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서평단 알림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수사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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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젠가 읽은 책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보았다. 정확한 문장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우리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법의학자다. 사체가 발견되었을 때 그 원인과 이유를 밝혀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법의학자다. 드라마나 영화나 만화로 만나는 법의학자들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모습에 따라 어떤 순간은 냉정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경우엔 너무 따스함을 느끼기도 한다. 정확한 그들의 실체를 아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아무리 뛰어난 범죄자라도 조금은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그 미세한 정보만으론 범인을 잡을 수 없다. 과학이 발달하고, 법의학이 진보하는 동시에 냉혹하고 잔인한 살인자들도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하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극히 일부분이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수많은 단서와 증거를 남긴다. 그 증거들을 보면 우리가 그냥 무심코 지나간 것들도 많다. 하지만 법의학자들은 그 속에서 단서를 찾고, 추론하고, 연구하면서 한 발짝 진실에 다가간다. 그 과정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놀람과 함께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 책의 저자는 법의곤충학자다.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부분은 그의 전공인 곤충을 소재로 하고, 두 번째는 유전자 감식을, 마지막은 낡은 범죄생물학을 다루고 있다. 각 부분별로 실화를 바탕으로 전문지식을 통해 설명해주는데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흥미롭고 신기하고 재미난 대목이 많다. 물론 즐겨본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많지만 책으로 실제 법의곤충학자의 글을 읽는 것은 다른 느낌을 준다. 드라마가 그냥 휙하고 지나가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면 책은 조금 더 숙고할 시간을 주고,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화려한 연출과 과장된 표현을 여기서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보니 드라마의 화려함이 더 돋보이기는 한다.

 

곤충을 소재로 한 첫 장은 사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미 재현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약간 신선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냥 대사나 한 장면으로 지나간 대목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문장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법의곤충학을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로 환경의존성을 꼽는 대목은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음을 알려준다. 환경에 의해 접근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때로는 사건을 너무 가까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 전체도 볼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는 일상생활에서도 적용 가능한 것이다.

 

두 번째 장인 유전자 감식은 논쟁의 소지가 다분히 있다. 저자는 현재 유전자 감식 방법이 개인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이 한 곳에 쌓이게 되면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범죄가 손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악용과 오용의 가능성을 너무 쉽게 열어놓을 수 있다. 보안이나 데이터의 사용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권력이나 행정 편의 등 때문에서 데이터 집적이 벌어지고, 이를 이용하려는 집단이나 단체가 존재하기에 다른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또 날로 발전하는 과학에게서 이런 집적이 어떤 돌발 변수를 만들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 과장된 표현에 대한 정확한 지적은 현실을 바로 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마지막 장은 독일인에겐 아픔이 있는 내용이다. 바로 인종에 대한 학설을 반박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까지 많은 학자들이 권력에 공헌하기 위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을 숨기고 왜곡한 내용을 하나씩 예를 들어 반박하는데 이 또한 현대 과학 발전에 힘입은 바가 많음을 알게 된다. 오독인지 아니면 목적을 위해 왜곡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흉측한 발상과 행동들은 인류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지금도 가끔 그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경계의 눈초리를 지울 수 없다.

 

많은 이야기와 사례가 실려 있다. 그 중에서 인상에 가장 남는 것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사건 해결을 위해 법의학자와 경찰, 범죄생물학자, 환경청 그리고 달팽이 전문가까지 합심해서 협동 작업을 벌인 끝에 수사가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대목이다. 인간의 지식에 한계가 있고, 시야도 역시 완전하지 못하기에 이런 협조는 많은 장점을 가진다. 그래서 수많은 범죄자들이 잡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바로 법의학자들은 객관적인 흔적을 추적하면 되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현장에 남겨진 흔적이 희생자와 범인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만 하면 되지 그것이 범인을 저지른 사람의 것인지, 그럴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너무 냉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객관성과 진실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정답이다. 이 한 권으로 모든 법의학자들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들을 보게 된 것은 분명하다.

