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저 없이 살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놀란다. 인간이기에 욕망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헤매기도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그 한계를 넘어가게 되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 속 살인자나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의 차이라면 그 한계를 누가 먼저 넘는가 하는 시간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문제는 한 장의 유언장 때문이다.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만들어놓은 유언장은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예상대로 살인이 이어진 것도 바로 유언장과 함께 거부였던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 때문이다. 그의 과거를 다룬 첫 부분에서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 예상은 끝으로 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유언장이 의도한 바도 명확해진다. 하지만 연쇄살인을 불러오고, 그 살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영화로 세 번, 드라마로 다섯 번이나 만들어진 소설이다. 역자의 말처럼 이 정도로 만들어졌다면 일본 사람들에겐 소설보다 영상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은 감독의 시선을 통해서 한 번 걸러지기 때문에 원작의 재미를 완전히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이시의 다른 작품인 ‘악마가 오라고 피리를 분다’를 드라마로 옮긴 것을 보고 단숨에 살인자를 파악하게 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단서를 너무 분명하게 영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원작을 읽고 난 후 영상을 접하려고 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이렇게 많이 영상으로 옮겨진 것은 바로 이 소설이 지닌 공포와 재미 때문이다.

 

추리소설이 전해주는 공포는 살인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누군가가 죽어있다면 조금은 심심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무섭게 연출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와 결합하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바로 이 소설이 그런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특징이다. 소설은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와 막대한 재산, 그리고 딸들에 의해 내쳐진 아들의 존재를 축으로 한 가문 속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충돌과 살인으로 빚어내는 비극을 다룬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구조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 완숙한 진행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매력의 중심엔 죽을 사람이 죽고 난 후 문제를 해결하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있다.

 

우리에게 소년탐정 김전일로 유명한 긴다이치 하지메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는 매력적인 탐정이다. 매끈한 외모도 아니고, 사건을 단숨에 꿰뚫어보는 직관도 없지만 연속적인 죽음 속에서 사건의 본질을 찾아가는 그 모습은 굉장히 인간적이다. 또 그의 머리를 벅벅 문지르는 버릇은 약간 허술한 느낌을 주는데 그의 날카로운 추리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만화에서 그의 손자를 자처하는 하지메도 역시 약간 허술한 느낌은 주는데 할아버지처럼 죽을 사람이 죽은 후 문제를 해결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오죽하면 김전일과 여행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란 농담도 있을까!

 

아직 긴다이치 시리즈를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비슷한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가면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악하고, 다른 가능성도 추리해보지만 역시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살인자의 마음과 살인자를 둘러싼 환경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미는 바로 사헤 옹의 과거다. 긴 단편들을 마지막에 꿰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장면은 어쩌면 맥이 빠지지만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기도 하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도 소년탐정 김전일이 떠오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나에게 CIA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로 만들어진 멋진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의 역사 속에 비추어진 추악한 뒷모습이다. 이 책은 바로 추악하고 실패로 가득한 CIA의 역사를 보여준다. 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한지 알려주면서 후자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보여준다. 제목 그대로 화려한 영광은 없고, 잿더미만 가득한 허상의 기록이다.

 

CIA의 역할은 사실 영화나 소설 등으로 많이 부풀려져 있다. 보통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끔 외신이나 뉴스나 책에서 접하는 CIA의 모습은 단편적이고 순간적이다. 그들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추적할만한 단서를 남겨놓지도 않았고, 그 추적을 쉽게 용납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일반 대중이 그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리고 CIA의 비밀공작을 통해 본 세계사는 미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결코 미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환상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읽은 후에도 거짓이라고 믿는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CIA의 모태가 된 OSS를 알고 난 후 그 설립과정을 보는 재미는 솔솔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대목도 있지만 어떤 목적과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몰랐다. 그리고 그들이 펼친 작전들이 어떤 것이 있고, 얼마나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제3세계 역사를 통해 그들이 펼친 비밀공작과 그 나라 국민이 어떤 고난과 피해를 입었는지 알 뿐이다. 일본 자민당 창설에 관여한 대목에선 사실 많이 놀랐다. 그 치밀하고 지속적이면서 반민주적이자 반인륜적인 그들의 비밀공작을 들여다보면 예상을 초월한다.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강하게 주장하고, 밀어붙이고, 확실한 결과를 얻고자 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다른 매체를 통해 아이젠하워나 케네디 일가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깨어지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났다. 

 

왜 그런 환상이 깨어졌을까? 그것은 설립 당시부터 잘못된 출발과 최고 권력자들의 욕심 때문이다. 분명히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국가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전문가 집단이 아닌 아마추어 수준의 정보를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계 각국에서 비밀공작을 펼치지만 그 나라 문화도 언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가 첩보활동을 하고,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무수한 인원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 대부분이 미국인이 아닌 공작지의 국민이란 점에서 그들에게 미국인이 아닌 사람은 단순한 소모품 그 이상이 아닌 것 같다. 가끔 한국에 대한 글이 나오면 깜짝 놀라곤 한다.

