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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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넘어서는 악마적 매혹! 이라고. 글쎄. 이 말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향수>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점을 꼽는다면 더 강렬한 장면으로 채워진 요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부분은 분명히 <향수>를 넘어섰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화려한 요리법과 감정이입을 차단한 묘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나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향수>와 비교한 책에 대해 좋은 평을 하지 않았다. <향수>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주제가 다른데 억지로 붙인 듯한 광고 문구 때문에 거부반응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책도 역시 앞부분에 그런 거부반응이 있었다. 제목과 첫 장면에서 풍기는 강렬함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랬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향수>와 완전히 다른 전개방식이었다. 뭐 한 인간의 집착과 삶을 다룬다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오히려 이 자극적인 제목 뒤에 감춰진 아르헨티나 현대사가 더 눈길을 끈다. 

플레이보이의 평에 ‘한 가문의 잔혹사’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렇다. 이 소설은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요리사가 되고, 레시피를 만들고, 갑자기 죽는지 보여준다. 한 세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루는데 이 집안의 역사 속에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같이 녹였다. 동시에 이탈리아의 이민사도 같이. 사실 아르헨티나 역사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이 소설이 풀어내는 중요한 장치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거의 궁극의 요리비법서처럼 다루어지는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과 음식들이 침을 삼키면서 빠져들게 만든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처음으로 인육 맛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바로 이 아기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고 이 가족의 과거사가 연대별로 펼쳐진다. 이 과거사가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읽으면서 언제 세사르가 보여줄 끔찍한 요리가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이런 기다림의 시간 속에 펼쳐지는 한 가문의 역사는 처음 예상한 것과 너무 달라 쉽게 빠져들지 못한 부분도 많다. 하나의 긴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고 빠르게 변하면서 흐름을 끊기 때문이다. 아마 책에 대한 접근방법이 잘못된 탓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식인주의에 관심을 둔 것이다. 뭐 첫 장면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음식에 대한 나의 식탐을 생각하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요리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요리들은 침을 계속 삼키게 만들고 언제 먹어보지 하는 상상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아주 가끔은 이런 화려한 묘사와 달리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을 것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도 끼어든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상상은 금방 제압당하고 침을 흘린다. 처음 만났던 인육에 대한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그리고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나 소설 속 인육 요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식인주의의 인문학적 정보도 동시에 지나갔다. 이런 정보들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무덤덤한 묘사와 서술 속에 사라졌다. 앞으로 또 어떤 살인과 요리가 만들어질까 호기심을 불러오면서.

옮긴이의 글에서 “인류의 역사가 결국 ‘식인주의’의 반복에 불과하다”(277쪽)를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음식으로서의 식인이 아닌 역사 속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얼마나 잔혹한 일들이 많았는지,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또 소설 속 아르헨티나 근현대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게 되면 조금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아니면 아우슈비츠나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그 부산물들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작가는 “당시 아르헨티나는 온통 인육 맛을 본 약탈자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도 같아서”(169쪽)라는 문장을 써 단순히 엽기, 잔혹, 미스터리를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갑자기 아르헨티나 역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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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9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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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라노 미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사라진 AV 여배우 잇시키 리나를 쫓는 미로의 활약을 그렸다. 전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미로의 활약은 힘겨우면서도 반짝인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영화나 탐정소설에서 만나는 탐정과 다르다. 액션은 전혀 펼치지 못하고, 순간적인 직관으로 모든 것을 단숨에 파악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야쿠자의 협박에 겁을 먹고, 남자의 힘 앞에 무기력하다. 이런 그녀지만 장점이 두 가지 있다. 그 첫째는 끈기고, 그 다음은 상상력이다. 끈기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계속해서 파헤치는 것이고, 상상력은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고 추리해서 진실을 파악하는 힘이다. 

