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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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이후 단 일 년 만에 완성한 소설이다. 책소개를 대충 읽었을 때 BBC 선정 ‘2020년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 선정 ‘2020년 주목받는 100권’에 이름을 올렸다고 했을 때 최근 작으로 착각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이후 이 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된 것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다. 어쩌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엽기적인 장면들 때문에 조금 주춤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 느낀 예상 외의 참혹한 장면은 다른 소설을 읽을 때 느낀 감정을 초월한다. 이런 거침없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첫부분은 평범한 가족의 할아버지집 나들이다. 언니와 달리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차에서 힘겨워하지 않는 씩씩한 소녀 나쓰키가 등장한다. 자신을 마법소녀라 말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작가의 다른 소설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사촌인 유우를 자신의 연인이라고 말할 때도 어린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 정도로 생각했다. 온 친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산속 마을의 풍경은 아직 대가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금은 낭만적인 풍경이다. 연인 유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산속의 풍경을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와 달리 언니는 아주 이 상황을 힘들어한다. 엄마가 두 딸을 대하는 방법도 너무 다르다. 작은 딸 나쓰키를 머저리라고 부를 때 잠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우는 고모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유우도 이 사실을 안다. 유우는 자신을 포하피핀포보피아별에서 온 우주인으로 생각한다. 우주선을 찾으면 자신의 별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흔한 소년 시절의 재밌는 상상이다. 그런데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쓰키다. 아주 친해진 둘은 연인이었다가 나중에 서로 결혼한다. 물론 아이들의 결혼이다. 유우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서약서도 작성한다. 그 중에서 눈에 계속 밟히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기’다. 어린 소년 소녀가 왜 이런 단어를 사용해야 했을까? 그리고 나쓰키 엄마가 보여주는 차별과 학대는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나쓰키는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지 못한다. 엄마는 큰딸과 차별하고 학대하고 무시한다. 아빠는 방관자로 겉돌고 있다. 언니의 무시는 또 어떤가. 마음 한 곳이 망가지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마법소녀로 회피하면서 유지한다. 느리고 서툰 그녀에 대한 엄마의 냉대와 학대는 그녀가 성폭행을 당한다고 말했을 때도 결코 사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작가는 엄마가 어떤 기존과 생각으로 나쓰키를 학대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이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펼칠 생각도 못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뒤틀린 현실 도피다. 그 과정 중 하나가 유우와의 섹스다. 이 행위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지만 어른들이 볼 때 위험하고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둘은 만나지도 못하고, 나쓰키는 할아버지집에 가지도 못한다.


그날 이후 부모는 나쓰키를 집중 관리한다. 아이가 벌린 황당한 사건이 그들 가족의 삶을 어떻게 위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 생긴 학원 선생은 이전처럼 아이를 성폭행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학원 선생이 아이에게 구강 성교를 강요하는 장면은 아주 역겹다. 엄마는 도움을 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유우를 만났을 때도 자신의 입은 오염되었다고 말한다. 나중에 이런 자신의 경험을 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 친구들이 보여준 반응은 또 어떤가. 타인의 경험을 바로 보려고 하지 않고 그냥 다른 경험으로 뒤섞어버린다. 그녀의 삶이 계약 결혼으로 섹스리스 삶을 살게 된 데는 이런 과정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계약 남편 도모오미의 존재는 서로 가족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된다.


인간에게 노동과 번식은 불멸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다. 섹스를 ‘사랑’이란 단어로 미화시키고, 아이를 낳기를 강요한다. 이런 현실을 그들은 공장이라고 부른다. 공장 속에서 자의식을 잃고 살아간다면 그들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은 각각의 이유로 이 삶을 살지 못한다. 남편 도모오미는 어릴 때 나쓰키가 경혐했던 시골마을 아키시나를 이상향처럼 생각한다. 이 마을에는 어른이 된 유우가 현재 살고 있다. 이후 이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읽으면서 강한 충격을 받은 장면들을 마주한다. 다름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변이는 무섭고 참혹하다. 몇 번에 걸쳐 그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 장면을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상상과 비유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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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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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쿠니 가오리의 구작들이 리커버해서 나왔다. 읽은 책, 사 놓은 책이 있어 그냥 넘어갔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작가의 소설들을 매년 한 권 정도 읽고 있다.

나의 취향에 완전히 맞지 않지만 가끔 그 미묘한 심리 묘사와 상황 때문에 눈길이 간다.

언제부터인가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이 나오면 눈길을 주고, 기회가 되면 읽는다.

