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랏소에
달시 리틀 배저 지음, 강동혁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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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랏소에>는 주인공 엘리의 본명이다. 이 단어는 리판 아파치 언어로 ‘벌새’를 뜻한다.

엘리의 엄마 비비언이 임신했을 때 엄청난 벌새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그녀의 인종 구분은 미국 텍사스 리판 아파치 부족이다. 작가의 출신과 같다.

엘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죽은 동물의 영혼을 불러내는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애완견 커비가 죽었을 때 커비의 영혼을 불러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커비의 하울링이 만들어낸 문제는 하나의 사건이자 좋은 무기다.


판타지 소설이다. 미스터리 추리물이다.

기본 세계관이 마법을 사용하고, 뱀파이어나 다른 종류의 괴물들이 등장한다.

사촌 트레버가 죽은 이유와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이 사촌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엘리의 꿈에 나타나 아내와 아들의 보호를 요청한다.

엘리의 트레버의 가족을 보호하고, 사고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윌로비 마을로 간다.

그리고 꿈속에서 트레버에게 그를 죽인 사람의 이름을 듣는다.

기적의 치료법으로 유명한 의사 에이브 박사다.

트레버는 어디서, 어떻게 죽은 것일까? 경찰은 교통사고로 이 사건을 종결한다.

엘리는 친구 제이의 도움을 받아 이 사건의 이면을 파헤친다.


한국의 웹 판타지 소설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한국 판타지가 점점 사이다 표현과 더 강력해지는 마법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다.

조금 더딘 진행과 이 세계에 대한 설명을 천천히 쌓아간다.

이렇게 쌓인 세계와 마법이 중반 이후 가속도가 붙으면서 점점 더 재밌어진다.

엘리가 가진 능력과 그 능력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준다.

친구 제이도 마법을 쓸 수 있지만 그 힘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이런 마법이 통용되는 세계와 그 마법이 어떻게 작용할지 등은 극중에서 하나씩 설명한다.

트레버의 죽음과 그 배경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사실 등은 또 하나의 재미다.


현대의 과학 기술이 그대로 존재한다. 여기에 마법의 힘이 덧붙여졌다.

엘리의 8대조 할머니 이야기가 중간중간 나온다. 그녀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엘리의 모계를 통해 죽은 동물의 영혼을 불러내는 힘이 전달된다.

이 힘으로 적의 위협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잘못 다루었을 때는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의 대표적인 예가 엘리가 어렸을 때 커비의 하울링이 일으킨 사고다.

엘리의 할머니는 매머드의 영혼을 불러내어 타고 다닌다.

보통 사람 눈에는 매머드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다.

엘리는 삼엽충 화석을 산 후 이 벌레의 영혼을 불러낸다.

그러다 아주 기이한 경험을 한다. 삼엽충으로 가득하고, 고래의 영혼이 헤엄치는 세계다.

잘못하는 그 세계에 영원히 머물 수도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사촌 트레버를 죽인 범인을 알려준다. 그는 에이브 앨러틴 박사다.

사촌의 장례식장에 나타나 트레버의 묘지를 묻는다. 수상한 행동이다. 차도 완전 새차다.

앨러틴 박사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다. 나쁜 평이라고는 예약잡기 힘들다는 것 정도다.

작가는 천천히 에이브 주변을 맴돌고, 그의 과거를 조사한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엘리가 제이와 함께 윌로비 마을을 걸을 때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다.

단순히 경계하는 마음만 나왔다면 수상한 마을과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인 소년과 리판 아파치 소녀가 같이 걷는다는 표현으로 그 의미를 더한다.


초반에 살짝 이 세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몰입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로운 설정과 재밌는 캐릭터로 몰입도를 높였다.

17살 마법 소녀를 내세워 성장과 인종 문제, 판타지 세계와 현실을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죽은 동물의 영혼을 깨우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죽은 인간의 영혼을 깨우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판타지 소설의 네크로맨서를 살짝 떠올렸다.

실제 극중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일으키는 문제가 잘 나타난다.

시리즈로 나올 것 같은데 다음 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기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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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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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BIFF 부산스토리마켓 IP 선정작이다.

영상화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하는데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너무 짧은 시간이긴 하다.

소설의 가독성을 생각하면 영상화되었을 때 과연 어느 정도까지 그 재미가 보장될지 궁금하다.