 

*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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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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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종의 소설로는 두 번째로 읽는다. 전작인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기에 선택에 주저함이 없었다. 전작이 007을 패러디하면서 유쾌하고 즐겁게 풀어내었는데 이번 소설은 유쾌함보다 왠지 모르게 아픔과 슬픔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다른 특징을 더 꼽자고 한다면 동화를 비틀어 새롭게 해석한 내용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옛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도 같이 진행되었다. 원작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 더 재미있게 소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집의 제목은 ‘사과의 맛’이다. 보통의 단편집이 단편 중 한 편을 표제작으로 내놓는 것과 달리 이 소설엔 사과의 맛이란 제목의 작품이 없다. 다만 단편들 속에 공통적으로 사과가 등장할 뿐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과의 맛은 사과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먹는 사람 입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맛은 사과와 먹는 사람 간의 접촉을 필요로 한다”는 보르헤스가 인용했던 버클리 주교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소설에 담겨 있는 사람들 간의 접점을 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맛을 결코 달콤하지 않다.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상추, 라푼젤’과 ‘헨젤과 그레텔의 집’과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는 동화를 패러디하였고, ‘연금술의 밤’과 ‘연못 속에는 인어가’와 ‘창백한 푸른 점’은 신화와 중국 설화 등에서 이야기를 빌려왔다. 이어지는 다른 소설들도 역시 이런 흔적들이 조금씩 보이는데 나의 부족한 지식으론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마지막에 단서를 남겨두어서 조금 노력한다면 소재를 어디에서 얻은 것인지 파악할 수는 있다.  

 

‘상추, 라푼젤’은 제목 그대로 라푼젤 동화에서 이야기를 빌려왔다. 하지만 그대로 빌려왔다면 표절일 것이다. 작가는 상황을 새롭게 만들고, 현대적으로 각색하면서 패러디의 묘미를 살려내었다. 그리고 아예 동화와 똑같은 제목인 ‘헨젤과 그레텔의 집’은 가족 유기라는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 서두에 난파하는 배 이야기를 말하며 황폐화된 가정의 침몰을 서서히 그려내고 있는데 읽다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에서 만난 인어는 ‘상추, 라푼젤’ 마지막 장면에서 왕자가 말한 그 인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장애인을 둘러싼 우리의 시각과 인어의 순진함과 무지와 극악한 상술의 한 면을 보여주면서 동화 속 이야기를 비극적으로 재구성한다.

 

‘연금술의 밤’은 조금은 밋밋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판도라 상자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조금 밋밋하다. ‘창백한 푸른 점’은 미래의 달세계와 로봇을 다루면서 현대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열역학 제2법칙’에선 아버지의 돈을 위해 방안에 아버지를 가둔 아들이 벌이는 행동과 그 행동으로 빗어지는 일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란 말이 딱이다. ‘곡예사의 첫 사랑’은 줄타기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삼촌을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지는데 제목처럼 첫 사랑의 지독한 여운은 삶의 경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마지막 작품인 ‘닭과 달걀’은 흔히 보는 고부간의 갈등을 다루는데 일방적인 피해자인 며느리의 무시무시한 반전이 돋보인다. 

 

이 소설집에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이 가족들을 보면 비정하다. 사랑보다 현실의 냉혹함이 더 강하다. 소위 말하는 콩가루 집안과도 같다. 단단한 결속은 어디에도 없다. 현대 가족들이 지닌 실상을 강하게 밀어붙여 환상을 깨부수고 있다. 평화롭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가정의 모습이 아닌 부족하고 삐거덕거리는 가족을 내세우면서 그 허실을 집중 공략한 것이다. 요즘처럼 존속살인과 노부모에 대한 유기 뉴스가 많은 시점에 단순한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더 섬뜩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문장이 간결하고 이야기를 하는 듯한 문체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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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몽키
데이비드 블레딘 지음, 조동섭 옮김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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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판 ‘악마는 프라다는 입는다’다. 경쾌하고 발랄한 문장으로 상사들의 가혹한 업무 지시에 치이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을 이야기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여자들이 많이 꿈꾸는 패션 잡지를 배경으로 환상을 깨트렸다면 여기선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를 등장시켜 놀라움을 주고 꿈을 깨부순다. 일주일 100시간을 일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과 묘하게 대비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직장인들이 아직도 이 이상으로 하는 경우를 이전부터 보아왔지만 그래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본명으로 불리지 않는다. 중얼이, 밉상스타, 까칠깐죽, 찌질곰탱, 알랑방귀, 에르메스 등등의 별명으로 불린다. 한 명 한 명이 개성이 강하고, 재미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일에 치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단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성공을 향해 나아가기위해 자신의 인생을 일에 던지고, 친구도 가족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조직은 끝없이 일을 쏟아내고, 잠시의 휴식도 인정하지 않는다. 편하게 생각하면 그런 직장 집어치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야망이 있는 그들이 떠나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직장이다.

