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야코비
아네테 펜트 지음, 한희진 옮김, 유타 바우어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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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는 소설이 아니라 콩트처럼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에 야코비 씨가 있다. 하지만 길지 않고 어렵지 않은 이 소설이 집중력을 요구하고, 읽고 난 후 생각에 잠기게 한다. 25편의 이야기에서 만나는 야코비 씨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이 아니다. 개성 강하고,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를 따라가면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따스한 감정을 만나게 된다.  

 

 야코비 씨의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의 특이한 기행 중 처음은 신발과 관련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맨발로 다니길 좋아했다는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발과 신발에 자유를 주려고 한다. 신발을 신고 살아가는 사람들 눈에 이것이 이상해 보인다. 자신들과 다른 그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다. 한 아이가 그의 신발 한 짝을 가지고 도망쳤을 때 그들의 반응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어쩌면 안도하는 듯했을 것이다. 어릴 때나 어른이 된 지금도 주변사람들은 맨발로 걷는 그를 보고 발에 신발을 붙여야겠다고 말한다.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반응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의 친구가 야코비 씨 집에서 며칠 머문 적이 있다. 7시 10분이 되면 야코비 씨는 빵을 굽는다. 친구는 그것을 참기 힘들다. 그래서 떠나면서 간편하게 빵을 만들 수 있는 기계를 선물한다. 30분은 더 잘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야코비 씨는 그것을 창고에 넣고, 그 시간에 다시 빵을 만든다. 그 친구는 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친구의 삶을 이해한 것이다. 진정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다. 친구와 선물, 일상의 즐거움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계속 나온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사회를 비판하지 않지만 은근히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이야기 하나 더. 그가 휴식을 위해 시골에 갔을 때다. 쉴 곳이 필요해 한 아이에게 여관을 묻는다. 그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휴가를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한다. 한 사람에겐 적절한 휴식공간이 다른 사람에겐 일상의 공간이 된다. 관광지나 휴양지가 아닌 그곳에서 그의 모습은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이렇게 이 25편의 이야기는 각각 하나씩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활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숨겨져 있거나 야코비 씨의 행동과 반응 속에 담겨 있다. 마지막에 도시의 삶에 지친 그가 숲으로 떠난다. 그를 찾아온 경찰에서 매우 좋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행복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그가 도시로 돌아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그의 따뜻하고 기이하고 즐겁고 의미 가득한 삶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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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 스톤 -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
제이슨 굿윈 지음, 박종윤 옮김 / 비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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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7년 에드거 상을 수상한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은 사실 나와 맞지 않았다. 정통적인 탐정 역을 야심이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서평을 쓰기가 힘들었다. 결국 중단했다. 어쩌면 그 당시 내가 읽던 책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가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으면서 이전과 다른 재미를 누린다. 특히 초반 100쪽까지는 이스탄불의 풍경과 야심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정말 매혹적이다. 다시 그의 전작을 읽고 싶을 정도다.  

 

한 남자가 공격당한다. 누군가 쓰러진다. 르페브르가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그리고 야심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그냥 있으면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이 묘사는 나중에 남자와 여자의 중간에 위치한 환관인 그의 존재의 중립성과 묘하게 어울린다. 이후 야심과 르페브르가 폴란드 대사 팔레브스키를 통해 만나게 된다. 그는 야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밤 그를 찾아온다. 공포에 휩싸여서 말이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아무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어 한다. 야심은 배편을 구해준다. 그런 그가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된다. 그 당시 미묘하고 복잡한 터키 사정으로 인해 만약 그가 살인자로 의심 받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그가 비록 술탄 마흐무트 2세의 총애를 받는다고 하여도 말이다. 거기에 술탄은 병 때문에 생명이 위험하다. 이 힘든 상황에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시간은 없고, 알 수 없는 그리스 비밀결사 헤티라라는 조직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어떤 비밀과 음모가 존재하는 것일까?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기존의 추리소설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재미를 누릴 수 없다. 빠른 속도로 단숨에 읽을 수도 있지만 작가가 문장으로 보여주는 이스탄불의 과거를 즐길 때 그 재미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그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터키 인과 그리스 인들과 몰락하는 터키 제국을 한 걸음 떨어져서 봐야한다. 그리고 풍부한 역사 속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두면서 발걸음을 떼야 한다. 이 이야기들이 단서이자 트릭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이것을 몰랐기에 전작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이번 작품도 뒤늦게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이스탄불의 현재와 과거가, 그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이, 역사 속 유물과 전설이 풍부하고 섬세한 배경으로 그려진다면 야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사건들은 단단한 뼈대가 되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연 헤타라는 어떤 조직이며, 어떤 음모를 꾸미는 것일까? 갑자기 나타난 르페브르 부인 아멜리에는 어떤 인물일까? 그 살인사건들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이런 의문들은 뒤로 가면서 하나씩 해결된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역시 나의 과도한 기대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 자신이 읽으면서 만들고 예측하면서 생긴 전개와 다른 모습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겠지만 이 소설에선 아쉽게 느껴진다. 다른 팩션에서 본 큰 반전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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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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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혹시 나도 유죄가 아닌가, 생각했다. 맞다. 유죄다. 지금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사랑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리가 있다. 나 자신을 모두 던지고, 이성을 잃고, 가슴이 타오르는 사랑을 이젠 잘 하지 못한다. 글 속에 나온 것처럼 사랑은 버스 같은 것이라 다시 오겠지만 지금은 그 버스가 아직 오지 않았다. 어쩌면 한 정거장 앞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노희경. 이 작가와 인정옥 작가를 자주 헷갈려한다. 외모가 닮지도 않았고, 주인공들의 연기도 다른데 말이다. 물론 나 자신이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 않기에 이런 오해가 생겼는지 모른다. 인정옥 작가의 <내 멋대로 해라>를 아직 보지도 않았고,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 등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 둘은 마니아 작가란 이미지 때문에 항상 착각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인정옥 작가의 작품을 노희경의 것으로 오해하는 점이다. 이 점은 정말 미안하다. 나의 무지함 탓이다. 다음엔 제대로 기억하려고 노력해보겠다. 하지만 장담은 못한다.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지 않으니까.  

