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화 Mr. Know 세계문학 10
이탈로 칼비노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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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칼비노의 작품으론 두 번째 읽는다. 이전에 읽은 ‘반쪼가리 자작’을 나름 재미있게 보았고, 제목에서 풍기는 만화라는 단어에 혹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상당히 어렵고 난해한 소설이다. 여태껏 읽은 소설 중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한다. 한참 전에 읽은 철학소설인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보다 더 힘겹게 읽었다. 그래도 재미난 몇몇 곳이 있어 다행히 모두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읽기 편한 대목은 앞부분이 아닌가 한다. 2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첫 몇 편이 이전에 읽은 작품을 연상하게 하고, 만화라는 제목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반에 우주에 대한 이야기 편으로 넘어가면 스페이스 오페라라 불러도 될 정도의 흥미로운 장면도 나오지만 역시 전체적인 부분에서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는 어렵다.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관념적인 책이다. 엄청나게 미시적이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시적인 전개와 사유가 담겨있다. 3부로 구성된 책인데 뒤로 가면서 더욱 읽기 힘들어진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취향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뒤로 가면 철학책이나 과학책을 힘겹게 읽는 느낌을 가지기도 하는데 보통의 집중력으론 단어 위만 스쳐지나갈 뿐이다. 가끔 번역이 잘못된 것 아닌가 괜히 트집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만큼 문장의 구조가 복잡하고 의미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대목이 많다.

 

보통 소설을 읽는 것보다 몇 배의 시간을 투자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제목에 설명된 해석을 이해하고 크프우프크의 이야기에 깊숙이 빠져들어야 한다. 그러면 많은 것을 알게 될지 모르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크프우프크는 화자이자 가장 조그만 것이고, 동시에 가장 거대한 존재이다. 처음부터 있었고 마지막까지 존재할 이 화자를 발음하기도 힘들지만 어느 순간 앞으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같은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여기부터 또 다른 생각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결론은 발견한 것이 너무 없다. 옮긴이 해석에도 나오지만 이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거나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앞부분만 본다면 환상소설로, 중반만 본다면 SF소설로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견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철학과 과학과 역사 등은 이런 섣부른 단정을 미리 막는다. 완전히 별개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하나의 목적에 의해 충실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비록 완전한 실체를 내가 그려내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느낄 수는 있다. 아마 두고두고 곱씹으며 머리를 싸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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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피카소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4
염명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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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미있다. 미술에 대한 나의 안목이 형편없음을 감안해도 재미있다.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그림들도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피카소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고,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화가 피카소로 다가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무지했던 나의 지식과 착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쉽게  쓴 이 책은 분명히 도움이 되었다.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이라는 제목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20세기에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화가였던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은 입체파라는 것과 ‘아비뇽의 아가씨들’ 등으로 표현되는 몇 작품 정도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우리가 흔히 보아온 그림과 유사한 그림을 잘 그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진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거나 체계적으로 인식한 것이 처음이다. 그만큼 그는 대표작 몇 개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읽다가 만나는 그림들은 이 작품도 그의 것인가? 하는 놀라움을 만나게 된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자주 보고, 눈에 많이 익은 작품인데 한 번도 피카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똑같은 작품도 많이 보았을 것이고, 비슷하게 그려진 그림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작가는 기억하지 못하는 짧은 나의 기억력을 탓해본다.

 

책은 시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자서전으로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말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그림과 인물들에 대한 감정을 잘 느끼게 한다. 작가는 가능하면 피카소라는 인물에 덧씌워져 있는 거품을 제거하고 화가라는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상당 부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피카소에 대한 입문서로 딱 좋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런 균형 감각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니라면 초보가 느낀 감정이니 양해하고 무지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

 

인간 피카소가 아닌 화가에 초점을 맞추고, 그림에 집중하였기에 읽기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점도 있지만 풍부한 화보와 그에 곁들여진 설명으로 그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물론 아직도 그의 대단함에 내가 완전히 동의한 것은 아니다. ‘완전히’가 아닌 것은 이해의 폭이 깊지도 넓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몇몇은 머릿속은 이해했지만 마음이 가지 않은 것도 많다. 취향의 문제라고 해도 될 부분이지만 굳어진 마음 탓도 있지 않을까 한다.

 

화가 피카소만 생각하다 놀란 것 중 하나가 주변에 흔히 보는 사물을 가지고 만든 ‘황소의 머리’다. 자전거 핸들과 안장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그는 멋진 말을 한다. ‘나는 찾지 않는다. 나는 발견한다.’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말이고 행동이다. 또 하나 새롭게 본 것은 한국 전쟁에 대한 작가의 작품이 있다는 것이다. 워낙 유명한 ‘게르니카’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일어난 학살’같은 미군의 신천 학살을 다룬 작품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그 시대에 이 그림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무리일 수 있기도 하지만 학교 미술 교육의 부실을 또 탓해본다.

