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아멘 아멘 - 지구가 혼자 돌던 날들의 기억
애비 셰어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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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도 쓸데없이 걱정을 한다. 고사성어의 기우처럼 정말 걱정만 한다. 조금 흔들리는 천장의 장식물을 보고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길을 걸어가는 아이를 보고 혹시 넘어져서 다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이런 걱정은 그 순간뿐이다. 다시 그런 일을 보면 걱정을 하지만 금방 잊는다. 그러다가 다른 일을 걱정한다. 물론 이것도 오래 가지 않는다. 조금 예민한 편이라 그런가 생각하지만 머릿속에서 상상력이 샘솟으면서 이런 문제가 더 심해진다. 나쁜 쪽의 상상력 말이다. 그런데 주인공 애비는 다르다. 이런 강박증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바로 이 소설은 애비의 강박증을 다루고 있다. 보면서 아! 어떻게 저렇게 살지. 대단하다. 나 같으면... 이란 감탄과 물음을 계속 던진다.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어린 시절이었다. 좋은 아빠와 엄마,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 아빠는 음악을 자신이 만들어서 부르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줬다. 아빠가 큰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이 병에 의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애비다. 그녀는 자신이 아빠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나온 강박증이자 죄의식의 발로다. 이것은 다른 죽음 사람에 대한 기도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기도로 이어진다. 위험한 못이나 유리조각을 줍는 강박증 이후 기도는 또 다른 강박증이 된다. 왜 이럴까? 물론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단지 그녀가 겪는 고통과 주변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줄 뿐이다. 바로 이 부분이 소설에 몰입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녀가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나왔고, 연애도 하고, 연극도 하는 등 일상을 살아간다. 물론 이 일상 속에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 기도 시간은 더 길어지고, 혹시 누군가 다치거나 죽게 되면 이 강박증의 증세는 더 심해진다. 한때 약으로 조금 좋아졌지만 본질적인 증상의 변화는 없다. 완화된 증상이 일상을 좀더 쉽게 만들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만약 그녀의 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미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까. 증상을 알고 읽는 독자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평생 강박증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 이 소설이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그녀처럼 살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더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애인의 도움이다. 특히 뒤에 나온 남자 친구 제이는 정말 대단하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어야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솔직히 자신 없다. 이 강박증을 자해로 벗어나려는 그녀의 행동은 예전에 본 신체훼손으로 쾌감을 얻는 일단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혹시 그들도 이런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애비는 유대인이다. 유대교를 믿는다. 그녀의 종교생활은 경건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한다. 신이 모든 것을 보고 있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긴 기도문이 만들어지고, 기도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그녀의 불안과 공포를 잘 알려주는 문장 중 하나가 “오직 나와 하-님뿐이었다. 숨을 데도 없었다.”(173쪽)이다. 뒤로 가게 되면 극도로 음식을 절제하고 자해한다. 시간이 조금만 남아도 운동을 하고 몸을 혹사한다. 이 느낌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다. 이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이 증상이 완치되지 않는다. 조금 완화된 듯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는 그대로 놓여있다. 아마 평생 같이해야 할 것이다. 정말 용기와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단하다. 이 이상 더 말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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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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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가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읽은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다. 한 작가는 좋아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읽지 않았고, 다른 한 작가는 거의 전 작품을 읽었다. 그런데 이번 에세이를 읽으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달리기다. 두 작가 모두 거의 매일 달린다. 하루키의 글을 보면 달리지 않는 날이 없는 모양이다. 김연수의 경우는 그보다는 적지만 거의 매일 달린다. 중간에 쉰 날도 보인다. 이런 달리기와는 상관없겠지만 이 차이만큼 이 둘의 작품을 읽었다.

 

이번에 책 정리를 하면서 지난 번부터 어디 있을까 궁금했던 <7번 국도>를 찾았다. 얼마 전 새롭게 쓴 책이 나온 것을 알지만 그 당시 괜히 처음 쓴 글이 읽고 싶었었다. 시간되면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어디가 바뀐 것인가 비교해보고 싶은 황당한 기분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혀 실현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전에 그가 왜 이 책을 번역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 책이 있었는데 이번에 해소되었다. 그것은 달리기에 대한 책이었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니 <달리기와 존재하기>가 보인다. 그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01권의 그의 이름으로 검색된 책들이다.