소설 한 가운데 한 가정의 주부인 정화를 놓고, 그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정에 무심한 남편과 두 명의 자식을 둔 그녀의 삶을 천천히, 하지만 흡입력 있게 풀어낸다.

읽다 보면 과연 이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이 의문과 달리 정화를 둘러싼 삶은 먹먹하고 외롭고 힘들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위험이 처했을 때 그녀가 보여준 대응은 생존의 몸부림이다.


22평 전세 아파트에 정하는 살고 있다.

분리수거를 하러 갈 때마다 60평형에 사는 사모님을 마주한다.

그 사모님은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을 감시하듯 주시한다.

딸 하원과 아들 상원을 키우고, 남편은 매일 늦게 들어오고 가정에 무관심하다.

어느 날 밤 늦게 들어온 남편 원우가 피를 잔뜩 묻히고 집에 들어온다. 부러진 칼도 같이.

남편이 욕실에서 열심히 씻고 빨래를 하지만 그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이 장면을 본 그녀는 다음 날 락스를 사와서 욕실을 청소하고, 빨래를 빤다.

무능한 남편은 자신의 흔적을 너무 많이 남긴 채 회사에 갔다. 그 나머지 처리는 정화의 몫이다.


갑자기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온다. 이상한 일이다. 불안하다.

그러다 치킨집 살인사건이 뉴스에 나온다. 정화는 남편이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아이들을 살인자의 자식으로 만들 수 없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남편이 출근한 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사라졌다.

바로 신고하지 않고 며칠을 보낸 후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의 의심을 사기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남편이 지방에서 돈을 인출한 것이 드러나면서 정화에 대한 의혹이 사라진다.

어느 날 60평형 아파트에 사는 남자가 아들 우성이 상원에게 치킨을 사준다. 왜?

그리고 그녀를 감시하듯 보던 우성의 아내인 60평형 사모님이 죽는다.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던 남편의 실종은 아내 정화의 삶을 아주 힘들게 한다.

두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고 교육해야 하는 그녀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그녀에게 은근히 다가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성이다.

분명히 우성과 남편의 실종은 연관성이 있다. 둘은 어떤 관계인 것일까?

그리고 정화가 어떻게 원우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나온다.

특별한 사랑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에 원우의 소설 같은 일기가 나오면서 이 부부의 진짜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가 왜 이런 삶을 그대로 유지하는지 의문이다. 정말 나쁜 놈이다.


작가는 짧은 시간 동안의 삶을 다루지 않는다.

남편이 사라진 것과 그 원인을 끝까지 파고들지 않고 정화의 삶을 보여준다.

시간이 10년 이상 흐른 후 현재를 보여준다. 그 집에서 여전히 두 자식과 함께 산다.

오랜 세월 한 아파트에서 고인물처럼 그녀가 살았다. 살짝 우성이 그 곁을 지킨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정화는 우성의 아이들 반찬을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다른 집과 함께 만들었지만 그 집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직접 말하면서 그녀만 만든다.

정화에 대한 우성의 점진적인 행동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은 마지막에 하나씩 풀린다.

그 속에는 사랑과 결핍과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정화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들려줄 때 어른이 해야 할 일이 생각난다.

그녀가 정확하게 자각하는 순간은 아들 상원이 아빠처럼 사라졌을 때다.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 엄마와 엄마를 학대하고 빨아먹는 외가 식구들.

강한 의지로 자식을 위해 자신을 강하게 세워야 하는데 정화의 엄마는 그것을 못했다.

정화가 남편의 살인에 왜 그렇게 강하게 두려움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의문이었던 우성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단하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인 우성의 정체는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강한 흡입력으로 나를 당기지만 곳곳에 묻어둔 의문과 충분히 납득할 수 업는 상황은 조금 아쉽다.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 행복한 삶을 펼치려고 하는 정화를 본다.

그 미래가 꽃길처럼 아름답게 펼쳐지길 바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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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뱀 메소드 안전가옥 오리지널 22
정이담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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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오리지널 22권이다.

기존에 읽었던 안전가옥의 소설보다 분위기가 더 무겁다.

끈적거리고 음습한 기운이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그 끈적거림과 뒤틀린 일상과 비현실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로맨틱 스릴러란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주인공 미옥의 심리 묘사가 주요한 부분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 너머의 환상이 사실처럼 가공되어 나타난다.