 

화자 중얼이는 상사가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업무지시에 일요일 밤 여자친구의 생일도 챙기지 못한다. 그리고 차인다. 쌓인 피로는 이어지는 밤샘으로 더욱 무섭게 쌓인다. 그러다 잠시 잠에 빠진다. 일어난다. 시간은 상사가 시킨 시간을 지났다. 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밉상스타가 그의 작업을 마무리한다. 다행히 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고 알랑방귀로부터 질책을 당한다. 이렇게 밤늦도록 일하고, 상사에게 재촉당하고, 욕을 얻어먹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 인권도 야근수당도 찬란하게 보장된 미래도 없다. 다만 살아남아 자신이 바라는 세계로 가기만 기다릴 뿐이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

 

 

경력을 쌓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그곳은 결코 쉽지 않다. 상사들은 언제나 방금 지시하면서 조금 후에 보자고 하거나 퇴근 무렵 일을 던져주고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한다. 예전 생각이 난다. 쏟아지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조그마한 실수로 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조그마한 휴식은 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여기도 결코 만만한 장소가 아니다. 언제 상사들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얼이에겐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비록 스트레스에 의해 황당한 만남으로 이어지지만.

 

일. 일. 일. 일로 가득하다. 상사를 씹는 즐거움도 있다. 남들보다 탁월한 능력보다 비교적 쉽게 일을 처리하는 놈도 있다. 멋진 외모로 자신들이 꿈꾸는 멋진 여자를 녹이는 빽 좋은 놈도 있다. 일 때문에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욕을 먹는 중얼이도 있다. 밑의 직원을 잠시라도 쉬게 놓아두지 못하는 놈도 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직원을 탓하는 직원도 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투자금융사라는 공간에 집어넣고 한 애널리스트의 시각으로 멋지게 되살리고 있다. 재치 있는 문장과 풍자적인 시선이나 현실적인 풍경들은 이런 강한 등장인물과 잘 어울린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직장인의 불안과 비애를 극단으로 몰고 가면서 나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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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클리닉 - 비뚤어진 조선사 상식 바로 세우기
김종성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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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과 역사비평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고 있다. 나 자신이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으니 뭐라고 말하기 그렇지만 아주 가끔 보는 사극들은 정말 함량 미달이다. 사극이 역사를 그대로 옮길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왜곡의 수준으로 나아가지는 않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가끔 눈에 들어온다. 사극과 역사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사극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일 때면 놀라기도 한다.

 

비뚤어진 조선사 상식 바로 세우기란 부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왜 이렇게 비뚤어졌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제대로 된 역사 교육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고, 다음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사극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많은 이들이 사극과 역사를 동일시하고 있다. 몇몇 역사학자들이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 한 편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 왜곡된 사실을 현실로 믿게 되는 것을 지적한 바가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간단하게 말하면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학창시절 받은 역사 교육만으로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능력이 없다. 단순 암기용으로 시험만을 위한 것이 되거나 영어나 수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업시간은 겉핥기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직도 정확하게 씻어내지 못한 일제의 잔재는 그런 왜곡을 더욱 부채질한다.

 