 

작가의 말에 이 책 제목에 대한 해설이 나온다. 그것은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중요한 것은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이것은 다시 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와 연결된다. 이 간결한 문장들 속에 이 에세이가 담고 있는 핵심 요소가 들어있다. 그것은 추억, 달리기, 인생 등이다. 특히 달리기는 전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경험이다. 그의 엄청난 예찬을 읽다보면 나 자신도 밖으로 나가 달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충동이 마구 생긴다.

 

사실 나는 오래 달리기를 잘 못한다. 학창시절 체력장을 위해 1킬로미터를 달려야 할 때도 반 정도는 걸어서 갔다. 군대에서 구보할 때는 중간에서 어쩔 수 없어 같이 발을 맞춰 완주했지만 혼자 달리라고 했다면 아마 중간에 낙오했을 것이다. 이런 나에게 달리기는, 특히 1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지금도 한 2백 미터 정도 달리면 숨이 차고 다리가 후달린다. 전력 질주가 아닌데도. 그 대신 걷기라면 힘들어도 비교적 오랫동안 할 수 있다. 한때 종로 바닥을 걸어서 헤집고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그것을 아주 즐겼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비교적 무겁게 쓴 내용들이 많아 하루키의 에세이와 알게 모르게 비교하였다. 달리기 사랑이 지극해서인지 그것이 곳곳에 보인다. 에세이 한 편의 분량도 차이가 난다. 하루키는 잡지 연재 때문인지 겨우 두세 쪽 정도인 반면 그는 긴 것은 열 쪽도 넘는다. 한 쪽의 분량을 생각해도 적지 않은 차이다. 덕분에 그의 세계에 조금 더 다가간 기분이 든다. 그가 살고 있는 일산과 호수공원은 가끔 가는 곳이라 낯익다. 아마 오후 6시경 호수공원에 간다면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찾을 것 같다. 한 번 정도는 나도 호수공원을 달릴지도 모른다. 한 2백 미터 정도.

 

모두 다섯 장으로 엮었다. 이 분류가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발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의 달리기 예찬과 삶의 흔적들을 읽다보니 공감을 하게 되었고, 나 자신이 그 나이에 전혀 하지 못한 생각을 그가 한 것을 보고 나 자신은 뭐 했나? 의문이 생겼다. 그가 던지고 답한 몇 가지는 가슴 한 곳에 와 박힌다. 아프다. 부럽다.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생각과 경험을 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단지 일상에 매몰되어 모든 것을 잊고 있지만. 소설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지나온 삶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뭔가가 있다. 아마 비슷한 연배이기에 더욱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김연수를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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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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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몬 라. 처음에는 오몬라로 읽었다. 띄어쓰기가 된 제목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오몬이 특수경찰부대의 약자라는 것을 알면서 바뀌었다. 이름이 오몬이라면 라는 성일까? 아니다. 주인공의 성은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면 늘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름 끄리보마조프다. 그럼 라는 무얼까?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라를 의미한다. ‘오몬 라’라는 이름에는 부모가 바라는 바와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동시에 담겨있다. 이것은 그가 살아야 하는 운명에 대한 조그만 은유와 상징이기도 하다.

 

하늘과 우주는 소년들이 꿈꾸는 공간이다. 어릴 때 한 번쯤 하늘 나는 것을 꿈꾸지 않은 소년은 드물 것이다. 주인공 오몬도 그런 소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모집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고모도 그렇게 강한 애착으로 키우지 않았다. 이런 그가 비행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비행사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했고, 엉터리 비행기 모형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친구 미쪽과의 만남은 이 꿈을 현실화하는데 한발 더 다가가게 만들었다.

 

어릴 때 꿈이 현실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오몬과 미쪽 역시 처음에는 그냥 좋아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항공학교로 보내고. 미국의 발전한 우주개발 속도는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이끈다. 그곳은 기밀우주학교다. 뒤쳐진 우주개발을 가속화시키겠다는 의도인데 그것이 쉬울 리가 없다. 여기서 그들은 우주인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을 받으면서 그들은 영웅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오몬과 미쪽은 전혀 그를 마음이 없다. 그러나 선택권에 그들에게 없다.