오래 전 이 작가의 초기작을 읽으면서 그렇게 많이 끌리지 않았지만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좋았던 기억들이 손길이 나가게 했다.


세 노인이 섣달 그믐날 밤에 함께 자살했다. 왜 함께 자살했을까?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이유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자살한 이유에 관심이 크게 없다.

이 세 노인이 만나 이야기하고, 자살하기 전까지 장면을 보여주지만 흔한 과거와 일상 이야기뿐이다.

그렇다고 이 세 노인의 자손들이나 지인들이 이 이유를 깊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분명히 아주 큰 사건이지만 일상은 이 일에만 빠져 있기엔 너무 바쁘고 각자의 일로 가득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매력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가까운 곳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본 이들의 삶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소설 읽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이름들 때문에 누구와 연결되는지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저질 기억력을 가진 나에겐 더욱 그렇다.

역자마저도 관계도를 그리면서 읽기를 권할 정도라면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세 노인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 여기에 지인들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누가 누구의 손자인지, 아들인지, 딸인지도 헷갈렸다.

뭐 나중에 자연스럽게 그 관계가 조금씩 들어왔지만 그만큼 앞부분에 놓친 것도 많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죽음과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누군가의 아버지나 엄마, 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일본어 선생님이었던 노인들이다.

그 후손만큼, 살아오면서 맺은 관계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물론 모두를 다룬다면 도서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분량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몇 명을 뽑아내어 그들의 현재 삶을 보여준다.

그 사이를 채워주는 것 중 하나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들이다. 관계다.

죽음은 가끔 잊고 있던 관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누구나 다르다.

그들이 바란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지만 나쁜 기억이 더 많은 사람도 있다.

고인에 대한 애도와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빨리 잊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일상에 몸을 맡기고 시간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는 작은 도전을 펼치기도 한다.

이 각각 다른 삶의 방식은 또 다른 관계 속에서 이어지고, 끊어진다.

평범한 가족도 나오지만 욕할 수도 있는 가족도 나온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몸에게 맡겨 살아온 사람도 있다. 자식보다 자신이 우선이다.


이런 다양한 삶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다.

알고 욕하기도 한다. 욕하는 것은 쉽다. 그냥 지나갈 뿐이니까.

하지만 그 삶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렇게 쉬울까?

다시 만났을 때 느낌은, 기분은 또 어떨까? 순간 머뭇거리고 어색해는 장면을 볼 때 잠시 숨을 고른다.

함께 수목장을 하면서 만난 각각의 가족들은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누구에게 연락을 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관계와 현재의 삶들이 조용히, 천천히 하나씩 풀려나온다. 복잡한 관계 몰라도 좋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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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서바이벌 대작전 44 : 새로운 모험의 시작 - 안전상식 학습만화 쿠키런 서바이벌 대작전 44
김강현 지음, 김기수 그림 / 서울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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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시리즈 중 서바이벌 대작전 44권이다.

아이가 좋아해서 쿠키런 킹덤 시리즈와 언어술사 등을 먼저 읽었다.

워낙 많은 분량이라 처음부터 읽기 힘들고, 아이도 중간부터 읽는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특별히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부터 읽어도 큰 무리가 없다.

다만 이번 이야기 마지막을 읽고 난 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편을 읽지 않았지만 291화를 읽다 보면 대충 예상이 가능하다.

나이트메어들과 싸워 꿈 속에 빠진 친구들을 구해야 한다.

이 이야기에서 재밌는 부분은 영생에 대한 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이 꼭 좋지만 않다는 것을 말한다.

영원히 살게 되면서 삶의 굴곡도 재미도 누릴 수 없게 되면서 다른 존재의 꿈을 노린다는 것이다.

영생의 에너지를 타인의 꿈으로 본 것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성인 대상의 소설이라면 꿈과 생명을 동시에 놓고 좀더 잔인하게 풀어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이트메어들이 닥터 뼈다귀 쿠키의 이동 진료소 변신은 정말 추억을 소환한다.


하나의 미션을 해결한 후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고, 이 일상 속에서 생기는 안전 문제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공사장 주변의 위험과 간단한 생활 지식 등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배가 고파지고, 웃을수록 건강해진다는 것은 아는 지식이다.

속눈썹이 눈 속에서 사라졌을 때 이야기도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망고에 대한 알레르기 부분은 정말 낯설었다. 망고가 옻나무과에 속하다니.

망고스틴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알려주는데 오래 전 이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던 때가 떠오른다.


이번 권에서는 지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곳곳에 아재 개그와 아이들 유머가 놓여 있고, 안전 상식과 과학 정보 등을 늘어놓았다.