 

잘못된 출발보다 더 잘못된 것은 권력자들과의 관계다. 자신들이 얻은 정보가 대통령의 생각과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퇴짜를 맞는다는 사실에 그들의 운명은 정해지게 된다. 윗사람 입맛에 맞는 정보만 보고가 되어지고, 조직의 존립을 위해 실패를 성공으로 포장하는 능력을 더 키워온 것이다. 정보를 분석하고 올바른 해답을 내놓을 능력을 키우기보다 비밀공작으로 한 나라의 운명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는데 맛을 들인 것도 문제다. 물론 이 비밀공작이 대부분 올바른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참혹한 결과는 역사에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영화 속에선 언제나 미국 스파이가 소련 스파이를 압도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소련을 제대로 이겨보지 못했다. 철의 장막을 제대로 뚫지도 못하고, 이전의 실패에 사로잡혀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온 사람을 고문하고 취조하면서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계속된 첩보활동의 실패가 조직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수많은 실패는 너무나도 많다. 한국전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9.11까지 이어지는 실패의 역사는 현재 CIA가 미국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의문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실패와 실수를 겪고도 조직이 지금까지 존재했는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답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이 어쩌면 냉전만큼이나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또 우리는 우리의 정보력에 따라서 이 전쟁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다른 조직들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사설 정보업체의 등장과 정보의 아웃소싱이다. 국가에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체가 생기고, 사람을 CIA에서 스카우트하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CIA는 필요한 존재인지, 과연 기업체들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인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하게 되는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 그것(CIA)은 어떤 정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특이한 유형의 조직이다. 아마도 이런 조직을 운영하려면 이상한 유형의 천재가 필요할 것이다.”(782쪽) 이상한 유형의 천재가 아니면 운영할 수 없는 조직, 비밀공작의 특성상 거짓을 좇는 조직, 독립적이고 올바른 정보보다 윗사람들의 권력에 봉사하는 조직이 바로 CIA다. 수많은 인물이 CIA의 국장이 되었고, 많은 대통령이 은밀하게 비밀공작을 허락하였지만 제대로 된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매체를 통해서 그 이름을 알린 정확한 성과 없는 조직이 바로 그들의 현주소다. CNN보다 소식이 늦다는 사실에선 예산을 잡아먹는 공룡에 대한 실체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련 측 역사도 굉장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CIA의 긴 역사와 수많은 비밀공작을 다루기엔 1000쪽도 부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談畵
조용헌 지음, 이보름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강호동양학이란 이름이 조금은 낯설다. 강호와 동양학을 따로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둘을 붙여 놓고 보니 낯선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책 서두에 이 명칭에 대해 설명한다. 동양학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강호동양학이요, 다른 하나는 강단동양학이라고 말한다. 강단동양학은 대학의 강단에서 통용되고 인정받는 동양학을 가리킨다고 하니 그 밖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동양학이 바로 강호동양학이다. 강호에서 치열한 삶을 경험하게 되니 강호파가 강한 생존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강호파의 일이다.

 

강호동양학의 삼대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천,지,인 삼재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용어들에서 무협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오랜만에 느끼는 분위기다. 저자는 이 삼대 과목을 축으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다. 그 속엔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도 있지만 다시 읽어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 자신이 이런 통계적 수치를 신봉하지 않지만 이야기가 묘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 완전히 과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수없이 들은 이야기와 분위기이기에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흥밋거리로 읽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하나의 학문으로 오랜 시간 자리를 잡은 이론이다 보니 그냥 지나갈 수 없다. 그가 사주는 확률이지 100퍼센트가 아님을 명심하라고 하지만 한 번 빠지게 되면 쉽게 빠져나오기가 힘든 것이 바로 이런 운명론이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쌓인 데이터가 만들어낸 학문이지만 그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바로 여기서 도사나 기인이 등장하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두 이인 제산 박재현과 야산 이달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고수의 높은 뜻은 가슴에 새겨놓아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의 장점은 사주와 풍수 등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면서 현실과 이야기를 잘 섞어서 재미나게 풀어내었다는 점이다. 한,중,일 동양 삼국이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알려주면서 현재의 명리학 주소를 알게 한다. 그리고 전설 같은 실화를 말하면서 신비로움을 고취시키고, 몇몇 사례를 통해 사주와 풍수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이런 이야기는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단점도 눈에 들어온다. 십간에 명왕성을 넣은 점이나 정여립 사건을 역사적 시점이 아닌 역술가의 시점으로 보면서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흥밋거리로 정여립 사건과도 같은 역사들을 말했다고 하여도 사주와 풍수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은근히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게 노력한다. 이 부분은 역사를 보는 나의 관점과 너무 달라 순간 조금 흥분하기도 했다.