 

잘 알지 못하는 러시아 현대사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미국의 달 착륙사건이 거대한 음모라는 하나의 음모론과 한때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온 영화의 한 장면이다.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이 과연 진실한 모습인가 하는 거대한 철학적 의문을 던지면서. 그리고 소련이 계획하는 달의 이면으로의 착륙은 예전에 읽은 sf소설로 상념이 이어진다. 달의 이면이라는 공간이 소설 속에서 이 모든 계획과 의도의 숨겨진 이면을 떠오려주는 것은 또 한 번 생각해야 할 바다.

 

체제와 경쟁은 이 소설을 읽는 하나의 키워드다. 쏘베뜨 체제는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과 여러모로 경쟁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달 착륙이다. 유리 가가린이 처음 우주로 나간 이후 이 두 국가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우주 경쟁을 펼친다. 덕분에 여러 가지 과학이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의 달 착륙이 조작이라는 음모론 등장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다시 이 소설의 핵심 장치로 그대로 이용된다. 진실을 조작하고 거짓된 업적을 이루려는 위정자들의 헛된 욕망은 약자들의 피를 요구하고 꿈꾸는 자의 환상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사실 중반까지는 어렵고 지루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후반에 들어가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특히 달의 이면으로 오몬을 보내 그들의 탐사 활동을 과장되게 홍보하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이 탐사 활동은 돌아올 기회가 없다. 그러니 갈 수 있을 뿐 도착해서는 죽는 수밖에 없다. 오몬이 영웅이 되지 않고 싶다고 했을 때 그들이 가한 압력과 협박은 굳어있는 사회에서 권력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대변한다. 그리고 역자의 해설을 읽으면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숨겨진 의도가 있는데 이것까지 알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현재 나에게는 없다. 다만 몇몇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과 단어와 거대한 거짓만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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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k 피크 2
임강혁 그림, 홍성수 글 / 영상노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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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훈련 한 달만에 제대로 된 산악구조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넓고 깊고 무서운 것인지 안다면 더욱. 하지만 현실은 그 시간 안에 한 명의 산악구조대가 되어야 한다. 당연히 고강도 훈련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전엔 지형지물 숙지 산행, 오후엔 암벽등반, 저녁엔 응급처치법과 장비 사용법, 매듭법의 반복교육. 이런 교육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반복 훈련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나온다. 나와 당신을 구조하기 위한 것이다.

 

고참이 제대한 후 그들이 마주한 것은 산악훈련을 온 군인들이다. 그들의 눈에 산악구조대는 천하의 땡보직이다. 이들이 어떤 현실을 마주하는지, 어떤 훈련을 받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연한 반응이다. 아마 이들에게 산악구조대는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하루를 보내는 한직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북한산을 오르면서 이들을 보면서 어떤 일을 겪는지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텔레비전에 이들이 구조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무려 일 년에 150여건 정도 구조 활동을 펼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산에서는 그 산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최고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강인한 체력은 기본이다. 집중력을 조금만 놓쳐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위산을 조금만 올라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왜 그렇게 다리가 떨리고 힘이 들어가는지.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어도 산은 어떤 사고를 일으킬지 모른다. 산이 무서운 점이다. 이 만화 속 주인공 연성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그가 시체와 만났다는 것이다. 그가 느낀 감정의 깊이는 두려움과 좌절감과 허무함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구조대가 아니라 포터라고 말한다. 그때 그 어둡고 깊은 곳에 자리잡은 무력감이 표면으로 올라온 것이다.