어른의 시선으로 책을 읽었지만 아이가 먼저 읽고 다른 쿠키런 시리즈보다 글이 많다고 한다.

다른 책은 한 번에 끝까지 읽었는데 이 책은 두 번 나누어 다 읽었다.

일단 내가 빼앗아 읽고 난 후 다시 주기로 했다.

아마 또 이 책을 뒤적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곳을 찾아 낼 것 같다.


늘 이런 책을 받고 읽을 때면 아이에게 묻는다.

다음 이야기 읽고 싶냐고? 그러면 대답은 언제나 같다. 읽고 싶다고.

이렇게 아이의 책들이 한 권씩 쌓여 간다.

아직 어려 자극적인 일본 만화나 한국 액션 등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내가 반대한다.

그 수준의 아이들에게 이 만화는 재미와 상당한 안전 지식을 전해준다.

아이의 재미와 부모의 욕망이 서로 잘 맞는 곳을 파고들었다. 물론 나도 재밌게 읽었다.

한 가지 부작용이라면 늘 만화를 찾는다는 것인데 뭐 어떤가. 나의 어릴 적 꿈이 만화방 주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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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경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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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K-콘텐츠 공모전 미스터리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경민선 작가는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장편 우수상 <연옥의 수리공>으로 만난 적이 있다.

두 번째 만나는데 왠지 낯설다. 재밌는 소설을 쓰지만 나의 저질 기억력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미안하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수많은 작가들에게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계속해서 이 정도로 재밌는 소설들을 내준다면 아마도 분명히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가끔 이름이 너무 헷갈려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헷갈릴 가능성이 낮다,


투명인간을 죽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를 죽였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의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작가는 투명인간들은 투명인간을 볼 수 있다고 설정했다.

그리고 이 투명인간은 적외선으로도 확인되지 않는다. 손으로 만지면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 한수가 오랜만에 온 친구 기영의 연락을 받고 갔을 때 그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만질 수 있고, 부피와 무게가 있는 둘러싸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집에 두면 되지 않아 하고 말 할 수 있지만 투명인간의 시체가 부패하면 냄새가 난다.

둘이 함께 이 보이지 않는 시체를 사람이 오지 않는 산에 묻으러 간다.


한수는 좋은 부모 밑에서 잘 자랐지만 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백수처럼 살아간다.

부모의 지원이 끊어진 후 알바를 뛰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가 좋다는 말에 배우 수업을 받는데 운 좋게 CF에 마임하는 인물로 잠시 얼굴을 비춘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성공한 친구들의 헛소리를 듣고 술을 얻어 마신다.

기영은 학창 시절 전교 1등이었지만 의대에 가지 않았다.

친구들은 집이 가난해서 못 갔다고 말하지만 기영이 나무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한수는 알고 있다.

기영이 트럭을 몰고 다니는 것을 봤다는 친구들의 말에는 뒤바뀐 현실에 대한 자랑과 조롱으로 가득하다.

이 모임에 온 친구들 부모들은 모두 빵빵하다. 병원장이거나 정부의 고위관료다.


투명인간들이 있고, 그 시체를 치웠다는 조금 황당한 설정만 나왔다면 단편으로 충분하다.

기영의 죽음을 넣고,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한수가 친구에 대한 부채감을 갖게 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기영이 남긴 단서를 찾아가면서 결국 마주한 것이 새로운 투명인간이다.

죽음 직전까지 몰렸지만 기영의 친구라는 사실을 증명한 후에 겨우 살아난다.

내가 투명인간이 아니란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내 동료가 투명인간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물론 양심을 살짝 내려놓아야 한다. 실제 이 투명인간은 호텔에 거주하면서 돈 등을 훔쳐온다.

그리고 투명인간은 자신들을 묵인이라고 말한다. 이름은 없고 번호로 불린다.


숫자로 불린다는 것은 개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묵인들은 정부 조직의 관리 아래 운영되고 있다.

적외선에도 잡히지 않으니 최고의 암살자다. 권력자라면 누구나 쥐고 싶은 패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내부 협력자를 두면 가능하다.

물론 이 묵인을 보는 다른 방법이 하나 있다. 한수는 이 방법으로 묵인을 본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상대하는 것에서 보이는 적으로 바뀌면서 대처 방법도 달라진다.

그렇다고 한수가 바로 무술의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한계가 있다.

작가는 이 한계를 이용하고, 앞에 깔아 둔 설정들을 같이 녹여내었다.

영화로 만들면 아주 재밌는 장면이 될 것이다. 아!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뛰어난 가독성과 꼼꼼한 설정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가볍게 읽기에도 좋다.

