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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조지 오웰의 책들이 다시 번역되어 나온다. 예전에 읽지 않았던 소설이나 르포도 덕분에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이 작품은 처음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럴 때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숨은 걸작이란 상투적인 문구에 어쩔 수 없이 눈이 가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이름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에 더욱 그렇다. 책 소개에 나오는 이 작품에 대한 정보는 사실 무겁다. 그런데 첫 문장을 읽고 난 후 이 뚱뚱한 중년 보험사원에게서 잠시 잊고 있던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간 후 현재가 이어진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당연히 현재가 아닌 과거다. 그래서인지 분량도 가장 많다. 이 과거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나와 우리 아버지들의 잊고 있던 역사다. 역사란 거창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누구나 살아온 길이 있다. 아무리 평범한 인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과거는 그가 현재에서 도망갈 유일한 곳이자 희망이 깃든 곳이다. 아내 모르게 생긴 17파운드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중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간다. 이 과정에 중년 가장의 삶이 하나씩 밝혀진다.

틀니를 낀 마흔다섯 살 중년의 아침으로 이야기 문을 연다. 일상적인 가정의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는 힘겹게 살아가는 한 가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사는 곳 웨스트블레츨리의 엘즈미어로드 교외주택단지로 장면이 바뀌면서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주택금융조합의 영악한 사기 행위는 현대의 재건축조합이나 토건족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 이런 현실 속 조지의 일상이 그려지고 조그 왕이란 이름이 기억을 자극한다. 이 자극된 기억 속 세계는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 속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의 유년 시절, 청년 시절, 군 시절, 제대 시절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풀어낸다. 성실한 부모 아래에서 평온하게 자란 그의 유년 시절 기억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부모들의 과거를 떠올려준다. 현재 삶의 무게에 짓눌려 뚱뚱해지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지만 찬란하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변화의 바퀴는 굴러가고 적응하거나 변하지 못한 사람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다루는 장면에서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향수와 그리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데도 말이다. 

그리고 전쟁. 1차 대전은 삶을 바꿔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경험이 나중에 전쟁과 정의를 외치는 젊은이들과 선동가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경험이 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이어지지만 선동에는 찬성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과 통찰로 이어진다. 이미 지나온 역사이기에 그의 통찰력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다. 전쟁보다 전쟁 후를 더 걱정하는 그의 인식에서 그가 걸어온 삶의 무거움과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뚱보 조지의 말과 행동과 심리를 통해 유머와 위트를 계속 풀어낸다.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즐겁게 읽게 만드는 힘이 바로 여기서 생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핵심은 2부와 4부라고 생각한다. 2부가 조지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면서 시대의 흐름과 한 개인의 삶을 잘 표현했다면 4부는 현대 속에 무너진 과거의 흔적과 현대 사회의 불안과 소외와 공포다. 2부에서 그가 가장 행복을 느꼈던 낚시를 위해 4부에 찾아간 고향은 이미 과거 기억 속 장소가 아니다. 이 장소와 환경의 변화, 조지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 추억과 현실의 불일치 등이 격렬하게 대립한다. 속된 말로 첫사랑은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일상에 지친 그가 숨 쉬러 간 그곳이 오히려 그를 질식시킨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본 표지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공돈이 생긴 한 가장의 일탈기라고도 할 수 있다.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던 그가 싫증을 느껴 숨 쉬러 간다. 실제 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탈(?)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이 더 각박해지고 빨라지고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라는 괴물이란 표현이 미래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도 숨 쉴 곳을 찾지만 생활과 경제라는 단어들이 나를 삼켜버린다. 혹시 내가 숨 쉴 곳을 찾는다 해도 주변 사람들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지막 문장에서 그가 선택할 것을 아는 것처럼 나의 선택도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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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문타이거가 뭘까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이것이 모기향이란다. 왜 있잖은가 동그랗게 나사모양으로 말린 모기향 말이다.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가 모기향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과 모기향의 용도와 모기향 연기 등을 가지고 멋대로 추측해본다. 낭만적인 문타이거란 이름은 과거 그녀가 사랑했던 톰과의 추억이고, 모기를 쫓는 용도는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을, 연기는 희미한 기억 등이 아닐까 하고. 이런 멋대로 추측을 지금 하고 있지만 읽는 동안은 사실 많이 혼란스러웠다.

