오언이 해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많고 중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그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진솔하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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