액션이 펼쳐지고, 쫓고 쫓기는 추격과 멀리서 보면 이상한 행동이지만 치열한 싸움이 나온다.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는 자신만 보는 묵인과의 대결이다. 남들이 보기엔 마임 같다.

혼자 날아가고, 피가 튀고, 상처가 난다. 당사자는 목숨이 걸려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미친 놈이 지랄하는 것 같다. 이 장면을 은유로 풀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묵인이 소외된 이들을 빗대었다면 이 처절한 싸움은 그들만의 생존 경쟁이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는 우리의 현실 말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소설을 시리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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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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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에서 <짝사랑>1.2권, <아내를 사랑한 여자>로 나왔었던 소설이다.

이번에 다른 번역자와 함께 돌아왔다. 단순한 표지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번역이라 더 반갑다.

1999년과 2000년에 일본에서 연재된 소설이 <짝사랑>이란 제목으로 두 권으로 나왔었다.

인터넷에서 표지를 보고 잠시 그 책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를 사랑한 여자>란 제목으로 나왔을 때는 같은 소설이란 것을 몰랐다.

최근에 개정판에 대한 정보가 잘 나와 그 흔적을 따라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한국 주류 방송에서 LGBT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언제일까?

홍석천이 동성애자라고 알린 것도 큰 일이지만 하리수의 트랜스젠더 부분이 더 강하게 떠오른다.

아마 그 당시는 트랜스젠더를 잘 몰랐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방송에 나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인식이 사람들의 모든 의식을 바꾼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한 발 내딛게 한 것이다. 이것도 아주 큰 일이었다.

그렇지만 일반 사람으로 가면 어떨까? 내 친구나 지인이라면?


이 소설 속 주인공 데쓰로는 10년 만에 당시 여자 매니저였던 미쓰키를 만난다.

이 만남 이전에 데쓰로는 미식축구부 동기들과 추억을 씹으면서 모임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데쓰로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졌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10년 동안 계속 반복되는 그들만의 추억팔이다.

귀가하려고 한 순간에 나타난 미쓰키는 말 대신 글자로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한다.

데쓰로는 자신이 집이 가깝고, 아내가 출장 중이라고 말한 후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두 가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둘 모두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하나는 미쓰키가 성정체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지만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녀/그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다.

남성 호르몬을 맞고, 남자처럼 운동하면서 근육을 키웠다.

호르몬 탓인지 근육도 많이 붙었고, 목소리도 변했다. 무심코 보면 남자처럼 보인다.

가출 후 작은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데 여직원을 스토커하는 남자가 있었다.

보통의 남자처럼 그 여성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그만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두 번째 사건이 여기서 나온다.

그녀/그는 자수하기 전 짝사랑했던 여자 리사코를 만나기 위해 동기 모임 밖에서 어슬렁거린 것이다.


이 기묘한 상황에서 자수하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은데 그들은 자수를 말린다.

남자로 살아온 그녀의 흔적을 감안하면 여자처럼 다닌다면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쓰키는 여자의 몸이 싫고, 여자의 옷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은 남자인데 여성의 옷과 행동을 강요한 삶을 이제는 완전히 벗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성정체성 장애 문제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것을 한 사람의 살인 사건과 연결하고, 조금씩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인정할 수 없었던 부모의 모습까지.


지금은 모르지만 일본의 남녀 차별은 한국보다 더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좀더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둘이 막하막하이겠지만 표면적으로 일본이 조금 더 심한 것처럼 보인다.

같은 일을 하지만 여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한다.

같은 능력이라도, 아니 더 좋아도 기회조차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소설 속 시간 대로 보면 1990년대 인 듯한데 아마 한국도 그 당시는 그랬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쌓이고 겹치면서 남자인 마음이 여자의 허물을 벗게 한 것이다.

물론 반대로 남자의 몸이지만 여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


소설은 단순히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문제만 나열하지 않고 조금 더 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재밌는 것은 하나의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성정체성 장애 문제를 뫼비우스의 띠로 풀어낸 부분이나 남녀의 마음 비율 등은 가슴에 콕 와 닿는다.

이런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살인 사건을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긴박하고 재밌다.

단순해 보이는 살인 사건의 이면은 또 다른 사실을 품고 있다.

숨겨온 과거는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 알거나 짐작하는 일이 되었다.

억지로 이 상황을 봉합하기 위한 설정을 펼치지 않은 것도 좋았다.

최근 초기작들을 가끔 만나는데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아주 큰 편차를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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