첫 문장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인상적인 문장 다음에 간호사가 나오면서 조금 황당했지만 그녀 클라우디아가 자신의 삶을 세계사와 병치하겠다고 했을 때 살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역사가 사실과 허구, 신화와 증거, 이미지와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소설의 구성과 전개에 그대로 적용된다. 각 이야기마다 현실에서 과거로 빠져들고, 과거는 이미지에 의해 추억된다. 이 추억은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고, 기록은 이미지의 영향 아래 놓이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쉽게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또 간결한 문장은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뒤섞인 과거와 관계는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사실 이 소설은 세계의 역사보다 개인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다. 개인의 삶이 역동적인 변혁의 시대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따라가면 그녀의 사랑이 중심에 놓여있다. 그 사랑을 좇는 과정에 그녀의 가족사와 삶이 하나씩 드러난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이 말이다. 이런 그녀도 그녀의 오빠 고든도 평범하지 않지만 그녀에게 아이를 낳게 한 재스퍼도 마찬가지다. 그의 집안 이력은 러시아 귀족 출신 아버지에 데번의 유지인 엄마가 있다. 그런데 이 가족도 단란하지 못하다. 자신들의 결혼이 끔찍한 실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이혼한다. 그는 가진 것을 잘 이용할 줄 알고 야심차고 인맥 든든하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된다. 이런 클라우디아와 재스퍼의 관계는 뒤죽박죽이고 파편처럼 부서져 있다. 아이의 아버지란 인연으로 이 둘은 평생 이어진다.

역사를 기록하는 인물이 클라우디아이다 보니 모든 기록은 그녀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그녀의 오빠 고든, 올케 실비아, 딸 리사, 아이의 아빠 재스퍼, 유일한 사랑이자 전사자인 톰 등의 인물 모두. 이 기록은 언어의 힘이다. “덧없는 것들을 보존하고, 꿈의 형태를 부여하고, 햇살의 반짝임에 영속성을 주는 그것.”(22쪽)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논쟁은 역사의 존재의미 그 자체”(32쪽)라는 그녀의 말고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적 기록인 그녀의 세계사가 개인 기록으로 바뀌면서 논쟁의 장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세계사를 두고 논쟁하고 싶은 인물들이 여럿 나타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는 문장을 많이 만난다. 함축적이고 간결한 문장은 여운을 남긴다. 짧은 호흡으로 바쁘게 읽다보니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그녀의 삶에 집중한다. 거기서 보게 되는 것은 보통의 엄마도 아니고 아주 사랑스러운 여자도 아니다. 사랑했던 남자를 잃고, 자신을 강하게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가 “희망은 인내가 된다.”(236쪽)고 말할 때 희망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희망이 완전한 사실로 드러나기 전에는 결코 버리지 못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톰의 일기를 제일 마지막에 배치해서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에 희망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나의 호흡과 집중력으로 단숨에 읽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파편적인 이미지와 기록의 연속은 초반 몰입에 실패하게 만들었고,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읽어나간 문장은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책의 재미와 구성 등에 접근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시점이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데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다. 현실에서 과거로 빠져드는 것 역시. 하지만 그녀가 쓴 세계의 역사처럼 나도 세계의 역사를 쓴다면 과연 어떤 추억과 기록들이 나올까 순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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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이 미스터리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2
시본 도우드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유는 단 하나다. 제목에 미스터리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 읽은 탓도 있다. 잘못 읽은 글자는 런던 아이다. 런던 아이(London Eye)는 템스 강변에 있는 거대한 자전거 바퀴 모양을 한 회전 관람차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런던 아이(London boy)로 읽은 것이다. 재미난 것은 이 소설의 미스터리 대상인 살림이 뉴욕으로 이사 가기 전 이종사촌을 만나러 왔다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살림의 실종을 런던 아이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한글과 영어의 묘한 결합이 책 처음부터 시선을 끌었다.

첫 장면에서 런던 아이를 탔던 살림이 사라진다. 그리고 고기능성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을 앓고 있는 테드가 살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데 도움이 된 것을 기록한 글로 이어진다. 이 글 속에서 만나게 되는 테드는 분명히 우리가 자주 만나는 아이들과 다르다. 처음에 테드의 말투와 행동을 보았을 때 아주 어린 아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열두 살이다. 조그마한 장애 같은 증후군 때문에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른 말과 행동을 할 뿐이다. 사실 이 소설이 지닌 재미의 상당 부분은 테드의 남과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에서 생긴다. 그 순수함과 놀라운 회색 뇌세포 때문에 말이다.

살림은 테드의 이모 글로리아의 아들이다. 그녀는 이혼한 후 뉴욕에서 기획자 일자리를 얻게 된다. 뉴욕 가는 길에 언니 집에 잠시 들렀다 갈 예정으로 왔다. 그녀의 별명은 허리케인이다. 지나간 자리가 초토화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이 모자가 잠시 머물면서 어디로 갈까 토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각자의 관심 분야가 잘 드러난다. 결국 높은 곳, 경치, 처음 등을 감안하여 런던 아이에 가기로 한다. 날씨가 좋아 관람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만 타기로 하고 엄마들은 카페로 간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이 한 남자가 와서 폐소 공포증이 있다면서 표를 공짜로 준다. 한 번도 탄 적이 없는 살림이 표를 받아서 탄다. 그리고 사라진다. 여기서 미스터리가 생긴다.