 

소설가들의 산문집을 보거나 미술가에 대한 해설서나 평전 등을 보다보면 늘 만나게 되는 것이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을 만나게 되면 기억해 두었다 그의 작품이나 그림 등을 주시하는데 이번에 만난 인물은 세잔이다. 역시 세잔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다. 하지만 피카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고 할 정도라면 그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요 근래 미술관련 서적을 몇 권 읽었는데 읽을수록 빠져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기억력이 딸려 휘발성으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도 최소한 읽는 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다른 책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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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의 비밀 - 아름다운 그림 속 여인들이 숨겨둔 이야기
이주은 지음 / 한길아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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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기는 읽는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팩션을 다룬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보다보면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이 주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뭔 상징과 은유와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놀라면서 말이다. 여기에 작가는 미술사의 한 시대를 다루면서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읽다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도 많이 만나게 된다.

 

일반 판형이 아닌 조금 더 큰 양장에 많은 분량은 아니다. 책 속에 나오는 그림들을 생각하면 글자도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해석과 그 그림들을 보다보면 알게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본다. 현대 미술과 달리 사실적이고 섬세한 그림들에 담긴 이야기에 빠져 그림 위로 눈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작가의 설명보다 긴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부분 첫 장의 시작은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 가는데 덕분에 상당히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 약간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그림에 대한 해석이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어우러져 역사와 시대와 이데올로기와 심리학 등으로 풀어져 나오면서 생각보다 깊게 몰입하고, 배우고, 깨닫게 되는 바가 많다. 또 간혹 1867년 한 해 동안 크리놀린 드레스에 의해 불타 숨진 여성이 3000명가량이고, 부상자가 2만 명이 넘는다는 놀라운 정보에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대단한 여성 잔혹사 아닌가?  

 

책 제목에서 말하듯이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다. 이 시기를 보면 신사의 나라라는 이면에 숨겨진 여성에 대한 억압과 두려움이 가득한데 위에 말한 드레스 사건 같은 억압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기득권 상실 등이 엿보인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에게 금욕을 요구하면서 몰래 딴 짓을 하는 남자들이나 성병에 대해 모든 잘못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뻔뻔함을 생각하면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이 담고 있는 상징과 은유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여성의 누드를 그리기 위해 의미를 부여한다든가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끌어와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억눌린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을 보게 된다.

 

현대의 그림과 다른 분위기와 라파엘전파의 그림이 대부분이고, 특정 화가의 그림이 많이 나와 다양함을 즐기기엔 부족한 감이 있지만 생각보다 알찬 구성과 내용으로 읽는 즐거움과 보는 재미를 동시에 주었다. 각 장과 소제목에서 나타나는 의미를 되새기며 그림을 보고 시대와 상징을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부록처럼 나오는 빅토리아 미술 소장처와 시대 예술가에 대한 정보는 혹 영국을 여행하면서 미술관 등을 둘러본다거나 이 시대 소설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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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 제자리로!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가슴이 답답하거나 분노가 차오르면 크게 소리치는 것과 힘차게 끝까지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것은 변함없다. 비록 가끔 길가다 힘차게 달려보지만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과는 달리 50미터도 못가 힘에 부쳐한다.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지 몇 년인지 모르겠고, 근육은 이미 약해질 만큼 약해진 상태고, 심장은 약간의 과격한 움직임도 버티질 못하는 것이다. 이런 나이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그들과 함께 달리는 나 자신을 본다. 출발선에 선 긴장감과 마지막 순간까지의 질주를 보다 보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천재라고 불리는 축구선수 형을 둔 가미야 신지. 중학교 시절 축구부에서 활동하지만 그냥 평범한 선수일 뿐이다. 천재인 형을 동경하지만 그의 재능이 따라가질 못한다. 고등학교 진학 후 절친한 친구 렌과 함께 있는 것 본 육상부 동기 네기시의 말과 렌과의 50미터 달리기에서 붙은 열정은 그를 스프린터의 길로 인도한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쉽게 될 리가 없다. 하지만 감독인 미짱은 그냥 평범한 공립 육상부에 나타난 두 인재로 기뻐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연습과 경기와 실패와 성공들.

 

이 소설을 본 사람들은 아마 일본 스포츠 만화를 많이 연상하게 될 것이다. 약간은 전형적인 스토리 진행이고 등장인물들이기 때문이다. 3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지만 그 중 엄청나게 차지하는 분량이 연습과 경기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갈등과 학창시절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거의 지나가듯 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 연습과 경기 장면은 사람을 강하게 빨아들인다. 0.01초의 세계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매일매일 힘겨운 훈련을 하고, 몸을 만들고, 자신과 끊임없이 싸운다. 그 단순함에 놀라고, 그들의 열정에 더 놀라고, 그 연습량에 비해 나온 성적이 평범함에 더욱 놀란다.