모두 네 꼭지로 조선사를 다루고 있다. 정치․외교, 풍속․문화, 임금․왕실, 인물․사건 등이다. 네 범주로 묶고, 하나씩 사례를 통해 역사를 비평하고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중심이 잘 살아있다.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짤라내고 핵심에 집중하고 있다. 사극을 자주 다루다보니 쉽고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부분도 많다. 예전에는 몰랐던 부분도 보이고, 나의 지식과 상충하는 곳도 보이고, 다시 한 번 더 기억을 되살리게 되는 사실도 있다.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을 집고 넘어간 대목에서 시원함을 느끼고, 너무 앞선 듯한 대목에선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재미난 것은 확실하다.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보니 하나씩 집고 넘어가기는 무리다. 그 중 몇 가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하겠다. 먼저 고종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의 외교력을 높게 평가한 점에선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하지만 19세기말 병인양요과 신미양요에서 이겼다고 외세를 막아낼 충분한 역량이 있었다고 한 대목과 요즘 나오는 학설의 일부를 인용해 고종이 외세를 이용해 자신의 반대세력을 없앴다고 가정하는 대목에선 너무 가정이 심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 조선의 생산관계에서 노비를 새롭게 재조명한 것은 단순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 당시 사회를 근본으로 돌아가 여론이라 불리고 가리키는 것이 사대부들임을 알려주고, 결과로 드러난 사실을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의 심리와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재미나다. 최근에 많이 쏟아지는 조선사 관련 역사서의 성과물들이 이 책속에 많이 담겨 있어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조선사 클리닉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다시 보게 되고, 뜻밖이고, 바로 읽고, 미처 몰랐던 조선의 역사를 다루니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사를 조선이란 지역에 한정하기보다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의 연속성 속에서 파악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무심코 생각한 많은 역사의 인과성이 이 연속성 속에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주제가 무겁지 않고, 딱딱하지 않고, 힘겹게 읽히는 책이 아니니 한 번쯤 읽어본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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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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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 나 자신도 물론 겪었다. 하지만 작가의 글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입시의 열기 속에 잠시 투정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주변의 시선과 나 자신의 나약함이 큰 일탈을 용납하지 않았다. 물론 그 시대와 나의 시대가 다르고, 내가 지금의 10대, 20대와 다른 점을 느낀 것을 생각하면 시대의 큰 변화를 짐작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대 탓만 하기엔 그가 걸어온 길이 너무 힘겹고 무겁고 부럽다.

 

책의 구성은 상당히 흥미롭다. 주인공 준이 월남으로 파병 가기 전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복귀하는 그 순간 한 친구의 그림자를 보게 되고, 이 친구를 화자를 내세운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또 준의 시점으로 돌아가고, 다시 다른 친구가 이어받아 전개된다. 이 구성은 준을 둘러싼 환경을 준의 시점과 친구의 시점으로 동시에 보여주면서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과 환경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조금만 삐끗하면 전체적인 흐름과 균형이 깨어질 수 있다. 작가는 이 균형을 잘 맞추면서 준 주변 인물들을 한 명씩 등장시켜 다양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구성에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각 개인들에 맞춰 좀더 문장이나 문체를 바꿔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한국의 십대는 참으로 피곤하다. 물론 대학이란 것을 포기하고 살면 편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포기하겠다고 외치면 결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선생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학력이 되지 않은데도 교장들이 억지로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모아서 자율학습(?)이란 것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은 강남의 학교들은 자율학습도 없이 바로 하굣길에 오르는데 그 이유가 학원 때문이라니 놀라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뭐 자율학습이란 것도 학원을 핑계되고 빠지는 학생들이 있다고 하니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인 교장들의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악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또 소설 속 한 장면인 성적순으로 발표하는 행동은 이젠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은 작가가 그 시대에 고민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시절은 아직 낭만이란 것이 조금은 더 남아있을 때가 아닐까 조금은 부럽다.

 

10대 후반은 누구나 방황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점점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일탈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한다. 경쟁에서 한 발만 벗어나도 낙오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의 어머니처럼 아이를 대할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시절에도 그런 어머니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준의 무전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친절과 여유는 경제적으로 그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이 부유해진 지금은 오히려 찾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준은 자살을 시도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실패는 의미가 있다. 흔히 우리가 죽을 놈이 뭔 짓을 못 해라고 하듯이 준은 그 생사의 경계를 지나오면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고, 더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누구나 힘든 삶의 기로에서 죽음을 생각하지만 감히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것도 굉장한 용기다. 하지만 실패했기에 그 용기가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지 만약 죽었다면 흔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나는 그의 자살 시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는 죽으려고 했을까? 그가 걸어온 길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생으로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능력이 있고,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서 자신과 함께 하고,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안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의 마음을 뒤흔든 사건이나 사고의 단상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냥 젊은 시절 누구나 겪는 심한 통과의례인가? 시들해진 삶과 결코 평안하지 않았던 그의 성장기를 보면 조금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역시 충분히 납득할 수준은 아니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고, 곳곳에 그리움을 피워 올리고, 낭만이 넘쳐나는 이 소설에서 나 자신의 성장통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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