살림의 실종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분명히 그가 런던 아이를 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내릴 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의문으로 가득하다. 그의 실종으로 가장 놀란 것은 당연히 엄마인 글로리아다.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를 찾아다니고 혹시나 나쁜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이 걱정과 두려움 속에 이성은 마비된다. 어른들이 마비된 이성으로 걱정을 할 때 테드의 이성은 컴퓨터처럼 작동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홈즈의 가설 소거법이다. 처음에 8가지 가설을 세우고, 나중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은 분명 이 속에 들어있다.

테드가 세운 가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나 캣이다. 나머지는 아이라는 이유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특별한 병과 아이의 말에 귀찮음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자신들이 세운 가설과 발견한 단서를 쫓는 것이다. 이렇게 남매 탐정이 만들어지고 조금은 허술한 수사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둘의 탐정 활동을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딱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머문다. 다만 테드의 번뜩이는 머리만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분석하고 추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말 이 과정은 명탐정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테드와 캣의 탐정 활약이 주는 재미가 솔솔하다면 테드의 병으로 인한 특이함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당사자에게는 불편한 일일 수 있지만 읽는 독자에게는 테드의 반응과 심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준다. 그가 집착하는 일기예보나 과학적 지식은 추리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데 이 또한 큰 재미다. 소년 탐정이라 활약에 제약이 많지만 성인이라면 또 한 명의 멋진 탐정이 등장했다고 말해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의 제한된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다음 사건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기다려진다. 

기본 구성은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 거리는 상당하다. 테드의 특이한 증후군, 이혼한 가정의 불안정, 어른들의 아이 의견 무시, 왕따 문제, 인종 차별, 고정관념과 논리적 사고 등 무사히 많다. 가디언 지의 토론 수업에 풍부한 자료를 제공할 소설이란 평에 동의한다. 테드의 추리를 따라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갈 때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를 누린다. 이 과정 속에 담긴 수많은 담론 의제들은‘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모든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자신의 머릿속을 비워나가는 장면은 우리의 일상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작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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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 - 영화와 광고로 본 문화의 두 얼굴
김선희 지음, 송진욱 그림 / 풀빛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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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광고로 본 문화의 두 얼굴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제목에서 영화 이미지가 강하게 풍긴다. 맞다. 제목과 부제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잘 나타내준다. 우리는 영화나 광고 같은 대중문화를 접할 때 보여주는 것의 이면을 잘 살펴보지 않는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과 자극적인 광고 문구에 열광할 뿐이다. 저자는 이런 영화와 광고의 이면을 보려고 하는데 이 책을 대중문화에 대한 개인적 저항의 경로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중문화 혹은 현대 사회에 저항하는 방법이나 원리 같은 것은 없고, 세계적인 석학의 연구 성과나 충고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 저항 기록 속에서 다양한 이론과 시각을 만나게 된다.

모두 네 개 장으로 나누었다. 복제되는 현대 신화에서 감시와 통제, 신화가 된 소비, 신분상승 판타지를 다루고, 문화 거울로 자기 바라보기에선 성장에 관한 판타지, 불안 마케팅을 이용한 보험, 현대 가족의 신화와 균열을 보여준다. 공존을 위한 숙제들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의와 선, 세습되는 불평등, 우리속의 오리엔탈리즘을 만나고, 마지막 지구 단위로 생각하기에서는 근대, 산업기술, 환경오염, 전쟁 중계 속 시선을 통해 나의 존재를 더 넓게 확장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현상과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와 광고. 현대 대중문화에서 이 둘보다 자극적이고 영향력이 큰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히 현대문화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없앴다고 이 둘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광고는 잡지 등의 출판 매체를 통해, 길거리 옥외 광고판을 통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거리 곳곳에서 보이고 들린다. 영화 예고편조차도 옥외 광고판을 통해 볼 수 있으니 이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면 깊은 산골에 맨몸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 외의 것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 불편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영화와 광고를 배경으로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낯설 때도 있지만 이미 다른 매체 등을 통해 경험한 것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단편적이나 한정된 이야기 속에서 만났지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네 가지 구분은 각각의 영화와 광고를 통해 해체되고 분석되는데 읽다보면 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은 평소 한 번 비틀어보는 나보다 한 번 더 비틀거나 전혀 다른 시각에서 현상을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대중문화 비판 혹은 광고문구대로 제멋대로 후벼파기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 중 한두 개만 말해보자. 먼저 “판타지가 사랑받는 것은 현실이 고단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인의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회적 벽이 있기 때문이다.”(55쪽)란 문장이다. 신분상승 판타지를 이보다 더 날카롭게 분석한 글을 본 적이 없기에 더 가슴에 와 닿았다. 한탕주의가 생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여자만 꿈꾸는 판타지였다면 지금은 남녀 모두 바라는 것이 되었다. 화려한 포장 그 뒤에 감춰진 삶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견고해지고 있다.