 

이전에 본 수많은 스포츠 만화나 소설들은 항상 선두에 근접하거나 위협하거나 제일 앞에 있는 선수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천재라고 하여도 노력하지 않으면 다른 노력하는 천재에게 지고, 이기기 위해선 수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단순히 한두 달로 이루어지는 승리가 없는 것이다. 수많은 천재와 일등에 짓눌리며 보아온 다른 소설이나 만화와는 다른 모습이라 새로운 세계를 보는 느낌도 주었다. 어쩌면 일등을 돋보여주는 조연들일 수 있는 인물들이 당당히 주연으로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태어나서는 축구 천재인 형에게, 육상부에선 달리기 천재 렌에 의해 둘러싸인 신지지만 그의 정신은 놀랄 만큼 강인하다. 그들을 동경하고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보지만 그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하고 독려하면서 연습하고 그들을 따라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그 열정과 패기에 뭉클해진다. 청춘을 다루는 소설답게 우정이나 선후배 관계나 사랑 등을 다루고 있지만 육상이 중심에 놓인 소설이기에 꿈을 향해 달리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다.

 

이 개인기록 경기인 달리기를 단순히 개인경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한 것은 400미터 이어달리기다. 배턴을 넘겨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네 명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에선 찐한 감동과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아마 가장 핵심적인 부분도 이 이어달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학창시절이나 회사에서도 우리 선수의 힘찬 발걸음에 흥분하고 고함을 자연스럽게 외치듯이 이들의 질주에 마음속으로 응원으로 보내고 고함치고 함께 달리게 된다. 결과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긴장감은 어느 소설 못지않다.

 

 

약간 평범한 구성이라 쓸 말이 없을 것이라는 처음 예상과 달리 글이 길어지는 것은 그들이 품어낸 열기와 경기에서 보여준 긴장감과 자세히 알지 못하던 육상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각각의 책 부제가 제자리로!, 준비!, 땅! 이라고 한 것처럼 이제 육상을 시작한 신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학년은 육상선수로서의 자리를 찾고, 2학년은 육상선수로서의 몸과 마음을 만들고, 3학년이 되어서는 당당히 다른 선수들과 경합한다. 출발 신호인 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그가 앞으로 갈 길의 시작만 보여준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선수들과 함께 다투며 성장할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지막을 덮지만 나의 가슴속엔 바람처럼 달리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두 발이 움찔거린다. 나도 바람처럼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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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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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고갱이다. 고갱에 대한 소설인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연상의 중심에 놓인 인물인 고흐를 다시 생각하면 언제나 해바라기, 자화상, 귀를 짜른 일 등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리고 엄청난 고액에 거래되는 그의 그림들. 이런 연상들은 학창시절 미술을 배우면서 무작정 외운 것과 흥미위주의 신문기사에 의해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그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거의 이렇게 고정된 연상과 이미지 속에서 이 책을 읽었다. 가장 먼저 만난 고흐의 인상은 차분하고 힘겹게 배우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화가의 모습이고, 다음에 만난 것은 고흐의 동생인 테오이다. 생전에 단 한 작품만 팔렸다는 고흐의 경력을 생각하면 고흐를 키우고 먹여 살린 인물이 테오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편지의 거의 대부분이 테오에게 보낸 것이다. 살아서 보낸 편지 수가 668통이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 아닌가! 하지만 이 책에 그 모든 편지가 담겨있지 않고 편집자 등에 의해 간추려진 것만 담겨있다.

 

간추려진 편지만 있지만 그의 예술관이나 삶에 대한 시선을 잘 풀어낸 편집이 아닌가 한다. 물론 다른 편지를 보지 않아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엔 무리가 있지만 한 명의 대단한 화가이자 죽은 후 엄청난 매매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미지에 눌려있던 고흐를 제대로 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편지 중간 중간에 그의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들이 나오고, 그가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가졌다. 하지만 편지 모두가 아닌 점이 약간은 아쉽다. 다른 곳에서 모든 편지를 볼 기회가 생길지 모르지만 나의 욕심이 그런 생각을 더욱 부채질한다.

 

편지가 예술관과 인생관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더불어 편집된 그림들은 화풍이나 스케치 등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작과 어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와 변화를 엿보게 한다. 책을 읽다 마주한 그림들에서 그만의 특징이나 익숙한 그림에선 고흐의 것임을 알지만 그의 대부분은 그 특색이 나타나지 않아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학창시절 미술교육이 얼마나 부실 했는지와 나 자신이 얼마나 그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고흐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만이 지닌 특이한 색과 회오리치는 듯한 느낌의 그림은 묘한 매력을 발휘한다. 고흐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의 이면엔 그의 광기어린 후기 삶이 어느 정도 작용하였다. 하지만 이 편지들을 읽은 지금 많은 부분 가셨고, 세계적인 화가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진다. 이 책으로 이번에 고흐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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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27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인님, 이 책 참 좋더군요. 고흐의 알려져있지 않은 내면을 읽을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