그때 담긴 감정은 사랑이란 표현보다 집착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미옥은 팜 파탈 전문 배우로 전성기를 지냈다.

그녀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의 제목이 <상사뱀>이다.

한 번 낙인 찍힌 연기는 그 이후로 반복된다. 그리고 인기 배우에게는 많은 시나리오가 온다.

그 중 한 편이 <사의 찬미>다. 이 시나리오의 감독이 영현이다.

소속사는 반대하지만 미옥은 이 시나리오에 끌린다.

감독을 만난 후 그 감독에게 빠진다. 둘의 사랑은 미옥의 시선 속에서 왜곡된 채 표현된다.

이 왜곡된 시선은 이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바로 잡아지지 않는다.


헤어진 사랑과 점점 인기를 잃어가는 배우와 재벌가 의사의 결합, 아니 결혼.

미옥은 자신 앞에서 순진한 20대처럼 몸을 떠는 철중에게 살짝 미끼를 던진다.

미옥보다 10살 이상 많은 철중은 자신의 욕망 대상이었던 존재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문다.

3번의 결혼 실패. 철중의 이혼 경력이다. 그리고 그는 이브 그룹의 아들이다.

재벌가로 들어가는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다. 하지만 미옥은 뛰어난 연기자다.

연예계에서 오랜 시간 뒹군 그녀는 시부모의 마음을 쉽게 얻는다.

문제가 되는 이는 시누이다. 미옥이 결혼해서 아들이라도 낳게 되면 상속의 큰 경쟁자가 된다.

사랑이란 이름 뒤에 숨겨진 음습한 욕망들이 충돌한다.


연예계의 은퇴가 쉬울 리가 없지만 재벌은 이것을 생각보다 쉽게 처리한다.

재벌가에 안착했다고 그 삶이 쉬울 리 없다.

치열한 견제와 남편의 질투심을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미옥은 이제 결혼 생활 자체를 연기한다. 이것은 이 소설의 구성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녀는 철중의 이전 아내들처럼 창고에 대한 호기심을 지우지 못한다.

철중은 이전 아내들과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갈아치웠다.

이 와중에 단 한 사람만 그대로 있었다. 바로 남자 정원사다.

그는 철중에게 충성한다. 하지만 미옥은 그에게서 도둑의 흙냄새를 맡는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한 그녀의 은밀한 시도가 이어진다.


비밀의 장소 창고. 남편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말하는 공간. 그래서 더욱 의문스럽고 매혹적인 공간.

창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시도는 배우의 화려한 연기까지 필요없다.

미옥은 비밀을 하나씩 알아내고, 그 공간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마주한 것은 예상 외의 것들이다.

처음에는 그 토르소 등이 실제 사람이란 잔인한 생각도 했다. 아니었다.

철중의 욕망이 투사된 공간이자 그를 유명하게 만든 피부 미용 앰플의 제작 보관소다.

철중은 자신이 뱀에게서 추출하고 배합한 앰플을 아내 미옥에게 먼저 실험한다.

그 앰플은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원하고,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여동생은 대량 생산하고 싶어한다.


이런 외부적인 상황과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영현에 대한 미옥의 집착과 환상이다.

헤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미옥은 영현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환상을 만들어낸다.

집착은 상황은 오해하게 하고, 환상이 현실처럼 다가온다.

미옥이 들려주는 영현의 이미지는 뒤틀리고 왜곡되었다. 의심스럽지만 확인은 나중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천천히 밝혀지는 미옥의 과거사. 섬뜩하지만 현실과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 3자의 시선으로 미옥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한 번 나오는데 그 또한 왜곡된 시선이다.

그녀의 탁월한 연기와 상황들이 뒤틀린 결론으로 이어지게 했다.

뱀에 대한 이미지, 독사, 죽음, 환상 등이 한 여성의 삶과 엮이고 섞이면서 비릿한 흙냄새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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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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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비디오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남아있는 나날>을 봤다. 완전히 빠져들었다.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두 사람의 미묘하고 섬세한 심리 표현와 연기에 감탄을 하면서 봤다.

감독은 제임스 아이버리였다. 대단한 연출이었다.

이때만 해도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 당시 한참 다니던 중고책방에서 이 소설을 찾고, 바로 샀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읽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을 것이다. 원작을 각색한 영화의 다른 소설들처럼.