AV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이 있다. 아주 순진했던 그 시절 이 장르를 만나면서 정말 많이 놀랐다. 포르노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어떻게 해서 하드코어라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보고난 후 사실인지 궁금했다. 아마 스너프 필름이 진짜일까 아닐까 하는 의문 이상으로 호기심을 품었던 시절과 비슷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이 소설의 첫 장면이 일반적인 AV에서 갑자기 강간으로 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 비디오를 본 페미니스트 와타나베 후사에가 AV 여배우를 찾아 강간한 남자들과 제작사를 고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 직접 하지 않냐고? 그것은 강간이 친고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오랫동안 일한 다와다 변호사 소개로 그녀가 왔고, 미로는 정가보다 저렴하게 그 사건을 맞는다. 이제 그녀는 한국에서 수많은 본좌들을 만들어낸 성인비디오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정보는 인맥을 통할 수밖에 없다. 그 첫 인맥은 이제 은퇴한 탐정 아버지 무라노 젠조다. 아버지를 통해 비디오 가게를 하는 아오타를 만나고, 기초적인 정보를 얻는다. 여기에 동성애자이자 옆집 남자인 도모베 아키히코가 유명한 게이와 함께 의논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등장한다. 이 의논을 통해 미국 영화에서 보게 되는 동성애자 친구를 그녀는 가지게 된다. 그녀는 그가 남자친구가 되었으면 하지만.

사라진 AV 여배우 리나를 찾아주면 되는 간단한 의뢰지만 와타나베가 제작사를 한 번 뒤흔든 뒤라 쉽지 않다. 그녀가 제작사를 찾아갔을 때 반응은 거부감으로 가득하다. 정보는 더 숨겨지고, 그녀의 흔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혹시 그녀가 출연한 다른 성인 비디오가 있는지 조사를 하지만 시중에 유통된 것은 없다. 단서를 찾기 위해 비디오를 자세히 본다.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이 단서가 쉽게 그녀에게 다가갈 정보를 바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단서를 통해 추리하고 새로운 조사를 해야 한다. 여기서 그녀의 장점들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탐정 미로가 AV 세계를 하나씩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우리가 이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여자들이라면 뻔하다고 할 때 그녀는 기획사를 통해 자기발로 찾아오는 여자나 직접 제작한 비디오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며 상상이상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다시 미로와 야시로의 묘한 관계로 이어지면서 본능과 삶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이 직선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관계를 만들고 복잡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 복잡한 관계 속에는 모든 사건을 단숨에 해결할 진실이 숨겨져 있다. 

전작과 비교해 이번 작품은 힘이 조금 달린다. 낯선 세계를 파헤치면서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과 야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마지막 장면들이 강한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반전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에 아마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뒤틀린 인간의 욕망과 가진 것을 잃는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무지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것에 대한 이성의 반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외전 <물의 잠 재의 꿈>과 시리즈 마지막인 <다크>가 나를 기다린다는 것은 제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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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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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늘 단편소설만 썼던 그녀가 장편을 내놓았다. 그녀의 단편에 대한 호평들을 기억하던 나에게 이 장편은 어떤 느낌일지 참 궁금했다. 혹시 조금 무겁게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지루하거나 더딘 진행은 아닐까? 걱정도 했다. 이런 걱정들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정신없이 읽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가슴 먹먹해 하면서.

가장 늙은 자식. 그렇다. 화자이자 주인공 아름이는 조로증에 걸린 아이다. 현재 나이는 그의 부모가 그를 가진 열일곱 살이다. 그의 외모는 부모나 주변의 누구보다 늙었다. 보통 사람보다 10배는 빠른 노화가 진행되면서 온갖 병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 줄 몰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노화는 빠르다. 특이한 병으로 인한 빠른 노화는 가난한 부모들을 경제적으로 더 힘들게 만든다. 잠깐 드러나는 그들의 삶을 보면 주변 사람들과 연락이 끊어질 정도다. 하지만 이 어린 부모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름이를 키우고 돌보고 사랑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과정과 그것들에 대한 아름이의 보답과 사랑을 담은 것이다.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 어린 두 부부가 어떻게 아름이를 낳았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어떤지 보여준다. 열일곱에 소위 말하는 사고를 친 두 학생의 이야기는 아름이의 낱말카드가 바람에 날려 하늘에서 뒤섞이며 운명처럼 엮어낸 듯하다. 보통이라면 낙태를 떠올렸을 텐데 어린 두 학생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엮이면서 낳는 쪽으로 바뀐다. 그 나이에 창창한 미래도 포기하고 말이다. 전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들 이야기는 미숙하고 치기마저 넘쳐난다. 하지만 그 풋풋함이 읽는 내내 유쾌했고 그들이 처한 현실을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2부는 가족이 처한 현실 때문에 받아들인 방송 출연을 통해 그들이 겪은 아픔과 기쁨과 사랑을 엮었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먹먹하다. 대박을 예상하고, 조로증이 걸린 아이도 성욕이 있을까 의문을 품는 방송작가와 피디의 대화는 우리가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지를 알려준다. 물론 이 가족의 사랑과 아픔과 고통을 가슴으로 조금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그 찐한 감정의 울림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비록 그 조금 때문에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냈다고 해도 말이다.