 

많지 않은 분량이다. 마니아를 이끌고 다니는 작가답게 문장과 감성은 건조하면서 자극적이다. 작가가 10년 동안 쓴 글을 모아 내어놓았다는데 상당히 적은 분량이라 조금 놀란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글이 없었다면 아마 더 분량이 적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적은 분량에 그녀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녀의 성장기, 어머니, 아버지, 청춘, 연애 등등. 10년 전, 20년 전 글과 감정을 다시 돌아본 글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좀더 부드러워졌음을 알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계에 좀더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음을 보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읽다 잠시 멈추고 생각에 빠지는 줄도 모른다. 

  

 

그녀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인상적인 것 몇 개 있다. 첫 사랑 이야기, 그녀의 엄마에 대한 잘못된 기억, 표민수 PD에게 보내는 편지, 미웠던 아버지 이야기다. 결코 모범생이 아니었던 그녀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 중에서 이 이야기에 눈길이 가는 것은 아마 나의 기억과 추억 때문일 것이다. 아련한 기억 속에 남은 나의 첫 사랑, 점점 잊어가는 엄마에 대한 옛 기억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정신없이 이야기하던 그 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약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이 조금은 그녀의 경험과 동조를 한 모양이다.   

 

젊은 시절 그녀의 글에서 보이던 오만과 자신감이 이젠 조금 힘이 빠진 것 같다. 그녀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두 편의 영화는 기억을 되살리면서 옛 추억에 잠기게 한다. 그녀의 시선에서 본 두 여배우의 삶에선 내가 알지 못했던 그녀들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나 자신이 보지 못한 <그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글이 없다면 더욱 홀쭉해진 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보지 못한 덕분인지 그 내용에 공감하지 못한 때문인지 가슴 깊숙이 아로새겨지지 않는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한 인기 드라마 작가의 시선으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좀더 세상에 관대해지고, 솔직해지고, 따뜻해지는 그녀를 통해 나 자신이 조금씩 힘이 빠진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세상에 대해 힘을 빼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 자신의 현재가 미래의 풍성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시간이 가서 지난날의 내 글을 보는 맛이 참 쓰다. 부끄럽고, 때론 너무 여렸구나, 그 여리고 어리석은 탓에 세상 살기가 고단도 했겠구나, 괜한 연민도 생긴다. 그러면서도, 생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고, 다 변하는 것이구 나를 알아가는 게 참 좋다. 10년 후에 난 또 이 글을 보고 무엇을 느끼려나. 기대가 된다.(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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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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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소설을 참으로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 접한 것이 <파운데이션> 시리즈였다. 그 당시 미래를 수학적으로 예측한 과학자의 이야기가 상당히 대단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 읽다가 중단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로봇 시리즈 중 몇 권을 더 읽은 기억이 있는데 <벌거벗은 태양>외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로봇공학 3원칙은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자주 만나면서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 3원칙을 배태한 단편이 이 작품집이라니 읽으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이 단편집은 그의 첫 작품인 <로비>를 비롯하여 총 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연대순인데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 로봇의 발전사를 알 수 있다. 단순한 목적으로 이용되던 로봇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으로 세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까지 말이다. 이런 발전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자 작가의 인식과 이해가 깊어짐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물론 가끔 드러나는 오리엔탈리즘이나 너무 도식적이고 확정론적인 모습과 원자력과 기술에 대한 확신 등은 아쉬움을 남긴다.  

 

 아홉 편의 이야기 중에서 눈길이 가는 몇 작품이 있다. 생각하는 로봇 큐티와 마음을 읽는 거짓말쟁이 허비다. 큐티가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를 종교에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창조한 존재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존재인 에너지 전송장치를 자신의 창조자로 믿는 모습은 기독교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성과 존재의 증명보다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에 집착하는 큐티의 모습에 광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부 신도들이 겹쳐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쓴 것일 수 있다.   