 

책은 조용헌의 멋진 이야기와 글 솜씨로 재미있게 읽게 만들고, 조금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이보름의 그림으로 잠시나마 여유로운 생각에 잠긴다. 한때 살짝 관심을 둔 학문이기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비록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얻어 들은 이야기들과 함께 저자가 풀어내는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고, 놀라운 기인들의 행적에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궁금한 것 하나가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 리(離)의 괘를 표시했는데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 離가 한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의 의미를 나타내는 괘인지 잘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불교와 만나다
유응오 지음 / 아름다운인연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예전처럼 영화를 보지 않는다. 20대 한때는 영화 잡지에 나온 명작이니 걸작이니 하는 단어가 들어간 영화는 시내 비디오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았다. 이젠 그냥 쉽게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볼 수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당시의 열정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내 가슴속엔 영화가 늘 들어있다. 이젠 예전처럼 명성에 짓눌려 보지 않는다. 시간이 나면 한 편의 영화로 가슴 한 쪽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옛 감성을 일깨우고 즐길 뿐이다. 한 가지 문제라면 너무 쉽게 영화를 구할 수 있다 보니 극장으로의 발길이 점점 뜸해진다는 점이다.

 

영화가 불교와 만났다. 제목만 보면 불교에 대한 영화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불교의 철학으로 영화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수천 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종교이다 보니 책 속에 나오는 영화들을 해석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자신들의 종교관으로 영화를 해석하면 어느 한 장면이나 흐름이 일치하는 대목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도는 의미 없는 것일까? 아니다. 분명히 있다. 영화의 형식과 구성이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는지는 둘째로 치고라도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겐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주고, 자신들의 시각으로 영화를 즐기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52편의 영화가 실려 있다. 이 중 본 것을 절반 조금 더 된다. 영화는 다시 열두 이야기로 구분된다. 각각의 범주는 불교의 철학 하나를 주제로 해석되어진다. 인과설, 시간, 연기, 허상, 선문답, 화두, 자비, 화엄사상 등등의 시각으로 영화를 분석한다. 이 과정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하구나 하면서 놀라기도 한다. 저자의 지식이 부럽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지식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과 결과물이 저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석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해석과 분석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취합하고 분류하고 설명한 것은 오롯이 그의 공이다, 물론 가끔은 너무 과도하게 불가의 논리를 끌어와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시도조차 신선하게 느껴진다. 자주 볼 수 있는 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연재한 글들을 먼저 읽은 사람들에겐 낯선 글이겠지만 그들과 관련이 없는 나에겐 새로운 즐거움이다.

 

아직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니 말할 내용이 없다. 하지만 본 영화라면 기억을 되살려 저자의 해석과 살며시 비교해본다. 그러면 그냥 무심코 지나간 장면이나 대사가 이 글 속에선 살아 움직인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 시절의 추억에 잠시 잠기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그 옛날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토가 보는 영상처럼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영사기가 돌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플라워 -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는 비밀스런 이야기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끝까지 읽으면서 왜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는지 모르겠다. 금서 논쟁에 서 있다는 이 책은 학생과 도덕주의자들이 논쟁의 주체다. 동성애, 음주, 섹스, 흡연 등을 하는 청소년을 보여주는 점이 도덕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상당히 거슬리는 모양이다. 이미 현실에선 수없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들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포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학생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주변에서 본 풍경과 내면이기에 열광한다. 너무 분명한 자신들의 모습이기에 이를 숨기고 왜곡하려는 자들에게 반발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월플라워. 이 단어의 의미는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소위 왕따다. 이 소설의 화자인 찰리가 바로 그렇다. 어린 시절 헬렌 이모가 죽은 여파로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생긴다. 그의 평소 모습 때문에 주변에 친구들이 거의 없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생긴다. 그 변화의 시작은 친구 마이클의 자살이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이다. 마이클의 죽음은 비교적 평온했던 그의 내면을 뒤흔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이 소설은 이 편지들 모음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한 소년의 깊은 어둠과 밝음과 과거와 현재다.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일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일기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편지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에 공감대를 더 형성하게 만든다. 자신의 내면과 주변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점도 그렇다.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자신 앞에 다가온 현실에 주저하고, 흔들리고, 유혹에 넘어가는 찰리의 모습은 바로 성장기에 있는 우리다. 아니 성장기로 한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표지에도 나오지만 소설 속에 다른 작가의 소설이나 영화도 많이 나온다. 반가운 책들도 많이 있다. 이 책들은 찰리가 성숙해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바로 친구다. 물론 그가 그들 때문에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꼭 그들 때문에 벌어졌다고 단정지울 수는 없다. 그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기회가 생겨 먼저 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만 유별나게 움직인다는 것은 힘겹게 얻은 친구들과의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하지 않는다고 그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무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비록 나 자신이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현실을 거부할 정도는 아니다.

 

찰리의 시선은 순수하다. 세속의 때를 덜 탄 것이다. 이런 눈으로 본 세상은 부조리하고, 이기적이고, 불안정하고, 무서우면서 놀라움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을 조용히 안아준 사람에게 따스함을 느끼는 장면에선 그가 느낀 불안과 외로움이 전해지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쉽게 이어지지 못하는 장면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인간관계에 서툴러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냥 웃고 지나가기엔 그 당사자들에게 가혹한 것 같고, 사실을 자신만 알려고 숨기는 모습에선 배려심이 살포시 묻어난다.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그의 모습은 왜 이 소설을 성장소설이라고 하는지 알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