아름이의 첫사랑을 담은 것이 3부다. 이 감정은 방송작가의 호기심에 대한 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근두근한 감정의 흐름과 교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늙은 소년의 청춘이다. 직접 만나지 못하고 메일을 통해 진행되는 이 만남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두 소년소녀가 처한 현실 때문에 절박하고 애잔해 보인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사랑이 가득하지만 말이다. 메일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이의 감정은 첫사랑에 빠진 십대의 그것과 똑같고, 그의 노화와 더불어 깊어지고 무거워졌던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사실이 드러나고 병의 빠른 진행으로 이제 거의 마지막에 도달한 순간을 기록한 것이 4부다. 첫사랑을 통해 밖으로 드러낸 10대의 모습이 이어지고, 하루하루 말라가는 그를 통해 눈시울 적시게 만든다. 억지 장면이나 묘사가 아닌 짧지만 간결한 문장과 상황을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감정 속에 빠져 헤매지 않게 한다. 하지만 가슴 저 바닥에 깔린 먹먹함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어서 나오는 아름이가 부모에게 남긴 이야기는 어린 두 부모의 만남을 전혀 다른 문체로 풀어내면서 그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사랑받았는지,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조로증으로 인해 급격하게 늙어감에 따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의 길을 걸은 그에게 이 늙음은 “텅 빈 노화”(53쪽)였다. 또래 친구 하나 없고,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그가 아무리 책을 읽으면서 비어 있는 시간을 채우려 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책의 문장 속에서 이 텅 빈 삶을 채울 것을 찾는다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방송 출연과 사람들의 댓글과 사연과 응원 등이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고 그 공간을 채우게 만든다. 누구나 겪는 첫사랑과 십대의 투정은 노화와 상관없이 빛나고 그 짧지만 강렬한 경험은 노화를 뛰어넘어 십대 아름이를 마주하게 한다. 이 소설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성장을 담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의 다음 장편이 두근두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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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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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재미있는 내력이 있다. 첫 째는 작가의 아버지가 다자이 오사무의 열혈 팬이었다는 이유로 다자이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 온 편집자의 기획에 마음이 동해서 쓴 다자이 오사무의 1988년 발표된 미완성작 <굿바이>의 속편 격인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 조금 걱정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미완성작 문체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이사카 고타로만의 재미와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이것은 정말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읽기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이다.

오사무의 미완성작 <굿바이>의 기본설정을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한 확인은 못했지만 여러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던 남자가 여자들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낯선 여자와 함께 한 사람씩 방문하여 이별한다는 설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원작이 몇 명인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다섯 명이다. 총 6화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먼저 각각의 여자를 만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 헤어지기 위해 다시 찾아가서 거짓말 같은 사연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여자들의 사연을 듣고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호시노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이한 인물이다. 다섯 명의 애인을 사귀었지만 그 속에는 그 어떤 계산된 의도가 없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수하다. 이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간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 사실을 그녀들이 몰랐다는 것은 더 놀랍다. 뭐 그의 순수함 때문에 그가 보여준 행동을 모두 이해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한 명의 애인과 헤어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에피소드는 왜 이사카 고타로인가를 잘 보여준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흥미로운 전개와 유머가 쉼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주연인 마유미의 존재는 우유부단하고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호시노를 변화 속으로 몰아넣는다.