 

 허비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에 관심이 간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말해주는 허비를 보면서 인간들이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들으면 좋아하고, 늘 그런 이야기를 듣기 바란다. 이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은 자신에겐 진실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선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허비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바람이 깨어진 사람들이 늘 하는 남 탓하기를 보는 듯해 약간 씁쓸하다.  

 

 이 두 편을 제외하고도 재미난 이야기는 많다. 한 편 한 편이 그 자신이 만든 로봇공학 3원칙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상황들은 그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과정이 즉흥적이고 단순하기보다는 논리적이고 수학적이다. 물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로봇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로봇을 만든 회사의 직원들인 수잔 캘빈 박사와 파웰과 도노반 등이다. 이들이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는 모습에서 만나게 되는 로봇들은 점점 발전한다. 그들은 한 개인을 넘어 이제는 인류를 위험에서 구하려고 한다. 이 낙천적인 기대는 어쩌면 자신이 세운 로봇공학 3원칙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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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 신작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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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처럼 이영도를 처음 만난 것은 <드래곤 라자>였다. 이 소설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당시 문학의 엄숙성을 더 좋아했던 나에겐 조금 가볍게 다가왔다. 그 후 읽은 <퓨처 워커>는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 동안 머릿속에 남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도 그녀의 결정론적 운명론은 머리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폴라리스 랩소디>는 독특한 인물 덕분에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후 너무 장편이라서 그의 책들을 조금 멀리하고 있다. <눈마새>를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데 내년엔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드래곤 라자> 출간 10주년 기념작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나왔다. 나 자신이 읽은 것도 근 10년 전이다. 그러니 당연히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세부적인 사항은 전혀 기억에 나지 않고, 대략적인 윤곽만 어슴푸레 남아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그 시대 1000년 후다. 그 긴 시간의 흐름 뒤를 다루다보니 예전에 만난 인물들의 기록은 역사의 한 장으로만 남아있다. 그 당시 화자였던 후치는 기록도 없고, 드래곤과 함께 했던 드래곤 라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설을 읽다 조금 놀라운 도약을 한다. 엘프가 나오고 용이 날아다니는 시절인데도 자동차와 총을 사용한다. 왕정은 그대로 유지되고, 마법도 아직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드래곤과 인간의 대립이 있기 전까지 내용에선 총이라 동력을 이용한 기계가 이 세계에 통용될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아직 검과 마법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단정하고 읽은 것이다. 작가의 의도적인 연출인지 아니면 나 자신이 보고자 한 것에 의한 오독인지 잘 모르겠다. 약간 낯선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예언이다. <퓨처 워커>에서 미래를 걷는 그녀를 생각하면 간단할 수 있지만 소설 속 예언자는 예언하길 거부한다. 단 한 번도 예언을 한 적이 없는데도 모두 그가 천 년에 한 번 나올 예언자라고 믿고 있다. 예언을 하지 않는 예언자는 그가 속한 나라가 전쟁에서 패하고, 그 전쟁으로 가족과 연인을 잃은 사람들에게 분풀이와 핑계의 대상이 된다. 그가 예언을 했다고 해서 전쟁이 멈추고, 그들이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예언을 강간이니 폭력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그 능력으로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은 꼭 있다. 만약 그 사람이 권력자라면 더욱 욕망이 강할 것이다. 이 소설에선 그 나라의 왕비다. 그를 고문하여 자신이 원하는 예언을 얻고자 한다. 이런 현실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엘프 이루릴과 그녀의 드래곤 친구다. 물론 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벽타기꾼 왕지네도 있다. 공조와 협력에 의해 그를 바이서스에서 탈출시킨다. 자신의 나라를 떠나 그는 한 화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나타난 이루릴은 그를 협박하여 3년의 시간 동안 세상과 격리시킨다. 그러나 그가 사랑한 화가가 아이를 낳고, 왕비가 그 아이를 이용해 협박한다. 여기서부터 예언자는 자신이 숨기고 있던 능력을 조금씩 발휘한다. 그 능력으로 아이를 만나러 가서 알게 되는 진실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예언을 한다.   

 

 그 예언은 명확한 단어와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예언자들이 그렇듯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하나의 이론이 우세해지면 그 예언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이때부터 비극은 탄생한다. 때마침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엄청난 무기 그림자 지우개는 혼란과 소용돌이를 불러오기에 딱 좋다. 그리고 여기서 예언과 국가의 의미와 존재에 대한 물음이 뒤섞이며 그려진다. 단순히 그냥 즐기면서 읽기에는 조금 무거운 느낌이다. <드래곤 라자> 이후 그의 문학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문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를 사용하는데 사실 처음엔 상당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설이나 전래 동화를 구연하는 듯한 문장이라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뒤로 가면서 복잡하게 엮이고, 섞이는 상황과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장면들로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드래곤과 인간들의 전투 장면에선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인간들 때문에 약간 허무하였고, 그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죽음들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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