“타자에 대한 관용과 이해는 타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174쪽) 이 문장에서 내가 하는 행동들을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기부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활동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한다는 말의 참뜻을 되새겨보게 한다. 물론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기부가 아니다. 다문화 가정 혹은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리는 구분 또는 분류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문장이다. 사실 영화나 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직접 간접으로 수없이 경험하는 것이 이런 구분과 분류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냥 보고 지나갔던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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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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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이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이 소설을 통해 아우슈비츠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전에 읽고 쓴 서평에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학살이나 잔혹 행위에 대한 묘사가 없다’고 쓴 글이 보인다. 감정이입이 절제되면서 그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전작보다 가독성이 더 좋다. 화려한 수식어나 문장 등이 없는 것은 전작과 똑같지만 유태인 빨치산이란 조금 특이한 소재가 관심을 불러온 것이다. 

유태인에 대한 나의 관심과 견해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 어릴 때 그들의 엄청난 고난과 노력에 감탄하며 이스라엘을 칭찬했다면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조금씩 변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상업화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했는데 새로운 정보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바뀌게 되었다. 언론과 자본에 의해 왜곡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면서 정확한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이런 번복과 반복은 시오니즘과 유태인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 인한 탓이 큰데 지금도 가끔은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사실 힘들다. 이전에 각 나라의 유태인이 반목하고 경쟁하고 무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란 적이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히틀러에게 동족을 판 사실을 읽을 때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기존에 단결과 고난으로 국가를 건설했다는 사실 뒷면의 숨져진 다른 면을 본 탓이다. 이런 다른 면이 이번 소설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의 나치에 대한 적극적인 반항 혹은 전투는 한두 군데 게토에서 벌어진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무력하게 죽음 속으로 걸음을 옮긴 그들에게 실망감을 느꼈고, 위대한 이스라엘 건설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태인 빨치산. 참 낯선 용어다. 하지만 역사 속에 그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집단수용소를 탈출해서 전장을 벗어나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나치와 싸웠다. 이 책이 이 모든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을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들도 무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나치와 싸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유럽에서 유태인 빨치산이 다른 빨치산들에게 공격을 받아 전멸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과 그 지역에서 유태인에 대한 깊은 반목으로 또 다른 빨치산에게 긴장을 품고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동시에 같은 편에게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어려움에 그들이 처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 유태인에 대한 각 민족의 인식과 행동을 알게 한다.

주인공은 유태인인 멘델이다. 그는 나치에 의해 아내와 아들을 잃고 홀로 숨어 살다가 한 소년을 만난다. 러시아 군인 출신 레오니드다. 군 낙오자인 그와의 만남은 홀로 외롭게 살던 그가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둘의 동행을 통해 작가는 히틀러의 광기, 스탈린의 잔혹성과 위험, 위선적인 유태인의 이중성, 유럽의 반유대 정서를 밖으로 드러낸다. 낯익은 장면도 만나지만 생소하면서 낯선 사실을 만날 때는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정보가 너무나도 아우슈비츠에 집중되면서 놓친 부분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이 때문에 정확한 유태인 평가를 내리는데 왜곡이 일어난다. 반면에 이 소설이 지닌 가치를 다시 재평가하게 만들기도 한다.

빨치산하면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힘겹게 싸워야 했던 그들 이야기를 만났을 때 신선함을 느꼈듯이 이번 소설도 그랬다. 그것은 유태인 빨치산이란 것도 있지만 각 지역마다 많은 빨치산이 존재했고 후방교란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과 그 한계도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빨치산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삶의 순간과 유머를 즐겼다는 점은 사람이 지닌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게달레 대장의 바이올린은 그것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그를 통해 또 다른 비극의 한 면을 알게 되지만.

비정규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이 한계 속에서도 그들은 생명을 내던져 싸운다.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지만 그 치열함은 분명히 드러난다. 정보와 역정보, 반목과 대립, 현실과 희망, 인간과 비인간 등을 담담하게 말하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나’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들은 충격과 불편함을 던져주고, 똑같은 악당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찐한 울림을 준다. 가볍게 읽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인식의 지평을 조금 더 넓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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