 

산악구조대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 것도 역시 구조 활동 중이다. 그것을 몸으로 알려준 인물이 바로 임배호다. 사실 이 만화에서 다른 동료들의 비중이 작은 것이 조금 아쉽다. 에피소드들 중심에 그들이 자리해도 되는데 왠지 너무 조연으로 머물고 있다. 아직 초반이라서 그런 것일까? 군대라는 특징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분명히 많을 텐데. 현재 어디까지 연재되었고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아쉬움이 섣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고 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건들이 생길 것이다. 그가 아무리 베테랑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스토리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건들과 현장 모습은 작화가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것이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긴장감을 불러오면서 몰입도를 높여준다. 하지만 너무 멋지게 묘사된 것은 약간 거부감이 생긴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직 이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다. 거의 300 여건에 달하는 사건이 남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아마 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와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사회에 나가 더 깊고 어둡고 강한 산 속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할 때까지는. 그래도 이 당시의 경험은 아주 좋은 자산이 될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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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숲, 길을 열다 네이버 캐스트 철학의 숲
박일호 외 지음 / 풀빛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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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다루고 있는 철학자와 그 사상이 지금까지 나에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은 현재도 어렵다. 왜 이렇게 근대, 현대 철학이 어려운지 잘 모르겠다. 적지 않은 철학 해설서를 읽었는데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할 때 첫 번째 요소 중 하나가 이 어려움을 조금은 쉽게 다가가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전작 <철학의 숲, 길을 묻다>를 나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 의도는 솔직히 실패했다. 재미는 어느 정도 유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철학의 10분의 1도 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을 열다’는 제목처럼 전작과 조금 다른 인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에게 경제학의 시조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나 찰스 다윈, 막스 베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저자들은 이 독창적 사상가들이 지적자양분을 철학의 숲에서 받았다고 말하면서 이들이 철학에 끼친 영향을 말한다. 그들의 설명을 듣다보면 우리가 단순화하면서 너무 획일적으로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철학의 숲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조금은 알게 된다. 그만큼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의 머리가 턱없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조그만 위안을 만든다.

 

모두 21명의 철학자들이 나온다. 열 명이 근대 철학자와 열한 명의 현대 철학자다. 이중에서 현재 생존해 있는 분도 있다. 가장 마지막에 다루는 위르겐 하버마스다. 그리고 굉장히 낯선 철학자도 몇 명 있다. 거의 처음 이름을 듣는 철학자도 있고, 그의 비중을 몰라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나 의문을 드러낸 철학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나의 학창시절이나 그 이후 언론을 통해 배우고 읽은 것들이라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또 자기 위안인가. 더 많이 철저하게 공부했다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언제나 근대철학사를 읽다보면 독일계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본다.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이 그들이다. 다른 영미권이나 프랑스 철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대개 주류로 등장한다. 왜일까? 물론 이들의 철학이 철학사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기에 그럴 것이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오만에서 극에 달한다. 이런 천재적인 철학자들의 철학을 그냥 보통의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다. 수박겉핥기로는 더욱더.

 

학창 시절 철학 수업을 신청해 들었을 때도 이들 중 한 명의 책 중 겨우 몇 쪽을 가지고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란 책이다. 이렇게 어려운 책이고 겨우 몇 쪽으로 강의를 할 것이면 도서관에 해당 쪽들만 카피했으면 되는데 그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비싼 돈 주고 책을 샀다. 당연히 이 책은 책장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 뭐 언젠가 한 번 읽어야지 하는 헛된 망상 속에서. 다행이라면 <자본론>을 사지 않은 것 정도랄까. 아마 샀다면 장서용 이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화로 된 것도 겨우 읽고 아주 조금 이해한 상태인데.

 

철학자들이 네이버에 대중을 위해 철학 안내용으로 쓴 글이다. 사실 조금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역시 철학자답게 그들의 문장은 난해함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철학 용어들이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이 어려운 용어로 그들의 일을 풀어낼 때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물론 쉽게 읽고 지나간 부분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전작을 읽을 때도 경험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은 모양이다. 뭐 그 때문에 나의 회색 뇌세포가 고생하면서 활성화된 부분도 있다.

 

이 저자들이 독자에게 요구한 것 하나를 말하겠다. 그것은 성찰적 사유다. “성찰적 사유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적 사유이며,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재귀적 사유이기도 하다”(13쪽) 이 성찰적 사유의 주체로 독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고 있다. 과거에 읽은 몇 권의 책이나 주마간산처럼 읽어나간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만 했다. 하지만 언젠가 철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놓고 그 길을 나에게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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