그러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에 점점 빠져들었고, 작가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이제는 영화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희미해졌다.

세부적인 것들은 거의 날아갔고, 그때의 감동만 연기와 연출로 이어져서 남아 있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으면서 걱정했던 것들은 저질 기억력과 함께 완전이 날아 갔다.

그리고 완고한 집사 스티븐스의 고백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작가는 단순히 스트븐스의 고백만을 풀어놓지 않고, 그 시대의 국제 정세 등과 엮었다.

이것은 스티븐스이 모신 달링턴 경이 정치에서 맡았던 일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표현된다.

영화로 볼 때는 이 부분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은 것인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1956년 7월 달링턴 홀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달링턴 경은 3년 전에 죽었고, 이 저택은 미국 부자 패러데이가 인수한다.

집사 스티븐스는 패러데이 어르신의 말 대로 며칠 간의 휴가를 떠난다.

이 휴가의 목적은 켄턴 양을 만나는 것이다.

평생을 ‘위대한 집사’가 되고자 한 그의 삶이 여행하는 동안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완고함과 대단한 직업의식이 먼저 강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총무인 켄턴 양과의 티격태격하면서 조금씩 쌓아가는 감정들이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둘만의 은밀한 감정 교류가 소설에서는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아쉽다.

하지만 그 대신 스티븐스가 풀어내는 20~40년대의 영국 정치와 사회상이 더 부각되어 나타난다.


그의 직업 의식은 정말 대단하다. 아니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한다.

그의 아버지가 죽을 때 그는 집사 일을 위해 임종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켄턴 양과의 관계에서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다.

자신의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한 장면에서, 특히 영화에서 이 부분은 감탄을 자아낸다.

켄턴 양의 이모가 죽은 날 그가 보여주는 갈팡질팡하는 장면은 그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너무 잘 알고, 그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잘 모른다고 말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상대방이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다. 이런 일은 소설 곳곳에서 일어난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난 뒤 감상을 요약하여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여운이, 이전에 본 영화와 엮였을 때는 더 힘들다.

영화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원작을 읽을 때 그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좋은 감독과 배우가 멋지게 만들어낸 영화일 경우에는 더욱더.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소설은 또 많이 보여준다.

스티븐스가 운전하면서 보는 풍경과 만난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그가 달링턴 홀에서 모신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훨씬 인간적이고 따스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억제하면서 살아야 했던 집사란 직업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직 이 작가의 소설 중 읽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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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 창비시선 480
유혜빈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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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80권이다.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예순한 편의 시가 실렸는데 마음에, 이성에 살짝 살짝 왔다 간다.

어떤 시는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 같고, 어떤 시들은 sf소설처럼 다가왔다.

읽을 때는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다시 대충 넘겨보다 보니 꿈이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출판사 리류에 꿈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섬세한 층위를 이루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어쩌면 내가 sf소설이라고 생각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BIRD FEEDING>은 두 번 읽을 때 ‘오래된 내’가 이해가 되었다.

다시 읽으니 “가장 신선한 우울”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눈물 범벅인 언니, 다시 오지 않아도 좋다는 속내. 그리고 꿈.

책과 영화와 음악에서 영향을 받아쓴 시어나 시가 몇 편 나온다.

내가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책, 보지 못한 책이나 영화들.

좀더 정밀하게 여러 번 읽으면 조금은 이해가 될까?


<낮게 부는 바람>은 마지막 시어를 읽고 한 편의 동화 같다고 느꼈다.

“그 한 사람이 너를 잠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멀리서 너의 이마를 아주 오래 쓰다듬고 있다는 걸

아무래도 너는 모르는 게 좋겠지”(부분)

칭얼거리는 아이를 잠재우기 위해 약하게 부채를 부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검은 별>은 아주 잔인하게 개를 버린 장면을 본 후 쓴 시다.

‘내 눈을 봐줘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 그 무엇도 너희에게 저지르지 않아”

그 개를 버린 이와 비교되는 마음, 어쩌면 그 속에 담긴 체념.


시집에 실린 시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다.

이런 부분은 재밌고, 그 의도가 궁금하다.

가볍게 다가오는 시도 있지만 무겁고 어렵게 다가온 시들이 더 많다.

얼마나 반복해서 읽어야 시집이 나에게 문을 열까?

이번에도 이런 생각을 한다. 시는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계속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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