다섯 명의 여자를 사귄 호시노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이 마유미다. 그녀는 키 180센티에 몸무게 180킬로가 넘는 거구의 여자다. 거구보다 더 재미난 것은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다. 안하무인의 행동과 말이 상당히 눈에 거슬려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아마 호시노와 대립된 곳에 그녀가 위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호시노의 애인들을 만나 독설을 내뱉고 여자들의 아픔을 보고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하지만 결국 호시노의 바람을 들어주는 역할이다. 그가 결코 지녀본 적이 없는 무력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말이다. 그리고 호시노가 변한 것 이상으로 그녀도 변한다. 그것은 마지막 단어의 받침 하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그 버스’다. 그가 어떤 사건과 돈 문제를 가졌기에 ‘그 버스’를 타고 인간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곳으로 갈까 궁금했다. 과연 ‘그 버스’라는 것이 실존하는지도 의문이고, 사건과 돈 문제도 어떤 것이길래 이런 무시무시한 버스를 타게 되는지도 말이다. 사실 이런 궁금점은 소설을 읽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 버스와 사건과 돈 문제가 각 애인들의 사연 앞에 힘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켜준다. 부족한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워가면서.

순수함과 착함으로 무장한 남자 호시노와 악의와 거침없는 행동과 말로 거구에 존재감을 더하는 여자 마유미는 정말 묘하고 멋진 콤비다. 첫 장면에서 이 둘이 호시노의 애인을 찾아가 그 상황을 설명할 때 그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이 둘의 부조화한 매력에 빠졌다. 이것은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과 연결되고, 작가가 지향하는 바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창한 의미나 상황을 제쳐놓고 재미만 놓고 본다면 역시 이사카 고타로다. 어쩌면 너무 빨리 읽다가 거창한 의미나 상황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이 콤비의 활약을 다른 이야기 속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콤비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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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경제 전쟁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미르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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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표지에 나오는 “당신은 약자인가, 강자인가?”와 “길을 걷다가 돌이 나타났을 때,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왜 이 문장들이 중요하냐고? 저자는 3부 15장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면서 피해가기보다 이 상황을 슬기롭게 혹은 현명하게 혹은 현실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해답을 내놓았다는 점은 독자들이 깊이 숙고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1부 경제의 역습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소매업의 붕괴 위기와 저신용 사채를 다룬다. 저출산 고령화야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다루어졌고, 점점 더 공감하는 부분이라 쉽게 다가왔다. 대기업 유통업의 SSM 진출이 동네상권에 미치는 영향도 기존 지식을 크게 넘지 못했다. 하지만 사채로 넘어가게 되면 상식과 지식을 통해 알고 있던 것을 넘어선 내용들이 나온다. 그것은 사채의 조달 금리와 다단계 판매다. 사채를 흔히 신문 등의 매체에서 다룰 때 자극적인 이자율에 중점을 두는데 저자는 왜 이런 고금리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면서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부업 이용을 권유한다. 물론 이런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없는 등급 외 사람들의 경우는 다른 문제지만 공감할 내용들이 많다.

2부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는 펀드, 보험, 아파트, 연금, 청년실업 등을 다룬다. 이번에 다루는 주제들은 사실 기존 정보와 그렇게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펀드와 보험와 연금에서 공부와 설계를 강조한 부분은 너무 뻔한 이야기다. 집값의 완만한 하락 주장보다 더 급격한 하락을 예상하는 분석을 읽은 적이 있기에 이 부분에선 조금 시각이 갈린다. 누구나 알듯이 아파트가 거주 목적이 아닌 금융자산이라고 할 때 순간 미래가 암울했다. 자기 소득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파트 가격을 볼 때마다 그렇다. 청년실업 대책으로 중소기업 육성 부분에서 공감을 하고, 통계 착시를 통해 실업률을 왜곡하는 현실에서 인턴 같은 임시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절실히 느낀다.

3부 새로운 희망에서는 농업, 에너지 전쟁, 사회적 기업, 금, 벤처캐피탈 등을 다룬다. 한국 농업의 구조적 정책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고, 우라늄과 원자력 부분은 집필 당시와 변한 사회 정치적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긴급 부록에서 일본 대지진을 다루지만 이 에너지에 대한 쟁점을 좀더 부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금은 이미 이것을 소재로 한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었다. 관심이 가는 주제는 사회적 기업과 벤처캐피탈인데 개인적으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의 미래는 전체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벤처캐피탈에 대한 저자의 간결하지만 인상적인 글들은 사회적 기업과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전에 읽은 미네르바의 책에 비해 깊이나 분석은 좀 떨어지지만 현실적인 내용이 많아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그의 해법은 하나의 참고자료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대안만 신봉할 경우 또 다른 문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약자와 강자를 묻고 걸림돌과 디딤돌을 말할 때 이미 우리의 마음은 정해졌다.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고,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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